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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章독마말혼(毒魔末振) (59/254)

第十章독마말혼(毒魔末振)

칠각사는 얼마 전에 위장을 채워 기분 좋은 배부름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전, 침입자가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잠에서 깨버렸다.

감히 자신의 영역 안에 겁도 없이 들어온 것도 모자라, 기분 좋은 잠을 방해하다니!

칠각사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부거운 몸뚱아리를 이끌었다.

그 몸이 쓸려 나갈 때마다 바닥이 진흙처럼 뭉개지고, 천장에 달린 종유석이 우수수 떨어졌다.

크고 작은 종유석들은 칠각사의 몸체에 약간의 흠집만 남겨 놓고 박살나 버렸다.

샤아아아.

매끄럽고 거무튀튀한 녹색을 띠는 비늘이 바닥에 쓸릴 때마다, 인근의 서식지에서 독물들이 바짝 긴장했다.

독혈곡 포식자의 등장에 몸을 벌벌 떨었다.

“크군!”

주서천은 동굴 입구 부근, 잿빛으로 물든 암반 지대에 서서 짐짓 감탄했다.

이 근처는 독혈곡에서 봐왔던 광경과 사뭇 달랐다.

죽어 버리고 없는 나무뿌리가 언뜻 보이긴 했지만, 칠각사가 밟고 지나갔는지 죄다 뭉개져 있었다.

너무 울창한 나머지 햇빛을 가리는 수풀 대신, 동굴을 둘러싼 가파른 절벽과 암벽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 점심이죠.”

주서천이 명검, 예한을 뽑아 들었다.

그 목소리에는 광기도, 공포도 없었다.

“히, 히이익!”

성하장의 무사들이 칠각사를 보고 기겁했다.

“허어…… 이것이…… 칠각사인가……”

단하성도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눈을 크게 뜨고, 탄성과 함께 말꼬리를 흐렸다.

말로는 들었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몸으로 느끼니 압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샤아아악……

칠각사가 두 갈래로 갈라진 혓바닥의 진퇴를 반복하면서 눈앞에 있는 인간들을 노려보았다.

금강석 모양의 비늘 사이에 위치한 샛노란 눈동자는 보는 것만으로 몸이 절로 경련했다.

“정신 차리십시오!”

주서천이 내공을 담아 소리쳤다.

정순한 내공이 성하장 무사들의 고막과 뇌를 후려쳤다.

“으음!”

공격하려고 목소리에 내공을 담은 게 아니다.

칠각사의 울음소리에 전신이 마비되는 걸 피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건 소림사의 사자후가 좀 더 뛰어난 효능을 보이긴 하지만, 이건 이거대로 통하기는 한다.

“작전대로 갑니다!”

주서천이 먼저 몸을 날렸다.

칠각사 영역에 들어올 때, 간단하지만 어떻게 싸울지 의견을 교환했다.

“정말로 혼자서 미끼가 될 생각인가…… 담이 큰 건지, 아니면 겁이 없는 건지……!”

단하성이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도 움직였다.

성하장 무사들을 지휘하면서 칠각사의 사냥에 나섰다.

“하아앗!”

칠각사가 동굴에서 다 나오기 전, 주서천이 먼저 그 몸으로 파고들어가 꼬리에 붙어 검을 휘둘렀다.

예한 덕에 더더욱 매섭게 변한 검기가 밑바닥부터 시작해 그 위로 선을 긋는다.

푸슈슈슛!

검이 지나간 곳에는 혈선이 남았다.

순간 핏방울이 튀었나 싶더니, 이윽고 분수처 럼 위로 솟구쳤다.

“됐어!”

성하장 무사가 환호했다.

그들의 얼굴에 희망이 감돌았다.

‘얕았다.’

정작 주서천의 낯빛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원래는 몸체를 동강 낼 생각으로 공력도 상당히 냈다.

그런데 반도 자르지 못했다.

뿔만 단단한 줄 알았는데, 비늘의 강도도 보통이 아니다.

생각 이상으로 단단했다.

샤아아악!

칠각사가 몸체를 비틀었다.

육중한 무게를 자랑하는 꼬리가 떠올라 주서천을 덮친다.

휙!

주서천이 몸을 던져 앞을 굴렀다.

정파인이 죽기보다 펼치기 싫어한다는 나려타곤(源馨打浪)이다.

하지만 개똥같이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

등 위로 칠각사의 꼬리가 스치고 지나가는 건 섬뜩했다.

“어딜!”

도복이 흙투성이가 됐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구르자마자 일어나서 앞으로 달린다.

목표는 칠각사다.

주서천은 도망가기는커녕 , 땅을 박차고 뛰어올라 칠각사의 몸에 가볍게 착지했다.

곧이어 몸체를 박차곤 힘껏 내디뎠다.

용천혈에서 내공이 흘러나와 추진력에 힘을 가했다.

칠각사가 이변을 눈치채고 몸을 흔들 무렵, 주서천은 이미 분화구처럼 솟은 머리에 도착했다.

“후웁!”

그대로 숨을 들이쉬면서 검을 힘껏 내리꽂는다.

검 끝이 비늘의 틈 사이로 껴들어 살을 파고들었다.

“캬아아아악!”

아가리가 절로 쩍 벌어지면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오직 고통밖에 느끼지 않는 울음소리였다.

칠각사는 생전 처음으로 겪어 보는 과한 고통을 버티지 못하고 몸을 마구 뒤틀면서 괴로워했다.

쿵! 쿵!

몸이 벽면에 부딪힐 때마다 동굴이 크게 흔들렸다.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얼마 남지 않았던 종유석들이 하나둘 떨어지는 걸 시작으로, 천장 자체가 무너져 내렸다.

샤아악!

칠각사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빠져나오려 했다.

“막아!”

주서천이 외쳤다.

급박한 상황에 경칭이 생략됐다.

“알겠네!”

단하성이 선두로 성하장 무사들이 따랐다.

그들은 칠각사가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입구를 둘러쌌다.

“막앗!”

“어딜!”

동굴 자체는 칠각사의 몸체를 수용할 수 있었지만, 또 그렇게까지 여유가 남는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칠각사는 사냥감을 체내에 저장한 상태인지라 몸이 부풀어 올랐다.

몸이 겨우 동굴에서 빠져나오는 수준이었는데, 날뛰느라 그만 동굴이 무너져 머리만 겨우 내밀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같았더라면 눈앞에 인간들을 무시하고 빠져나왔겠지만, 몸 위를 짓누르는 잔해가 방해됐다.

“하나!”

주서천이 그 틈을 타 검을 박은 채로 움직였다.

우뚝 솟은 뿔을 주변으로 원을 그린다.

검이 지나간 곳에는 기다란 혈선이 남았다.

그리고 원을 완성했을 때, 검을 깊숙히 박아 두곤 지렛대로 삼아 힘껏 힘을 줘서 들어 올렸다.

푸화아악!

성인 남성만 한 높이의 뿔이 살점과 비늘을 주렁주렁 달고 뜯겨져 나갔다.

“키에에에에에엑!”

칠각사가 유례없던 비명을 터뜨렸다.

고막이 ‘웅웅’ 하고 떨려 왔다.

무사들이 무심코 균형을 잃었다.

“히히, 뿔이다!”

주서천이 히죽 웃으면서 뿔을 후려쳤다.

칠각사의 샛노란 눈동자에 지면을 구르는 뿔이 비춰졌다.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뿔을 본 칠각사였다.

샤아아악!

감히! 감히!

신체의 일부를 잃은 칠각사의 분노는 결코 작지 않았다.

부모를 살해당한 것처럼 사납게 울어 댔다.

그 몸에서 독혈곡의 맹수들조차 움츠러들게 만드는 살의가 뿜어져 나왔다.

“허억!”

성하장 무사 중 몇몇이 압도되어 온몸이 마비됐다.

칠각사가 그 틈을 노리고 아가리를 쩍 벌렸다.

“네 이놈! 누굴 노리느냐!”

단하성이 폭풍처럼 몰아치는 살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서 사일검법을 펼쳤다.

눈부실 정도로의 빠르기, 과연 쾌검으로 이름 높은 검법이었다.

푸욱!

칠각사의 혀 밑바닥에 단하성의 검이 박혔다.

“키에엑!”

다시 한번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졌고, 그 머리통을 위로 치켜들었다.

단하성은 끌려가지 않기 위해 꽂힌 검을 빼내곤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읏차!”

칠각사가 발버둥치면서 머리를 마구 흔들었으나, 주서천은 용케 떨어지지 않고 잘만 버텼다.

심지어 검을 빼낸 뒤, 칠각사의 비늘을 꽉 잡곤 몸을 천천히 이동해 눈꺼풀 위에 도착했다.

“자아, 눈깔부터다!”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칠각사의 눈알에 검을 꽂았다.

푸우욱!

“캬아아아아악!”

“시끄러워. 이제 잔뜩 들어서 지겹기만 해!”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다시 눈알을 찔러 줬다.

“언제까지 동굴 구석에서 틀어박혀 살 거니? 이제 햇빛도 좀 보고, 사람도 만나고 그러자!”

햇빛을 볼 수 있는 눈을 검으로 쑤셨다.

“다들 뭐합니까? 보고만 있을 겁니까?”

주서천이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일행에게 외쳤다.

“헛!”

단하성도 정신을 차리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음……?’

일행이 움직이는 걸 확인할 때였다.

칠각사에게 매달려 몸이 흔들릴 때, 동굴 안쪽에서 무언가를 본 주서천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때가 아니야.’

입맛을 다시면서 외면해야만 했다.

“가자!”

단하성이 제일 먼저 칠각사에게 붙는다.

그 뒤를 성하장 무사들이 따랐다.

칠각사는 무너진 동굴의 잔해 탓에 움직임이 극히 제한되어, 상대하는데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다.

머리통을 크게 흔들어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만 어떻게 피하기만 하면 됐다.

푹! 푸욱!

열여섯 개의 검이 추가로 칠각사의 몸에 박힌다.

검기를 주입해서 비늘 사이를 찔러 치명상을 입혔다.

강기가 아니라면 벨 수 없는 뿔을 가졌다 할지라도, 몸에 공격을 허용한다면 소용이 없다.

동굴에서 완전히 벗어나 마음껏 움직였다면 정말로 성가셨을지도 모르지만 처음부터 몸의 절반 이상이 짓뭉개진 덕에 어렵지 않게 상대했다.

“헌 집 줄게, 내단과 뿔을 다오!”

찌르고, 베고, 피하고, 찌르고, 베고, 피한다.

지루한 반복 행동.

그렇지만 중요하다.

제대로 피하지 못하면 죽는다.

찌르다가 검이 박혀 빠지지 않는다면 휩쓸려서 죽는다.

베다가 검이 부러지기라도 한다면 떨어져서 구경만 해야 한다.

주서천과 단하성.

이 둘을 필두로 단하성 무사 열다섯 명은 힘을 합쳐서 연계해 나갔다.

성난 황소처럼 마구 날뛰던 칠각사도 지쳤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에 띄게 둔해졌다.

“조심해! 독이다!”

키에엑!

독물이 독을 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칠각사는 근 몇십여 년 동안 독을 내뱉은 적이 없다.

이무기가 되기 위해서 독기를 흡수해 내단을 형성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굳이 쓸 필요가 없어서였다.

하지만 그 자존심과 긍지도 목숨의 위협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칠각사가 아가리를 찍 벌려 독액을 토해 내듯이 내뱉는다.

검푸른 색을 띠는 액체가 암반 지대를 덮었다.

치이익!

바닥이 독에 의해서 용암처럼 들끓었다.

그 위로 허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땅이 가라앉는다.

“이런!”

성하장의 무사가 놀라 검을 떨어뜨렸다.

독의 늪에 빠진 검이 흔적도 없이 녹아내렸다.

“빠지게!”

단하성이 명령을 내렸다.

무사가 열넷으로 줄었다.

검을 잃은 무사는 뒤에서 망을 보기로 했다.

“끈질긴 놈!”

주서천이 질린 듯이 혀를 차면서 검을 내리꽂았다.

눈이 아닌 정수리를 노렸다.

샤아아아!

칠각사도 점점 지쳐 갔다.

피를 너무 많이 홀려서 그런지 활활 타오르던 생명의 불꽃도 사그라졌다.

한쪽 눈은 잃었고, 뿔도 하나 없어졌다.

몸체의 반은 짓뭉개지고 머리도 찢어져 피가 솟구쳤다.

아직까지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움직이는 게 기적이었다.

괜히 이무기를 앞둔 영물이 아니다.

“마무리다!”

주서천이 검을 쥔 채 달렸다.

칠각사의 정수리부터 시작해 콧등을 타고, 혓바닥 위로 떨어졌다.

“무, 무슨!”

“미친 건가!”

일행이 그런 주서천을 보고 기겁했다.

스스로 아가리에 몸을 던지다니!

“안 미쳤으니 꾸준히 검으로 쑤시기나 하십시오!”

주서천이 외치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두 갈래로 갈라진 혀가 반 토막났다.

남은 혀가 튕기듯이 말아 올라가면서 칠각사의 기도를 막았다.

독액이 잔류하여 몸에 묻었다.

옷자락은 녹았지만 신체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기본적으로 백독불침이고, 거기에 내공을 응용하여 막고 있는 덕에 칠각사의 독을 중화시킬 수 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그리고 내공 전부를 쏟아 내듯, 기를 잔뜩 주입한 검을 휘둘러 아가리 안쪽으로 검풍을 쏟아 냈다.

말아 올린 혓바닥을 검의 바람이 찢어 갈긴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전진해 식도를 넘어, 머리 너머의 몸통 내부에서 폭풍처럼 몰아쳤다.

“캬아아아아악 …… !”

칠각사의 머리가 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그 비명은 죽음을 앞둔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쿠웅!

콰드득!

마지막 남은 뿔이 살점과 비늘째로 뜯겨졌다.

“휴우!”

일곱 개 뿔 전부가 바닥에 놓여졌다.

단하성온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으면서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혼자 힘으로 해낸 것은 결코 아니나, 칠각사를 사냥했다는 사실에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흠흠.”

주서천은 여섯 개의 뿔을 나열한 다음 밧줄로 꽁꽁 묶어 등에 업었다.

참고로, 칠각사가 쓰러지자마자 확인 사살을 하는 척하면서 내단을 일행 몰래 회수해 뒀다.

“대(大) 점창파의 칠공자이자, 대인배이고 고수인 단 공자. 약속한 대로 뿔 여섯 개는 제가 갖겠습니다.

설마하니 사파인처럼 뒤통수를 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럴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하.”

일부러 미사여구를 이것저것 덧붙여서 말했다.

전란의 시대에서 은인에게 강도로 돌변하는 자를 몇몇 봤다.

사람 일은 모른다.

“은인에게 어찌하여 그런 짓을 하겠는가!”

단하성이 정말 섭섭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그렇죠.”

주서천이 안심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말로, 정말로…… 고맙네. 목숨을 구해 줘서, 그리고 날 도와줘서 정말로 고마워.”

단하성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대협!”

성하장 무사들도 허리를 숙였다.

“어흐흠, 뭐 이런 걸 가지고…… 별거 아닙니다.”

주서천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 듯, 옅게 웃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내 꼭 갚으리라.”

“그렇다면 부탁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부탁?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들어주겠네. 말해 보게나.”

“저에 대한 것이나, 칠각사의 사냥에 성공한 것을 비밀로 붙여 줬으면 합니다.”

단하성은 양심적이고 정직한 사람이다.

후자는 그렇다 쳐도, 전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주서천에게 거의 모든 도움을 받았거늘, 그걸 비밀로 하고 자신이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그리고 화산파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뿔을 가져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단 공자를 위해서라도 이러는 게 좋을 겁니다.”

“끄응, 알겠네. 은인의 부탁인데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숨기려는건…… 그것 때문인가?”

단하성이 주서천이 등에 업은 뿔을 가리켰다.

주서천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걸로 대신 답했다.

비록 강기 앞에선 무력한 뿔이나, 반대로 생각하면 강기가 아니라면 벨 수가 없다는 의미다.

애초에 강호 무림에 화경의 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일반 무인 입장에선 탐나는 재료였다.

이를 점창파가 알게 되면 욕심을 낼 것이 뻔했고, 별별 이유를 핑계로 붙여서 빼앗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소문이 나서 암천회가 알게 되면 설명하기 입 아플 정도로 귀찮아진다.

“알겠네. 내 자네가 구해 준 목숨, 그리고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네. 이들도 자네가 허락하기 전까지는 무덤까지 들고 갈 걸세.”

맹세하겠습니다, 대협!”

성하장 무사들이 입을 맞춰 답했다.

“자, 이제 동굴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 돌아갑시다.”

독혈곡의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하성이 점창파로 복귀했다.

품 안에는 칠각사의 뿔과 독혈곡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독초 등 증거물이 잔뜩 들려 있었다.

“허어, 칠공자가 독혈곡에 다녀왔다고?”

“사형들에게 인정받지 못한다고 미친 짓을 했군. 팔다리는 멀쩡한 겐가? 중독된 건 아니고?”

“중독되기는커녕, 칠각사와 싸워서 살아남았다고 하더군!”

“뭣? 그게 정말인가?”

“그래. 비록 사냥에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가까스로 도망쳐서 살아 돌아왔다고 들었어. 거기에 모자라 칠각사의 그 뿔까지 취했다고 하네.”

“도저히 믿기가 힘들군. 혹시 가짜가 아닌가?”

“안 그래도 오늘 그의 사형들이 믿지 못해 검기로 베어 보려 했지만, 죄다 실패했다네. 진짜가 분명해.”

점창칠공자는 점창파에서도 손에 꼽히는 고수다. 그들이 실패했다면 진위 여부는 분명했다.

“대단한데!”

사천당가의 독인들도 깊숙이 진입할 수 없는 독혈곡이다.

수많은 동물과 맹수, 험준한 지형,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암흑, 미로처럼 얽힌 길까지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제치고 칠각사와 만나 생환했을 뿐만 아니라, 뿔까지 취했다.

대단한 공이었다.

“혼자 힘으로 해낸 건 아니지 않나. 듣자 하니 가문의 무사들의 힘을 빌렸다며?”

“어허, 그의 주변에 있던 무사들이 지닌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는 사제도 잘 알고 있지 않나.”

“그래. 이제 단 사제에 대한 편견은 잠시 내려야 할 때야. 너무 나쁘게 보지는 말라고.”

“적어도 돈으로 산 무공으로 빈둥빈둥 살거나, 그걸 자랑하는 용도로 쓸려 한다는 인식은 버리자.”

단하성의 사형들도 처음에는 그를 의심하거나, 탐탁치 않은 눈으로 봤지만 확실히 시선이 바뀌었다.

아직 그중에는 끝까지 단하성을 좋아하지 않는 사형도 있었으나, 그렇지 않은 사형도 생겼다.

“칠공자의 무공이 보통은 아니지?”

“그렇지.”

“나 같으면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닐 텐데, 그 한 번의 보고 이후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더군.”

“허, 그것참 겸손하군그래.”

점창파는 단하성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겸손한 태도와 진중한 성격, 거기에 그동안 알려지지 못한 무공이 재평가됐다.

그러나 단하성이 공을 자랑하지 않는 이유에는 다른 곳에 있었다.

주서천에게 거의 모든 도움을 받은 것과, 그 공을 전부 자신이 행한 것으로 밝히기가 싫었다.

‘주 대협에게 정말로 많은 것을 빚졌구나. 내 나중에 기필코 이 은혜를 갚으리라.’

* * *

독혈곡.

지옥의 주인 중,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이무기를 앞에 둔 일곱 개의 뿔을 지닌 뱀이었다.

넓은 영토를 지배하던 칠각사가 죽자, 자연히 그 밖에 있던 독물과 맹수들이 조금씩 전진했다.

그들은 서로 눈을 붉히며 전쟁을 하려 했으나, 얼마 뒤 나타난 인간에 의하여 도망쳐야 했다.

그 인간이 얼마 전 칠각사를 무참히 살해한 강자인 탓이었다.

“휴우!”

인간, 주서천은 무너진 동굴 잔해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잔해 더미에 깔린 칠각사는 피가 잔뜩 굳은 채, 독액에 범벅이 되어 시체만 남았다.

주서천은 등에 업은 뿔을 잠시 내려놓은 뒤에 잔해 더미로 다가가 바위를 하나둘씩 치웠다.

“마음 같아선 당일에 조사하고 싶었지만, 의심을 받을 것 같아서 입구까지 함께했다고……”

괜한 불평이 튀어나왔다.

“그때, 분명 무언가를 봤다.”

칠각사에게 검을 꽂고 매달려 있을 때 동굴 입구 근처에서 기이한걸 발견했다.

그러나 이후 칠각사와의 싸움이라거나, 단하성 일행 탓에 제대로 확인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수고가 더 들긴 하지만, 독혈곡 입구까지 돌아갔다가 단하성이 떠나는 걸 보고 다시 돌아왔다.

한 시진, 두 시진, 세 시진의 시간이 흘러, 하루의 절반이 날아갔다.

밤이 되기 전의 석양이 질 무렵,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었다.

“잔해 더미에 깔려 형체도 없이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이렇게 남아 있군.”

아무런 무늬도, 장식도 없지만 녹색의 철함(鐵函)이었다.

약간 뭉그러졌을 뿐, 비교적 멀쩡했다.

철함 위에 잔뜩 묻은 흙먼지와 자갈을 손으로 툭툭 턴 뒤, 동굴에서 떨어졌다.

“그 잔해에서 살아남은 걸 보면 재질이 보통이 아니고, 대부분 이런 거에 담긴 건 범상치 않은 법이지.”

철함을 내려놓고 손바닥을 비벼 준비했다.

“입구 근처에서 봐서 다행이었지.

좀더 안쪽에 있었다면 잔해 탓에 반년 이상은 파헤쳐야 했을 거야.”

처음 봤을 때, 철함이 반쯤 땅에 박혀 있던 덕에 그 난리에도 쓸려나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 벌려!”

철함에 힘을 줘서 열어 본다.

끼이익.

오랫동안 닫혀 있어서 그런지, 열릴 때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만한 소음이 길게 이어졌다.

무공 비급……?

너덜너덜하고, 누렇게 변질된 서적이었다.

진조(陳朝) 왕조, 명장(名將) 진홍도(陳興道)!

그 이름에 내 목숨과 명예를 바쳐왔고, 앞으로도 바칠 것이다.

그 결심에는 어떠한 후회도 없다.

본국의 숙원인 안남(安南)을 대월(大越)로 되돌릴 수 있는 날을 꿈꾸며, 팔꿈치에 살달(殺隨 : 몽골군을 죽이자)이라 새겨 원(元) 놈들에 대한 증오를 키워 왔다.

진조 삼(三) 년(年)에 원나라가 삼 만을 이끌고 수도를 점령하였을 때, 피를 나눈 가족과 벗이 살해당했다.

필자는 장기인 독과 전염병으로 그 씹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놈들을 죽여 소중한 사람들의 원혼을 달랠 수 있었다.

독과 전염병으로 수도를 점령했던 원나라 군대가 철수한 틈을 타 공격해 대승을 거뒀던 날.

진홍도 장군께서는 미천한 필자의 공을 높이 여겨주었고, 독과 전염병을 전문으로 한 부대까지 만들어 주셨다.

그분께서는 앞으로의 전쟁에 독, 특히 전염병이 중요할 터이니 보다 전문적으로 연구하라 명령을 내리셨다.

필자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 평생을 독과 전염병에 매진하였다.

그 결과 이 나라에서 독과 전염병으로는 나를 따를 자가 없었고, 좀더 많은 지식을 원해 중원의 또 다른 세계, 무림(武林)으로 들어가 독과 병에 대해 공부하기도 했다.

정파와 사파, 아울러 마교와 혈교의 지식을 손에 넣는 데도 성공했으나 그 탓에 무림 공적이 된 것이 문제였다.

천하가 필자를 쫓았고, 도주 도중 내상을 입어 고향 땅을 밟지 못하고 금지로 알려진 독혈곡 안에 숨어야만 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지켜 내는 데 성공했지만 내상이 심해 더 이상 움직일 수 있는 힘도 남아 있지 않구나.

원통한 것이 있다면, 내 지식을 전부 전하지 못해 장군께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무림에서 얻은 지식으로 독공을 창안했으나, 이렇게 잊혀지게 만들 수는 없도다.

그대여!

그대가 누구건 상관없네.

설사 원나라의 인간이라 할지라도 괜찮으니 부디 내가 남긴 것을 장군께 전해주게!

유서로 시작되는 비급서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 뒤로는 이름도 밝히지않은 자의 무공이 남아 있었다.

하나, 이 무공 덕에 필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녹안만독공(綠眼萬毒功)!”

입을 떡 벌리면서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독마(毒魔)!”

무림 공적이란 건 흔한 게 아니었다.

특히 정사뿐만 아니라 마도이세까지 쫓는 건 결코 보통이 아니다.

무림 역사에서도 공적으로 삼을 만한 자는 별로 없기에, 그의 독공은 아직까지도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게 바로 녹안만독공이다.

‘독마가 남만인이었어?’

독마의 숙원은 이루어지기는 한다.

약 백삼십여 년 전, 원의 세조 쿠빌라이 칸이 또다시 수도를 점령하고 멸망 직전까지 밀어 넣었다.

하지만 이때도 진홍도가 활약해 기적적으로 침략을 막아 내는 데 성공하고, 물리쳤다.

이후 다시 빼앗겼던 이름, 대월국으로 되돌아가는 데 성공하지만 최종적으로 미래가 밝지는 않았다.

원나라의 몇 차례의 전쟁에도 패배하지 않았던 대월은 과거 제도와 외척 등으로 멸망하게 된다.

명장 진홍도가 사망한 지 채 백 년도 되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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