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신궁취미(神弓超味)
주서천은 근처에 놔둔 망태기를 메고는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단하성 일행에게 말을 걸었다.
“화산파의 주서천이요.”
주서천이 짧게 소개했다.
“저, 점창파의 단하성이라고 하외다……”
“아! 점창칠공자!”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그보다 점창칠공자나 되는 양반이 왜……?’
점창파가 아무리 실전 무학이 발달되었다곤 해도 독을 쓰지는 않는다.
독혈곡에 올 이유가 없었다.
“방금 전에 하오체는 못 들은 것으로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 다. 신분을 몰라 그만 실례했습니다.”
“주 대협은 은인이 아닌가. 신경쓰지 말게.”
단하성이 점창칠공자 중 막내라고 해도, 주서천 또래는 아니다.
나이만 언뜻 봐도 삼십 대 초반이었다.
어엿한 강호의 선배이기도 하며, 같은 문파는 아니지만 그래도 장문인의 제자이니 항렬로도 상당하다.
“그리고 은인께 미안하네만, 괜찮다면 안전한 장소까지 호위해줄 수 있겠나?”
너무 놀라 넋을 잃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여유로운 편은 아니다.
서른에 이르던 인원은 그 반절, 열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
또 그중 반이 부상자였다.
식사는 물론이고 수면도 제대로 이루지 못해 다들 하나같이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아까 돌아다니다가 쉴 만한 동굴을 발견했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동굴은 그다지 깊지 않았다.
적어도 안쪽에서 독물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지 않아도 되니 안심할 수 있었다.
단하성 일행은 그제야 안심하면서 쉴 수 있었다.
“목숨을 빚졌네, 주 대협.”
단하성이 지혈을 끝내자마자 감사인사를 전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주서천이 괜찮다는 듯이 손사래를 쳤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정파인으로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나, 그걸 행동으로 실현하는 건 쉽지 않지.
무엇보다 이곳은 자기 목숨도 챙기기 힘든 독혈곡이 아닌가? 다시 한번 깊이 감사의 인사를 표하네.”
단하성이 호의와 존경을 포권에 담았다.
‘영웅지에 나올 법한 인물이로군!’
주서천이 혀를 내두르며 감탄했다.
단하성의 몸짓이나 표정에는 거짓 하나 담겨 있지 않았다.
단순한 인사치레 같은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어리고 후배인 자신에게 이렇게까지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게 아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뒤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무사들도 부랴부랴 일어나면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으음. 이상한데.’
왠지 모르게 근질거렸다.
같은 무인, 그것도 열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그 반대인 경우는 많았지만……’
전장에서 생명의 등불이 꺼질 때, 누군가 바람처럼 등장해서 구해 주곤 갔다.
그 뒷모습이 사라지기 전,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던 게 떠올랐다.
“그나저나, 혹시 독혈곡에 온 건 주 대협뿐인가?”
단하성의 눈은 묘한 기대로 차 있었다.
“아, 예. 그렇습니다. 저 혼자입니다.”
“허어…… 독혈곡에…… 정말로 혼자 왔나?”
단하성이 탄성을 내뱉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주서천을 쳐다봤다.
마치 “왜 그런 미친 짓을 한 것이냐?’ 라고 묻는 것 같았다.
“호, 혼자가 뭐가 나쁩니까.”
괜히 순간 울컥해서 말까지 더듬었다.
회귀 이전부터 언제나 혼자서 밥을 먹고, 수련하고, 공부하고, 싸우다가 죽어간 생이 스치고 지나갔다.
“확실히 주 대협의 무위를 보니 괜한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독혈곡은 무림에서도 금지로 지정할 만큼 무시무시한 곳인 건 잘 알고 있지 않나.
조금이라도 자만하다간 목숨이 위험하니, 그러한 마음가짐은 버리게나.”
단하성이 진지한 얼굴로 걱정해 줬다.
“……”
주서천은 괜히 아프고 쓸쓸한 기억에 울컥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면서 입을 다물었다.
괜히 여기서 방금 전 일을 말하면 구차해질 것 같아서다.
“크흐흠! 감사합니다.”
“보아하니 수선행인 것 같은데…… 독혈곡까진 대체 어언 일로……?”
“독물들을 상대로 살아남아 제 강함을 증명하고 싶어서 왔습니다.”
독혈곡의 방문자 중에는 가끔씩 이런 부류가 있다.
그중 반이 사망하고, 반은 초입에서 되돌아간다.
칠각사의 내단을 취하러 왔다고 할 수는 없다.
괜한 욕심 탓에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단하성도 다행히 별 의심하지 않고 수긍했다.
“주 대협, 만약 독혈곡에서 나가지 않을 생각이라면…… 목숨까지 빚진 입장으로선 염치 불구하나, 부탁을 청해도 괜찮겠나?”
“부탁이라면 어떤……?”
“부디 우리와 함께 칠각사라는 영물을 사냥해 줬으면 하네.”
‘……’
하마터면 입 밖으로 헉 소리를 낼 뻔했다.
‘칠각사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한 칠각사에 대해 알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는 암천회뿐이었다.
그런데 점창파의 무인, 단하성에게 들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릿속 한구석에서 이들이 실은 점창파가 아닌 암천회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스쳐 지나가기는 했다.
하지만 역시 암천회치곤 다들 허술하거나 약한 탓에 그 가능성은 금세 묻혔다.
무엇보다 장문인의 제자 정도 되는자가 암천회의 일원이었다면 전생에서 거론이 되지 않을 리 없었다.
“의아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걸세. 자세한 걸 이야기해 주지.”
단하성이 예상했다는 돗이 말했다.
“먼저, 주 대협은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음……”
주서천은 대답하지 못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단하성이 쓴웃음을 흘렸다.
“괜찮네. 점창칠공자의 막내라는 것을 제외하곤 아는 것이 없을 걸세. 그게 정상이야.”
전생에서도 현생에서도 마찬가지다.
단하성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별로 없다.
언젠가 죽었다는 소식 정도는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시기도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는다.
“나 단하성은 점창파 장문인의 제자인 동시에 성하장 장주(莊主)의 아들이기도 하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충격적인 소식을 알려 줬다.
“허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다만, 괜찮겠나?”
“저야 괜찮으나…… 칠공자야말로 이야기해 줘도 괜찮겠습니까?”
“자네는 내 생명의 은인이 아닌가. 무엇보다 도움을 청하는 입장에선 사정 정도야 말해야 할 것 같네.”
당가가 정파답지 않은 오대세가라면, 점창파는 정파답지 않은 구파일방이다.
점창파는 종남파와 나란히 도가 문파이나 세속적인 성향이 눈에 띄는 대문파이기도 했다.
서장, 남만, 귀주와 광서를 주변에 둔 운남의 분쟁지 특성 탓에 실전적인 무학이 가미되어 발전하고 거듭됐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점창파는 이러한 분쟁과 역사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게 문제였다.
분쟁, 곧 전쟁은 결코 적지 않은 돈이 든다.
싸움이 끝나도 피해를 복구하는 데 소비되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이렇다보니 점창파의 재정은 일찍이 문제가 됐다.
“정창파가 재정 상태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무렵, 성하장이 접근해 어떠한 제한을 했지.”
대충 예상이 갔다.
“장주의 핏줄을 장문인의 제자로 삼아 달라. 즉, 점창파의 무공과 비호를 원한 거지.”
성하장이 아무리 비호표국을 동시에 운영하고, 운남의 상권을 독점하고 있다 해도 상인일 뿐이다.
그들에게는 성하장과 그 재산을 지킬 힘이 필요했다.
표국의 힘으로는 부족한 감이 있었다.
표사들 중에서 고수도 몇 없는 데다가, 그들조차 외부에서 낭인처럼 고용해 데려왔을 뿐이었다.
보다 확실하고 신뢰가 갈 고수와 힘이 필요했다.
구파일방의 점창파!
이 얼마나 확실한 보증인가!
“정창파는 이를 받아들이는 대신, 세 가지 조항을 넣어 두었네.
첫째로 장문인의 제자가 될 수 있는 건 한 명이요, 둘째로는 본인 외에게 무공을 함부로 발설할 수 없도록 그에 관한 금제를 걸어 두는 것이었지.
셋째는 이 사실을 되도록 함구해 달라는 것일세. 왜 그런지는 자네도 알 걸세.”
첫째나 둘째는 두말할 것 없이 당연한 일이고, 세 번째의 경우에는 강호 무림의 비난을 두려워해서다.
점창파와 성하장의 관계에 막말을 좀 섞자면, 절기인 무공을 돈을 받고 판매한 것이 된다.
아무리 점창파가 실전적 무학이 발달된 탓에 그 사고방식이 정파답지 않게 유연하다곤 해도, 이와 같은 행위를 한다면 무림 문파의 모멸 어린 시선을 받는다.
금(金)으로 무(武)를 산다는 건 정파 무림에서도 혐오하는 행위다.
제한을 걸어 두기는 했지만, 그렇다할지라도 결코 좋은 시선을 받을 수는 없었다.
사파에서조차 ‘절기를 팔아야 할 정도로 점창의 위세가 그리 떨어졌나?’ 라면서 비웃음을 받는다.
그렇기에 점창파는 이 일이 되도록 알려지지 않도록 함구령을 내리고 소문이 퍼지는 걸 막았다.
“이렇게 중요한 사실을 저에게 가르쳐 주셔도 정말로 괜찮겠습니까?”
“……그리고 이 사실은 점창칠공자인 내 사형들도 잘 알고 있다네.”
단하성은 주서천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형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번 맞춰 보겠나?”
“허어…”
주서천은 대답 대신 침음을 흘렸다.
단하성의 어두운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이나마 예상이 갔다.
“어쩌다 운이 좋아 장문인의 제자가 된 부잣집 도련님, 그리고 점창의 치부. 그것뿐일세.”
단하성이 씁쓸하게 웃었다.
“날 따스하게 감싸 주고 응원할 가족이라도 있으면 좋겠으나, 그런 것도 아닌지라 버티기가 힘들더군.”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쨌거나, 나는 사형들에게 부디 점창파의 한 사람의 무인으로서 인정받고 싶었어. 그래서 이곳, 지옥이라 칭해지는 독혈곡에 칠각사를 사냥하러 왔네.”
“혹시 칠각사라는 건……”
“이런, 내 정신 좀 봐…… 칠각사의 사냥을 도와 달라 해놓고 아직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
단하성이 미안하다는 듯이 웃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독혈곡이 아직 금지로 정해지기 전의 일이지만, 한때 본 파의 무인들이 독혈곡으로 토벌행을 떠난 적이 있었네.
그때 일곱 개의 뿔이 달린 뱀과 만났다고 하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강기로도 벨 수 없었다고 하더군.”
‘과연, 점창파도 알고 있었던 건가.’
이상한 건 아니다.
점창산과 애뇌산은 가깝다.
심마니 등이 출입했다가 수도 없이 사고를 당해 문제가 생긴다면 자연히 점창파가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무력으로 누군가를 돕고 문제를 해결한다면, 자연히 점창파의 명성도 오른다.
무엇보다 독물들을 처리해서 북쪽에 있는 사천당가에게 넘긴다면 부족한 재정도 채울 수 있으니까.
“그 뿔로 무기를 만든다고 하면 천하에 손꼽히는 보검이나 명검이 탄생할지도 모른다고 하더군.
그 전설을 확인하고, 칠각사를 사냥한다면 사형들도 분명 나를 진정한 점창칠공자로 인정할 걸세.”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한데……’
뿔도 부수적으로 챙길 생각이었다.
칠각사는 내단도 대단하지만 뿔도 무기의 재료로써 가치가 높았다.
‘단하성. 인성도 나쁘지 않고 아까 언뜻 보니 무공도 그럭저럭 높았다. 배경은 두말할 것도 없지.
그런데도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건, 점창파에서 치부로 여기고 숨긴 탓이었던가.’
그의 사정이 머릿속에 그린 듯이 떠올랐다.
‘그리고 미래에서도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건……’
아까 그곳에서 죽을 운명이었을 것이리라.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네만, 염치 불구하게도 부탁하겠네.
내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고 갚는다고 맹세하지!”
단하성이 간곡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도와 드리죠.”
주서천이 고민하지 않고 즉답했다.
“저, 정말인가?”
단하성이 즉답에 놀랐다.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다른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 다시 한번 말하네만…… 이 안쪽은 아마 더더욱 지옥일 걸세.
독충과는 비교도 하지 못할 정도로의 독물들이 바글거리고, 칠각사 역시 대단한 영물이야.”
“뿔만 강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또 이 정도 인원이 있으니 어떻게든 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끄응!’
단하성은 양심이 찔렸다.
마음 같아선 자신과 함께 온 무사들이 그렇게까지 큰 도움은 되지 못할 것 같다고 솔직히 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 젊은 화산의 고수가 돌아갈지도 모른다.
지금은 한 명이라도 전력이 필요했다.
결국 저울은 양심보다는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쪽으로 기울었다.
‘미안하네.’
단하성은 아직 살아남은 열다섯 명의 무사들을 책임져서 함께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앞에 있는 청년의 도움이 필요했다.
현실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양심을 내려 두었다.
은인을 사지로 모는 것에 떠오르는 죄책감 역시 한쪽 구석에 잠재웠다.
“그럼 잘 부탁함세.”
* * *
다들 잠이 부족해 돌아가면서 자기로 했다.
그동안 서로 간략하게 소개하는 등의 대화를 나누었다.
덕분에 단하성이 올해 서른한 살로, 절정의 고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아까 자네는 내공을 상당히 소모한 것 같았는데 지친 기색 하나 안 보이는군그래.”
“제가 이래 돼도 한 때 내공의 주서천이라 불렸습니다.”
그렇게 불린 적 없다.
“미안하군. 내가 수련에만 힘을 쓰다 보니 강호의 사정에는 그다지 밝지 않아 잘 모르네.”
단하성은 점창파에 입문하자마자 사형들에게 박해를 받았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노력의 기간은 제법 오래됐다.
그러니 주서천을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삼안신투의 비고 탓에 한 때 반짝였던 그 이름은 금세 묻히지 않았는가.
떠오르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최근 당혜와의 내기 비무의 경우도 독혈곡으로 정신이 쏠렸으니 모를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칠각사의 뿔은 혹시 얼마나 가져가야 합니까?”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다면 다행이지. 솔직히 사냥한다고 했지만, 칠각사를 죽이기는 힘들 걸세.”
“하오면……?”
“뿔은 강기로도 자를 수 없지만, 비늘이나 살점은 그렇지 않지. 그러니 뿔과 함께 살을 통째로 뜯어내, 전력으로 도망쳐야 하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제가 가져도 됩니까?”
원래 칠각사의 뿔은 내단 다음으로 겸사겸사 챙길 생각이었다.
“할 수 있다면 해 보게나. 가능하다면 내 것만 제외하고 전부 가져가도 좋네.”
단하성이 헛웃음을 흘렸다.
‘할 일이 정말로 많군.’
칠각사의 뿔의 처리도 그렇고, 흉마의 무덤으로 인한 칠검전쟁 이후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주서천은 요 몇 년 동안 세웠던 계획 등을 다시 머릿속 한구석에 박아 둔 다음에 발걸음을 옮겼다.
“독충입니다.”
주서천이 검을 가로로 부욱 휘둘렀다.
파-아앙!
길게 늘어지는 파공음이 터지면서 검풍이 주변을 휩쓸었다.
근처의 독충들이 검압에 터졌다.
캬르르르!
수풀을 헤치고 누가 봐도 기형종인 독물들이 튀어나왔다.
지네, 나방, 거미 등 종류도 여럿이다.
“칠공자께서는 수비에 신경 써 주십시오.”
“단 공자면 되네. 정말로 그걸로괜찮겠는가?”
단하성이 독지네를 양단하곤 물었다.
“네, 내공을 아끼십시오. 성하장의 무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하면 앞으로 나서지 마십시오.”
이류에서 일류 수준의 무사들은 점창파의 제자가 아니었다.
단하성에게 거둬진 성하장의 무사였다.
“저 대신 망태기나 챙겨 주십시오.”
독초를 우물거리면서 몸을 날렸다.
숨을 거칠게 쉬지도 않았고, 기합을 내뱉지도 않았다.
그저 말없이 묵묵하게 검을 휘둘렀다.
단하성 일행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던 독물들은 별 힘도 내지 못하고 주서천의 검에 쓰러져 나갔다.
그 숫자가 이미 세 자릿수를 넘으니, 그 경이로운 무공에 성하장의 무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약관도 되지 않은 나이에 저 정도의 무공이라니!’
아까 전 자신들을 소개할 때 주서천에 대해서도 들었다.
처음 그 연령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다.
단하성 자신과 동수, 혹은 그 이상의 고수로 보이는 그가 약관도 되지 않았다는 것에 입을 떡 벌렸다.
구파일방뿐만 아니라, 전 무림을 뒤져 봐도 저 정도 실력에 열여덟 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보게, 주 대협. 혹시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스승의 존함을 알 수 있겠나?”
주서천의 강함을 보니 일반 제자는 아닐 것 같았다.
단하성의 머 릿속에는 화산오장로와 매화검수, 그리고 상천십좌 검선 우일문이 스쳐 지나갔다.
“네. 사부님의 존함은 유 자, 정 자, 목 자입니다.”
“아, 소유검 말인가……”
단하성이 아는 체를 했다.
다만 그 표정이 미묘했다.
‘소유검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원래는 무명에 가까운 이름이었지만, 몇 년 전에 나타나 갑작스레 여러 활약을 한 화산의 고수다.
강호에 눈이 어두운 단하성조차 익히 듣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 튀어 나왔다.
툭 까놓고 말하자면, 주서천처럼 대단한 제자를 배출하기에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위인은 아니었다.
“천하제일인이 되실 겁니다. 지금 이름을 잘 기억해 놓고 나중에 가서 인사라도 하는 걸 추천합니다.”
주서천이 코를 우뚝 세웠다.
자부심으로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것인가! 은인이 저리 존경하는 스승을 대단하지 않다고 폄하하다니 !’
단하성은 양심인이다.
정파인 중에서도 청렴한 편이었다.
보통 집안이 좋거나 대문파의 제자면 안하무인으로 자라기 마련인데, 그러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사문에서 사형들에게 따돌림과 모멸 어린 시선을 받는데도 올바르게 성장했다.
괜히 그를 따르는 무사들이 목숨까지 걸었던 게 아니다.
“미안하네, 주 대협. 내 잠시 동안 자네의 스승을 대단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었네.
우리를 구해 주고, 무공까지 대단한 사람의 스승이 별 볼 일 없을 리가 없지. 은인의 스승을 폄하하다니, 날 용서하지 말게나.”
단하성이 싸우다 말고 허리 숙여 사과했다.
“고, 공자님!”
근처에 있던 무사가 기겁하면서 그의 곁으로 다가오는 독물을 막는 데 힘썼다.
주서천이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저거 순 미친놈 아니야? 저러니까 일찍 죽지.’
인정받는다면서 독혈곡에 들어왔을 때부터 알아봤다.
“괜찮습니 다. 정 미안하면 나중에 저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배은망덕한 마교도나 사도천 놈들처럼 잊으시지만 않으면 됩니다. 하하.”
은근슬쩍 정파의 체면을 이용했다.
이것이 화산오장로 시절에 눈치를 보며 배웠던 정치!
“그럼 다시 앞으로 집중하겠습니다.”
좀 더 잡담을 하는 것도 괜찮지만, 그럴 만한 상황과 장소가 아니다.
주서천 장본인은 예외였지만 다른 이들이 그러지 못했다.
‘누군가를 지켜가며 싸우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군.’
전생에서는 그 반대였다.
어떤 영웅이나 고수에게 도움과 지원을 받았다.
동문의 제자들과 함께 싸운 적은 여러 번 있긴 했지만, 누군가를 지켜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보다 큰 힘과 정신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다.
“후우, 그럼 숫자가 좀 줄었으니까……”
시간이 점차 흐르자 독물들도 눈에 띄게 없어졌다.
주서천의 검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것도 있지만, 그의 강함에 질려 도망친 독물들도 많았다.
원래 생물, 특히 동물들은 본능에 의지한다.
직감적으로 주서천이 강자라는 걸 깨닫고 다가가지 않았다.
여유가 좀 생기자, 검이 아니라 활을 쓸 수 있게 됐다.
망태에 넣어둔 활과 화살을 꺼내 착용했다.
“이보게, 주 대협. 설마 그걸 쓸 생각인가?”
“예. 취미입니다.”
주서천이 시위에 화살을 걸며 답했다.
“아니, 아무리 독물들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런 장난을 할 정도로의 여유는……”
파앗!
단하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일반적인 화살이 아니라 공력을 담은 화살이다.
뾰족하게 모인 화살촉은 대기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는 어린아이만한 크기의 독거미를 노렸다.
콰지직!
“끽!”
독거미가 외마디 비명을 흘렸다.
다리가 이어진 몸통부터 시작해 머리통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 장난?
단하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무사들도 할 말을 잃었다.
‘화, 화산파에 궁공이 있었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화살에 공력을 담는 건 무인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 봤자 속력과 파괴력을 조금 늘리는 정도다.
저런 재주, 아니 능력을 보이는 건 불가능했다.
“취미일 뿐입니다. 취미요.”
중요하니 두 번 말했다.
검과 활을 교대하듯이 사용하면서, 독혈곡을 쑤시고 다녔다.
성하장 무사에게 독초의 채집을 부탁했다.
“화산파의 도사는 요즘 독초까지 씹어 먹는 건가?”
“내 알기론 독혈곡의 독초가 하나같이 약하지 않다고 들었는데…… 설마 독초가 아닌 건가?”
“잎에 새겨진 저 화려한 무늬를 봐. 저게 독초가 아니라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죽고 싶지 않으면 손도 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조부님이 심마니셔서 어릴 적에 종종 따라가서 독초와 약초를 구별해 봤는데, 이 독혈곡에서 약초…… 아니, 식용으로 할 수 있는 것조차 없다고.”
성하장 무사들은 주서천의 기행에 수군거렸다.
단하성도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보게, 주 대협. 독초는 대체 왜 씹는 건가?”
“독인들은 일부러 중독되어 독에 대한 내성을 높인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고 있습니다.”
“……아니, 그게…… 무슨…… 가능한 말인가?”
단하성이 너무 황당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확실히 독인의 수련 방법이 그렇다는 건 들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독공을 수련한 자에 한해서다.
그런데 도가 무학 중에서도 정통에 속하는 화산파의 제자는 당연히 할 수 없다.
그런데 얼굴색을 보아하니 그건 또 아니다.
독에 대해 내성이 있는 건 맞는 거 같은데……
생각할수록 복잡해졌다.
눈앞에서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머리가 따라가 주지 않는다.
“단 공자. 독공 수련해 보셨습니까?”
“아니…… 그런 적은…… 없네……”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 마십시오.”
“……”
할 말을 잃었다.
“그보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이 근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군요.”
확실히 그 말대로였다.
어딜 가던 끊임없이 나타나던 독충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보통 이럴 때는 이 주변에……”
우르릉!
말이 무섭게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굉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