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독혈지옥(毒血地獄) (57/254)

第八章독혈지옥(毒血地獄)

애뇌산.

산세는 험악하며 계곡이란 계곡은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깊다.

밤낮을 구분없이 사계절 내내 구름과 안개로만 뒤덮여 있는 봉우리는 언뜻 봐도 높았다.

그리고 그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는 험준한 골짜기가 지옥의 입구처럼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나뭇가지처럼 뻗쳐 있는 산줄기는 도저히 나이를 알 수 없는 거목들로 뒤덮여 어두컴컴하다.

애뇌산은 험준한 지형도 지형이지만, 산 속에 숨은 독물과 맹수 탓에 죽음의 산으로도 악명이 높다.

그중에서도 제일 악명을 떨치는 건, 애뇌산에 있다는 독혈곡(毒血谷)이었다.

독혈곡은 또 다른 세상이기도 하다.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른다.

고대부터 독혈곡을 정복하려는 시도는 몇 번이나 있었지만 그 누구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입구만 해도 위험천만한 독물들로 가득했고 대부분이 입구도 뚫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가끔씩 안까지 들어간 자들이 있었지만,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당가의 독인조차 돌아오지 못했다.

이름 모를 생존자에 의하면, 독혈곡 내부에는 그동안 상상하지도 못하는 독물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그 위험성 탓에 독혈곡은 관부는 물론이고 무림에서까지 금지(禁地)로 지정됐다.

하나 그 금지에 발을 들이는 자들이 있었다.

점창파 장문인에게는 일곱 명의 제자가 있다.

강호에선 그들을 보고 점창칠공자(點蒼七公子)라 부른다.

장문인의 마지막 제자, 칠공자 단하성은 이승과 지옥을 잇는 입구에 서서 중얼거렸다.

“이 앞이 그 말로만 듣던……”

독혈곡!

그 이름만으로도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단하성은 뒤를 돌아봤다.

그 시선 끝에는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죽음을 각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 지금 돌아가도 후에 처벌하지 않을 터이니,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게나.”

“아닙니다!”

무사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답했다.

“자네들도 독혈곡의 악명은 귀가 닳도록 들었으니 잘 알고 있을 걸세. 이 밑은 지옥이야.”

“공자님께서 저희를 거두어 준 순간, 평생을 따르기로 맹세했습니다.

만약 공자님 이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저희는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

단하성은 그 말에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에 비친 것은 결사(決死)의 얼굴을 한 무사들이었다.

“들어가지.”

단하성이 삼십 명의 무사를 이끌고 입곡(入谷)했다.

독혈곡의 입구는 이름 그대로 입구다.

안쪽까지의 깊이가 상당해서 이각 정도는 꾸준하게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자칫 잘못했다간 목숨을 잃는 곳이 독혈곡이다.

안심과 자만은 이곳에서 극독이 된다.

“덥다……”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땀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머리를 들어 봤지만 가파른 절벽과 거목만 보였다.

햇빛이 내리쬐지 않아 독혈곡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공자님, 이제 곧 독충 지대에 도착할 것 같……”

사각사각사각!

주변에서 나는 기이한 소리에 앞장 선 무사가 다음 말을 잇지 못하고 얼어붙었다.

“태세를 정비해라!”

단하성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었다.

허리춤의 검을 시원하게 뽑아들면서 무사들에게 경고했다.

“아아악!”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좌익에 서 있던 무사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다리에 들러붙은 괴기스럽게 생긴 벌레가 보였다.

크기가 성인 남자의 손바닥만 했다.

“독충(毒蟲)!”

독혈곡에서 먹이 사슬의 아래층에 있는 약체지만, 그 대신 물량으로는 제일이었다.

틈만 나면 덤벼 오는 탓에 방심할 수가 없다.

독혈곡에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고, 변소에 갈 수 없는 것도 이 독충의 탓이 크다.

“위험…… 크윽!”

단하성은 독충에 물린 무사를 구해주려고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그 행동은 이어지지 못했다.

사각사각사각사각사각!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습은 물론이고 기척 하나 내지 않던 독충들이 파도처럼 쓸려오면서 나타났다.

검정과 녹색으로 물든 우글우글한 벌레 떼는 그대로 무사를 집어삼켜 포악하게 날뛰었다.

“해독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방심하지 마라! 그 순간 동안 움직임이 둔화된 걸 노려 덤벼드니까!”

“독충에게 물리지 않도록 해!”

“크아아아악!”

지옥은 이제 막 시작됐다.

“정신 차려!”

* * *

나뭇가지에서 독충이 떨어져 팔뚝에 올라섰다.

그러곤 입에 달린 집게로 망설임 하나 없이 물었다.

“아, 귀찮게.”

뿌직!

손바닥으로 대충 내려쳤다.

독충이 터지면서 피가 튀었다.

피도 그냥 피가 아니라 독으로 되어 있다.

백독불침 입장에선 독충의 독은 위험하지 않다.

해독할 것도 없이 그냥 안 통한다.

“벌레들이란!”

성가신 벌레들을 청소하기로 마음 먹었다.

검을 뽑아 들어 검기를 두른다.

칠각사와의 싸움에 대비해야 하기에 주입한 내공의 양은 많지 않았다.

“사라져라!”

제자리에서 몸을 빙글 돌았다.

검기가 검풍으로 변해 주변을 슥 훑고 지나갔다.

바람 속에 숨어 있는 검압(劍壓)이 독충을 짓눌렀다.

그 힘을 버티지 못한 독충들이 죄다 터져 버렸다.

인근에 있던 수백 마리의 벌레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독충들 또한 충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는 듯 몸을 파르르 떨면서 움직이지 못했다.

“성가신 것들도 처리했으니 느긋하게 찾아볼까.”

주서천은 검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걸었다.

참고로 찾으려는 건 칠각사가 아니다.

그 뿔 달린 뱀은 계곡물을 따라가면 나오는 동굴에 서식한다.

가 본 적은 없지만, 암천회의 도감은 정확하다.

그들은 이미 전부터 지속적으로 독혈곡을 넘나들었는데, 새삼 그들의 무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찾았다!”

푸르스름한 잎사귀에 알록달록한 점이 가득한 풀이 보였다.

누가 봐도 독초다.

흙을 손 끝으로 파낸다.

뿌리가 다치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주서천은 풀을 뿌리까지 전부 캐낸 뒤, 흙을 툭툭 털어 낸 다음 입 안에 집어넣었다.

혹시나 독초가 아니라 겉만 화려한 약초일까?

“음, 혀가 얼얼해지는 이 맛…… 독초야!”

아니다.

“잎부터 시작해 뿌리까지 독이 잘 스며들었구나.

이 정도 독이라면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아.

독의 내성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독혈곡은 금지지만, 사천당가의 무인들만큼은 이를 무시하고 정기적으로 찾아온다.

독공을 수련하는 자들 입장에선 영약이나 다름없는 것들이 천지에 널려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당가도 이 이상 깊숙이 들어가지는 못한다.

입구 근처의 독초 정도만 캐고 돌아가는 정도였다.

주서천은 독공을 수련하지는 않았지만, 독초를 내성을 키우는 목적만으로 복용했다.

우물우물.

입 바깥으로 풀이 튀어나왔다.

이빨로 씹다 보니 즙이 나온다.

검푸른 색이어서 보기가 영 안 좋다.

“독초, 독초, 독초……”

눈에 보이는 대로 입에 물었다.

입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소화가 잘 되도록 꼭꼭 씹어 먹었다.

입에 다 담지 못해도 걱정 없었다.

이럴 줄 알고 약초꾼에게 돈주고 망태기를 사서 챙겨 왔다.

도복 차림에 망태기를 등에 메고, 잎이 삐져나온 독초를 우물거리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해괴했다.

채집에 집중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독혈곡에서는 태양의 위치도 잘 보이지 않으니 시간이 얼마만큼 흘렀는지도 파악할 수가 없었다.

“……흠?”

체감상으로 한 시진 정도 지난 정도였을까, 바닥을 바쁘게 파내던 손이 우뚝 멈췄다.

‘비명?’

짐승의 울음소리 같은 건 흔하다.

이젠 질리도록 들어서 별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나 방금 전은 달랐다.

짐승의 것이 아니었다.

“아아아악!”

사람이다.

“이 근방에 있어? 왜?”

초입도 아니다.

맹수와 독물이 우글거리는 곳이다.

사천당가의 고수들조차 이 이상으론 안 들어온다.

아니, 애초에 대부분 독충 떼를 만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돌아간다.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아악!”

“……”

눈이 가늘어지고 손은 어느새 검에 가있다.

‘누구냐.’

주서천의 얼굴에 긴장감이 묻어났다.

여태껏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살의가 느릿하게 부상한다.

내공을 끌어 올려서 기감을 넓히니 제법 거리가 있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무인 여럿이 잡혔다.

‘암천회?’

깊숙한 곳까지 올 자들은 별로 없다.

전부터 독혈곡을 제집처럼 돌아다닌 암천회가 유력했다.

영약만큼 심혈을 기울이진 않았지만, 그래도 독 역시 세상 곳곳을 쑤시고 다니면서 회수해 왔다.

금지로 지정되어 사람의 발길이 끊긴 독혈곡은 독이 필요한 자들에게 보고(寶庫)나 마찬가지였다.

사천당가와는 겹치지 않도록 신경써서 독초 등을 채집하거나 독물을 사냥해 내단을 취했다.

‘보고 오자.’

암천회라면 그들이 떠나기 전까진 몸을 숨길 생각이었다.

괜히 눈에 띄다간 골치만 아프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걷는다.

보폭도 줄이고 체중도 싣지 않았다.

기척도 지우는 데 신경 썼다.

호흡도 자연스레 느려졌다.

남들이 들으면 죽은 것은 아닌지 착각할 수준이다.

“꺼져어엇!”

근원지가 다가오니 갖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근처에 널린 고목의 나뭇가지에 올라 상황 파악에 나섰다.

저 멀리, 이십여 명 정도의 무인들이 등을 맞댄 채 다가오는 독물들과 격렬하게 싸우는 게 보였다.

잠깐을 살펴보고 있었을까,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암천회는 아니로군.’

주서천은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만 삼켰다.

칼날처럼 세워졌던 그의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저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독물에게 누군가가 다치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판단을 내렸다.

영물, 독물을 사냥하고 영약을 채집해 기록하는 도감부는 암천회에서도 고수가 여럿인 무력 단체다.

그런 자들이 겨우 독충이 주를 이루고, 끽해 봤자 이 급 독물에게 저리 당할 거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럼 누구지?’

당가의 사람들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독혈곡은 길을 잃었다거나, 혹은 실수로 발을 들일 수 있는 어수룩한 장소 따위가 아니다.

금지다 보니 입구 곳곳에 표지판을 세우고, 바위에 검기 등으로 글자를 새겨서 경고해 두었다.

그렇다면 일부러 독혈곡을 찾았다는 건데 머리를 굴려 봐도 이렇다할 시원스러운 대답이 안 떠올랐다.

“됐다, 일단 도와주자.’

그래도 저들이 정파라는 건 알아봤다.

“헉, 허억!”

악몽이었다.

* * *

독혈곡은 지옥이었다.

괜히 금지가 아니었다.

수를 셀 수 없는 독충들은 지속적으로 습격해 와 잠시간의 쉴 틈도 주지 않았다.

진입하면 진입할수록 지옥의 농도는 진해졌다.

외부에서 밟아 쉽게 죽일 수 있는 곤충들도 여기에선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지네나 거미 등을 맨 처음 봤을 때, 예닐곱 살 정도의 어린아이만한 몸체를 가진 걸 보고 경악했다.

동행 중 누군가 공포에 못 이겨 비명을 질렀지만, 그 누구도 겁쟁이라 손가락질하지 못했다.

자기들 역시 비명을 가까스로 참고 있었으니까.

삼십 명이나 됐던 든든한 무사들도 눈에 띄게 숫자가 줄었다.

문제는 생존자들 전부가 다 건강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개중에는 내공을 극심히 소모해 지치거나, 중독된 자도 여럿 있었다.

단하성을 따라 남만 정벌까지 따라나설 것 같았던 그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몇몇은 겁을 먹고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대며 몸을 떨었다.

사기는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피로와 독은 쌓여만 갔다.

쉴 틈이 없으니 피로 누적이 장난이 아니었다.

“으아악!”

지금까지는 독충과 거미, 지네 정도만 상대했다.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소원했으나 헛된 희망이었다.

허리 높이 정도의 수풀이 갈라지면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독물이 나타났다.

일단 겉모습만 보자면 당랑(煙鄕)이었지만, 독혈곡의 독물 아니랄까 봐 일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몸길이는 무려 육 척.

낫이 달린 앞다리는 어떠한 명검보다 예리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했다.

갑주처럼 단단한 앞다리 사이의 가슴만 노란빛이고, 나머지 몸체는 전체적으로 진한 갈색이다.

“미친!”

무려 육 척이나 되는 당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독혈곡의 극한 환경에 살아남으면 독에 영향을 받아 종(種) 자체에 변화가 일어난다고는 들었다.

그러나 눈앞에 선 당랑은 상식선 자체를 넘었다.

곤충이라기보다는 이제 독물이라는 하나의 종이다.

“공자님, 조심하십시오!”

거당랑(巨姬鄕)이 앞발을 휘두른다.

몸집이 있음에도 불과하고 그 속도는 바람과도 같았다.

단하성은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내려오는 앞발을 피하기는커녕, 검으로 쳐냈다.

“아”

불신과 경악으로 가득 찬 외침이 터졌다.

그 눈동자에 비치는 건 검기를 두른 검과 부딪쳤는데도 멀쩡하게 버티고 있는 거당랑의 앞발이었다.

영물은 검기상인(劒氣傷人)에 든 고수도 능히 상대할 수 있다고는 들었지만, 직접보니 충격적이었다.

샤아아앗!

거당랑이 입에 달린 집게를 비비면서 괴성을 냈다.

이후 낫이 된 앞발이 단하성의 어껫죽지를 노렸다.

“어딜!”

단하성은 어림없다는 듯이 재빨리 움직여 피했다.

순간적인 움직임만큼은 무림에서도 제일이라 평가받는 점창의 상승 무공, 탄현신법(彈鉉身法)이다.

“한낱 독물 따위가!”

앞발을 아직 채 회수하지 못해 생긴 틈을 노렸다.

순간 퇴보해서 몸을 뺐다가, 좌측으로 파고들었다.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이곳에 와서 죽어 간 자들의 원한을 갚으려는 돗 분노를 불태웠다.

‘사일검(射日劍)!’

검이 정면을 향해서 쭉 뻗는다.

육안으로 확인하기도 힘들 정도의 재빠른 찌르기가 거당랑을 노렸다.

푸욱!

검 끝이 거당랑의 입을 정확히 꿰뚫었다.

기분 나쁠 정도의 거무튀튀한 피가 튀어 아래로 홀렀다.

‘해냈다!’

단하성은 미소를 머금으며 쾌재를 불렀다.

입 내부를 직접적으로 공격하니 살갗이 손쉽게 갈라졌다.

자그만 뇌에 구멍이 뚫린 것까지 확인했다.

확인 사살을 위해서 검을 수평으로 그었다.

거당랑의 머리가 둘로 나뉘어졌다.

윗부분이 뚜껑처럼 덜렁거리다가 바닥을 굴렀다.

“공자님!”

지켜보던 무사가 환호 대신 비명을 질렀다.

“헉!”

단하성이 기겁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에 거당랑의 앞발이 내리꽂혔다.

파바바밧!

거당랑이 머리가 날아간 채로 앞발을 연달아 휘두른다.

어째 그 기세가 생전보다 한층 더했다.

강시라도 되느냐!

아니, 설사 강시라도 머리가 날아가면 움직이지는 못한다.

당랑이 아니라 괴생물 그 자체였다.

채채챙!

앞발의 날이 우측 사선을 그렸다.

단하성은 상단 치기로 튕겨 냈지만, 순간 몸이 기우뚱했다.

앞발에 실린 일격 하나하나가 대단하다.

실린 힘이 아까보다 늘어나고 공격도 격렬했다.

겸영(鎌影)이 빗발처럼 솟구치지만, 단하성은 사일검법으로 받아쳤다.

다행히도 점창의 사일검은 극쾌의 검법이라 거당랑의 공격이 빠르긴 했지만 충분히 받아쳤다.

“끄아아악!”

또 누군가가 고통으로 가득 찬 비명을 질렀다.

눈동자를 굴려 확인한 단하성의 얼굴에 패색이 묻어났다.

쩌억!

아까부터 불안해 보였던 무사가 정수리부터 시작해 가랑이까지 베여 통나무처럼 쪼개졌다.

그 단면은 실력 좋은 검수가 벤 것처럼 깔끔했지만, 문제는 그 재주를 보이는 게 독물이라는 점이다.

“안 돼……”

목소리가 절망으로 가득 찼다.

수풀을 헤치며 새로이 등장한 건 거당랑.

그것도 변이종인지 앞발이 무려 네 개나 달렸다.

죽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아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어째 희망은 없고 절망만이 남았다.

내공의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단하성도 슬슬 지쳐 갔다.

아무리 고수라도 외공 수련을 하지 않은 이상, 내공이 버텨 주지 않는다면 끝이다.

‘누가 좀…… 도와줘……’

단하성 본인도 그게 얼마나 헛된 소리인지 잘 안다.

미치지 않는 이상 독혈곡에 들어올 리가 없다.

독밖에 없는, 도저히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이 지옥에 발을 내디딜자는 없었다.

쐐애애애액!

무저갱처럼 끝이 보이지 않은 암흑에서 빠져나온 절망감이 몸을 묶었다.

순간 검을 쥔 손이 풀렸다.

머리가 날아간 당거랑은 그 틈을 놓치지 않는다.

“아뿔사!”

아니, 애초에 암컷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 영혼을 받쳐 정사를 하듯이 격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 순간을 조금이라도 허용한 순간 점창의 칠공자의 목숨은 끝난 것과 마찬가지였다.

“날 내버려 두고 모두 도망가……라?”

무심코 질끈 감았던 눈을 떴다.

그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묻어났다.

사람이 죽음을 코앞에 두면 생전의 삶을 떠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순간의 시간만큼은 느리게 느껴진다고 들었다.

한데 그것치곤 길어도 너무 길었다.

몸에서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아 이상함을 느껴서 확인해 봤다.

그곳에, 남자의 등이 보였다.

“도감으로만 봤던 거당랑인가……”

남자가 신기한 듯이 중얼거리곤 검으로 지면을 툭툭 쳤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남아서 생명을 불사르던 거당랑이 다섯 조각으로 잘게 쪼개졌다.

“그게… 무슨……?”

단하성은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혹시나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모르는 자였다.

목소리도, 뒷모습도 낯선 자였다.

언뜻 보이는 얼굴을 확인했지만 역시 처음이었다.

“당랑이 교미를 할 때, 암컷은 수컷을 잡아먹소.”

남자가 자신을 진득하게 괴롭혔던 거당랑의 앞발을 짓밟았다.

낫이 톡부러지며 피가 바닥에 흐른다.

“그리고 그 암컷은 잡아채기 쉬운 머리부터 먹는다고 하는데, 수컷이 죽기는커녕 그 성행위가 더욱 격렬해진다고 하오.”

남자가 정면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끝에는 새로이 등장했던 거당랑이 ‘키에엑’ 하고 울고 있었다.

“그것도 머리가 없는 채로!”

거당랑의 앞발이 남자를 노린다.

머리, 어깨, 허벅지, 가슴이었다.

전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부위였다.

그러나 남자는 몸을 크게 움직일 필요도 없다는 듯, 몇 걸음만으로 피해 냈다.

저 보법은!

단하성온 장문인의 제자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등과 교류했다.

남자의 움직임은 익숙했다.

저 발걸음은 언젠가 본 적이 있었다.

“당랑의 머리에는 사람처럼 과한 힘을 써 망가지지 않도록 억제하는 신경이 있다 하오.”

하늘하늘.

매화가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게 연상된다.

그 움직임에서는 여유까지 느껴졌다.

머리를 날려 버리면 그 신경도 함께 사라져, 힘이나 움직임이 배로 늘어난다고 하더군!”

단하성도 거당랑을 앞에 두고 저런 여유는 부리지 못했다.

그러나 남자는 알고있어봤자 쓸모도 없는 정보를 나열하면서 거당랑을 농락한다.

캬아아악!

몸체를 고정할 다리가 없어졌다.

거당랑이 앞발 둘을 써서 쓰러지지 않도록 지탱했다.

그리고 다가오지 말라는 듯 나머지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위협했다.

“그러니 앞으로 당랑을 보면 머리가 아니라 몸 전체를 짓뭉개거나 발로 치십시오!”

남자의 검이 앞발을 벤다.

검기까지 잘 막아 내던 껍질이 두부처럼 허무하게 잘렸다.

“흐합!”

거당랑이 죽기 직전 살려달라는 듯이 애처롭게 울었다.

남자는 그걸 기합으로 무시하곤 발로 날렸다.

발끝에 잔뜩 실린 공력이 거당랑의 앞발 사이에 있는 가슴을 힘껏 후려쳐 박살 내 버렸다.

끼에에!

거당랑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엎어진다.

잘리지 않은 머리에 달린 눈에서 빛이 꺼졌다.

“내 솔직히 꽃향기가 나는 여인이 살려달라 외치고, 그 틈에 등장해 구해 주는 영용지와 같은 전개를 조금 기대하기는 했소.”

남자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남자는 검에 기를 주입했다.

물처럼 흐르는 푸르스름한 기가 언뜻 보인다.

색을 보니 정파였다.

그래도 사파인이나 마교도, 혹은 혈교도에게 목숨을 빛지는 경우는 피했다.

“아니, 그보다 독충들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니야?”

목소리에서 벌레들에게 쌓인 것이 느껴진다.

단하성도 무심코 그 말에 긍정하는 답변을 할 뻔했다.

남자는 짜증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지은 채, 검을 전방위로 몇 차례 휘둘러 검풍을 쏟아 냈다.

퍼퍼펑!

눈을 껌뻑이니 백 마리에 가깝던 독충들이 몸이 터 져 나갔다.

단하성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공의 소모가 워낙 대단해 쓰지는 않고 있었다.

그래서 내공을 아끼라고 말하려 했지만, 입을 다시 닫았다.

남자는 땀 한 방울 홀리지 않고 검풍을 숨 쉬듯이 쏟아 내면서 독충의 학살에 나섰다.

 ……

졸지에 병풍처럼 된 무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그 압도적인 무위에 입을 떡 벌려 경악했다.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중독되어서 환각이라도 보는 건지……”

절체절명의 때, 웬 고수가 나타나선 여태껏 목숨을 위협하던 독물들을 멸종시키듯이 없애버린다.

워낙 현실감에서 벗어나는 광경인지라 그들이 의심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캬아앗!

“시끄러워.”

이름도 모를 독물이 비명을 지르면서 덤벼들었다.

그런데 남자는 그걸 귀찮다는 듯이 베어 갈랐다.

시산혈해.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처럼 흘렀다.

그래도 다행인 건 그 시체가 사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윽고 차가 식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단하성과 그를 따라온 무사들은 아직도 눈을 비비면서 믿기지 않은 듯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앞에는, 여태껏 그들을 괴롭혔던 독물들이 허겁지겁 도망치는 모습과 남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후우!”

남자가 이제 숨 좀 돌리겠다는 듯 허리에 손을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여전히 땀 한 방을 흘리지 않아 별로 힘들어 보이지는 않았다.

“화산파 ……”

단하성이 남자의 소맷자락에 새겨진 매화를 보고 중얼거렸다.

그의 의아함이 더더욱 깊어졌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남자가 대답 대신에 말없이 검을 갈무리했다.

햇살이 들어오지 않음에도 그의 검은 눈부시게 빛났다.

“주서천.”

남자, 주서천이 씩 웃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