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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七章만년화리 (萬年火魚理) (56/254)

第七章만년화리 (萬年火魚理)

당가를 방문해 독봉과 만나겠다는 남자들 중 열에 셋 정도는 혼인을 걸고 비무를 청한다.

당혜는 그럴 때마다 대부분 비무를 받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기습해 일격으로 승부를 냈다.

집안사람들에게 있어 이 일은 상당히 익숙한 풍경이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날이 갈수록 무덤덤해졌다.

주서천이 품은 의문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진 이후로는 집안, 정확히는 접객실 근처에서 큰 소란이 일어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

다들 ‘또?’ 라면서 그러려니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또 누군가 독봉에게 반해 목숨 아까운 줄 모르고 덤렸나 싶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당혜의 승리라고 생각했다.

그게 상식이었고, 당연한 일이었다.

“……”

당혜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아아……”

찌증이 섞인 한숨을 내뱉는다.

귀한 석경(石鏡)에 얼굴을 비춰 보니 피곤함이 묻어났다.

독봉이 된 이후로 처음으로 패배했다.

이 일이 알려지자마자 자신은 문책을 받았다.

독봉 당혜는 단순히 한 사람의 무인이 아니다.

당가라는 단체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자가 누군가에게 패배했다거나 하면 당연히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당가도 정파인 만큼 위신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그래서 방금 전까지 얼마 전에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설명한 다음, 실컷 꾸짖음을 받고 돌아왔다.

벌로 당분간 허락 없는 승부는 금해졌다.

누가 도발해와도 참아야한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이후 당가는 괜한 헛소문이 퍼지지 않도록 발 빠르게 나서서 정리했다.

혼인을 건 내기도 아니었으며 , 또한 독봉 쪽에선 딱히 전력을 낸 것도 아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교류로써…… 당가와 화산파의 친목을 위한……”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전력을, 내지 않았다……인가.’

그렇지 않다.

살의를 담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단숨에 제압하기 위해서 본신의 무위를 모두 보였다.

당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은 모양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전력을 쏟아낸 게 맞다.

정면 승부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자랑하는 기습이나 암습이 전부 실패했다.

‘주서천……’

빙한독을 넘겨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정녕 신경 쓰이는 건 완패(完敗)였다.

그 치욕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았다.

* * *

사천, 중량산(中梁山).

“후, 잘 찾아왔네.”

봉우리를 이 잡듯이 뒤져 목적지를 찾았다.

기간은 약 사흘 정도가 걸렸다.

숨 쉬기 힘들 정도로의 열기, 절로 불쾌해지는 습기, 지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김을 보면 확실하다.

멀리서 보이는 김을 따라서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십 장(丈)이 넘는 크기의 온천이 보였다.

용암처럼 부글부글 들끓는 수면을 보면 몸을 담글 생각이 싹 가신다.

들어갔다간 뼈까지 녹아 버릴 것만 같았다.

콰아아아!

고막이 먹먹해지는 굉음이 들렸다.

머리를 들어 확인하니 온천의 끝에서 지면을 꿰뚫고 위로 솟아오르는 간헐천(間歌泉)을 볼 수 있었다.

꽤나 장관이었지만, 한가하게 여기서 이럴 시간은 없다.

이백여 개의 석회암 계단을 내려가 온천에 다가갔다.

피부가 달아오를 정도의 열기가 확 와 닿는다.

주서천은 끝까지 내려가진 않고, 적당한 곳에 서서 기감(氣感)을 비롯해 모든 감각에 집중했다.

‘찾았다!’

반 시진 뒤, 물속을 돌아다니는 그림자가 보였다.

물고기치고는 몸집이 제법 크다.

“만년화리!”

만년화리가 정말 만 년을 산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만큼 기나긴 세월을 살아온 영물이다.

이곳처럼 고열의 환경에 서식한다는 것 자체가 범상치 않았다.

“고맙다, 암천회.”

전란의 시대에는 영약이나 영물 등이 숱하게 발견됐다.

워낙 난세였는지라 무인들이 이곳저곳을 쑤셔 댄 탓도 있었지만, 암천회의 손길 때문이기도 했다.

암천회는 도감부(圖鑑部)라 하여, 영약과 영물을 수집해 기록하는 조직을 따로 만들어 활동했다.

그만큼 영약이나 내단을 중요시했다.

그들이 괜히 강한 게 아니다.

내력증진용이나 외부의 고수들을 섭외하기 위해 수집해서 사용했다.

이 도감부의 기록은 전란이 끝난 이후 주로 수뇌부 등의 일부에게만 공개됐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회복하라는 의미에서였다.

주서천도 장로의 권한으로 열람할 수 있었다.

다만 암천회가 영약이란 영약, 영물이란 영물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쓸어 담아 그다지 쓸모는 없었다.

“전에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읽었는데, 그게 이렇게나 도움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도감 외에도 읽은 건 정말 많다.

지식은 곧 힘이라고 했는데, 틀린 말 하나도 없었다.

실은 그다지 유능하지 못하다 보니 시간이 남았다는, 눈물겨운 사정이 있지만 그건 잊기로 했다.

잉어!

시위를 몇 번이나 튕겼다.

도합 십여 개의 화살이 바람 소리를 내면서 날아가 만년화리를 노린다.

콰앙!

첫 번째 화살이 수면을 뚫고 바닥에 처박혔다.

일 할의 공력을 담았는지라 파괴력이 남달랐다.

양기건 음기건 별 소용없을 것 같아 순수하게 쏘기만 했다.

그래도 파괴력이 대단했다.

물이 승천하듯이 솟아올라 분수를 만들었다.

수면이 일시적으로 낮아지면서 만년화리가 보였다.

성인 남자 팔뚝만 한 몸체, 눈처럼 흰색.

확실히 도감에 나온 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파바밧!

두 번째 , 세 번째 화살이 연달아 꽂힌다.

물기둥도 늘어났다.

하지만 만년화리는 보이지 않았다.

스스슥!

만년화리가 헤엄을 쳤다.

눈으로 겨우 좇을 수 있는 수준의 빠르기다.

과연 영물은 영물이지만, 도망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다.

이곳 간헐천에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

“어딜!”

내기의 흐름을 용천혈로 바꾸면서 온천으로 뛰어들었다.

안 그래도 뜨거웠던 열기가 한층 더 심해졌다.

왼발이 수면에 닿는다.

그 순간, 재빠르게 오른발을 뻗으면서 힘껏 달렸다.

“하압!”

목청껏 기합을 터뜨린다.

그런다고 가라앉지는 않는다.

그 대신 경공의 상승 기법을 이용한다.

등평도수(登落渡水)다.

암향표를 대성하면서 자연히 쓸 수 있게 됐다.

만년화리가 헤엄친다면, 주서천은 뛰었다.

다리를 바꿀 때마다 첨벙하고 물이 크게 튀었다.

“내단!”

주서천의 검이 만년화리의 꼬리를 노렸다.

김이 잔뜩 껴 앞을 가렸지만, 문제는 전혀 없었다.

검이 수면을 가르고 들어간다.

물의 저항력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공력을 잔뜩 넣어 완전히 배제했다.

하지만 상황이 마음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첨벙!

만년화리가 직각으로 튀어 올랐다.

수면 바깥으로 새하얀 몸체를 자랑하듯이 내보였다.

‘맙소사!’

주서천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놀라워했다.

설마하니 이 일격을 피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아직 이르다.

휘익!

만년화리가 포물선을 그렸다.

그런데 그 방향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반대였다.

눈처럼 새하얀 잉어는 자신을 공격한 자에게 분노하듯이 덤벼들면서 꼬리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퍼억!

“억!”

비명이 절로 나왔다.

당혜에게 기습을 당했을 때도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다.

하마터면 내공의 운용에 실패해 가라앉을 뻔했다.

“……”

꼬리로 맞은 뺨이 얼얼하다.

“하하.”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요 몇 년 동안 무공 수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지금을 위해서다.

부글부글.

수면이 끓는다.

기포가 생겼다가 터지기를 반복했다.

온천의 열기 탓이라고 하기엔 끓는 것이 심했다.

일 갑자를 넘는 내기가 외부로 방출된다.

도가 무학의 정순한 기가 고요하게 퍼지다가 주변을 휩쓸었다.

쓰지 않던 내공들을 폭발시켜 힘으로 전환했다.

살아서 돌아가진 못할 것이다!

어차피 죽이려고 했지만 그냥 말해봤다.

주서천은 정면으로 날아들었다.

만년화리는 뒤에서 움직임을 포착했다.

만약 사람이었다면 한껏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동족도 아니고, 발 달린 미개한 동물이 따라온다.

헛고생이다.

이 주변은 자신의 영역이다.

날개 달린 미물도, 팔이 길고 털이 수북한 미물도, 자신을 잡기는커녕 농락만 당했다.

만년화리는 몸체를 수류(水流)에 따라 춤을 추듯이 흔들어 정면을 향해 미끄러지듯이 쭉 전진했다.

만년화리는 저 미물을 좀 더 농락하자고 마음먹고 여유를 부렸다.

“제일식”

그러나!

“자하개벽!”

우르릉!

마른하늘에 벽력이 쳤다.

산새들이 놀라 비상했다.

위이잉!

검에 맺힌 기가 무섭게 회전하면서 굉음을 낸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눈으로 도저히 좇을 수 없었다.

만년화리는 영물로서 그 심상치 않은 기를 느꼈다.

전력을 내 범위에서 벗어나 사라지려 했다.

“제이식, 화우선형!”

앞으로 쏘아진 검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하나였던 검기가 수십 개로 나뉘어져 동시에 앞으로 날아갔다.

펑! 펑펑펑!

검기 다발이 떨어지면서 수면이 엉망진창이 됐다.

가라앉아 있던 자갈들이 위로 솟았다.

충격의 여파로 인해 파도가 일어나서 주변을 집어삼키듯이 훑었다.

만년화리가 질겁하면서 몸체를 마구 흔들었다.

목숨이 걸려 있어서 그런지 그 속도가 대단했다.

생전 이렇게 움직였던 적은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한 덕에 위에서 떨어진 재앙들을 겨우 피했다.

영역의 끝자락까지 몰린 만년화리는 한숨 돌리기 위해 아가미로 호흡하려 했다.

부웅!

주서천의 다리가 직각으로 크게 올라갔다.

“하아아앗!”

이번에는 조금 길게 이어지도록 기합을 낸다.

동시에 올라갔던 다리를 아래로 찍어 내렸다.

쿠아아앙!

발꿈치가 수면에 닿은 순간, 여지껏 없던 굉음이 터지면서 밑바닥이 보일 정도로 파도가 크게 쳤다.

만년화리는 순간 당황하면서 몸을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헤엄쳐 빠져나가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 몸은 수중이 아닌 공중에 떠 있었다.

“생선!”

공중에 뜬 만년화리를 노리고 검을 휘두른다.

퍼억!

검의 날이 아닌 등으로 쳐서 그런지 절삭음 대신 둔탁한 소리가 났다.

만년화리가 제대로 된 음성 기관이 있었다면 ‘컥’ 하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을 지도 모른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의 세월을 산 잉어는 바닥에 내팽개쳐지며 퍼덕퍼덕하고 격렬하게 날뛰었다.

“하하.”

주서천이 만년화리를 살포시 밟으면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었다.

“봤느냐, 만년화리여.”

주변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자랑하듯이 목소리를 높여 중얼거렸다.

“설사 영물이라도 인간 앞에선 한낱 미물일 뿐!”

입가에 침이 고였다.

‘잉어는 무슨 맛일까?’

포식할 생각에 들떴다.

“아니, 이럴 때가 아니지…”

뺨을 후려친 만년화리에게 그동안 숨겨왔던 가학심을 먼지 한 톨까지 끄집어내서 복수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혹시라도 물 바깥으로 꺼냈다고 내단에 변화가 올 것을 걱정해서 그만두기로 했다.

주서천은 날뛰는 만년화리를 손날로 후려쳤다.

안에 있는 내단이 다칠까 봐 힘조절 정도는 했다.

최후의 발버둥이라는 듯, 마구 날뛰던 만년화리는 별 힘도 쓰지 못하고 기절했다.

주서천은 만년화리의 입을 벌려 검지와 중지를 집어넣어 안을 마구 헤집었다.

손가락에 닿는 물컹한 느낌이 불쾌했지만, 괜히 해체하다가 내단에 손상이라도 가면 곤란하다.

내장 헤집기를 몇 번.

손가락에 무언가 닿았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곤 손가락에 닿은 것을 꺼내 확인했다.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에 몸체처럼 눈부실 정도로 흰 구(球)였다.

“응?”

내단을 빼자마자 만년화리에 변화가 일어났다.

팔뚝만 한 길이도 길이지만, 몸통도 상당했던 만년화리가 체내에 뼈와 내장을 빼낸 듯 홀쭉해졌다.

총명한 빛이 언뜻 감돌던 눈도 죽은 동태 눈깔로 변했다.

“맛없겠네.”

살생(殺生)에 대한 사과나, 내단을 내줘서 고맙다는 인사 같은 건 없이 헌신짝처럼 냉큼 버렸다.

자고로 인생…… 아니, 생물이란 건 약육강식이 아닌가.

결코 뺨을 맞아 화나서 그런 게 아니다.

주서천은 내단을 품에 갈무리하고 적절한 곳을 탐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적한 동굴을 찾았다.

안쪽까지 들어가 박쥐 등 방해할 만한 동물이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야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만년화리의 내단은 입에 물었다.

그리고 사천에서 받아 온 빙한독이 담긴 철통을 꺼냈다.

입구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긴 다음 마개를 연다.

“으음!”

마개를 열자마자 한기가 빠져나온더.

북해나 서장의 대설산을 가보지는 않았지만, 간다면 이 정도의 한기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떨쳐 냈다.

쓸데없는 생각이나 호기심 같은 건 전부 치웠다.

철통은 바닥에 내버려 뒀다.

입구에서 빙한기(氷寒氣)를 머금은 연기가 빠져나와 뱀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더니 몸을 휘감았다.

‘후욱! 후욱!’

심호흡을 해 본다.

그것마저 괴롭다.

빙한기를 머금은 극독이 코와 입을 통해 몸 전체로 퍼진다.

오래걸리지 않고 그야말로 찰나다.

딱딱딱!

추위에 몸이 떨린다.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었다.

턱뼈가 부딪치면서 소리를 냈다.

꿀꺽!

입에 물고 있던 내단이 식도를 타고 내려갔다.

‘정신 차려!’

이 이상의 떨림은 운기조식에 방해가 된다.

성가신 정도가 아니라, 목숨에 직결됐다.

정신을 집중해서 몸의 조정에 나섰고, 떨리는 몸을 꽉 쥐어 잡아서 고정했다.

빠드득!

눈썹에 허연 서리가 끼고, 낯빛은 창백해졌다.

빙한기가 신체의 내외부로 감돌아 생명을 잡아먹으려 한다.

‘내단!’

화르륵!

몸에 불꽃이 피어올랐다.

자그마한 불씨가 아니다.

내장을 녹여 버릴 정도의 열기와 화기를 품었다.

빙한독에 중독됐는데도 이 정도다.

그냥 복용했다면 어떻게 됐을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빙한독으로 화기를 중화하고, 화기로 빙한독을 해독한다.’

이독제독(以毒制毒).

독을 없애는 데 다른 독을 쓴다하지 않았는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보다 알맞은 말이 없었다.

‘당가의 독이 무시무시하다고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만년화리가 흔하게 널려 있는 영물도 아닌데 , 그 내단의 화기를 능히 중화할 수 있다는 건 대단했다.

물론 자기 자신의 내공도 필요로 하긴 했지만, 그걸 감안한다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주서천은 속으로 짐짓 감탄하면서 내기의 운용에 힘썼다.

중도만공 덕에 타기(他氣)도 자기 것처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어, 화기와 빙한기를 완벽히 운용했다.

눈썹에 쌓였던 서리가 사라졌고 몸의 떨림을 더 이상 잡아 둘 필요도 없었다.

꽁꽁 얼어붙었던 혈맥과 기맥도 원래대로 돌아와 다시 순환한다.

뼛속까지 태워 버릴 것만 같던 화기도 없다.

양측 모두 적절하게 섞여 중화된 찌꺼기만 남았다.

이 찌꺼기를 긁어모아 내단에 남은 수기와 적절하게 배합해 순환시켜 단전에 쌓았다.

“…… 후웁!”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내뱉는다.

감았던 눈이 드디어 떠졌다.

빙한독에 창백해지다가 화기에 울긋불긋하면서 온갖 변화를 보였던 낯빛이 드디어 정상을 되찾았다.

“오 년……?”

내공이 증진됐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손에 꼽힐 정도로 귀한 영물인 만년화리의 내단치고는 확실히 많지는 않았지만 실망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내단을 내공 증진을 목적으로 섭취하지 않았기에 양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백독불침과 한서불침!’

만년화리의 내단은 불침(不侵) 능력에 쏟았다.

빙한독기도 일부러 몸에 오랫동안 머물게 했다.

내성을 위해서 화기로 단번에 해독시키지 않았다.

독에 대한 내성을 높이기 위해선 중독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독이 강할수록 큰 효과를 발휘한다.

원래라면 약한 독부터 시작하는 게 정석이지만, 체내에 내공이 많을 경우 극독으로도 키울 수 있다.

다만 그만큼 몸을 보호해야 하는 내공도 소모된다.

원래의 내공을 소모하면 내성력으로 전환되면서 내공이 회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러한 단점이 있어 내단의 기를 상당 부분 소모했다.

한서불침도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원리다.

화기와 한기를 시간을 들여 순환해 내성을 올렸다.

확인을 위해서 시험 삼아 온천으로 돌아갔다.

백독불침은 몰라도 한서불침은 확실했다.

피부가 확 달아오르던 열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몸 속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원래라면 내공을 소모해서 열기의 침투를 막아야 한다.

그러면 더위를 느끼지 않을 수는 있다.

그 대신 지속적으로 내공을 소모해야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십팔 세에 백독과 한서 불침이라고? 하하!”

자기 자신이 생각해 봐도 믿기지 않는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헛소리라 치부할 수준이었다.

회귀 이전과 비교해봐도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 정도였다.

“다음은 칠각사인가. 벌써부터 기대되는군.”

지긋지긋했던 사천도 이제 안녕이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서 발걸음을 돌렸다.

만년화리가 주서천의 뱃속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

십여 명 정도의 무리가 중량산을 올랐다.

그들은 헤매지 않고 산중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온천지를 손쉽게 찾아냈다.

“……아”

앞장선 자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처음에 드러난 감정은 당혹감과 황당함이었다.

“이럴 리가……!”

현실을 부정하면서 온천 곳곳을 찾아봤다.

수하들에게 살살이 뒤져 보라며 명령을 내렸다.

“여깁니다!”

수하가 팔을 들었다.

한데 안색이 영 좋지 않다.

속으로 제발 그러지 않기를 빌면서 몸을 날렸다.

“썅!”

욕을 내뱉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잘못 본 것이기를 원했다. 그리고 다시 확인해 봤다.

“쌰앙!”

다시 욕이 나왔다.

온천지에서 떨어진 곳, 살점이 뜯겨 나간 팔뚝만 한 크기의 어류의 뼈가 있었다.

많이 본 모양새다.

“여기에 검상이 남아 있습니다!”

다른 쪽에서도 원치 않은 증거들이 목격됐다.

수면 아래에 무수히 남은 흔적들이 상황을 증명하고 있다.

필시 누군가가 만년화리를 사냥한 게 분명했다.

혹시 몰라서 흔적을 살펴봤으나, 단순히 검기 다발만 쏘아 낸 것 같아 어떤 무공인지 파악할 수 없었다.

“누구냐!”

누구냐아!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중량산 전체에 울렸다.

“어떤 도둑놈 새끼가……!”

암천회의 영물을 훔쳐갔느냐!

이 말은 보안상 삼켜야만 했다.

“죽여 버리겠다아아!”

* * *

주서천은 남쪽을 향해서 경공을 펼쳤다.

도중에 마을이 있어도 시간이 아까워 방문하지 않았다.

수면이나 내공의 회복도 어디서든 할 수 있다.

꾸준히 이동한 덕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운남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날을 세어 보니 하산한 지 아직 한 달밖에 안 됐다.

도중에 일만 없다면 채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말을 타도 이 정도로 빠르지는 않다.

내공이 받쳐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음, 운남에 왔으니 간만에 침상에서 자야겠어.”

운남의 성도, 곤명(昆明).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경관은 중원 오악과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빼어나다.

또한 중원에서 여섯 번째로 큰 호수를 끼고 있어 자연 관광지로도 나름대로 이름이 높다.

그 외에도 춘성(春城) 혹은 화시(花市)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사시사철 온난한 기후라서 그렇다.

도시 어디를 가도 꽃이 끊이지 않아, 겉으로 언뜻 보면 평화로 가득찬 동네였다.

“괜한 소란에 휘말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하나 곤명, 아니 운남은 중원에서도 귀주 다음가는 분쟁 지역이다.

그 역사는 귀주만큼이나 깊다.

서북으로는 서장이 있고, 서부와 남부로 가면 남만이 나온다.

새외의 침략이 활발했을 때 운남은 조용할 때가 없었고, 국가로서도 무림으로서도 항상 격전지였다.

심지어 동부로는 귀주와 광서가 있다.

귀주는 두말할 것 없으며, 광서는 사도천의 영역이다.

북부의 사천을 제외하곤 오직 적 밖에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서장이나 남만이 더 이상 중원으로 영역을 확장하지 않으려는 태도였다.

그게 아니었다면 정파 세력은 운남에서 철수했을 것이다.

“운남에서부터는 금의상단의 지원을 받을 수 없으니,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수해야겠어.”

운남에는 성하장(星河莊)과 비호표국(飛虎鎖局)이 있어 진출할 수가 없었다.

텃세가 심한 탓이었다.

이 근방의 상권은 전부 이들이 잡고 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치의 틈이 없어 파고들 수 없었다.

먼 홋날 금의상단이 운남에 진출하기는 한다.

다만 그때는 전란의 소용돌이가 휩쓸고 지나간 이후였다.

만약 전란으로 인해 이들이 약화되지 않았다면 금의상단의 운남 진출 역시 불가능했다.

“음, 칠각사의 내단을 취하고 시간이 남는다면 점창파에 얼굴이나 비춰 볼까……”

점창산은 운현(云縣) 인근에 있는데, 목적지인 애뇌산(哀牟山)에서 서쪽으로 한나절 거리밖에 안 된다.

물론 경공을 극성으로 펼치는 걸 상정한 경우다.

이튿날

약간의 아쉬움을 남기면서 떠나게 됐다.

곤명을 느긋하게 구경도 해 볼까 했지만 혼자라서 재미가 반감된다.

다음에는 누군가와 함께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나중을 기약했다.

참고로 곤명에서 하루 동안 머무는 동안 희소식을 듣게 됐다.

“얼마 전에 독봉에게서 내기에 승리한 청년에 대해서 기억하는가?”

“화산파의 주서천? 알고 있네. 왜 그러나?”

“내 듣자 하니 사천에 들르기 전에 중경에서 오십에 가까운 녹림도를 일망타진했다고 하더군!”

“아니, 그게 정말인가?”

“암, 정말이고말고. 게다가 산채에 잡혀 있던 인질들을 구하고 산채의 재물들도 나눠 줬다 하네.”

“허어, 그것 참 대단하군! 협객이야, 협객!”

중경의 녹림도는 이름난 자가 없었다.

대부분이 무명뿐인 산적 나부랭이였다.

그렇다 보니 크게 유명해지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작게나마 명성을 착실하게 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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