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六章사천당가(四川唐家)
녹림도의 산채를 박살 내고 곧장 길을 따라 사천으로 향했다.
암향표를 써서 금세 일행을 따라잡았다.
“대협!”
일행과 합류하니 달라진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경외를 담아 쳐다봤다.
“내가 좀 대단한 건 나도 알고 있소.”
주서천이 코를 세우면서 우쭐거렸다.
이런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예전 같았다면 정체가 밝혀질 경우 귀찮아지니 뭐니 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애초에 그랬다면 이름을 숨겼을 것이다.
아직 영웅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 꿈꿔 왔던 것과 비슷하니 기분은 좋았다.
‘좀 자유로워지니 이런 건 정말로 좋네. 화경에 오르면 이 지긋지긋한 숨김도 안녕이다.’
그동안 힘을 숨겼던 건 암천회의 시선 탓이다.
괜히 정파의 새싹이라면서 견제해올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암천회는 성가시지만 그들의 힘은 진짜다.
적당히 이름을 알리는 젊은 고수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상식에서 벗어난 힘을 보이면 노려진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지 않는가.
언제나 적당한 게 중요한 법이다.
나흘 뒤, 일행은 사천의 성도(成都)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사이 도적이나 산적의 습격은 없었다.
“아이고, 주서천 대협. 덕분에 별 피해 없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화산 제일의 고수가 되실지도 모르는 분이 곁에 있었는데 무엇을 걱정합니까?”
“하하하!”
성도에 도착하자마자 상인들이 손바닥을 비비면서 굽실거렸다.
“에잉…… 쯧쯧.”
금의무사들이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정말로 노골적으로 비위를 맞추면서 굽실거리고 있었다.
‘뭐야, 평범한 금의상단의 상인이잖아.’
정작 장본인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익숙한 듯 대충 받아들이면서 상대했다.
상단주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이의채라면 한술 더 떠서 ‘화산 제일의 고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아니, 될 분입니다!’ 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럼 일이 있어 이만 가 보겠소.”
손을 흔들며 상단과 헤어졌다.
상인과 무사들이 허리를 깍듯이 굽혀 인사하는 게 보였다.
* * *
사천당가(四川唐家).
사천을 대표하는 명문으로서, 독과 암기만큼은 정파, 아니 무림 전체에서도 손꼽힌다.
그 권위는 무림맹, 사도천, 나아가 새외까지 이름을 떨칠 정도니 두말할 것도 없었다.
“화산의 주서천?”
당가 직통(摘統)의 삼녀(三女), 독봉(毒鳳) 당혜(唐慧)가 특유의 매서운 눈초리로 되물었다.
“예, 아가씨.”
호위 무사가 부복한 채로 답했다.
“흐응”
당혜가 고운 눈썹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탁자 두드리기를 몇 번, 금세 떠올릴 수 있었다.
“십사검협이 도수창병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던 소년…… 소유검, 유정목의 제자였나.”
그녀의 중얼거림에 호위 무사 적잖이 감탄했다.
“대단합니다, 아가씨. 그는 딱히 유명인도 아닌 것 같은데 이름만 듣고 그렇게나 떠올리신 겁니까?”
“당가의 자식이라면, 정보에는 응당 눈이 훤해야 하는 법. 당연한 걸로 띄워 봤자 기뻐지진 않아.”
당혜가 새침하게 대답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의 제자가 무슨 일로 온 것일까요?”
“내가 아는 한 본 가와 화산파 사이에 이렇다 할 연은 없었으니…… 강호행 도중 사천에 들른 김에 방문한 것이겠지.”
그녀는 호위 무사의 의문에 답하곤 발걸음을 옮겼다.
당혜의 추측이 틀린 건 아니었다.
대문파의 제자나 명가의 자제들이 보통 강호행에 나가면 주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를 방문한다.
별 목적이 없어도, 대문파끼리 교류해 연을 좀 더 깊고 돈독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사천당가에 방문한 목적은 세 가지였다.
첫째는 방금 전 말한 것이요, 둘째는 어떤 약을 얻기 위함이었다.
셋째는 어찌 보면 첫째와 동일한데, 다른 점은 그 약을 내줄 사람이 사천당가의 인물인 탓이었다.
‘독봉, 당해’
강호 무림에서 별호에 용(龍)과 봉(價)이 붙는다는 건 특별하다.
이십 대에서 삼십 대에 이르는 후기지수(後起之秀)들 중에서도 오직 여덟 명밖에 없는 자들이었다.
오룡삼봉(五龍三鳳)!
다섯 명의 용과, 세 명의 봉황.
용은 남자이며, 봉황은 여자에게 붙는다.
이 오룡삼봉은 소속 세력, 미모, 또는 무공 등 여러 방면으로 평가받아 제일 우수한 젊은이들이었다.
주서천도 당혜를 직접 본 적은 없었지만, 잘 알고 있었다.
무림인으로서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다.
오룡삼봉은 언제나 주목을 받는다.
서른을 먹기 전 쥘 수 있는 최고의 명예니 당연했다.
“아가씨께서 오고 계십니다.”
시동(侍童)이 쪼르르 다가와서 알려 줬다.
‘원래라면 아무나 만날 수 없는 사람이지.’
천하의 오룡삼봉이다.
만나겠다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쪽도 아주 무명은 아닌 화산파의 제자이며 , 또 초절정 고수로 이름을 날린 소유검의 제자였다.
사천당가가 바쁜 일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니 자신의 방문을 거절할 수는 없다.
독봉의 명성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얼굴을 잠깐 비춰 줄 정도는 된다.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여인이 들어왔다.
그 얼굴을 확인한 주서천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
확실히 아름다웠다. 낙소월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 정도로 미인이었다.
치켜 올라간 눈초리 탓에 인상이 매서웠다.
신장은 크지도, 작지도 않았고 딱 중간이었다.
연령은 이십 대 전반으로 보인다.
등을 넘어 허리까지 닿는 길고 검은 머리카락은 둥글게 말아올리고 잘 엮어서 풍성한 느낌을 냈다.
눈매도 눈매지만 눈동자도 보통이 아니었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함과 약간의 독기도 보였다.
전체적으로 얼음같이 무뚝뚝하고 차갑다, 가 아니라 고고하게 앉아있는 암사자 같았다.
무림인들 대부분 그녀를 처음 본 순간, 왜 별호에 ‘독’이 붙어 있는지 곧바로 이해한다.
그리고 독봉만큼 어울리는 별호도 없을 거라 말하곤 했다.
당혜가 독공을 수련한 탓도 있지만, 그것보단 전체적으로 독기를 머금은 강렬한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분명 처음 보는 것일 텐데……’
당혜에 대해선 이름만 알고 있고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사후가 어떻게 되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전란에 휩싸였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런 미인을 봤다면 잊을 수 없을텐데, 어딘가 모르게 본 것 같은 감각에 의아해했다.
“어린 도사께선 뭘 그리 넋을 잃고 계신가요.”
주서천의 당혜의 목소리에 제정신을 차렸다.
“듣자 하니 화산의 도사들은 검에만 흥분하는 변태라고 하는데, 소협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네요.”
당혜가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청난 소리를 했다.
“예?”
주서천이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이에 당혜가 다리를 꼬고, 턱을 들고 주서천을 오연하게 쳐다봤다.
“미안해요. 과한 농이 섞인 실언이니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기를 바라요.”
“……”
주서천이 어이없어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나를 처음 보았을 때, 미명(美名)대로라면서 벌게진 눈으로 쳐다보곤 하죠.
그에 비해서 소협은 적어도 그런 부류는 아니군요. 제법 신선해서 기뻐요.”
이 여자, 뭔가가 심상치 않다.
“걱정 마세요, 소협. 소협이 괜한 수작 걸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이름을 세 번 정도 거론할 때 , 겨우 떠올릴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독봉이 이렇게 맛 간 여자였나.’
독봉 당혜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뛰어난 독공과 암기술을 지닌 데다가 지혜를 겸비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는 정도였다.
성격에 대해서 아예 몰랐던 건 아니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이라곤 지기 싫어하는 성격 정도다.
그 외의 것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자, 그럼 얼마든지 머물러도 좋으니 쉬다 가도록 하세요. 되도록 절 찾지는 마시고요.”
대놓고 귀찮게 굴지 말라 말했다.
“독봉께선 성질이 급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독봉을 찾은 건 어떠한 승부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등을 돌린 당혜가 발걸음을 멈췄다.
“…… 승부?”
“예. 그것도 내기 있는 승부이지요.”
독봉 당혜는 명문의 여타 자제들 중에서도 특히 자존심이 드센 편이다.
이렇게 누군가가 내기까지 건 승부를 걸어오면 반응을 보인다.
물론 이 승부도 일단 기본적인 자격은 갖춰야 한다.
“……”
당혜는 제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그러곤 말해 보라는 듯이 사나운 눈초리로 압박을 줬다.
“무림인답게 승부는 비무로 하겠습니다. 독봉이 나서도 괜찮고, 대리인을 내세워도 상관없습니다.”
“꽤나……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폭풍 전의 고요가 폭풍으로 바뀌었다.
당혜는 스스로의 기운을 숨길 생각조차 안 하는 듯했다.
주변의 공기가 무거워진다.
숨이 절로 답답해졌다.
눈을 슬쩍 돌리니 화초가 거무튀튀하게 변색되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이 보였다.
독이었다.
이제껏 바위 위에서 홀로 고고하게 앉아 있었다면, 지금은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그 포악함은 무림인, 그것도 절정의 고수가 아니라면 숨도 못 쉴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미안하지만, 이 몸을 여타 평범한 계집들과 비교할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야.”
그 눈이 음험하고 사납게 빛났다.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짙은 녹색의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방 내부가 진득한 독기로 가득 찬다.
벽 중 일부분이 물렁해지더니만, 이윽고 조금씩 녹아내렸다.
주서천은 그 기운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흘려버렸다.
“내가 할 말이다.”
독봉 당혜의 나이는 올해로 이십삼이다.
확실히 강호의 선배이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건 아니었다.
상대가 존중이나 예의를 차리지 않는데, 이쪽에서도 굳이 맞춰 줄 생각은 없었다.
“내기에 걸 것은?”
“명검.”
스르릉!
주서천이 예한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뒀다.
당혜가 눈동자만 굴려 예한을 슥 훑어봤다.
“확실히 나쁘지 않은 물건이지만, 나와의 혼인을 원하는 것이라면 도둑놈 심보가 아닐까 싶네.”
“모든 남자들이 너에게 관심 있는 건 아니야.”
당혜가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얼굴에는 ‘그럼 원하는 게 뭐냐.’ 라고 새겨져 있는 것 같았다.
“맹한독(氷寒毒).”
중독되면 몸 곳곳이 한기로 인해
얼어붙어 결국 한여름에도 동사(凍死)시키는 극독이다.
만년화리는 적지 않은 화기(火氣)를 품고 있다.
그대로 복용한다면 제대로 흡수할 수도 없을뿐더러, 또 자칫 잘못하면 내상을 입을 수 있었다.
그래서 만년화리의 내단과 함께 복용할 것이 필요했는데, 그게 바로 빙한독이었다.
마음 같아선 독이 아닌 영약을 구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구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대설산의 천년설삼이 좋긴 하지만 그걸 구하기도 전에 탐색 도중 얼어죽는다.
일월신궁의 음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지만, 만년화리의 화기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그래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빙한독을 떠올렸다.
자고로 영약이 잘못 복용하면 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독 역시 잘 쓰면 약으로 쓸 수 있는 법이다.
“독……?”
당혜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구부려진 눈썹은 펴질 생각이 없었다.
빙한독은 적어도 돈으로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독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그렇다고 함부로 내줄 수 없는 수준은 아니다.
사천당가에 그 정도 독은 얼마든지 있었다.
괜히 독과 암기의 당가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또 아무나 꺼내서 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당가의 직통이자 독봉인 그녀는 예외다.
“……내 설마 살다 살다 화산의 제자 입에서 독을 내어 달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 만약 날 깜짝놀라게 할 목적이었다면, 틀림없는 대성공이야.”
정파는 독과 암기를 비겁하다면서 천시하는 경향이 있다.
싫어하는 건 기본이고 멸시하는 자도 여럿이다.
이러한 경향이 있는데도 사천당가가 정파, 그것도 명가인 오대세가들 수 있는 건 ‘필요’ 하기 때문이다.
정파와 달리 적대 세력인 사파는 독과 암기를 적극 사용한다.
이에 대한 피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이 피해를 조금이라도 최소화하려면 독과 암기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
해독을 하려면 독에 대해 연구해야했고, 이 독에 전문 분야인 정파 무림 단체는 오직 사천당문 뿐이었다.
사천당문이 오대세가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건 이러한 연유다.
한데 정파인, 그것도 검에만 목숨을 거는 화산의 제자가 독약을 달라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의도가 궁금하다면, 내기에서 승리해서 묻는 게 어떤가?”
“썩 괜찮은 도발이지만, 자꾸 그렇게 내 성질을 건드리는 건 좋지 않을 걸.”
당혜가 원형 탁자에 손바닥을 올리면서 으름장을 놓았다.
“강가에 네 머리를 담가 놓고, 발로 뒤통수를 누르면서 이름 그대로 물귀신(川)으로 만들 수 있거든!”
치이익!
탁자 위에 손바닥으로 누르고 있는 부분이 움푹 파이며 자국이 났다.
손바닥을 떨어뜨리니 거무튀튀하게 썩어 문드러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무서운 년!’
주서천이 혀를 내둘렀다.
성격이 보통 독한 게 아니었다.
독봉(毒鳳)이 아니라, 독봉(毒蜂)이지 않을까?
“승부를 받아 줄게.”
당혜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냉혹하게 웃었다.
‘휴우!’
천만다행으로 계획대로 흘러갔다.
만약 당혜가 거절했다면 앞으로의 일이 꽤나 골치 아파졌으리라.
주서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무덤덤하게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일시와 장소를 정해주……”
마음이 완전히 풀어졌을 때다.
분위기가 느슨해진 순간, 당혜는 독처럼 쏘아붙여 왔다.
파바밧!
당혜가 몸을 획 돌리면서 손을 쭉 뻗었다.
손가락 사이에 껴 있던 암기가 쏘아지며 빙글빙글 회전한다.
“흡!”
순간 놀라 숨을 멈췄다.
급습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멍하니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생각이 이어지기도 전에 몸이 반응한다.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암기를 보고 목을 옆으로 틀어 피했다.
쐐액!
그다음 암기가 날아왔다.
정신이 집중된 탓에 이번엔 날아오는 암기도 순간적으로 포착할 수 있었다.
‘독접(毒蝶)?’
손가락만 한 크기에 나비 모양을한 암기라면 무림에서도 한 가지 밖에 없다.
당가의 자랑인 독접이다.
머릿속에서 당가의 독집에 대한 지식이 떠오른다.
“이런!”
좌측으로 몸을 던졌다.
그가 있던 자리에 하나가 아닌 둘의 독접이 날아왔다.
처음의 독접과 두 번째로 나온 독접이었다.
째앵!
독접끼리 부딪치면서 금속음을 토해내며 허공에서 불꽃이 튄다.
“추혼비접(追魂飛蝶)을 피한 건 칭찬해 주지!”
당가의 절기로 꼽히는 암기 수법이다.
독접을 피할지라도, 추혼비집이 되돌아와 적을 끝까지 노린다.
독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암기에 상당량의 극독이 발라져 있어 조심해야 한다.
“기습에 실패했는데 어쩌지?”
주서천이 ‘하하’ 하고 이죽거렸다.
당가의 장기는 독과 암기다.
이 두 가지를 중심으로 한 전술이라면 보통 기습이나 암습이다.
정파인들에겐 손가락질을 받을 일이지만, 이미 독과 암기가 장기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욕을 먹고 있는데 이제 와서 꺼릴 이유는 없었다.
“그래……?”
당혜가 진하게 웃었다.
눈만큼은 웃고 있지 않다.
“그 오만이 네 명줄을 위협하는 독이 될 거야!”
당혜가 내공을 실어서 힘껏 발을 굴렀다.
우르릉!
마른하늘에 천둥소리가 나는 듯했다.
당혜의 발이 지면에 움푹 파이는 순간 터진 굉음이 그 정체였다.
나무로 된 바닥이 부서지면서 그 조각이 한꺼번에 용솟음쳤다.
조각 수백 개가 빙글빙글 회전하며 비산했다.
“죽엇!”
당혜가 외치면서 팔을 파바밧 하고 뻗었다.
내기를 두른 손바닥에 부딪친 나무 조각들이 튕겨 날아갔다.
수백 개가 한꺼번에 날아가니 그 모습이 장관이다.
주서천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에 나섰다.
검기를 두른 예한을 화려하게 회전시켰다.
“끝이야.”
당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휘리릭!
주서천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아까 전에 허공에서 부딪쳤다가 행방을 감췄던 독접이었다.
당혜는 그걸 보고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깜짝이야!”
주서천이 소리 내서 놀란 목소리를 냈다.
당혜의 수법에 놀라서가 아니다.
지금 일격 전부 하나하나 치명상을 입을 공격이라서 그렇다.
퍼엉!
원형으로 세 바퀴 회전하자 검풍(劍風)이 터져 나왔다.
무지막지한 공력이 담긴 공격이었다.
사람의 몸을 집어삼킬 기세로 쏟아지던 조각들은 별 힘도 내지 못하고 검압에 못 이겨 으스러졌다.
주서천은 그 결과를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도중에 손목만을 틀어 머리 위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채앵, 하는 마찰음은 없었다.
검이 스치고 지나가자 나비의 형태를 한 암기가 깔끔하게 양단됐다.
“……”
분위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침묵 대신에 주서천의 기겁한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운다.
“미친년! 날 죽일 생각이냐?”
방금 전 일격에 당했다면 꼼짝없이 목숨을 잃었다.
“무, 무슨 일이야!”
“접객실이다!”
바깥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지금까지 이 난리를 피워 댔으니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다.
“아가씨!”
쿵!
멀쩡한 문이 박살나면서 나가떨어졌다.
그 뒤 곧바로 당가의 무사들이 여럿 들어와 당혜를 보호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이름이 무어라 했지?”
당혜가 무사가 하던 말을 도중에 끊고 물었다.
“주서천 …
주서천 ………”
당혜가 곱씹듯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은 치욕과 분노였다.
자신이 누구인가!
오룡삼봉의 독봉이 아닌가!
또래의 무인들은 물론이고 이십 대에서 최강이라 자부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런데 패배했다.
설사 구파일방의 출신이라 할지라도, 연령도 그다지 차이가 없는 자에게 진 것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오기 전까지 그에게 손대지 마라.”
당혜는 무사들에게 그리 말하곤 밖으로 나갔다.
‘설마 또 급습이나 암습을 꾀하는 건 아니겠지?’
사찬당가가 싸우는 법은 살수와 같다.
그들은 정면 승부를 피하고 주로 적이 방심할 때를 노린다.
그도 그럴 것이, 정면 승부를 하면 너무나도 불리하기 때문이었다.
암습이나 급습에 성공하면 그 위력은 상당하다.
잘하면 힘 한 번 들지 않고 일격에 쳐 죽일 수 있다.
하지만 실패하면 그만큼의 반동도 심하다.
보통 당가의 사람이 급습에 실패하여 정면 승부를 하면 그 경지는 한 단계, 많게는 두 단계 떨어진다.
이는 독과 암기가 상대가 모르는 틈을 타서 공격하는 것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독이나 암기를 상대가 알 경우, 사용자보다 하수라 할지라도 어렵지 않게 회피하거나 파훼한다.
그래서 당혜도 처음에 돌아가는 척하면서 급습했다.
마지막에는 일부러 바닥을 뒤집어 시선을 빼앗고, 추혼비접을 응용해 회심의 일격을 날렸다.
오룡삼봉, 독봉의 경지는 초절정을 앞에 둔 절정이다.
연령을 생각하면 이 정도도 빠른 편이다.
거기에 기습까지 생각한다면 초절정 고수도 능히 쓰러뜨릴 수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나빠도 너무 나빴던 것이다.
“약속했던 물건.”
상념에 빠진 지 그다지 오래되지도 않았거늘, 당혜가 손바닥만 한 철통을 들고 금세 돌아왔다.
“그래.”
왜 아직까지도 당가의 어른들이 오지 않는지 의문이었지만, 그런 의문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의아해할 시간에 차라리 얼른 이 자리를 뜨는 게 좋았다.
“만나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미인은 좋아한다.
하지만 미친년은 싫다.
괜히 엮이고 싶지 않았다.
연이 여기서 끝났으면 했다.
“당가의 무서운 점이 뭔지 알아?”
“알고 싶지 않은데?”
“강호에서 제일 지독한 가문이라는점.”
당혜가 섬뜩하게 웃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걸로는 안 끝나.
난 빚진 건 꼭 갚는 성격이라서 , 서리 대신에 독이 퍼져 네 몸을 집어삼킬 거라 장담할게.”
“당가가 천하에서 제일로 화통하다고 들었소, 소저.
내 이만 볼일도 끝냈으니 가 보겠소. 우리 다음부터는 뒤끝 없이 처음 보는 걸로 합시다. 하하.”
주서천이 웃으면서 당혜를 지나쳐 갔다.
당가의 무사들이 주서천을 잡으려 했지만, 당혜가 그 전에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그러곤 그의 모습을 머 릿속에 담으려는 듯, 떠나가는 뒷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바라보았다.
* * *
사천에 소문이 돌았다.
“자네, 그거 들었나?”
“그거라면 모르지. 그게 뭔데?”
“어허, 소식 참 느리구먼.”
“뭔데 그리 뜸을 들이나? 얼른 말해 보게.”
“얼마 전에 어떠한 젊은이가 독봉과 만났는데, 내기를 건 승부를 했다고 하네.”
“그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닌가?”
당혜와 내기를 건 승부는 나름 사천의 명물이다.
독봉은 사천제일미라 할 정도로 아름답다.
그녀를 조금이라도 보기 위해 당가에 방문하는 남자들은 하루에도 수십이 넘는다.
그리고 그중에는 혼인을 요구하면서 승부를 거는 자들도 여럿이 있었다.
일정한 자격만 된다면 만난 뒤 혼인을 걸린 승부를 거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기 싫은 성격이 한몫했다.
결과는 두말할 것 없었다.
이기기는커녕 대부분의 무인들이 일 합도 견디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독봉이 미색으로만 붙은 별호가 아니다.
이십 대에서 최고의 반열에 들어야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삼십 대 무인들을 기준으로 해도 당혜의 무공 수위는 상당한 편에 속한다.
그런 그녀를 이길 정도면 이미 마흔이 넘는다.
그 나이 때에 신부로 삼겠다면 쌍욕으로 안 끝난다.
어쩌면 아비이자 당가의 가주가 달려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듣고 놀라지 말게나.”
“아, 것 참. 질질 끌지 말고 얼른 말하라니까!”
“그 청년이 놀랍게도 독봉에게 승리했다고 하네!”
뭐라고?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봉에게 승리했다는 건, 곧 오룡삼봉의 수준이라는 뜻이다.
그 소문은 순식간에 무림으로 퍼졌다.
“자세하게 이야기해 보게!”
강호에 퍼진 소문은 대충 이렇다.
청년이 어떤 목적을 지니고 비무를 요청했다.
다만 그 비무는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내 듣기론 독봉의 몇 합을 버텨내면 청년의 승리인 비무라고 하더군.”
“아니, 겨우 그걸로 그 독봉과 혼인을 할 수 있다는 겐가?”
“으음, 혼인은 아닌 모양이야. 나도 잘은 모르지만 영약인가 재화 같은 것들을 요구했다더군.”
“아하. 그럼 그렇지. 다른 누구도 아니고 독봉이 그리 쉽게 결혼하겠나? 그냥 심심풀이였군! 껄껄껄!”
남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이런 일로 사천제일미녀를 데려간다면 한동안 억울해서 배가 아파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오룡삼봉에게 몇 합을 버텨 냈다는 건 대단한 일이야. 새삼 누군지 궁금한데…… 아는가?”
“알고 있네.”
“그게 누군가?”
“주서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