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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四章강호출도(江湖出道) (53/254)

第四章강호출도(江湖出道)

해가 동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게 보인다.

반 시진 전만 해도 눈 부셨던 창공이 붉게 물들었다.

피를 머금은 듯한 불길한 색은 아니다.

가만히 올려다보면 감탄을 절로 흘릴 아름다운 색이었다.

휘이잉.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지나갔다.

따스한 기온에 딱 알맞은 바람이다.

“석양이……”

언덕 위, 곧게 뻗은 가지들을 자랑하는 매화나무 아래에 청년이 앉아있다.

“……진다.”

등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은 뒤로 올려 묶어 말의 꼬리를 연상시켰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렵한 턱 선, 시원시원한 눈썹.

미남 정도는 아니나 용모는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다.

주서천, 십팔(十八) 세.

시간은 번개같이 흘렀다.

연화검회가 끝나고 사 년, 성년이 된 동시에 연화각을 졸업하고 삼 년이 지났다.

요 사 년 동안 여러모로 성장했는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신체의 변화다.

신장은 약 육 척(尺) 정도로 컸고, 여리기만 했던 근육도 이제 단단해졌다.

중간에 어린 몸을 무리시키지 않으려고 근육 운동에도 주의하면서 수련해서 그런지, 미형적으로도 보기 좋게 자랐다.

옷을 입으면 조금 왜소해 보이나, 탈의하면 누구나 부러워할 정도로 완벽한 근육의 조형미와 균형이다.

또한 신체 외에 무공도 빼놓을 수 없었다.

연화각에서 나온 이후로도 장홍과 장서은, 낙소월 정도를 빼곤 남들과 교류하지 않고 수련에 집중했다.

그리고 그중 장홍과 장서온조차도 각각 이 년 전, 일 년 전에 강호에 출도해서 지금은 화산에 없었다.

어쨌거나, 요 사 년 동안 무공에만 집중해 일취월장한 성취를 보였다.

‘자하신공, 팔성.’

육성에서 팔성까지 사 년이 걸렸다.

언뜻 보면 오래 걸린 것 같지만 전혀 아니었다.

유례없는 속도다.

화산 역사상 겨우 열여덟 나이에 자하신공을 팔성까지 연공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무엇보다 자하신공의 진정한 힘을 낼 수 있는 십성까지 이성(二成) 밖에 안 남았다는 게 기뺐다.

자하검결도 제이식은 완숙하고, 제삼식도 얼마 남지 않았다.

순탄한 성과였다.

그 외에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대성했고, 일월신궁은 사성에 올랐다.

일월신궁은 일성만 높이면 끝이다.

더불어 경공인 암향표도 대성했다.

내공만 지속적으로 소진하면 높일 수 있으니 어려움은 없었다.

미래에 대한 일도 빠뜨리지 않았다.

간간이 화산에 방문하는 금의상단의 사람에게 정보와 서신을 주고받는 걸로 대충이나마 해결했다.

이의채는 생각 이상으로 유능한 상인이었다.

단편적인 정보로도 주서천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 주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별다른 의문을 품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의채는 삼안신투의 비고의 보물을 투자받은 것만으로 군말 없이 따라 줬다.

단순하면 단순한 인물인데, 그렇다고 바보나 머저리는 아니다.

지금 생각해도 특이한 인물이다.

제갈승계와도 종종 전서구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여전히 세가에선 배척받는 입장이라고 한다.

삼안신투의 비고 이후로는 여전히 기관지술은 써먹을 곳이 없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취급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라. 나중에 데리러 가마.’

그 천재가 얼마나 성장했을지 기대됐다.

후일을 기약하면서 미래의 일을 떠올렸다.

‘요 사 년 동안, 다행히도 역사의 개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화산에 돌아왔을 무렵, 바뀐 미래가 신경 쓰였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역사보다 빨리 발견된 것과, 수림구채 등의 일로 인해 역사의 개변을 걱정했다.

나름대로 미래를 준비하곤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중 하나는 단연 흉마의 무덤이다.

흉마의 비급을 손에 넣기 위해 시작된 이 전쟁은 일 년 동안 지속되다가 결국 전 무림까지 퍼진다.

칠검전쟁.

일곱여 개의 세력이 주역이 된 이 전쟁을 시작으로 강호무림은 전란에 휩싸인다.

‘곤륜파(鹿漏派), 태산파(泰山派), 숭산파(崇山派), 항산파(恒山派), 남궁세가(南宮世家), 마교, 사도천.’

시기는 올해 여름.

앞으로 반년 남았다.

‘너희들의 생각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칠검전쟁은 막지 못한다.

그만큼 암천회가 이번 일에 들인 노력과 시간이 보통이 아니었다.

아무리 미래를 알고 있어도 한계가 있다.

막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는데 칠검전쟁은 후자다.

하지만 그래도 피해를 최소화하고, 암천회의 계획 몇 가지를 무너뜨릴 수는 있었다.

“사형!”

“응?”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에 상념에서 깼다.

고개를 뒤로 돌려서 확인했다.

“으음!”

선녀가 있었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도 부족하다.

그곳에는 넋을 잃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여인이 걸어오고 있었다.

밤하늘을 닮은 머리카락은 비단처럼 찰랑거리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백옥처럼 흰 피부가 보인다.

소녀에서 막 벗어난 숙녀.

당찬 여장부의 기색이 묻어나는 그 여인은 과거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매화검봉……

전생에서도 매화검봉을 봤던 건 단 한 번이다.

그것도 전장에서라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그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매화검수들을 비롯한 여러 영웅들 사이에 섞여 검초를 펼치던 그 모습은 강하고, 아름다웠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사형, 왜 그러세요?”

낙소월이 다가와선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남들에 비해서 성장이 빠르긴 해도 기억 속의 모습을 보려면 아직 더 남았다.

기억에 있는 낙소월은 이십 대 중반 정도고, 지금의 낙소월은 열일곱 살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도 기억 속의 모습이 어렴풋이 보인다.

“으음, 아니야.”

천하계일 미녀로 거론되기는 아직 이르지만, 그래도 화산 제일 미녀에 이름을 올릴 정도는 된다.

“네가 너무 예쁜 나머지 넋을 잃고 쳐다봤을 뿐이란다. 별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도록 하렴.”

생각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낙소월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봤는데, 다만 그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으윽, 아무렇지 않은 척하면서도 부끄러워하는 모습조차 귀여워서 죽겠구나. 날 죽일 셈인가.”

주서천이 가슴을 부여잡으면서 괴로워했다.

어설픈 연기 따위가 아니라 진짜다.

“정말이지……”

낙소월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툴툴거렸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사숙께서 불러요.”

“사부님이?”

* * *

주서천은 낙소월과 거처로 향했다.

화산 제일의 미녀와 걷다 보니 이목이 집중됐다.

남자 제자들이 부러움과 질투 어린 눈길로 노려봤다.

시선이 따갑지만 이것도 이제 익숙하다.

낙소월과는 거처 인근까지만 함께하고 헤어졌다.

“오, 왔느냐.”

문을 열고 들어가자 유정목이 주서천을 반겨 줬다

“네, 사부님. 부르셨습니까?”

주서천이 공손한 태도로 인사했다.

청년이 됐어도 스승에 대한 존경심과 극진한 태도는 여전하다.

“너도 벌써 열여덟 살이로구나……”

유정목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제자를 쳐다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세월이 흘렀다.

유정목도 어느덧 지천명(知天命 : 50세)의 나이지만, 외관상 크게 변한 건 없었다.

그리고 회귀한 지도 벌써 십 년째 의 해이다.

“너에게 말해 줄 게 있단다.”

“불초 제자,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주서천이 유정목의 분위기를 슬쩍 살폈다.

표정을 보아하니 나쁜 일은 아닌 듯했다.

“어제 상궁회의에서 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눈이 절로 커졌다.

유정목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갔다.

“수선행(修仙行)에 대해서다.”

‘드디어!’

거창한 건 아니고, 약관의 나이가 되면 강호에 나가 협행을 하고 도를 닦는 수행을 칭하는 말이다.

기한은 약 오 년.

이후 본산으로 복귀하면 그제야 한 사람 몫으로 인정받는다.

보통은 약관이 넘어서야 나갈 수 있지만, 연화각 출신은 남들보다 무공이 강해 시기가 좀 더 빨랐다.

그 기준이 열여덟 살이고, 장홍과 장서은도 나이에 알맞게 강호로 출도했다.

이 강호행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널 혼자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만……”

유정목이 침음을 홀리면서 수염을 쓰다듬었다.

‘안 돼!’

비명이 절로 나오려는 걸 가까스로 참았다.

원래라면 이 수선행에는 보호자가 붙는다.

일반적인 제자들의 경우, 강호 초출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연화각 출신들은 다르다.

그들은 일찍이 성년이 되기 전 강호에 나간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화각 출신의 우수한 제자들은 상궁회의를 통해 수선행의 동행 여부를 정한다.

원래라면 애써 키운 제자들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아 전자겠지만 일각에선 너무 과보호가 아니냐면서 후자의 경우도 괜찮다는 말이 있었다.

무엇보다 보호자가 붙지 않는다 할지라도, 강호에 나가 따로 동문의 제자들을 만나면 그만이었다.

실제로 연화각 출신의 사대제자들은 대부분 강호에 혼자 나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문의 제자들을 찾았다.

안전성 탓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이 크기도 했다.

평생을 화산에서 지냈고, 강호 초출 때는 너무 어려 거의 보호만 받는 강호행이지 않았는가.

이런 저러한 인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동문의 제자들에 비해선 소속감이나 친근감의 차이가 크다.

‘제발!’

누가 동행 하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계획이 결정된다.

보호자라도 붙는다면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몰래 도망쳤다간 화산으로 보고가 올라가 귀찮아질 것이니, 따로 떼어놓는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장로님들이 괜한 걱정이라고 하시더구나.”

유정목이 부드럽게 웃었다.

‘휴우!’

주서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수선행은 그도 내심 걱정했었다.

강호 초출 때 수림구채 일로 행방불명이 된 전적이 있어서 그렇다.

그래서 혹여나 과보호라도 하면 어쩔까 싶었는데, 연화검회 이후 적당한 무위를 보여 준 덕에 피했다.

“특히나 심옥련 장로님께서 제일 먼저 괜찮다고 하셨을 때는 나도 정말로 놀랐단다.”

‘그 피도 눈물도 없는 아주머니가 그래도 지 제자에게 내가 죽었다고 한 게 양심이 찔렸던 모양이군!’

심옥련에게 손톱만큼 고마워했다.

“이번에야말로 제자가 하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몇 년 전에 보지 못한 어리석은 날 용서하지 말아다오.”

“아닙니다, 사부님. 사부님께서는 당시 임무 수행 중이시지 않았습니까. 무림이 유능하신 사부님을 필요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녀석. 여전히 말은 잘하는구나. 언제나 이 못난 스승을 변호해 주느라 수고가 많다.”

유정목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손을 뻗어 왔다.

주서천은 피하지 않고 그 손길을 가만히 기다렸다.

소년에서 청년이 됐지만, 머리를 쓰담 받는 건 여전하다.

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이 좋았다.

“……”

이런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가슴이 울컥했다.

전생에선 화산을 내려갈 때 누구도 배웅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남들처럼 스승이 있다.

“다녀오거라.”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눈물을 꾹 참았다.

그 대신 존경과 감사함을 담아 구배(九拜)했다.

주서천도 제대로 된 수선행을 밟은 적은 없다.

회귀 이전에 자신은 연화각 출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대제자였다.

약관이 돼서야 그 조건을 충족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칠검전쟁이 끝나고, 전란의 시대가 시작된 이후였다.

처음으로 강호에 나갔을 때 도착한 곳은 피가 튀기고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이었다.

강호 초출이긴 한데 수선행은 아니다.

도를 닦으러 하산한 게 아니라, 전쟁을 하러 간 것이었으니까.

“낙 사매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 같네.”

하산하기 전에 낙소월이 배웅해 줬다.

‘사형, 일 년 뒤에 뵐게요.’

낙소월의 목소리가 아른거린다.

조금 쓸쓸해하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환하게 웃어 주었다.

나중의 만남을 기약한 건 좋은데, 문제는 내년에는 칠검전쟁 도중이라는 점이었다.

전생 당시에는 수선행인 중인 몇몇 사대제자들을 화산으로 다시 불러들이기도 했다.

수선행에 나갈 자격이 될 제자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어쩌면 정사대전 혹은 정마대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섣불리 제자들을 내보낼 수 없었다.

수선행에 채비는 주어지지 않는다.

협행이건 호위 임무건 간에 누굴 도와 먹고살 돈을 구해야 한다.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불교의 탁발수행(托鉢修行)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살펴 가십시오!”

“수고하쇼.”

대부분의 제자들은 협행이나 임무를 찾거나 혹은 강호에 나와 있는 사형제들을 찾아 도움을 구하지만, 주서천은 그런 걱정이 필요가 없었다.

하산하자마자 할 일은 인근의 전장(錢莊)에서 자신의 명의로 맡겨 둔 돈을 꺼내 오는 일이었다.

각각 금자와 은자가 충분히 들어 있는 주머니를 품 안에 갈무리하면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이 날을 위해서 이의채에게 돈을 준비해 달라고 미리 언질을 해 두어서 돈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참고로 금의상단은 고작 사 년 만에 유례없을 정도로의 성장 속도를 보여 줬다.

아직 천하에 이름을 떨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규모가 그럭저럭 있어서 알 사람들은 아는 이름이다.

“흉마의 무덤이 발견되기까지 반년.”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몇 년 전에 강호에 나오면 뭘 할지 정해 뒀다.

“사천의 만년화리(萬年火經), 운남의 칠각사(七角蛇), 서장의 천년설삼(千年雪藝).”

보다 압도적인 힘이 필요했다.

일단 암천회의 눈에 띄면 어중간한 힘으로는 살아남기가 힘들다.

또한, 그들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서도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보다 빠르게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강구했고, 제법 떠올릴 수 있었다.

다만 반년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어서 모두 행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게 이 세 가지다.

우선 사천에서 만년화리를 잡아 내단을 복용해 백독불침과 한서불침을 노린다.

이후 운남으로 내려가면 영물이자 독물인 칠각사를 사냥해서 얻은 내단으로 천독불침에 오를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크게 중진된 내공과 한서불침으로 서장의 대설산까지 가서 천년설삼까지 복용한다.

반년 동안 최대한으로 강해질 수 있는 최상의 경로였다.

“벽곡단도 준비했으니 든든하군.”

품 안에 넣어 둔 주머니들이 빠지지 않도록 꼼꼼히 확인한 다음에야 이동할 수 있었다.

주서천은 경공을 극성으로 펼쳤다.

일 갑자하고도 십오 년의 내공이 힘을 주며 용천혈에서 흘러나왔다.

암향표를 대성한 덕에 효율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었다.

마치 바람과도 같았다.

경공이 극성이니 말보다 빨라 굳이 말을 탈 필요도 없었다. 

내공의 소진이 빠르지만 그만큼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었다.

전부 소진하면 식사를 하고, 약간의 수면 등 휴식을 통해 재차 회복했다.

식사야 벽곡단을 씹으니 얼마 걸리지 않고, 수면만 두 시진 정도 취하고 그냥 달리기만 했다.

약점이 있다면 지루하다는 것이지만.

그것만 빼면 완벽했다.

“누군가 함께했다면 심심하지는 않겠지만, 원래 강호행이란 건 혼자하는 법이지!”

회귀 전에도 항상 혼자였다.

혼자인 그에게 고독이나 외로움이란 건 익숙한 감정이었다.

머릿속으로 미래에 대한 계획과 낙소월의 미소와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심심함을 달랬다.

이렇게 쉬지 않고 꾸준히 경공을 펼친 덕분에 석천(石泉)까지 도착하는 데 나흘 밖에 걸리지 않았다.

화산에서 섬서까지 걷거나 말을 타도 이것저것 시간을 따져 보면 보통은 일주일이나 보름은 걸린다.

상당히 단축할 수 있었다.

* * *

섬서의 남부에서 시골이라 불리지 않을 규모의 마을은 몇 없다.

석천은 그런 동네 중 하나다.

섬서의 남서 방향으로 이틀에서 삼 일 정도 내려가면 바로 사천이 나오고, 남쪽으로 가면 중경, 남동쪽이면 호북이다.

거리도 비슷하기에 섬서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특히 석천은 사천, 중경, 호북으로 갈라지는 중간 지점에 있기에 그만큼 유동 인구도 많고 마을도 컸다.

주서천은 자시(子時 : 23시 ~ 01시) 무렵에 석천에 도착했다.

모두가 잠들 야심한 시각이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 별로 없는 촌의 경우다.

석천의 밤거리는 아직 밝고 시끌벅적하다.

취객들이 서로 얼싸안고 홍얼거리거나, 술에 잔뜩 취해 거리의 한 곳에 쓰러져 속을 게워 내는 모습이 보인다.

그 외에도 아랫도리를 주물럭거리면서 기루를 들락거리거나, 창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손짓하는 기녀들도 볼 수 있었다.

석천의 밤거리를 지나쳐 간다.

머리 위에서 자신을 유혹하는 기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사님~”

도복 차림을 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강호에 나온 혈기왕성한 청년 도사들만큼 쉬운 상대는 없다.

평생을 도가 문파에서 살면서 성욕을 억제당하다가, 자유가 됐으니 조그만 유혹에도 금방 넘어온다.

주서천은 기녀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밤거리를 지나, 객잔으로 곧장 들어갔다.

계산대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년인이 인기척을 느끼고 졸린 눈을 떴다.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방이 없어……”

“금의상단 주서천.”

주서천이 소맷자락의 매화를 보여줬다.

“아!”

중년인이 눈을 번쩍 뜨며 정신을 차렸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대인. 석천지부와 이곳 객잔주를 맡고 있습니다.”

“반갑소, 석천 지부장.”

금의상단은 이제 귀주뿐만 아니라, 정파와 사파 세력권을 넘나들며 각지에 지부를 세우고 장사하고 있다.

이 객잔은 금의상단의 장사처 중 한 곳이다.

‘상단주가 사람 편의는 잘 알아봐준단 말이지.’

수선행을 나가기 전, 이의채에게 서신을 보냈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고, 수선행의 경로를 알려 주곤 급한 일이 있으면 이곳에서 찾으라고 언질해 두었다.

이에 이의채는 말도 안 했는데 수선행 경로 중에 금의상단의 각 지부를 가르쳐 주면서 말했다.

“전 지부에게 알려 대인의 편의를 최우선할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명이나 거짓 신분이 필요하시다면 준비할 터이니 말씀만 해 주십시오.”

말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바나 곤란한 상황을 대비해 주는 부분은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괜히 상왕이 아니다.

나중에 어찌 그리 잘 아냐고 물어보니 ‘교섭과 거래의 기본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고 답했다.

어쨌거나, 정체를 숨길 일은 없어서 가명이나 거짓 신분은 필요 없다고 전했다.

혹시 몰라 준비는 해 달라고 했다.

“야식이나 술은 필요 없고, 씻을 온수나 준비해 주시오. 조식(早食)도 거창한 것 말고 간단히.”

오랜만에 침상에서 잘 수 있는 생각에 기뻤다.

“네, 그렇게 준비해 두겠습니다.”

객잔주가 힐끗 하고 눈치를 봤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괜찮으니 말해 주시오.”

조금 피곤하지만 이야기를 들을 정도는 된다.

“예!”

객잔주가 환한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섬서는 광물 자원이 풍부하게 발견되는데, 그중 단연 제일 많으며 거래가 활발한 건 철이다.

금의상단의 석천 같은 섬서의 지부는 대부분 이 철이나 혹은 소금을 위주로 교역(交易)에 나섰다.

그리고 최근에 마침 사천으로 나갈 일이 생겼는데, 곤혹스러운 문제가 생겼다.

바로 산적이었다.

“중경의 녹림구채가 요 몇 개월 전부터 영역을 확대해 섬서의 남부 지방까지 노리고 있습니다.

저희 금의 상단도 통행세라는 명목으로 과하게 뜯긴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녹림의 고수가 등장해 호위무사를 두고도 과하게 피해를 입었던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상단주께서 대인이 불편해하지 않는 한에, 부탁을 드려보라 하여서……”

객잔주가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라!’

무림인의 성질은 더럽다.

정파건 사파건 매한가지다.

지닌 힘 탓에 일반인을 정말로 우습게 본다.

흔한 일이니 그건 상관없다.

그도 이젠 익숙해졌다.

다만 괜히 성질을 건드렸다가 날뛰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도 마음 같아선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화산에서 쉬지 않고 석천까지 달려온 사람에게 호위 임무에 대해서 사정 설명하는 건 큰 실례이다.

하지만 미리 말하지 않으면 주서천이 사정을 듣기도 전에 떠날지도 모르니 꼭 전달하라 명령받았다.

“녹림도가 나타나는 곳이 어디요?”

“사천으로 막 넘어가는 경계선입니다.”

“그곳까지라면 호위해 줄 수 있소. 아마 사천으로 넘어가게 되면 녹림도의 위협에서 벗어날 거요.”

사천은 정파 세력의 영향력이 손에 꼽을 정도로 큰 지역이다.

구파일방 중 아미와 청성이 있고, 오대세가인 사천당가까지 있으니 치안이 상당한 편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인!”

금의상단의 일은 남 일이 아니다.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질풍십객(疾風十客)을 호위로 붙여도 될 일이지만……’

질풍십객은 질풍검 왕일을 필두로한 무사들이다.

그들 모두 단쾌검법과 질풍보를 필사적으로 수련한 덕분에 지금은 그럭저럭 이름도 알려졌다.

‘그들은 다른 곳의 호위도 맡느라 이래저래 바쁘지. 여기로 부르면 다른 곳을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조금 귀찮긴 해도 어차피 어려운 일은 아니다.

거리도 그렇게까지 멀지는 않으니 해결해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이의채에게 어려운 일이 생긴다면 부탁해도 괜찮다고 말한 건 자신이었다.

* * *

이튿날 인시(寅時 : 03시 ~05시)가 끝날 무렵, 방 안에서 운기조식을 끝낸 주서천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안녕하십니까, 대인!”

계단을 내려오니 일련의 무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높여 인사했다.

상인으로 보이는 자가 네 명, 그 외에 호위 무사로 보이는 자가 스무 명이었다.

다들 사전에 주서천에 대해서 들은 게 있는 듯, 태도가 깍듯했다.

주서천은 손을 들어 대충 인사한 뒤, 적당한 자리에 앉아 혼자서 조식을 끝냈다.

꽤 맛있었다.

자리에 일어나서 바깥에 나가자 대기 중인 이두마차(二頭馬車) 네 대가 보였다.

상인들이 마부와 함께 앞에 앉아있었고, 그 주위론 무사들이 각자 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자, 가 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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