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三章인성왜인(人性森人)
“음.”
침음이 절로 나왔다.
그 얼굴은 별로 좋지 못했다.
‘어쩌지?’
눈에 띄고 싶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패배할 생각도 없었다.
그래도 일일째는 승리하려 했다.
최하위라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되면, 최악의 경우 다음 강호 출도가 늦춰질 수도 있어서 그렇다.
연화각에 입각한 결정적인 이유가 일반 제자들에 비해 강호 출도가 빠르고 자유로워 그런 게 아닌가.
그러기 위해선 화산파가 납득하고 수긍할 만한 무위를 보여야 했다.
너무 약하다는 인식은 곤란하다.
“하하하, 내 사손을 보고 얼음장처럼 굳었군!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위에서 조무양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사형, 괜찮다면 내가 몇 수 양보해 줄까?”
방철삼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물었다.
‘인성……’
주서천이 속으로만 생각했다.
아무리 목소리를 줄여도 고수들의 귀는 못 피한다
“괜찮아. 그런데 내가 말 놓으라고 했던가?”
방철삼은 열두 살이다.
낙소월처럼 어릴 때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곧바로 입각했다.
다만 낙소월과는 다르게 성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재능도 있었고, 화산오장로의 사손이라서 그런지 주변에서 치켜세우는 자가 많았다.
성깔 있다는 조무양도 방철삼을 아끼는지 쓴소리 한 번 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전형적인 정파의 안하무인으로 자랐다.
“주 사형이 이 년 전에 활약한 건 들었지만, 솔직히 그건 너무 과장된거라 생각한다고.”
방철삼이 주서천의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말을 찍찍 내뱉었다.
“수적 몇 놈이라면 지금의 나라도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지.
자고로 무인이라면 배 위이건 어디건 간에 제 실력을 발휘해야 하는 법.
그걸하지 못하는 건 다 나약해서 그런거야. 헹, 다 패배자들의 변명이라고!”
방철삼이 비웃으면서 콧방귀를 꼈다.
“구풍 사백께 전해 줘도 괜찮겠니?”
천하의 십사검협도 배 위에선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게 다 사형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증거야. 보는 눈이 없군. 애초에 제 실력을 내지 못했다면 천하백대 고수에게 어떻게 이겼겠어?”
“허어.”
주서천이 무릎을 탁 쳤다.
“그건 몰랐네. 정말 대단한 논리다.”
은근 설득력 있었다.
“이거 사제인 나보다 생각이 짧다니!”
방철삼이 허리를 뒤로 젖히며 건방지게 웃어 댔다.
“이러니 낙소월 사저께서 사형을 불쌍하게 여겨 곁에서 돌봐 주는 거 잖아!”
방철삼이 웃음을 뚝 그치고 열을 냈다.
“으응?”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형은 눈치까지 없는 사람이구나. 그러니 낙 사저께 폐를 그만 끼치고 한시라도 빨리 떨어져!”
“……아.”
아까부터 느낀 방철삼의 적의 어린 시선에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나 싶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았다.
“그보다 이런 사람이 왜 나보다 유명한 건지 모르겠네.”
방철삼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묻어나는 감정은 명백한 질투였다.
“그건 내가 너보다 더 대단해서 그래.”
주서천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답했다.
“헛소리!”
방철삼이 방방 뛰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주서천이 자신보다 대단하다는 것에 발광하면서 부정했다.
“나는 화산오장로, 명수악의 사손이며 연화각에도 아홉 살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보다 대단하다고?”
‘이거 완전 애새끼네.’
애 맞다.
“흥.”
주서천은 생환한 뒤로도 정말 조용하게 지냈다.
교류라고 해 봤자 낙소월이나 지금은 나가고 없는 장홍과 장서은 정도였으니 , 무공을 본 사람이 없다.
강호의 소문은 항상 과장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가 잘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자 수림구채의 활약이 점차 묻혀가면서 실력에 의문도 제기됐다.
특히 그를 아직도 안 좋게 보는 사대제자들이 그런 반응을 보였는데, 방철삼이 그중 대표적이었다.
“그래도 사형이니 내 자비를 베풀어 주지.”
방철삼이 주서천을 대놓고 무시했다.
“사제에게 일격(一擊)도 가하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어디 얼굴 들고 다니겠어? 하하하!”
방철삼이 제자리에 서서 도발했다.
“허미……”
주서천이 할 말을 잃었다.
“에잉, 쯔쯔.”
영진이 혀를 차면서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보쇼, 조 장로. 예의범절이 좀 어긋난 거 아니오?”
“어허, 아직 어리니 잘 모를 수도 있지. 그리고 나름 사형이 명예를 구기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지 않소?”
조무양이 목을 꼿꼿이 세운 채 뻔뻔하게 나왔다.
“어려서 조금 버릇이 없는 것뿐이지, 천성은 착한 아이요. 저 배려 좀 보시오. 너무 감동스럽군.”
“기적의 논리야!”
영진이 그 사조에 그 사손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배려했는데도 들은 척도 안 하니 어쩔 수 없지!”
그사이에 방철삼이 자세를 바꾸면서 호전적인 기세를 보였다.
기다려준 건 정말 찰나의 수준이었다.
애초에 봐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다.
방철삼은 낙소월이 있는 자리를 힐끗 쳐다봤다.
‘낙 사저 앞에서 온갖 망신을 주마!’
방철삼은 낙소월의 관심을 끄는 주서천이 싫었다.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주서천이 형편없이 나가떨어지는 걸 보여 줘서 실망시킬 생각이었다.
더불어 자신이 얼마나 멋진지 보여줄 수도 있었다.
방철삼은 이상적인 미래를 떠올렸다.
낙소월이 쓰러진 주서천을 혐오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자신에게 달려와 너무 멋지다면서 안기는 모습이 구현됐다.
“흐.”
입이 귀밑까지 찢어졌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침도 뚝뚝 흘렀다.
“순 미친놈이군.”
주서천이 솔직한 감상을 입에 담았다.
“하하!”
방철삼이 주서천의 욕을 듣고도 대인배처럼 웃었다.
“지금부터 눈물 콧물을 전부 짜내주지!”
방철삼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몸을 날렸다.
‘응?’
워낙 기세가 거칠어 바로 공격이 들어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예상과는 많이 다른 움직임이었다.
정면에서부터 직선처럼 쭉 뻗어 왔으나, 도중에 부드럽게 꺾이면서 방향을 틀었다.
혹시나 후방이나 측면을 노리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공격은 하지 않고 자신의 주변만 빙글빙글 돌았다.
보법은 익숙한 오행매화보다.
살짝만 봐도 수준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대충 팔성(八成) 정도다.
“이럴 수가, 열두 살에 오행매화보가 팔성이라니!”
“조무양 장로님이 괜히 애지중지하는 게 아니군. 좀 재수 없는 놈인 것 같지만 무공은 확실히 대단한데?”
“저 군더더기 하나 없는 움직임을 보게나.”
관중석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하나같이 다들 놀라워하는 기색이었다.
오행매화보는 나름 상승의 보법이다.
평범한 제자들의 경우, 이걸 대성하는 순간 이미 중년이었다.
수련 기간이 그만큼 길고 난이도도 높은 편이었다.
그래도 그만큼 보법의 용도가 많고, 우수했다.
다들 조금이라도 빨리 대성하려고 노력하는 무공이었다.
벌써 십이성 중 팔성을 이뤘으니 감탄할 만했다.
‘내가 오행매화보를 진작에 대성했다는 걸 알면 놀라 자빠지겠군.’
수적들을 상대하면서 잠깐 보여 준 적 있었지만, 그때는 보법을 제대로 살펴볼 상황이 아니었다.
“음… 아.’
이제야 방철삼이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나?’
방철삼은 주서천을 자신보다 한참 아래로 보고 있다.
위협이 될 거라곤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러는 게 그 증거였다.
우습게 보지 않는다면 이런 보여주기용의 화려한 몸놀림을 보일 리 없다.
상대를 이용해서 심사관이나 낙소월 등에게 얼마나 성취를 이뤘는지 자랑하고 있었다.
‘정말 어린애긴 어린애구나.’
주서천이 속으로 어이없이 웃었다.
‘내 보법에 완전히 압도됐구나!’
방철삼이 가만히 있는 주서천을 보고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보법을 전력으로 펼치고 있는 도중만 아니었다면 진작 비웃었다.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저기에는 압도될 수밖에 없지.’
‘낙소월 정도가 아니 라면 상대할 수 없을 거야.’
‘몇십 년 뒤, 명수악 장로님의 뒤를 이어 화산오장로가 되겠군. 제자들에게 잘 지내라고 말해 둬야겠어.’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다들 하나같이 주서천이 압도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코 우습게 봐서 그런 게 아니다.
방철삼이 보여 준 건 그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음, 너무 힘을 줬잖아.’
주서천이 방철삼을 보고 걱정했다.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쉽게 이길 수는 없으니까. 적당히 나도 백 합 정도 교환하고 이겨야 하나?’
이 말을 들었다면 좌중의 모두가 어이없어했을 것이다.
주서천은 검을 잡아 늘어뜨린 채로 고민에 빠졌다.
한편, 방철삼도 고민에 잠겨 있었다.
‘어떤 초식으로 끝내야 멋있을까?’
어차피 오늘 비무는 이걸로 끝이다.
다음은 내일이니 소진된 내공이야 운기조식으로 회복하면 된다.
‘난화수(亂花手) 매화산수(梅花散手)?’
검법으로 치자면 난화수는 매화검이고, 매화산수는 육합검이나 낙영검법과 매화영롱검 사이 정도였다.
난화수는 정말로 기초적인 것이니 바로 제외다.
멋이 나지 않는다.
자연스레 매화산수를 펼칠까 싶었는데, 미련이 남았다.
스쳐 지나간 산화무영수(散花無影手) 탓이었다.
방철삼이 산화무영수를 수련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애초에 아직 매화산수도 대성하지 못했다.
그래서 산화무영수를 배우는 데 억지가 필요했다.
방철삼은 조무양에게 졸라서 조금 일찍 배웠다.
그렇다고 조무양이 생각 없이 산화무영수를 가르쳐 준 건 아니다.
매화산수를 거의 대성해서 허가했다.
‘좋아, 산화무영수로 하자!’
상대가 전혀 위험이 되지 않다고 생각되니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힘이든 상대였다면, 익숙하지 않은 산화무영수는 쓰지 않는다.
자칫 잘못했다간 역으로 당할 수 있었다.
파앗!
결정을 내리자 행동으로 보이는 건 빨랐다.
드디어 보여주기 식의 보법을 멈추고 공격에 나섰다.
방철삼이 주서천과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떨어지는 꽃같이,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또한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기도 했다.
“그렇지!”
구경하고 있던 조무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조차 환호할 정도로 완벽한 초식이었다.
전환과 연결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또 위협적이었다.
“산화무영수!”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화산의 수공 중에서 저렇게 부드럽고 재빠른 건 산화무영수뿐이다.
다들 한눈에 알아봤다.
‘끝이다!’
손이 세워진 채로 가슴팍을 노린다.
바람을 둘로 가르면서 날아갔다.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방철삼도, 관전자도 산화무영수의 초식이 정확하게 들어갈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헉 깜짝이야!”
주서천도 산화무영수가 나오자 놀랐다.
그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직접 상대하는 건 처음이었다.
전생에서 같은 사대제자들과 비무를 했을 때는 다들 평범하게 검법을 써서 그랬다.
경험이 적으니 놀라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 보니 반사적으로 힘이 좀 들어갔다.
주서천은 산화무영수를 막으려고 검을 들었다.
그 와중에 방철삼이 다치지 않도록 검 면으로 막아 냈다.
우드득!
“어?”
방철삼이 당황했다. 지금 일어난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공력을 전부 담은 손이 부러지고 네 손가락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였다.
제정신을 차리면서 경악하려는 순간, 머리 위로 납작한 검의 몸체가 내려오는 게 보였다.
“꾸엑!”
‘퍼억’ 하고 무언가 맞는 소리와 함께 방철삼이 개구리처럼 지면에 딱 달라붙으면서 처박혔다.
“……”
좌중이 침묵했다.
‘이럴 수가……’
주서천이 한탄했다.
‘내가 너무 강하다.’
태양이 동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게 보인다.
“철사아아암아아아아!”
조무양의 절규가 화산파 구석구석까지 퍼졌다.
“조 장로, 입 좀 다무시오. 귀청 떨어지겠소.”
영진이 인상을 찡그리며 짜증을 냈다.
그 앞에는 정신을 잃은 방철삼이 게거품을 문 채 누워 있었다.
연화검회의 일일째가 종료됐다.
다섯 명이 패배했고, 다섯 명이 승리했다.
패자 중 정신을 잃은 건 방칠삼 뿐이었다.
“크게 다치지도 않았소. 그냥 기절한 것뿐이니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을 거요.”
영진은 별호에 맞게 영약사다.
하지만 약이라 하면 자연히 의술과 연결되지 않는가.
제대로 된 의원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진료를 볼 수 있긴 했다.
‘주서천, 그 녀석. 어째 매일매일 폭풍을 몰고 다니는구나. 흐흐.’
영진이 재미있다는 듯이 속으로 웃었다.
겉으로 내면 눈이 돌아간 조무양이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았다.
“그놈, 무슨 사술을 쓴 게 분명하오! 그렇지 않으면 철삼이가 이렇게 쉽게 당할 수 없소이다!”
조무양이 잔뜩 화를 냈다.
“허이구.”
영진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무어라 말하려고 했으나, 그 전에 학송이 나섰다.
“별 시답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시오. 저 아이가 상천십좌인 검선과, 화산오장로의 눈을 속였단 거요?”
“으으……”
“조 장로, 사손을 예뻐하는 건 알겠소. 그러나 때로는 그 사랑이 과해, 망칠 수 있다는 걸 명심하시오.
자기 자신이 최대의 적이라는 걸 알려 줘야 하오.”
비무의 승패는 주서천이 강하다기보다는 방철삼의 자만 가득한 행동이 큰 걸로 보였다.
일부러 오행매화보로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가, 불완전하고 동작이 큰 산화무영수를 펼쳤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단 일격에……”
“누가 봐도 방심과 자만이라는 걸 알고 있을 거요. 후에 그걸 잘 가르치지 않는다면, 아이를 망치게 될 것이니 올바른 처신을 부탁하리다.”
학송이 따끔하게 충고했다.
우일문은 뒷짐을 쥐고 걸었다.
‘아직 좀 더 지켜봐야 할 아이로구나.’
연화검회에서 눈에 들어온 사대제자는 셋 정도다.
낙소월은 두말할 것도 없었고, 방철삼은 미성숙해 철이 조금 없을 뿐이었다.
마지막은 주서천이었다.
툭 까놓고 말해서 특별히 뛰어나서 신경 쓰이는 건 아니다.
그저 정체모를 친근함의 탓이었다.
오늘 비무에서 일격에 쓰러뜨린 건 놀라긴 했지만, 그건 방철삼의 화려하기만한 행동 탓이 컸다.
그렇기에 내일 비무 결과를 보고 싶었다.
정말로 별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순수한 호기심 정도다.
그리고 이튿날.
이 호기심은 정말로 단순한 호기심 정도로 끝나게 된다.
“졌습니다.”
그 장본인의 패배 선언으로.
* * *
이튿날, 대진표가 나왔다. 주서천이 바랐던 대로 부전승은 아니었다.
또한, 비무 상대도 최적이었다.
“이건 또 그립네요.”
낙소월이었다.
몇 년 전, 입각 심사 때도 이렇게 마주 본 적이 있었다.
“졌습니다.”
주서천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항복했다.
“…… 네?”
낙소월이 부드럽게 웃다 말고 당혹한 모습을 보였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반응도 마찬가지 였다.
“설명해라.”
심사관, 위지결이 물었다.
“어제, 방철삼 사제의 공격에 대응하려고 몸 곳곳 내공의 상당 부분을 사용했고, 갑자기 끌어내느라 내상도 좀 입었습니다.
그게 다 회복되지 않아서, 낙 사매와 싸워도 얼마가지 않아 몸에 무리가 갈 겁니다.”
“알겠다.”
위지결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렇게 된 건가.”
“그 방철삼의 공격을 막아내려면, 보통 실력으론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 움직임이 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몸이 따라 주는 것은 별개지. 그걸 막거나 피해서 반격하려면 그냥으론 끝나지 않는다.”
“무엇보다 지금 상대가 그 낙소월이 아닌가? 저런 불완전한 상태로는 상대할 수 없지.”
“끙, 하지만 마음에는 들지 않네. 판단이 나쁜 건 아니지만, 대장부라 하면 질 것을 각오하고 싸워야하지 않는가.”
“그래 매화검수를 뽑는 이 연화검회에는 맞지 않지.”
“수림구채 때의 일로 다시 보긴 했지만, 무공은 그럭저럭 쓸 만해도 용기는 영 부족한 것 같네.”
관중석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허무할 정도로 둘째 날의 일회전이 끝났다.
낙소월은 주서천에게 뭐라 말하고 싶은 얼굴이었으나, 다음 비무 예정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주서천은 그대로 탈락.
연화검회는 계속됐다.
우승자는 낙소월.
마지막에 격렬한 비무 끝에 승리한다.
“아이고, 저 멍청한 놈! 전부터 내공 자랑하더니만 내 저럴 줄 알았다!”
내심 주서천의 활약을 기대했던 영진이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한탄했다.
“고생했다.”
주서천이 탈락하고 관중석으로 이동할 때, 유정목이 언제나처럼 부드럽게 웃어 주면서 반겨 줬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주서천이 송구스럽다는 얼굴로 유정목에게 사과했다.
“네가 잘못한 것이 뭐가 있다고 사과하느냐?”
“그야 물론 사부님의 제자임에도 불과하고 연화검회에 나갔는데……”
“됐다. 네가 어떤 생각인지 알고 있으니까.”
유정목이 무릎을 굽혀 주서천과 눈높이를 맞췄다.
“어제의 그 아이가 대단하긴 했지만, 너가 내공을 급작스럽게 끌어올려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단다.
네 몸 상태는 정상이었을 거야.”
스승은 제자의 뻔뻔한 거짓말을 눈치챘다.
여기까지는 평범했다.
“내가 알고 있는 너라면, 낙소월 그 아이와 충분히 대등한 승부를 했을 게다.
다만, 누가 이기건 내공의 소모가 심하니 다음의 비무에서 해가 되었을 게다.”
유정목이 이상한 오해를 했다.
예?
주서천이 그건 뭔 소리나는 표정을 지었다.
하나 유정목이 어림없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네가 매화검수에 관심이 없다는 걸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더 이상 내 신경을 써 줄 필요는 없다.”
한때 매화검수를 꿈꿨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제자에게 가능성을 보고 매화검수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제자와 함께 지내면서 그가매화검수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걸 어느새인가 눈치채게 됐다.
욕심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어, 좀 더 자랑스러워졌으면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스승의, 자신의 목표였던 것과 꿈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정목은 주서천이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한 길을 걷기를 원했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모른 척할 필요 없단다. 매화검수에 관심이 없으니 연화검회에서 굳이 열심히할 필요는 없겠지.
그래서 낙소월 그 아이에게 기회를 양보한 게 아니냐?”
아니다.
“아닌데요.”
생각지도 못한 황당한 추측에 자기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답해 버렸다.
“괜찮다. 그렇게 거짓말할 것 없단다. 체면을 신경 쓰지 않고, 사매를 배려해 주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유정목이 주서천을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지, 진짜 아닌데요.”
주서천이 말까지 더듬었다.
확실히 매화검수에 관심이 없긴 하다.
아니, 관심이 없는 걸 넘어서 결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뿐이다.
그런 배려 같은 거 하지 않았다.
애초에 낙소월과 대등하긴커녕, 실력 차가 심했다.
괜히 또 방철삼 때처럼 실수할 것 같아 항복했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다. 넌 정말로 내 자랑스러운 제자다.”
유정목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자랑스러워했다.
“……”
주서천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여러모로 이상한 오해를 사긴 했지만, 그래도 별 의심 없이 넘어가지 않았는가.
그냥 받아들였다.
왠지 스승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영 편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 * *
“기분, 탓이었나……”
우일문이 뒷짐을 쥔 채 중얼거렸다.
그 얼굴에는 약간의 실망스러운 기색이 묻어났다.
여태껏 살아오면 무재들은 많이 봤으나 별 이유 없이 친근감을 느끼는 아이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무언가 있을까 하고 기대했지만, 단순한 기분 탓이었다.
조금 뛰어난 아이였다는 정도다.
이렇게 주서천이 나름 계획했던 대로 우일문의 호기심을 깨우지 않고 잠재울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일로 스승의 일처럼 이상한 오해를 사기도 했다.
“여전히 겸손하구나.”
구풍이 찾아와 옅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예?”
무심코 ‘이건 또 뭐지.’ 라고 중얼거릴 뻔했다.
“장홍과 장서은, 그 아이들과 함께 했을 때도 그러지 않았느냐.”
그런 적 없다.
“사형과 사저보다 무공이 뛰어났음에도 자랑하기는커녕 스스로를 낮추는 모습을 보였지.”
아니다.
“아, 예……”
저 다 알고 있다는 눈을 보니 할 말이 없어졌다.
무언가 이상한 오해를 샀지만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훗날, 네가 다시 강호에 나갈 때를 기대하마.”
구풍이 이상한 착각에 빠진 채 다녀갔다.
“똥 싸고 뒤 안 닦은 기분이네……”
정말 찝찝했다.
나쁘거나 한 건 아닌데, 정말 의도하지도 못한 인식을 남기게 돼서 기분이 이상하다.
게다가 구풍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장로님을 뵙습니다!”
화산오장로가 찾아왔다.
평소에도 자주 대화했던 영진이 아니라 놀랍게도 심옥련이었다.
“……”
심옥련은 주서천을 말없이 내려다봤다.
‘뭐야?’
표정에 어떠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속내를 알아보려고 해도 도통 짐작이 가지 않는다.
전생의 경험이나 기억을 총동원했는데도 영 알 수가 없다.
그만큼 차가운 사람이다.
“주서천.”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빚은 잊지 않으마.”
심옥련이 주서천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몸을 돌렸다.
“고맙구나.”
그 말을 끝으로 심옥련이 떠나갔다.
주서천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늦게 이해하곤 어이없어했다.
“설마 지금 사손을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한 거야? 허, 진짜 별 이상한 오해를 다 받네.”
뭔가 낙소월을 위해서 회생한 입장이 됐다.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착각해 버렸다.
“뭐, 나쁜 기분은 아니네.”
여전히 찜찜하지만, 피식하고 웃게 됐다.
그 철혈매검에게 고맙다, 라고 들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형!”
만족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저 멀리서 누군가가 찾아오는 게 보였다.
“전에는 대체 어째서……”
낙소월이었다.
“또?”
주서천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