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일파만파(一波萬波) (46/254)

第九章일파만파(一波萬波)

내상약으로 치료하려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삼안신투의 무공이 워낙 고강해서 그걸로 소용없었다.

게다가 정면으로 맞아서 그런지 내상이 상당히 심했다.

주서천은 내상약도 먹고, 영약도 복용했다.

처음에 얻었던 영약은 어떤 것인지 모르니 불안해서 쓸 수 없었고, 효과가 확실한 소환단을 썼다.

주서천은 무사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운기조식을 취하면서 내상을 치유하는 데 힘썼다.

눈을 떴을 때, 약 이삼 일이 지났다고 한다.

내공은 그다지 늘지 않았다.

내상을 입은 채로 자하개벽이라는 최대의 초식을 펼치는 바람에 기맥과 혈맥, 단전이 너덜너덜해졌다.

내장도 상당히 상했다.

그걸 치유하는데 소환단의 내공 전부를 사용해 버렸다.

아깝지만, 목숨보다는 아니다.

‘일단 무슨 일이 있었던 건 아니군.’

운기조식에 들 때, 솔직히 무사들을 걱정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재물에 눈이 멀어 배신할 것 같아서다.

하지만 다행히도 한 명도 없었다.

배신하기는커녕 다들 교대로 호법을 서줬다고 한다.

“고맙소.”

주서천은 그들에게 솔직하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할 게 뭐가 있겠소?

어차피 우리가 없어도 영약을 알아서 복용했을 거요.

그리고 어떠한 위험도 없었으니 혼자였어도 알아서 살아났을 거외다.”

초령이 피식 웃으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방금 일어나서 잘 모르겠는데, 누가 나에게 상황 설명 좀 해 주겠소?”

“저 강시가 쓰러지자마자 제단이 사라지고 비석이 나타났소.”

왕일이 계단 위에 있는 비석을 가리켰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니까 가보지는 않았어.”

제갈승계가 말했다.

“좋아, 그럼 그동안 고생한 걸 받으러 갈까.”

주서천이 일어나 걸어갔다.

머리가 사라진 삼안신투의 시체는 감정을 담아 발로 뻥차줬다.

“흐흐”

비석에 새겨진 문장과 글자를 보고 웃음이 흘러나왔다.

“찾았다!”

일월신궁, 중도만공보다 찾아야 할 것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눈앞에 있는 것만큼은 얻어야만 했다.

“유령신공(幽靈神功)!”

자신을 그토록 괴롭혔던 무공!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기척도 들리지 않는 발걸음!

그 신묘한 움직임의 정체가 바로 유령신공이었다.

주서천은 비석에 새겨진 글귀를 읽었다.

천(天)은 지식이요

지(地)는 힘이니

인(人)은 사람이리라

천지를 갖추었다면 이안(二眼)을 얻은 것이니

사람인 삼안(三眼)을 찾아서 천하(天下)를 훔쳐라.

삼안신투의 유언이었다.

그 밑으로는 그의 일생과 유령신공의 구결이 기록되어 있었다.

주서천은 유령신공의 구결을 전부 암기한 다음, 그 밑의 흑함(黑函)을 열었다.

안에 있는 건 한 권의 서적이었다.

반야신공(般若神功)

주서천은 제목을 확인하고 누가 보기도 전에 얼른 품 안에 넣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큰 비급이었다.

소림사의 신공절학으로 수백 년 전에 소실되어 이제는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절세무공!

반야신공은 사라진 게 아니었다.

삼안신투가 소유하고 있었다.

주서천은 흑함 또한 자신의 짐 보따리에 넣어 두었다.

이걸로 중요한 건 전부 회수했다.

“이제 떠나는 겁니까?”

왕일이 물었다.

그 목소리는 왠지모르게 들떠 있었다.

“그렇소.”

“야호!”

“만세!”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무사들이 환호했다.

다만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함정 중에서 목소리가 높으면 발동하는 게 있었다.

비고의 경험으로 얻은 건 미칠 듯한 조심성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시오.”

주서천이 자하개벽으로 비석을 박살 냈다.

그리고 잔해들을 모아 다시 한번 자하개벽으로 부줬다.

그리고 알아볼 수 없도록 주변에 골고루 뿌린 뒤, 머리가 사라진 강시의 몸을 어깨에 걸쳤다.

“이건 가면서 버릴 거요. 갑시다.”

그렇게, 지긋지긋했던 비고행이 끝났다.

* * *

비고를 되돌아오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삼안신투의 시체는 중간에 가시 함정에 버려두고 왔다.

함정이 아닌 회수할 수 있는 보물이 아직 있었지만, 그 양이 많아 두고 갈 수밖에 없었다.

일행은 암장으로 나와 쉴 새 없이 걸었다.

피곤했지만 그래도 귀환한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며칠 뒤, 인근 마을에 도착하니 기다리고 있는 건 금의상단이었다.

떠나기 전, 말해 두었던 대로 인근 마을에 이의채가 자기 사람을 대기시켜 두었다.

“상단주에게 모든 일이 끝났다고 전하시오.”

“예!”

금의상단의 연락책은 곧바로 전서응을 날렸다.

주서천은 그걸 확인하고 갈 길을 가려 했지만, 연락책이 그를 막았다.

“상단주님이 호위 무사단과 근처에 있습니다. 하루 정도면 도착할 거라고 전해 달라 했습니다.”

“옹안은 어쩌고 왜 인근에 있습니까?”

“그쪽은 이제 완벽 합니다. 상단주님이 타 지역에서 명령만 내려도 될 정도입니다.”

“호, 역시 능력은 좋아.”

괜히 미래의 상왕이 아니었다.

연락책이 말한 대로 마을에서 하룻밤을 잤다.

점심을 먹을 무렵, 이의채가 상단을 이끌고 나타났다.

“아이고, 대협!”

“오랜만입니다, 상단주.”

주서천이 이의채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의채의 시선은 주서천을 비롯한 왕일 등의 무사들의 짐 보따리로 향했다.

너무 노골적이었는지라 어떤 의도인지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대협께서 고생하신 것만 생각나면 이 이의채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으흐흑.

어서 타시지요. 제가 대협을 위해서 사두마차를 준비했사옵니다. 오직 대협만을 위한 마차입니다요!”

이의채가 소매로 눈에 맺힌 물방울을 닦았다.

“방금 전에 물통에 손가락 넣는 거 봤는데……”

“자자, 이러지 마시고 얼른 타시지요. 이러다 대협의 다리가 부러지겠습니다!”

이의채가 소란을 떨며 주서천을 마차에 태웠다.

마차는 상당히 깔끔하고, 또 편안해 보였다.

실제로 출발하자 그 탑승감은 상당히 좋았다.

마차 주변으로는 약 오십여 명이 넘는 무사들이 호위했다.

대부분 이류에서 일류 정도는 될 듯했다.

참고로 짐 보따리는 전부 회수해서.마차 안에 넣었다.

그 덕에 여덟 명은 앉을 수 있는 자리에 사람 대신 보따리가 찼다.

다른 곳에 두려고 해도 안에 있는 것들이 워낙 범상치 않은 것들뿐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제가…… 아니, 승 공자께서도 어디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이의채가 제갈승계의 이름을 부르려다 주변에 듣는 귀가 많다는 걸 깨닫고 뒤늦게 가명을 불렀다.

“제발 눈은 보고 얘기합시다.”

제갈승계가 보물에 눈이 먼 이의채를 질린 듯이 쳐다봤다.

“확인해 보십시오.”

주서천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자 이의채가 번개같이 움직여 보따리를 살짝 열어서 머리만 집어넣었다.

“스읍~하. 스읍~하. 크헤헤……”

이의채가 사람으로서 여러모로 맛이 간 행동을 했다.

머리를 보따리에 쳐박고 심호흡하며 웃어 댔다.

“대협을 따른 건 틀리지 않은 선택이었어! 후히히!”

사람과는 거리가 먼 목소리였다.

혹시나 마공을 연공한 건 아닌지 의심될 정도였다.

“킁킁, 알싸한 향이 나네. 역시 돈이 약이지!”

“그건 영약 냄새요.”

주서천이 정색했다.

“자, 그만 정신 차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나 이야기합시다.”

주서천이 발끝으로 이의채의 신발을 툭쳤다.

그는 보따리에 넣은 머리를 꺼내며,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우리가 비고로 떠난 지 시간이 얼마나 흘렀습니까?”

“한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예상한 시간이었다.

“별일 없었습니까?”

“어떤 고수가 누군가와 싸워 죽었다, 정도는 있습니다.”

정말 별일 없었다.

강호 무림에선 흔한 일이다.

정파, 사파, 마도이세의 세력 다툼도 마찬가지였다.

변하는 건 없었다.

화산파, 제갈세가는 여전히 수림구채를 어찌하지 못했다.

“아, 그리고 귀양에 거처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당분간은 그곳을 주거지로 삼아 활동할 계획입니다.”

귀양은 귀주의 성도이다.

관부의 영향을 받는 만큼 정파도 사파도 이 곳만큼은 어찌할 수가 없다.

“굉장하군요.”

주서천이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이의채를 칭찬했다.

이 짧은 시간 내에 이 정도의 호위 무사나 성도에 거처를 세운 것은 하나같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흡, 저 대협…… 소상이 궁금한 것이 있어서 그런데 혹시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의채가 손바닥을 비비면서 그의 눈치를 봤다.

“보물의 분배지요?”

주서천이 예상한 얼굴로 반문했다.

“과연 대협이십니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적당히 합시다.”

손을 들어서 길어지려는 말을 끊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꿀꺽!

이의채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침을 삼켰다.

심장이 쿵광쿵광 하고 성난 황소처럼 날뛰었다.

‘얼마나 줄까? 삼 할? 이 할?’

주서천은 어리지만 호구는 아니다.

괜히 욕심을 부렸다간 목이 날아갈 지도 모른다.

이의채도 적당한 선이란 걸 알고 있었다.

“전 이 돈을 전부 상단주께 맡기겠습니다.”

“……예?”

이의채가 순간 두 귀, 아니 머리를 의심했다.

혹시 자신이 원하는 바가 너무 심해져서 이젠 상대방의 말까지 왜곡해서 들은 건 아닌가 싶었다.

“어차피 전 이 많은 걸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화산파가 속세적인 경향이 있어도 재물욕에는 엄하지요.

아실지 모르겠지만 전 도사입니다.”

“……아!”

이의채와 제갈승계가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번 일로 상단주가 믿을 만한 사람이고 또 능력도 있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전 상단주께 투자를 해보려 합니다.”

“투자…… 말입니까?”

“예. 돈을 불리는 건 상단주의 특기이지 않습니까.

이 돈을 자본으로해서 불려 주십시오. 그 대신, 제 부탁을 우선적으로 들어주시고 또 도와주셔야 합니다.”

주서천이 진정으로 원하는 건 이미 손에 넣었다.

이거 외에 돈이 될 만한 건 딱히 필요 없었다.

만약 이 돈으로 상단주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든지 줄 수 있었다.

“여기 있는 동생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원래 보물의 분배는 상단주가 이(二), 승이가 삼(三), 제가 오(五)입니다.”

제갈승계의 몫은 무시할 수 없다.

그가 없었다면 비고의 진입 자체에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다.

“제 공부를 도와주거나, 나중에 세가가 곤란할 때 도와주신다면 전 상관없어요.”

제갈승계가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지는 모르지만 재물 욕심이 없었다.

주서천이 제안하자 흔쾌히 승낙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서천이 손을 건냈다.

이의채는 그 손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리고 주서천을 한 번 , 제갈승계를 한 번 살폈다.

“흐읍...!”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무언가가 치솟았다.

이의채는 이 감정에 몸을 맡기며 허리를 숙였다.

“대협, 공자! 발을! 발을 핥게 해주십시오!”

“……”

“……”

주서천과 제갈승계가 침묵했다.

귀양.

“삼안신투의 비고 위치입니다. 보물이 있다고 소문을 퍼뜨리십시오.”

왕일이나 초령 등의 무사들을 못 믿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사는 믿지 못한다.

특히 남자들의 경우, 술과 여자가 함께하는 잠자리 일 경우를 생각하면 비밀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맨정신으로는 무한한 신뢰를 보일 수 있어도, 술을 마시면 달라지는 법이다.

어차피 영원한 비밀이란 건 없는 법이다.

그래서 이렇게 비고의 존재를 밝히기로 했다.

며칠 뒤, 무림에 소문이 퍼졌다.

“자네, 그거 들었나?”

“삼안신투의 비고 말이지? 그걸 누가 믿어?”

삼안신투의 비고!

처음에는 그 누구도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나같이 다들 뭔 헛소리를 하냐면서 비웃었다.

삼안신투가 삼백 년 전에 실존하긴 했지만, 그 행적이 워낙 허황된지라 거의 전설로 취급하고 있었다.

황궁은 물론이고 정파, 사파, 마도이세를 전부 털었다니, 천하제일인도 그건 불가능했다.

“암장이면 근처인데…… 마침 할 것도 없겠다, 한번 가 봐야겠군.”

그러나 사람이란 건 자고로 호기심의 동물이다.

아무리 허황된 것이라 할지라도, 누군가는 그걸 굳이 확인하려 한다.

그게 사람이다.

“이봐, 삼안신투의 비고 말일세……”

“응? 또 그 헛소문이 유행인가?”

“아무래도 헛소문이 아닌 모양이야.”

이의채는 주서천이 가르쳐준 대로 정확한 장소까지 소문으로 퍼뜨렸다.

누구라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을 방문한 사람은 의외로 꽤 있었다.

몇몇은 함정에 걸려 죽었고, 몇몇은 운 좋게 살아남았다.

후자의 사람들이 돈이 될 만한 무언가를 가져와 부자가 되자, 그 소문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뒤늦게 퍼진 전설의 헛소문이 아닌, 사실로!

개양.

삼안신투?

신도균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손에 들린 건 안휘에서 내려온 공문이었다.

“에잉, 쯧쯧.”

신도균이 마음에 안 드는 듯 혀를 찼다.

“안 그래도 이 동네 항상 사람 부족한 거 알면서, 비고를 조사하라고? 너무하다, 너무해.”

귀주의 북부는 정파 무림의 영역이다.

여기에서 서북부로 좀만 올라가면 비고의 장소가 나온다.

지리적으로 가깝다보니 조사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신도균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얼마 뒤에 귀를 의심하게 된다.

“뭐? 있어? 비고가?”

“예.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지하로 내려가보니 바닥에서 삼안신투의 문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헉!”

신도균은 본부로 보고를 올렸다.

“진짜라고?”

무림맹 장로진도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소문이 사도천이나 마도이세의 함정이 아닐까 생각하고 조사대를 파견하라 한 것뿐이었다.

그런데 함정은.커녕, 진짜라고 하니 혼란스러웠다.

“뭐하고 있어? 당장 자리에 없는 장로들 불러와!”

사도천.

“삼안신투? 그 삼백 년 전의 도둑놈?”

사도천주가 어이없어했다.

“무림맹이랑 마도이세는 어떤가?”

“그들도 모르는 눈치입니다. 무림맹의 경우, 얼마 전에 대대적으로 탐사대를 파견했습니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지?”

뜬금없어도 정말 뜬금없었다.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됐다 한다.

의심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게…… 이미 퍼질 때로 퍼지고, 제법 기한이 지난 상태라 추적이 불가능합니다.”

비고에 대한 소문이 퍼졌을 때, 다들 헛소문이라면서 코웃음 쳤다.

그 누구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다면 첫 발원지가 어디인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마도이세는?”

“지켜만 보고 있는 추세입니다.”

“그렇겠지.”

마교도 혈교도 본산이 중원 밖에 있다.

중경까지 오려면 중원을 침공해야 하는데, 그럼 전쟁이다.

또한 그들은 신도들 덕에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무공 또한 마공인 만큼 파괴적이고 강했다.

굳이 무리해서까지 삼안신투의 비고를 방문할 이유가 없었다.

“적림십팔채는?”

“얼마 전에 화산파와 제갈세가와의일 탓에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또한 중경에 여러 정파인들과 낭인들이 모이는 것도 신경 쓰이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중경이 적림십팔채의 영역이라고 해도, 비고를 노리고 모일 무인들을 생각하면 부담스러웠다.

수림구채는 어차피 장강에서 나오지 않는 편이 낫고, 동원할 수 있는 건 녹림구채 뿐이었다.

전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토벌이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어 나서지 않고 있었다.

“보내라.”

사도천주가 고민을 끝냈다.

“괜찮겠습니까?”

자칫 잘못하면 정사대전이다.

“무림맹주에게 서신을 보낼 준비를 해라. 아마 지금쯤 내가 제의할 협정을 기다리고 있을 게다.”

비고를 탐사할 세력은 둘밖에 없다.

무림맹과 사도천.

이 둘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떻게 될 지 안 봐도 뻔하다.

이 일로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곤란하다.

마침 중경은 적림십팔채의 영역.

어찌 보면 중립이라 협정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조금 성가신 일이 벌어지겠지만, 비고가 진짜라면 정파 놈들에게 넘길 수만은 없지. 처리해.”

“존명……”

중경에 사람들이 모였다.

무인뿐만이 아니었다.

일확천금을 노리는 도굴꾼들도 모였다.

무림맹과 사도천은 협정을 맺었다.

비고의 탐사가 끝나기 전까지는 싸우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어긴 자는 엄중히 벌을 내리기로 했다.

정파와 사파까지 본격적으로 움직이자, 비고에 대한 소문은 사실상 진짜가 됐다.

각 지방에서 일확천금을 노리는 자들이 중경으로 몰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만큼 상인도 왔다.

졸지에 사람 한 명 없던 암장은 현재 중원에서 제일 사람이 붐비는 곳 중 한 곳이 됐다.

인근에 있던 마을들은 전부 대박이 났다.

참고로 이의채는 이 현상을 예상하고 객잔을 미리 세워 두었다.

정파인, 사파인, 낭인, 상인, 구경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여들었다.

정말로 많았다.

“형님, 난 왜 세가로 못 돌아가는데?”

제갈승계가 물었다.

“이제 막 탐사가 시작됐잖아. 네가 저기에 등장하면 제갈세가가 눈 벌겋게 뜨고 널 데려갈걸?”

“얌전히 있을게.”

제갈승계가 싫은 티를 팍팍 냈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데니까, 소환단 먹은 거나 소화하고 있어라.”

주서천은 제갈승계에게 영약을 줬다.

그것도 소환단이 무려 둘이었다.

환산하면 사십 년 치 내공.

제갈승계는 일단 한 개만 복용하고, 열심히 운기조식하며 수련했다.

그리고 약속한 대로 주서천을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주서천이 그동안 해 둔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딱히 이렇다 할 거부감은 없었다.

별로 살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평생 동안 자신을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인정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나름대로 자신에게 잘 대해 주었던 제갈상조차도 해 온 걸 버리고 다른 공부를 하라 조언했다.

하지만 주서천은 달랐다.

멈추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라고 했다.

거기에 무척 감동했다.

“미로 탓에 더럽게 복잡하고, 함정도 질릴 정도로 많이 남아 있으니 비고 털려면 시간 좀 걸리겠지.”

주서천 일행은 정말 빠른 편이었다.

괜히 제갈승계를 데려간 게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함정 몇 개를 빼곤 전부 해제하고, 걸리지 않은 채 전진했다.

미로도 빠져나왔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니다.

정파건 사파건 간에 다들 두 달에서 세 달 이상은 걸릴 게 분명했다.

“그래도 다 끝나고 돌아갈 건 아니니 걱정 마라.

자, 상단주에게도 할 말은 다 했으니 우리도 슬슬 떠나자.”

귀양이 아무리 관부의 영역이라고해도, 무림 인이 아예 못 오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소란을 피우지 못할 뿐이지, 출입은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그들 중에서 자신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루라도 빨리 떠나야 했다.

“그럼 두 분 모두 무운을 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해 주십시오.”

이의채가 배웅해 줬다.

“상단주. 떠나기 전에 전해 줄 것이 있소.”

주서천은 품에서 두 권의 서책을 꺼냈다.

비고에서 얻은 비급, 단쾌검법과 질풍보였다.

“이건……?”

“왕일을 비롯해 나와 함께했던 열 명이 믿을 만하고, 계속해서 곁에 둘 거면 이걸 전수해 주시오.

사본은 따로 두지 않는 게 좋을 거요. 일류 무공 정도는 되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봅시다.”

주서천은 반야신공, 일월신궁, 유령신공 등의 주요 비급서들만 제외하고 이의채에게 전부 맡겼다.

이게 이의채 근처에서 유출된다면 상상 이상으로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진다.

반야신공이 특히 그랬다.

어쩌면 소림사의 공적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 숨길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귀주를 떠나 호남에 도착했다.

그리고 호남에서 인적이 드문 산을 찾아 잠시 은거했다.

약 한 달 동안, 주서천과 제갈승계는 무공 수련에 힘썼다.

주서천은 주로 제갈승계를 도왔다.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

주서천이 으음, 하고 침음을 흘렸다.

“승계야, 너 정말로 무공은 꽝이구나.”

“내공 늘면 고수라며! 이 거짓말쟁이야!”

제갈승계가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다.

제갈승계는 주서천의 도움을 받아 소환단 두 개를 전부 흡수했다.

그 덕에 사십 년 내공을 얻었다.

“반은 맞는 말이지. 그 증거로 네 신체 능력이 몰라보도록 상승했고, 경지도 미약하게나마 올라갔잖아.”

내공은 곧 힘의 근원이다.

내공량이 많아진 만큼, 근력이나 속력 혹은 반사 신경 등이 올라간다.

무공 자체의 경지도 삼류에서 이류로 올랐다.

다만, 이건 순전히 내공의 힘 덕분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수중의 내공을 전부 사용하게 된다면, 다른 게 워낙 형편없어서 일반인과 다를 것 없다.

원래 제갈세가의 핏줄 자체가 무공에는 그다지 연이 없다.

제갈승계는 그중 특히 그랬다.

무공 자체에 아예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도도 부족하고 노력도 하지 않으니 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주서천은 그 점을 지적했다.

“원래라면 소환단을 복용하고 고수가 됐어야 하는데, 네가 열심히 하지 않았으니 네 탓이란다.”

“저번에 분명 영약만 복용하면 고수가 된다고 했……”

“자신의 부족함을 남의 탓으로 돌리면 그보다 더한 소인배는 없지. 승계는 그런 사람이 아닐 거야. 그렇지?”

“당연하지 ! 난 그딴 소인배가 아니야!”

제갈승계가 넘어갔다.

“그래? 그럼 고수가 못 된 건 누구 잘못이지?”

“내가 무공 공부를 게을리한 탓이지!”

“그렇지!”

주서천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왠지 모르게 비웃음같이 보였다.

“으음, 뭔가 속은 느낌인데……”

“기분 탓이야.”

그렇게 두 사람의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근 한 달 동안, 무공 수련을 열심히 하면서 제갈승계의 무공을 간간이 도와주었다.

‘자하신공이 사성, 자하검결은 이제 막 시작했다. 여전히 느리다. 아니, 빠르다고 말해야 하나.’

자하신공은 개파 이후 유일무이한 신공이다.

익히기가 쉽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화경의 깨달음이 있다 해도 무공 자체가 워낙 난해해서 다른 무공에 비해 익히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물론 이것도 일반적인 시점에서 보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조급하게 마음 가질 필요 없어.’

예전처럼 급박할 정도로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들킬 염려도 없었다.

자하신공은 대성하기 직전이 아닌 이상 연공 유무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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