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章삼안신투(三眼神倫)
주서천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지만, 예한은 명검 중에서도 중간 이상 하는 검이다.
이름에도 알 수 있다시피, 검날이 워낙 예리해서 한기가 절로 흘러나올 정도이다.
주서천 일행은 두 번째 보상을 얻은 방에서 휴식을 취했다.
빈속을 채우고, 부족한 수면을 취했다.
낮인지 밤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지하이다 보니 빛이라곤 횃불과 야명주뿐이었다.
그 대신, 몸이 알려 줬다.
오랫동안 무공 수련을 해온 신체의 시간은 아침과 점심, 밤 정도는 구분했다.
휴식을 끝내고 재정비한 일행은 다시 전진했다.
여전히 지겨울 정도로의 함정과 미로가 반겼다.
시간이 제법 걸렸다.
제갈승계의 도움이 있어도 함정 자체의 숫자가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정말로 싫은 건 미로였다.
길을 헤매지는 않았지만 일부러 돌아가게 만들게 해서 걷는 것만 해도 상당한 시간을 소비했다.
하루, 이틀, 사흘……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대충 그런 시간이 아닐까 생각됐다.
수면은 함정을 해제하고, 적당한 넓이의 안전지대에서 취했다.
불침번은 교대로 했다.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
전생에서도 비고의 탐사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각지의 다양한 세력에서 탐사대를 보냈었다.
그에 반면 주서천 일행은 고작 열두 명.
반대로 인원에 비해선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내려가고, 올라가고, 다시 내려가고…… 몇 층인지도 모르겠어.”
일행들은 의외로 정신력이 굳건했다.
정파 무공 고유의 특징 덕인지, 아니면 다들 목숨을 걸고서라도 지키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서인지는 모른다.
다들 피곤하고 지친 모습을 보였지만, 군말하지 않고 비고를 탐사했다.
이 중에서 제일 어리고, 약한 제갈승계는 피곤해하기는커녕 즐거워했다.
가면 갈수록 다양해지는 기관 장치에 눈을 반짝였다.
주서천은 비고의 탐사 도중에도 무공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시간이 날 때마다 성실하게 수련했다.
매화기공, 매화육합심법은 전부 대성해서 더 이상의 수련은 필요 없었다.
운기로 내공만 쌓았다.
다만 축적되는 내공의 양은 극히 적었다.
이곳에는 매화도 없을뿐더러, 대자연의 정기도 얻기 힘들었다.
그래서 주로 검법과 보법을 수련했다.
십사수매화검법을 일찍이 대성하고, 이십사수매화검법에 집중했다.
다만 전과 달리 속도가 좀 느렸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십사수매화검법과 비슷하지만, 또 달랐다.
난해하고, 복잡하고, 힘이 들었다.
주서천도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알고만 있었지 몸으로 펼쳐 보는 건 처음이었다.
원래 이 검법이 화산의 최고 검수인 이십사수들에게만 허용된 검법이기에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건, 주서천이 한때 화경까지 올랐던 경험 덕에 누군가의 가르침 없이 기억 속에 있는 비급만으로도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으음, 몸이 근질거리는군.”
“차라리 소리나 움직임이라도 느끼지 못하면 좋을 텐데……”
참고로 수련할 때 무사들은 등을 돌려 보지 않도록 신경 썼다.
무림에서 남의 수련을 훔쳐보는 건 금기다.
주서천도 괜히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수련하다가 정체를 알 수 있는요인을 떠올리게 할까 봐 무사들에게 주의를 요망했다.
고수의 수련을 조금이라도 구경하고 싶은 무사들 입장에서만 고통스러웠다.
추정, 이틀 뒤.
탐색하는 동안 또 다른 보물이 숨겨져 있는 방을 발견하긴 했다.
하지만 전처럼 특별한 건 없었다.
금은보석이나 혹은 예한처럼 명품의 무기 정도였다.
적당히 가치 있는 것만 골라서 챙겼다.
비고에 진입한 날짜를 대충 세면 어언 일주일.
다들 씻지 않아서 몸에서 냄새가 진동했다.
“대장!”
이류 무사, 이삼이 횃불로 석벽을 비췄다.
세 개의 눈이 그려진 삼안신투의 고유 문장이 보였다.
“이런 문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동안 문은 질리도록 봐 왔지만, 문장이 그려진 건 없었다.
“냄새가 나네.”
보물의 냄새다.
“어떻게 할래?”
제갈승계가 석벽과 이어진 손잡이를 툭툭 건드렸다.
아무래도 이걸 당기면 열리게 설계된 것 같았다.
“함정은?”
“없는 것 같아…… 라기보다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
석벽도 두껍고, 손잡이뿐이라서 파악이 안 돼.”
제갈승계가 눈살을 찌푸리고 주변을 슥 둘러봤다.
있는 거라곤 천장과 석벽 근처에 설치된 야명주뿐이였다.
은은한 빛만 내뿜을 뿐, 특별한 건 없어 보였다.
“어차피 여기서 되돌아갈 수도 없지. 둘러보지 않은 곳도 있긴 하지만, 다시 탐색하는 것도 귀찮고.”
주서천이 제갈승계 대신 손잡이를 당겼다.
드르륵!
덜컥!
무언가가 움직였다가, 작동되는 소리가 들렸다.
계속해서 드르륵, 끽끽하고 소음이 났다.
일행도 처음에는 이 소리에도 놀라고 불안해했지만,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평온 그 자체였다.
쿠구구궁!
“음. 땅이 또 흔들리는군…”
“내장까지 전부 엉망이 되는 흔들림이야!”
세상이 무너지는 착각이 들 정도의 흔들림이었다.
땅 밑에서 전해져 오는 진동의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도 비고에 오면서 질리도록 경험했다.
꽤 크긴 했지만,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초령은 제갈승계의 뒷덜미를 잡아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 줬고, 그 외의 사람들은 알아서 균형을 잡았다.
파스스슥.
“자갈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석순(石箱)이나 칼날이 아닌가?
이번에는 꽤나 친절하군.”
“내가 여기에서 나간다면 삼안신투가 개새끼라는 걸 말하고 다닐 거야.
그리고 만약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놈이 있다면 찾아가서 얼굴에 주먹을 꽂겠어.”
제갈승계가 있어서 목숨이 위협받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예 다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한쪽 함정이 해제되면 자연히 발동되는 함정이 있어 위험할 뻔한 적도 있었다.
쿠구구궁-!
잡담을 떠는 사이, 눈앞에 있는 석벽이 위로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아래 틈으로 빛이 흘러나왔다.
* * *
석벽이 열리자 나타난 건 공동이었다.
바닥에는 고풍스러운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검이나 도끼, 창 등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병기들이 꽂혀 있었다.
삼안신투 특유의 문장에 있는 세 개의 눈이 각각 천장, 좌측 벽, 우측 벽에 새겨저 있었다.
상당한 크기였다.
또한 이 공간은 어떠한 원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폐가 시원할 정도로 상쾌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지하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 였으며, 또한 케케묵은 냄새 같은 것도 나지 않았다.
바닥에 깔린 양탄자가 끝나는 곳에는 세 개의 계단 위에 비석이 우뚝 솟은 제단 같은 것이 있었다.
제단을 확인하려고 앞으로 나아간 순간, 뒤에 있던 석벽이 닫히면서 제단 위에 있던 무언가가 움직였다.
“저거 설마 활강시(活個尸)는 아니겠지……?”
초령이 불안한 눈초리로 계단 위에 선 사람, 아니 강시를 보았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걸 넘어 푸르뎅뎅하고, 눈에는 빛 하나 보이지 않았다.
사자(死者)가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자가 멀쩡히 일어나 있다.
선 채로 사후경직이 일어나서 그런 게 아니었다.
강시로 추정되는 노년의 남자는 주서천 일행이 다가가자마자 제단에서 내려왔다.
문제는 거기까지의 행동이 뻣뻣하지 않고, 무척 자연스러웠다는 것이었다.
사자가 어떠한 술법에 의하여 움직이게 되는 걸 , 보통 강시라 부른다.
마도이세가 주로 쓰는 병기다.
히이익!
제갈승계가 무사들의 뒤로 숨었다.
“만약 저게 활강시면 우린 다 죽소.”
왕일이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강시가 나타나서 놀란 게 아니다.
애초에 남만의 주술까지 훔쳐 이 곳 비고에 쓴 게 삼안신투다.
새삼스레 놀라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강시의 움직임이었다.
보통 강시란 건 사후경직 탓에 관절이 뻣뻣해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싸워도 느릿느릿한 데다가, 움직임이 단조로워 목을 베지 않는 이상 계속 일어나는 것만 제외하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
하지만 그러한 강시에도 등급이 나뉜다.
그중에는 움직임이 생전과 같고, 무공까지 쓰는 강시가 있다.
그걸 활강시라 하는데, 마도이세에서도 그 숫자는 극히 적은 편이다.
하지만 강력해 고수들도 승리를 단정 지을 수 없었다.
“아니, 차라리 활강시인 게 나을지도 모르오.”
주서천이 검을 세우면서 강시를 경계했다.
“금강강시 같은 게 튀어나왔다면, 정말로 여기에서 뼈를 묻어야 할 거요.”
금강강시는 이름 그대로 몸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걸 칭한다.
강기가 아니라면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
주서천은 깨달음도, 내공도 충분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이 부족했다.
아무리 두 조건을 충족했다 해도 마음만 먹는다고 경지에 오르는 게 아니다.
시간이 필요했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이미 예전에 육대랑에게 살아남고 단번에 화경에 올랐다.
“일단 자극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시……”
파앗!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름 모를 강시가 몸을 날렸다.
무서운 건 그 몸놀림이 기척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서천이 위험하다고 소리치기도 전, 강시가 공간을 접듯이 접근해 바닥에 꽂힌 검을 뽑아 휘둘렀다.
‘빠르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금속음을 내뱉었다.
다행히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무의식적으로 반응했다.
높아진 반사 신경 덕이었다.
‘젠장!’
무위로 치자면 최소 절정 이상이다.
그걸 깨닫는 건 단 일 합만으로도 충분했다.
다행히 무의식적으로 공격을 막을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심각한 차이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주 대장!”
왕일이 목소리를 높여 경고했다.
“핫!”
주서천이 검을 들어 머리를 찍으려던 검격을 막았다.
불꽃이 튀기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강시의 근력이나 공격에 실린 공력 자체는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았다.
다만 움직임이 범상치 않았다.
채-앵!
주서천과 강시가 다시 부딪쳤다.
다만 이번에는 강시의 손에 검이 아닌 도끼가 들려 있었다.
‘움직임을 도저히 쫓을 수가 없다.’
공력이나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몸놀림이 문제였다.
소리가 없는 건 물론이고, 기척도 잡히지 않았다.
발걸음을 쫓아서 보법을 파악하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시각은 물론이고 다른 감각으로도 쫓지 못했다.
“활강시!”
몸놀림을 보면 활강시가 틀림없었다.
저 정도 속도를 내려면 그 외의 강시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전에 그렇게까지 고수는 아니었어!”
확실히 빠르다.
특이한 건 소리도 없고 기척도 없는 몸놀림이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저 정도의 몸놀림을 지닌, 제대로된 고수였다면 자신은 진작 살해당해 죽었다.
강시술사가 없는 강시가 명령도 없는데 ‘적당히’ 라는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휘리릭!
그사이에 도끼가 날아왔다.
양날이 달린 도끼가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했다.
“어딜!”
주서천이 검을 힘껏 휘둘렀다.
기를 싣는 걸 잊지 않았다.
날아오는 도끼가 챙, 하고 검에 튕겨 나갔다.
“그래도 힘이 안 센 건 아니네!”
주서천이 불평을 했다.
강시가 속도에 비하면 공력이 부족하긴 했지만, 약한 건 아니었다.
쳐 낸 검이 방금 전의 공격에 파르르 떨렸다.
그 진동이 손목을 타고 팔 전체에 울렸다.
파앗!
강시가 공중으로 뛰었다.
단검(短劍)이 달려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다.
“대체 얼마나!”
손에는 검, 도끼, 단검, 그것도 벌써 셋이다.
무공도 그만큼 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조심해!”
지켜보던 제갈승계가 목소리를 높여 경고했다.
강시가 양손에 쥔 단검을 교차하면서 휘둘렀다.
“흐,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찾았어!”
주서천이 웃으면서 검으로 단검을 튕겨 냈다.
강시가 뒤로 물러나면서 공중에서 회전해 착지했다.
지금까지의 움직임 또한 기척 하나 없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유령과도 같았다.
주서천은 강시와 대치한 채 씨익 웃었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눈이었다.
“대장이 미쳤나?”
활강시를 보고 웃고 있다.
정상은 아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났네.”
주서천이 강시에게 말을 걸었다.
“삼안신투.”
“……”
강시를 보고 삼안신투라 칭하자, 뒤에 있던 일행이 술렁였다.
놀라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아니, 설마 저 강시가 삼안신투라는 거요?”
왕일이 믿기지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직 내가 절정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화경을 넘는 게 아니라면 기척조차 못 잡는 건 말이 안 되지.
그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뿐이다.”
주서천이 계속해서 말을 걸듯이 혼자 중얼거렸다.
“비고의 주인이 직접 지키고 있다는 걸 보면, 이 방안에 잠들어 있는 보물은 보통이 아닐 거야.”
드디어 끝자락까지 왔다.
삼안신투만 쓰러뜨리면 이 지긋지긋한 비고도 끝이다.
“주 대장, 나도 때릴 기회를 주겠소?”
초령이 주먹을 불끈 쥐면서 물었다.
뒤에 있던 다른 무사들도 화를 참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그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기관과 함정들!
그것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안돼”
주서천이 처음으로 반말하면서 거절했다.
“나도 쟤한테 감정 많아.”
주서천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 몸놀림이 번개와 같았다.
동시에 강시, 삼안신투도 뛰쳐나갔다.
둘이 다시 격돌했다.
주서천이 검을 휘둘렀다.
예한에 실린 검기가 더더욱 예리해지면서 빛났다.
서걱!
검과 단검이 부딪쳤으나, 금속끼리 충돌한 특유의 마찰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무언가가 베였다.
삼안신투가 든 단검이었다.
“끝이다!”
주서천이 일보 내디디면서 검을 움직였다.
단검을 베고 지나간 검은, 원래 지나간 길로 돌아갔다.
휙!
“흐압!”
삼안신투가 허리를 뒤로 젖혔다.
뼈가 부러진 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꺾였다.
“도둑놈이 뭐 이리 강해!”
다시 불평을 내뱉어 봤지만, 변하는 건 없었다.
반대로 삼안신투는 더 귀찮게 나왔다.
허리를 뒤로 그대로 더 젖혀, 손으로 바닥을 짚어서 발을 위로 쳐올렸다.
째앵!
발이 검면을 걷어찼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검, 도끼, 단검도 다루는데 권법이나 각법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 정도면 천하백대고수에 들어도 부족하지 않다.
쐐액!
순간 얼굴에서 강한 압력이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삼안신투가 어느새 접근해 주먹을 날렸다.
주서천은 오행매화보(五行梅花步)를 밟아서 주먹을 황급히 피했다.
여전히 미칠 듯한 속력이었다.
후웅!
오른쪽으로 날린 주먹이 끝나자, 다음번에는 왼손으로 손바닥을 날렸다.
장법이었다.
주서천은 두 걸음 퇴보해서 손바닥을 피했다.
“좀! 너무! 빠르지! 않냐!”
상대는 강시다.
이렇게 중얼거려도 대답은 없다.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과하고 주서천의 입은 쉴 생각 없이 움직였다.
삼안신투의 공격도 그의 입처럼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주먹 팔꿈치, 무릎, 다리, 손바닥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면서 공격을 이어 갔다.
바닥에 꽂혀 있는 무기가 있는 곳으로 가면 그 무기를 집어 공격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창이었다.
“주 대장이 저렇게 말이 많았나?”
사람과 강시의 싸움을 지켜보던 초령이 의아해했다.
“응.”
제갈승계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비고행은 신경 쓸 것도 많아서 그랬던 거지, 뭐만 하면 옆에 들러붙어서 떠들어 댄다.
“도와줘야 하지 않나?”
“저기에 껴들라고?”
“방해야.”
주서천이기에 버티는 거지, 다른 무사들이었다면 진작 죽었다.
도와줘도 방해라며 욕만 먹는다.
“아, 진짜 더럽네! 숨 쉴 시간은 줘라!”
정신없이 날아오는 공격에 짜증이 왈칵 솟았다.
그 정도로 성가신 공격이었다.
조금이라도 지치면 좋을 텐데, 삼안신투는 마치 내공이 무한하기라도 한 듯이 지속적으로 전력을 쏟아 냈다.
‘이래서는 진다.’
자신도 내공은 많았다.
내화외빈이라는 별호가 괜히 있었던 게 아니다.
하지만 많은 것뿐이지, 무한하진 않다.
그도 사람인 이상 한계가 있었다.
일각 정도 이어진 싸움에 변화가 일어났다.
불행하게도 주서천 쪽이었다.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밀리고 있는 건 그였다.
‘이렇게 시간을 끌면 불리한 건 나야. 여기에서 이기려면 한 방 승부로 가야 한다.’
삼안신투의 몸은 보기에 무척 약해보였다.
뼈대 자체가 얇았고, 근육도 별로 없었다.
마른 체구였다.
아까도 잔 상처이긴 하지만 공격이 들어가긴 했다.
‘목을 날려야 해.’
심장을 파괴해도 움직이는 게 강시다.
머리와 몸이 분리되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는다.
‘좋아.’
전술이라 할 건 없었다.
그래도 싸움에서 이길 방법은 떠올랐다.
“써 보는 건 처음이지만……”
중얼거리면서 내공이란 내공은 전부 끌어 올렸다.
이제부터 할 건 일격 승부다.
여기서 지면 죽는다.
죽음을 각오하니 그만큼 정신도 집중됐다.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시 떨어졌던 삼안신투가 다시 달려온다.
빛보다 빠르다고 생각했던 그 움직임도 조금은 늦춰졌다.
다행히도 손에 쥔 병장기는 없었다.
불과 반 각 전 싸움에서 창대를 반으로 갈라 버렸다.
“와라!”
가만히 서서 그 외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온몸이 빈틈투성이였다.
“주 대장!”
왕일이 그걸 보고 식겁했다.
자살할 생각이냐고 외치려고 했지만, 이미 삼안신투가 주서천과 근접했다.
부우웅!
삼안신투가 허리를 비틀면서 주먹에 회전력을 달아 힘껏 내질렀다.
권압이 대기를 둘로 나누었다.
주먹의 끝은 정확히 주서천의 머리를 노렸다.
이대로 두면 머리가 화려하게 터지는 걸 볼 수 있다.
“여기다!”
주서천이 제자리에서 살짝 뛰었다.
그 덕에 머리를 노렸던 주먹은 가슴으로 향하게 됐다.
물론 그렇다고 무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대로 정면으로 받아 내면 다치는 건 매한가지다.
주서천은 검을 들지 않은 왼손을 재빨리 뻗어서 뱀처럼 삼안신투의 오른팔을 감아 겨드랑이에 꼈다.
“쿨럭!”
주먹을 맞지 않는다고 그 공격에 당하지 않는 게 아니다.
비슷한 공력으로 되받아치지 않는 이상, 다른 부위에 접촉하면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설사 겨드랑이를 잡았다 할지라도 피해를 입지 않는 건 아니다.
그 증거로 피를 토했다.
‘살을 주고, 뼈를 깎는다!’
삼안신투의 움직임은 도저히 쫓을 수 없다.
그 증거로 아까부터 공격했지만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이 방법이었다.
접근해서 팔을 고정하면 삼안신투의 움직임도 봉쇄된다.
웅웅웅!
내기가 기맥을 타고 흘러 검에 도착했다.
내기의 색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희미하게 자색을 띠었다.
위이잉!
검에 실린 기가 미친 듯이 회전했다.
모기가 귀 앞에서 시끄럽게 앵앵거리는 소리와 같았다.
‘자하검결, 제일식!’
비고의 탐색이 시작되고도 꾸준히 수련했다.
그 덕에 자하신공이 겨우 사 성에 오를 수 있었다.
자하신공이 사성에 오르면, 화산파 최고 절기이자 검법인 자하검결을 익힐 수 있다.
오롯이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자하검결이 주서천의 손 안에서 펼쳐졌다.
‘자하개벽(紫霞開關)!’
우르릉!
마치 벽력과도 같은 굉음이 터졌다.
“뒈져라!”
최대로 펼칠 수 있는 비장의 초식!
주서천이 고함을 치며 검을 내질렀다.
검에 실려 있던 기운이 삼안신투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삼안신투가 반사적으로 피하려 했지만 팔이 잡혀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결국, 자하개벽이 삼안신투를 집어 삼켰다.
“아……”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은커녕 다들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했다.
방금 전 일어난 일을 보았음에도 머리로 이해할 수 없었다.
애초에 싸움을 눈으로 제대로 쫓지도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서천이 삼안신투의 팔을 붙잡고, 주변의 공기가 진동할 정도의 대해와 같은 공력이 담긴 일격필살을 날려 강시의 머리를 없앴다.
“우웨에엑!”
침묵을 깬 건 주서천이었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안색으로 바닥에 피를 울컥 토해 냈다.
“대, 대장!”
그제야 무사들이 뒤늦게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약이란 약은 전부 꺼내!”
왕일이 급히 외쳤다.
“흐히히.”
주서천이 바닥에 대자로 뻗고 바보같이 웃었다.
시끄러워서 머리가 좀 울리지만 상관없었다.
그동안 답답했던 것이 모두 풀리는 기분이었다.
숨겨 왔던 전부를, 단번에 한계까지 끌어 올려서 새로운 초식을 펼치는 건 오싹할 정도로 짜릿했다.
“으, 아프다.”
꽤 위험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계속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내가…… 삼안신투를 이겼어.’
육대랑 때와는 다르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 싸워서 이겼다.
눈앞에 있는 강시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고금 역사에도 길이길이 남을 전설의 도둑, 삼안신투.
비록 삼안신투가 절대고수는 아니나 그래도 그 전설적인 인물에게 이겼다는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렸다.
“천하를 훔쳤다고? 그럼 난 천하를 훔친 삼안신투의 보물을 훔쳤다! 으하하…… 커헉, 쿨럭!”
주서천이 기분 좋게 웃다가 피를 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