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전후사정 (前後事情)
“아, 누가 내 욕하는 것 같은데……”
주서천이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볐다.
“주 대협! 앞, 앞!”
왕일이 다급하게 외쳤다.
“앗!”
주서천은 허리를 꺾듯이 뒤로 젖혔다.
그 위로 강하게 휘두른 주먹이 지나갔다.
“어딜!”
주서천이 허리를 원래의 위치로 다시 되돌리면서 검을 우측 하단에서 좌측 상단으로 휘둘렀다.
검이 청동인(靑銅人)의 허리춤부터 시작해서 어깻죽지까지 베어 가르면서 상체를 쪼겠다.
“흐이익!”
제갈승계가 몸을 웅크리면서 비명을.질렀다.
“아니, 이 꼬마는 왜 이러는 거야?”
초련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까 목인을 봤을 때는 신나하더니만?”
“그, 그렇지만 저건 기관 장치가 아니잖아요!”
제갈승계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건, 주술(呪術) 이라고요!”
시간을 되돌려 반 시진 전, 은자의 산이 잠들어 있는 방을 뒤로하고 일행은 앞으로 전진했다.
기관 장치나 함정의 수준은 가면 갈수록 진화했다.
제갈승계의 해제조차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통로들을 다 지났을 때, 새로운 것들이 등장했다.
청동으로된 인형들이었다.
처음에는 목인들과 비슷한 장치가 되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기관 장치 같은 게 아니었다.
일행이 어떠한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출입구가 갑자기 전부 닫히면서 청동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목인들처럼 일정한 행동만 반복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유자재로, 마치 살아있는 듯이 움직였다.
제일 눈에 띈 건 청동인들 몸에 새겨진 고어(古語)였다.
글자 자체에서 옅은 빛이 흘러나왔다.
“삼안신투가 중원 외에도 털었다고는 했지만, 설마하니 남만의 주술까지 훔쳤을 줄이야……”
주서천이 중얼거리면서 좌로 일 보 이동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청동인의 창이 지나갔다.
세상에는 무공 외에도 신비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 존재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주술이다.
마도이세에서 사용한다는 강시술 또한 이 주술의 부류에 속했다.
중원에 주술이 없는 건 아니지만, 거의 없다시피 하다.
무공이 대신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주술의 원류 또한 중원이 아닌 남만이고, 주술이 주로 쓰이는 곳 역시 남만이었다.
어쨌거나 이 주술은 때때로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데, 지금 벌어지는 일이 그랬다.
청동인의 숫자는 약 오십여 개.
다들 하나같이 병장기를 쥔 채 일행을 습격해 왔다.
“큭!”
이번에는 무사들도 전투에 참여했다.
제갈승계를 보호하면서 싸웠다.
청동인의 수준을 굳이 매기자면 이류 정도였다.
검법을 펼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신체 능력이 뛰어나고 지닌 힘이 강했다.
“참 나, 기관 장치로 움직이는 목인은 아무래도 상관없고 주술로 움직이는 건 무섭다는 거야?
우리 입장에선 그거나 저거나 똑같다고.”
초련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청동인의 가슴에 꽂힌 검을 잡고, 발로 차서 밀어냈다.
청동인이 바닥을 데굴데굴 굴러 쓰러졌다.
잠시 멈춘 듯 싶었으나, 비틀거리면서 다시 일어났다.
“젠장!”
초련이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이것들은 왜 다시 일어나는 거야?”
“승 공자!”
초련의 의문에 왕일이 대답을 원한다는 듯 제갈승계를 쳐다봤다.
여태껏 함께해 오면서 의문이 있다면 제갈승계가 답해 줘서 그런지 이제는 궁금증이 생기면 자연스레 묻게 됐다.
다른 무사들의 반용도 비슷했다.
“모,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저건 주술이라니까!”
하지만 원하는 반응과는 달랐다.
반대로 걱정만 커졌다.
“끄응!”
쐐!
왕일이 침음을 흘리면서 검을 휘둘렀다.
도끼를 든 청동인이 힘에 밀려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사지를 전부 자르시오!”
주서천이 대신 답해 줬다.
그의 앞에는 사지와 목까지 분리되어 움직임을 멈춘 청동인이 있었다.
청동인은 가슴에 구멍이 뚫려도 멀쩡하게 움직였지만, 사지가 전부 베이면 움직이지 못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겠지만.
“오!”
왕일이 반색하면서 주서천의 말대로 해봤다.
정말로 그렇게 한 청동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오!”
“주 대장, 미안하지만 그런 여유는 많지가 않소!”
수적으로 청동인이 더 많았다.
게다가 청동인 개개인이 다 이류 정도의 수준을 지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못 하고, 공포에 떠는 제갈승계를 지키면서 싸우느라 제약이 많았다.
“그럼 그냥 승이나 지켜 주시오!”
주서천이 질풍이 됐다.
매화연홍검으로 최대한 빠르게 청동인들을 처리했다.
우선 공격을 할 수 없게 양팔을 베어 버린 뒤, 그다음은 다리와 목을 베었다.
하단전에 쌓인 내공의 양이 든든했지만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 중간 휴식 때 운기조식을 취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파바밧!
하나를 베면 약간의 주저도 없이 쉬지 않고 그다음으로 넘어갔다.
생각도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대로 베고, 또 베었다.
무사들의 눈에는 너무 빨라 잔상이 보일 정도였다.
“나름대로 도움을 주려고 왔는데……”
무사들이 머쓱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도대체 주 대장의 무공은 어느 정도인가!”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었다.
“보아하니 전력이 아닌 것 같은데?”
절정의 고수가 저렇게 강했나?
의아해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주서천의 운동 능력 자체는 절정이었으나, 검술 자체는 화경이다. 수준이 높아 보이는 건 당연했다.
“주 대장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은거고수의 제자겠지.”
“너희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명문지파 중에서 저 나이대의 고수가 있다고 들은 적 있어?”
“자랑하기 좋아하는 그들이니, 있었다면 알려지지 않을 리는 없지 않나.”
주서천의 손에 쓰러져 가는 청동인은 점차 늘어났다.
오십이었던 숫자가 어느덧 이십으로 줄었다.
무사들도 그만큼 편안해졌다.
이제 슬슬 약간의 여유까지 보일 수 있었다.
“후, 괜찮다면 이 일이 끝나고 주대장에게 몇 수 배우고 싶은데……”
“저번에 봤는데, 상단주와는 나름 친하지 않았나?”
“우리가 계속해서 상단주 밑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어쩌면 그런 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말할 시간 있으면 주 대장의 움직임을 머릿속에 넣어 둬. 일단 흔히 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다들 점점 시간이 갈수록 주서천에 대한 존경심과 충성도가 늘고 있었다.
실제로 주서천 덕에 그들은 지금 목숨을 건지고 있었다.
그가 아니었으면 누군가는 진작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각이 지났다.
“끝.”
주서천이 검을 집어넣고 기지개를 켰다.
발밑에는 수많은 청동인의 잔해로 가득했다.
“……”
다들 하나같이 할 말은 잃은 표정이었다.
주서천의 보여 준 무위에 경악한 걸 넘어, 허탈했다.
그렇게 수준 높은 움직임을 보여 주었는데도 땀 한 방울 홀리지 않았다.
내공이 높다는 증거다.
“주 대장, 대체 내공이 얼마나 되는 거요?”
초련이 질린 눈으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그럭저럭 많소.”
나이가 어리고 내공이 많으며, 상승의 검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은 무림에서도 많지 않다.
도수창병의 사건 탓에 자신에 대해서도 알려져서 혹시라도 의심을 받을지 몰라 그냥 비밀로 했다.
“자,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보실…… 응?”
자리를 뜨려는 순간, 눈에 밟히는 것이 있었다.
청동인의 잔해들 속에서 반짝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다가가서 확인해 보니 팔찌였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두고 가는 것보다는 낫겠지.”
팔찌의 소재는 청동이었다.
사슬 같은 것도 주렁주렁 달려 있고, 인공으로 된 광석 같은 것도 박혀 있다.
또한 청동인을 움직였던 문자, 주술의 언어도 언뜻 보였다.
설사 용도를 몰라도 팔면 꽤 될 것 같았다.
“그런 걸 가져갔다는 저주받을 거라고!”
제갈승계가 질색했다.
“이미 비고를 터는 것 자체가 저주받을 짓이지.”
주서천이 무슨 실없는 소리를 하냐며 웃었다.
팔찌는 품 안에 챙겨 두었다.
“가자.”
삼안신투의 비고는 악취미다.
탐사하면 탐사할수록 그 생각밖에 안 들었다.
만약 제갈승계가 아니었더라면 목숨 한둘로는 부족하고 온갖 고생은 다 했을 것이다.
출구가 없는 미로를 만나기도 했고, 비밀 문을 찾지 못하면 중독되어 서서히 죽어 가는 방과도 만났다.
도중에 중독되는 일도 있었지만, 이의채가 챙겨 준 사천당가의 해독약을 복용해서 살 수 있었다.
비고를 털려고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다.
벽곡단만 무려 일 년 치를 준비했다.
일 년이나 탐사할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서 이 정도나 가져왔다.
해독약이나 치료약은 물론이고, 여분의 검이나 칼갈이 도구 같은 것도 가져왔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이런 건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는지……”
주서천이 걸으면서 중얼거렸다.
“돈만 있다면 뭔들 못 하겠소.”
왕일이 그 중얼거림에 답했다.
“이 정도 기관 장치나 함정을 제작하려면 돈도 돈이지만, 비밀 유지하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후대에 어떠한 단서도 알려지지 않은 거지?”
제갈승계가 의아해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지.”
주서천이 답했다.
“암장은 중경에서도 사람은 물론이고 동물조차도 얼씬하지 않는 곳이다.
게다가 지하에 비고를 건축했으니, 들킬 염려는 그다지 없었을 거야.”
“하지만 자재의 운반이라거나 여러가지 있었을 텐데?”
“예로부터 전가통신(錢可通神)이라하여, 돈은 귀신도 부린다고 하지.
삼안신투의 재산이라면 비밀 유지도 그럭저럭 해 냈을 거야.
그리고 모든 것이 완공이 되었을 때, 아는 자들이 전부 죽는다면 그 누구도 모른다.”
“으으…… 독한 놈이로군……”
제갈승계가 소름이 끼친다는 듯, 어깨를 감싸 안고 몸을 파르르 떨었다.
“어쩌면 중원 전체를 사들일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일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는 당연하단다, 꼬맹아.”
초련이 피식 웃으면서 제갈승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거칠어 머리가 새집처럼 됐다.
제갈승계가 짜증 난다는 듯이 그 손등을 쳐냈다.
초련은 껄껄, 하고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비고에 진입한 이후, 두 사람은 특히 접촉이 많았다.
물론 초련이 일방적으로 놀리는 경우였다.
나중에 물어보니 아들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그런데 아줌마도 그렇고 다른 아저씨들도 그렇고, 무슨 사연이 있기에 이런 위험한 곳까지 온 건가요?”
제갈승계가 물었다.
“음.”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한 물음에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승아, 그건 실례가 될 수도 있다.”
제갈승계는 똑똑하다.
하지만 아직 순수한 부분이 남아 있는 아이에 불과하다.
그렇다 보니 이런 쪽으로는 눈치가 없었다.
“괜찮소, 주 대장. 아이지 않소.”
왕일이 쓴웃음을 지은 채로 말했다.
“철없던 시절, 농업을 이어받기 싫어 집을 뛰쳐나갔었지.
이후 낭인이 되어 이곳저곳을 떠돌아가 운이 좋아 일류에까지 올랐소.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니, 전염병이 돌아 쑥대밭이 되어 있더군.”
“……미, 미안해요.”
제갈승계가 천성이 악한 건 아니다.
자신의 눈치 없음에 미안함을 느끼면서 솔직히 사과했다.
“괜찮소, 승 공자.”
왕일이 부드럽게 웃었다.
“말을 편히 하셔도 괜찮아요……”
제갈승계가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음,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마.
여하튼 고향에 돌아오니 형제자매는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잃게 됐지.
다행히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고아가 되는 일은 면했단다.
다만 어머니는 너무 노쇠하시고, 병까지 들어서…… 뭐, 흔한 이야기지.”
일류 낭인이 되면서 벌어 온 돈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병장기나 술값에 탕진했다.
애초에 낭인은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삶이다.
무엇보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특별히 사연이 있지 않은 이상 저금을 하지 않고 모두 사용했다.
왕일은 약과 진료비가 필요했으나, 둘 다 너무 터무니없는 값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해야 하나 절망하고 있을 때, 이의채가 기다렸다는 듯이 찾아와서 제안을 건냈다.
“아들과 딸이 있는데, 둘 다 회귀병에 걸렸어.
죽은 남편도 병약했었는데, 아마 그 피 탓이었나봐.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문 바깥으로 몇 걸음도 나서지 못했지.
그래서 돈이 많이 좀 필요해.”
초령이 검에 달린 장식을 매만지면서 사근사근한 미소를 지었다.
무사들은 그녀를 보고 어머니를 떠올렸다.
“뭐야, 다들 비슷하구먼. 난 누이가 그래.”
다른 무사들도 한 명씩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내 누이가 다리병신이야.
평생을 돌보면서 살아야 해.
어차피 난 여자 만나기 글렀으니까, 누이와 함께해 보려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성적 취향이 영 좋지 못한 놈에게 팔려 갔었지.
걱정돼서 가 보니까 의식불명이더라.
그래서 놈의 거시기를 자르고, 사랑하는 여자를 데리고 야반도주했지.
그걸 걷어준 게 상단주야.”
“잘했어.”
“잘했네.”
“잘했다.”
거시기를 잘랐다는 말에 다들 손뼉을 쳤다.
“자, 다들 구차한 이야기는 그만하고 일어나자고.”
왕일이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말과 다르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껄껄 이러다가 애 울겠어.”
초련이 울적한 제갈승계를 가리키면서 웃었다.
‘착한 아이야.’
제갈승계는 천재이고, 기관 지식만 관련되면 우쭐거린다.
재수 없어 보이긴 해도 나쁘지는 않다.
이런 사람이 나중에 가족들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면서 쓸쓸히 죽어 가게 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번 삶은 다를 거야.’
주서천이 제갈승계를 보면서 생각했다.
일행은 다시 탐색에 나섰다.
청동인들을 처리한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에는 목인들처럼 보상이 없었다.
그 대신에 함정이 있었다.
제갈승계에게 맡겨 해제한 다음 침착하게 나아갔다.
“오!”
두 시진 정도 지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무수히 많은 함정을 해제한 고생이 있었을까, 보상이 나왔다.
이번에는 은자와 금자들이 섞인 방안이었다.
금빛과 은빛이 어우려져 눈부실 정도로 빛났다.
일행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감탄하면서 주변을 구경하기만 했다.
그들도 이제 제갈승계의 눈치부터 봤다.
“음, 저기에 있는 건 건들지 마시고 이거랑, 저거랑, 저거…… 괜찮아요.”
제갈승계가 몇몇 곳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왕일이 나서서 돌멩이로 표시했다.
“저건 안 챙깁니까?”
이삼이라는 무사가 천장에 달린 야명주(夜明珠)를 힐끗 쳐다봤다.
야명주는 이름 그대로 자체적으로 빛을 내는 구슬로, 상당히 고가이다.
촛불의 밝기와 그렇게까지 차이가 없지만, 돈 많은 집안이나 관직에 앉은 사람들에게 수요가 높았다.
용도는 오직 사치이며, 자신의 권력과 재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하는 것과 같았다.
“차라리 금괴를 채우는 게 더 낫소.
저게 가볍긴 해도, 은근히 커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니 말이오.”
주서천이 답했다.
“알겠습니다.”
금자와 온자 사이로 금괴도 많진 않지만 몇 개 있었다.
일행은 금괴를 위주로 챙겼다.
“오! 대장!”
초련이 무언가가 발견했다.
주서천이 다가가서 물었다.
“뭐라도 발견했소?”
전에는 은자의 산에서 영약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런지 주서천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꽤 많은 게 들어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열지 않아서 모르오.”
초련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상체만한 상자를 금자의 산에서 꺼내 보여줬다.
상자 자체도 금이었다.
“승아.”
주서천이 제갈승계에게 열어도 괜찮은지 의사를 물었다.
제갈승계가 쪼르르 다가와 상자를 살폈다.
상자를 한참을 살펴보던 제갈승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설치된 함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걸 어떻게 열지?”
상자는 잠겨 있었다.
혹시 몰라 열쇠가 없나 주변을 뒤져 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주서천은 검에 기를 실어서 베어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쯔쯔, 이래서 무식한 것들은 안된다니까.”
제갈승계가 혀를 차면서 점 보따리를 뒤적거리더니, 철사를 꺼냈다.
“이런 건……”
제갈승계가 상자의 철사를 열쇠 구멍에 집어넣고 이리저리 뒤적거렸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열렸다.
“허, 이거 완전 도둑 아니오?”
“삼안신투도 혀를 내두를 실력이로군.”
무사들이 제갈승계를 보고 감탄했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주서천도 궁금해서 물었다.
“배운 게 아니라, 이것도 하나의 기관 장치니까.
그냥 철사 찔러 넣고 이리저리 돌려 보면 풀려.”
“말은 쉽지……”
초련이 어이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 말에 다른 무사들도 동의하듯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뭐가 들어 있는지 확인해볼까.”
주서천이 기대하면서 상자를 열었다.
“호.”
누렇게 빛바랜 서적 넷과 아까 본 목함과 비슷하게 생긴 것도 나왔다.
고풍스러운 검도 있었다.
‘이건 대박이다!’
입가에 미소가 절로 맺혔다.
특히서적에 눈이 절로 갔다.
삼안신투의 비고에서 우선순위로 회수해야 할 건 둘이다.
무공 비급과 영약이다.
그게 제일 중요했다.
‘어디 보자, 일단 영약부터 볼까……’
달칵
목함을 열자마자 영약 특유의 향이 났다.
그 향이 전에 발견한 것보다 상당했다.
“흡!”
주서천이 순간 숨 쉬는 걸 잊었다.
목함 안에는 환단이 여러 알 있었다.
하지만 숫자를 보고 놀란 게 아니었다.
목함의 안쪽에 새겨진 글자 때문이었다.
‘소환단(小還丹)!’
영약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과 인공적인 것이 있다.
소환단은 그중에서도 후자에 속했다.
그리고 이 소환단은 다른 곳도 아닌, 북두라 칭해지는 소림사에서 제조한 영약이었다.
지고의 영약인 대환단만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환단이 별로라는 게 아니다. 그 반대였다.
복용할 시에 약 이십 년 정도의 내공을 얻는다.
이것만으로도 효능은 두말할 것이 없었다.
특히 소림사가 제조하는 영약이 그렇게까지 숫자가 많지 않다는 걸 떠올리면 가치가 상당했다.
소환단은 주로 승려들 중에서도 공적이나 법력, 그리고 무공이 으뜸인 자에게만 내려지는 영약이다.
그 외에도 빚을 졌다거나, 혹은 어떠한 부탁을 할 경우 이 소환단을 돈 대신 이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소환단이 하나도 아니고 무려 열 개가 있다.
이것만 나와도 무림은 피바람이 분다.
무림에 큰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 나오지 않는다던 백팔나한이 직접 움직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간이 얼마나 큰 거야?’
다른 누가 보지 못하도록 얼른 목함을 닫았다.
온몸에 전율이 끼쳤다.
소환단을 훔친다는 건, 곧 소림사에게 선전포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소림사에게 공적으로 지정되는 건 곧 ‘무림공적’을 뜻한다.
소환단이라는 사실에 무섭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쁨도 그만큼 튀어나왔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고맙다, 삼안신투. 정말로 고마워.”
그동안 준비하고 고민한 게 보답받는 기분이었다.
소환단 열 개를 가지고 돌아갈 생각에 몸이 잔뜩 고양됐다.
“으하하하!”
주서천이 결국 기쁨을 참지 못하고 마음껏 웃었다.
시원할 정도로 호쾌한 목소리였다
“그래, 이거지! 이거야!”
처음에 얻었던 목함의 경우, 영약인 건 알았지만 어떤 건지 모르니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영약에 눈이 밝은 자에게 찾아가서 감정을 맡길 생각이었다.
이번 것도 그렇게 해야 하나 싶었지만 뜻밖의 물건이 튀어나왔다.
온몸이 열기로 가득 찼다.
“주 대장 목소리가 좀 미친 것 같은데?”
초령이 괜찮나는 듯이 물었다.
“저 안에 든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주변을 보고도 너 같으면 안 미칠 것 같아?”
어떤 무사가 반문했다.
“으음……”
초령이 잠시 고민했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저렇게까지밖에 안 웃네? 주 대장이 생각보다는 욕심이 작나 봐. 저런 거 많이 봤나?”
초령이 더했다.
“어디 보자……”
주서천은 목함을 보따리 안에 넣고, 비급으로 추정되는 서적을 확인했다.
표지가 조금 누렇기는 해도 다행히 어찌어찌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단쾌검법(短快劍法)
중도만공(中途萬功)
질풍보(疾風步)
일월신궁(日月神弓)
“흐”
주서천이 기분 나쁜 웃음을 흘렸다.
그 눈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드디어, 드디어 나왔다!’
비고에서 회수해야 할 몇 가지 보물이 있는데 그중 둘이 나왔다.
중도만공과 일월신궁이었다.
‘궁신(弓神)의 무공!’
고금을 통틀어도 별호에 신(神)이 붙는 경우는 극소수이다.
그리고 궁신은 그중 한 명이다.
이제는 그 이름이 잊혀졌을 정도로 옛 인물이나, 그 별호만큼은 아직까지도 전해지고 있었다.
강호 무림에는 정말 다양한 종류의 무공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궁술의 취급은 특히 좋지 않았다.
독공이나 암기보다 안 좋은 취급을 받는 편이었다.
무림인에게 있어서 활은 그다지 위험하지 않았다.
궁사(弓士)의 시선을 확인하고, 활시위에서 손이 떨어지는 순간만 보면 보법으로 얼마든지 피한다.
게다가 활은 처음에만 잘 피한다면 그다음부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활시위에 화살을 걸기도 전에, 전력으로 날아가서 저지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상식을 바꾼 게 바로 궁신이었다.
궁신의 궁술은 정말 차원을 달리했다.
전설에 의하면 과장되긴 했으나, 한 번 쏜 화살이 장강을 갈라 절벽을 무너뜨릴 정도로 강하다 했다.
또한, 한 번 피하면 끝인 것이 아니라 쏘아진 화살은 상대를 못 맞출 경우 다시 돌아와 백발백중(百發百中)이라 전해진다.
그 신궁의 무공이 바로 일월신궁이며, 이 무공은 훗날 어떠한 단체로부터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이 무공은 수많은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 위력은 단순히 허황된 전설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도만공!’
이름만 보면 정말로 잡스러운 무공으로 보인다.
삼류에서 이류가 아닐까 싶은 이름이었다.
하지만 만약 일월신궁과 중도만공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후자를 택할 것이다.
“어디 보자, 다른 건……”
비급들을 전부 짐 보따리에 넣은 뒤, 검을 집었다.
검집에서 검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호.”
손을 살짝 가져다 대니, 한기가 흘러나왔다.
“예한(說寒)인가.”
“예한? 방금 예한이라고 하셨소?”
주서천의 중얼거림에 왕일이 놀라면서 되물었다
“그대가 생각하는 명검 예한이라면 맞소.”
주서천이 원래의 검을 상자 안에 넣고, 예한을 허리춤에 착용했다.
든든했다.
삼안신투는 천하를 훔친 건가?
왕일이 허, 하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