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영약맹약(靈藥盟約)
제갈승계는 사도천의 습격 소식을 듣자마자 모습을 감췄다.
지레 겁을 먹고 숨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제갈승계는 숨기는커녕, 옹안 지부의 화살이나 죽통 등의 물건들을 모아서 암기를 만들었다.
“아, 암기?”
막원갑이 당황했다.
‘사천당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암기다.
그런 암기를 쓸 만한 인물은 정파에서도 사천당가뿐이었다.
“하하, 성공이다! 성공이라고!”
제갈승계가 펄쩍펄쩍 뛰면서 환호했다.
잘했다, 제갈승계!
주서천은 일부러 제갈승계를 호명했다.
주변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제갈세가?”
막원갑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제갈세가가 왜 암기를 써?”
정파인들은 사천당가를 제외하고 암기를 쓰는 걸 치욕으로 여긴다.
쓰지도 않지만, 설사 연공을 할지라도 사문 측에서 엄중히 벌하며 금하는 편에 속했다.
“헉! 나, 날 봤어!”
제갈승계가 날뛰던 걸 멈추고 당황했다.
이렇게 많은 시선을 모았던 적은 처음이다.
주목을 받으니 손이 떨리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마에서 식은땀도 나고, 머릿속도 새하얗게 질렸다.
“뭐, 뭘 봐! 나도 안다고! 나도 쓸모없는 거 알아!”
그놈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다시돌아갔다.
제갈승계는 죽통노를 끌어안고 울먹거렸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소년에게는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으니, 사도천의 무사들이 사납게 쳐다보면 버틸 수가 없다.
“제갈세가가 암기를 쓰다니, 비겁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막원갑이 눈을 벌갛게 뜨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허, 참.”
옹안 지부의 이류 무사가 어이없다는 듯이 막원갑을 쳐다봤다.
다른 삼류 무사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누가 누구보고 비겁하다고 하는가.
이기기 위해선 명예 따위 전혀 신경쓰지 않는 게 사도천이 아닌가.
그러나 막원갑은 그러한 시선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승계를 삿대질하면서 소리쳤다.
“거기서 그렇게 싸우지 말고, 내려와서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저건 위험하다.’
막원갑은 죽통노를 경계했다.
조금 전에 날린 그 화살들은 목숨이 위협적이진 않았지만, 귀찮았다.
저 화살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꼬마, 주서천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자고로 정파인들이란 비겁하다고 지적해 주면 알아서 목을 내놓는 법.
안 넘어올 리가 없다.’
막원갑이 확신했다.
“애초에 다수 대 소수를 공격할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정정당당을 거론하다니, 양심 좀 지켜라.”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피식 웃었다.
“승계야, 이걸로 확실했다. 넌 천재가 틀림없다. 그러니 날 형님을 모셔라. 함께하자.”
“저거 또 헛소리네.”
제갈승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쳐라!”
막원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검을 쥔 삼류 무사가 몸을 날려왔다.
나름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으나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죽어랏!”
삼류 무사가 호기롭게 외치며 검으로 사선을 그었다.
주서천은 좌로 일 보 걸어 가볍게 피해 냈다.
‘매화영롱검!’
주서천의 검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라 빨라서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헉!”
삼류 무사가 놀라 눈으로 좇았으나 이미 늦었다.
명치 부근에서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이 꼬맹이가!”
이번에는 좌측과 우측에서 각각 한 명씩 덤벼들었다.
주서천은 검을 고쳐 잡으며 흡족해했다.
‘꾸준히 수련은 했지만 실전에서 쓰지 못하면 어쩌지 했는데, 그건 아니니 다행이야.’
매화십사검법도 그렇고, 매화영롱검도 딱히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성공했다.
주서천은 검을 사선으로 세운 뒤, 수비식을 취해 이번에는 매화오행검을 펼쳤다.
오행을 담은 매화오행검은 공격과 수비를 전환하면서 자연스레 순환하는 무공.
수비하여 막은 뒤, 곧바로 공세를 펼칠 수 있는 검법이다.
좌측에서 쐐액, 하고 예리한 파공성이 터지며 검이 날아왔다.
주서천은 가볍게 검을 흘려 넘겼다.
“억!”
삼류 무사가 체중을 못 이기고 우측으로 넘어진다.
우측에서 공격해오려던 삼류 무사가 당황했다.
“하나.”
수평선을 그려 내며 검을 휘둘렀다.
검면이 우측에 있던 삼류 무사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 갈랐다.
“둘.”
주서천이 손목을 틀어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삼류 무사의 등에 검을 꽂았다.
컥, 하고 신음을 흘리면서 생명이 끊어진 것이 검에서부터 느껴졌다.
“히, 히이익!”
사도천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그들의 얼굴에는 흥분 대신 공포가 가득 찼다.
주서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몸을 날려 그 안에서 날뛰었다.
“으아악!”
크악!
매화를 담은 검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부드럽고 유려한 춤이 아닌 성나고 사나운 검이었다.
때로는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과 같았으나, 금세 사나운 격풍이 되어 사도천의 무사들을 위협했다.
목이 몸과 분리되고, 가슴에 구멍이 나면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정말로 강호 초출인가?’
옹안 지부의 이류 무사가 주서천의 강함에 전율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파의 내공심법은 심신을 망치로 두들겨서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첫 살인의 충격도 적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예 충격이 없는 건 아니다.
심마로 인한 주화입마까지는 아니어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혹은 살인에 주저하게 된다.
그것도 약관 이상일 경우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주서천은 고작 열두 살이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첫 싸움에서 저렇게 주저함이 없다니.
약간의 이질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와라!”
주서천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외쳤다.
“내가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율이 흘렀다.
전생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외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 외치면 그저 따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뒤에, 무사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삼류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믿고, 등을 쳐다보고 있다.
이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와아아아아! 주 소협을 따르라!”
무림맹 무사들이 환호성을 내뱉었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두 배가 넘는 병력 차이가 있었으나, 여기에는 어린 고수가 있다.
그들은 그걸 믿었다.
옆에 있던 동료 무사의 가슴에 검이 박혀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들의 공세에 반격했다.
“무리하지 말고, 말했던 대로 하십시오!”
주서천이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외쳤다.
사도천 무사들이 대문을 박살 내기 전, 주서천은 무림맹 무사들에게 대부분 공격은 흘리면서 자신 쪽으로 인도하라 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부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 말을 따르고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방어에 힘쓰는 동시, 적들을 안쪽으로 밀어 주서천에게 보냈다.
주서천은 적들이 조금이라도 자신의 범위 안에 들어오면 재빨리 날아가 일격을 가했다.
“크아아악!”
처음에 들어왔던 삼십가량의 숫자도 대폭 줄었다.
후방에서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던 사도천의 무사들도 진입해, 추가적으로 삼십여 명이 당했다.
총 백 명에 이르렀던 사도천의 무사들도 어느새 반절이 줄어 오십이 되었다.
대문 앞에는 이제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시체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삼류 수준에 불과한 사도천의 무사들은 진로가 방해되어 싸우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주서천은 전혀 상관없는 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검격을 쏟아냈다.
“받아라!”
더더욱 짜증 나는 건, 후방 측의 제갈승계였다.
급조한 탓에 죽통노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무림맹 무사들에게 파고들어 무너뜨리려고 할 때마다 날아와서 방해했다.
그럴 때마다 주서천이 귀신같이 눈치채고 날아와서 검을 재빠르게 휘둘러 목숨을 앗아 갔다.
이곳에서 반나절 떨어진 개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비하면 수준이 낮았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대문을 이용해서 들어오는 인원들이 한정되어 있고, 탄탄한 수비를 연계해 목숨을 빼앗아 갔다.
“제, 제기랄!”
상황의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막원갑이 눈을 굴리면서 도망칠 기회를 엿보았다.
여기서 도주하면 후환이 두렵지만, 지금 이대로 나아간다 해도 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그건 다른 사도천의 무사들도 마찬가지인지, 처음에는 금자에 눈이 돌아간 그들도 두뇌가 점점 공포로 지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막원갑의 패닉에 빠진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다.
“너야말로 뭘 하고 있는 건데?”
주서천이 막원갑을 향해서 똑바로 걸었다.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음에도 다들 몸을 움찔 떨었다.
“허세다, 허세가 분명하다. 지금까지 싸워 왔으니 지쳤을 게 분명하다.”
막원갑은 스스로 최면을 걸듯이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는 처절함이 묻어났다.
“그래, 일반적일 경우에는 그게 맞지.”
주서천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데 난 아니야.
희망을 빼앗아서 미안한데, 내 별호가 내화외빈이야. 내화외빈.”
주서천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얼굴로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막원갑에게는 악마로 보였다.
“오, 오지 마!”
막원갑이 잔뜩 겁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의 파장은 다른 사도천의 무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 않아도 주서천의 손에 오십에 가까운 무사들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죽자 다들 겁먹은 상태였다.
지휘관이자, 그래도 이 중에서 제일 강한 막원갑까지 겁먹은 모습을 보이자 다들 전의를 상실했다.
“도, 도망쳐!”
“으아악!”
한 명이 시작한 도망은 전염병처럼 주위에 퍼졌다.
다들 겁먹은 목소리를 내면서 도망쳤다.
“제기랄!”
막원갑도 결국 포기했다.
더 이상 통제 불능이 된 인원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막원갑도 지나치는 사도천 무사들을 억센 힘으로 밀쳐 내면서 도망치려 했다.
“다 비켜! 나부터다!”
막원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넌 안 돼.”
주서천이 공간을 접었다.
정말로 접은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재빨랐다.
바닥에 널린 시체들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몸을 날려 막원갑과 거리를 좁혔다.
막원갑은 몇 보 나아가지도 못하고 주서천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아이고, 대협. 죄송합니다! 제가 대협을 몰라뵈었습니다!”
막원갑은 목덜미를 잡히자마자 비굴한 목소리를 냈다.
반항하기는커녕 칼도 바닥에 버려두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꼬마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물이다.
어떻게든 빌어서라도 살아야 한다.’
주서천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확신이 들자 판단은 번개같이 빨랐다.
막원갑은 자존심을 접어 두고 살기 위해서 고개를 조아렸다.
“네가 있어야 자세한 사정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 여기에 좀 남아 줘야겠어.”
“전 잘 모릅니다, 대협. 그냥 내버려 두시는 게 편합니다. 저 같은 건……”
“그래? 그럼 죽어야겠는데.”
“얼마든지 답해 드리겠습니다! 전 지금부터 대협을 따르겠습니다!”
무림맹은 하마터면 개안에서 패배하여 옹안 지부를 빼앗길 뻔했으나, 지원 병력으로 승전(勝戰)했다.
십사검협 구풍의 도움이 특히 컸다.
구풍의 명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호에 퍼졌다.
지원 병력은 성공적으로 승리하고 옹안으로 복귀했고, 도착한 그들은 하나같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승전 소식이 알려지고 대문에서부터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을 거라 상상했다.
그런데 마중은커녕, 대문은 박살나고 그 앞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안 돼!”
도착하자마자 구풍은 주서천부터 찾았다.
화산에서 내려온 이후로 처음으로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서천이 안쪽에서 나오면서 인사하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구풍은 주서천에게 사정을 물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옹안 지부의 유일했던 이류 무사가 대신 설명했다.
구풍을 비롯하여 제갈삭 등, 주요 인물들은 이류 무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놀라움보다는 믿지 못하는 눈치를 보였다.
특히 제갈삭이 그랬다.
“아무리 적들이 한낱 사도천의 삼류 무사라도, 백 명 정도나 되는 무사들을 너희들만으로 토벌했다고?”
믿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다.
옹안에 잔류한 무사들은 한 명을 빼곤 전부 삼류다.
아무리 대문이라는 지형을 이용했다고 해도 오십 이상 차이가 나는 병력 차를 이길 수는 없었다.
“주 소협 아니, 주 대협 덕분이었습니다.”
이류 무사가 다시 한번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제갈삭이 구풍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만 이내 버럭 하고 화냈다.
“네 이놈,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그가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데, 누굴 능멸하려고 하느냐!”
제갈삭의 호통에 이류 무사가 몸을 움찔 떨었다.
“여, 열두 살?”
유일하게 모르고 있던 인물, 막원갑이 포승줄에 묶인 채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 정말입니다!”
“맞습니다, 대협. 제 두 눈으로도 똑똑히 봤습니다.”
다른 무사들도 나서서 용기를 냈다.
‘주 대협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어느새 호칭은 대협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싸움이었다.
다들 하나같이 목숨을 버릴 각오를 했다.
희망 하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
그 상황이 주서천의 등장으로 인해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망자는 전무했으며, 경상자는 있었지만 중상자는 없었다.
주서천에게 도움을 받은 무사들은 하나같이 마음 깊숙이 우러나는 감사함으로 주서천을 변호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옹안의 무사들 모두가 나서서 증언하자 제갈삭도 목소리를 줄이고 중얼거렸다.
“흠, 하기야. 사도천의 삼류들 밖에 없는데다가 전멸시킨 게 아니라 반절은 겁먹고 도망쳤다고 했지.
그런거라면 수긍이 안 가는 건 아니군그래. 별로 대단할 것도 아니야.”
제갈삭은 금세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리고 전 내공이 또래 아이들과 달리 많지 않습니까.
그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주서천이 괜한 의심과 귀찮음을 피하려고 말을 덧붙였다.
“대협……”
은인의 평가가 절하되자 옹안의 무사들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다.
‘아직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아니다.’
얼마 전 싸움에선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그건 뒷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서 그렇다.
어차피 삼류들의 싸움.
수준이 낮기 때문에 완승했다 하여도 그렇게까지 큰 평가는 받지 않는다.
주서천은 그걸 예상하고 날뛰었다.
“그래도 대단하구나. 잘했다.”
구풍은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칭찬했다.
‘예전부터 봐 왔지만, 무공은 그렇다 쳐도 역시 통찰력이나 냉정함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저 나이에 첫 실전이라면 온몸이 굳기 마련일 텐데, 당황하기는커녕 침착하게 무사들을 이끌고 싸웠다.’
구풍이 속으로 생각했다.
주서천이 잘 숨기기도 했고, 이러한 상황 덕에 진짜 무위에 대한 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구풍은 주서천의 무공이 아니라, 냉정함이나 지휘력에 중점을 두었다.
‘장차 큰 인물이 되겠어.’
구풍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흘 뒤.
옹안과 개안 전투 이후, 일행은 개양으로 복귀했다.
전투에 대한 건 순식간에 소문이 났다.
다만 옹안의 일보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개안에 대한 것만 알려졌다.
언급이 없던 건 아니 었으나, 금세 묻혔다.
개양.
“하하하하!”
신도균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오늘, 개양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완승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하마터면 개양에 편성한 병력이 큰 피해를 입고 퇴군하여 토지를 빼앗길 뻔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십사검협의 지원병력 덕에 전투는 별 피해 없이 승전했고, 광견삼두도 전부 죽었다.
입이 귀에 절로 걸렸다.
“다시 한번, 정말로 수고 많았소.
내 얼마 전에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체면도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에 나와 춤을 췄소.
자, 술과 음식은 가득하니 다들 즐기시오!”
장서은과 제갈수란도 참석한 자리이기에, 기녀를 부르지는 않았다.
대신 시녀가 자리에 참석하여 술을 따르거나, 음식을 옮겼다.
“이야, 사제. 정말로 다시 봤어!”
장홍은 호통하게 웃으면서 주서천의 등을 거세게 두들겼다.
“사형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서천은 자신을 낮추며 장홍을 칭찬했다.
장홍과 장서은은 개안에서 첫 실전치곤 썩 괜찮은 실력을 보이면서 활약했다.
개양에서 함께 출발한 무사들의 호위를 받은 덕에 크게 다치지 않고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아니야. 그래도 정말로 다시 봤어.
그동안 우리가 널 너무 무시한 것 같아.”
장서은도 진심으로 주서천을 칭찬했다.
만약 장홍과 장서은이 눈에 띄지 않고 주서천의 활약만 소문이 났다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주서천은 그에 감사인사를 전했다.
제갈상과 제갈수란도 다가와서 축하 인사를 건냈다.
“정말로 대단하오, 주 소협.”
“축하해요.”
제갈상의 눈에는 호기심이 묻어났고, 제갈수란은 여전히 흥미없는 무감정이 느껴졌다.
“아니, 형님. 그렇게 불편하게 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사제?”
장홍이 주서천에게 물었다.
“예, 물론입니다. 편히 해 주십시오.”
주서천이 반색하면서 좋아했다.
‘천재 남매와 미리 연을 쌓아둬서 나쁠 건 없지.
나중에 분명 큰 도움이 될 거야.’
장홍은 항상 말이 많아서 귀찮았지만, 지금 만큼은 그의 사교성이 고마웠다.
지금 여기에서 제일 신경 쓰고 친해져야 할 대상은 제갈승계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둘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우선순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야 좋지. 잘 부탁해.”
제갈상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사했다.
주서천은 제갈세가의 남매나 연화각의 사형제와 어울리면서 적당히 대화했다.
그리고 술로 취기가 올라올 때 즈음, 슬쩍 빠져나와서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제갈승계에게 다가갔다.
“뭐야?”
제갈승계가 주서천을 뚱한 얼굴로 맞이했다.
참고로, 제갈승계의 활약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도 암기를 사용한 걸 치욕으로 여기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고 비밀로 해 달라 요청했다.
주서천은 이번 기회에 제갈승계의 자신감을 높이려 했으나, 암기를 제작해 사용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모로 귀찮아질 것을 깨닫고는 별수 없이 함구했다.
“솔직히 말해서 얼마 전의 전투는 천재 동생이 있어서 다 이긴 거 아니었겠어?
네가 없었다면 나도 살아남을 수는 없었을 거야.”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옆에 앉았다.
“비밀로 할 수밖에 없는 게 정말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너무 애석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인정해 줄 데니까.”
주서천이 혀를 매끄럽게 움직여 칭찬했다.
방금 전 연화각의 사형제들과 비교도 불허할 정도였다.
“크흠, 크흠.”
제갈승계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듯, 헛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그는 천재이나 고작 열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다.
생각보다 단순했다.
“칭찬은 고맙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 당신이지.”
제갈승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서천을 능력이 조금 뛰어난 별종 정도로 생각했다.
연화각원이 우수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고로 사람이란 자기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법.
그다지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옹안의 일로 그 인식도 변했다.
제갈승계는 주서천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깨달았다.
‘저렇게 대단한데 내화외빈이라면서 비웃음당하다니, 화산파의 검수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지?’
제갈승계가 착각했다.
설사 연화각의 대사형이라 할지라도 그가 펼쳤던 검술을 제대로 흉내조차 하지 못한다.
제갈승계의 안목이 워낙 없다 보니, 멋대로 오해했을 뿐이었다.
“하하. 이제야 이 형님의 위대함을 깨달았구나.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러워할 것 없어.
난 그저 운이 좋아서 영약을 복용했을 뿐이니까.
너도 영약만 섭취하면 나처럼 될 수 있을걸?”
주서천이 눈을 게슴츠레 뜨곤 웃었다.
그 눈동자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반짝하고 빛났다.
“영약?”
“그래, 무림인이라면 자고로 기연, 그중에서도 영약을 최고로 치지.
어떠한 난해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영약이 있다면 전부 해결할 수 있단다.
영약만 있다면 너도 순식간에 고수가 될 수 있어!”
주서천이 침 하나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제갈승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승계야. 너 나보다 고수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영약 복용해 봤어?”
“그것도 아니지만……”
“안 해 봤으면 말을 말아, 콱!”
무언가 속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그런 기연을 겪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그랬다면 무림은 고수들 천지였을 거다!”
제갈승계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시끌벅적한 연회 도중인 탓에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주서천뿐이었다.
“그래? 그러면 만약 이 형님이 영약을 구해 준다면 어떻게 할래?
마침, 괜찮은 정보가 있는데 말이야.”
주서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피식.
제갈승계가 바람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동생은 물론이고 부하까지 되어 줄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말이야.”
“그 약속, 잘 기억해 두는 게 좋을거야.”
주서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