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十三章영웅배로(英雄背唯)
홋날 천재 남매라 불리게 될 두 사람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됐다.
옹건의 무사들은 광견삼두의 출전으로 빠져나가 있는 상태다.
남아 있는 건 부상자와 아녀자.
그리고 비록 실력과 숫자는 적으나 그들을 지키는 하수들 몇몇이 있었다.
“저, 저게 뭐야!”
망루 위에 서 있던 무사가 경악했다.
그러자 반대편에 서 있던 무사가 뭔 일 있나 하고 시선을 옮겼다.
“악! 사도천이다!”
내력을 시각에 집중해야 겨우 볼 수 있는 거리에서 사도천 무리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적게는 백 명 많게는 백오십 명 정도였다.
무사들은 그들을 보고 광견삼두의 출전이 양동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
그러나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 어떻게 하지?”
지휘권을 가지고 있을 만한 사람은 전부 출전했다.
이 중에서 제일 강해 봤자 이류무사, 그것도 이제 막 오른 사람일 뿐이다.
부상자들 중에선 높은 무위의 무사도 있었지만, 의식도 제대로 찾지 못했다.
“도, 도망쳐야 해 ”
경상자들까지 포함해서, 그럭저럭 움직일 수 있는 무사들을 합쳐 봤자 삼십여 명 정도다.
그것도 제일 강한 사람이 이류 무사다.
이 전력 가지곤 절대 저 백 명에게 이길 수 없었다.
“부상자들이랑 아녀자들은 어쩌고?”
누군가가 물었다.
그 말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그, 그건……”
놔두고 가자, 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가슴속에 무언가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안쪽에서 이제 막 성년이 되었을 법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
“허미, 설마 양동일 줄은 몰랐네.”
소년, 주서천이 땅을 박차고 높이 도약해 망루 위에 올랐다.
무사들이 깜짝 놀라 옆으로 비켜섰다.
“흠, 대충 세어 보면 백 정도.
고수가 있을 수도 었겠지만, 사백께서 전장에 계시니 그럴 리가 없겠지.”
주서천이 팔짱을 끼고 고심에 잠겼다.
그런 주서천을 보고 망루 밑에 있던 무사들이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 화산파의 제자가 있었잖아! 그것도 연화각원이라고! 우린 살았어!”
“멍청아, 저 꼬맹이는 저렇게 보여도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
“엥?”
처음에 두 팔을 뻗어 기뻐하던 무사는 열두 살이라는 말을 듣더니 이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이 워낙 또래 아이들보다 큰 것도 있지만, 풍기는 분위기 또한 성숙했기 때문이었다.
“흐흐흑! 너 대체 얼마나 소식이 느린 거야? 저 꼬맹이는 내화외빈이라고.
내공만 무식하게 많을 뿐인, 그 외의 것은 전부 비어 있는 무능한 놈이란 말이다!”
다른 삼류 무사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절망했다.
“우린 이제 다 죽었어 !”
“항복하면 목숨은 살려 줄까?”
“아까 보니까 제갈세가의 천재들도 왔다며? 그런데 왜 양동을 생각하지 못한 건데!”
무사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절규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빠지니 듣기 민망한 저급한 욕설도 나왔다.
주서천은 망루에서 혼돈과 절망으로 가득 찬 무사들을 내려다보면서 피식, 하고 웃었다.
전란의 시대 때, 이렇게 양동에 걸렸을 경우 거점을 포기하고 도망치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도주하는 데 방해된다며 부상자와 아녀자들을 내버려 두고 도망친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이곳의 삼류 무사들은 욕하고 운명을 저주할지언정 도망치지는 않았다.
“무공이 삼류라고 그 마음까지 삼류라는 건, 역시 편견이란 말이지 .
저렇게 훌륭한데 말이야. 하, 그나저나 운도 지지리도 없지.”
주서천은 웃음을 거두고 눈썹을 험악하게 구부렸다.
무사들의 행동에 찬사를 보내며 훈훈한 미소를 지었으나, 상황은 그렇게 여유롭지 않았다.
‘부상자를 제외하고 전력에 넣을 수 있는 건 이류 무사 한 명, 삼류무사 이십 명. 적다.’
적이 어떠한 전력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정도 전력 그것도 사기가 최하인 상태에서는 싸우기가 힘들었다.
‘그 천재들이라면 아마 양동이라는 걸 눈치챌지도 몰라.
분명 지원 병력을 보내겠지.
그러면, 그 전까지만 버티면 된다.’
주서천이 망루에서 내려와 주변을 둘러봤다.
다들 오늘 죽을 것이라면서 절망하고 있었다.
‘아마도…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 곳은 양동에 걸려 전멸했거나, 인질로 잡혔을 거다.’
원래 주서천이라는 인간은 여기에 없었다.
연화각원이 아니 었으니 당연했다.
제갈승계도 마찬가지다.
원래라면 여기에 었어서는 안 됐다.
출전할 당시만 해도 제갈삭은 제갈승계에게 전장을 보여 주기만 하려 했다.
하지만 제갈상이 나서면서 ‘숙부님. 상황이 좋지 않으니 두고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주 소협도 있지 않습니까?’ 라며 말렸다.
비록 내공만 무식하게 많지만, 제갈상이 보기에 주서천은 제갈승계보다는 정상이었다.
나이 또래에 비해 충분히 개념이 똑바로 박힌 것 같아 믿고 맡길 수 있었다.
‘보아하니 아까 소란을 듣고 숨은 것 같은데 , 차라리 잘됐어.
어차피 싸우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제갈승계는 무공을 못 한다.
내공심법을 익히긴 했지만 그것도 고작 이 성이다.
그걸로 어떻게 싸우라고 하겠는가.
일반인과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가 의문.
어차피 방해밖에 되지 않으니 차라리 발광하지 않고 얌전히 숨어있는 편이 좋았다.
“자, 그럼 한번 시작해 볼까나.”
스르릉.
주서천이 검을 빼 들었다.
옹안 지부의 대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 났다.
그다지 크지도 않은 문으로 사도천의 무사들이 꾸역꾸역 들어오려 하고 있다.
“꺄아악!”
부상자들을 치료하던 의녀(醫女)들이 비명을 질렀다.
피를 보고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들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크하하하! 이리 오거라!”
제일 앞에 서 있던 사도천의 무사가 소리쳤다.
산적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특징이었다.
“나는 귀주의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한다는 막원갑…… 으응? 뭐냐, 이 꼬맹이는?”
막원갑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정면을 주시했다.
장원 안, 이제 막 성년이 된 듯한 주서천이 서서 검을 늘어뜨린 재 침입자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차피 죽을 놈에게 댈 이름은 없다.”
주서천이 검을 세워서 자세를 잡았다.
“뭐라고? 크하하하!”
막원갑이 주서천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황당함 반, 비웃음 반이었다.
“꼬맹아, 설마하니 혼자서 우리를 상대할 생각이냐?”
“아니. 혼자는 아니다.”
주서천이 왼손을 들었다.
그러자 이십 명의 삼류 무사들이 나와 부서진 대문 근처를 둘러쌌다.
‘이런.’
막원갑이 아차 했다.
아직 대문을 넘지도 못하고 뒤에서 따라오는 무사들이 많았다.
옹안 지부에 싸울 사람이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다들 여유를 부렸다.
대문 근처에서 빠져나온 자들이 겨우 십오 명.
다들 쓸데없이 덩치만 커서 공간도 별로 없었다.
“수비식”
주서천의 명령에 삼류 무사들이 자세를 바꿨다.
다들 긴장과 불안으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대문을 이용할 생각은 칭찬할 만하다만, 그렇다고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라.”
막원갑은 정말 찰나라 말할 정도의 순간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자신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옹안 지부에 고수가 있는 것도 아닌데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꼬맹이, 네놈이 너무 당당하다 보니 조금 당황했다.
우리를 우습게본 죄, 이 칼로 똑똑히 묻도록 하마!”
막원갑이 칼끝으로 주서천을 가리켰다.
“쳐라!”
“와아아아아!”
사도천의 무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문에 몰려 있던 무사들이 위협적으로 칼을 휘둘렀다.
옹안 지부의 무사들은 주춤거렸지만, 이내 물러설 곳이 없다는 걸 깨닫고 필사적으로 검을 부딪쳤다.
“꼬맹이, 뭘 믿고 그렇게 나서는지 궁금하구나!”
사도천 무사들 중에서 제일 덩치가 산만 한 자가 포위를 뚫으면서 멧돼지처럼 돌격했다.
멧돼지의 송곳니는 없었으나, 그 대신에 흉악한 칼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죽어라!”
칼이 날아온다. 상단에서 하단으로.
깨끗할 정도로 일직선을 그려 내는 도법이었다.
대단한 휘두름은 아니었다.
고작 삼류의 수준에 불과했다.
“ ……”
눈이 감긴다.
세상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주변의 소리가 고막을 지나 뇌를 울렸다.
와아아아아!
찰나라고 부르기 힘들 정도의 순간.
그 짧은 순간에 과거의 기억이 범람하여 주변에 영향을 줬다.
전란의 시대
싸움밖에 모르던 시대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강을 형성했다.
정신을 차리니 그곳에 서 있었다.
도복은 누군가의 피인지도 모를 정도로 새빨갛게 변색되어 있었다.
손에는 검을 쥐고 있었고, 다리는 떨렸다.
정면에는 누군가의 등이 보였다.
영웅의 등이었다.
‘항상 등을 보았다.’
누군가의, 듬직한 등을 보았다.
남자도 여자도인지도 모를 등이다.
노인인지도 아이인지도 성년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건 그 등이 그 누구보다 태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졌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주서천이 검에 힘을 주었다.
“하하, 겁을 먹고 오줌 지렸구나!”
덩치 큰 무사가 가만히 있는 주서천을 보고 웃었다.
“내가……”
하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매화에서 얻은 내공이 폭발적인 힘을 발휘한다.
배꼽 아래 하복부 쪽에서 시작된 내기는 튼튼하게 다져진 기맥을 타고 온몸을 돌아 손과 연결된 검으로 향했다.
왠지 모르게 매화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등이다.”
서-걱!
“어?”
검이 바람 소리를 내면서 선을 그렸다.
한 일(一) 자를 세로로 세운, 흔들림 하나 없는 선이었다.
그 선은 새하얗게 빛났으나, 이윽고 붉은빛으로 타오르며 혈선(血線)으로 변했다.
덩치 큰 무사의 칼이 공중에서 멈춰 섰다.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정수리 부분이 쩍, 하고 갈라졌다.
그리고 정수리를 시작으로 가랑이까지 혈선이 새겨졌다.
뚜욱.
가랑이 아래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새빨간 피였다.
보기 흉한 가슴 위로 피가 흘러나왔다.
“말도 안……”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쩌억!
덩치 큰 그 몸뚱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 몸은 장작처럼 둘로 갈라져 버리며 쓰러졌다.
“ ……”
순간 정적이 전장을 가득 메웠다.
사도천 무사들을 포위하면서 필사적으로 막고 있던 옹안 지부의 무사도, 그 적들도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매화가 길가에 있다(梅花路傍).”
주서천이 여전히 미동하지 않는, 수비식을 취한 채 읊조렸다.
“매화와 나비처럼 춤춘다(梅花蝶舞).”
파앗!
주서천의 몸이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건 아니다.
삼류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주서천은 정면의 사도천 무사들에게 파고들어 유려한 몸놀림으로 빙글 돌았다.
“매화가 염기를 뱉어 낸다(梅花吐聽).”
주서천이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들이 일렁이며 주변을 슥 훑었다.
주변에 둔 사도천의 무사는 셋.
“매화가 피어나 날카롭게 이끈다(梅開利導).”
그리고 그 기운이 안에서 만개하며 매서운 기운들을 토해 냈다.
어떠한 무언가가 그들을 푸욱 찔렀다.
“캬아아악!”
사도천 무사 셋이 비명을 지르면서 뒤로 쓰러졌다.
자세히 보면 가슴 등의 사혈에 구멍이 났다.
“뭐, 뭐냐.”
막원갑의 목소리가 떨렸다.
여기에있는 그 누구도 상승의 검법이 어떠한 것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뭐냐고!”
막원갑이 눈을 부릅뜨면서 소리쳤다.
주서천이 검을 털어 묻은 피를 닦았다.
옹안 지부의 무사들이 주서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작지만, 또 커다란 등이었다.
“지나가던……”
주서천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화산의 검수다!”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몸을 재차 날렸다.
목표는 막원갑이었다.
“뭐, 뭣들 하고 있어!”
막원갑이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쳤다.
처음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의 패기는 없었다.
“저놈부터 처리해!”
꼬맹이에서 호칭이 바뀌었다.
“혀, 형님. 화산의 검수라는데요?”
덩치의 사망으로 제일 앞이 된 무사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산파.
그 이름은 사도천의 하수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게, 게다가 아직 약관이 되지 않는 거 보면……”
“연화각원이 틀림없습니다!”
약관이 되지 않았는데도 강호에 나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연화각을 건들게 되면……”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연화각원은 화산파에서도 특히나 신경 쓰는 인재.
보복이 두려워 섣불리 건들기가 힘들었다.
“이 머저리들아!”
막원갑이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목에 핏대를 세웠는지 퍼런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철수할 생각이야?
여기에 부상자들밖에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데, 도망친다면 온갖 비웃음은 물론이고 우리의 목은 끝이다!”
양동을 위해서 백 명의 무사를 따로 빼냈다.
그만큼 본대의 피해도 커지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든 여기를 뚫어 정복한 다음, 옹안 지부의 식구들을 죄다 인질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화산의 제자. 아니, 연화각원이라고 해 봤자 이제 막 성년이 된 어린아이다!”
막원갑이 뒤로 물러나려는 무사의 등을 발로 찼다.
“애초에 십사검협도 참전했다는데 그를 따라가지 않은 건 그만큼 실력이 부족하다는 의미!
겁먹지 말고 빨리빨리 제압해라, 이 쓸모없는 놈들아!”
막원갑의 호통에 설득된 것인지, 아니면 겁을 먹었는지는 모르나 사도천의 무사들이 다시 칼을 고쳐 잡았다.
그들의 눈 대부분이 주서천에게로 향했다.
“어째 정파보다 말이 많은데.”
주서천이 웃음을 거두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말고, 검으로 대화하자!”
주서천의 말을 끝으로 사도천의 무사들과 옹안 지부의 무사들이 다시 재격돌했다.
“주 소협의 말씀을 떠올려라!”
삼류 무사들의 방어가 뚫리거나 버거워하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원을 해 주던 이류 무사가 외쳤다.
불과 한 식경(食頃 : 30분) 전, 주서천은 삼류 무사와 이류 무사들을 데리고 짤막하게나마 작전을 세웠다.
처음에 무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주서천이 무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서천은…… “혼자 도망쳐서 살아남은 뒤, 너희가 재물을 들고 도망치려다가 실패해서 죽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릴테다.
가족이 고향에 있는 무사들이라면 그 가족이 어떻게 될지는 알겠지?”
“마, 마라(魔羅)! 마라가 여기에 있다!” ……라는 식의 협박으로 억지로 말을 듣게 했다.
대부분 어차피 자포자기했기에, 군말하지 않고 주서천의 말을 들어주고 따라 주었다.
사실, 전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정말 간단했다.
대문 앞에 대기해서 안으로 전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 근처를 포위해서 경계만 하는 것뿐이었다.
또한 이류 무사가 돌아다니면서 뚫릴 곳이 있으면 보완해 준다.
마지막으로, 정면 중앙에 위치한 주서천이 갈 곳 없는 사도천 무사들을 각개격파해서 승리한다.
처음에 그 작전을 들은 무사들은 주서천을 미쳤다고, 또는 자신의 무위를 너무 과신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하다.
연화각원이라 해도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다.
그것도 무림 초출이다.
처음으로 살인을 하고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는데, 모든 걸 맡겨 달라니. 어이가 저 멀리까지 출타했다.
뭐라 따지기도 전에 사도천의 무사들이 가까워졌고, 결국 다들 절망하면서 작전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작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주서천이 보인 무위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 다들 눈을 껌뻑이면서 의심했다.
그러나 한 명을 쓰러뜨리고, 이어서 세 명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걸 보고 드디어 믿게 됐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상식과 어긋나는 무력이다.
하지만 의문보다는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싹트자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좌익(左翼), 너무 파고들고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숫자는 우리가 적으니 조금은 진정하세요!”
주서천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전황을 살폈다.
많지는 않지만 회귀 전에 그럭저럭 지휘 경험도 있었다.
“예!”
삼류 무사가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다.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절망감은 없었다.
수적으로 몰린다.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었다.
희망은 없었다.
보이는 건 암흑뿐이었다.
뒤에는 부상자들이 있었다.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겁을 먹은 채 숨어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들을 잠깐이라도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걸 반성하며 몸을 움직였다.
‘있다.’
삼류 무사들은 보았다.
‘화산의 등이, 있다.’
누구보다 든든한 등을 보았다.
청년도 되지 않은 소년의 등.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그 소년의 등에 의지한 채 명령에 따르면서 격렬하게 싸웠다.
“죽어랏!”
사도천의 무사가 악을 지르면서 달려왔다.
주서천은 옆에 었던 사도천 무사의 가슴에 꽂았던 검을 빼낸 뒤, 몸을 비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쐐-액!
듣기만 해도 매서운 파공성이 터졌다.
피를 머금은 검이 수평선을 그었다.
“으… 으합!”
사도천의 무사가 예상했다는 듯, 목이 꺾일 정도로 뒤로 젖혔다.
턱 끝을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하하하! 끝이다!”
사도천의 무사가 환희로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검을 회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터, 무사는 목을 원래의 위치로 돌리기도 전에 손에 든 칼을 강하게 휘두르려 했다.
“호, 제법.”
주서천이 칭찬하면서 다리예 힘을 주었다.
잘 단련된 하체 근육이 울긋불긋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고는 발끝에 내력을 돌려, 그대로 다리를 힘껏 휘둘러 무사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아악!”
빠악,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사는 칼을 휘두르기도 전에 다리뼈가 부러져 무너졌다.
“화, 화산파의 검수란 놈이 대체 뭔……!”
정파인, 특히나 검에 대한 자부심을 지닌 화산파 출신의 제자들은 검공 외에는 잘 쓰지 않으려 한다.
매화권이 있다 해도, 싸우다가 검을 놓치거나 잃어버리면 그 수치심에 자결하는 자도 있을 정도였다.
하물며 상대는 화산파의 자존심이라고도 칭해지는 매화각이 아닌가.
발을 쓰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정말로 위험할 때 아니면 잘 안 써.
그리고 전란을 겪게 되면 정파인들도 자존심을 좀 많이 꺾게 되더라.”
주서천도 원래는 그런 전형적인 정파인이었다.
그러나 몇 번 죽을 뻔한 경험을 하게 되면서 사고방식이 조금 바뀌었다.
그건 주서천 뿐만이 아니다.
잔뜩 굳은 사고를 갖고 있던 정파인들은 전란의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살려 ……”
“뭐라고? 사도천 무사라서 잘 안들리는데?”
서걱!
사도천 무사의 머리가 목과 분리됐다.
“히이익!”
정면을 돌파하려던 사도천 무사들이 기겁했다.
그 뒤에 있던 무사들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은 애초에 삼류.
이렇게 압도적인 무위 앞에선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특히나 사파인들의 경우, 자존심이나 명예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겁이 금세 전파됐다.
“버, 벌써 삼십 명이나 당했다고!”
누군가가 기겁하면서 소리쳤다.
백이었던 무인들은 칠십 명으로 줄었다.
“반대로 생각해라!
삼십 명 정도와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놈들은 틀림없이 지쳤을 것이다!”
막원갑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절대 여기서 물러나면 안 돼.
다른 놈들은 몰라도 책임자인 나는 도망쳐도 기필코 추격을 받는다.’
막원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책임을 지는 자리는 그만큼 실적을 쌓기 쉽지만 처벌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사정을 봐주지 않는 사도천은 더더욱 그렇다.
“밀어! 밀어! 밀어붙이란 말이다!”
막원갑이 수하 무사들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칼을 높이 들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누구든지 저 꼬맹이의 목을 자르는 자, 내가 상부에 고해서 금자를 내리도록 하겠다!”
막원갑에게 그런 능력 따위는 없다.
그러나 공포감에 짓눌려서 아무렇게나 지껄였다.
“우와아아!”
금자라는 말에 사도천 무사들이 반응했다.
사파인, 특히 하류 인생을 사는 자들은 자존심이나 명예보다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에 환장했다.
“이, 이런!”
옹안 지부 이류 무사가 사색이 됐다.
한참 잘 막고 있었지만, 사도천 무사들이 홍분하여 한꺼번에 돌격하자 버티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주서천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 소극적인 태도였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됐다.
“주, 주 소협!”
이류 무사가 애달픈 목소리로 주서천을 불렀다.
삼류 무사들도 주춤주춤하더니만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이런!’
주서천이 아차, 하는 얼굴로 얼른 돌아가려 했다.
“죽어라아아!”
하나 사도천 무사들이 몰려와 주서천을 막았다.
위협적이지는 않았지만 지원을 가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뚫리나 싶을 때, 전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야 이 새끼들아!”
퍼엉!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폭음이 터졌다.
쇄새새색!
소리에 대한 정체를 판명하기도 전, 사도천 무사들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떨어졌다.
“끄아아악!”
“아악, 이게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멧돼지 같은 기세로 돌격하던 사도천 무사들이 기겁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진 건, 화살이었다.
그것도 최소 이십 개에 달하는 숫자였다.
“으… 하하하!”
주서천도 사도천 무사들 한가운데에 있었기에 화살을 맞았다.
하지만 검으로 쳐내서 피해는 없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줄이 달린 대나무 통을 들고, 잔뜩 성이 난 표정을 한 제갈승계가 있었다.
“제갈세가, 이 새끼들 진짜 더러운 놈들이네 ”
죽통노(竹簡綺)
죽통에다가 화살을 집어넣은 뒤, 죽통에 달린 실을 잡아당기면 화살 몇 개를 뿜어내는 암기였다.
몇십 년 뒤, 사천당가에서 새로운 암기라고 전란의 시대 때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인지 사천당가의 사람이 아닌 제갈세가의 사람이 죽통노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그 말은……
“승계가 개발했던 게 암기라서, 그게 정파인으로서 부끄러워 쓰지 못하니 사천당가에 돈을 주고 팔아?”
기분은 나빴다.
하지만 이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하하! 성공했다!”
제갈승계가 죽통노를 들고 두팔을 벌려 기뻐했다.
무언가의 도전에 성공한, 순수한 기쁨이었다.
‘틀림없는 만각이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