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만각이천(晩覺摘天) (36/254)

第十二章만각이천(晩覺摘天)

구풍은 연화각의 세 사람에게 개양에 한해서 자유롭게 돌아다녀도 된다고 말했다.

장홍과 장서은은 무척이냐 신나 했다.

둘 다 화산 바깥은 처음이기에 물 만난 아이들처럼 돌아다녔다.

기한은 나흘.

임무 수행이 나흘 뒤 라서 그렇다.

참고로 그 둘은 제갈상, 제갈수란과 어울렸다.

제갈상은 소가주로서 훗날 화산파와의 친목을 위해 적극적으로 장홍과 장서은 두 사람과 대화했다.

장홍은 주로 제갈수란에게 관심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서 그녀의 주변에서 살랑거렸다.

“그나저나 장 제(弟).

자네의 사제는 혹시 화산파 내에서도 조금 별종인가?”

제갈상은 나이도 나이지만, 원래 남들보다 머리가 비상한 데다가 인품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장홍과 장서은도 그런 제갈상을 금방 따랐고,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말을 놓을 정도로 친해졌다.

제갈상의 물음에 장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상 형 그 녀석은 내화외빈이라고 하여……”

장홍은 주서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별종은 별종끼리 끌리나 봐요.”

장서은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다.

제갈상은 장홍, 장서은과는 친해졌지만 주서천과는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설마 승계에게 관심을 보이는 또래, 그것도 연화각원이나 되는 무인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제갈상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주서천은 제갈승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승계야, 안녕. 이 아저씨랑 비밀친구 할래?”

“아니, 나랑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며? 무슨 아저씨야?

제발 헛소리 좀 그만하고 저리가!”

제갈승계가 어이없는 눈으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와, 네 중부(仲父)가 보면 정말로 놀라겠어.

승계가 이렇게 당차고 대장부 같은데 말이야. 그렇지?”

자유행동이 주어지자마자 방구석에 박혀 있던 제갈승계를 찾아 끈질길 정도로 말을 걸었다.

그 제갈승계조차도 주서천을 별종 취급했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

제갈승계 본인도 스스로 이상하다는 것은 알고 있다.

주변의 시선이 그런데도 모르면 바보 멍청이다.

“그냥 아저씨가 승계랑 놀고 싶어서 그래.”

주서천이 부드럽게 웃었다.

‘그래, 일단 칭찬부터 하자. 얘는 잘못 건드리면 위험해.’

마음 같아선 멱살을 휘어잡은 다음에 ‘야, 나랑 비고나 털러 가자!’ 라고 협박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에도 진짜 뭐한데, 나 같은 놈이랑 어울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소천성공(小天星功)은 이성밖에 익히지 못했고, 이 시대에는 의미도 없는 기관지술에나 집착하고 있는 한심한 놈이라고!”

제갈승계가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쌓인 것이 많은 듯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에 주서천이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 네가 성품도 그다지 썩 좋지 않고 뭐만 하면 훌쩍이는 병신이란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렇게까지는 말 안 했……”

“그러나 네가 기관지술에 집착하는 건 결코 나쁘지 않다.

반대로 누구도 손대지 않는 부분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며, 그 신념을 굽히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실로 대단하기 그지없다고 생각한다.”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그 눈동자에는 필사적인 감정이 맺혔다.

“그러니까 이대로 멈추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하건 네가 가고 싶은, 너 만의 길을 가라.”

만각이천.

그에 대한 평가는 별호 그대로 뒤늦게 알려졌다.

삼안신투의 비고 때, 제갈승계가 처음으로 주목받는 일이 생긴다.

삼안신투의 비고에 설치된 기관 때문이었다.

정파, 특히나 제갈세가는 제갈승계의 기관지식 덕에 비고에서 상당한 양의 보물을 갖게 됐다.

제갈승계는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멸시당했던 걸 재평가받나 싶었으나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확실히 다시 보는 시선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그 시선 대부분은 ‘그래도 쓰임새는 있구나.’ 정도였다.

무림은 철저한 힘의 세계.

대부분이 무공으로 인정받고 평가를 받았다.

제갈세가는 조금 예외적이긴 했으나, 그래도 무공을 아예 안 보는 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어린아이들보다 못한 무위에 무시를 받는 건 별수 없었다.

전략이나 군략, 모략 등의 머리를 굴리는 법이냐 기문진법 을 공부했으면 모른다.

그러한 것도 못 하니 세가 내에서도, 밖에서도 멸시 어린 조소를 들었다.

제갈천과 제갈수란.

이 두 천재의 존재 탓에 비교는 더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끝내 제갈승계는 제갈삭 등, 세가의 어르신들의 구박을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사인은 자살이었다.

“잘 들어, 동생 . 천하가 널 무시해도 나만큼은 널 무시하지 않으마.

내가 있다는 걸 명심해.”

어릴 적부터 이러한 타박과 멸시를 받다 보니 자연스레 자존감도 떨어졌다.

그 점은 성격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비록 내 널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운명을 느꼈다.

술이라도 있었다면 너와 잔을 맞대면서 의형제의 연을 맺었을 텐데, 참으로 아쉽구나.”

“난 네 동생이 될 생각이 없……”

“편하게 형님이라 불러라, 승계야.”

자존감 없는 소심한 성격은 좋지 않은 결과를 불러들였다.

그 결과, 제갈승계는 제대로 된 여유도 가지지 못한 채 이용만 당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여태껏 그래 왔던 것처럼 굽히지마.

네가 쌓아 온 것, 공부한 것, 그걸 부정할 필요는 없다.

천하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가 인정해 주마.

천재인 내 동생을 무시한 것들에게 헛소리하지 말라고 외쳐 주겠다.”

제갈승계가 완전히 잊혀질 때 즈음, 다시 한번 그의 존재가 부각됐다.

기관지술 탓이었다.

사장되었다고 생각했던 기관은 전란의 시대를 통해서 다른 세력에 의해 완벽히 부활했다.

잘 쓰이지 않았던 기술이었던 만큼, 기관지술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은 제갈승계뿐이었다.

이후, 당연하다시피 제갈세가의 영향력은 하늘을 찌를 기세로 높아졌다.

기관지술의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제갈승계뿐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제갈승계 입장에선 그다지 좋다고 말할 수만은 없었다.

확실히 이 일 이후, 자신에 대한 평은 늘었다.

여태껏 해 온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제갈승계에게만 모든 일을 맡기는 건 너무나도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기관지술에 대해 해박한 자가 한 사람뿐이라는 건, 관련된 일을 모두 처리해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딘가의 방 안에서 호위라는 이름의 감시 아래에서 혼자 일해야 했다.

그 압박 속에서 제정신을 유지하는 건 정상이 아니었다.

마음 같아선 죄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어릴 적부터 받아 온 압박으로 인한 소심한 성격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목소리를 조금만 높이려고 해도 제갈세가의 어른이라는 자들이 세가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윽박질렀다.

그럴 때마다 제갈승계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결국 비고 이후로 세가라는 이름의 새장에 갇혀서 바깥구경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제갈승계는 결국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이용만 당했고, 그 정신적 중압감과 압박감은 사인(死因)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쳐 마음을 병들게 했다.

결국 약 사십여 년 뒤, 오십 대 중반 무렵에 제갈승계는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다가 자살을 하게 된다.

혀를 찰 정도로의 비참한 삶이었다.

‘너무한 건, 그때까지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한 거지.’

제갈승계에 대한 평은 그 당시만 해도 너무 애매했다.

무림은 힘과 무공이 아니라면 인정받기가 힘들다.

사천당가와 제갈세가만 해도 아직까지도 무림인들 사이에서 약간의 무시를 받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나 기관지술처럼 사장된 기술의 경우 더더욱 그랬다.

아무리 제갈승계가 대단하다 하여도, 다들 그를 대할 때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역시 제갈승계의 사인에 영향을 끼쳤다.

자신 있게 벗이나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없던 그의 죽음은 지독히 쓸쓸했고, 장례도 조촐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정파 무림은 이 일을 후회하게 된다.

처음 제갈승계가 사망했을 때, 몇몇 사람들은 이제 누가 기관지술을 책임지냐며 걱정했다.

이에 제갈세가는 걱정 말라며 큰소리쳤다.

비록 제갈승계가 후학을 기르진 않았으나, 그가 남긴 서적이 있으니 이걸 참조하여 해결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얼마 뒤에 깨닫게 된다.

제갈승계는 어처구니없는 천재였다.

그의 지식, 이해도는 제갈세가 사람들조차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는 나름대로 자기의 생각을 서적에 기록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천재의 생각.

너무나도 난해하여 그 누구도 해석하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제갈승계는 누굴 가르쳐 본 적은커녕, 주변인들과 교류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를 위한 서적을 준비할 리가 없었다.

결국 그 누구도 제갈승계의 지식을 얻지 못했다.

이후, 무림맹을 비롯한 정파 무림은 적의 기관지술에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 속수무책으로 당해 큰 인명 피해를 받는다.

그제야 제갈세가는 크게 후회했고, 전란의 시대가 끝난 이후 이 일이 알려져 그들은 큰 비난을 받았다.

그게 만각이천.

뒤늦게 알려진 하늘이다.

“야, 솔직히 말해.

중부가 너보고 나 좋게 말해서 어떻게 해 달라고 부탁받은 거지?”

“……”

“그럼 그렇지. 꺼져!”

갈 길이 멀어 보였다.

* * *

대기가 끝났다. 임무가 내려왔다.

“개양에서 동쪽으로 이틀 정도 가면 옹안(壅安)이 있소.

두세 달에 한 번꼴로 무림맹과 사도천의 깃발이 번갈아 올라오는 지방이지.

어제 확인해 보니 우리 측이 밀리고 있다 하니, 개양 지부의 무림맹 무사들과 함께 지원해 줬으면 좋겠소.”

신도균은 말을 끝내고 구풍과 제갈삭의 눈치를 봤다.

“으음…”

구풍이 침음을 흘렸다.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조금 위험하겠지만, 상이와 수란이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겠군요.

당연히 괜찮습니다.”

제갈삭은 반가워했다.

옹안은 귀주의 분쟁지 중에서도 제일 치열하다.

그만큼 부상자나 사망자도 많이 나왔다.

실전 경험 하나 없는 대문파의 제자들이 자만하여 정말 많이 죽은 곳이었다.

최전선인 만큼, 사파의 고수들도 이따금 나타난다.

천하백대고수들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경계할 만한 적이 나타나곤 했다.

‘무례하군.’

신도균이 제갈삭의 말에 눈썹을 미미하게 구부렸다.

눈동자에 약간의 불쾌감이 묻어났다.

제갈세가는 어차피 사도천의 무사들과 싸우지 않는다.

그들은 뒤에서 작전을 짜고 명령을 내린다.

원래 제갈세가의 장기는 머리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어차피 우리에겐 상관없는 일이다.’ 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말이었다.

위험천만한 곳에 가는데 경험이 된다면서 저리 말하다니, 옆에 있는 구풍이 뭐라 생각하겠는가.

“……알겠소. 화산파도 받아들이겠소.”

구풍도 고민 끝에 임무를 받아들였다.

“기쁜 소식이오!”

신도균이 반색하면서 좋아했다.

십사검협이라 하면 누구나 아는 초절정 고수가 아닌가.

이걸로 무사들의 사기는 보장됐다.

설사 옹안에서 사파의 고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구풍이 있다면 안심할 수 있다.

‘되도록이면 십사검협이 연화각원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준비해 둬야겠군.’

혹시나 거절하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원래는 좀 더 안전한 임무를 내려주려 했다.

그러나 옹안에서 온 소식이 워낙 급해 어쩔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구풍이 받아들였으니, 옹안의 일은 한시름 놓을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당일 미시초(未時初 : 13시 ~14시) 무렵

임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개양을 떠나게 됐다.

‘옹안, 옹안이라…… 이 시기에 조심할 게 뭐 있었지?’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어 봤다.

하지만 너무 오래된 일이고, 원래 옹안은 일 년에 수십 번이나 주인이 바뀐 적도 있는 분쟁지다.

너무 많은 일이 있다 보니 특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저씨, 무섭게 왜 자꾸 따라오고 그래요”

제갈승계가 맹한 눈으로 중얼거렸다.

주서천은 제갈승계가 어디에 있건 딱 들러붙어 다녔다.

함께하게 된 무림맹 무사들이 수군거렸다.

“쟤들 아직 어린데 설마 그런 사이는 아니겠지?”

“하! 말을 아끼게. 어쩌면 미래의 매화검수가 되실 분일지도 몰라. 우리를 기억했다가 나중에 찾아오면 어쩌려고 그러나.

구파일방들 애송이들이 성질 더러운 거 모르나? 다들 하나같이 혐성(嫌性)이라고 자자하네.”

“솔직히 나보다 자네를 걱정해야할 것 같네만?”

“어흠!”

“그리고 저 주서천이란 꼬맹이는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네. 아까보니 사형인 장 소협이 내화외빈이라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 주더군. 운이 좀 좋아 연화각원이 되었을 뿐, 실상은 별로 대단할 것 없는 모양이야.”

“허, 화산파에 들어간 것 자체만 해도 천운인데 거기에 운이 더 좋다고? 참으로 살기 싫어지는군”

* * *

귀주, 옹안

옹안에 있는 무인의 숫자는 약 천 명이다.

사백이 무림맹이고, 육백이 사도천이었다.

“정사대전도 아닌데 어째서 귀주만 평화롭지 않고 계속해서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제갈승계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분쟁이 잠시 동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몇십 년 동안 지속해서 일어났다가 멈추는 게 반복됐다.

힘의 균형으로 무림은 평화를 유지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데, 귀주는 왜 이런지 의문이었다.

“귀주는 정사의 영역을 구분 짓는 균형이다.

설사 평화 협정을 했다해도, 최전선에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무인들을 함께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하지.”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의문을 시원스레 풀어 주었다.

‘기관지술에만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이로군. 무림의 정세에 대해 몰라.

나중에 억지로라도 머릿속에 넣어 두어야겠어.

기초적인 상식을 모른다면 여러모로 곤란할 테니까.’

마음 같아서는 그 정도는 알아 두라고 타박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친해져야 할 때.

안 그래도 경계와 적대심이 잔뜩인 아이를 자극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통제하려 해도, 무림인들에겐 은원(恩怨)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괴물 같은 감정은 이성까지 마비시켜 사람을 변화시키지. 그게 이 결과다.”

주서천이 나이에 맞지 않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귀주는 특히 그러한 장소야.

은원의 연쇄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져 있지.

누가 온다 해도 이걸 끊을 수는 없을 거란다, 천재.”

“어흐흠, 천재라니.

네 의도가 어떤지 뻔하긴 한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제갈승계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어졌다.

‘후후, 단순한 놈’

주서천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아이란 건 다루기 쉬운 법이다.

“……잠깐.”

웃고 있던 제갈승계의 얼굴에 그늘이 끼었다.

“설마하니 천재(凌才)를 돌려서 말한 건가.

하기야, 중부가 널 보냈다면 당연히 그 말이 맞겠지.

어차피 얕은 재주이니 그만 포기하라고……”

‘하아, 또 시작했군.’

제갈승계는 글자를 읽을 때부터 기관지술에 관심을 보여 왔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관지술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세가에서의 타박은 그때부터 끊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의 결여로 이어졌다.

이놈의 부정적인 사고 자체가 문제다.

너무 욕을 먹다 보니 칭찬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어떨 때 보면 단순하고 달래기 쉬운데, 그것도 금방 수그러들면서 온갖 부정(否定)이 튀어나왔다.

“동생, 그냥 좀 받아들여라.

너도 귀가 있으니 알겠지만, 나도 화산에서 상당한 별종이야.

말하고 다니기 좋아하는 사형이 말해 줬올 텐데, 못 들었어?”

“응……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은 중부랑 너뿐인데……”

제갈승계가 동태 눈깔로 힘 없이 답했다.

원래는 제갈상이 그를 불쌍하게 여겨 가끔씩 말을 걸어 주었으나, 화산파 일행과 동행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제갈상은 후에 화산파와의 교류를 위해서라도 연화각원들과의 대화를 무척 신경 썼다.

제갈수란은 원래 제갈승계를 싫어하진 않았으나 거의 없는 사람 취급해서 원래부터 말을 안 걸었다.

그렇다 보니 말을 거는 사람은 제갈삭과 주서천뿐.

심지어 제갈삭은 그 말이 대부분 구박뿐이었다.

“비겁하게 진실을 제시하다니 !

정정당당하게 진실이 아니라 거짓과 선동으로 승부하자!”

제갈승계가 헛소리를 했다.

전해지는 것에 의하면 심성이 많이 여리다고는 했는데 이 정도였나…… 진짜 만각이천 맞아?’

슬슬 불안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관지술의 능력도 직접 본 적이 없으니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아니, 됐다. 믿도록 하자. 내가 믿지 않으면 이 괴짜를 누가 믿어 주겠냐.’

주서천은 머리를 흔들어 불신을 털어 냈다.

“왜 그래? 미쳤어?”

제갈승계가 그런 주서천을 보고 세 보 떨어졌다.

때리고 싶어졌다.

* * *

옹안의 무인들은 대다수 중소 문파 출신들이었다.

지휘를 맡고 있는 자는 무림맹의 일류 무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일류 무사, 왕칠은 지원 병력이 도착하자마자 성대하게 환영해 주었다.

그만큼 그들의 존재가 기뻤다.

특히나 십사검협이라는 별호를 들었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까지 보였다.

“그럭저럭 사정 은 듣고 왔으니 설명해 봐라.”

제갈삭이 말했다.

“예!”

사도천 육백, 무림맹 사백.

무림에 대하여 모르는 자라면 전력 차이를 보고 사도천이 우세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림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무림맹이라 말한다.

사도천, 아니 사파는 정파보다 숫자 방면으로는 압도적이라 할 정도로 우세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세한 건 숫자 뿐이었다.

사파의 무공 중 대표적인 특징을 꼽자면, 그건 연공의 속도가 빠른 대신 일정 구간에 오르면 나타나는 벽을 뛰어넘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파에는 하수가 많을지언정, 중수나 고수의 숫자가 정파보다 적은 편이었다.

즉 양이 많다고 한들 질이 떨어지다 보니 숫자의 차이가 있다 해도 승패를 단언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옹안에 사도천의 고수가 와 있소?”

구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백여 명 정도면 밀릴 정도로의 전력 차이는 아니다.

패배하기는커녕 잘만 하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원까지 요청한 건, 숫자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예 세 명입니다.”

왕칠의 답변에 구풍도 제갈삭의 얼굴도 굳었다.

“아, 그렇지만 초절정의 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고수라고 칭해지려면 적어도 절정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초절정의 경지까지 고수라 부른다.

그 이상의 경지, 특히 초절정 중에서 상위 백 명은 따로 호칭이 붙곤 했다.

이에 제갈삭은 십년감수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화를 내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것부터 말해라!”

세 명의 고수 중에서 초절정의 경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문제가 된다.

구풍도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부 절정의 경지일 경우, 성가실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는 있었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세 명 전부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전황부터 살피고 어떻게 할지를……”

제갈삭이 군사로서 작전을 수립하려 했다.

“급보입니다!”

그러나 전령의 외침으로 인해서 멈추게 된다.

“무슨 일인가?”

“인근에서 사도천과의 재격돌, 광견삼두(狂犬三頭)가 선두에 서서 날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삼두라고 정말 머리가 세 개인 건 아니다.

광견삼두라 하여, 의형제를 맺고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다니는 미친개 삼형제가 있다.

셋 다 절정의 고수다.

“아무래도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군.”

구풍이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꿀꺽.”

장홍이 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잔뜩 굳은 얼굴이었다.

장서은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설사 화산의 제자라고 해도, 처음으로 겪는 실전은 누구나 긴장하는 법이었다.

“둘을 잘 부탁하겠소.”

구풍이 개양에서부터 동행한 무림맹 출신 일류 무사들에게 부탁했다.

“예, 대협.”

“저희에게만 맡겨 주십시오”

그들은 개양을 떠나기 전, 구풍을 대신하여 신도균에게서 연화각원을 호위하라는 임무를 받았다.

덕분에 구풍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둘?”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구풍이 막사를 나가기 전, 주서천에게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도 데리고 나가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개양에서 함께 온 무사들이 둘은 몰라도 세 명까지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막내인 널 여기에 두고 갈 수밖에 없단다.”

굳이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주서천을 전장에 데리고 나갈 이유가 없으니, 섭섭하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었다.

‘음, 나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운 걸.’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 온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연화각에서는 낙소월이 몰래 찾아올 때, 간간이 비무를 했으나 제 실력을 보인 게 아니었다.

마침 전장에 참여할 기회도 생겼고, 싸우다 보면 난장판이 되니 몰래 빠져나가서 싸울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장홍이나 장서은처럼 두려움에 의한 긴장 따위는 없었다.

주서천도 전란의 시대 때 영웅들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실전을 쌓은 경험만큼은 구풍, 아니 화산파 내에서도 주서천과 비교할 사람이 별로 없다.

괜히 전란의 시대라 불린 게 아니다.

그만큼 싸움이 많았다.

“네 안전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니,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말거라.

널 무시하는 게 아니란다.”

“알고 있습니다, 사백.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는 걸요.”

주서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열두 살인데도 정말 다 컸구나. 네 스승이 제자는 정말 잘 뒀다.

아, 그리고 제갈세가의 막내도 남게 됐으니, 형인 네가 잘 돌봐 주거라. 부탁하마.”

“예, 사백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 * *

옹안에서 반나절 정도 걸으면 개안이라는 곳이 나온다.

작은 촌락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이 개안은 무림맹과 사도천의 접경지로, 하루에도 수차례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옹안에서 출발한 지원 병력은 최대한 빨리 전진하여 개안에 도착했다.

“와아아아!”

“십사검협이다!”

구풍이 나타나자마자 무림맹 측 무사들이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십사검협의 이름은 듬직했다.

기세등등했던 사도천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구풍은 앞장서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초절정 고수의 검답게 보통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도천의 무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흩뿌렸다.

“하하, 별거 아니군!”

제갈삭은 중앙에서 그걸 지켜보면서 웃었다.

굳이 계획을 짤 필요도 없었다.

십사검협 그리고 개양에서 온 지원 병력 이 화끈한 무위를 자랑했다.

“……오라버니.”

제갈수란이 전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제갈상을 불렀다.

“그래.”

제갈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갈수란이 용건을 말하기도 전, 제갈상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적어.”

제갈상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난전이라서 정확하게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사도천 병력이 백에서 백오십 정도가 적다.”

제갈상이 몸을 천천히 돌려 뒤를 살폈다.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은 옹안에 있을 진지였다.

“숙부 아무래도 저희가 함정에 빠진 것 같습니다.

백에서 백오십 정도 적의 전력이 비어요.”

“하하하, 뭔 소리를 하느냐.

네가 출진한 지 별로 되지 않아 착각을 한 모양이구나.

그것보다 저기 앞을 봐라. 사도천이 맥도 못 추리고 죽어 나가는 걸 말이다!”

“ ……”

제갈상의 얼굴이 암담해졌다.

제갈삭, 그리고 옹안군은 이미 승리에 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까지 솟아오른 사기에 몸을 던져, 사도천의 무사들에게 함성을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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