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제갈세가(諸葛世家) (35/254)

第十一章제갈세가(諸葛世家)

며칠 뒤 일행은 목적지였던 개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개양은 그럭저럭 규모가 있는 마을이었다.

귀주는 성도인 귀양을 두고 북과 남으로 냐뉘어져 있는데, 북은 정파의 영역이고 남은 사파의 영역이다.

그중 개양은 귀양의 인근에 있는 마을. 최전선에 속했다.

그렇다 보니 정파인이 제일 많이 몰려 있었다.

“아이고, 용안(容顔)을 보아하니 정파의 대협분들이시군요.

이 소상(小商), 멀리서부터 위풍당당하게 걸어오는 대협들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나이다.”

개양에 들어서니 호객꾼들이 몰려들었다.

그중 제일 먼저 온 소상이라는 자가 다가와 굽실거렸다.

“뭡니까?”

이에 장홍이 어이없다는 듯이 소상을 쳐다봤다.

자고로 칭찬이 과하면 아부로 보이는 법이다.

이미 소상의 알랑거림은 칭찬 수준을 넘었다.

“하하.”

구풍은 소상을 보고 재미있다는 듯이 바람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러곤 품에서 동전을 꺼내, 엄지에 올려놓고 손가락을 튕겨 소상에게 날렸다.

“객잔에서 여장을 풀 일은 없으니, 쓸데없는 안내 말고 무림맹 개양 지부로 안내해 주게나.

괜히 재미없는 짓을 한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거니 명심하게.”

“아이고, 물론입니다! 대협!”

소상이 동전을 두 손으로 낚아채면서 허리를 숙였다.

이마에 땅에 닿을 정도로 과하게 굽혔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호객꾼들이 혀를 차면서 물러났다.

손님을 놓친 것에 아까워하는 눈치였다.

그제야 장홍도 무슨 일인지 이해한 듯, ‘아하’ 하고 머리를 주억거렸다.

“타지에 도착하면 이렇게 호객하려는 자들로 가득할 게다.

그러니 적당히 몇 푼 쥐여 주면서 원하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고 하면 된다.”

구풍은 느긋하게 걸으면서 친절히 설명했다.

“또한 목적지가 무림맹 지부일 경우는 객잔에 갈 필요가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그곳에서 알아서 숙식을 해결해 줄 테니까.”

소소하긴 해도, 강호행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인 정보였다.

주서천도 아는 것만 아니었다면 귀담아듣고 머릿속에 넣어 명심했을 것이다.

“허억, 지부에서 숙식을 제공하다니!”

소상이 입을 떡 벌리면서 놀라워했다.

무림맹 각 지부는 시골에 있다 해도 작지는 않다.

어딜 가도 백 명 정도의 숙식은 충분히 해결한다.

다만 아무나 되는 건 아니다.

머물기 위해선 그에 따른 볼 일이 있어야하고 허락도 받아야 했다.

까놓고 말해서 삼류나 이류 정도 되는, 소속도 없는 무인들은 식객이라면서 내쫓는 편이었다.

지부에서 숙식을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삼류는 아니라는 의미긴 하다.

다만 이렇게 과장할 정도는 아니다.

소상의 반응 자체가 아부가 목적인 듯, 과함이 다분했다.

“혹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존함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소상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굽실거렸다.

누가 봐도 의도를 알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화산의 구풍일세. 거참, 정말 열정적이군그래.”

“허억! 십사검협!

어쩐지 멀리서부터 봤을 때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대화산의 제자들이셨군요!”

소상이 눈을 부릅뜨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거물!’

십사검협 구풍이라 하면 무림에서도 알아주는 고수다.

강호 초출로 보이는 애송이들의 보호자로 보여서 고수인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상인에게 연줄이란 건 특히나 중요하다.

그 연줄이 되는 대상이 거물이면 두말할 것도 없이 좋다.

소상은 보이지 않는 꼬리를 살랑이면서 구풍에게 칭찬 세례를 퍼부었다.

“조용히 좀 하십시오.”

보다 못한 장홍이 한소리 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치는 감정은 모멸감이었다.

“댁은 자존심도 없소?”

장홍이 한심하다는 듯이 소상을 쳐다봤다.

그러자 소상은 미안한 듯이 가벼워 보이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눈치는 아예 없는 건 아닌 듯,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홍, 무슨 말버릇이냐. 정파인이라면 말을 조심해라.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나 말을 좀 부드럽게 하도록 하거라.”

구풍이 그런 장홍을 꾸짖었다.

“죄송합니다, 사백.”

구풍은 장홍이 고개를 숙이자 그 이상 혼을 내지는 않았다.

그렇지않아도 소상의 아부가 조금 불편하던 참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저 때문에 분위기가 조금 엉망이 된 것 같군요.

그 보답으로 제가 나중에 대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조금있으면 지부에 도착합니다.”

장서연도 뭐라 한마디 하려다가 말았다.

어차피 지부에 도착하면 끝날 인연이었으니까.

“이곳입니다. 혹시나 안내할 일이 있으시다면 근처의……”

“안내면 됐네. 고마웠네.”

구풍이 쓰게 웃으면서 도중에 말을 끊었다.

귀찮게 굴지 말라는 걸 우회해서 말한 것이다.

“아이고, 안내자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분은 또 없을 겁니다.

어쨌거나 꼭 보답할 터이니 불러만 주십시오! 헤헤헤!”

소상은 간신배처럼 웃고는 떠나갔다.

* * *

지부에 도착해 방명록을 썼다.

명부 담당자가 이름을 보자마자 친절하게 대해 주며 안내해 줬다.

“칫, 우리에게는 계속 기다리라고 하더니만.”

근처에서 안내를 대기 중이던 방문객 중 한 명이 중얼거렸다.

“어허, 이 사람아. 말조심해.

아까 언뜻 봤는데 화산파의 도사님 인 모양이야.”

“헙, 화산파? 이런, 큰일 날 뻔했군. 고맙네.”

방문객들은 혹시라도 들렸을까 봐 얼른 머리를 숙여 얼굴을 감췄다.

“무인이 아니니 우리가 들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

장서은이 미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사제는 어떻게 생각해?”

“무엇이 말입니까?”

자신의 부름에 주서천이 반문했다.

“명부 담당자의 대우.”

그녀의 말에 주서천이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원래 삶은 결코 평등하지 않습니다.

출신만으로도 대우가 바뀌지요.

아니, 출신 외에도 능력에 따라서 바뀌기도 합니다.

그게 현실이란 거 아니겠습니까.”

주서천도 회귀 전에 차별은 받아봤다.

아니, 회귀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출신 때문에 그럭저럭 대우를 받긴 했지만, 워낙 평이했던 무인이었던지라 어떨 때는 차별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내화외빈이라는 별호로 화산파 내에서 비웃음이나 차별을 받고 있었다.

“차별이란 건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화산파 내에서만 해도 연화각과 ……”

주서천은 말을 계속해서 이으려다, 주변의 시선에 아차 싶었다.

생각을 너무 많이 말했다.

도저히 열두 살로 보이지 않는 말이다.

주서천은 눈알을 데구루루 굴리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하하, 내화외빈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머릿속은 화려하구나.

어딘가 주워들은 건 많아가지고는!”

장홍은 주서천의 말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주서천은 내화외빈.

어쩌다가 기연과 요행으로 연화각에 겨우 들어온 무능한 사제였다.

장서은도 조금 신기하게 바라볼 뿐, 그다지 깊이 생각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흠.”

다만 구풍만큼은 달랐다.

그는 꽤나 흥미롭다는 듯이 주서천을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장강에서의 일도 그렇고, 주서천 저 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오성이 뛰어나구나.

자질만 좋았다면 매화검수도 노려볼 만했을 텐데, 참으로 아쉬워.’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가가 약간 높아진 것에 불과했다.

주서천을 딱히 대단하게 보지는 않았다.

‘휴, 조심하자.’

주서천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생에서 할 말을 못 하고 살아온 억울함 때문에 그런지 뭐만 하면 생각이 곧바로 나오려 한다.

물론 그렇게 살 생각이긴 했지만, 그래도 참아야 할 때가 있는 법이었다.

“개양 지부장 신도균(申屠均)이라고 하오.

십사검협을 뵙게 되어 영광이오.”

신도균이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인사했다.

“저야말로 귀주의 최전선에서 지휘를 맡고 있는 개양 지부장님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구풍도 웃는 얼굴로 신도균의 인사에 답했다.

신도균은 십사검협 정도 되는 사람이 자신을 치켜세워 주자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그려냈다.

“주무실 곳과 식사는 언질을 해 두었으니 이 방 안을 나가면 안내를 받을 거요.”

“개양 지부장께서 이리도 신경을 써 주다니, 그 배려에 감사하는 바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오.

그나저나, 저 뒤의 소협들은 연화각원들 같은데…… 맞소?”

세 사람이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화산파의 연화각은 무당파의 무룡관(武龍觀)만큼 무림에서도 이름 있고,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성년의 나이가 되기 전, 보호자를 대동해 강호에 나오면 화제가 되곤 한다.

화산파 출신에 약관도 되지 않은 아이들.

그리고 초절정 고수가 붙어있다면 나오는 답은 뻔하다.

“올해에도 화산의 미래를 짊어질 고수들을 볼 수 있다니, 개양 지부장 자리도 할 만한 것 같소.”

또한 연화각원들이 개양에 온 건 처음이 아니다.

역대 수많은 연화각원들이 이곳 개양을 찾았다.

귀주가 최전선이란 건, 적도 많지만 그만큼 무림맹의 고수들도 많다는 의미였다.

그렇다는 건 신경만 잘 쓰면 고수들의 보호를 받으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연화각같은 영재 기관 외의 후기지수들도 경험을 쌓고 공적을 세우는 목적으로 자주 방문하기도 했다.

연화각의 보호자의 경우, 매년 달라 구풍과 개양 지부장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신도균 입장에서 연화각의 방문은 연례행사였다.

“어떠한 임무를 내려 주시건 화산파의 이름을 걸고 완수하겠소.”

그리고 이 실전을 쌓기 위한 임무는 개양 지부장이 대대로 재량껏 하달해 줬다.

이곳 귀주의 전황에 대해서 개양 지부장만큼 아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하하, 과연 십사검협답게 의협심이 남다른 것 같소.

임무는 내 금방 전해드리리다.”

신도균이 부드럽게 웃었다.

“아, 참고로 현재 개양 지부에는 제갈세가가 와 있소.

아마 그들과 임무를 함께 수행하게 될 터이니, 미리 가서 호흡이라도 맞춰 보는 것이 나쁘지는 않을 거요.”

구풍은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했다시피 귀주는 경험을 쌓거나 공적을 세우는 곳.

화산파 외에도 방문하는 정파인들이 많았다.

대부분은 일 년에 한 번꼴로 방문하는 편이지만, 몇몇 세력들은 제외이다.

그중 하나가 제갈세가다.

제갈세가는 호북에 위치해 있으나, 항상 전황을 파악하고 전략을 세우기 위해 정찰 겸 경험으로 제갈세가의 식구를 자주 보냈다.

어차피 제갈세가는 전선에서 직접 싸우는 일이 별로 없으니 상관없었다.

‘제갈세가!’

주서천은 제갈세가라는 말에 잔뜩 흥분했다.

‘이 시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21 화

구풍은 제갈세가가 모여 있는 장소를 찾아갔다.

찾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개양 지부가 그렇게 넓은 것도 아니었고, 제갈세가는 동격의 세력이 아니라면 접근하기가 힘들었다.

다른 방문객, 특히 무인들의 경우 그들이 세운 벽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구경만 했다.

“십사검협!”

언뜻 봐도 학사 차림을 한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멀리서 구풍을 보고 손을 들어 인사했다.

“오, 고력 염사(投歷腐士) 제갈삭(諸葛削) 공 아니오? 정말로 오랜만이구려.”

구풍은 제갈삭과 구면이었다.

“아마 삼 년쯤 됐을 거외다.”

제갈삭이 구풍의 뒤를 힐끗 쳐다봤다.

“그나저나 뒤의 소협들은 딱 봐도

연화각원인 것 같소만, 혹시 보호자가 십사검협이시오?”

“정확히 알아보셨소”

“하하, 우연이군. 나 역시도 같은 처지요.”

제갈삭이 잘됐다는 얼굴로 뒤편에서 대기하던 무리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연령과 성별은 다양했지만, 대부분 가날픈 체구를 지닌 것이 공통점이었다.

“마침 제갈세가에서도 정파의 후기지수가 될 아이들을 데리고 온 참이오.

이것도 인연인 것, 괜찮다면 화합의 장을 만들어서 교류하고 싶소. 다들 제 조카들이요.”

“안녕하십니까, 대협 소문으로만 듣던 십사검협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갈삭의 조카는 세 명이었다.

그중 제일 앞장선 청년이 눈에 띄었는데, 피부는 새하얗고 턱선은 가늘며 미모 또한 빛을 발했다.

변성기가 지난 목소리나 의복이 아니었다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곱고 예쁘장한 외모였다.

그 뒤에는 주서천과 마찬가지로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남아와 여아가 있었다.

남아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얼굴을 보이지 않아 음울한 분위기를 냈다.

여아의 경우는 남아와 달리 당차고 고고한 느낌이 잔뜩 묻어났다.

미모 또한 낙소월 정도는 아니었으나 상당했다.

“오, 혹시 그대는……”

구풍이 눈을 크게 뜨고 청년을 쳐다봤다.

누구인지 알아챈 눈치 였다.

“제갈상(諸葛想)이라고 합니다.

강호에선 미옥공자(美玉公子)라는 부끄러운 별호로 불리고 있습니다.”

미청년이 뺨을 붉히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어디서 많이 봤나 했는데 제갈세가의 소가주셨군!”

구풍이 손바닥 위에 주먹을 올리면서 ‘역시’ 라고 작게 중얼거렸다.

미옥공자, 제갈상.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어릴 적부터 그 아름다움은 일찍이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그 외에도 후에 제갈세가를 이끌어갈 소가주로도 명성이 자자했다.

“제갈수란(諸葛秀卵)이에요 . 상 오라비와는 이복 남매예요.”

제갈수란의 소개가 조금 민감하긴 했으나, 구풍은 흠칫했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오대세가의 가주 정도 되는 사람의 자제와 여식이라면, 이 정도의 사정은 흔한 편이었다.

“아, 제갈수란!”

제갈수란이라는 이름에 장홍이 놀란 듯 감탄사를 흘렸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됐다.

“이런 죄송합니다.”

장홍은 자기 탓에 소개가 갑작스레 끊긴 것 같아, 뒤통수를 긁적이면서 사과했다.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네.

반대로 연화각원이 수란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기쁠 뿐일세.”

제갈삭이 흐뭇하게 웃었다.

“그녀에 대해 어찌 모르겠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장홍이 제갈수란을 힐끗 쳐다보곤 얼굴을 붉혔다.

줄곧 수련만 하고 자란 아이에게 있어서 제갈수란의 존재는 가슴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자고로 남자란 건 아이건 노인이건 간에 이성의 미모에 항상 관심을 갖는 법.

이건 불변의 법칙이다.

제갈수란은 비록 첩의 여식이긴 하나, 가주의 딸이라서 유명세를 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고고하고 기품 있어 보일 뿐만 아니라 제갈세가 출신답게 지성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러한 점에 제갈수란이 첩의 자식이라고 하지만 그 누구도 우습게 보지는 않았다.

“과찬이세요, 소협. 그래도 그리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네요.”

제갈수란은 비록 웃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한결 부드러워진 눈길로 답해 줬다.

장홍의 얼굴이 더더욱 홍시처럼 변해 갔다.

“그리고……”

“제…… 제갈승계(諸葛勝計)라고합니… 다……”

제갈수란과 마찬가지로 동년배인 소년.

제갈승계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자기를 소개했다.

힘없는 목소리, 축 늘어진 어깨, 자신감 없어 보이는 눈치는 제갈수란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음, 식견이 부족하여 공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구려. 미안하오.”

구풍이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승계는 원래 세가 내에서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니 당연합니다.

조금 부족한 아이라서,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착한 아이입니다.”

제갈상이 옆에 서서 제갈승계의 어깨를 두들겨 줬다.

참으로 사람 좋은 미소였다.

“하하, 왠지 모르게 사제랑 잘 지낼 것 같은데?”

장홍이 주서천의 어깨를 두들기면서 중얼거렸다.

대놓고 제갈승계를 얕잡아 보는 발언이었다.

“괜찮다면 화산의 미래를 짊어질 소협들에 대해서도 소개해 줄 수 있겠소?”

제갈삭이 흥미로운 눈길로 연화각원 셋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구풍은 물론이라면서 장홍부터 소개했다.

한편 소개가 제일 뒤로 밀린 주서천은 아까부터 시선을 한곳에 고정하고 있었다.

‘하하하!’

마음 같아선 소리 높여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흥분된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제갈세가의 혈족 중, 특정 이름이 나온 뒤부터는 쭉 이러했다.

어떠한 감각이 척추를 훑고 지나갔다.

그 시선은 한 사람만을 쫓았다.

‘솔직히, 당신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어.

혹시 하는 마음만 가졌을 뿐이었다고.’

이 시대는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나, 후손들에게 길이길이 남을 정도로 영웅이 많았다.

훗날 천군사(天軍事)라 불리게 될 제갈상도 그 영웅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무림이 전란으로 가득 찰 때, 제갈상은 채 서른도 되지 않아 비상한 능력을 보여 인정받는다.

제갈상은 가주직을 물려받기도 전, 능력와 성품을 인정받아 무려 무림맹의 군사에 올랐다.

다만 너무나도 비상한 능력 탓에 적대 세력들의 표적이 되어, 군사에 오른 지 오 년 만에 암살당했다.

‘상왕을 만나게 되면, 그를 어떻게든 설득해서 당신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 뒤, 무림맹의 군사는 이복동생인 모사미봉(謀士美鳳) 제갈수란이 이어받게 된다.

제갈상이 활약하고 있을 무렵, 제갈수란은 그의 곁에서 보좌했는데 그녀의 능력 역시 범상치 않았다.

제갈상이 군략과 전략이 능했다면, 제갈수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모략에 능했다.

사람들은 이 둘을 보고 비록 서로 다른 배에서 태어났으나, 누구보다 더 깊게 이어져 있다며 칭송했다.

전란의 시대 당시 무림맹에서 나온 수많은 전략과 군략, 그리고 모략은 대부분 이 둘에게서 나왔다.

세간에선 이를 보고 제갈량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져 환생했다면서 말을 할 정도였다.

다행히도 모사미봉은 천군사의 사후 주변을 경계하면서 살아남으나, 전란이 모두 끝날 무렵 사망했다.

사인(死因)은 아이러니하게도 천군사와 같은 암살.

그렇게 경계하고 조심했으나 결국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한 명……

‘만각이천(晩覺摘天) 제갈승계!’

뒤늦게 알려진 하늘, 제갈승계.

상왕과 더불어 영순위로 찾던 인물이었다.

천군사와 모사미봉의 이름을 들었을 때는 조금 놀랐긴 했으나 이상하게 여길 정도는 아니었다.

두 사람의 우애는 원래부터 끈끈했다고 소문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붙어 다녔다는 건 알고 있었다.

또한 제갈세가의 직계 혈통들이 자주 개양 근처에 방문해 전황을 살피니 이곳에 있는 것도 이해했다.

하지만 제갈승계는 아니다.

그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만각이천, 제갈승계는 원래 이러한 장소에 올 만한 사람이 아니다.

원래는 상왕에게 부탁하거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 찾을 생각이었다.

개양에 제갈세가가 와 있다고 해서 혹시 하는 마음을 가지긴 했으나, 그렇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야…… 호북에서 나올 수는 있냐,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그가 정말 무능했기 때문이었다.

“쯧쯧. 아무리 네가 무능해도 그렇지, 보는 사람이 다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구나. 태도 좀 고쳐라.”

연화각원들의 대략적인 소개가 끝나자, 제갈삭이 혀를 차면서 제갈승계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연화각의 소협들을 봐라.

다들 네놈과 비슷한 나이임에도 이렇게 훌륭하지 않느냐.

소협들을 반만 닮아도 내 널 이렇게 구박하지는 않았을 게야.”

“ ……”

제갈승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였다.

너무 고개를 숙여 얼굴도 확인할 수 없었다.

“세가에서 네놈에게 요구하는 건 별로 대단한 게 아니다.

그저 남들처럼 똑같이 기초적인 내공심법을 연공하고, 기관지술(機關之術)과 같은 쓸데없는 건 그만두고 기문진법(奇門陣法)을 공부하라는 것뿐이야!”

구풍은 어찌할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상당히 곤란해하는 얼굴이었다.

제갈삭은 주변의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제갈승계를 면전에서 꾸짖고 나무랐다.

제갈승계는 여전히 머리만 푹 숙인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흐흠.”

제갈삭은 한참 동안 화를 풀어내곤,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헛기침을 토해 냈다.

그러고는 시선을 화산파 측으로 돌려, 머리를 긁적이면서 미안하다는 얼굴로 사과했다.

“화산파의 소협들과 십사검협 앞에서 추태를 보여 죄송하오.

다만, 이 아이가 화산의 연화각원들을 보고 반성하여 깨우치는 게 있었으면 해서 그랬소.”

“괜찮습니다.”

구풍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쓰게 웃었다.

“짧지만 그동안 임무를 함께 수행하면서 전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타박해 주시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심각하오.

아무짝에도 쓸모없긴 하겠지만, 부디 임무를 통해 바뀌었으면 하오.”

제갈삭이 신랄하게 독설을 내뱉었다.

지켜보던 사람들도 기가 질리게 만들 정도였다.

“이게 다 네 행동 때문이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니 한사관괴(閑事管怪)라 불리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 관여해 기이하기 짝이 없다.

강호에 출두하기도 전에 얻은 별호였다.

무림 전체에 알려질 정도는 아니었으나, 제갈세가가 위치한 호북에선 꽤나 알려진 별호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별호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그다지 좋은 뜻은 아니었다.

주서천이 제갈승계가 올 것이라는 걸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의 제갈승계에 대한 취급은 무림은 물론이고, 제갈세가 내에서조차 최악을 달리고 있었다.

‘그래, 이런 취급을 받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기관지술은 사장(死藏)된 기술이다.

기문진법과 더불어 기관지술을 자랑으로 여겼던 제갈세가조차도 등한시할 정도였다.

이는 기관지술을 정사를 막론하고 마도이세까지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적대 세력이 쓴다면 파훼하기 위해서라도 관심을 뒀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결국 양측 다 약간의 기록만 남겨둔 채 내버려 두었고, 지금 시대에 와서는 거의 잊혀졌다.

일단 기관지술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충분히 구박을 받을 연유가 된다.

그런데 제갈승계는 거기서 더해 세가의 무공조차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세가의 무공을 배우려고 했으나 무학에 대한 재능이 전무했다는 말이 맞으리라.

확실히 제갈세가의 핏줄이 원래 여타 무림인에 비해서 무학에 대한 자질이 없기는 하다.

골격도 마찬가지다.

범인(凡人)에서 그쳤다.

그 이상은 제갈세가의 역사 중에서도 손에 꼽는다.

애초에 제갈세가는 대대로 몸보다는 두뇌가 총명한 자가 많이 나오는 집안이었다.

솔직히 무공은 잘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건 머리와 기문진법 등이다.

그러나 제갈승계는 자질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일반적인 무림인 수준도 되지 못했다.

이러한 최악인 자질도 손에 꼽을 정도로 찾기 힘든 편이었고, 기문진법조차 하지 않으니 욕을 먹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