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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九章내화외빈( 內華外貧) (33/254)

第九章내화외빈( 內華外貧)

조매와 동매가 지고 설중매가 폈다.

그리고 다시 설중매가 사라지고, 동매가 모습을 드러냈다.

주서천이 연화각에서 생활한 지도 어언 일 년.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홀렀다.

그동안 매화생공은 빠짐 없이 꾸준히 해 왔다.

덕분에 열한 살이 된 지금, 사십오 년의 내공을 쌓았다.

자하신공은 일성에서 이성을 지나 삼성(三成)을 달성했다.

여전히 지독할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이는 결코 주서천이 일부러 조절한 것 같은 게 아니었다.

오히려 상당한 정신력을 소모해 수련했다.

여타 무공들은 이렇게 신경을 쓰면 연공하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거진 일 년이면 충분했다.

실제로 매화오행검도 전부 대성했다.

주변에는 비밀로 적당히 숨겼지만, 

육합검이나 낙영검법처럼 기초검공은 몇 달밖에 안 걸렸다.

“후.”

과거에 이루었던 화경의 힘으로 대부분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하신공은 난해했다.

괜히 화산파의 신공이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누군가가 가르쳐 줬으면 보다 수월했겠지만 자하신공에 대해서 조언을 해 줄 사람은 장문인뿐이었다.

장문인에게 가서 자하신공을 알고 있으니 조언을 요구할 수 없는 노릇이니,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화산파의 사대제자들이 괜히 어린 시절을 연화각에서 보내려는 게 아니다.

그만큼 대접이 좋았다.

주서천이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건 자유에 가까운 개인 수련이었다.

몇몇을 제외하곤 제한이 없었다.

연화각에 오고 몇 가지 상승의 무공을 배웠다.

내공심법은 매화육합심법(梅花六合心法)이었다.

화산파를 대표하는 내공심법은 넷으로 나뉜다.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매화기공이 첫 번째요, 매화육합심법과 옥녀심공(玉女心功)이 둘째와 셋째였다.

매화육합심법과 옥녀심공은 적전제자에게만 허가되어 있다.

이는 이 둘이 화산파의 근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옥녀심공의 경우, 오직 여성을 위해서만 만들어진 내공심법이기에 남자는 배울 수 없다.

네 번째는 자하신공.

화산파의 일대신공이다.

주서천은 매화육합심법과 매화생공 둘 다 빼먹지 않고 수련했다.

둘 다 전생에서 질리도록 수련했던 것인지라, 동시 그것도 초고속으로 연공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십사수매화검법, 추격술, 해독법 등의 무공 외에도 강호에 필요한 것들을 가르침 받았다.

괜히 연화각이 아니라는 듯, 합격자들은 일반 사대제자들과 수준이 다른 교육을 받았다.

주서천은 오늘도 적당히 십사수매화검법을 교두가 보는 앞에서 보인 뒤, 개인 수련 시간을 가졌다.

주로 매화나무 근처에 앉아 매화생공을 운기했다.

이렇게 꾸준히 해주는 게 내공을 쌓는 데 도움됐다.

“사형.”

운기를 끝내고 눈을 뜨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이러다가 정말 주화입마 걸리겠다.”

주서천이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말했다.

일 년 전, 두 사람은 연화각에 나란히 입각했다.

그로 인해 일어난 반향은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다.

“놀라게 했다면, 정말로 죄송해요.”

낙소월이 눈을 껌뻑 뜨면서 사과했다.

빈말이 아니라 목소리에서 정말로 미안한 기색이 느껴졌다.

“그렇게까지 사과할 필요는 없어 .

그나저나 여전히 애늙은이군…… 아니, 그 할멈의 사손이니 당연한가.”

낙소월은 열 살.

나이에 비해 어울리지 않는 성숙한 정신이나 행동은 여전했다.

누군가를 배려하려 하고, 양보한다.

심지어 몇 살이나 많은 사형제들이 상담을 받기도 했다.

어딜 봐도 열 살의 관록이 아니었다.

이는 낙소월이 어릴 적부터 비상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사조인 철혈매검의 엄중한 교육 탓이기도 했다.

“사형.”

낙소월이 볼을 부풀렸다.

“그래, 알았어. 미안하다. 사과하마.”

주서천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남이 보기에 철혈매검은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일지 몰라도 제자에겐 아닐지도 모른다.

주서천이 순순히 사과하자 낙소월이 흡족해했다.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는 태도는 보기 좋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나저나, 너도 참 별나구나.

나 같은 사람이랑 어울리고 말이야.”

주서천은 강호에 출도하기도 전에 별호가 생겼다.

내화외빈( 內華外貧)

겉모습만 요란하고 실제로는 아무 것도 없다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한 별호였다.

일 년 전, 입각 심사 때 주서천은 검법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러 승리했다.

처음에는 무언가 사술이 아니나는 말이 나왔지만, 주서천이 영약이라는 기연을 얻은 걸로 해결됐다.

“정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네.”

“으, 저런 놈에게 기연이 찾아가다니.”

“결국은 운만 좋은 놈이라는 거잖아?”

그 대신 주서천에 대한 평가는 더더욱 절하됐다.

영약.

곧 내공의 힘으로 밀어붙여서 승리했다는 건, 결국 본연의 무위는 형편없다는 의미다.

특히나 몇 년 동안 노력한 심사생들 입장에선 주서천이 철천지원수보다 더더욱 원망스러웠다.

어쨌거나, 외화내빈이라는 말과 달리 반대로 내공은 화려하나 무공 실력은 없다 해서 붙은 별호였다.

당연하지만 주서천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반대로 이런 평가를 받는 것에 대해 내심 만족하고 있었다.

‘욕먹는 게 조금 짜증나지만, 이상적이다.’

연화각에 들어왔지만, 평재(平才)로 인식됐다.

훗날 모습을 드러낼 적들의 눈을 피할 수 있었다.

과거의 인생을 후회하며 현생을 되도록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로 했지만 그래도 이것만은 지켜야 했다.

“있잖아요, 사형 ”

낙소월이 주서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

“정말로, 평소에 보여 주는 게 본래 실력인가요?”

“그래.”

주서천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거짓말을 했다.

연화각에 들어온 이후, 주서천의 행보는 여러모로 파격적이었고 또 주목과 기대를 받았다.

입각했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를 안 좋게 봤다.

하지만 그렇지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설사 영약의 힘으로 운 좋게 입각한 것이라도 제대로 가르치면 변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연화각에 편성된 몇몇의 교두들이 특히나 그랬다.

임무로 강호에 나간 유정목을 대신하여, 비록 자신들의 제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진지하게 가르쳐 줬다.

하지만 본래의 실력을 감춰야 할 주서천이 그걸 제대로 따를 리 없었다.

적당히 맞춰 미묘한 실력을 보였다.

“그리고 심옥련 장로님이 나 싫어하는 거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나에게는 접근하지 않는 편이 좋아.”

주서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낙소월이 따라오려고 했지만, 손을 들어서 제지했다.

‘으, 아까워 죽겠네.’

겉으론 흥미 없다는 듯이 멋있는 척은 다 했지만, 실은 당장 돌아가서 낙소월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매화검봉, 낙소월.

그녀를 보았던 기억은 아직까지도 기억 깊숙한 곳에 강렬하게 남아 있었다.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들 앞에 서 있었으며, 매화검봉이라 칭송받으면서 수많은 남자들의 구애를 받았다.

워낙 그 명성이냐 실력의 차이가 많이 나서 주서천은 그 등만 쫓을 뿐, 말 걸 용기조차 없었다.

그런 사람이 함께해 주고, 이름을 불러 주고, 웃어 주고, 이야기를 나눠 준다.

충분히 행복한 일이었다.

몇 년 뒤에 낙소월은 무림제일미를 논할 정도로 미녀가 되는 동시, 영웅으로서 우뚝 솟아오른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주서천이 동경했던 사람

몇 년, 몇십 년, 죽기 전까지 쫓았던 사람들.

그 사이에 낙소월은 분명히 있었다.

“좀만 더 참아라, 주서천.”

낙소월도 낙소월이지만 심옥련도 문제였다.

입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시기, 심옥련은 주서천을 싫어하는 티를 내며 상당히 신경 썼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주서천이 형편없으며 딱히 사고를 치지 않고 조용히 있자 흥미를 껐다.

지금은 눈에 띄지 않게 인내할 때.

주서천은 이 점을 명심하고, 또 명심했다.

* * *

연화각에는 화산파의 천재, 기재, 수재들이 모여 있다.

그 인원은 주서천을 제외하고 아홉 명이었다.

주서천은 처음 연화각원들을 보았을 때 예상은 했으나 역시 놀라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구성 인원들 대부분이 낙소월과 나란히 전장에서 활약한 인물들이라 그렇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연화각은 화산파의 인재들만 모인 곳

그리고 후기지수로 성장시키기위해 여러 신경을 써 준다.

이 중에서도 정말로 특출 날 경우, 일찍이 상승의 무공이나 영약을 제공해 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야말로 미래는 떼어 놓은 상상.

장문인이나 화산오장로, 매화검수는 구 할 이상이 연화각 출신이었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

낙소월을 비롯하여 연화각원 전부 연이라곤 하나도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전부 다른 세상에서 살았다.

이들은 주서천의 얼굴은 물론이고 이름도 모른다.

그건 전생에 화산오장로가 되었던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에 있는 모두…… 전란의 시대에서 사라진다.’

몇십 년간 계속된 전란의 시대.

그 시간 동안 화산파의 전력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매화검수, 화산오장로, 심지어 장문인까지.

일찍이 영웅이라 불린 이들은 평화를 대가로 목숨을 잃었다.

눈앞에 사형제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살아남는 건 주서천 혼자뿐이었다.

‘아니, 이제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려나. ’

회귀 이전의 삶에서 주서천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약간의 운과 어중간한 무위 덕분이었다.

대부분 정예라 불리는 이들이 주요 임무에 투입됐고, 암살의 대상이 됐다.

삼류, 이류 정도의 하수들은 대부분 병력으로 소모되어 사라져 갔다.

그에 반면 적당한 수준의 무인들은 스스로의 몸을 어찌어찌 지켜가면서 생존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주서천도 중간을 넘어, 일단은 영재반인 연화각에 들어오게 됐으니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나도 누군가가 쫓는 등이 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내화외빈!”

자신의 별호를 부르는 목소리에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잔뜩 성이 난 얼굴을 한 소년이 있었다.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눈초리는 험악했고, 잔뜩 흥분한 듯 씩씩거리면서 거칠게 심호흡했다.

장골이 여타 아이들보다 지대한 편이었고, 머리가 가시처럼 삐죽빼죽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예, 이건(利建) 사형.”

이건은 세 살 위, 올해로 열넷인 연화각원이다.

“네놈!”

이건이 핏발 선 눈동자로 주서천을 사납게 노려봤다.

그 눈동자에 떠오른 감정은 명백한 질투였다.

주서천은 곤란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고, 이건은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러곤 우악스러운 손으로 멱살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네가 감히 사형이 한 말을 쥐똥으로 받아들여?

내 분명 저번에 낙매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을 터.

그런데도 감히 낙매에게 말을 걸어!”

“오해입니다, 사형.”

주서천은 순간 성가시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손사래를 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낙소월도 낙소월이지만, 주서천 역시 어린아이답지 않은 별종이었다.

“제가 어떻게 사형의 말을 무시하겠습니까?

사매는 그저 교두님의 전언을 전달한 것뿐이었습니다.”

주서천이 호소하듯이 말했다.

“정말이냐?”

이건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었다.

멱살을 흔들어주는 것도 잊지않았다.

“예, 정말입니다.”

“……후우”

그제야 이건은 멱살을 쥔 손에 힘을 풀었다.

“재수 없는 놈!”

이건은 주서천을 한 번 째려보곤, 몸을 돌렸다.

여전히 성이 난 발걸음이었다.

“여전히 목소리는 정말 크네.”

입각했을 때부터 이건은 주서천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낙소월이 주서천에게 갖는 관심 때문이다.

낙소월은 화산파에 입문했을 때부터 유명했다.

자질도 자질이지만, 눈에 띄는 미모가 특히 그랬다.

입문하자마자 남아(男兒)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고, 그 탓에 자제와 절제에 대한 교육만 높아졌다.

이건 역시 그 남아 중 한 명이다.

그래서 주서천이 낙소월과 대화하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찾아와서 시비를 걸었다.

가끔 그 행동에 조금 화가 날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건이 선을 넘지 않은 덕에 참을 수 있었다.

이건 역시 여타 화산파의 사대제자들처럼 매화검수를 꿈꾸고 있다.

연화각에서 사고를 치게 되면 훗날 매화검수에 오르는 데 감점이 될지도 모른다.

그게 마음에 걸려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직접적으로 크게 피해를 준 적은 없었다.

선을 넘는다면 주서천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혼내(?) 주려고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이건 외에 다른 연화각원들과의 관계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교류 자체가 없는 편이었다.

처음에는 연화각 때의 일로 경멸어린 시선도 받아 봤다.

신성한 심사장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그것도 초기에만 그랬지, 일 년 정도 지나자 그들의 시선도 무관심으로 바뀌었다.

합격진의 수련을 할 때 손발이 맞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주서천이 적당히 따라가서 별말은 하지 않았다.

대놓고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이건 정도였다.

그 외의 연화각의 생활은 특별한 일없이 평탄한 일과를 보냈다.

주로 무공 수련으로 시간을 보냈고, 하루 수련을 끝내면 명상으로 삼안신투의 비고에 대해 고민했다.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이 년 남았다.

그동안 열심히 계획을 세워 두었다.

행동으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언제냐.’

연화각원들은 일반 제자들보다 뭐든지 빠르다.

강호 출도도 마찬가지로 약관도 되지 않아 나선다.

설사 실력이 조금 부족하다 하여도, 경험을 쌓는다는 명목하에 보호자가 붙어 나가게 된다.

이는 연화각의 전통인 동시 교육 정책.

주서천은 반드시 오게 될 그 날을 기약하며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 * *

앞을 보면 느리고, 뒤를 보면 빠르다는 말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덧 일 년이 또 지났다.

“허, 언제 봐도 내공만큼은 괴물이 따로 없구나.”

화산오장로, 영진이 진맥을 끝내곤 짐짓 감탄했다.

주서천은 열두 살이 됐다.

매화생공으로 일 년마다 육 년의 내공을 쌓았고, 그 덕분에 내공의 양이 총 오십일 년이었다.

앞으로 조금만 있으면 무려 일 갑자다.

구파일방의 다른 제자라고 해도 이 정도의 성과는 낼 수 없었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일 갑자를 앞에 두고 있다니, 기연이 괜히 기연이라 불리는 게 아니지.”

화산파에서 주서천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단약사 영진이 그중 한 사람이었다.

이 년 전, 영진은 주서천을 관찰하겠다면서 입각 허가에 손을 들어 주었다.

관찰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다.

그저 정기적으로 몸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뿐이었다.

‘수령신과가 아니라, 매화생공의 힘이지만 말이야.’

주서천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영진은 주서천의 내공이 날이 갈수록 초고속으로 증가하는 걸 보고 수령신과의 덕이라 착각했다.

매화기공에 대한 비밀, 매화생공에 대해서 모르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좋은 걸 너랑 그 약골이 나눠 먹다니 .

이 치사한 놈들아. 문파의 어르신부터 챙겨 줘야 하지 않느냐.”

영진이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워했다.

“약골 아닙니다.”

“허미, 사부 얘기 하니 눈깔을 부라리는 거 봐라!”

영진이 못살겠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거 그만 좀 놀리십시오. 열두 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 놀리는 게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주서천이 질렸다는 듯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암, 재미있지! 껄껄껄!”

영진은 정기적으로 진맥하러 방문하기에, 교류가 제일 잦다.

이 년 동안 그럭저럭 친해졌다.

그래서 이렇게 농담을 주고 받았다.

“진맥이 끝났다면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네 사부 소식 들고 왔는데?”

“영 장로님께서는 화산 제일의 장로이십니다!”

주서천이 일어나려다 말고 자리에 앉았다.

무릎을 모으고 그 위에 손을 공손히 올려 두었다.

이 년 전, 유정목은 강호에 출도한 이후로 대부분의 시간을 화산의 바깥에서 보냈다.

이따금 화산에 돌아와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명령을 하달받고 하산했다.

이에 주서천은 불만이긴 했지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유정목은 좋지 못한 건강 탓에 그동안 그만큼 편의를 받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 빚을 갚을 때가 됐다.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니까 눈깔에 잔뜩 들어간 힘 좀 풀어라.”

영진이 질린 얼굴로 유정목의 근황을 전했다.

그 말대로 정말 대단한 건 아니었다.

어디에서 어떠한 임무를 수행하여 완수했다는 정도였다.

화산오장로와 친해지다 보니, 주서천은 유정목이 서신을 보내기도 전에 스승에 대한 소식을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주서천이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몸짓 하나하나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입에 훈훈한 미소가 절로 걸렸다.

누가 봐도 참으로 멋지다고 생각되는 사제애(師弟愛)였다.

“아, 그리고 네놈도 슬슬 나갈 채비를 해야 할 게다.”

영진이 종이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면서 말했다.

“……”

주서천이 눈을 크게 떴다.

‘드디어!’

쿵! 쿵! 쿵!

심장이 거칠게 뛴다.

호흡이 조금 빨라졌다.

뇌 속에서 무언가가 분비되며 열기를 뿜었다.

영진은 주서천이 어떠한 반응을 보이는지도 모르고 여전히 시선을 종이에 고정한 채로 말을 이었다.

“연화각원들이 일반 제자들에 비해서 강호 초출이 이른 건 네놈도 들었으니 잘 알고 있을 게……”

영진이 뭐라 열심히 설명했으나, 잘 들리지 않았다.

주서천은 최대한 고양된 기분을 가라앉혔다.

‘드디어, 때가 왔다.’

기한이 일 년밖에 남지 않아서 올 해 들어 상당히 초조했다.

다행히도 그 초조와 불안도 이제 끝이다.

강호 출도.

이 넉 자가 주서천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

연화각의 강호 출도는 전원이 아니다.

정해진 몇몇 인원들만 나간다.

우선순위는 연화각에 있을 수 있는 연령으로 따진다.

열다섯 살이 되기 전까지 강호에 나가지 못한 인원들이 무조건적으로 영순위로 정해졌다.

그 외에는 추천이나 무공의 순위다.

추천의 경우, 보통 스승이냐 교두가 강호 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걸 연령 다음으로 우선순위로 삼는다.

주서천은 미리 서신을 통해 유정목에게 부탁해 두었다.

유정목은 걱정이 많은 눈치였으나, 여태껏 어리광하나 부리지 않았던 제자가 거의 처음으로 애원에 가깝도록 부탁하자 어쩔 수 없이 승낙하였다.

참고로 강호 출도의 경우, 경쟁이 많지는 않았다.

연화각원이라면 어차피 무조건적으로 딱 한 번, 성년이 되기 전 강호에 나간다.

급할 건 없었다.

또한 이미 강호에 나간 경험이 있는 연화각원의 경우 그 순위는 자연스레 후순위로 밀려난다.

경쟁을 걱정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

강호 출도 인원이 정해졌다.

“반갑다. 오늘부터 너희를 맡을 구풍이다.”

십사검협(十四劍俠) 구풍(求風).

이번 연화각 강호행의 인솔자이자 보호자였다.

삼대제자 중에서도 그 무력은 발군.

강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초절정 고수다.

무위뿐만 아니라 항렬도 높았다.

삼대제자에서도 구풍을 보고 사제라고 하대하는 자가 없다.

주서천에게도 사백(師伯)이 된다.

“하산하기 전에 인원을 확인하마”

구풍은 눈앞의 햇병아리들을 호명했다.

“장홍(張弘), 장서은(張徐恩), 주서천.”

“예!”

세 명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이에 구풍이 쓰게 웃고는, 세 사람의 어깨를 각각 두들기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우리가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긴장할 건 없다.

화산을 내려가는 것뿐이니까.”

굳었던 분위기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자, 그럼 가자.”

구풍이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따랐다.

‘장홍 사형 장서은 사저’

주서천은 제일 뒤에 서서 정면의 소년과 소녀를 살폈다.

둘 다 기대 반, 긴장 반이 섞인 표정이었다.

장홍은 열네 살로, 연화각에서 연령과 항렬 모두 제일 많았다.

장서은은 열세 살로 장홍의 사매였다.

주서천은 이 두 사형제가 동행한다는 걸 듣고 안도했다.

연화각에서 비교적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자신을 좋게 보는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멸시하지는 않았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무관심했다.

이건처럼 괜히 성가시게 시비를 거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나았다.

참고로 강호행이 정해지자마자 낙소월이 찾아와서 아쉽다는 눈초리로 인사해 줬다.

낙소월도 마음 같아선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으나, 그를 안 좋게 보는 심옥련의 눈치가 보여 포기했다.

“사백 궁금한 게 있는데 여쭤도 괜찮습니까?”

주서천이 구풍에게 물었다.

“얼마든지 물어보거라.”

“저희의 목적지는 어디입니까?”

“이대로 남하(南下)하여 중경(重慶) 넘어에 있는 귀주(貴州)다."

“귀주, 말인가요?”

장서은이 조금 긴장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정파와 사파의 경계 지역이다.”

귀주는 예로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정파 세력권과 사파 세력권의 영향력이 검으로 딱 가른 것처럼 반반 섞여 있기 때문이었다.

서로 그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넓히고 정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워 왔다.

휴전 중에도 수십 번이나 있었다.

흔히들 말하는 분쟁 지역

그리고 귀주는 전쟁이 아니어도 싸움이 일어나는 곳이라 구파일방 같은 대문파에서 제자들을 보내 실전 경험을 쌓게 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있고, 귀주는 위험한 만큼 정파 고수들도 다수 포진되어 있으니까.

다치거나 죽을 일은 없단다.”

무인이 강호에 나간다는 건, 그동안 쌓은 무공을 사람에게 써서 실전 경험을 쌓는 걸 의미한다.

비록 유람하듯이 나온 것 같았지만 결코 아니었다.

‘중경!’

장홍과 장서은은 귀주에 간다는 사실에 잔뜩 긴장한 듯했으나, 주서천은 아니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귀주가 아닌 중경이다.

그곳에 그토록 찾던 게 숨겨져 있다.

‘삼안신투의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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