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연화입각(蓮花入閣) (32/254)

第八章연화입각(蓮花入閣)

연화각 심사가 열렸다.

심사는 둘로 나뉜다.

지성과 무학이다.

지성의 경우, 그렇게 어려운 편은 아니었다.

애초에 심사 대상이 성년 이하라서 그렇다.

어차피 성년도 되지 않은 아이에게 뭘 바라나.

심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학문이 아니라 무공이었다.

웅성웅성.

“으, 위가 아파.”

“흥, 다 별 볼 일 없는 놈들뿐이잖아.”

연화각에 준비된 연무장 위.

어리면 예닐곱 살, 많으면 열두 살 정도 되는 사대제자들로 북적였다.

그 숫자가 백 명 정도 됐다.

이 많은 인원들이 전부 심사에 도전할 어린 무인들이다.

나이가 어리다 보니 시끌벅적했고, 반응도 다양했다.

과한 긴장으로 당장이라도 울 것 같다거나, 돌처럼 굳거나, 날이 잔뜩서서 주변을 경계하기도 했다.

주서천은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대충 자리를 잡고 차례를 기다렸다.

“저건 누구야?”

“낯선 얼굴인데”

주서천은 차례를 기다리는 중, 원하지도 않던 주목을 약간이나마 받게 됐다.

“심사에 도전하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 않아?”

절벽 등반과 넘치는 내공 덕에 그는 몰라보게 성장했다.

열 살임에도 열네 살 즈음으로 보였다.

그 탓인지 연화각 심사 기준에 맞지 않다는 중얼거림이 자주 나왔다.

“뭘 그리 신경 써? 어차피 떨어질 놈이야.”

누군가가 코웃음 쳤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경쟁자가 될 만한 자들은 사전에 조사를 해 두었어.

기억 속에 없는 걸 보면 별거 아닌 놈이 분명해.”

연화각은 연령만 맞는다면 재심사가 가능했다.

중원의 성년은 열다섯 살.

비록 열네 살에 입각(入閣)한다 할지라도, 많은 장점이 따른다.

연화각 출신이라는 명예는 두말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 수준이 다른 우수한 수련을 받을 수 있었다.

설사 그 기간이 일 년이라 해도 상관없었다.

이렇다 보니 연화각에 입각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자들은 상당했고, 그들의 노력도 대단했다.

심사는 매년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비무가 자주 나오는 편이기에 서로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했다.

조금이라도 이기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어쨌거나, 이러한 사전 조사의 범위 안에 주서천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가 워낙 남들과 어울리지 않는 연유도 있었지만, 주목을 받은 건 바로 얼마 안돼서 그렇다.

“잠깐”

누군가가 주서천을 알아봤다.

“저 얼굴, 얼마 전에 봤었는데……

아, 그래. 소유검의 제자다.”

얼마 전, 유정목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려고 방문객이 찾아왔다.

화산파 내부에서도 있었다.

아무래도 그 방문객과 관련된 제자가 있는 모양이었다.

소유검이라는 이름에 몇몇 아이들이 술렁였다.

“흥!”

콧대가 높아 보이는 아이가 코웃음을 쳤다.

“그분의 명성은 최근 자자하지만, 그렇다고 그 제자가 특별하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어!”

‘음, 좋아. 그냥 넘어가 주마.’

조금이라도 스승에 대한 험담을 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박살 내 줄생각이었지만, 반대로 칭찬에 가까우니 넘어가기로 했다.

기분도 썩 나쁘지는 않았다.

“저런 놈 신경 쓸 시간에 차라리 조금이라도 몸을 움직여 두는 게 나아!”

“맞아, 네 말대로야. 가자고.”

수다 떨기 좋아하는 둘이 떠나갔다.

“흠, 딱 봐도 떨어질 놈들뿐이군.

굳이 힘쓰지 않고도 쉽게 붙을 수 있겠는걸?”

주서천이 안심한 듯 웃었다.

정확히 한 시진 뒤, 심사를 앞둔 사대제자들은 절망했다.

“안 돼, 망했어!”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했다.

심사가 시작하기 전, 주서천을 비웃고 마음껏 떠들던 사대제자들도 새파랗게 질린 낯빛이었다.

“저걸 어떻게 이겨?”

몇몇 아이들은 아예 싸우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하고 포기했다.

“저 천재가 언젠가 나올 줄은 알았지만……”

“설마하니 그게 오늘 일 줄 누가 알았겠냐고!”

옆에 있던 아이가 원망 어린 목소리로 호소하더니만,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터덜터덜 걸어갔다.

“다음!”

심사관이 차례를 기다리는 사대제자들을 지명했다.

그러나 대부분 힘 없는 발걸음으로 되돌아갔다.

“허어”

주서천도 놀란 얼굴로 심사장을 쳐다봤다.

한가운데, 심사관 앞에 나이 어린 미(美)소녀가 서 있었다.

‘낙소월(落小月)!’

화산파의 사대제자로서, 나이는 주서천보다 한 살 어린 아홉 살이다.

또한 나름 화산파의 유명인이었다.

주선천의 머릿속으로 낙소월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이는 그녀가 회귀 이전의 세상 속에서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을 만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매화검봉(梅花劍鳳)이라니 …… !’

매화검봉, 낙소월.

현(現) 화산오장로 중 홍일점이자 초절정 고수로 이름 높은 철혈매검(鐵血梅劍)의 사손(師孫)이었다.

사제 관계부터 범상치 않지만, 그녀 자신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인물이다.

한 시대를 들썩일 정도로의 재능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어릴 적부터 심상치 않은 자질을 보여 주었다.

그 자질과 노력, 그리고 화산오장로를 사조로 두었으니 미래는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 전생의 삶에서 낙소월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성장해 매화검수에 이름을 올린다.

이후 정파 무림의 후기지수 중에서도 제일이라는 ‘봉(鳳)’이 별호에 붙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무력도 무력이지만, 낙소월은 과년 정도 되었을 때 즈음, 일찍이 무림 제 일의 미모에 들어갔다.

하나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하였는가.

전란의 시대가 열린 이후, 낙소월은 크게 활약하여 영웅이 되지만 끝내 서른도 되지 않아 죽는다.

주서천이 쫓았던 영웅의 등.

그 등을 보였던 사람 중 일인이 바로 매화검봉 낙소월이었다.

“하아, 운이 지지리도 없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심사에 임하려고 했다.

주변의 심사생들 중에서 위협이 될 만한 자는 없었다.

단 한 명, 낙소월은 제외하고.

“다음!”

“큭!”

도전자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이 중에선 오늘이 마지막인 자도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지 않도록 심사장 위로 올라와 낙소월에게 도전했다.

채―앵!

“아악!”

낙소월이 검을 휘두르자 도전자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심사관들 몇몇이 혀를 차면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더 이상 볼 필요도 없다는 눈치였다.

낙소월은 화산오장로의 사손.

어 릴적부터 우수한 가르침과 상승의 무공을 가르침 받았다.

거기에 본인의 재능도 뛰어나니 승패의 유무는 뻔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불안, 희망, 열의 등의 다양했던 감정은 없었다.

오롯이 절망 하나 밖에 안 보였다.

도전자들의 수준은 결코 낮지 않았다.

반대로 사대제자들 중에서 도 상위에 속하는 이들밖에 없었다.

연화각은 성년이 되기 전의 정예 집단.

영재들만 모이는 곳이니 도전자의 수준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그저 상대가 나빴을 뿐이었다.

“영웅은 뿌리부터 다르다고 하더니만……”

주서천이 헛웃음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심사관이 주변을 둘러보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나서는 자가 없었다.

“올해는 끝이야…… 내년이 있으니까 ……”

“나이도 어리잖아…… 왜 올해인데……!”

여기저기서 체념과 절망이 담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연화각의 심사가 끝나나 싶었다.

“아직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물이 등장했다.

‘소유검 의 제자잖아?’

심사관이 주서천을 알아봤다.

“저 멍청한 놈!”

반 시진 전, 주서천을 우습게 봤던 사대제자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명백한 조소(時於吳)였다.

승패는 뻔하다.

이 중에서 낙소월을 이길 수 있는 도전자는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승패의 유무에 상관없이 얼마나 버틸지가 관건이었다.

게다가 주서천은 경계해야 할 경쟁자 후보에도 이름이 올라가지 않았다.

실제로 대부분 심사생들이 주서천을 보고 ‘저건 또 뭐야?’ 라면서 의아해했다.

“망신당하고 싶어서 환장했나?”

“아니, 그냥 생각이 없는 거야.

낙소월에 대해서 잘 모르니까 저런 만용을 부릴 수 있는 거지.”

주변의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바로 시작해도 괜찮겠습니까?”

주서천이 심사관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심사관은 대답 대신에 머리를 주억거렸다.

“잘 부탁드릴게요.”

낙소월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아직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임에도 예법이 몸에 배었다.

주서천은 낙소월의 인사에 목례로 답한 뒤, 무릎을 살짝 굽히고 언제든지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

손에 쥔 검에 살짝 힘을 주고, 시선은 똑바로 정면을 쳐다본다.

표정에는 어떠한 변화도 없었다.

이에 낙소월이 주서천을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절 보고 그렇게 평온한 표정을 짓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너야말로 뭔 아홉 살 주제에 그렇게 성숙해?”

주서천이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몸에 밴 예의도 그랬지만, 지금처럼 차분한 목소리로 저렇게 또박또박 말하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자고로 아이들이란 남녀 상관없이 천진난만하기 마련인데, 낙소월에게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네요.

마치 말씀하시는 게 아저씨 같아요.”

“그래?”

‘음, 젊게 봐 줘서 좋군.’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기뺐다.

실은 아저씨가 아니라 할아버지니까.

“선수는 양보할게요.”

낙소월이 여유를 부렸다.

“고맙다.”

주서천이 환한 얼굴로 씩 웃었다.

‘될 수 있으면 눈에 띄지 않도록 선을 지켜서 연화각에 합격해야 한다.’

상대가 상대다 보니 승리할 경우 파장이 상당하다.

그러면 강호 밖까지 유명세를 탈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패배를 할 수도 없었다.

합격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렇다면 이기되, 압도적인 실력 차이가 아니라 안간힘을 써서 이긴 것이라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어떻게 초장부터 이렇게 꼬이냐.’

낙소월만 아니었다면, 그럭저럭 기재나 평재들 사이에 맞춰 실력을 조절하여 의심 없이 합격한다.

그러나 하필이면 소위 천재, 낙소월이 튀어나와 머리가 아파졌다.

일 년을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그럴 시간 따위는 없었다.

“그럼 간다.”

주서천이 내기의 흐름을 용천혈로 움직였다.

“삼 초식 안에 끝날 것 같은데?”

심사관 중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다른 구경꾼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리 생각했다.

그러나……

“후웁!”

순간 숨을 들이쉬었다.

몸에 힘이 들어갔다.

여린 허벅지 근육이 순식간에 수축했다가 팽창했다.

주서천은 지면을 밀어내듯이 다리를 휘둘러 몸을 날렸다.

파—앗!

주서천의 몸이 눈 깜짝할 사이에 낙소월에게 당도했다.

“ ……!”

낙소월이 생각지도 못한 상대방의 속력에 깜짝 놀라면서 두 눈을 껌뻑였다.

“허!”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도 놀랐다.

특히나 지루한 기색이었던 심사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주서천은 몸에 맞는 철검으로 매화검의 일초식을 펼쳤다.

낙소월이 얼른 검을 세워 막아 냈다.

째―앵!

파르르

‘엄청난 내력(內力)!’

낙소월의 가녀린 손목이 미세하게 떨렸다.

주서천이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그래봤자 아직 소년을 벗어나진 못했다.

청년이 아닌 이상 순수한 근력이 이렇게 강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내공의 힘이라는 의미였다.

낙소월은 선수를 양보한 걸 후회하면서 다음 행동에 나섰다.

일단 보법을 밟아 빠르게 퇴보(退步)했다.

‘진정해.’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순간, 낙소월의 머리는 쾌속으로 회전하면서 행동 방안을 강구했다.

‘어떻게 이런 내공을 지녔는지 의문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낙소월은 어리지만, 사고방식은 이미 어른에 가까웠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이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 상황 판단, 지식 역시 도저히 아홉 살의 것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최대 장기는 검을 맞대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을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다음은 어떻게 공격해 올지 생각해 봐야해……’

매화검, 육합검, 낙영검법, 매화영롱검 오행매화검

상대의 연령에 배울 수 있는 무공들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걸 수련한지는 모르지만, 이 중 하나로 공격해 올 거라고 확신했다.

낙소월은 이 다섯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대응하려고 미리 머릿속에 그려 두었다.

하지만……

“……네?”

그 짧은 순간 동안 계획한 게 전부 무너졌다.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상승의 무공을 쓴 건 아니었다.

아니, 애초에 무공 같은 게 아니었다.

“받아라!”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검을 휘둘렀다.

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매화검을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구잡이로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어떠한 형식도 갖지 않았고, 검으로도 갖추지 않았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 사선으로 그었다.

매화검조차도 아니었다.

“뭔……!”

허를 찔렸다.

낙소월은 찰나의 순간에도 여러가지 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게 결점이 되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고, 그 생각에 관념이 고정되어 그 외의 것이 날아오면 당황했다.

주서천이 검법이라 부르기예도 민망한 검을 펼치자, 낙소월은 얼떨결에 막아내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간다!”

주서천은 보라는 듯이 외쳤다.

하단전에서 내공을 무식하게 끌어올려 사용했다.

파바바밧!

몸이 내공을 받아 빠르게 움직 인다.

절벽 등반으로 잘 단련된 근육이 힘을 냈다.

검이 그어질 때마다 ‘부웅’ 하고 묵직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대기가 갈라지며 낙소월을 노렸다.

그러나 역시 검법이 아니었다.

그냥 휘두르기였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토해냈다.

“깍!”

낙소월이 옅은 비명을 흘렸다.

검에서 손, 그리고 온몸으로 퍼지는 그 충격이 적지 않았다.

“합!”

쐐애액―!

짧은 기합에 따라오는 파공음.

낙소월이 검을 들어 주서천의 검을 막아 냈다.

채재재챙!

이와 같은 공세와 수세가 계속됐다.

주서천은 내공의 힘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이며,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낙소월은 그걸 전부 막아 냈다.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으나, 낙소월은 천부적인 반사 신경으로 검을 어째 막아 내긴 했다.

마구잡이 검이 불규칙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는 건 아니었다.

반대로 더 쉬었다.

너무나도 단조로운 움직임이기에, .어떠한 고차원적인 검로가 존재하지 않아 대놓고 경고하는 꼴이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목검을 마구잡이로 휘 두른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었다.

“꺄악!”

이윽고 최후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확실히 검로(劍路)는 눈에 훤히 보인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뻔했다.

한쪽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의 예상 경로에 한해서다.

날아오는 검의 힘과 속력 자체는 전혀 아니었다.

경로를 예상할 수 있다고 한들, 몸이 그걸 따라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식한 내공!

그 힘 앞에 결국 백기를 든 건 낙소월이었다.

“졌……습니다……”

낙소월이 검을 떨어뜨렸다.

그 낯빛은 밝지 못했다.

아까 전만 해도 보였던 여유 역시 하나도 없었다.

“승자, 주서천!”

심사관이 손을 들어 비무의 종료를 알렸다.

그러나 그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저게 뭐야!”

“뭐 저딴 게 다있어!”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려왔다.

패배자인 낙소월이 아닌, 승자 주서천을 향한 야유였다.

“저딴 걸 인정하라고?”

“삼류보다 못한 놈!”

“네가 그러고도 화산의 제자냐!”

화산파.

아니, 정파는 명예를 목숨보다 중시한다.

특히나 화산파의 경우, 검에 대해서는 더욱 엄했다.

그 사상과 이념에 따라 주서천의 행동은 설사 승리했다 해도 야유와 욕이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연화각의 심사다.

거기에서 검법은커녕, 무공이라 칭하기에도 부끄러운 방식으로 이겼다.

비록 바닥을 구르거나, 흙을 뿌리거나, 암수를 쓰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모욕에 가까운 행위였다.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뭐.’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게 야유와 욕을 흘려넘겼다.

‘너무 강해도 문제다.’

낙소월뿐만이 아니 라 자신을 뜻하기도 했다.

낙소월 정도 되는 무인을 이기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힘들다.

매화검을 펼쳐서 무위를 보여 줘야 한다.

근데 그러면 너무 세다.

어떻게 약하게 노력해 보려고 해도, 이놈의 증진 체조로 강화된 몸이 문제였다.

심지어 넘치는 내공도 있어서, 기초 검공인 매화검만 펼쳐도 삼류를 가볍게 넘는 위력이 나왔다.

이걸 보여 준다면 심사관들이 입을 떡 벌리면서 장문인과 화산오장로에게 보고할 게 상상됐다.

하나 그렇다고 실력을 너무 낮추면 낙소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낸 방법이 이거였다.

낙소월을 이기되, 천재라거나 그런 쓸데없는 소문과 평가를 막는 방법.

내공과 육체만으로 승부한다.

이러면 실력도 감출 수 있고, 이길 수도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다만, 그에 따른 대가가 조금 썼다.

‘나 역시 전란의 시대가 아니었다면 치욕스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겠지.’

그 역시 전형적인 정파인이었다.

원래라면 이러한 행위를 용서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애초에 이런 짓을 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란의 시대 이후, 정파가 가진 그 특유의 틀어박힌 사고방식을 상당 부분 바꾸게 됐다.

전통이나 풍습 등을 지키고 고집하기에는 무림의 사정이 워낙 안 좋았다.

자하신공이냐 자하검결 등의 일인전승인 무공을 화산오장로가 알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다.

문파의 존속 등을 위해서라도 어쩔수 없다면서 정파는 꽤나 진보적으로 변했다.

그만큼 전란의 시대는 무림의 수많은 걸 바꾸었고, 주서천 역시 시대의 흐름에 변화한 사람 중 하나였다.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사부님의 명예에 홈이 갈 터이니 마음이 편치 않구나.’

주서천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연화각의 심사는 끝났으나, 무사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논란이 된 비무 때문이었다.

주서천과 낙소월의 일이다.

“불허(不許)합니다.”

지천명(知天命 : 50세) 즈음된 중년 여성이 말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 특징이었다.

화산오장로 철혈매검, 심옥련(深玉聯)이다.

“심 장로.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좀 들어 봐야 하지 않겠소?”

왜소한 체구에 인자한 웃음이 어울릴 듯한 노인이 말했다.

그 역시 화산오장로 중 한 명이다.

지검옹(智劍翁) 학송(學送).

이대제자 중에서도 장문인 다음으로 항렬이 높았다.

“이야기를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학 장로님.

화산의 검을 모욕한 자를 연화각에 입각시키다니요.”

심옥련이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따져 가면서 말했다.

대부분 주서천의 잘못이나 예법에 대한 의견이었다.

확실히 주서천의 행동은 화산파, 아니 정파의 입장에서 그다지 좋지 못했다.

“심 장로님의 말대로요”

상궁의 자리한 사람들 중, 신장이 제일 훤칠한 중년인이 심옥련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화산오장로, 명수악(命手振) 조무양(朝務樣)이었다.

참고로 화산오장로들은 스승이 같지 않은 이상, 사형제의 호칭을 쓰지 않는다.

설사 향렬이 다르다고 해도, 화산오장로 자체의 지위를 우선으로 하고 존중해서 그렇다.

다만 학송의 경우, 이대제자 사이에서 워낙 연령이나 항렬이 높은 편인지라 예외로 두는 편이었다.

“허허허, 두 분 모두 너무 학 장로님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 주시구려.

나도 이야기는 듣고 싶소.”

우일문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 두 분의 의견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소?”

장문인의 도움에 학송이 감사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내 듣자 하니 소유검의 제자 되는 놈이 영약을 복용했다는 제보를 받았소. 그게 사실이오?”

단약사(丹藥士) 영진(靈珍)이 눈을 반짝였다.

심사장에서 보였던 주서천이 보여준 움직임.

그건 도저히 아홉 살이 낼 수 였는 것이 아니었다.

힘과 속력은 곧 내공에서부터 나온다.

그 정도의 속력이라면 최소 이십 년 내공이어야 했다.

화산파의 심사관이나 되는 무인들이 그걸 모를 리 없었고, 당연히 그대로 보고를 올렸다.

주서천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이에 주서천은 수령신과에 대해서 거짓을 섞어 실토했다.

과거, 유정목이 정기 회합에 나갔을 때 몰래 빠져나와 일탈 행위를 즐기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을 한 것이다.

어차피 연화각에 들어가면 수련동과 달리 교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붙어 신경 써 준다.

진맥 역시 그중 당연히 포함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반 갑을 살짝 넘는 내공이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경우, 별로 큰 문제로 거론되지는 않았다.

화산파 소유의 영약이라면 모를까, 주인 없는 걸 복용한 것이니 잘잘못을 따지기에는 애매했다.

수령신과에 대한 소문을 미리 듣고, 발견하면 복용하지 말고 즉시 보고하라고 명령했으면 또 모른다.

이렇다 보니 영약 복용에 대한 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넘어갔다.

대신 유정목이 자리를 비웠을 때 몰래 빠져나가 일탈 행위를 즐긴 건 벌을 받았다.

벌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었고, 변소의 청소 등의 잡무를 한 달 가량 정도 맡게 된 것뿐이었다.

“그놈 뱃속에 들어간 영약을 꺼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약이 어떠한 효능을 보이는지 알고 싶소.”

연화각에 넣어 두고 관찰하고 싶다는 속뜻이었다.

영진은 별호에도 알 수 있다시피, 무인인 동시에 단약을 제조하는 의원이다.

이걸로 찬성 둘, 반대 둘이 나왔다.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 곳으로 향했다.

매화검장(梅花劍將) 위지결(位知潔)

화산오장로.

아니 , 화산파에는 북해궁주처럼 대대로 이름이 이어져 내려오는 별호가 존재한다.

장문인과 나란히 이십사수를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

지위 자체가 별호인 매화검장이었다.

그 이름은 화산오장로 중에서도 특별하며, 대외적인 권한도 강했다.

“입각시키시오.”

“검장.”

심옥련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위지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반갑의 내공을 품고 있소.

자질이 어떻건 간에 두들겨서라도 가르친다면 충분한 전력이 될 거요.

말이 좀 많겠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오.”

화산오장로들도 각자 분야가 있고, 그에 따라 권한도 주어진다.

연화각이나 매화검수 등, 정예 집단의 등용은 매화검장의 권한이 우선된다.

설사 찬성이 둘, 반대가 셋 나온다고 해도 매화검장이 손을 들어 주면 그쪽이 더 힘이 실린다.

짝!

우일문이 손뻑올 쳐 좌중의 시선을 모았다.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겠소.

연화각에 입각하는 인원은 주서천과 낙소월. 이상 두 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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