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章사부출도(師父出道)
‘내 생각대로다.’
주서천의 눈동자에 유정목의 모습이 담겼다.
유정목은 여전히 오행매화검을 느리게 펼치고 있었다.
다만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칠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검을 펼치되, 제자가 편히 볼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서서 지켜보는 주서천이 되도록 많이 볼 수 있도록 느리게 펼치는 것만으로도 힘들 텐데, 일부러 자세를 크게 하거나 시선의 방향을 보이는 등의 방법을 동원했다.
하나 그 배려는 이상하게도 오행매화검의 삼초식이 시작할 때 즈음 멈추었다.
주서천이 몸을 움직여 다른 방향에서 보지 않는 이상,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자세가 간간이 나왔다.
유정목이 도중에 지치거나, 혹은 귀찮아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제자의 존재도 잊은 채, 오행매화검에 빠져들었다.
‘내 행동으로 바뀌는 미래.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사부님일 줄은 몰랐다.’
방금 전 주서천은 유정목이 십사수매화검법, 곧 본신의 무위 전부를 보였을 때 이상함을 발견했다.
‘오행의 불균형.
수령신과를 복용한 탓에 수기 (水氣)가 상당 부분 치우쳐져 있었다.’
수령신과의 힘으로 선천진기가 새는 걸 막았다.
처음에는 그것이 전부인 것 같았으나, 다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세하지만 그 잔재가 남았다.
주서천도 유정목이 십사수매화검을 보여 주기 전까지는 몰랐다.
유정목이 온 힘을 다해 검기(劍氣)까지 발현했고, 기운 속에서 음기(陰氣), 곧 수기를 느끼게 됐다.
그래서 일부러 오행매화검을 느릿하게 펼쳐 달라고 요청했다.
오행매화검은 이름 그대로 오행순환의 이치를 담은 무공이다.
오행의 불균형을 고치기에는 딱 좋았다.
그리고 느리게 펼쳐 달라고 한 건보다 집중시키기 위해서였다.
워낙 미세한 탓에 놓칠 수도 있었다.
‘설마하니 영약 하나로 이렇게 바뀔 줄은…… ’
질병이라 생각했던 병약 체질을 고쳤고, 또 그것은 경지를 높이는 단서가 되었다.
“ ……”
생각하는 사이 유정목이 오행매화검을 최후 초식까지 전개했다.
그러고는 바로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지금 얻는 깨달음을 흡수하고, 경지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주서천은 호법을 위해 주변을 경계하면서도 유정목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을 죽였다.
‘오행의 불균형은 어디까지냐 계기에 불과해.’
수령선과의 잔재, 수기가 그렇게까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불균형이라해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미세한 부분을 보완한 것에 불과하며, 내기가 더더욱 안정되고 내공이 손톱만큼 늘어난 정도였다.
그렇다면 유정목의 진정한 깨달음은 무엇일까?
‘휴식(休息)’
유정목은 근면 성실한 노력가다.
하지만 그 정도가 좀 과할 정도다.
워낙 올곧다 보니, 꽉 막혀 있다 평가될 정도이다.
매화검수에 떨어진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평생을 쉬지 않고 달려왔다.
실제로 그를 아는 몇몇 사형제들은 그 근면 성실함에 질려 할 정도였다.
이 노력은 너무 과해 하나의 집착으로 보일 정도였다.
누가 말해 줘도 소용없었다.
그저 열심히 한다는 사고방식 밖에 없었고 화산에 입문한 이후로 몸에 상시 힘이 들어가 있었다.
증진 체조만 봐도 알 수 있다.
유정목은 자기 자신을 밀어붙여도 너무 밀었다.
‘아아, 가끔은 놓아줄 때도 필요하구나’
오행은 곧 순환, 자연의 흐름이다.
유정목은 오행의 불균형을 고치면서 재차 오행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고, 이해했다.
순환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서 때로는 물 흘러가듯이 내버려 둬야할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기, 오행, 순환
이 세 가지를 깨우치고 이해한다.
그리고 절정의 벽을 뛰어넘는데 성공했다.
긴 시간이 흐르고, 유정목이 두 눈을 슬며시 떴다.
눈빛도 기도도 전부 달라졌다.
전에 없었던 여유가 보였다.
다만, 전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미소는 그대로였다.
거기에 여유까지 더해지니 마치 현인과 같았다.
“내가 아니라, 네가 날 가르치는구나.
이 모든 게 네 덕분이다.”
제일 먼저 한 말은 애정으로 가득한 미성이었다.
그 말에 주서천은 감격에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축하드립니다, 사부님!”
주서천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진심으로 기뻐했다.
회귀 전, 언제나 스승에게 짐만 됐다.
그의 임종 또한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을 미치도록 후회했다.
오직 빚만 진 것 같아 마음이 편치 못했는데……
그 숙원을 이렇게나마 갚을 수 있는 게 행복했다.
주서천은 다시 한번 새로운 삶에 감사했다.
* * *
“호, 소유검이 초절정에 올랐다고?”
유정목이 초절정에 올랐다.
그 소식이 퍼지는 데는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그것참 경사로군!”
화산파 같은 구파일방에는 고수가 많다.
괜히 대문파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썩어 넘치는 정도는 아니다.
초절정 고수는 대문파 내에서도 귀한 전력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유정목이 그러한 초절정 고수에 올랐다.
충분히 주목받을 만했다.
평소에 유정목과 알고 지내던 사형제들은 그를 찾아가 축하의 인사를 건냈다.
주서천은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주거지에 방문객들이 이렇게 많이 찾아온 걸 처음 봤다.
“정말로 축하드립니다.”
“소유검 대협이시라면 언젠가 해내실 거라고 예전부터 믿고 있었습니다.”
“별건 아니지만 받아 주십시오.”
유정목은 그렇게까지 발이 넓지 않다.
나름대로 친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아 봤자 다섯이었다.
하나 최근 방문한 사람들의 숫자는 일찍이 백을 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연줄을 원하는 자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화산파에는 화산파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다.
속가제자 중에서 지체 높은 집안의 자제의 경우, 시중을 들 사람 몇몇과 호위 무사가 따라오게 된다.
그 외에도 의뢰인, 상인, 비무 목적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선 화산파의 본산제자들과 어떻게든 연을 만들려는 목적을 가진 자가 상당히 많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방문객 거의 모두가 그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구파일방 중 화산파.
제대로 된 친분을 만들 수 있다면 어떠한 검보다 든든하다.
힘이 없는 중소 방파의 경우, 화산의 본산제자와 친분이 있다 하면 웬만한 흑도 방파는 얼씬도 못 한다.
나쁜 의미로는 화산을 뒷배경으로해서 권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다.
‘어휴, 사부님도 참.’
주서천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눈에는 방문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열심히 응대하는 스승, 소유검 유정목의 뒷모습이 비춰졌다.
휴식하는 법을 배웠지만 그 올곧은 품성은 여전했다.
‘경지에 오른 지 별로 되지 않아 피곤하다고 하면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을 텐데……’
주서천은 걱정했으나, 유정목은 괜찮다며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으며 사람들을 상대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스승이 사리분별을 못 하는 건 아닌지라 호구 취급을 당하거나, 빚을 만들지는 않았다.
선물 공세 또한 적당한 선에서 받거나 받지 않는 능숙한 처신을 보였다.
연화봉 정상, 상궁(上宮)
화산파가 시작된 이후 아직도 남아있는 구조물로, 유구한 역사 동안 단 한 번도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설계부터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세운 것이지만, 그 이후로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돈이 들어갔다.
그만큼 여러 의미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장소였다.
상궁에서 내려다보는 화산의 경치는 실로 아름답고 장관인지라 그 누구라도 넋을 잃는다 한다.
그 명성 또한 대단하여 풍류가라면 한 번쯤 꿈꾼다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또한, 풍치 외에 상궁 자체만으로도 엄청나다.
오래전이긴 하나 당대 최고의 건축가들을 불러 천문학적 인 돈을 소비해 만들었으니 당연했다.
완벽하게 이루는 구조는 물론이고, 외관으로 보이는 미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황제의 권력에는 미치지 못해 일부러 황궁(皇宮)보다는 부족하게 보이도록 만들었지만, 그래도 중원에서 손에 꼽는 구조물이었다.
“유정목, 그 아이라면 해낼 줄 알았네.”
상궁의 안, 눈부실 정도의 흰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이 상석에 앉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천하에는 백 명의 고수가 있다.
그들을 천하백대고수라 부른다.
주로 초절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경의 고수도 존재한다.
허면 무림의 정상은 천하백대고수인가?
아니다.
화경을 넘어서,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 경외의 시선을 받는 이들이 존재한다.
상천십좌(上天付座)
백 명의 고수들은 어디까지나 하늘의 아래에 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가 있는 법.
하늘 위에는 열 명의 절대고수가 있었다.
그게 바로 상천십좌다.
상석에 앉은 노인 또한 그중 일인이었다.
검선(劍仙) 우일문(祐日聞) 진인(眞人)
화산파의 장문인!
“병약한 체질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매화검수가 되었을 텐데 말이오. 참으로 안타깝소”
상석에 앉은 우일문을 기준으로 이제 곧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인들이 양 옆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이 바로 화산 장문인의 보좌, 곧 장문인 다음으로 권위를 지니고 있는 화산오장로였다.
“흠, 내 듣자 하니 초절정에 오르면서 그 병약한 몸도 나아졌다고 들었소만……”
“호오.”
우일문이 관심을 보였다.
유정목은 절정의 고수였으나, 그동안 정작 제대로 된 전력 취급은 받지 못했다.
병약한 체질 탓이다.
나쁜 건 아니었다.
인성도 괜찮고, 독종이라 불릴 정도의 노력가이며, 그럭저럭 재능도 있었다.
하지만 역시 그놈의 병약한 체질때문에 지구력이 부족해 제대로 된 임무도 내리지 않았었다.
“흠, 그렇다면 한 번 제대로 된 검진을 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화산파 입장에서 유정목이나 되는 인재를 내버려 두는 건 인재를 썩히는 것과 같았다.
“그거 좋은 의견이군.”
또다시 미래가 바뀌었다.
이후, 상궁 회의가 열리는 도중 유정목이 거론됐다.
장문인과 화산오장로가 여는 이 회의는 명실공히 화산파의 최고 회의이다.
초절정 고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는 사안은 충분히 상궁 회의에 들어갈 만했다.
그리고 약 보름 뒤.
수령신과의 복용 이후, 상궁 회의가 끝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도 유정목은 기침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이에 화산파 수뇌부는 유정목이 병약한 체질이 완쾌되었다고 판단.
그를 불러 새로운 임무를 맡겼다.
즉, 강호 출두였다.
* * *
“허, 맙소사.”
정말로 전혀 없었던 일이 생겼다.
주서천은 유정목의 제자가 된 이후, 그가 친목의 목적 외에 강호에 나간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소식을 듣고 얼마 놀랐는지 모른다.
“끄응.”
솔직히 툭 까놓고 말해서, 불안했다.
유정목이 강호에 출두하게 되면 그 앞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암흑이다.
아무리 몇십 년 뒤의 미래를 알고 있는 주서천이라 할지라도,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렇다.
이 미래는 손톱만큼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였다.
“끄응 이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전생에서 열 살 때는 한참 낙안지옥과 주거지를 왕복하면서 무공 수련에 힘쓸 때였다.
다른 일에 신경 쓸 정도로 여유는 없었다.
무엇보다 전란의 시대가 일어나기 전의 일이다.
그에 대한 정보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했다.
주서천이 알고 있는 건 주로 전란의 시대.
그 계기이기도 한 삼안신투때부터다.
그 전에 일어난 일들은 정말 소소한 것들뿐.
그것조차 아는 것이 적었다.
“하하하, 이게 얼마만의 임무인지 모르겠구나.”
유정목은 제자가 불안에 떨건 말건 간에 정말로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주서천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유정목이 어떠한 마음으로 지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임무에서 제외됐다.
임무를 받는다 해도 보통 단기간 또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것들이었다.
장기간 임무에는 상당한 지구력이 요구된다.
특히 사안이 급한 임무의 경우, 중간에 열이 올라 몸에 제한이라도 생긴다면 정말 어찌할 수가 없다.
그래서 유정목은 강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중요 임무에 빠졌고, 이를 안타까워하곤 했다.
언제는 사문에 진 빛을 제대로 갚지 못한다며 울적해할 정도였다.
이러한데 어찌 스승을 말리겠는가?
걱정되긴 해도, 스승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떤 일입니까?”
주서천은 유정목을 걱정스레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자 유정목은 평소처럼 절로 편안해지는 미소를 흘리곤, 쪼그려 앉아 제자와 눈을 맞췄다.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네 사부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니까.
이 병약한 체질을 고치기는 했지만, 아직 불확실하다면서 대단한 일을 맡긴 건 아니란다.”
초절정에 오르면서 몸이 고쳐졌다곤 하지만, 그렇다고 다짜고짜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는 없었다.
유정목에게는 아직 실적도 없고, 몸도 약했던 전과 아닌 전과가 있으니 신뢰할 수는 없었다.
유정목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수긍했다.
화산파 수뇌부는 이러한 연유로 일단 시범적으로 중급 정도의 임무에 유정목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알겠습니다. 무사 귀환을 기원하겠습니다.”
주서천은 걱정하는 마음 반, 축하하는 마음 반을 섞어 유정목을 배웅해 주었다.
열 살이 되는 해, 주서천에게 큰 변화가 찾아온다.
“아, 그리고 연화각 심사에 네 이름을 올려 두었으니 미리 준비하거라.
아마 너라면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게다.”
“콜록, 콜록!”
연화각이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기침이 절로 나왔다.
‘아니, 어째서?’
어린 시절은 눈에 띄지 않고 보내는 게 좋다.
후일을 위해서라도 그러는 편이 좋았다.
한데 연화각이 웬 말인가!
연화각은 화산의 인재들만 모인 곳
화산파는 물론이고 무림 방파가 눈여겨보는 기관이었다.
이곳에서 대부분 차대의 매화검수가 나오니, 당연히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임무가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지만 강호에 나간다면 널 봐줄 사람이 별로 없지 않느냐.
연화각에 들어간다면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을게다.
아니 , 반대로 이 못난 사부보다 잘 가르치겠지.”
“그렇지 않습니다!”
“하하하,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너는 날 너무 띄워 주는 경향이 있다.
어쨌거나, 너라면 충분히 연화각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아, 그렇다고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떨어져도 괜찮다.”
미치도록 부담이 갔다.
자애로운 눈. 그 안에 보이는 감정은 ‘신뢰’ 였다.
자신의 제자라면 연화각에 무조건 들어간다.
심사에 떨어지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며 확신했다.
유정목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실제로 주서천은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자, 그럼 다녀오마.”
주서천은 울상을 지으려다, 제자에 대해 너무나도 마음이 여린 유정목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환하게 웃으면서 그를 보내야 했다.
* * *
나흘뒤
“아, 쉬펄”
주서천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주서천은 스승이 남기고 간 문제에 피눈물을 흘렸다.
요 나흘 동안 연화각에 대한 심사로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심사에 떨어져야 한다.
붙으면 이래저래 주목도 받고 귀찮아진다.
자하신공을 들킬 염려는 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귀찮은 게 따른다.
그러나 그의 감정은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사부님의 믿음을 배신할 생각이냐!’
스승, 유정목은 곧 신.
신이 믿는다 하였으니, 그 기대를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연화각에 들어가 기대를 충족시켜 주고 싶었다.
‘하. 전생에는 그렇게 들어가고 싶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니 !’
연화각.
그 이름만 들어도 괜스레 가슴이 떨린다.
사대제자들에게 었어 연화각은 곧 성지.
그곳에 들어가는 것이 곧 화산의 기대주라 평가받는다.
또한 화산파 제자들의 우상인 매화검수에 가까워지는 것을 의미하니, 성지일 수밖에 없었다.
주서천도 회귀 이전의 삶에서 연화각을 동경했었다.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라도 동경하는 기관.
회귀한 이후로 좀 더 멋진 삶을 꿈꿔 온 주서천이다.
아예 감정이 없다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주서천은 생각을 정리할 겸,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검법 수련에 빠졌다.
참고로 오행매화검이었다.
그 외에도 육합검, 낙영검법 등부터 시작해 유정목도 배우지 못한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수련했다.
마음 같아선 자하검결도 수련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자하신공을 사성까지 달성해야 할 수 있었다.
‘사실, 이미 주목받고 있기는 한데……’
초절정 고수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무엇보다 유정목은 일찍이 매화검수의 후보에 올랐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정받는다.
이렇다 보니 유정목은 강호 바깥에선 몰라도 화산파 내에선 나름대로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주서천이 제자로 들어온 이후로는 그 약간의 명성도 사라졌지만, 초절정 고수에 오르면서 다시 생겼다.
유정목이 나름 유명해지면서 당연히 그 제자에 대한 이야기도 그럭저럭 퍼졌다.
특히나 유정목과 연을 맺으려는 속가제자나, 방문객들에게도 말이다.
이성과 감정, 어떠한 것에 따를지 결론이 쉽게 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삼안신투로 머리가 아프…… 어?”
연화각, 주목, 그리고 삼안신투의 비고
이 세 가지가 요인이 모여서 서로 꼬리를 물고, 가지를 뻗어 새로운 정보를 나열한다.
검법으로 땀을 뺀 그는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재차 정리했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되는 건 오년 뒤, 어차피 무조건적으로 일이 년은 빨리 강호에 출두해야 한다.
비고에 잠든 보물의 양이 정확히 얼마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적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전부 옮기고 숨기려면 최소한 일 년의 시간은 필요하다.
어쩌면 타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데, 믿을 만한 사람을 구하려면 그것대로 시간이 걸리니 이 년은 필요하다.
정말 최소한의 시간이 일 년. 웬만하면 이 년.
즉, 열세 살 때 강호에 출두할 일이 필요했다.
그래서 여지껏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는데, 방금 전에 한 방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멍청한 놈!”
주서천은 자신의 우둔한 머리를 탓하면서 분개했다.
여태껏 고민한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열세 살 정도의 나이에 강호에 나가려면, 보통의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스승에게 부탁을 한다고 할지라도 정당한 사유가 아니라면 유정목도 위에서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아니, 애초에 유정목에게 어떤 변명을 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나 이 골치 아픈 사정을 해결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존재한다.
화산파가 사대제자들을 성년이 넘어서, 약관 정도에 내보내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써 키운 제자가 실력이 되지 않아 비명횡사할 것 같아서였다.
물론 강호 초출의 경우, 사대제자들만 보내지는 않는다.
실력 좋은 삼대제자를 보호자로 붙인다.
하나 사람 일, 아니 강호의 일은 모르는 법.
어떤 변수가 적용될지 모른다.
그래서 적어도 그 변수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일정한 힘, 무공 수위를 요구해 심사를 한다.
‘삼안신투의 비고와 눈에 띄는 것.
이 둘을 저울질하면 두말할 것도 없지 . 삼안신투의 비고가 먼저다.’
비고의 가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
그 안에든 보물의 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첫째로 영약.
주서천에게 부족한 건 내공이니, 그것만 해결하면 전생의 무위를 찾는 건 시간문제였다.
둘째는 비급과 병장기.
이 둘은 후에 전란의 시대에서 함께 싸울 인재들을 모으는 데 사용된다.
그 외에도 미끼로 쓴다거나 이것저것 사용의 용도는 정말 많으니, 일단 챙겨 두는 게 좋았다.
‘적당한 선만 지켜 가면서 눈에 띄자.
어차피 난 나이가 어리니, 그렇게까지 경계하지 않을 거야.
연화각에 겨우 들어갈 정도로만 실력을 보인다.’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린다.
아직 세분화되지는 않았지만, 그럭저럭 뼈대를 세웠다.
“후 새로이 얻은 삶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능하다니.”
주서천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헛똑똑이야, 헛똑똑이.
아는 것만 많고 그걸 제대로 응용할지 모르잖아.
반성해라, 주서전.”
스스로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면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확실히 자신은 남들보다 앞서간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변수가 나오면 거기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애초에 주서천이라는 인간은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
화산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것뿐이었다.
명령을 받는 데만 익숙할 뿐.
현명하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걸 답하기엔 애매했다.
어떻게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초절정에 겨우 올랐고, 죽음이 다가와서야 운이 따라 화경에 오른다.
그뿐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저 평재.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덜떨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것뿐.
주서천은 그걸 명심했다.
애초에 조금만 생각해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을 정도로 현명했다면, 회귀 이전 전생에서도 모두에게 인정받아 제대로 된 화산오장로가 됐을 것이다.
그래도 주서천에게 장점을 꼽자면 분수를 안다는 점이었다.
그 덕에 전란의 시대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았다.
“남은 시간은 삼 년.
올해 연화각에 입각(入閣)해서 우수한 성적을 낸다.
그리고 사부님에게 졸라서 어떻게든 억지를 쓴다면 강호에 나갈지 몰라.
노력하는 건 나와 맞지 않지만 별수 없지.”
삼년
기한을 열세 살까지.
주서천은 모든 걸 걸기로 했다.
연화각의 입각!
강호 초출!
삼안신투의 비고!
이 셋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