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화산검법(華山劍法) (30/254)

第六章화산검법(華山劍法)

뼛속까지 시려 오는 바람이 드디어 멈추고, 동면에 잠들었던 동물들이 몸을 일으켰다.

세상을 하얗게 물들이 던 눈은 녹아 없어졌고, 따스한 햇볕과 함께 화려한 꽃들이 나타났다.

지금 화산에 핀 매화를 부르는 명칭은 조매(早梅).

피는 시기 중 제일 일찍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겨울과 더불어 한 해가 지났고, 주서천은 열 살이 됐다.

증진 체조.

아니, 절벽 등반을 시작한 지도 어언 몇 달째.

“장하다.”

유정목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미소지었다.

“요 몇 달 동안 정말로 힘들었을 텐데, 결국 네가 해냈구나.

이제 절벽 등반은 이걸로 끝이다.”

유정목은 주서천의 어깨를 몇 차례 토닥여 준 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러곤 자신의 가르침을 끝까지 수행한 제자가 대견해 참지 못하고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절벽은 싫어…… 절벽은 싫어…… 절벽은 싫어…… 그만둬 주세요.

힘내라고 소리치는 거 그만둬 주세요.

싫어, 위에서 바위가…… 그만……”

주서천이 흐린 눈으로 중얼거렸다.

그 눈동자는 동태 눈깔처럼 죽어 있었다.

몇 개월 동안 이어졌던 증진 체조!

아니, 증진 체조라는 이름에 감춰진 지옥 훈련!

그에 비하면 낙안지옥 따위는 정말 별거 아니었다.

낙안지옥은 쓰러지기 직전까지 굴릴지언정, 적어도 생명의 위협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그저 고통스러운 정도로 끝날 뿐이었다.

하나 그에 비해 절벽 등반은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생명에 위협이 생긴다.

발을 헛디디거나, 도중에 졸아서 떨어질 뻔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최악인 건 힘들어도 신음을 내거나 그만둬 달라면서 우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살려달라고,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하면.

“괜찮다, 너는 할 수 있다!”

라고, 우는 목소리로 유정목이 소리쳤다.

문제는 그 목소리가 열의와 응원으로 가득 차, 자갈이나 돌멩이들이 진동에 흔들려 떨어져 내렸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아찔하다.

그 탓에 죽을 뻔했던 적이 정말 한두 번이 아닌지라 결국 도중에 구원과 앓는 소리를 포기했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

수십, 수백, 수천 번은 되뇌었다.

그러나 절벽을 전부 겨우 등반하면 유정목이 번개같이 달려와서 껴안고는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정말로 미안하구나.

하지만 널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었단다.

차라리 원망하려무나.”

전생을 통틀어서 가족이라 말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끝까지 제자를 걱정했던 그 사람이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몇 번이나 사과하니 차마 그만두겠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몽둥이로 패는 괴팍한 사부가 낫지……’

그렇다면 정말로 화를 내면서 뭐라 따지기라도 했을 텐데.

이거야 원, 마음 아파서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끝내 절벽 등반을 포함한 증진 체조를 거부하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따랐고, 모두 완수했다.

하면 할수록 덜 힘들어졌지만, 어디까지나 익숙해진 것뿐이었지 여전히 위험천만했다.

발을 잘못 딛거나, 혹은 암반이 무너질 때는 새로운 삶의 주마등이 몇 십 번이나 스쳤다.

다만 그 위험도만큼 훈련의 효과는 확실했다.

요 몇 개월, 주서천의 몸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수련동에 다녀오면 휴식을 취하자마자 곧바로 스승의 손에 이끌려서 절벽을 등반하러 갔다.

초기에는 오르는데 정말 하루 종일 걸렸다.

처음에는 도중에 휴식을 몇 번이나 취했다.

그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곧바로 후회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더 위험해진다는 걸 깨닫고, 그다음부터 아무리 힘들어도 잘 쉬지 않았다.

최소한의 휴식만 중간에 조금씩 취한 뒤에 어떻게든 날이 저물기 전에 오르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등반이 끝나면 지친 몸을 이끌고 거처로 돌아가 근육을 풀어줬다.

그다음은 운기조식으로 텅텅 빈 단전을 채워 주곤 잠에 들었다.

이 체계적인 훈련 방식 덕에 큰 효과를 봤다.

지속적인 절벽 등반으로 체력과 근력이 오른다.

다만 그 대신에 몸, 특히 근육에 무리가 갔다.

하나 이 근육의 상처는 잠들기 전, 운기조식을 통해 얻는 내공이 재생시켜 주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반복적인 훈련으로 덕에 주서천의 신체는 눈에 띄게 성장하고 강해졌다.

그 덕에 주서천은 열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열네 살 같아 보였다.

주서천은 과한 성장 탓에 키가 크지 않는 건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키는 무럭무럭 자랐다.

수령신과의 내공도 내공이지만 매화에서 얻은 생공의 생명력과 재생력 덕이었다.

이튿날.

아침이 밝은 다음에 눈을 뜨고 든 감정은 안도였다.

더 이상 그 지긋지긋하고 위험천만한 절벽을 등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몇 달 동안 빠짐없이 해 온 습관에 어색하지 않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뺨을 쳐 줄 의향이 있었다.

주서천은 평소처럼 수련동에서 매화권을 연공했다.

“ 호오?”

교두, 철웅은 주서천을 쳐다봤다.

‘성장기라서 그런지 잘 크는군. 또 그새 컸나.’

열 살이 열네 살로 보이는 건 좀 심하지만, 그렇다고 또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바깥과 다르게 이곳 화산파 내부에선 균형적인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여가 시간 대부분을 몸을 움직이는 데 사용하니 몸이 크지 않는게 더 이상하다.

‘주서천이라. 매화권을 습득하는 속도도 빠르고, 저 정도면 꽤 괜찮게 자라겠어.’

철웅은 그렇게 생각하며 흡족하게 웃었다.

“후우, 오늘은 돌아가서 뭘 하려나.”

주서천은 거처로 복귀했다.

참고로 매화권은 이미 대성했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데다가 생전에 경험한 기억 덕이었다.

원래라면 절벽으로 가야 할 시간에 이렇게 거처에 있으니 상당히 어색했다.

하나 기분 좋은 어색함이었다.

약 일다경 뒤.

문이 열리면서 유정목이 들어왔다.

“사부님.”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유정목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네. 절벽에 안 가서 너무 좋습니다.’

하마터면 생각이 입 바깥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유정목이라면 왠지 모르게 시무룩해하면서

‘이 사부와 함께하는 것이 그리 싫느냐……?’ 라고 할 것만 같았다.

“안 움직여서 몸이 좀 근질거리지?”

“아니…… 네, 조금 근질거립니다.”

누운 채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진심이었다.

“하하, 그럴 줄 알았다. 자, 나와보거라.”

주서천은 유정목을 뒤따라 바깥에나갔다.

두 사람은 거처 근처의 개인 연무장에 도착했다.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유정목은 미리 준비해 둔 목검 한 자루를 가리켰다.

“자, 저걸 써라. 오늘부터 검법을 가르쳐 주마.”

‘아아, 벌써 그럴 때가 됐나.’

자고로 예로부터 화산은 검!

화산파 무공의 진정한 시작은 목검을 쥐었을 때다.

그 중요성은 위와 같은 말이 전해질 정도였다.

실제로 화산파에 막 입문한 제자들과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그리 생각했다.

검을 쥐기 전까진 어디까지나 기초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만드는 정도에 한해서 끝나는 수준이었다.

주서천도 과거에는 검을 가르쳐 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제자리에서 팔짝 뛸 정도로 좋아했다.

“자 앞으로 네가 익힐 검법의 시범을 보여 주마.

이게 매화검(梅花劍)이다.”

유정목이 화산의 기본 검공, 매화검을 펼쳤다.

제자가 눈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도록 일부러 속력을 줄여 초식을 전개했다.

‘음’

주서천은 연무장 바닥에 앉아 그걸 지켜봤다.

‘다 알고 있는 거군.’

회귀 전에 화산오장로였고, 말년에는 화경에도 올랐다.

검법에 대해서는 주서천이 유정목보다 위였다.

매화검이 워낙 쉬워 굳이 연습할 필요도 없다.

매화권처럼 몸에 익히면 그만이었다.

아니, 매화권 만큼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매화검과 매화권은 그 기초와 구조가 거의 동일해서, 그 묘리만 몸에 익혀 둔다면 쉽게 펼칠 수 있었다.

괜히 매화권부터 배우는 게 아니었다.

하나 그렇다고 ‘사부님. 제가 사부님보다 매화검을 더 잘 압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어쩔 수 없이 겉으론 최대한 흥미 있는 모습을 연기해야만 했다.

‘음, 아마 절정 정도의 고수셨나……’

삼류, 이류, 일류를 넘어가면 절정에 오른다.

그 정도의 경지가 되어야 강호에서 고수라 논할 수 있다.

‘분명 내가 기억하기로 사부님은 초절정을 앞두고 돌아가셨었는데……’

전생을 떠올리는게 썩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나 아비와도 같았던 스승에 대해선 더더욱 그렇다.

침상에 누운 채로 힘들어하시다가 눈을 감았던 유정목.

그 마지막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여하튼, 유정목은 절정 중에서도 최상승에 위치해 있었다.

초절정이 앞이었으나 결국 벽은 못 넘었다.

‘ …… 어라’

눈으로 매화를 쫓는 도중, 불현듯 어떠한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께 부족한 건 내공 같은 것이 아닌, 깨달음.그렇다면 그걸 내

가 가르쳐 줄 수 있다면……?’

무인, 특히나 벽을 앞에 두고 넘지 못하는 이들은 누군가의 조언에 항상 목말라 있다.

하수들도 그렇지만 고수 역시 자기들보다 몇 수 위인 자의 말을 귀담아 듣는다.

이미 그 벽을 넘고 경지를 이룩한 자들에게서 벽을 넘을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일이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은 일어나며, 이 때문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고수를 찾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 이거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깨달음이 부족하여 벽을 앞에 두고 다음 경지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면 도와주면 되는 거야.’

유정목이 절정의 경지인 걸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초절정의 경지였고, 화경으로 넘어가는 벽이라면 설사 주서천이라 할 지라도 별 도움을 줄 수가 없다.

벽의 높이도 높이지만, 일단 화경의 고수들마다 각자 경지에 오르는 깨달음이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굳이 가르칠 필요도 없지.

사부님께서 무엇을 궁금해하시는지 확인하고, 그 실마리만 전해 준다면……’

자고로 무공이 건 공부건 간에 답만 알려 주는 건 의미 없다.

답을 알려줘봤자 이해할 수 없으니, 시원하게 풀리긴커녕 자칫 잘못하면 껍껍함만 늘어 벽이 두꺼워질 수가 있었다.

‘좋아, 한번 해 보자.’

왠지 모르게 스승과 제자의 역할이 좀 바뀐 것 같았으나, 그런 사소한 것 따위 상관없었다.

모든 걸 잃고 세상 속에 고아로 던져진 자신.

그런 자신을 구원해주었던 사람이 스승이다.

주서천에게 있어 스승은 곧 하늘이자 세계.

무림맹주나 황제조차 비교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회귀 이후에도 그 존경심과 은혜에 대한 감사함은 여전하며, 그를 위해서라면 설사 악귀나찰이 되어도 상관없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부님은 결코 절정 정도의 경지에서 머무를 사람이 아니다.’

11 화

일주일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주서천은 요 일주일 동안 유정목에게 매화검을 전수받는 한편, 어떻게 깨달음을 전해 줘야 할지 고민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매화검처럼 기초적인 것은 이미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는 상태인지라 다른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나 주서천이 자신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진 탓에 한 가지를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유정목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점.

‘이럴 수가!’

유정목은 주서천이 휘두르는 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요 일 년 전부터 무언가 범상치 않더니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매화검은 기초다 보니 쉽다.

매화권까지 대성했다면 그 난이도는 대폭 하락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일주일 만에 매화검을 저렇게 여유롭게 펼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처음에 이론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하여도 저 정도로 하는 건 분명 이상했다.

그렇다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한 가지.

‘내 제자가 천재였구나!’

주서천은 결코 천재가 아니다.

근골이나 반사 신경 등의 타고난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혈맥이나 기맥이 천성적으로 좋은 것도 아니었다.

그건 그를 제자로 둔 유정목이 더더욱 잘 알았다.

하지만 재능이란 건 신체 능력과 두뇌 능력만 있는 게 아니다.

오롯이 검에 대한 재능일 수도 있었다.

유정목은 주서천이 그런 부류라고 생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는 착각했다고 하는 게 옳았다.

주서천은 어디까지나 원래 이루었던 경지를 답습하는 것에 불과했다.

또한 매화검이 워낙 기초라서 그렇기도 하다.

하나 그러한 사정을 모르는 유정목의 입장에선 주서천이 검술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주서천이 유정목의 증진 체조, 그 지옥 수련을 겪지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었을 거다.

스승에 대한 조언을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의심받지 않기 위해 최대한 실력을 숨기고 펼쳤다.

그러나 지옥 수련으로 인해 육체 능력이 워낙 좋아진 덕에 무의식적으로 매화검의 모든 걸 펼쳐 버렸다.

‘이 정도면 능히 연화각(蓮花閣)에……’

연화각.

화산파 내의 구조물 중 하나인 동시에, 오직 선택받은 ‘사대제자’들만 소속될 수 있는 기관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매화검수의 축소.

성년이 되기 전, 사대제자들 중에서도 두각을 보이는 인재들이 따로 수련을 받기 위한 곳이다.

또한 장문인이나 화산오장로의 제자들처럼 특출한 이들 역시 연화각에 들어가서 수련을 받았다.

스승이 스승이다 보니 대부분 첫 시작이 일반 제자들에 비해 앞서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역대 매화검수의 구 할 이상.

거의 대부분이 이 연화각 출신이었다.

유정목 자신은 아쉽게도 연화각에 들어가지 못했다.

병약했던 체질 탓이었다.

어쨌거나, 주서천 정도의 실력이라면 충분히 연화각에 들어가 좀 더 수준 높은 수련을 받을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영약이 내려질 수도 있고, 전담 교두 또한 옆에 붙어서 직접 가르침을 줄 수도 있었다.

힘과 재능만 증명할 수 있다면 최고의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불공평해 보일지 몰라도 화산파처럼 대문파 아니, 무림의 방파라면 흔한 일이었다.

며칠 뒤

주서천은 유정목에게 부탁했다.

“사부님 송구하오나 매화검 외의 검을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매화검 외의 검 ?”

“예 ”

주서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제자의 부탁에 유정목은 고민에 빠졌다.

아직 매화검을 연공한 지 이 주일도 채 되지 않은 제자.

아니, 검을 쥔 지 이 주일도 되지 않은 제자였다.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한들, 매화검도 전부 대성하지 않았는데 상승의 검법을 가르쳐 주면 방해만 된다.

유정목이 걱정하는 건 그것이었다.

주서천이 이를 눈치채고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물론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희 화산의 또 다른 검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렇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로서 제대로 된 화산의 검을 한 번쯤은 보고 싶습니다.”

“음, 좋아. 알겠다.”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보여 주는 것만으로는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련동 근처에만 가도 사대제자 중, 일찍이 입문한 앞 기수 사형제들이 매화검 외의 검법을 수련한다.

만약 보는 것만으로 문제가 됐다면 일찍이 수련동에서 제재를 가했을 것이다.

유정목은 자세를 잡기 전, 은근히 기대에 찬 눈을 한 제자의 시선을 느끼곤 고민에 잠겼다.

‘어디 보자……’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검법은 다섯.

육합검(六合劍), 낙영검법(落英劍法), 매화영롱검(梅花玲職劍), 

오행매화검(五行梅花劍), 십사수매화검법 (十四手梅花劍法) 이었다.

육합검과 낙영검법은 기초 검공 수준에서 약간 위에 있는 검법이다.

대부분의 속가제자들이 이 정도만 익히고 하산한다.

매화영롱검은 화산의 얼마 없는 쾌검(快劍)이고, 오행매화검은 이름그대로 오행을 담아 펼치는 검이다.

둘 다 그럭저럭 상승 자락에 걸쳐 있으며, 속가제자 중에서도 인정받은 자들만이 배울 수 있었다.

동시에 속가제자의 한계선이기도 하다.

이 둘을 제외한 상승 무공은 본산제자가 아닌 한 배울 수 없다.

마지막으로 십사수매화검법은 이름에도 알 수 있다시피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축소판이다.

화산의 상승 무공 중 끝자락에 있으며, 그만큼 난이도도 상당했다.

유정목 자신도 대성하지 못했다.

“이제부터 십사수매화검법을 보여주도록 하마.”

유정목은 고민 끝에 결정했다.

비록 아직 대성하지 못했지만, 이왕 보여 주는 것이라면 자신이 펼칠 수 있는 것 중 제일인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보여 주기 전에 한 가지 물어보마.

너는 십사수매화검법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

“예, 사부님. 십사수매화검법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일초식인 매화노방(梅花路傍)부터 십사초식인 매화난만(梅花爆漫)으로 구성된 화산의 검입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이름 그대로 이십사초식으로 되어 있다.

최후 초식인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까지 펼칠 수 있게 된다면 검에서 매화 향이 난다.

과거, 누군가는 매화 향이 나는 것이 뭐가 대단하냐고 비웃었지만, 이는 실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검을 펼쳤는데 냄새가 난다는 건 곧 자연의 순리(順理) 자체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검수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경지.

괜히 화산파 제자들이 매화검수를 우상으로 두는 게 아니다.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다만, 혹시라도 착각할지도 모르니 부가적인 설명을 해 주마.

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과 같아 보여도, 실은 조금 다르다.

만약 똑같았다면 그건 십사수매화검법이 아닌 이십사수매화검법이지 않겠느냐?”

“축소판, 곧 하위 호환을 말씀하시는군요.”

주서천은 이미 다 알고 있었으나 유정목의 긴 설명예 맞장구를 쳤다.

십사수매화검법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축소판.

초식 열네 개를 하나의 검법으로 정리하여 난이도가 줄은 대신, 그만큼 그 위력 또한 상당 부분 줄었다.

“잘 알고 있구나 좋다. 그 정도면 됐다.”

유정목은 제자의 답변에 흡족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곤 자세를 잡고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주서천은 매화노방부터 펼쳐지는 걸 보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생전에서 볼 수 없었던 걸 보게 되다니.’

회귀 이전에는 매화검 하나만으로도 벅찼다.

그래서인지 유정목은 주서천에게 상승 무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아까 말했듯이 방해가 될 것 같아서였다.

원래라면 주서천이 일정한 경지에 오르면 가르쳐 주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안타깝게 절명하였다.

제일 가까운 사제 관계임에도 주서천은 스승의 검을 제대로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주서천은 속으로 자신을 꾸짖으며 유정목에게 집중했다.

지금의 경지 자체는 유정목이 한참 위이나, 보는 눈만큼은 화경에 올랐던 주서천이 위였다.

실제로 주서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정목의 검과 무공에 대해서 파악할 수 있었다.

‘구초식까지는 완벽하신 것 같고, 십초식인 매화만개(梅花滿開)부터 막히시는군.

다행히 깨달음이 아니라 숙련도의 부족이신 것 같은데 ……’

십사수매화검법은 주서천도 회귀 전에 대성한 경험이 있었다.

내공과 약간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유정목보다 완벽하게 펼칠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응?’

주서천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흡!”

유정목이 십사초식인 매화난만까지 펼쳤다.

상당한 내력과 체력을 소진했는지 땀을 흘렸다.

“자, 방금 것까지 해서 십사수매화검법이다.

다만 이 못난 사부의 실력이 부족해 완벽하게 펼칠 수는 없었구나. 미안하다.”

과연 유정목.

보통이라면 제자 앞이란 걸 생각해 조금이라도 멋져 보이려고 허세를 부렸을 것이다.

아니, 설사 제자 앞이 아니라 하여도 대부분의 무인, 특히 정파인은 자존심이 무척 높은 편이었다.

자신의 부족함이 부끄러워 숨기려고 할 텐데, 유정목은 아무렇지 않게 공개하며 무공의 전부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면서 사과했다.

“아닙니다, 사부님!”

주서천이 무한한 신뢰를 담은 눈으로 손뼉을 쳤다.

“장문인은 물론이고 무림맹주도 지나가다가 ‘허억!’ 하고 경탄할 정도의 훌륭한 검이셨습니다!”

“요 녀석,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 정도는 듣지 않았느냐?

칭찬이 과하면 아부로 보이니라.”

유정목이 못 말리겠다는 듯이 웃었다.

그래도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결코 아부 따위가 아니었다.

주서천에게 있어서 유정목은 신이었다.

“자, 또 보고 싶은 검 이 라도 또 있느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것도 보여 주마.”

그 말에 주서천은 속으로 환호성을 내뱉었다.

그리고 속마음과는 달리 겉으론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순수하게 호기심이 강한 열 살의 아이를 연기했다.

“오행매화검도 보고 싶습니다, 사부님”

“이 사부의 무능함을 만회할 기회를 주는구나.

오행매화검은 일찍이 대성하였으니, 전부를 보여 주마.”

본산제자가 매화검을 대성하게 되면 몇 가지 상승 무공을 배우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오행매화검이다.

제자가 오행매화검을 보여달라는 걸 딱히 이상하거나 의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사부님, 불초 제자가 견식이 부족하여 방금 전 사부님께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쳐 주셨을 때 무엇이 지나간지 보지 못하였습니다.

송구하오나 이번에는 느릿하게 펼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고말고.”

유정목은 제자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무공 공부에 열의를 보이자 무척 흡족해했다.

재능도 있는 데다가 자세도 이렇게 훌륭하다니.

이런 제자를 둔 것이 스승으로서 무척 자랑스러웠다.

유정목은 주서천이 요청한대로 오행매화검의 일초식부터 느릿하게 펼쳤다.

참고로 무공이란 건 검법이건 도법이건 간에 뭐든지 일부러 느릿하게 펼치는게 더욱 어려운 법이다.

검 한 번 휘두르는 것조차도 느릿하게 움직이려면 상당한 근력이나 체력, 지구력을 필요로 한다.

정신력도 마찬가지다.

느릿하게 펼치는 걸 그만큼 의식해서 그렇다.

비록 예전에 대성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매화검 정도의 수준이 아닌 이상 상당한 집중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서천은 그 점을 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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