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수중동굴(水中洞窟) (28/254)

第四章수중동굴(水中洞窟)

유정목은 정기적으로 열리는 회합에 나갔다.

“아마 나홀 정도 뒤에 올 게다. 다녀오마.”

“다녀오십시오, 사부님.”

주서천은 공손하게 인사하며 유정목을 배웅했다.

‘좋아, 오늘이다.’

나흘이면 충분하다.

수중 동굴의 위치는 물론이고 수령신과가 어디에 자랐는지도 알고 있었다.

조금 피곤하겠지만 나흘이 아니라 사흘 만에 화산파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주서천은 유정목이 하산하고 정확히 두 시진 뒤에 화산파를 몰래 떠났다.

‘속가제자들, 특히 그 꼬맹이들 덕분에 이렇게 몰래 빠져나가는게 그다지 어렵지 않단 말이지.’

속가제자들은 대부분 돈 많은 상인의 자식이거나, 혹은 지체 높은 양반들의 귀한 집 자제들이다.

그들 중 나이가 어린아이들은 대부분 인내심이 그다지 많지 않고 공동생활이나 규율에 답답함을 느낀다.

틈만 나면 땡땡이나 도주할 궁리를 하는데 제일 대표적인 건, 

화산파의 외진 곳의 낡은 벽 아래에 구멍을 파서 몰래 빠져나가는 방법이었다.

보통 이 구멍을 통해 바깥에서 술도 마시고 여자도 안는 등 일탈 행위를 하고 다시 돌아오곤 했다.

참고로 이 비밀(?)의 통로는 사실 화산파도 잘 알고 있었으나, 그냥 못 본 척 묵인해 주고 있었다.

어차피 속가제자들은 보통 짧으면 일 년, 길어봐야 삼 년 정도 후에 수련을 끝내고 하산한다.

곧 떠날 터인데 이걸 묵인해 주지 않았다가 괜한 앙심을 품고 말썽을 부리는게 더 골치다.

특히나 지체 높은 신분이라거나, 돈을 많이 지불했다면 아무리 속가제자라 해도 막 대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통로는 그냥 내버려 두되, 혹시 모를 외부의 침입 등이 신경쓰이기에 고수를 몰래 배치해 감시했다.

즉, 당사자들만 모르고 문파 내 제자들이라면 누구라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본산제자들도 이 통로를 종종 애용하긴 했지만,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스승에게서 비교적 자유로운 편에 속하는 속가제자들과는 달리 본산제자들은 스승의 눈치가 보였다.

그만큼 주서천에게 있어서 오늘과 같은 날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거의 일 년에 한 번 꼴 정도다.

오 년이란 세월이 남았지만 결코 여유가 있는 건 아니다.

기회가 있을 때 무조건 나가야만 한다.

참고로 오전 일과, 낙안지옥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참 신경 쓰여야 할 초기에야 빼먹는지 아닌지 눈을 붉히며 조사하지만, 일 년이 넘어 낙안지옥의 왕복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다.

하루에도 수련동을 목표로 낙안지옥을 통과하는 제자들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그렇다.

세세하게 신경 쓰는건 정말 어릴 때 정도와 입문한 지 별로 되지 않을 때다.

* * *

주서천은 눈에 띄지 않도록 몇몇 속가제자들과 함께 비밀통로를 통해서 하산했다.

유정목 뿐만 아니라 꽤나 많은 중진들이 정기 회합에 참석했기에 상당히 많은 제자들이 몰래 나왔다.

그 덕에 근처에 있을 거라고 예상되는 고수들에게 제지받거나 하지는 않았다.

들고 나온 건 벽곡단 등 필수품 몇 개 정도와, 어릴 적부터 모아 온 용돈 몇 푼이었다.

“하, 이게 얼마 만인지!”

주서천은 하산하자마자 밝게 웃으며 크게 심호흡했다.

실로 오랜만에 맡는 화산 바깥의 공기였다.

회귀 이전에는 화산오장로가 된 이후 업무가 있어 내려올 일이 극히 드물었다.

회귀하고 난 뒤에는 강제적으로 바깥에 나가지 못했으니 당연히 정문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춥군.”

후우.

입을 열자 허연 입김이 나온다.

뒤를 돌아보니 동매가 보였다.

“으, 이 추위에 수영을 해야 하다니.”

주서천이 질색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필이면 겨울.

시기는 최악이었다.

주서천은 방한의(防寒衣)의 매무새를 다듬은 뒤, 주머니에 돈이나 물품을 재확인했다.

그다음에는 화음이 있는 북쪽을 향해서 경공을 펼쳤다.

‘암향표(暗香臘)!’

주서천은 매화권이나 매화기공 외에도 사람들 눈을 피해 몰래 다른 무공을 수련하곤 했다.

그중 하나가 암향표로, 화산의 대표적인 경공이다.

원래라면 열셋에서 열네 살은 되어야 배울 수 있지만, 지금의 주서천에게 있어서 나이란 무의미하다.

이미 화산파의 무공은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자하신공까지도 알고 있었다.

화음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헉헉, 젠장.”

경공을 배운 건 좋지만, 애석하게도 경공에 소모되는 내공은 검법이나 보법보다 많은 편이다.

주서천은 동년배 중에서도 내공이 제일 많았으나, 그렇다고 하루 종일 경공을 펼칠 정도는 아니다.

정말 많이 지치고 힘들었지만, 시간은 제한되어 있었기에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 덕에 예상한 시간의 범위를 별로 벗어나지 않고 도착했다.

“그래도 도적들을 만나지 않았다니 운이 좋았어.”

섬서는 구파일방 중 화산파와 종남파(綜南派)의 거점인 지역인 만큼, 치안만큼은 우수한 편에 속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우수한 거지, 완벽한 건 아니다.

산적이나 도적이 없는 건 아니기에 일부러 가진 게 없다는 걸 보여 주려고 위장까지 했다.

다섯까진 혼자서도 상대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체력이나 내공이 부족해서 무리라 조심해야 했다.

그래서 주서천에게도 이번 일은 약간 도박이었다.

여하튼 주서천은 화음에 도착하자마자 약간의 휴식을 취하고 저잣거리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바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혹시라도 괜한 시비라도 걸리면 체력만 소모한다.

아이를 얕보는 경우도 많고, 강도의 표적이 되기가 쉬워 식사도 일부러 객잔에서 하지 않았다.

어리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다.

하루라도 빠른 성장이 절실했다.

“일단 준비 운동부터.”

목적지는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수중 동굴로 가는 길 자체가 기억하기 쉬운 외진 곳에 있고, 길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아서 헤매지 않았다.

“하, 정말로 들어가고 싶지 않구나.”

수중 동굴까진 굳이 수공(水功)을 익히지 않아도 잠영(潛泳)을 통해서 갈 수는 있다.

일반인이라면 도중에 숨이 막혀 목숨이 위험하겠지만, 심폐 능력이 몇 배나 뛰어난 무인의 경우는 예외다.

성년이 아닌 아이라도 충분히 갈 수 있었다.

그동안 이 장소가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았던 건 정말로 외진 곳이기 때문인데, 근처에 아무것도 없어서 무인이 미치지 않은 이상 뜬금없이 잠영으로 동굴에 들어갈 리가 없다.

이십 년 뒤에 이곳을 발견한 낭인도 강에 빠졌다가 정신을 잃어 운 좋게 수중 동굴로 흘러들어 갔을 뿐.

“하나, 둘. 하나, 둘.”

주서천은 준비 운동으로 근육을 충분히 풀어준 뒤에 품 안에서 소지품을 꺼내서 근처에 숨겼다.

이 외진 곳까지 올 사람은 없지만, 들짐승이 가져갈지도 모르니 구덩이를 만들고 흙을 덮었다.

“부디 얼어 뒤지지만 않기를!”

풍덩!

주서천이 강 아래로 뛰어들었다.

수면이 위로 치솟았다가 떨어지며 크게 출렁였다.

‘육시랄!’

잠수하자마자 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발끝부터 시작해 머리까지 파고드는 차가움.

찬 정도가 아니라, 뼛속까지 시리고 아파왔다.

한겨울에 바깥에서 알몸인 채 냉수로 몸을 한 차례 씻고 얼음을 피부에 문대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주서천은 입수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속으로 크게 후회했다.

‘마음의 준비를 좀 더 하고 올걸!’

지금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주서천은 그 마음을 꾹 참았다.

이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의 고통을 결국 두 번이나 겪을 뿐.

변하는 건 없다.

무엇보다 잠수를 무한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체력의 한계가 있으며, 한 번의 잠수만으로 이미 상당히 소모해서 재시도할 때 도리어 더 힘들지도 모른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다시 한번 살아갈 기회를 얻었으나, 역시 천성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회귀 이전에도 그렇게 대단한 위인은 아니었다.

힘들면 변명하고 포기하기 바빴다.

‘이까짓 고통으로 사부님을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다!

설사 지옥에 떨어진다 하여도 구하겠다!’

눈을 번쩍 뜨고 이를 꽉 깨물었다.

평생 동안 가족이라 부를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

고아였던 자신을 구해 주고 무공을 가르친 스승.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바보같고 멍청했던 제자를 사랑해 주고, 자상하게 웃어 주었던 소중한 사람이다.

주서천은 유정목의 미소를 속으로 떠올리며 잠영에 힘을 박찼다.

* * *

물방울이 뚝뚝, 수면 위로 떨어졌다.

부글부글.

고요하기만 했던 수면이 갑작스레 끓기 시작했고, 수면 너머로 시커먼 그림자가 고속으로 솟구쳤다.

“푸하!”

주서천이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자마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물도 함께 들어갔지만 상관없었다.

“콜록, 콜록!”

주서천은 물을 마구 토해내며 시원한 공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딱딱딱!

주서천이 덜덜 떨면서 이를 부딪치는 소리였다.

그의 안색은 시체처럼 창백했다.

“지, 지, 진짜 뒈, 뒈질 뻔했네……”

주서천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더듬었다.

물 밖으로 뛰쳐나와서 주변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바닥에 누워서 숨을 골랐다.

다행히 수중 동굴까지 오는 길을 헤매지 않았다.

공기도 생각보다 부족하진 않고 버틸 만했다.

그러나 물이 생각 이상으로 차가웠다.

이 추위가 정말 상상 이상이었던지라 끔찍했다.

“이, 이, 이러다가 도, 동사하겠어.”

주서천은 쏟아지는 잠을 참기 위해 뺨을 꼬집은 뒤,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 몸을 손으로 주물렀다.

그리고 곧바로 운기조식을 통해 내공으로 냉기를 몰아내고 열기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효과가 있는 듯, 주서천의 감각이 점차 원래대로 돌아왔다.

“하아 ……”

주서천은 가부좌를 풀고 감았던 두 눈을 떴다.

‘이리도 나약하다니!’

어린아이의 몸과 내공을 너무 우습게 봤다.

생각 이상으로 버티기가.힘들었다.

회귀 전에 왔을 때는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기억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다. 얼른 수령신과를 회수해서 돌아가자.’

여전히 미치도록 추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다.

주서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을 따라 쭉 걸었다.

뚜벅뚜벅.

고요했던 동굴이 주서천의 발걸음 소리로 메아리치며 가득 찼다.

‘음, 어둠을 걱정했는데 이끼가 있어서 다행이야.’

그다지 밝지는 않지만, 은은하게 발광하는 이끼가 바위 곳곳에 자라나 길을 밝혀 줬다.

만약 이 이끼가 없었다면 동굴 벽에 몸을 기대가며 조심히 앞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내공을 끌어 올려 안력(眼力)을 높이면 앞이 보이긴 했겠지만, 지상으로 돌아갈 내공을 남겨 둬야 했다.

시간이 약 일각 정도 홀렀을 무렵.

두 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넓어졌고, 길이 끝나며 백 명 정도 수용 가능한 공동이 나타났다.

공동 또한 지나왔던 곳처럼 수많은 이끼들로 가득했는데, 은은한 빛이 모여 상당한 밝기를 자랑했다.

“찾았…… 흡!”

주서천이 반색하며 소리를 내다가 숨을 삼켰다.

그러곤 몸을 낮춰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대체……!’

도착한 장소는 기억 속의 수중 동굴이 맞다.

제일 먼저 보인 이끼는 녹색으로 은은하게 빛나며 공동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많았다.

그다음은 역시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으리으리한 거목(巨木)이었다.

무수히 뻗은 가지들은 길고 복잡하게 자라나 이끼와 더불어 천장과 벽을 가득 메웠다.

잎사귀는 바깥 것과 달리 녹색이 아니라 물색을 띠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 몸체는 족히 천 년은 되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무지막지한 굵기를 자랑했다.

마지막으로 나무를 지탱하는 뿌리 역시 가지처럼 바닥을 전부 뒤덮었다.

수중목(水中木)!

이름 그대로 물속에서도 자라는 나무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태양빛이 없어도 잘 자랄 수 있는 것이다.

수중목은 상당히 희귀한 식물 중 하나로, 중원 전체를 통틀어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주서천이 이렇게 놀란 건 수중목을 봐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수령신과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이십 년 뒤, 낭인이 신냐게 떠들었던 대로 청색으로 물든 과실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었다.

회귀 이전에는 몰랐던 게 존재했다.

‘저건 대체 뭐냐!’

뱀이었다.

수중목처럼 공동을 채울 정도로 큰 몸체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반적인 크기의 범위에서 벗어난 뱀이 있었다.

일단 길이가 대충 봐도 범상치 않았는데, 정확하진 않지만 무려 오 장(丈) 정도는 되어 보였다.

길이도 길이지만 둘레 역시 대단했는데, 대충 가늠해 보면 삼 척(尺) 정도 됐다.

‘영물!’

영험한 기운과 능력을 가진 동물이나 식물을 영물이라 칭한다.

수중목 또한 영물에 속한다.

식물의 경우엔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다.

보통 식물이 위험한 경우는 독성을 품은 독물에 분류되니까.

하지만 동물은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

동물임에도 사람 못지않게 똑똑한데다가 무엇보다 지닌 힘이 상당해 고수조차 위협이 될 정도다.

‘저 정도 덩치라면……’

주서천은 전생에 혼자 있던 시간이 많다 보니 책을 많이 읽었다.

그중에서는 영물에 대해서도 있어서 비교적 자세히 아는 편이었다.

‘제길, 최소 몇백 년은 산 영물이다.’

특히나 뱀은 야수만큼 위험한 분류에 들어간다.

뱀은 대부분 영물이 되면 속도, 근력은 물론이고 비늘도 단단해져 심각하면 검기도 튕겨 낼 정도였다.

무엇보다 제일 무서운 건 송곳니에 숨어 있을 독.

‘지금은 자고 있는 것 같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겨울인 것을 수백 번 욕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겨울인 것에 감사했다.

뱀은 영물이건 뭐건 간에 겨울이 되면 동면에 든다.

그 덕에 발견되지 않고 살아 있을 수 있었다.

‘싸우면 아니, 깨우면 죽는다.’

저 정도의 영물이라면 절정, 초절정 고수 여럿의 힘이 동원되어야 겨우 이길 수 있다.

어떠한 명검보다 더 절대적인 절삭력을 지닌 병기나 화경의 증표인 강기(莖氣)가 아니면 힘들다.

즉, 적어도 회귀 이전의 무공을 지니지 않은 이상 저 뱀에게 덤빈다는 건 자살행위이다.

‘이십 년 후에 저런 게 있었다는 건…… 들었을 리가 없지.

실제로 없었을 테니까.’

그 입이 가벼운 낭인이라면 분명 저런 뱀에게 살아남았다는 걸 자랑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듣지 못했다는 건 이십 년 뒤에 저 뱀은 없었던 게 확실하다.

왜인지는 잘 모른다.

그 전에 다른 영물이나 은거기인에게 사냥당했을지도 모르고, 혹은 이무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십 년 전의 과거, 지금 저 뱀은 이 수중 동굴에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지독하게도 운이 나빴다.

‘도망쳐야 하나?’

영물이란 게 괜히 영물이 아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기척을 느끼고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

그러면 정말 죽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기도 아깝다.’

머리를 슬쩍 들어 수중목을 확인했다.

압도적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는 거목 아래, 과일이 보였다.

물빛으로 물든 과실.

필시 수령신과다.

가지나 뿌리, 그 외에도 살펴봤지만 수령신과로 보이는 건 바닥에 구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저게 분명하다.’

수령신과는 그 낭인이 신나게 떠들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바로 옆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진 거대 뱀의 머리가 있었다.

도저히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주서천은 눈동자를 굴리며 고민에 잠겼다.

여기서 물러나느냐.

아니면 전진하느냐.

그 고민은 길지 않았다.

주서천은 몸을 낮추고, 최대한 기척을 숨겼다.

그러고 거북이처럼 느릿느릿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부님!’

내년에도 기회는 있지만, 그때도 뱀이 없을 거라는 보장은 할 수 없다.

만약 열네 살 때까지도 이곳을 둥지로 삼는다면 끝이다.

유정목은 역사대로 죽게 된다.

그 불안과 공포가 주서천에게 용기를 줬다.

주서천은 숨을 쉬는 것도 잊은 채 수령신과에 조심스레 접근했다.

두근! 두근!

평소에는 신경도 쓰지 않던 심장 소리다.

지금 만큼은 번개가 내리치는 것처럼 유난히 크게 들렸다.

주서천은 뱀의 눈치를 보면서 소리 죽여 이동했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

후회는 과거에 이미 여러 번 했다.

그 분함과 원통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

앞으로 다가가자 수령신과가 비교적 잘 보였다.

손바닥에 딱 들어올 만한 과실이었다.

그러나 멀리서 봤을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둘?’

바로 뒤쪽에 경사가 있어서 못 봤다.

그런데 다가가니 수령신과가 하나 더 보였다.

‘이게 웬 횡재냐!’

하마터면 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기뺐다.

이십 년 뒤에 낭인은 수령신과를 하나만 복용했다고 밝혔다.

추측해보면 아마 저 나머지 과일은 눈앞의 뱀이 훗날 떠나면서 부숴졌을지도 모른다.

‘좋아, 침착하게. 침착하게’

허리를 굽히며 손을 뻗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굴러가지 않도록 잡아서 품에 안았다.

수령신과 하나는 무사히 회수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역시 소리가 나지 않게 조심스레 품에 넣었다.

‘됐다!’

웃음과 기쁨은 꾹 참고 허리를 폈다.

옆에 자고있던 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주서천은 속으로 환호하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주서천은 얼어붙었다.

새애애액

반개한 눈매 사이로 금안(金眼)이 보였다.

세로로 갈라진 동공에 주서천의 얼빠진 모습이 비쳤다.

“ ……”

숨 쉬는 것도 잊었다.

아니, 생각이 멈췄다.

뱀이 눈을 살짝 뜬 채로 주서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살의도, 먹잇감을 찾아 헤매는 의지도 아니었다.

어떠한 감정도 없는 것처럼, 공동 너머 지상으로 이어진 강물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머리 위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물이다.

적어도 뱀이 흘린 물은 아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물방울이었다.

뱀과 눈을 마주 본다.

그 눈 속에서 본 것은 아홉 살의 어린아이.

그리고 포만감과 나태였다.

뱀은 다 뜨지도 않은 눈을 몇 차례 껌뻑이더니, 이내 흥미를 잃은 듯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머리의 무게가 상당한 듯 옆으로 돌려 눕자 공동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그게 끝이었다.

뱀이 다시 잠든 것인지, 아니면 잠들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인지는 모른다.

얼굴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얼음처럼 굳어 있던 주서천은 가만히 있다가 다시 걸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머릿속은 새하얗게 질렸다.

생각 자체가 이어지지 않았다.

손에는 수령신과를 놓치지 않고 들고 있었다.

주서천은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는 뛰지도 않았고, 빠르게 걷지도 않았다.

마치 산책하듯이 천천히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가 수면 아래로 몸을 천천히 담갔다.

스윽

수면 위로 머리가 올라왔다.

어린아이였다.

아이, 주서천은 바깥으로 나왔다.

분명 아까 잠영했을 때는 해가 중천에 떴다.

그런데 지금은 해가 지며 하늘을 붉게 물들고 있었는데, 그 색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주서천은 아까와 달리 조용히 지상 위에 올라오곤, 우수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쌌다……”

* * *

주서천은 수령신과를 무사히 회수하고 중식이 되기 전에 화산파로 복귀했다.

딱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유정목은 석식 무렵에 회합에서 돌아왔다.

며칠 뒤, 주서천은 고민에 빠졌다.

‘이걸 사부님께 어떻게 드리지?’

화산파에서 수령신과 같은 과실은 없다.

일단 외관부터가 범상치 않다.

크기는 일반적인 과실이나, 그 색이 물빛을 띤다.

한눈에 봐도 평범하지 않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후우. 애초에 영약이라고 언질을 주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하다.’

영약이라고 먹기만 한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다.

수령신과처럼 강력하고 거대한 기운을 소유한 영약은 복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만약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복용하게 된다면 갑작스레 몸으로 들어오는 기운에 당황하게 된다.

당황하게 되면 통제 불능으로 이어져 최악의 경우 내공이 폭주해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그..’

어떻게 말해도 의심을 피할 수는 없다.

이만한 영약을 돈으로 사려면 최소 천금 정도는 들어야 하고, 길가에서 주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또한 정파의 제자로서 누군가에게 훔쳤다라고 할 수 없지 않는가.

애초에 그런 실력도 없고 말이다.

주서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끙끙 앓으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고민이라도 있느냐?”

유정목은 그런 제자의 고민을 얼마되지 않아서 눈치챘다.

“사, 사부님!”

“요 며칠 동안 얼굴에 근심과 고민이 가득하더구나.

혼자 고민했는데도 풀리지 않는다면 때로는 주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단다.”

유정목은 언제나처럼 주서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끄응.”

주서천은 겉모습은 아이지만 속은 노인이다.

나이로 보나, 경험으로 보나, 또 무공의 깨달음으로 보나 유정목보다 몇 수 위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회귀를 했건 말건 간에 유정목 앞에만 서면 정말로 아이가 된 것 같았다.

또 유정목 앞에선 무엇을 숨기기가 예전부터 참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회귀한 이후 괜한 의심을 피하고 눈에 띄지 않으려고 뻔뻔스럽게 거짓을 고했다.

연기력도 수준급이라서 다들 껌뻑 속아 넘어갔다.

눈앞의 한 사람, 유정목만을 제외하고.

‘그래 의심을 사고 추궁을 받아도 어쩔 수 없어.’

주서천은 각오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

‘사부님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만약, 영약 복용 기간이 오늘까지였다면?

그 생각이 들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물론, 과한 생각일지도 모른다.

주서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과한 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만약’이라는 것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주서천은 용기를 내 품 안에서 수령신과를 꺼냈다.

“사부님, 이걸 복용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무엇이냐?”

“영약입니다.”

주서천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

속으로 너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가 며칠 동안 똥 마려운 것처럼 끙끙 앓더니만, 갑자기 영약을 꺼냈다.

그러곤 다짜고짜 그걸 복용하라고 했다.

누구라도 어이없어할 것이다.

“허……”

유정목이 침음을 흘렸다.

그 올곧은 시선이 주서천이 손에 쥔 물빛 과실인 수령신과로 향했다.

잠시간의 고요.

그리고 고요를 끊은 건 유정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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