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매화우무(梅花友無) (27/254)

第三章매화우무(梅花友無)

수련동.

“주서천!”

“예 !”

화산파의 삼대제자이자 낙안지옥의 교두인 철웅(鐵雄)의 부름에 주서천은 힘찬 대답과 함께 나갔다.

“어제 부로 매화기공을 오성 달성했다고 들었다. 맞느냐?”

“예,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네놈도 오늘부터 권법수련에 동참한다.”

매화기공의 오성을 달성하기 전까지의 육체의 단련은 낙안지옥의 왕복과 마보(馬步) 정도로만 끝난다.

그리고 약 일 년에 걸쳐 매화기공의 오성을 달성할 때 즈음, 육체 수련도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매화권(梅花拳)을 가르쳐 주겠다.”

“예, 알겠습니다.”

화산의 자랑은 검이지만, 그렇다고 다른 무공이 전무한 건 아니다.

검법만큼은 아니지만 있긴 하다.

대부분 난해하지 않고 간단한 편에 속하며, 검을 쓰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호위이며 기초기다.

“강호에는 백일창(百日槍), 천일도(千日刀), 만일검(萬日劍)이라는 말이 있다.”

병기를 다루고 익힘에 있어 검을 익히는 것이 가장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든다는 걸 비유하는 말이다.

“권법 또한 화산의 정수가 담겨 있으니, 검법을 배우는데 있어 좋은 기초가 될 게다.

그러니 불만하지 말고 따르도록!”

철웅이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서천은 군소리하지 않고 권법 수련에 합류했다.

‘호, 보통은 화산의 검을 먼저 접하지 못한다며 실망하기 마련인데…… 자세가 좋군.’

철웅이 그 뒷모습을 보고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이후, 주서천은 일상에 조금 변화가 생겼다.

새벽에 일어나 매화나무 근처에서 꼭 운기조식을 했다.

다만 그게 조금 눈길을 끌었다.

사대제자 대부분은 아직 성년도 채 되지 않은 아이들 뿐이었다.

자고로 아이란 건 호기심이 많은 법이다.

그런 아이들의 사회 속에서 매일 혼자 매화나무에 앉아 운기조식을 하면 당연히 눈에 띈다.

“야, 매화우무(梅花友無).”

운기행공을 막 끝내고 눈을 뜨니 웬 일련의 무리가 찾아와 있었다.

다들 동년배 정도의 아이들뿐이었다.

“너 매화밖에 친구가 없다며?”

킥킥!

“자고로 아이만큼 순수한 악(惡)은 없다 하였다.”

주서천 이 몹시 슬픔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래?”

딱 봐도 아이들 무리를 이끄는 대장 꼬마가 그 말을 듣고 뭔 개소리를 하나는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우수에 잠긴 눈으로 말을 이었다.

“보통 이럴 때는 ‘형이 너희들 상대하기 귀찮으니 좋은 말할 때 가라.’ 라고 말하겠지.”

“뭐?”

“하지만 그래도 분명 너희는 나에게 시비를 걸 거야.

세상이란 그런 증오의 연쇄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 연쇄가 일어나기 전에 끊도록 하겠다.”

아이들에게 있어 주서천의 말은 어려웠다.

자고로 아이의 사회에서 말을 어렵게 하면 잘난 척한다, 재수 없다고 보이기 마련이다.

그들은 처음에 혼자 있는 주서천을 조금 놀리려 왔으나, 그가 이렇게 나오니 점차 기분이 나빠졌다.

“오라, 이 악적들이여! 이 주먹, 그 증오의 연쇄를 끊도록 지금까지 매화권을 연마해 왔다!”

주서천이 지면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그다지 빠르지는 않았다.

이제 막 매화생공과 매화권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뭐, 뭐야. 이 미친놈은!”

대장 꼬마가 당혹스러워하면서 날아오는 주서천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하하”

주서천은 재미있듯이 웃으면서 가볍게 피해 냈다.

속도와 힘은 대장 꼬마가 위지만, 그래 봤자 아이다.

전생의 기억을 가진 주서천에게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

어떤 움직임을 할지, 어떻게 공격을 해 올지 눈에 뻔히 보였다.

“허?”

대장 꼬마가 기겁하며 몸을 급히 돌렸으나, 이미 늦었다.

주서천은 대장 꼬마의 가슴을 발로 후려쳤다.

“컥!”

대장 꼬마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주서천이 고개를 꼿꼿하게 세우고, 슬퍼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강호의 주먹이다.”

“뭐라는 거야, 방금 그건 발차기잖아!”

원래의 주서천은 상당히 조용하고 얌전한 편이었다.

중압감 같은 것에 억압되어 살아와서 그렇다.

평생을 수련하느라 그럭저럭 보냈고, 중년이 됐을 때 즈음에는 눈치만 보다 살아서 음침한 성격이었다.

그런데 회귀 후에 그 성격이 좀 변했다.

정확히 말해선, 억압된 걸 모조리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새로운 삶에선 좀 더 자유롭게.

근데 그게 좀 어처구니없게 이상한 방향으로 가 버렸다.

“켁켁…… 저 미친놈 잡아!”

대장 꼬마가 복부를 부여잡은 채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이 와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면서 주서천에게 덤볐다.

“하하, 매화권이다! 매화권을 받아라!”

주서천이 오냐, 하면서 아이들을 상대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입장에서 아이들과 싸우는 것은 그저 소꿉장난에 불과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던 것 같았지만 주서천의 입장에서 보면 아이들의 움직임은 너무 단조롭고 쉬워서 눈을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주서천은 덤벼오는 아이들 사이를 추어(報魚 :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유린했다.

“으아아악!”

“꾸웨엑!”

아이 들이 비명을 흘리며 대거 나가 떨어졌다.

주서천은 그 아이들을 보고 자상하게 웃었다.

“이 아저씨랑…… 비밀 친구 할래?”

“히이이익!”

그곳에 광인 (狂人)이 있었다.

아이, 특히 어린 남자아이에게 있어 ‘싸움에서 졌다.’ 라는 건 무척이나 수치스러운 사실이다.

만약 그 싸웠던 상대가 나이도 어리고 체격도 작으면 더더욱 그렇다.

주서천에게 시비를 걸었던 아이들은 그게 부끄러워서 그에게 된통 당한 걸 굳이 말하고 다니지 않았다.

사대제자 중에서 막내인 데다가 또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단체로 덤볐다가 손도 못 대고 당했다.

그게 알려지면 체면이 말이 아니다.

반대로 주서천이 혹시라도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건 아닐까하고 노심초사하며 그를 지켜봤다.

“흐흐, 아이들이 그렇지 뭐.”

그 덕에 이 소란은 크게 커지지 않았고, 주서천 입장에서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어서 크게 만족했다.

“그래도 반성하자. 참지 못하고 그만 욱해 버렸네.

몸이 어려져서 그런지 나이도 거꾸로 먹은 기분이야.”

주서천은 스스로를 반성하면서도, 얼마 전 일을 떠올리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까지 자유롭게 날뛴 적은 또 처음이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막무가내인 적은 없었다.

“그럼 방해꾼도 없으니 다시 수련에 집중할까.”

참고로 대장 꼬마 등 시비를 걸어왔던 아이들은 동년배 무리 중에서도 제일 높은 위치에 속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주서천이 무용담을 펼칠까 봐 신경 쓰여,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려는 아이들을 사전에 막았다.

그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매화나무 근처에서 수련을 할 수 있었다.

* * *

매화생공을 운기하고, 매화권을 배운 지 어언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하!”

그 시간 동안 얻은 결과물은 굉장했다.

“무려 반년 치 내공을 한 달 만에 쌓다니!”

매화생공의 축기 속도가 장난이 아니었다.

매화와 함께 호흡한 덕에 반년 치 내공을 쌓는 데 고작 한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여덟 살 무렵에 단전을 완성했고, 매화기공의 오성을 이루는 데까지 운기조식해서 일 년 치를 쌓았다.

그런데 그중 반을 고작 한 달 만에 이루었다.

기쁘지 않다면 그게 이상하다.

지금 주서천의 내공은 일 년하고 반년 치였다.

“매화권도 이 정도면 되려나.”

주서천이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쐐액!

매화권에 대해서는 이미 교두보다 잘 알고 있었다.

몸에 숙련되지 않았던 것뿐이지, 몇 번 집중해서 수련하니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거의 다 익혔다.

회귀 전에는 일 년 가까이 걸렸던 것 같은데, 그걸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손발처럼 다룰 수 있게 됐다.

‘음, 남은 건 지루한 반복뿐이구나.’

정신적인 깨달음에 따른 이해도가 있다 하여도 그걸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전설상에서나 나온다는 천무지체(天武股體)가 아닌 이상, 무리를 하면 몸이 따라 주지 못한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아홉 살 어린아이의 육체다.

괜히 욕심을 부렸다간 신체가 망가진다.

만약 몸만 따라 줬다면 매화권이고 뭐고 어디 검이라도 훔쳐서 검법부터 수련했을 것이다.

그럴 수 없으니 별수 없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가면서 매화 권법을 펼쳐 몸을 단련시켜야만 했다.

참고로 주서천 입장에서 느린 거지, 남들이 보기엔 미 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원래 처음에 배울 때는 천재가 아닌 이상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낮으니 느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계획의 검토나 해야겠어.’

매화권은 굳이 생각을 하지 않아도 펼칠 수 있다.

거의 무의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다.

굳이 구결이나 권로(拳路)를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주서천은 그 대신 앞으로 있을 미래의 일 몇 가지를 되뇌며 정리했다.

“정말로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 제일 먼저 기억에 남는 건……”

주서천의 얼굴에 검은 그늘이 꼈다.

앞으로 오 년 뒤,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몇십 년도 더 된 일이지만 아직도 그 일을 결코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해에 스승 유정목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었다.

소유검(笑柔劍) 유정목.

언제나 미소가 부드럽고 순하다 하여 붙은 별호다.

주서천은 유정목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사부님 ……’

유정목은 존경받을 만한 위인이자 무인이다.

결코 주관적인 게 아니었다.

남을 배려하는 성격, 자상함, 편안한 미소.

인격적으로 흠잡을 것 하나 없었고 무공도 뛰어났다.

화산에는 매화검수(梅花劍手)라는 직책이 있다.

매화검수는 무위와 오성, 인격 등 철저하고 엄격한 심사와 시험을 통과해야만 오를 수 있다.

그만큼 그 기상은 화산파 내에서도 제일이며,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우상이었다.

유정목은 한때 매화검수의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을 정도로 뛰어났다.

본인 또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했고 몇 차례의 심사도 통과했다.

하지만 결과만 말하자면 유정목은 어떠한 연유로 인해서 매화검수에 오르지 못한다.

바로 예로부터 지니고 있었던 지병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지병인지도 몰랐었다.

유정목은 어릴 때부터 무공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며, 그만큼 몸으로 펼치는 것 또한 정확하게 잘했다.

하지만 남들보다 쉽게 지치고, 근골 또한 빈약했다.

태생적으로 체력과 근골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파에 입문했을 직엔 주변의 동기들에게 약골이라며 놀림을 받을 정도였다.

하나 유정목은 이에 굴하지 않고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배는 노력하여 신체를 단련했다.

태생적으로 빈약했던지라 남들보다 더욱 힘들었지만 굳건한 의지 끝에 어떻게든 이겨 냈다.

그러나 이 빈약한 체질은 나이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다행히도 크게 아팠던 적은 없었으나 가끔 미열이 오르는 등 잔병치례를 겪었다.

매화검수가 되는 조건은 정말로 엄하고 철저하다.

잔병을 자주 겪는 탓에 결국 심사에서 떨어졌다.

주서천에게 다른 사형제가 없었던 것도 이러한 연유가 있어서 그렇다.

유정목이 건강이 그다지 썩 좋지 못해서 주서천 외에 제자를 더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사부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몸이 좀 약했을 뿐이라며 그냥 넘어갔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했어.’

애초에 무인이 병약하다는 것이 이상하다.

내공심법이란 건 곧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주는 것.

그걸 연공한 무인이 일반인과 비슷할 정도로 잔병을 자주 겪는다는 건 뭔가가 어긋난 것이다.

배를 굶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씻지 않아 청결을 유지 못 하는 경우도 아니었다.

규적적인 생활과 식습관, 수면 시간을 맞춰 가며 대자연의 기를 호흡하는데 건강하지 않을 리 없다.

설사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고 해도 그 체질은 진작 고쳐지고 끝냈어야 한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천수를 거의다 누렸거나, 혹은 과거에 크게 내상을 입었을 경우는 제외다.

유정목은 어떠한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간단하다.

‘체질이 아니라, 질병에 걸리셨던 거지.’

병이 얼마나 잠복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또한 그 병에 대한 정체도 모른다.

심지어 이 병이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나 이 병은 스승의 몸을 조금씩, 천천히 갉아먹다가 끝내 오 년 뒤, 그 목숨까지 집어삼킨다.

유정목이 큰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서천이 알게 되는 건 이미 그의 건강이 많이 악화된 뒤 였다.

‘그때 그 무기력함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어느 날, 스승이 고열을 홀리며 쓰러졌다.

급히 의원을 불렀으나 절망적인 소견을 냈다.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병이 잠복한 지는 꽤 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런 증상을 보인 적은 없었는데……’

참고로 유정목은 어릴 적부터 워낙 자주 잔병을 달고 살았다 보니 의원의 신세를 정말 많이 졌다.

정기적으로 검진받았지만 쓰러지기 전까진 어떠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았었다.

결국 유정목은 며칠 뒤에 유언하나 남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세상을 떠난다.

‘기필코 막아야 한다!’

회귀 이후 스승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다.

그만큼 유정목의 존재는 주서천에게 있어서 특별했으며 또 소중했다.

유정목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면서 회귀 뒤에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하고, 되뇌었다.

스승을 살리는 것.

그게 첫 번째 할 일이다.

‘그다음은 약 육 년 뒤. 지학(志學 :15세) 때였나.’

그리고 유정목을 떠나보내고 일 년 중원 무림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이 일어난다.

‘삼안신투(三眼神倫)의 비고(秘庫)!’

지금으로부터 삼백 넌 전, 강호 무림을 넘어 중원 전체에서 명성을 떨친 전설적인 도둑이 있었다.

그 도둑은 무언가를 훔치면 항상 세 개의 눈이 그려진 문장을 남겼다.

그래서 삼안신투라 불리게 됐다.

삼안신투는 등장 이후 약 백 년 가까이 활동했으나, 그 누구도 삼안의 문장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백 년이 안돼서 삼안신투의 활동이 멈추자, 관부는 삼안신투를 추포했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 공표를 믿지 않았다.

근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삼안신투는 관부 외에도 각종 무림 세력을 포함하여 수많은 추적을 받았다.

하지만 정파, 사파, 마교, 혈교, 심지어 그 황궁조차도 삼안신투를 추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삼안신투가 어딘가에 훔친 것을 숨겨 두고 자연사했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그 비고를 찾는 사람들은 줄을 이었지만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육 년 뒤, 그 전설의 비고가 발견되어 세상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먼저 가서 털어야 한다!’

미래에서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되자마자 온갖 사람들이 보물을 노리고 벌 떼같이 몰려들었다.

전란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져서 엉망진창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엔 보물을 다 회수하기도 전에 기관을 잘못 건드리는 바람에 비고가 무너져 내리면서 끝이 났다.

그렇게 되기 전에 선수를 쳐야만 했다.

‘하지만 문제는 육 년 뒤에도 내가 나가지 못했다는 거야.’

중원에서 지학은 성년이지만, 화산파에선 성년이 됐다고 자유롭지는 못하다.

화산파에서 강호로 나가려면 정말 특출난 경우가 아닌 이상 약관 정도 돼서야 허가가 나온다.

이는 애써 키운 제자가 강호에 나갔다가 어이없게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좀 더 철저한 준비를 시키기 위해 약관의 나이까지 무공을 수련시키고 강호에 내보냈다.

‘어떻게 해야 할까?’

* * *

다시 두 달이란 시간이 홀렀다.

그동안 일 년의 내공을 더 쌓을 수 있었다.

주서천의 내공은 총 이 년 하고도 반년 치였다.

“회귀 이전에도 느꼈지만 정말로……”

축기의 속도에 몇 번이 나 감탄하게 된다.

정파의 무공을 보통 정공(正功)이라고 한다.

정공은 우선 안전하다.

수련을 올바르게(正), 정석대로만 한다면 주화입마(走火入魔)의 가능성은 적다.

그 대신 내공이 쌓이는 속도를 비롯하여 수련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에 반면 마공(魔功)은 축기나 수련 등 모든 면에서 반칙이라 칭해질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법

마공은 그 대신에 부작용이 너무 많다.

괜히 마공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마성에 물들어 광인이되거나, 인육을 하거나, 성욕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거나.

부작용만 해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양하다.

한데 매화생공은 정공인 주제에 마공의 축기 속도와 같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공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준마공이라고 칭할 정도는 된다.

“후,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군”

주서천은 하루 일과를 끝나고 유시(酉時 : 17시 ~19시) 무렵에 스승의 거처로 향했다.

문 앞에 선 주서천은 들어가기 전에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몸가짐을 확인했다.

“콜록…콜록……”

움찔.

주서천은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전, 문 너머에서 들렸던 목소리는 유정목의 기침 소리였다.

‘사부님 …… !’

회귀 이전, 죽기 전까지 잊을 수 없던 목소리다.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

나이를 먹고도 의지했던 사람.

‘아홉 살의 해, 아직 때는 아니다.’

유정목의 남은 수명은 오 년.

하나 ‘오 년이나’ 가 아니라 ‘오 년 밖에’다.

자고로 병이란 건 일찍 발견되어 초기에 조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정확히 어떠한 병인지도 모르니, 최악의 상황에는 지금 당장 손써야할 수도 있었다.

주서천은 근 두 달 동안 무공을 성실하게 수련하면서도 끊임없는 고민을 했다.

‘역시 신의에게 진료를 봐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의(神醫)

의술의 경지가 명의(名醫)를 넘어 당대 최고의 의원.

그야말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정말로 이 전란의 시대에는 고금 이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수들과 기인들이 가득하다.

신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며, 전란의 시대 도중 사망하여 이름을 남기고 사라진다.

‘하지만 신의를 어떻게 부르지?’

신의는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신의는 한때 괴의(怪醫)라 불렸을 정도로 성정이 괴팍한 자여서 마음을 얻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심지어 협박을 해도 결코 통하지 않는다.

과거 몇 차례 무림맹주나 그 외에 장로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무시한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

‘분명 신의가 희귀한 의서(醫書)에 환장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기는 하는데……’

신의는 의학의 정점에 선 위인인 만큼, 그만큼 다양한 의서를 수집하여 낭독하고 있다.

중원의 의서는 모두 신의가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을 정도였다.

의서라서 다행이지 만약 그게 무공 서적이었다면 아마 신의를 중심으로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신의는 본인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의서라면 환장을 했고 신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의서를 구하려 했다.

그 덕에 그렇지 않아도 값비싼 의서는 신의의 등장으로 인해 폭등했다.

‘의서가 화산파의 서고에 있다고 소문을 낼까?’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신의가 소문만 듣고 바로 움직일 리는 없었다.

‘ ……’

그 외의 방법을 떠올려 보지만 이렇다 할 답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동안 제법 여러 고민을 했다.

제일 확실한 방법은 삼안신투의 비고다.

육 년 뒤, 비고의 존재는 무림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는 신의조차도 움직이게 한다.

확실히 비고에 숨겨져 있는 의서라면 진료는 물론이고 치료까지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너무 어려 행동의 제약이 붙어, 마음대로 사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고의 위치는 화산에서 제법 거리가 꽤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공이 아직 약해서 많은 문제가 된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강호에 나갔다가 산적이나 낭인에게 어이없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이러한 경우를 상정하고 화산파가 눈 뜨고 감시하고 있으니 무리다.

‘신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만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래에 있을 일들을 동원해 봐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능력감에 화가 났다.

주서천은 정신을 가다듬고 분노를 잠재운 뒤, 다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신의가 제조한 단약 같은 건 없나?’

신의는 의학에 관해선 전부 정점에 서 있다.

제약(製藥) 능력 또한 그 사이에 포함되어 있다.

신의의 약도 당연하다시피 귀하다.

돈이 있어도 못 구하거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의 고가로 거래된다.

수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이 것도 불가능.

‘잠깐, 굳이 신의의 단약일 필요는 없잖아!’

주서천이 무릎을 탁 차고 벌떡 일어났다.

‘영약(靈藥)이다!’

영약이란 건 자연의 기나 정수를 담고 있는 약으로, 보통 무인에겐 내공 증진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애초에 ‘약’이기에, 경지를 높이는 등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치료의 목적으로 쓰인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주서천은 머리를 두들기며 자신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영약이 발견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면서 떠올려 봤다.

생각나는 건 세 가지에서 네 가지 정도.

그리고 마침 그중 하나가 화산 근처에 있었다.

‘수령신과(水靈信果)!’

발견된 건 약 이십 년 정도 뒤.

전란의 시대일 때다.

어떤 낭인이 전쟁 도중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져 급류에 휘말리게 된다.

하나 그 낭인은 운 좋게도 급류를 타고 아무도 모르는 수중 동굴에 도착하여, 기연을 겪게 된다.

신기하게도 수중 동굴 안에는 어떠한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나무에서 열린 열매가 바로 수령신과다.

그 낭인은 수령신과를 복용해 이후 내공이 크게 증진하여 덕분에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그야말로 기연 그 자체였다.

‘다행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수중 동굴이 위치한 곳은 화산에서 북쪽으로 좀만 더 가면 나오는 화음(華陰)이라는 동네다.

그 근처에는 산서와 하남, 그리고 화산이 있는 섬서의 경계선인 강이 있다.

경공을 사용하거나 말을 타고 꾸준히 이동하면 채 하루도 되지 않는 거리에 있어서 좋다.

이 낭인이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위치가 워낙 유명해져 미래에는 관광 명소처럼 될 정도였다.

무엇보다 화산파 역시 혹시 수령신과가 또 없나 싶어 강 근처의 동굴을 이 잡듯이 뒤져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 덕에 주서천도 나름 자세하게 알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사 이후에 동굴이 몇 개 발견됐으나 수령신과는 물론이고 나무도 발견되지 않았다.

‘삼류 수준의 낭인을 순식간에 천하백대고수까지 오르게 해 준 영약이다.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 정도 기운이라면 유정목의 질병 또한 내공으로 눌러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 그동안 삼안신투의 비고에 눈이 가려져 있었군.

좀 더 다양하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겠어.”

주서천은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했다.

‘분명 사부님께서 일주일 뒤에 정기 회합에 참석한다고 하셨으니, 그 때가 기회다.’

정기 회합은 약 삼 일에서 오 일 정도 한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하다.

이때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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