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第二章매화기공(梅花氣功)
회귀 전, 전생에서 희수(喜壽 :77세)가 넘는 삶을 살아왔다.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서도 그나마 희미하게 기억나는게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매화기공이다.
화산파에 입문한 이후 처음으로 전수받은 내공심법.
단전을 형성하고 기초 내공을 쌓기 위해 배웠던 무공을 결코 잊을 리가 없다.
‘당시에는 어떻게든 기를 느끼려고 노력했었는데 . ’
어릴 적, 스승에게 거둬진 이후 매화기공을 연공하면서 걱정한 것이 하나 있었다.
만약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면 버림받지 않을까?
이는 주서천뿐만 아니라 고아 출신에 굶주림을 경험한 아이들 입장에서 공통되는 불안감이었다.
화산파의 수련은 비록 힘들고 고난했으나 그래도 적어도 밥을 굶게 하지는 않았다.
또한 매년 겨울마다 동사를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 달콤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도 무공수련에 진지하게 임했다.
다만 그 노력과 달리 재능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라, 한참 고생하면서 매화기공을 연공했지만.
‘하, 그런데 지금은 억지로 늦춰야하다니.’
정신적인 깨달음 자체는 화경에 있어서, 매화기공처럼 기초 내공심법을 대성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매화기공은 자하신공처럼 절세신공도 아닌데 단시간에 대성한다고 단번에 고수가 되는 건 아니다.
허나 문파의 어르신이나 스승님이 눈치채게 되면 소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직접 진맥을 짚어 가늠해 보지 않는 이상 천하제일인이 와도 눈치채기 힘들지만, 지금은 스승이 딱 달라붙어서 감시하고 있으니 별수 없이 인내심을 가지고 참아야 했다.
* * *
일 년이란 시간이 번개같이 홀렀다.
주서천은 아홉 살이 됐다.
“오, 드디어 오성 (五成)에 들었구나. 장하다.”
유정목이 자상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주서천은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그래도 기쁜 듯 희미하게 웃었다.
처음에 아이 취급을 당했을 때는 조금 곤란했다.
겉은 아이지만 속은 칠십 세가 넘은 노인으로, 머리를 쓰담 받을 나이가 아니다.
하지만 그걸 알 리가 없는 유정목은, 뭐만 하면 잘했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칭찬해 줬다.
주서천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익숙해졌다.
부끄럽기는 해도 꼭 나쁘지는 않았다.
혼자뿐이었던 전생, 유일하게 주서천이란 인간을 아껴주고 곁에 있어줬던 건 스승 유정목이다.
그 손길이 그립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이 순간만큼은 원래의 나이도 잊은 채 유정목의 손길을 받으면서 기뻐했다.
“오늘부터는 혼자 해야 할 게다. 힘들겠지만 잘 해낼 거라고 믿는다.”
유정목이 아쉬워했다.
‘드디어!’
그에 반면 주서천은 유정목이 앞에 있어서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두 팔 벌려 환호했다.
요 일 년 동안, 유정목이 하루도 빠짐없이 내공심법을 도와주느라 무공의 다른 수련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서 끝이다.
이제 그동안 계획만 해 두고 미루었던 걸 실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그렇게까지는 지루하지는 않았어.’
매화기공을 일부러 조절해 가면서 느릿하게 연공하는 일은 지루했지만, 그 외의 생활은 그렇지 않았다.
일단 지긋지긋한 낙안지옥!
전생에서 온갖 전란을 겪은 주서천조차도 낙안지옥을 다시 겪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몸의 한계를 귀신같이 눈치채고 죽기 직전까지 굴리는 교두들을 보면 절로 살의가 들끓었다.
이제 좀 살 만하다고 생각하면 교두가 단계를 올려서 또 극한까지 몰아붙인다.
그게 지금까지 반복됐다.
아무리 삶을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해도, 정말 낙안지옥 만큼은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의 정리
이게 제일 중요했다.
앞으로 무림에서 일어날 일에 대한 건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건 아니다.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는 법.
그것도 한평생을 전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주서천은 잊지 않도록 매일 미래에 있을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되뇌었다.
마음 같아선 서적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그걸 누가 보고 기억이라도 한다면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물론 누가 본다 해도 설마 진짜 미래겠어?라며 지나치겠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
주의하고 또 주의하면서, 필기를 한다 해도 흙바닥에 쓴 다음 곧바로 지워 버렸다.
주서천은 이 기억들을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하면서 계획을 세웠다.
‘공부한 것은 버릴 것이 없다 하더니만, 노년에 서고를 들락거렸던 것이 도움되는군.’
화산오장로라는 지위는 무공 외에 지성도 중요시한다.
특히 전란의 시대가 끝난 직후라서 무림의 안위에 대해서 토론할 능력은 갖춰야만 했다.
안 그래도 어부지리로 얻은 화산오장로라고 평가받기가 싫어서 노쇠한 머리를 굴려 가며 많이 공부했다.
“자아, 이제 기다림은 끝났다.”
기초 수련이 전부 끝난 건 아니다.
한동안은 여전히 낙안지옥을 겪으며 수련동에서 공동 수련을 해야 한다.
하지만 내공심법은 아니다.
매화기공을 대성하기 전까지 다른 내공심법을 배울 수 없지만 개인 수련을 한다.
“일 년 동안 준비한 걸 실행에 옮길 수 있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미래, 오늘로부터 육십육 년 뒤에 있을 일이다.
당시 화산파의 후학 중에는 어릴 적부터 오성이 뛰어나고, 무공에 대한 재능도 넘치던 천재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천재로부터 무공에 대한 한 가지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그 무공의 정체가 매화기공이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도 못했지.’
매화기공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무공!
상승 무공을 배우려면 이 과정을 필히 거쳐야 한다.
하나 어디까지나 그뿐, 그 외의 의미는 없다.
유구한 역사 동안 모두가 그렇기 생각했다.
매화기공은 그저 길을 다지기 위한 기초적인 것.
단지 지나가는 과정, 발판에 불과하다고.
실제로 화산의 이름이 알려지고, 정파의 대문파가 된 이 후 수백 년이 지났지만 그 누구도 무언가 비밀이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주서천도 남들과 마찬가지로 지나가던 과정, 그저 기초일 뿐이라 생각하고 다음 상승 무공을 원했다.
그래서 매화기공의 비밀이 밝혀졌을 당시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처음엔 미심쩍어 했었다.
“고정 관념이란 건 참으로 무섭지.
그것을 벗어나지 못해 진의를 봐도 깨닫지 못하고 부정하니까.”
매화기공은 강호에서도 일류에 속하는 내공심법이며, 또한 화산파의 시작과 함께한 내공심법이지만 모두가 너무 무관심했다.
모두가 상승 무공에만 집중하여 지나갈 무렵 훗날 딱 한 사람만이 관심을 갖고 비밀을 발견하게 된다.
과거의 회상이 끝난 주서천은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뒤에야 근처의 매화나무 앞에 앉았다.
눈에 들어오는 건, 새하얀 백매(白梅)다.
‘평생을 함께해 왔다.’
화산의 상징은 검과 매화.
꽃잎
추운 날씨에 핀다하여 동매(冬梅), 눈 속에도 펴서 설중매(雪中梅)라는 이름이 따로 있을 정도다.
무림이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졌을 때도, 화산파가 위기에 빠졌을 때도, 항상 매화를 보고 자라 왔다.
어릴 적에도, 화산오장로가 됐을 때도, 심지어 죽음을 예감했을 때도 매화를 보았다.
이제, 그 매화의 비밀을 피워 보려 한다.
‘후우.’
가부좌를 틀고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턱은 정면을 향하고, 두 눈은 감는다.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는다.
스읍, 하아.
들숨과 날숨.
일정하게 조율을 이루면서 반복됐다.
단순하게 호흡만 쉬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적으나, 하단전에서부터 시작되는 따스한 기운을 움직이면서 운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매화기공이었으나, 중간부터 달라졌다.
훗날 미래에 밝혀진 비밀의 운기법이다.
‘매화생공(梅花生功)!’
참고로 이 비밀은 밝혀지자마자 화산파의 제자들에게 전수됐다.
당시에는 전란의 시대가 끝나고 겨우 평화가 오긴 했으나, 이 평화란게 상당히 불안했다.
무림은 수십 년 동안 계속된 전란으로 인해 수많은 피해를 입었고, 후유증에 시달렸다.
전성기와 비교하면 그 전력이 겨우 삼 할 정도 수준이었으며, 그건 화산파도 마찬가지었다.
이에 다시 안정을 찾기 위해서 후학들을 육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는데, 때마침 매화생공이 발견됐다.
주서천의 경우엔 배우기보다는 이 매화생공의 안정성을 확인하고 전수해주는 입장이라서 외워야만 했다.
‘미약하지만 들어온다.’
입가에 진한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매화의 생기가!’
매화기공의 비밀, 훗날 생공이라 불리게 되는 이유.
그건 바로 매화에 담긴 생기에 있었다.
내공심법이란 건 대자연에서 떠돌아다니는 기를 특정한 호흡을 통해서 단전에 쌓는 방법을 말한다.
그게 정말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원리이다.
한데 매화기공은 그 기본적인 구조에서 좀 더 추가적인 것이 붙는데, 그게 바로 매화나무의 생기였다.
다른 나무는 불가능하지만, 매화나무 근처에서 특정한 구결을 외우며 운기행공하면 생기를 흡수한다.
자칫 잘못 보면 마공(魔功)으로 보이겠지만, 생명의 기운 그 자체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매화나무는 금세 삐쩍 말라져서 다시는 꽃을 피우지 못할 터 .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정공이라 부를 수 없다.
마공이다.
‘생기를 빼앗거나 빌리는 게 아니다.
나무와 같은 식물, 곧 매화가 내뱉는 걸 내가 호흡하는 거지.’
기(氣)라는 건 사람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길거리에 널려 있는 잡초에도 기가 있다.
또한 그게 생물(生物)일 경우, 호흡을 한다.
매화나무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매화생공은 그 내뱉은 생기를 대자연의 기와 함께 빨아들여 하단전에 천천히 쌓게 해 준다.
‘매화합일(梅花合一)’
매화와 하나가 되어 호흡을 하며 먼 훗날 밝혀질 매화생공의 구결을 읊는다.
‘좀 미안한데.’
원래 이 영광과 명성은 한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후학이 발견한 비밀을 먼저 파헤치니 도둑놈이 된 것처럼 양심이 찔렸다.
그래서 이 매화생공을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 후학을 위해서 자신만 알고 있을 생각이었다.
‘좋아, 됐어.’
매화기공이 지나가는 과정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축기 (築氣)에 있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내공을 쌓는 속도만 보자면 강호에서 잘해 봤자 삼류 정도의 수준으로 느렸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것이 매화기공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비밀을 밝혀진 이후로는 아니었다.
신공절학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초일류의 심법이었다.
축기의 속도에 문제가 있었던 건 애초에 그 비밀을 밝히지 못해서 그랬던 것.
그걸 해결하니 완벽해졌다.
‘자하신공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다른 상승의 내공심법과 비교해도 지지 않는 속도다.’
여덟 살 때 단전을 형성하고 축기를 시작하여 아홉 살이 된 지금은 일 년 치 내공 정도밖에 없다.
그러나 이 매화생공을 이용한다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금세 모을 수 있다.
당분간은 스승도 진맥을 잡아 보지는 않을 테니 숨길 수도 있을 터 .
완벽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새로 밝혀진 비밀의 효능은 축기의 속도 증진, 단전의 총량 확대다.
‘무엇보다 가장 기분 좋은 건……’
입가에 그려지는 미소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답답해왔던 응어리를 모두 풀어내는 듯, 정신을 집중하여 단번에 매화기공을 진행시킨다.
‘이제 더 이상 막을 필요 없다는 거지!’
일찍이 매화기공을 대성할 깨달음은 있었지만, 스승이 매일 진맥을 짚어서 억지로 억눌러야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매화기공을 대성한다고 경지가 순식간에 오르지는 않기에, 교두나 다른 제자들이 직접 손대지 않는 이상 눈치챌 수 없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나이 어린 제자를 진맥하거나 가르칠 수 있는 건 오직 스승이다.
이상을 느끼면 먼저 스승에게 따로 말을 한다.
이러한 사정이 있기에 주서천은 안심하고 드디어 더 이상 억누르지 않고 매화기공을 빠르게 진행시켰다.
사슬로 묶어 두었던 깨달음이 봇물터지듯 흘러나와 정신과 육체에 융화된다.
기가 흐르는 통로를 탄 그 의지는 이내 단전에 도착하여 변화를 일으켰다.
오성이었던 매화기공은 단숨에 십성에 올랐다.
대성은 십이성이지만, 내공이 부족해서 다음 단계를 이루지 못했다.
하나 그것도 시간문제.
매화생공으로 빠르게 축기하여 대성하면 그만이다.
‘이제 겨우, 미래를 향하여 한 발자국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