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몸을
재차 날렸다. 목표는 막원갑이 었다.
"뭐, 뭣들 하고 있어!"
막원갑이 지례 겁먹고 뒷걸음질 쳤
댜 처음에 대문을 부수고 들어왔을
때의 패기는 없었다.
"저놈부터 처리해 ! "
꼬맹이에서 호칭이 바뀌었다.
”혀, 형님. 화산의 검수라는데요?"
덩치의 사망으로 제일 앞이 된 무
사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화산파. 그 이름은 사도천의 하수
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게, 게다가 아직 약관이 되지 않
는 거 보면…….”
"연화각원이 틀림없습니다!"
약관이 되지 않았는데도 강호에 나
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여기의 모두가 알고 있다.
"연화각을 건들게 되면……."
누군가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연화각원은 화산파에서도 특히나
신경 쓰는 인재.
보복이 두려워 섣불리 건들기가 힘
들었댜
“이 머저리들아!"
막원갑이 울긋불긋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언성을 높였다. 목에 핏대를
세웠는지 퍼런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렇다고 여기서 철수할 생각이
야? 여 기 에 부상자들밖에 없다는 사
실은 누구나 다 아는데, 도망친다면
온갖 비웃음은 물론이고 우리의 목
은 끝이다!"
양동을 위해서 백 명의 무사를 따
로 빼냈다. 그만큼 본대의 피해도
커지는 게 당연하다.
어떻게든 여기를 뚫어 정복한 다
음, 옹안 지부의 식구들을 죄다 인
질로 잡아야 했다.
“그리고 화산의 제자. 아니, 연화각
원이라고 해 봤자 이제 막 성년이
된 어린아이다!"
막원갑이 뒤로 물러나려는 무사의
등을 발로 찼다.
"애초에 십사검협도 참전했다는데
그를 따라가지 않은 건 그만큼 실력
이 부족하다는 의미! 겁먹지 말고
빨리빨리 제압해라, 이 쓸모없는 놈
들아!"
막원갑의 호통에 설득된 것인지,
아니면 겁을 먹었는지는 모르나 사
도천의 무사들이 다시 칼을 고쳐 잡
았댜 그들의 눈 대부분은 주서천에
게로 향했다.
“어째 정파보다 말이 많은데.”
주서천이 웃음을 거두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주저리주저리 떠들지 말고, 검으
로 대화하자!"
주서천의 말을 끝으로 사도천의 무
사들과 옹안 지부의 무사들이 다시
재격돌했다.
“주 소협의 말씀을 떠올려라!"
삼류 무사들의 방어가 뚫리거나 버
거워하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지원을
해 주던 이류 무사가 외쳤다.
불과 한 식경(食頃: 30분) 전, 주
서천은 삼류 무사와 이류 무사들을
데리고 짤막하게나마 작전을 세웠
댜
처음에 무사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댜 주서천이 무능하다고 생각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주서천은…….
"혼자 도망쳐서 살아남은 뒤, 너희
가 재물을 들고 도망치려다가 실패
해서 죽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릴
테댜 가족이 고향에 있는 무사들이
라면 그 가족이 어떻게 될지는 알겠
지?"
“마, 마라(魔羅)! 마라가 여기에 있
다!"
……라는 식의 협박으로 억지로 말
올 듣게 했다.
대부분 어차피 자포자기했기에, 군
말하지 않고 주서천의 말을 들어주
고 따라 주었다.
사실, 전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정말 간단했다.
대문 앞에 대기해서 안으로 전부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 근처를 포위
해서 경계만 하는 것뿐이었다.
또한 이류 무사가 돌아다니면서 뚫
릴 곳이 있으면 보완해 준다.
마지막으로, 정면 중앙에 위치한
주서천이 갈 곳 없는 사도천 무사들
을 각개격파해서 승리한다.
처음에 그 작전을 들은 무사들은
주서천을 미쳤다고, 또는 자신의 무
위를 너무 과신하고 었다고 생각했
댜
당연하댜 연화각원이라 해도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다. 그것도
무림 초출이다.
처음으로 살인을 하고 어떤 반웅을
할지 모르는데, 모든 걸 맡겨 달라
니 . 어이가 저 멀리까지 출타했다.
뭐라 따지기도 전에 사도천의 무사
들이 가까워졌고, 결국 다들 절망하
면서 작전을 시행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아니, 작전이 문제가 아니었다. 주
서천이 보인 무위가 너무나도 충격
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 다들 눈을 껌뻑이면
서 의심했다.
그러나 한 명을 쓰러뜨리고, 이어
서 세 명을 순식간에 처리하는 걸
보고 드디어 믿게 됐다.
어째서인지는 모른다. 상식과 어긋
나는 무력이다.
하지만 의문보다는 여기서 살아나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싹
트자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좌익(左翼), 너무 파고들고 있으니
주의하십시오! 마음은 이해하겠지
만, 숫자는 우리가 적으니 조금은
진정하세요!"
주서천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전황
을 살폈댜 많지는 않지만 회귀 전
에 그럭저럭 지휘 경험도 있었다.
"예 ! "
삼류 무사가 진중한 목소리로 답했
댜 방금 전까지 가득했던 절망감은
없었다.
수적으로 몰린다. 사기도
대로 떨어졌었다.
희망은 없었다. 보이는 건
이었댜
떨어질
암흑뿐
뒤 에는 부상자들이 있었다. 싸울
수 없는 사람들이 겁을 먹은 채 숨
어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었었다.
그들을 잠깐이라도 버리겠다는 생
각을 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걸 반성하며 몸을 움직였다.
‘있댜'
삼류 무사들은 보았다.
‘화산의 등이, 있다.'
누구보다 든든한 등을 보았다.
청년도 되지 않은 소년의 등.
부끄러울지 모르지만, 그 소년의
등에 의지한 재 명령에 따르면서 격
렬하게 싸웠다.
"죽어랏!”
사도천의 무사가 악을 지르면서 달
려왔댜
주서천은 옆에 었던 사도천 무사의
가슴에 꽂았던 검을 빼낸 뒤, 몸을
비틀면서 검을 휘둘렀다.
쐐-액!
듣기만 해도 매서운 파공성이 터졌
댜 피를 머금은 검이 수평선을 그
었다.
"-으=-%0! "
사도천의 무사가 예상했다는 듯,
목이 꺾일 정도로 뒤로 젖혔다. 턱
끝을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
갔다.
“하하하! 끝이다!"
사도천의 무사가 환희로 가득 찬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해도 검을
회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터, 무
사는 목을 원래의 위치로 돌리기도
전에 손에 든 칼을 강하게 휘두르려
했댜
"호, 제법.”
주서천이 칭찬하면서 다리예 힘을
주었댜 잘 단련된 하체 근육이 울
긋불긋하게 부풀어 올랐다.
그러고는 발끝에 내력을 돌려, 그
대로 다리를 힘껏 휘둘러 무사의 정
강이를 걷어찼다.
“끄아악!”
빠악, 하고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
리가 들렸다. 무사는 칼을 휘두르기
도 전에 다리뼈가 부러져 무너졌다.
"화, 화산파의 검수란 놈이 대체
뭔……!"
정파인, 특히나 검에 대한 자부심
올 지닌 화산파 출신의 제자들은 검
공 외에는 잘 쓰지 않으려 한다.
매화권이 있다 해도, 싸우다가 검
을 놓치거나 잃어버리면 그 수치심
에 자결하는 자도 었을 정도였다.
하물며 상대는 화산파의 자촌심이
라고도 칭해지는 매화각이 아닌가.
발을 쓰는 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도 정말로 위험할 때 아니면 잘
안 써 그리고 전란을 겪게 되면 정
파인들도 자촌심을 좀 많이 꺾게 되
어 있더랴'’
주서천도 원래는 그런 전형적인 정
파인이었다.
그러나 필사적이게 됐을 때. 죽을
뻔한 적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서
사고방식 이 조금 바뀌 었다.
그건 주서 천뿐만이 아니다. 잔뜩
굳은 사고를 갖고 있던 정파인들은
전란의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변화
를 맞이하게 되었다.
“살려 ·… ... "
멜 라고? 사도천 무사라서 잘 안
들리는데?"
서걱!
사도천 무사의 머리가 목과 분리됐
댜
"히이익!"
정 면을 돌파하려 던 사도천
이 기겁했다. 그 뒤에 있던
도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무사들
무사들
그들은 애초에 삼류. 이렇게 압도
적인 무위 앞에선 별다른 힘을 발휘
하지 못한다.
특히나 사파인들의 경우, 자존심이
나 명예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
댜 겁이 금세 전파됐댜
"버, 벌써 삼십 명이나 당했다고!"
누군가가 기겁하면서 소리쳤다.
백이었던 무인들은 칠십 명으로 줄
었댜
"반대로 생각해라! 삼십 명 정도와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 놈들은 틀림
없이 지쳤을 것이다! "
막원갑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철대 여기서 물러나면 안 돼 다
른 놈들은 몰라도 책임자인 나는 도
망쳐도 기필코 추격을 받는다. '
막원갑은 침을 꿀꺽 삼켰다. 책임
을 지는 자리는 그만큼 실적도 쌓기
쉽지만 처벌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나 사정을 봐주지 않는 사도천
은 더더욱 그렇다.
"밀어! 밀어! 밀어붙이란 말이다!"
막원갑이 수하 무사들의 등을 발로
걷어찼다. 칼을 높이 들어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누구든지 저 꼬맹이의 목을 자르
는 자, 내가 상부에 고해서 금자를
내리도록 하겠다!"
막원갑에게 그런 능력 따위는 없
댜 그러냐 공포감에 짓눌려서 아무
렇게나 지껄였다.
“우와아아!"
금자라는 말에 사도천 무사들이 반
응했댜
사파인, 특히 하류 인생을 사는 자
들은 자촌심이냐 명예보다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에 환장했다.
”이, 이런!"
옹안 지부 이류 무사가 사색이 됐
댜 한참 잘 막고 있었지만, 사도천
무사들이 홍분하여 한꺼번에 돌격하
자 버티기가 힘들었다.
지금까지는 주서천이 압도적인 무
력을 보여 소극적인 태도였지만, 이
제는 그 반대가 됐다.
“주, 주 소협!"
이류 무사가 애달픈 목소리로 주서
천을 불렀댜 삼류 무사들도 주춤주
춤하더니만 점차 뒤로 밀리기 시작
했댜
‘이런!'
주서천이 아차, 하는 얼굴로 얼른
돌아가려 했다.
"죽어라아아!“
하나 사도천 무사들이 몰려와 주서
천을 막았댜 위협적이지는 않았지
만 지원을 가기가 힘들었댜
이렇게 뚫리나 싶을 때, 전장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야 이 새끼들아!"
퍼엉!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폭음이 터졌
댜
쇄새새색!
소리에 대한 정체를 판명하기도
전, 사도천 무사들의 머리 위로 무
언가가 떨어졌다.
“끄아아악!”
“아악, 이게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멧돼지 같은 기세로 돌격하던 사도
천 무사들이 기겁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진 건, 화살이었
댜 그것도 최소 이십 개에 달하는
숫자였다.
도…·하하하!"
주서천도 사도천 무사들 한가운데
에 었었기에 화살을 맞았다. 하지만
검으로 쳐 내서 피해는 없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줄이 달린 대나
무 통을 들고, 잔뜩 성이 난 표정을
한 제갈승계가 있었다.
“제갈세가, 이 새끼들 진짜 더 러운
놈들이네 . ”
죽통노(竹簡綺)
죽통에다가 화살을 집어넣은 뒤,
죽통에 달린 실을 잡아당기 면 화살
몇 개를 뿜어내는 암기였다.
몇십 년 뒤, 사천당가에서 새로운
암기라고 전란의 시대 때 사용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인지 사천당가
의 사람이 아닌 제갈세가의 사람이
죽통노를 사용하고 있었다.
즉, 그 말은…….
"승계가 개발했던 게 암기라서, 그
게 정파인으로서 부끄러워 쓰지 못
하니 사천당가에 돈을 주고 팔아?"
기분은 나빴다. 하지만 이걸로 확
신할 수 있었다.
“하하! 성공했다!"
제갈승계가 죽통노를 들고
벌려 기뻐했다.
두팔
무언가의 도전에 성공한, 순수한
기쁨이었다.
틀림없는 만각이천이다!'
第一章영약맹약(靈藥盟約)
제갈승계는 사도천의 습격 소식을
듣자마자 모습을 감췄다. 지레 겁을
먹고 숨은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 반대였
다 철저하게 오해하고 있었다.
제갈승계는 숨기는커녕, 옹안 지부
의 화살이나 죽통 둥의 물건들을 모
아서 암기를 만들었다.
“아, 암기?"
막원갑이 당황했다.
‘사천당가?’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암기
다 그런 암기를 쓸 만한 인물은 정
파에서도 사천당가뿐이었다.
“하하, 성공이다! 성공이라고!"
제갈승계가 펄찍펄찍 뛰면서 환호
했다.
잘했다, 제갈승계!
주서천은 일부러 제갈승계를 호명
했다 주변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제갈세가?"
막원갑이 깜짝 놀란 얼굴로 되물었
다
“아니, 제갈세가가 왜 암기를 써?"
정파인들은 사천당가를 제외하고
암기를 쓰는 걸 치욕으로 여긴다.
쓰지도 않지만, 설사 연공을 할지
라도 사문 측에서 엄중히 벌하며 금
하는 편에 속했다.
”헉! 나, 날 봤어!"
제갈승계가 날뛰던 걸 멈추고 당황
했다
이렇게 많은 시선을 모았던 적은
처음이다. 주목을 받으니 손이 떨리
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마에서 식은땀도 나고, 머릿속도
새하얗게 질렸다.
"뭐, 뭘 봐! 나도 안다고! 나도 쓸
모없는 거 알아!"
그놈의 부정적인 사고방식이 다시
돌아갔다.
제갈승계는 죽통노를 끌어안고 울
먹거렸다. 아직 열 살밖에 되지 않
은 소년에게는 힘든 상황이었다.
게다가 무공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
했으니, 사도천의 무사들이 사납게
쳐다보면 버틸 수가 없다.
“제갈세가가 암기를 쓰다니, 비겁
하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막원갑이 눈을 벌갛게 뜨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허, 참."
옹안 지부의 이류 무사가 어이없다
는 듯이 막원갑을 쳐다봤다. 다른
삼류 무사들의 반옹도 비슷했다.
누가 누구보고 비겁하다고 하는가.
이기기 위해선 명예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사도천이 아닌가.
그러나 막원갑은 그러한 시선 속에
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갈승계를 삿
대질하면서 소리쳤다.
거기서 그렇게 싸우지 말고, 내려"
와서 정정당당히 승부하자!"
‘저건 위험하다.'
막원갑은 죽통노를 경계했다. 조금
전에 날린 그 화살들은 목숨이 위협
적이진 않았지만, 귀찮았다.
저 화살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
다 그랬다가는 이상할 정도로 강한
꼬마, 주서천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자고로 정파인들이란 비겁하다고
지적해 주면 알아서 목을 내놓는
법 안 넘어올 리가 없다'
막원갑이 확신했다.
"애초에 다수 대 소수를 공격할 때
는 언제고 인제 와서 정정당당을 거
론하다니, 양심 좀 지켜라.”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 앞으로
나서며 피식 웃었다.
승계야, 이걸로 확실했다. 넌 천재"
가 틀림없다. 그러니 날 형님을 모
셔랴 함께하자.”
"저거 또 헛소리네.”
제갈승계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쳐라!"
막원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검을 쥔 삼류 무사가 몸을 날려
왔다 나름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으
나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죽어랏!”
삼류 무사가 호기롭게 외치며 검으
로 사선을 그었다. 주서천은 좌로
일 보 걸어 가볍게 피해 냈다.
‘매화영롱겁!'
주서천의 검이 흐릿하게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게 아니라 빨라서 보
이지 않았을 뿐이다.
“헉!"
삼류 무사가 놀라 눈으로 좇았으나
이미 늦었다 명치 부근에서 화끈한
통증과 함께 피가 쏟아졌다.
“이 꼬맹이가!"
이 번에는 좌측과 우측에서 각각 한
명씩 덤벼들었다. 주서천은 검을 고
쳐 잡으며 홉족해했다.
‘꾸준히 수련은 했지만 실전에서
쓰지 못하면 어쩌지 했는데, 그건
아니니 다행이야.'
매화십사검법도 그렇고, 매화영롱
검도 딱히 이렇다 할 문제 없이 성
공했다
주서천은 검을 사선으로 세운 뒤,
수비식을 취해 이번에는 매화오행검
을펼쳤다
오행을 담은 매화오행검은 공격과
수비를 전환하면서 자연스레 순환하
는 무공.
수비하여 막은 뒤, 곧바로 공세를
펼칠 수 있는 검법이다.
좌측에서 쐐액, 하고 예리한 파공
성이 터지며 검이 날아왔다. 주서천
은 가볍게 검을 흘려 넘겼다.
“억!"
삼류 무사가 체중을 못 이기고 우
측으로 넘어진다. 우측에서 공격해
오려던 삼류 무사가 당황했다.
“하나.”
수평선을 그려 내며 검을 휘둘렀
다 검면이 우측에 있던 삼류 무사
의 목을 깔끔하게 베어 갈랐다.
"둘."
주서천이 손목을 틀어 검을 역수로
쥐었다 그리고 쓰러지는 삼류 무사
의 등에 검을 꽂았다.
적, 하고 신움을 홀리면서 생명이
끊어진 것이 검에서부터 느껴졌다.
히, 히이익!"""
사도천의 무사들이 주춤거렸다. 그
들의 얼굴에는 흥분 대신 공포가 가
득 찼다.
주서천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몸을 날려 그 안에서 날뛰었다.
”으아악!”
크악!
매화를 담은 검이 허공에서 춤을
춘다 부드럽고, 유려한 춤온 아니었
다 성나고 사나운 검이었다
때로는 나비가 날갯짓하는 것과 같
았으나, 금세 사나운 격풍이 되어
사도천의 무사들을 위협했다.
목이 몸과 분리되고, 가슴에 구멍
이 나면서 피가 울적 쏟아졌다.
정말로 강호 초출인가?'
옹안 지부의 이류 무사가 주서천의
강함에 전율했다. 도저히 믿기지 않
는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정파의 내공심법은 심신을 망치로
두들겨서 단단하게 만든다. 그렇다
보니 첫 살인의 충격도 적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예
충격이 없는 건 아니다. 심마로 인
한 주화입마까지는 아니어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거나 혹은 살인
에 주저하게 된다.
그것도 약관 이상일 경우다. 그가
알고 있는 한 주서천은 고작 열두
살이다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
이가 첫 싸움에서 저렇게 주저함이
없다니. 약간의 이질감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와라!"
주서천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
며 외쳤다
“내가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전율이 홀
렀다
전생에서도 이렇게 당당하게 외친
적은 없었다. 언제나 사람들 사이에
서, 누군가 외치면 그저 따라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뒤에, 무사
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삼류라 할지라도 상관없었다.
자신을 믿고, 둥을 쳐다보고 있다.
이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
이었다
”와아아아아!”
주 소협을 따르라!
무림맹 무사들이 환호성을 내뱉었
다 얼마 전까지 보였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두 배가 넘는 병력 차이가 었었으
나, 여기에는 어린 고수가 있다. 그
들은 그걸 믿었다.
옆에 있던 동료 무사의 가슴에 검
이 박혀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그들
의 공세에 반격했다.
“무리할 것 없으니, 말했던 대로
하십시오!”
주서천이 무림맹 무사들을 향해 외
쳤다
사도천 무사들이 대문을 박살 내기
전, 주서천은 무림맹 무사들에게 대
부분 공격은 홀리면서 자신 쪽으로
인도하라 하였다. 처음에는 다들 부
정적이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그 말을 따르고 있었다.
무림맹 무사들은 기본적으로 방어
에 힘쓰는 동시, 적들을 안쪽으로
밀어 주서천에게 보냈다.
주서천은 적들이 조금이라도 자신
의 범위 안에 들어오면 재빨리 날아
가 일격을 가했다•
"크아아악!“
처음에 들어왔던 삼십가량의 숫자
도 대폭 줄었다.
후방에서 느긋하게 대기하고 있던
사도천의 무사들도 진입해, 추가적
으로 삼십여 명이 당했다.
총 백 명에 이르렀던 사도천의 무
사들도 어느새 반절이 줄어 오십이
되었다
대문 앞에는 이제는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시체들이 쌓이기 시작
했다
삼류 수준에 불과한 사도천의 무사
들은 진로가 방해되어 싸우기 힘들
어했다 주서천은 전혀 상관없는 듯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검격을 쏟아
냈다.
“받아라!"
더더욱 짜증 나는 건, 후방 측의
제갈승계였다. 급조한 탓에 죽통노
가 그다지 많지 않았지만, 무림맹
무사들에게 파고들어 무너뜨리려고
할 때마다 날아와서 방해했다.
그럴 때마다 주서천이 귀신같이 눈
치채고 날아와서 검을 재빠르게 휘
둘러 목숨을 앗아 갔다.
이곳에서 반나절 떨어진 개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에 비하면 수준이 낮
았지만, 나름대로 괜찮았다.
대문을 이용해서 들어오는 인원들
이 한정되어 있고, 탄탄한 수비를
연계해 목숨을 빼앗아 갔다
“제, 제기랄!"
상황의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막
원갑이 눈을 굴리면서 도망칠 기회
를 엿보았다.
여기서 도주하면 후환이 두렵지만,
지금 이대로 나아간다 해도 가망성
이 없어 보였다.
그건 다른 사도천의 무사들도 마찬
가지인지, 처음에는 금자에 눈이 돌
아간 그들도 두뇌가 점점 공포로 지
배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냐고!"
막원갑의 패닉에 빠진 목소리가 전
장에 울렸다.
겨야말로 뭘 하고 었는 건데?"
주서천이 막원갑을 향해서 똑바로
걸었다 특별히 공격적이지 않음에
도 다들 몸을 움찔 떨었다.
"허세다, 허세가 분명하다 지금까
지 싸워 왔으니 분명 지쳤을 게 분
명하다'’
막원갑은 스스로 최면을 걸듯이 중
얼거렸다. 그 목소리에서는 처절함
이 묻어났다.
“그래, 일반적일 경우에는 그게 맞
지.”
주서천도 동의하듯이 고개를 주억
거렸다.
“그런데 난 아니야. 희망을 빼앗아
서 미안한데, 내 별호가 내화외빈이
야. 내화외빈.”
주서천이 땀 한 방울 홀리지 않은
얼굴로 화사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막원갑에게는 악마로 보였다.
“오, 오지 마!"
막원갑이 잔뜩 겁이 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의 파장은 다른
사도천의 무사들에게도 끼쳤다.
그렇지 않아도 주서천의 손에 오십
에 가까운 무사들이 눈앞에서 순식
간에 죽자 다들 겁먹은 상태였다.
지휘관이자, 그래도 이 중에서 제
일 강한 막원갑까지 겁먹은 모습을
보이자 다들 전의를 상실했다.
“도, 도망쳐!"
”으아악!”
한 명이 시작한 도망은 전염병처럼
주위에 퍼졌다. 다들 겁먹은 목소리
를 내면서 도망쳤다.
“제기랄!"
막원갑도 결국 포기했다. 더 이상
통제 불능이 된 인원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막원갑도 지나치는 사도천
무사들을 억센 힘으로 밀쳐 내면서
도망치려 했다.
“다 비켜! 나부터다!"
막원갑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아니, 넌 안 돼.”
주서천이 공간을 접었다. 정말로
접은 건 아니다. 그렇게 생각할 정
도로 재빨랐다.
바닥에 널린 시체들은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몸을 날려 막원
갑과 거리를 좁혔다.
막원갑은 몇 보 나아가지도 못하고
주서천에게 목덜미를 잡혔다.
“아이고, 대협. 죄송합니다! 제가
대협을 몰라뵈었습니다!"
막원갑은 목덜미를 잡히자마자 비
굴한 목소리를 냈다. 반항하기는커
녕 칼도 바닥에 버려두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
지만 이 꼬마는 어떻게 할 수 없는
괴물이다 어떻게든 빌어서라도 살
아야 한다.'
주서천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완전
히 전의를 상실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였다.
확신이 들자 판단은 번개같이 빨랐
다 막원갑은 자존심을 접어 두고
살기 위해서 고개를 조아렸다.
"네가 었어야 자세한 사정에 대해
알 수 있으니까, 여기에 좀 남아 줘
야겠어.”
“전 잘 모릅니다, 대협. 그냥 내버
려 두시는 게 편합니다. 저 같은
건…….”
“그래? 그럼 죽어야겠는데.”
얼마든지 답해 드리겠습니다! 전"
지금부터 대협을 따르겠습니다!"
화
무림맹은 하마터면 개안에서 패배
하여 옹안 지부를 빼앗길 뻔했으나,
지원 병력으로 승전(勝戰)했다.
십사검협 구풍의 도움이 특히 컸
다 구풍의 명성은 얼마 지나지 않
아 강호에 퍼졌다.
지원 병력은 성공적으로 승리하고
옹안으로 복귀했고, 도착한 그들은
하나같이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승전 소식이 알려졌을 거라 생각하
고 대문에서부터 사람들이 마중을
나왔을 거라 상상했다.
그런데 마중은커녕, 대문은 박살
나고 그 앞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
안 돼!
도착하자마자 구풍은 주서천부터
찾았다. 화산에서 내려온 이후로 처
음으로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서천이 안
쪽에서 나오면서 인사하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구풍은 주서천에게 사정을 물었다.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옹안 지부의 유일했던 이류 무사가
대신 설명했다.
구풍을 비롯하여 제갈삭 등, 주요
인물들은 이류 무사의 말에 귀를 기
울였다
이야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놀라움
보다는 믿지 못하는 눈치를 보였다.
특히 제갈삭이 그랬다.
“아무리 적들이 한낱 사도천의 삼
류 무사라도, 백 명 정도나 되는 무
사들을 너 희들만으로 토벌했다고?"
믿지 않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었
다
옹안에 잔류한 무사들은 한 명을
빼곤 전부 삼류다. 아무리 대문이라
는 지형을 이용했다고 해도 오십 이
상 차이가 나는 병력 차를 이길 수
는 없었다
"주 소협 아니, 주 대협 덕분이었
습니다.”
이류 무사가 다시 한 번 말을 덧
붙였다
그 말에 제갈삭이 구풍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만 이내 버럭 하고 화
냈다.
네 이놈, 똑바로 말하지 못할까!"
그가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아는데,
누굴 능멸하려고 하느냐!"
제갈삭의 호통에 이류 무사가 몸을
움찔 떨었다.
여, 열두 살?
유일하게 모르는 있는 인물, 막원
갑이 포승줄에 묶인 채로 고개를 번
쩍 들었다.
저, 정말입니다!
“맞습니다, 대협. 제 두 눈으로도
똑똑히 봤습니다.”
다른 무사들도 나서서 용기를 냈
다
‘주 대협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어느새 호칭은 대협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 누구도 살아 돌아갈 것이라 생
각하지 못했던 싸움이 었다. 다들 하
나같이 목숨을 버 릴 각오를 했다.
희망 하나 없었던 절망적인 상황.
그 상황이 주서천의 등장으로 인해
완전히 뒤집어졌다.
사망자는 전무했으며, 경상자는 있
었지만 중상자는 없었다.
주서천에게 도움을 받은 무사들은
하나같이 마음 깊숙이 우러나는 감
사함으로 주서천을 변호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옹안의 무사들
모두가 나서서 증언하자 제갈삭도
목소리를 줄이고 중얼거렸다.
"홈, 하기야. 사도천의 삼류들밖에
없는 데다가 전멸시킨 게 아니라 반
절은 겁먹고 도망쳤다고 했지. 그런
거라면 수긍이 안 가는 건 아니군그
레 별로 대단할 것도 아니야.”
제갈삭은 금세 심드렁한 표정을 지
었다
예. 그리고 전 내공이 또래 아이"
들과 달리 많지 않습니까. 그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주서천이 괜한 의심과 귀찮음을 피
하려고 말을 덧붙였다.
“대협…….”
은인의 평가가 절하되자 옹안의 무
사들이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을 지었
다
‘아직 모습을 드러낼 때는 아니다.'
얼마 전 싸움에선 자신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그건 뒷일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어서 그렇다.
어차피 삼류들의 싸움. 수준이 낮
기 때문에 완승했다 하여도 그렇게
까지 큰 평가는 받지 않는다.
주서천은 그걸 예상하고 날뛰 었다.
“그래도 대단하구나. 잘했다.”
구풍은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칭
찬했다
‘예전부터 봐 왔지만, 무공은 그렇
다 쳐도 역시 통찰력이나 냉정함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저 나이에 첫
실전이라면 온몸이 굳기 마련일 텐
데, 당황하기는커녕 침착하게 무사
들을 이끌고 싸웠다.'
구풍이 속으로 생각했다.
주서천이 잘 숨기기도 했고, 이러
한 상황 덕에 진짜 무위에 대한 건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구풍은 주서천의 무공이 아니
라, 냉정함이나 지휘력에 중점을 두
었다
‘장차 큰 인물이 되겠어.'
구풍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홀 뒤.
옹안과 개안 전투 이후, 일행은 개
양으로 복귀했다.
전투에 대한 건 순식간에 소문이
났다. 다만 옹안의 일보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개안에 대한 것만 알려
졌다 언급이 없던 건 아니 었으나,
금세 묻혔다.
개양.
“하하하하!”
신도균의 웃음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오늘, 개양에서는 성대한 연회가
열렸다. 완승을 축하하는 연회였다.
하마터면 개양에 편성한 병력이 큰
피해를 입고 퇴군하여 토지를 빼앗
길 뻔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십사검협의 지원
병력 덕에 전투는 별 피해 없이 승
전했고, 광견삼두도 전부 죽었다.
입이 귀에 절로 걸렸다.
“다시 한 번, 정말로 수고 많았소.
내 얼마 전에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뺐는지, 체면도 생각하지 못하고
거리에 나와 춤을 췄소. 자, 술과
음식은 가득하니 다들 즐기시오!"
장서은과 제갈수란도 참석한 자리
이기에, 기녀를 부르지는 않았다. 그
대신 시녀가 자리에 참석하여 술을
따르거나, 음식을 옮겼다.
“이야, 사제. 정말로 다시 봤어!"
장홍은 호통하게 웃으면서 주서천
의 등을 거세게 두들겼다.
“사형들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닙
니다"
주서천은 자신을 낮추며 장홍을 칭
찬했다
장홍과 장서은은 개안에서 첫 실전
치곤 썩 괜찮은 실력을 보이면서 활
약했다
개양에서 함께 출발한 무사들의 호
위를 받은 덕에 크게 다치지 않고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아니야. 그래도 정말로 다시 봤어.
그동안 우리가 널 너무 무시한 것
같야"
장서은도 진심으로 주서천을 칭찬
했다
만약 장홍과 장서은이 눈에 띄지
않고, 주서천의 활약만 소문이 났다
면 결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감사합니다.”
주서천은 오늘도 몇 번이나
말로 답했다.
O_O
멸T
제갈상과 제갈수란도 다가와서 축
하 인사를 건냈다.
“정말로 대단하오, 주 소협.”
축하해요.”"
제갈상의 눈에는 호기심이 묻어났
고, 제갈수란은 여전히 홍미 없는
무감정이 느껴졌다.
“아니, 형남 그렇게 불편하게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지, 사제?"
장홍이 주서천에게 물었다.
"예, 물론입니다. 편히 해 주십시
오.”
주서천이 반색하면서 좋아했다.
‘천재 남매와 미리 연을 쌓아 두면
나쁠 것 없지. 나중에 분명 큰 도움
이 될 거야.'
장홍은 항상 말이 많아서 귀찮았지
먄 지금 만큼은 그의 사교성이 고
마웠다.
지금 여기에서 제일 신경 쓰고 친
해져야 할 대상은 제갈승계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둘과 어울리지
않겠다는 건 아니 다. 우선순위 때문
에 어쩔 수 없이 포기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야 좋지. 잘 부탁해.”
제갈상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인사
했다
주서천은 제갈세가의 남매나 연화
각의 사형제와 어울리면서 적당히
대화했다.
그리고 술로 취기가 올라올 때 즈
움, 슬쩍 빠져나와서 구석에 홀로
앉아 있는 제갈승계에게 다가갔다.
뭐야?"""
제갈승계가 주서천을 뚱한 얼굴로
맞이했다.
참고로, 제갈승계의 활약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도 암기를 사용한 걸 치욕으로
여기고,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닫고 비밀로 해 달라 요청했
다
주서천은 이번 기회에 제갈승계의
자신감을 높이려 했으나, 암기를 제
작해 사용했다는 게 알려지면 여러
모로 귀찮아질 것을 깨닫고는 별수
없이 함구했다.
"솔직히 말해서 얼마 전의 전투는
천재 동생이 있어서 다 이긴 거 아
니었겠어? 네가 없었다면 나도 살아
남을 수는 없었을 거야.”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옆에 앉았다.
비밀로 할 수밖에 없는 게 정말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너무 애석하게 생각하지는 말아라.
세상이 인정하지 않아도 내가 인정
해 줄 데니까.”
주서천이 혀를 매끄럽게 움직여 칭
찬했다 방금 전 연화각의 사형제들
과 비교도 불허할 정도였다.
"크홈, 크홈.”
제갈승계도 기분이 썩 나쁘지 않은
듯, 혓기침을 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확실히 그는 천재이나 고작 열 살밖
에 되지 않은 아이다. 생각보다 단
순했다
“칭찬은 고맙긴 하지만, 내 입장에
서 보면 대단한 건 내가 아니라
너…… 아니, 당신이지.”
제갈승계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
서천을 능력이 조금 뛰어난 별종 정
도로 생각했다.
연화각원이 우수하다는 건 알고 있
었지만, 자고로 사람이란 자기 눈으
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 법. 그다
지 와 닿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옹안의 일로 그 인식
도 변했다. 제갈승계는 주서천이 얼
마나 대단한지 몸소 깨달았다•
‘저렇게 대단한데 내화외빈이라면
서 비웃음당하다니, 화산파의 검수
들은 대체 얼마나 대단한 거지?'
제갈승계가 착각했다.
설사 연화각의 대사형이라 할지라
도 그가 펼쳤던 검술을 흉내조차 제
대로 하지 못한다.
제갈승계의 안목이 워낙 없다 보
니, 멋대로 오해했을 뿐이었다.
“하하. 이제야 이 형님의 위대함을
깨달았구나. 하지만 그렇게까지 부
러워할 것 없어• 난 그저 운이 좋아
서 영약을 복용했을 뿐이니까. 너도
영약만 섭취하면 나처럼 될 수 있을
걸?"
주서천이 눈을 게슴츠레 뜨곤 웃었
다 그 눈동자는 무언가를 발견한
듯, 반짝하고 빛났다
“영약?"
“그레 무림인이라면 자고로 기연,
그중에서도 영약을 최고로 치지. 어
떠한 난해한 무공이라 할지라도 영
약이 있다면 전부 해결할 수 있단
다 영약만 있다면 너도 순식간에
고수가 될 수 있어!"
주서천이 침 하나 안 바르고 거짓
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닌 것 같은
데…….”
제갈승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중얼거렸다.
승계야. 너 나보다 고수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영약 복용해 봤어?"
“그것도 아니지만…….”
안 해 봤으면 말을 말아, 곽!
무언가 속는 느낌이었다.
"애초에 그런 기연을 겪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그랬다면 무림
은 고수들 천지였을 거다!"
제갈승계가 헛소리하지 말라는 어
조로 언성을 높였다. 시끌벅적한 연
회 도중인 탓에 그 말을 들은 사람
온 주서천뿐이었다.
“그래? 그러면 만약 이 형님이 영
약을 구해 준다면 어떻게 할래? 마
침, 괜찮은 정보가 있는데 말이야.”
주서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
다
피식
제갈승계가 바람 소리를 내면서 웃
었다.
“그게 정말이라면 동생은 물론이고
부하까지 되어 줄게. 그럴 리는 없
겠지만 말이야.”
“그 약속, 잘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주서천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화
第二章등하불명(燈下不明)
연회는 하루만으로 끝나지 않고 이
틀 동안 이어졌다. 첫 하루는 오롯
이 무사들을 위해서였다.
외부에서 귀찮게 굴지 않도록 방문
올 금하고, 그들끼 리 모여 축배를
들고 하루를 지새웠다.
그리고 그 이튿날부터는 상인이나
낭인 등의 방문객들로 북적 였다.
"방문 목적을 말하시오.”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서요. 십사"
검협 대협에게 선물을 전해 주고 싶
어 왔소.”
초절정 고수는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화산파 같은 대문
파에 소속된 자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자에게 이름이라도 기 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건 그 무엇보다 더
큰 이득이다.
또한, 구풍뿐만 아니라 제갈세가나
연화각원들과도 운이 좋으면 미 리
연을 만들 수도 있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
에 필시 도움이 된다. 사람들은 그
걸 노리고 조금이라도 쉽게 기억되
기 위해 갖가지 재물을 챙겨 왔다.
어떤 이들은 고향에서 미색이 뛰어
난 여아들을 데려왔다. 혹시라도 제
갈세가에 시집이라도 갈 수 있다면,
그 날로 신분 상승을 노릴 수 있다.
화산파도 애매하긴 하지만 가능성
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요직에만
앉지 않는다면, 자식도 낳는다.
다만 피붙이에게는 재능이 어떻건
간에 정식 제자만큼 무공을 전수할
수는 없다 속가제자에 한해서다.
화산파가 무당파에 비해 속가적인
성향이 있다 해도, 그래도 아예 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여 러 가지 제한이 붙었다.
어쨌거나, 이러한 제한이 붙어도
혼례를 올리는 일이 전무한 건 아니
다 가끔 있기는 하다
사람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눈에 띄려고 온
갖 재물을 보이며 노력했다.
“오늘은 사람을 대하는 법에 대해
알려 주마.”
구풍이 연화각원들을 모아 놓고 말
했다
기껏 화산파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키운 제자가 재물이나 여색에 눈이
멀어 누군가에게 넘어가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사랑에 빠지는 건 자유지만, 아이
들이 뭘 알겠는가. 성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뻔히 보이는 수작에 걸려
드는 건 문제였다•
이를 위해서 구풍은 귀찮움에도 아
랑곳하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을 상대했다.
연화각의 사형제들은 구풍의 뒤에
서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이름과
나이 정도만을 소개했다.
"선물을 받되, 요구나 비슷한 말을
듣게 될 경우는 거절하는 게 좋다.
또한, 도사에게 재물욕이란 건 금물.
어디까지나 성의 수준으로 받아라.
선물이 누가 봐도 과할 경우, 보는
눈이 달라질 데니까.”
알겠습니다.”"
“또한 어조에 조금이라도 약조한
다는 게 있다면 이 또한 피하도록
하여라. 우리처럼 정파인에게 약조
란 건 은원만큼 중요하고 또 무거우
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장홍과 장서은은 구풍의 말에 집중
하여 명심하고 또 명심했다. 주서천
은 듣는 척만 했다.
그는 원래 화산오장로였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관해선 이골이 났을
정도다. 반대로 전생에선 누군가와
싸우는 것보다 대화하는 게 익숙한
정도였다.
홈, 확실히 사백이 난사람은 난사
람이야.'
무공도 무공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것도 초절정이다. 빈틈 하나 없이
훌륭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전 사천에서 온…….”
"화산파의 연화각이군요. 얼마 전
에 개안에서 활약했다고 들었습니
다"
“사람들은 무당파의 무룡관을 치 켜
세우지만 역시 연화각이 아니겠습니
까"
"화산파의 검에 다시 한 번…….”
하루에 수십, 수백 번 이상의 칭찬
이 쏟아졌다.
장홍과 장서은도 처음에는 그 칭찬
에 뿌듯해하는 눈치 였으나, 계속 반
복되자 점차 지쳐 갔다.
방문객들은 상인과 낭인 외에도 귀
주의 정파에 속하는 중소 문파들도
많았다 문주 정도 되는 인물이 아
들이나 딸을 데려와 소개하기도 했
다
‘어디에 있는 거냐.'
한편, 주서천은 장홍과 장서은, 심
지어 구풍조차도 지쳐 가는 사이에
도 오직 한 사람만을 찾고 있었다.
낭인과 중소 문파의 문주들은 대부
분 무시했다. 이름만 대충 듣고 머
리를 비우고 휴식을 취했다.
그러나 상인들이 찾아올 때만큼은
귀를 기울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분명히 여기에 와 있을 거다.'
상왕, 이의채!
별호와 이름을 속으로 외쳤다.
상왕은 이맘때 즈음, 분명 귀주에
있었다 자본조차 부족한 상인이라,
후원자를 찾기 위함이었다.
계대로 된 호위도 없이 굳이 위험
한 귀주에 와 있는 이유도 이 때문
이다 위험한 만큼 후원자로 삼을
만한 무림인들이 많이 온다. 그 많
은 사람들 중 한 명만이라도 걸린다
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제기랄 당신을 도우려고 준비도
했단 말이오. 이제 좀 내 앞에 나타
나시오.'
중천에 떴던 해도 눈에 띄게 떨어
지기 시작했다. 이제 곧 있으면 방
문객의 발걸음도 끊긴다. 기다리는
사람은 많았지만, 만날 수 있는 사
람은 한정적이다.
밤에 몰래 나가서 방문객들을 찾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안 그래
도 구풍은 옹안의 일로 주서천을 잃
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더욱
신경을 썼다.
‘설마하니 제갈세가로 간 건 아니
겠지?'
확실히 제갈세가도 개안 분쟁에서
활약했다. 하지만 구풍에 비하면 조
족지혈이었다.
이득을 철저히 따지는 상왕이라면
분명히 이쪽을 방문할 거라 생각했
다. 거의 확신이었다
하지만 이게 웬일. 이의채는 물론
이고 그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
조차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주서천의 마음도 타
들어 갔다.
헤헤헤, 안녕하십니까. 또 이렇게"
뵙는군요.”
해가 거 의 다 질 때 즈음, 낯익은
얼굴의 남자가 방문했다.
허리와 머리를 과할 정도로 숙이
고, 눈초리도 어딘가 모르게 비굴해
보였다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소상, 이었나. 일단 저자는 절대
아니군.'
개양에 도착했을 때, 심하다고 말
할 정도로 비굴했던 호객꾼이었다.
어쩌면 상왕이 개명을 했을지도 모
른다는 추측도 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전생에서 들었던 상왕의 특
징들을 기억해 내 나열해서 대조해
보기도 했다.
상왕은 돈에 대한 집착이나 탐욕만
큼, 지방 또한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또한 그 기세가 하늘을 찌를 정도
라, 설사 무림맹주 앞이라 해도 굽
히지 않았다.
그 태도가 오만하고, 또 상인 주제
에 건방지다면서 무림에서 정사할
것 없이 비난을 받기도 했다.
적어도 소상처럼 과할 정도로 비굴
하며 또한 평범한 체구인 자는 상왕
이 아니다.
주서천은 금세 관심을 끄면서 속으
로 다른 생각을 했다.
‘이렇게 된 거, 다 끝나고 방명록
올 확인해 봐야겠다.'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제갈세가로
간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곤란해진다.
이렇게 된 거 방문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과연, 대화산파의 제자분들이십니
다 얼마 전에 소식을 듣고 이 소
상, 탄복하였습니다. 자고로 검이라
하면 화산파이고 구파일방 중 일파
라 하면 화산……•“
소상이 서론만 주야장천 꺼냈다.
전부 구풍이나 화산파를 칭찬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게 너무 노골적
이고 속이 뻔히 보여서 도리어 피곤
하기만 했다.
“이보게, 소상. 미안하네만 오늘은
이걸로 하고 슬슬 일어나도 되겠나?
내 오늘 너무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서 그러니, 부디 이해해 줬으면
하네."
결국 구풍도 참지 못하고 소상의
말을 끊었다.
“그, 그러지 말고 조금만 시간을
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자 소상이 눈에 띄게 당황했
다 마치 준비한 것이 많은데 이리
돌아갈 수 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눈에서는 필사적인 감정이
묻어났다.
“미안하네. 이만 들어가 보게나.”
구풍이 명백한 축객령을 내렸다.
그러자 입구 근처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움직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에게
기가 막힌 사업이 있습니다. 일각,
아니 반 각이라도 좋으니 조금만 들
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후회하진 않
을 겁니다!"
"저 런 자는 그냥 혼내 주면 안 되
겠습니까?“
구풍도 피곤해하는데 장홍이라고
피곤하지 않을 리 없었다. 상당한
짜증을 내면서 싫은 표정을 지었다.
“이리 와!"
“이 미친놈아, 네 처지를 좀 생각
해야지!"
방문객들 중에서도 수준이 있다.
명성도에 따라 방문 순위가 바뀐다.
순서가 늦는다는 건, 그만큼 별 볼
일 없다는 뜻이다. 무사들도 그 점
올 알고 소상을 거리낌 없이 끌어냈
다.
“놔, 이것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
냐!"
“그러는 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개양 지부 무림맹 무사다!"
”에잉, 폿폿.”
무사들이 혀를 차면서 소상을 끌고
갔다.
"금의상단!”
멈칫
구풍을 뒤따르던 주서천이 제자리
에서 멈춰 섰다.
장홍과 장서은, 구풍이 떠나는 둥
이 보였다.
‘설마.’
세상이 느릿하게 홀러갔다. 청각에
온 내공이 집중됐다. 머릿속에서 방
금 전의 말이 메아리쳤다.
주서천은 방명록에 대한 걸 모두
지워 버린 뒤,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탐욕과 필사적인 감정이 소용돌이
치는 눈.
도인이 본다면 혀를 찰 정도로 탐
욕에 찬 눈.
어째서인지 그 눈이 금색으로 보였
다
소상인(小商人)은 금의상단이라"
하여 자그마한 상단의 상단주입니
다 이름은 이의채라 하여…….”
그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주서천은 그가 끌려 나가는 걸 쳐
다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바람 소리
를 내면서 웃었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 하더니,
설마하니 이미 만났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 * *
살이란 건 곧 풍족함을 뜻한다. 가
진 게 많은 자일수록 뚱뚱하다. 대
상인들이 특히 그렇다.
하지만 이의채는 가진 게 많기는커
녕 부족하다. 후원자를 찾고 있는데
과소비를 할 리가 없었다.
굶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과식한 것도 아니었다. 살이 많지도,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성격 또한 사정이 있었다.
전생에서 상왕에 대한 걸 알게 됐
을 때 즈음, 이의채는 이미 건드리
기에는 부담스러운 인물이 됐다.
설사 이의채가 멸시를 받을 정도로
비굴했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해도,
그걸 말했다간 후환을 장담하지 못
한다 비밀에 부쳐진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의채의 과거는 전생을
기준으로 해서 약 육십 년 전에 있
었던 일이다.
그 과거가 그대로 알려진다면 그게
더 이상했다.
질수다.'
이의재처럼 홋날 전란에 살아남고,
승리자가 된 사람들은 과거가 날조
되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생각하지 못했다. 화
산오장로에 올라도 모를 수 있는 정
보가 있었다.
미래에 대한 정보를 너무 과신한
것에 주서천은 자책하면서 반성했
다
이튿날. 연회가 끝났다.
이의채는 다시 방문했으나, 구풍은
당연하게도 만나주지 않았다. 이미
방문 일정은 끝나 있었다.
몇 번이나 간곡하게 요청하였으나,
무림맹 무사들이 돌아가라며 경고한
탓에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안녕하시오, 상단주.”"
이의채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마
주하게 된다.
화
주, 주서천?
이의채가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러곤 이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다.
“죄송합니다, 주 대협. 제가 놀란
나머지 그만 실례했습니다.”
대협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이
어졌다 어색함 하나 느껴지지 않았
다
“한데, 저에게는 어인 일로 오셨는
지요? 혹시나 십사겸협께서……?"
이의채의 눈에 일말의 기대감이 어
렸다.
“아닙니다.”
주서천이 주저하지 않고 머리를 좌
우로 저었다•
“그렇습니까…….”
이의채가 노골적으로 실망한 기색
올 보였다. 그 눈에는 기대감 대신
절망감이 묻어났다.
“하지만 제가 볼일이 좀 있습니
다"
주서천이 엄지와 검지, 중지를 문
지르며 씩 웃었다•
“그게 무슨……?"
이의채가 의아한 얼굴로 머리를 옆
으로 기울였다.
“일단 자리 좀 옮기죠. 여기에서
이야기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무언가가 있다!'
이의채는 본능적으로 주서천의 볼
일이 범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냄새가 코를 찔렀다.
‘돈 냄새다!'
후각부터 시작해 온몸의 감각이 알
리고 있다. 드디어 기다렸던 기회가
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다.
그가 봤을 때, 아니. 객관적으로
봐도 주서천은 결코 보통 어린아이
가 아니었다.
확실히 연화각원이란 건 일단 보통
이라는 범주를 넘었다. 하지만 주서
천은 그중에서도 더 특이할 것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정보에 의하면 주서천은 고작 열두
살. 외관이 열다섯처럼 보이는 건
그렇다 쳐도 그 성숙한 정신과 몸에
서 풍겨 오는 기도가 보통이 아니었
다
도저히 열둘로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속에 농구렁이를 품은 중년 혹
은 노인으로 보였다.
걸음걸이에서도 기품이 언뜻 보이
고, 몸짓이라거나 자신감 있는 시선
과 기도도 보통이 아니었다.
‘분명 저번에 봤을 때는 이러지 않
았다 내가 놓친 게 아니야. 그가
숨기고 있던 거다.'
과연, 훗날의 상왕. 눈치가 기가
막히게 빨랐다.
이의채는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닫고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괜한 서론은 내버려 두고 본론부
터 들어가겠습니다. 그러니 상단주
께서도 굳이 속이 뻔히 보이는 말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서천이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크, 크홈 말을 편히 하셔도 됩니
다"
이의채는 주서천의 공손한 태도가
마음에 드는 듯, 호의 어린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대부분 무림인들은 나이가 어려도
건방지다. 자촌심이 세서 그렇다. 특
히 대문파의 제자는 그렇다.
이의채는 그동안 무인들에게 많은
무시를 받았다. 그런 입장에서 주서
천의 행동은 상당히 감명 깊었다.
“괜찮습니다. 원래 거래라는 건 신
뢰와 예의가 아니겠습니까. 당연하
지요.”
주서천의 속으로 미소 지었다. 상
황이 생각대로 홀러가고 있었다.
훗날 상왕으로 불리게 될 이의채는
결코 자신의 아랫사람이 아니다. 그
건 두 번째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왕은 정파와 사파, 마도이세, 심
지어 숨어 있는 세력과도 장사를 해
서 돈을 벌고 살아남은 자다.
그의 재능은 진짜다. 앞으로 도움
을 받기 위해서라면 상하 관계보다
는 동등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낫
다
상하 관계는 자칫 잘못하면 기분을
상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위험 부
담이 컸다
“한데, 본론이라 하면……?"
“사백께 제의했던 사업. 거기에 관
심이 있습니다.”
" ...... .', , •
주서천의 말에 이의채가 눈을 크게
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표정
이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안호…… p •"
이의채는 이제 막 다듬기 시작한
수염을 매만졌다. 고민, 아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었다.
주서천은 그런 이의재의 반응에 속
으로 홉족해했다.
좋아. 이걸로 단순한 바보는 아니
란 걸 깨달았어. 조금 불안했었는
데…… 다행이야.'
이 상황을 의심 하나 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상은 제가 생
각해도 별거 없는 놈입니다. 그런데
뭘 믿고 제 이야기를 듣겠다는 것인
지 이해가 잘 안 갑니다. 또한, 보
아하니 십사검협이나 다른 연화각원
에게도 비밀로 하고 몰래 오신 듯한
데…….”
이의채는 혹시나 주서천이 자신을
놀리거나, 아니면 어떤 음모에 이용
하려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물론 아직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뭘 하겠냐 싶겠지만, 어쩌면
뒤에 꾸미기 좋아하는 제갈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소상인에 불과한 자신에게 뭐
가 있다고 저렇게까지 노력하겠냐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 역시 제안할 것이 있어서 그렇"
습니다'’
“제안?"
"예. 다만, 그걸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상단주의 사업부터 듣고 싶습
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의아스럽긴 해도, 의심하는 건 아
니다.
“사실, 사업이라고 해도 눈에 띄려
고 그리 말했을 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주서천은 이의재의 다음 말을 기다
렸다
이의채는 주서천의 눈치를 보면서,
그 얼굴이 굳지 않은 걸 보고 안도
의 한숨을 내쉬곤 말을 이었다.
저희 금의상단에서 주로 취급하는"
건 미곡입니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상품이죠. 그러나 전 이
미곡을 군량으로 팔아치울 생각입니
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이의채가 본격적으
로 이름을 날리게 된 계기만큼은 거
짓이 아닌 진실이었다.
"요컨대, 전쟁 상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거로군요.”
허, 그렇습니다.”"
이의채가 짐짓 감탄하면서 머리를
끄덕였다.
‘머리 회전이 어찌나 이리도 빠른
가.'
상계와는 거리가 먼 무림인이다.
고위 요직이라면 모를까, 애초에 그
는 성년도 되지 않은 남아이다.
한데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귀신같
이 맞추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주서천의 경우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그걸 이의채가 알
리가 없었다.
"재정적인 후원이 필요한 것인지
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합니다만, 실
례하오나 ....... ,,
이의채가 주서천의 눈치를 봤다.
네, 아쉽게도 재정적인 면에선 후"
원하기가 힘듭니다. 아이가 돈이 있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