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귀주, 옹안
옹안에 있는 무인의 숫자는 약 천
명이댜 사백이 무림맹이고, 육백이
사도천이었다.
“정사대전도 아닌데 어째서 귀주만
평화롭지 않고 계속해서 분쟁이 일
어나고 었는 거지?"
제갈승계가 의아한 목소리로 중얼
거렸댜
분쟁이 잠시 동안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몇십 년 동안 지속해서 일
어났다가 멈추는 게 반복됐다.
힘의 균형으로 무림은 평화를 유지
하여 전쟁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데,
귀주는 왜 이런지 의문이었다.
"귀주는 정사의 영역을 구분 짓는
균형이댜 설사 평화 협정을 했다
해도, 최전선에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무인들을 함께 두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하지.”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의문을 시원
스레 풀어 주었다.
‘기관지술에만 관심이 있다고는 하
지만 정말이로군. 무림의 정세에 대
해 몰랴 나중에 억지로라도 머릿속
에 넣어 두어야겠어. 기초적인 상식
올 모른다면 여러모로 곤란할 데니
까.’
마음 같아서는 그 정도는 알아 두
라고 타박하고 싶었다. 그런데 지금
은 친해져야 할 때. 안 그래도 경계
와 적대심이 잔뜩인 아이를 자극할
이유는 없다.
“어떻게 통제하려 해도, 무림인들
에겐 은원(恩怨)이라는 것이 존재한
댜 그 괴물 같은 감정은 이성까지
마비시켜 사람을 변화시키지. 그게
이 결과다.”
주서천이 냐이에 맞지 않게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귀주는 특히 그러한 장소야. 은원
의 연쇄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이어져 있지. 누가 온다 해
도 이걸 끊을 수는 없을 거란다, 천
제”
“어흐흠, 천재라니. 네 의도가 어떤
지 뻔하긴 한데,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제갈승계의 입꼬리가 귀밑까지 찢
어졌댜
‘후후, 단순한 놈'
주서천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자고로 아이란 건 다루기 쉬운 법이
댜
”……잠깐.”
웃고 있던 제갈승계의 얼굴에 그늘
이 끼었다.
"설마하니 천재(凌才)를 돌려서 말
한 건갸 하기야, 중부가 널 보냈다
면 당연히 그 말이 맞겠지. 어차피
얕은 재주이니 그만 포기하라고
•••••• ”
•
‘하야 또 시작했군.'
제갈승계는 글자를 읽을 때부터 기
관지술에 관심을 보여 왔다. 그리고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관지술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세가에서의 타박은 그때부터 끊이
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신감의
결여로 이어졌다.
이놈의 부정적인 사고 자체가 문제
댜 너무 욕을 먹다 보니 칭찬해도
전혀 믿지 않았다.
어떨 때 보면 단순하고 달래기 쉬
운데, 그것도 금방 수그러들면서 온
갖 부정(否定)이 튀어나왔다.
"동생, 그냥 좀 받아들여랴 너도
귀가 있으니 알겠지만, 나도 화산에
서 상당한 별종이야. 말하고 다니기
좋아하는 사형이 말해 줬올 텐데,
못 들었어?"
”옹…… 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은
중부랑 너뿐인데…….”
제갈승계가 동태 눈깔로 힘 없이 답
했댜
원래는 제갈상이 그를 불쌍하게 여
겨 가끔씩 말을 걸어 주었으나, 화
산파 일행과 동행하면서 사라져 버
렸댜
제갈상은 후에 화산파와의 교류를
위해서라도 연화각원들과의 대화를
무척 신경 썼다.
제갈수란은 원래 제갈승계를 싫어
하진 않았으나 거의 없는 사람 취급
해서 원래부터 말을 안 걸었다.
그렇다 보니 말을 거는 사람은 제
갈삭과 주서천뿐. 심지어 제갈삭은
그 말이 대부분 구박뿐이었다.
"비겁하게 진실을 제시하다니 ! 정
정당당하게 진실이 아니라 거짓과
선동으로 승부하자!"
제갈승계가 헛소리를 했다.
‘전해지는 것에 의하면 심성이 많
이 여리다고는 했는데 이 정도였
냐… .. 진짜 만각이천 맞아?'
슬슬 불안할 정도의 수준이었다.
기관지술의 능력도 직접 본 적이 없
으니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아니, 됐다. 믿도록 하자. 내가 믿
지 않으면 이 괴짜가 누굴 믿어야
하겠냐. '
주서천은 머리를 흔들어 불신을 털
어 냈다.
"왜 그래? 미쳤어?"
제갈승계가 그런 주서천을 보고 세
보 떨어졌다.
때리고 싶어졌다.
* * *
옹안의 무인들은 대다수 중소 문파
출신들이었다. 지휘를 맡고 있는 자
는 무림맹의 일류 무사였다.
“어서 오십시오!"
일류 무사, 왕칠은 지원 병력이 도
착하자마자 성대하게 환영해 주었
댜 그만큼 그들의 촌재가 기뺐다.
특히나 십사검협이라는 별호를 들
었을 때,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
것까지 보였다.
“그럭저럭 사정 은 듣고 왔으니 설
명해 봐랴"
제갈삭이 말했다.
"예!"
사도천 육백, 무림맹 사백.
무림에 대하여 모르는 자라면 전력
차이를 보고 사도천이 우세하다고
생각한댜 그러나 조금이라도 무림
에 대한 지식이 있다면 무림맹이라
말한댜
사도천, 아니 사파는 정파보다 숫
자 방면으로는 압도적이라 할 정도
로 우세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세한 건 숫자
뿐이었다.
사파의 무공 중 대표적인 특징을
꼽자면, 그건 연공의 속도가 빠른
대신 일정 구간에 오르면 나타나는
벽을 뛰어넘기가 무척 힘들다는 점
이댜
그렇기 때문에 사파에는 하수가 많
올지언정, 중수냐 고수의 숫자가 정
파보다 적은 편이었다.
즉 양이 많다고 한들 질이 떨어지
다 보니 숫자의 차이가 있다 해도
승패를 단언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옹안에 사도천의 고수가 와
있소?"
구풍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백여 명 정도면 밀릴 정도로의
전력 차이는 아니다. 패배하기는커
녕 잘만 하면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원까지 요청한 건, 숫
자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도 불리
하다는 뜻이었댜
"예 세 명입니댜"
왕칠의 답변에 구풍도 제갈삭의 얼
굴도 굳었다.
“아, 그렇지만 초절정의 고수는 한
명도 없습니다. 안심하십시오.”
고수라고 칭해지려면 적어도 절정
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초절정의
경지까지 고수라 부른다.
그 이상의 경지, 특히 초절정 중에
서 상위 백 명은 따로 호칭이 붙곤
했댜
이 에 제갈삭은 십년감수했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화를 내면서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그것부터 말해라! "
세 명의 고수 중에서 초절정의 경
지가 한 명이라도 있다면 문제가 된
댜 구풍도 승패를 장담할 수가 없
댜
그러나 전부 절정의 경지일 경우,
성가실지는 몰라도 어떻게든 처리할
수는 있었다.
방해만 받지 않는다면 세 명 전부
상대할 수 있었다.
"좋아, 일단 전황부터 살피고 어떻
게 할지를…… . ”
제갈삭이 군사로서 작전을 수립하
려 했댜
"급보입니다! "
그러나 전령의 외침으로 인해서 멈
추게 된다.
“무슨 일인가?"
“인근에서 사도천과의 재격돌, 광
견삼두(狂犬三頭)가 선두에 서서 날
뛰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 "
삼두라고 정말 머리가 세 개인 건
아니댜 광견삼두라 하여, 의형제를
맺고 온갖 패악질을 저지르고 다니
는 미친개 삼형제가 있다. 셋 다 절
정의 고수다.
“아무래도 한가하게 있을 수는 없
울 것 같군.”
구풍이 한숨을 내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꿀꺽.”
장홍이 침을 삼켰다. 긴장으로 잔
뜩 굳은 얼굴이었다. 장서은도 별반
다를 것은 없었다.
설사 화산의 제자라고 해도, 처음
으로 겪는 실전은 누구나 긴장하는
법이었다.
"둘을 잘 부탁하겠소.”
구풍이 개양에서부터 동행한 무림
맹 출신 일류 무사들에게 부탁했다.
"예, 대협.”
"저희에게만 맡겨 주십시오. ”
그들은 개양을 떠나기 전, 구풍을
대신하여 연화각원을 호위하라는 임
무를 신도균에게 받았다.
덕분에 구풍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댜
"둘?"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미리 말하지 못해서 미안하구
나. ”
구풍이 막사를 나가기 전, 주서천
에게 사과했다.
“마음 같아서는 너도 데리고 나가
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개양에서 함께 온 무사들이 둘은 몰
라도 세 명까지는 힘들 것 같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막
내 인 널 여기 에 두고 갈 수밖에 없
단댜"
굳이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주서천
을 전장에 데리고 나갈 이유가 없으
니, 섭섭하게 생각해도 어 쩔 수 없
었댜
음, 나름 기대했는데 조금 아쉬운
걸.'
그동안 열심히 수련해 온 무공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연화각에서는
낙소월이 몰래 찾아올 때, 간간이
비무를 했으나 제 실력을 보인 게
아니었다.
마침 전장에 참여할 기회도 생겼
고, 싸우다 보면 난장판이 되니 몰
래 빠져나가서 싸울 생각이었다.
당연하지만 장홍이나 장서은처럼
두려움에 의한 긴장 따위는 없었다.
주서천도 전란의 시대 때 영웅들만
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싸우면서
살아남았다.
실전을 쌓은 경험만큼은 구풍, 아
니 화산파 내에서도 주서천과 비교
할 사람이 별로 없다.
괜히 전란의 시대라 불린 게 아니
댜 그만큼 싸움이 많았다.
"네 안전을 생각해서 내린 결정이
니, 너무 야속하다고 생각하지 말거
랴 널 무시하는 게 아니란댜"
"알고 있습니다, 사백. 신경 써 주
셔서 감사합니다. 어쩔 수 없는 걸
요. ”
주서천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
억거렸다.
“열두 살인데도 정말 다 컸구나.
네 스승이 제자는 정말 잘 뒀다.
아, 그리고 제갈세가의 막내도 남게
됐으니, 형인 네가 잘 돌봐 주거라.
부탁하마"
"예, 사백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건승을 기원하겠습니다.”
* * *
옹안에서 반냐절 정도 컬으면 개안
이 라는 곳이 나온다. 작은 촌락들이
드문드문 모여 있는 지역이었다.
이 개안은 무림맹과 사도천의 접경
지로, 하루에도 수차례 싸움이 번번
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옹안에서 출발한 지원 병력은 최대
한 빨리 전속 전진하여 개안에 도착
했댜
”와아아아!”
"십사검협이다!"
구풍이 나타나자마자 무림맹 측 무
사들이 고막이 터져 나갈 정도로 환
호성을 내뱉었다.
그만큼 십사검협의 이름은
댜 기세등등했던 사도천의
이 주춤거렸다.
듬직했
무사들
구풍은 앞장서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댜 초절정 고수의 검답게 보통
이 아니었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사도천의 무
사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피를 흩뿌
렸댜
“하하, 별거 아니군!"
제갈삭은 중앙에서 그걸 지켜보면
서 웃었다.
굳이 계획을 짤 필요도 없었다. 십
사검협 그리고 개양에서 온 지원
병 력 이 화끈한 무위를 자랑했다.
”……오라버니.”
제갈수란이 전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제갈상을 불렀댜
“그래.”
제갈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제갈
수란이 용건을 말하기도 전, 제갈상
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적어.”
제갈상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난전이라서 정확하게는 알아보기
힘들지만… … 사도천 병력이 백에서
백오십 정도가 적다.”
제갈상이 몸을 천천히 돌려 뒤를
살폈댜 그가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
은 옹안에 있을 진지 였다.
"숙부 아무래도 저희가 함정에 빠
진 것 같습니다. 백에서 백오십 정
도 적의 전력이 비어요. "
“하하하, 뭔 소리를 하느냐. 네가
출진한 지 별로 되지 않아 착각을
한 모양이구나. 그것보다 저기 앞을
봐라. 사도천이 맥도 못 추리고 죽
어 나가는 걸 말이다!"
" •••• •• • "
제갈상의 얼굴이 암담해졌다.
제갈삭, 그리고 옹안군은 이미 승
리에 취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까지 솟아오른 사기에
몸을 던져, 사도천의 무사들에게 함
성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