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전생-18화 (18/254)

19화

"누군가를 놓치게 된다면, 당연히

적림십팔채에 알려지게 된다. 여기

서 문제를 하나 내마. 만약 그럴 경

우, 피해를 입는 건 누구인지 아느

냐?"

"저희…… 아니, 화산파인가요?"

장서은이 확실하지 않은 얼굴로 조

심스레 물었다.

이에 구풍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부정했댜 그러곤 시선을 선주에게

로 돌렸다.

“이 노인장이다.”

"예?"

장홍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명한

표정을 지었다.

"적림십팔채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

는 이상, 그들도 우리를 건들지 않

는댜 설사 소수의 수적들을 죽인다

고 하여도 복수하려고 하지 않겠지.

다만, 그 화풀이는 우리를 태우고

장강을 넘은 선주에게로 향한다.”

“아니, 선주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

는 건가요?"

장서은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진다는 게 아

니야. 그저 화풀이일 뿐이지. 수림구

제 아니, 적림십팔채가 괜히 혹도

(黑道)에 드는 게 아니다. 그런 놈

들이댜"

적림십팔채는 수호자도, 명예를 중

시하는 무인도 아니다. 사파예서조

차 안 받아 주는 게 적림십팔채다.

그들은 그저 도적 무리일 뿐이다.

"선주의 삶을 책임질 것이 아닌 이

상, 그대로 내버려 두는 편이 좋다.

또한, 이런 일이 소문이 난다면 선

주들 사이에서도 우리 얼굴이 알려

져 배에 태워 주지 않겠지. 적림십

팔채의 보복이 따를 데니까.”

"허…… . ”

장홍과 장서은은 충격이 가시지 않

는 듯,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깨

를 축 늘어뜨렸다.

“나도, 아니 모두가 잘못된 일이란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게 있는 법이지. 앞

으로 너희는 강호에 출도할 때마다

이처럼 불합리한 상황을 겪게 될 게

댜 그때가 오면 오늘의 일을 떠올

리며 뒷일을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해랴"

‘허, 구할 사람들이 참으로 많군.’

주서천은 구풍의 가르침을 듣고 짐

짓 감탄했다.

고수란 건 자촌심이 높다. 그 경지

가 초절정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사고방식 자체를 분한 감정

하나 없이 말하는 건 그렇게까지 흔

치 않다.

참고로 십사검협, 구풍 또한 전란

의 시대의 희생양으로서 몇 년 뒤

사망한다. 안타까운 일이 었다.

이번 삶으로 미래가 바뀐다면, 구

풍도 살아남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

었댜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적림십팔재가 사라져야겠지. 하나,

그 규모와 힘은 너희도 알다시피 결

코 작지 않다. 아마 화산파뿐만 아

니라 무림맹이 움직여야 할 거고.

그러나 이것 또한 마땅치가 않다.

왜 그러는지 알고 였느냐?"

" ...... "

장홍과 장서은은 답하지 않았다.

둘 다 무언가 알고 있는 듯했으나,

말하기 싫어하는 표정이었다.

구풍은 답변이 돌아오기를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보다 못한 주서천이 나서서 말했

“균형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말해 봐라. ”

전란의 시대 전, 무림은 아직 평화

를 유지하고 있다. 세력들의 힘이

완벽한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었다.

정파의 무림맹, 사파의 사도천(邪

道川) .

마도이세(魔道二勢)의 마교(魔敎)

와 혈교(血敎).

사세(四勢)의 힘은 엇비슷하다. 그

렇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움직

일 수가 없다.

전력 차이가 비슷하기에 승리한다

고 해도 피해가 크다. 그런 상황에

서 다른 두 세력이 힘을 합친다면

남은 세력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

만약 무림맹이 적림십팔채를 적으

로 삼아 싸워 전력을 잃는다면, 비

슷한 꼴이 된다.

다른 세 개의 세력이 서로 힘을

합쳐 약해진 무림맹을 순식간에 쑥

대밭으로 만들 수 었었다.

정말로 어쩔 수가 없었다.

"잘 알고 있구나. 그리고 너희들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저 입

바깥으로 꺼내기 싫은 거겠지.”

구풍이 장홍과 장서은을 물끄러미

쳐 다봤다. 그 말이 맞는 듯, 두 사

람은 무언으로 긍정했다.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한들, 도적

들이 눈앞에 있는데도 가만히 둬야

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한창 정의라는 것에 의의를 두고

혈기가 넘칠 나이다. 이해를 못 하

는 건 아니었다.

“이상(理想)을 이해 못 하는 건 아

니지만, 강호의 현실은 특히 냉혹한

법이다. 한번 잘 생각해 보거라. ”

구풍이 웃었다. 그 웃음은 어딘가

모르게 씁쓸해 보였다. 꿈을 버리고

현실에 타협한 어른의 웃음이었다.

* * *

편주가 포구에 닿았다. 일행은 장

강을 무사히 건넜다. 수적들은 만나

지 않았다.

장홍과 장서은은 여전히 생각에 잠

긴 표정이었다.

주서천은 그걸 보고 속으로 웃었

헷일이 생각나는군. 냐도 저런 적

이 었었지.'

협의만 실천하면 그만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협의로 인해 더 큰 피

해가 일어난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었댜

저 두 사람이 지금 그랬다. 출발했

을 당시부터 쭉 말이 많았던 둘은

고민으로 복잡해 보였다.

"홈, 넌 아무렇지 않은 모양이로구

나."

구풍이 주서천을 신기한 듯이 쳐다

봤다.

그 말에 주서천은 아차 싶었다. 장

홍과 장서은을 보면서 추억에 빠져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았다.

아까 편주 위에선 다른 생각을 하

면서 그럭저럭 연기했는데, 지금은

그만 연기가 풀렸다.

주서천은 순간 고민하다가, 이내

구풍의 말에 답했다.

“제가 어릴 적에 화산 바깥으로 나

갔던 적이 있는 건 사백도 알고 계

시지 않습니까. ”

“아아, 그때 무언가 일이 있었던

모양이로구나. ”

"예, 그 일로 미리 충격을 받아서

지금은 덜합니다.”

주서천이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

룰 긁직였다.

일행은 중경을 막 넘어 귀주 땅을

밟았댜

‘드디어 귀주다.'

이제 막 귀주에 도착했지만, 목적

지는 아니었다. 가야 할 곳은 개양

(開陽)이었다.

“오늘부터 경공은 쓰지 않는다.”

귀주의 정파와 사파 영역은 하루에

도 몇 번씩이나 바뀐다. 그만큼 혼

란스러운 땅이다.

무림맹과 사도천은 전쟁 중이지 않

지만, 이곳 귀주 만큼은 다르다. 언

제나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경공을 쓰면 내공의 소모가 심하기

에, 자칫 잘못해서 적들을 만날 경

우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경공과 보법 수련을 멈추

고, 개양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귀주!'

일행만 아니었으면 들뜬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귀주에 볼일, 아니 찾아야 할 사람

이 있다.

삼안신투의 비고.

그동안 이 비고에 잠들어 있는 보

물을 얻기 위해서 머리를 열심히 굴

렸댜

기억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면서 그

에 맞춰 계획을 수립하고 수정했다.

그 기간이 거의 삼 년이었다.

계획에는 몇몇 사람의 도움이 반드

시 필요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지금 귀주에 있을 걸로 추정됐다.

‘상왕(商王), 이의채(李毅采) ! '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지만 훗

날 중원 제일의 상인이라는 자리에

올라가게 되는 석 자이다.

원래는 별 볼 일 없는 미곡상(米穀

商)이었으나, 전란의 시대가 시작할

때 즈음 그의 인생이 급변한다.

이의재는 상당히 탐욕스러운 사람

이었댜 그는 전란의 시대 때 우연

찮게 무림 인과 연줄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 무림인에게 전란에 대한

소량의 정보를 얻어, 고립된 지역까

지 찾아가 군량(軍種)을 팔았다.

동료 상인들은 그런 이의재를 보고

목숨 아까운지 모른다면서 혀를 찼

으나, 그 목숨값은 충분히 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의채는 순식간에

수많은 돈을 갈퀴처럼 끌어모았고,

재산과 상단을 부풀려 나갔다.

원래 이의채는 하늘이 내렸다 할

정도로 돈에 관련된 재능은 귀신같

았댜

그동안 자본도 적 었고, 운이 나빴

을 뿐 기회가 한번 찾아오자 그걸

통해 무섭게 성장해 갔다•

‘상왕은 절대 적으로 만들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그 돈벌레는 반드

시 내 편으로 삼아야 해.'

이의채는 정파인도 사파인도 아니

댜 처음부터 끝까지 상인이었으며,

그 이념은 무서울 정도였다.

정파와 사파. 심지어 마도이세와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정체불

명 세력들까지.

이의채는 전란의 시대가 시작되고

끝날 동안 끝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했댜 누구의 편도 아니 었다.

배짱의 수준이 보통이 아니 었다.

그 누가 전 무림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 할까. 괜히 상왕이 아니 었다.

‘심지어 전란의 승자는 상왕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까. ’

이의채의 보잘것없었던 금의상단

(金意商團)은 전란의 시대를 통해서

수많은 이익을 벌어들인다.

그리고 모든 전란이 끝났을 때, 금

의상단은 천하제일 상단이 되어 겨

우 찾아온 평화에 군림했다.

재물과 돈이 얼마나 많았냐면, 우

스갯소리로 돈으로 천하를 살 수 있

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상왕에게 보물을 맡긴다면 알아서

운용해 줄 터 무엇보다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이 특히

중요해 . '

누군가에게 비고의 보물을 맡긴다

해도, 야반도주할 가능성이 있다. 하

지만 이의채는 아니다.

상인들에게는 신뢰무사(信頓無死)

라는 말이 있다.

신뢰가 없다면 죽은 것과 같다는

의미다.

그 정도로 상인에게는 상호 간에

신뢰가 필수이다. 그 믿음이 깨지면,

누구도 거래하지 않으려 한다.

이의재가 상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능력도 능력이지만 신뢰

를 반드시 지키기 때문이었다.

돈만 쥐여 준다면 천하에서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 이의재다. 다만

반대로 돈이 없다면 믿을 수 없다.

즉, 이익이 되는 관계라면 상왕만

큼 든든한 사람은 없다는 의미 였다.

다만 반대일 경우, 믿음의 유무고

자시고 간에 상왕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있을지 의문이었다.

실제로 주서천은 이의재가 화산파

에 방문했을 때 얼굴을 몇 번 봤을

뿐, 대화는 나눈 적이 없었댜

그가 직접 찾아왔을 때 주서천은

별 볼 일 없는 무인이었기 때문이었

화산오장로가 되 었을 때 즈음에는

이의채가 워낙 거물이 됐기에 아래

에 있는 사람들을 보냈지 직접 모습

올 보이지는 않았다.

주서천은 이의재와의 만남을 고대

하며, 귀주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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