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전생-14화 (14/254)

15화

주서천은 몸에 맞는 철검으로 매화

검의 일초식을 펼쳤다. 낙소월이 얼

른 검을 세워 막아 냈다.

째―앵!

파르르

험청난 내력(內力)!'

낙소월의 가녀린 손목이 미세하게

떨렸댜

주서천이 나이가 들어 보이지만,

그래 봤자 아직 소년을 벗어나진 못

했댜

청년이 아닌 이상 순수한 근력이

이렇게 강할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내공의 힘이라는 의미였다.

낙소월은 선수를 양보한 걸 후회하

면서 다음 행동에 나섰다. 일단 보

법을 밟아 빠르게 퇴보(退步)했다.

‘진정해 . ’

뒤로 몇 걸음 물러나는 순간, 낙소

월의 머리는 쾌속으로 회전하면서

행동 방안을 강구했다.

‘어떻게 이런 내공을 지녔는지 의

문이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낙소월은 어리지만, 사고방식은 이

미 어른에 가까웠다. 흔히들 말하는

천재이댜

무공에 대한 이해도, 상황 판단,

지식 역시 도저히 아홉 살의 것으로

보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최대 장기는 검을

맞대는 짧은 순간에도 여러 가지 가

능성을 낼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다움은 어떻게 공격해 올지 생

각해 봐야 해…… . '

매화검, 육합검, 낙영검법, 매화영

롱검 오행매화검

상대의 연령에 배울 수 있는 무공

들이었다.

정확하게 어떤 걸 수련한지는 모르

지만, 이 중 하나로 공격해 올 거라

고 확신했다.

낙소월은 이 다섯 무공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그에 따라 대웅하려고

미리 머릿속에 그려 두었다.

하지만…··.

”……네?"

그 짧은 순간 동안 계획한 게 전

부 무너졌댜 단 하나도 맞지 않았

상승의 무공을 쓴 건 아니었다. 아

니, 애초에 무공 같은 게 아니었다.

“받아라!”

주서천이 호기롭게 외치면서 검을

휘둘렀다.

말 그대로 검을 휘둘렀다. 매화검

올 쓴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구잡

이로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어떠한 형식도 갖지 않았고, 검으

로도 갖추지 않았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 사선으

로 그었다.

매화검조차도 아니었다.

”뭔……!"

허를 찔렀다.

낙소월은 찰나의 순간에도 여 러 가

지 방안을 강구할 수 있지만, 반대

로 그게 결점이 되기도 한다.

나쁘게 말하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

고, 그 생각에 관념이 고정되어 그

외의 것이 날아오면 당황했다.

주서천이 검법이라 부르기예도 민

망한 검을 펼치자, 낙소월은 얼떨결

에 막아내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간다!"

주서천은 보라는 듯이 외쳤다. 하

단전에서 내공을 무식하게 끌어올려

사용했다.

파바바밧!

몸이 내공을 받아 빠르게 움직 인

댜 절벽 등반으로 잘 단련된 근육

이 힘을 냈다.

검이 그어질 때마다 ‘부웅' 하고

묵직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대기

가 갈라지며 낙소월을 노렸다.

그러나 역시 검법이 아니었다. 그

냥 휘두르기였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토해

냈다.

“깍!"

낙소월이 옅은 비명을 홀렸다. 검

에서 손, 그리고 온몸으로 퍼지는

그 충격이 적지 않았다.

"합!”

쐐애액―!

짧은 기합에 따라오는 파공음.

낙소월이 검을 들어 주서천의 검을

막아 냈다.

재재재챙!

이와 같은 공세와 수세가 계속됐

주서천은 내공의 힘으로 무식하게

밀어붙여, 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

댜 낙소월은 그걸 전부 막아 냈댜

처음에는 당황하긴 했으냐, 낙소월

은 천부적인 재능. 반사 신경으로

검을 어째 막아 내긴 했다.

마구잡이 검이 불규칙적이긴 하지

만 그렇다고 막을 수 없는 게 아니

었다. 반대로 더 쉬었다.

너무나도 단조로운 움직임이기에,

어떠한 고차원적인 검로가 촌재하지

않아 대놓고 경고하는 꼴이 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목검을 마구잡이로 휘 두른다고 할

까. 그런 느낌이었댜

"까악!”

이윽고 최후의 비명이 터져 나왔

확실히 검로(劍路)는 눈에 훤히 보

인댜 하품이 냐올 정도로 뻔했다.

한쪽 눈을 감아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검의 예상

경로에 한해서다. 날아오는 검의 힘

과 속력 자체는 전혀 아니 었다.

예상 경로를 예상할 수 있다고 한

들, 몸이 그걸 따라 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식한 내공!

그 힘 앞에 결국 백기를 든 건 낙

소월이었다.

“졌……습니다…….”

낙소월이 검을 떨어뜨렸다. 그 낯

빛은 밝지 못했다.

아까 전만 해도 보였던 여유 역시

하나도 없었다.

"승자, 주서천!"

심사관이 손을 들어 비무의 종료를

알렸댜 그러나 그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저게 뭐야!"

"뭐 저딴 게 었어!"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려왔다. 패배

자인 낙소월이 아닌, 승자 주서천을

향한 야유였다.

"저딴 걸 인정하라고?"

"삼류보다 못한 놈!"

"네가 그러고도 화산의 제자냐!"

화산파. 아니, 정파는 명예를 목숨

보다 중시한다.

특히나 화산파의 경우, 검에 대해

서는 더욱 엄했다.

그 사상과 이념 에 따르면 주서천의

행동은 설사 승리했다 해도 야유와

욕이 따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연화각의 심사다.

거기에서 검법은커녕, 무공이라 칭

하기에도 부끄러운 방식으로 이겼

비록 바닥을 구르거나, 흙을 뿌리

거나, 암수를 쓰는 방식이 아니어도

충분히 모욕에 가까운 행위였다.

예상한 일이었으니까, 뭐 . '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게 야유와 욕

을 흘려넘겼다.

‘너무 강해도 문제다. '

낙소월뿐만이 아니 라 자신을 뜻하

기도 했다.

낙소월 정도 되는 무인을 이기려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힘들다. 매화검

올 펼쳐서 무위를 보여 줘야 한다.

근데 그러면 너무 세다. 어떻게 약

하게 노력해 보려고 해도, 이놈의

증진 체조로 강화된 몸이 문제였다.

심지어 넘치는 내공도 있어서, 기

초 검공인 매화검만 펼쳐도 삼류를

가볍게 넘는 위력이 나왔다.

이걸 보여 준다면 심사관들이 입을

떡 벌리면서 장문인과 화산오장로에

게 보고할 게 상상됐다.

하나 그렇다고 실력을 너무 낮추면

낙소월을 이길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낸 방법이 이거였다.

낙소월을 이기되, 천재라거나 그런

쓸데없는 소문과 평가를 막는 방법.

내공과 육체만으로 승부한다.

이러면 실력도 감출 수 있고, 이길

수도 있었다.

"부끄러운 줄 알아라!"

다만, 그에 따른 대가가 조금 썼

‘나 역시 전란의 시대가 아니었다

면 치욕스러워서 얼굴을 들지 못했

겠지.’

그 역시 전형적인 정파인이었다.

원래라면 이러한 행위를 용서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애초에 이런

짓을 할 생각 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전란의 시대 이후, 정파가

가진 그 특유의 틀어박힌 사고방식

을 상당 부분 바꾸게 됐다.

전통이나 풍습 등을 지키고 고집하

기에는 무림의 사정이 워낙 안 좋았

자하신공이냐 자하검결 등의 일인

전승인 무공을 화산오장로가 알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연유다.

문파의 존속 등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다면서 정파는 꽤나 진보적으

로 변했댜

그만큼 전란의 시대는 무림의 수많

은 걸 바꾸었고, 주서천 역시 시대

의 흐름에 변화한 사람 중 하나였

‘아무리 어쩔 수 없었다곤 하지만,

사부님의 명예에 홈이 갈 터이니 마

음이 편치 않구냐.'

주서천이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

었댜

* * *

연화각의 심사는 끝났으냐, 무사히

끝났다고 할 수는 없었다.

부상자나 사망자가 있는 건 아니 었

지만, 논란이 된 비무 때문이었다.

주서천과 낙소월의 일이다.

"불허(不許)합니다.”

지천명(知天命: 50세) 즈음 된 중

년 여성이 말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

특징이었다.

화산오장로 철혈매검, 심옥련(深玉

聯)이다.

"심 장로.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

지만, 그래도 이야기는 좀 들어 봐

야 하지 않겠소?"

왜소한 체구에 인자한 웃음이 어울

릴 듯한 노인이 말했다. 그 역시 화

산오장로 중 한 명이다.

지검옹(智劍翁) 학송(學送). 이대제

자 중에서도 장문인 다음으로 항렬

이 높았다.

“이야기를 논할 가치도 없습니다,

학 장로님. 화산의 검을 모욕한 자

를 연화각에 입각시키다니요.”

심옥련이 차분한 어조로 조목조목

따져 가면서 말했다. 대부분 주서천

의 잘못이나 예법에 대한 의견이었

확실히 주서천의 행동은 화산파,

아니 정파의 입장에서 그다지 좋지

못했댜

"심 장로님의 말대로요. ”

상궁의 자리한 사람들 중, 신장이

제일 훤칠한 중년인이 심옥련의 주

장에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화산오장로, 명수

악(命手振) 조무양(朝務樣)이 었다.

참고로 화산오장로들은 스승이 같

지 않은 이상, 사형제의 호칭을 쓰

지 않는다.

설사 향렬이 다르다고 해도, 화산

오장로 자체의 지위를 우선으로 하

고 존중해서 그렇다.

다만 학송의 경우, 이대제자 사이

에서 워낙 연령이나 항렬이 높은 편

인지라 예외로 두는 편이었다.

"허허허, 두 분 모두 너무 학 장로

님을 곤란하게 만들지 말아 주시구

려. 나도 이야기는 듣고 싶소.”

우일문이 흰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 두 분의 의견도 들어

봐야 하지 않겠소?"

장문인의 도움에 학송이 감사하다

는 눈빛을 보였다.

“내 듣자 하니 소유검의 제자 되는

놈이 영약을 복용했다는 제보를 받

았소. 그게 사실이오?"

단약사(丹藥士) 영진(靈珍)이 눈을

반짝였댜

심사장에서 보였던 주서천이 보여

준 움직임. 그건 도저히 아홉 살이

낼 수 였는 것이 아니었다.

힘과 속력은 곧 내공에서부터 나온

댜 그 정도의 속력이라면 최소 이

십 년 내공이어야 했다.

화산파의 심사관이나 되는 무인들

이 그걸 모를 리 없었고, 당연히 그

대로 보고를 올렸다.

주서천에 대한 추궁도 있었다. 이

에 주서천은 수령신과에 대해서 거

짓을 섞어 실토했다.

과거, 유정목이 정기 회합에 나갔

을 때 몰래 빠져나와 일탈 행위를

즐기다 우연히 발견했다고 말을 한

것이다.

어차피 연화각에 들어가면 수련동

과 달리 교두가 한 사람 한 사람에

게 붙어 신경 써 준다.

진맥 역시 그중 당연히 포함되어

있고, 그렇게 되면 반 갑을 살짝 넘

는 내공이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경우, 별로 큰 문제로 거

론되지는 않았다.

화산파 소유의 영약이라면 모를까,

주인 없는 걸 복용한 것이니 잘잘못

을 따지기에는 애매했다.

수령신과에 대한 소문을 미리 듣

고, 발견하면 복용하지 말고 즉시

보고하라고 명령했으면 또 모른다.

이렇다 보니 영약 복용에 대한 건

어쩔 수 없다는 느낌으로 넘어갔다.

대신 유정목이 자리를 비웠을 때

몰래 빠져냐가 일탈 행위를 즐긴 건

벌을 받았다.

벌이라고 해도 대단한 건 아니었

고, 변소의 청소 둥의 잡무를 한 달

가량 정도 맡게 된 것뿐이었다.

“그놈 뱃속에 들어간 영약을 꺼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영약이 어떠한

효능을 보이는지 알고 싶소.”

연화각에 넣어 두고 관찰하고 싶다

는 속뜻이었다.

영진은 별호에도 알 수 있다시피,

무인인 동시에 단약을 제조하는 의

원이댜

이걸로 찬성 둘, 반대 둘이 나왔

모두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 곳으로

향했댜

매화검장(梅花劍將) 위지결(位知

潔)

화산오장로. 아니 , 화산파에는 북해

궁주처럼 대대로 이름이 이어져 내

려오는 별호가 존재한다.

장문인과 나란히 이십사수를 독자

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 지위 자

체가 별호인 매화검장이 었다.

그 이름은 화산오장로 중에서도 특

별하며, 대외적인 권한도 강했다.

"입각시키시오.”

경장.”

심옥련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위지결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고작 열 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반 갑의 내공을 품고 있소. 자질이

어떻건 간에 두들겨서라도 가르친다

면 충분한 전력이 될 거요. 말이 좀

많겠지만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

오.”

화산오장로들도 각자 분야가 있고,

그에 따라 권한도 주어진다.

연화각이나 매화검수 등, 정예 집

단의 등용은 매화검장의 권한이 우

선된댜

설사 찬성이 둘, 반대가 셋 나온다

고 해도 매화검장이 손을 들어 주면

그쪽이 더 힘이 실린다.

짝!

우일문이 손뻑올 쳐 좌중의 시선을

모았댜

“그럼 회의는 이걸로 끝내도록 하

겠소. 연화각에 입각하는 인원은 주

서천과 낙소월. 이상 두 명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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