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사부님께서는 어릴 적부터 몸이
좀 약했을 뿐이라며 그냥 넘어갔지
만, 생각해 보면 이상했어.’
애초에 무인이 병약하다는 것이 이
상하댜
내공심법이란 건 곧 몸과 마음을
단련시켜 주는 것.
그걸 연공한 무인이 일반인과 비슷
할 정도로 잔병을 자주 겪는다는 건
뭔가가 어긋난 것이다.
배를 굶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씻
지 않아 청결을 유지 못 하는 경우
도 아니었다.
규칙적인 생활과 식습관, 수면 시
간을 맞춰 가며 대자연의 기를 호흡
하는데 건강하지 않을 리 없다.
설사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고 해
도 그 체질은 진작 고쳐지고 끝냈어
야 한다.
물론 나이를 먹으면서 천수를 거의
다 누렸거나, 혹은 과거에 크게 내
상을 입었을 경우는 제외다.
하지만 유정목은 어떠한 경우에도
속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
간단하다.
‘체질이 아니라, 질병에 걸리셨던
거지.'
병 이 얼마나 잠복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또한 그 병에 대한 정체도 모른다.
심지어 이 병이 선천적인 건지 후천
적인지도 알 수 없었다.
하나 이 병은 스승의 몸을 조금씩,
천천히 갑아먹다가 끝내 오 년 뒤,
그 목숨까지 집어삼킨다.
유정목이 큰 질병에 걸렸다는 사실
을 주서천이 알게 되는 건 이미 그
의 건강이 많이 악화된 뒤 였다.
‘그때 그 무기력함이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다.'
어느 날, 스승이 고열을 홀리며 쓰
러졌댜
급히 의원을 불렀으나 절망적인 소
견을 냈다.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만, 병이
잠복한 지는 꽤 된 것 같습니다. 지
금까지 이 런 증상을 보인 적은 없었
는데·… · ·.'
참고로 유정목은 어릴 적부터 워낙
자주 잔병을 달고 살았다 보니 의원
의 신세를 정말 많이 졌다.
정기적으로 검진받았지만 쓰러지기
전까진 어떠한 증상도 발견되지 않
았었댜
결국 유정목은 며칠 뒤에 유언 하
나 남기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채
세상을 떠난다.
‘기필코 막아야 한다 ! '
회귀 이후 스승을 보자마자 펑펑
울었댜
그만큼 유정목의 촌재는 주서천에
게 있어서 특별했으며 또 소중했다.
유정목을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
면서 회 귀 뒤에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하고, 되뇌었다.
스승을 살리는 것 . 그게 첫 번째
할 일이댜
‘그다음은 약 육 년 뒤. 지학(志學:
15세) 때였나.'
그리고 유정목을 떠나보내고 일 년
뒤
중원 무림 역사의 획을 긋는 사건
이 일어난댜
‘삼안신투(三眼神倫)의
庫)!’
비고(秘
지금으로부터 삼백 넌 전, 강호 무
림을 넘어 중원 전체에서 명성을 떨
친 전설적인 도둑이 있었다.
그 도둑은 무언가를 홈치 면 항상
세 개의 눈이 그려진 문장을 남겼
댜 그래서 삼안신투라 불리게 됐댜
삼안신투는 등장 이후 약 백 년
가까이 활동했으나, 그 누구도 삼안
의 문장 외에는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백 년이 덜돼서 삼안신투의
활동이 멈추자, 관부는 삼안신투를
추포했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공표를 믿지
못했댜
근 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삼
안신투는 관부 외에도 각종 무림 세
력을 포함하여 수많은 추적을 받았
댜
하지만 정파, 사파, 마교, 혈교. 심
지어 그 황궁조차도 삼안선투를 추
적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삼안신투가 어딘가에 홈
친 것을 숨겨 두고 자연사했다고 생
각했댜
이후에 그 비고를 찾는 사람들은
줄을 이었지만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육 년 뒤, 그 전설의 비고
가 발견되어 세상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때가 오기 전에 먼저 가서 털어
야 한다!'
미래에서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
되자마자 온갖 사람들이 보물을 노
리고 벌 떼같이 몰려들었다.
전란의 시대가 열리지는 않았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혈
투가 벌어져서 엉망진창이 됐다.
그리고 마지막엔 보물을 다 회수하
기도 전에 기관을 잘못 건드리는 바
람에 비고가 무너져 내리면서 끝이
났댜
그렇게 되기 전에 선수를 쳐야만
했댜
‘하지만 문제는 육 년 뒤에도 내가
나가지 못했다는 거야.'
중원에서 지학은 성년이지만, 화산
파에선 성년이 됐다고 자유롭지는
못하댜
화산파에서 강호로 나가려면 정말
특출 난 경우가 아닌 이상 약관 정
도 돼서야 허가가 나온다.
이는 애써 키운 제자가 강호에 나
갔다가 어이없게 죽게 하지 않기 위
해서댜
그래서 좀 더 철저한 준비를 시키
기 위해 약관의 나이까지 무공을 수
련시키고 강호에 내보냈다.
‘어떻게 해야 할까?'
* * *
다시 두 달이란 시간이 홀렀다.
그동안 일 년의 내공을 더 쌓을
수 있었다.
주서천의 내공은 총 이 년 하고도
반년 치였다.
"회귀 이전에도 느꼈지만 정말
로·… ... "
축기의 속도에 몇 번이 나 감탄하게
된댜
정파의 무공을 보통 정공(正功)이
라고 한다.
정공은 우선 안전하다. 수련을 올
바르게(正), 정석대로만 한다면 주
화입마(走火入魔)의 가능성은 적다.
그 대신 내공이 쌓이는 속도를 비
롯하여 수련 속도가 매우 느렸다.
그에 반면 마공(魔功)은 축기나 수
련 등 모든 면에서 반칙이라 칭해질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마공은 그 대신에 부작용이 너
무 많댜 괜히 마공이 아니댜
예를 들어서 마성에 물들어 광인이
되거나, 인육을 하거나, 성욕이 비정
상적으로 높다거나. 부작용만 해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다양
하다.
한데 매화생공은 정공인 주제에 마
공의 축기 속도와 같다는 특징을 지
니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공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준마공이
라고 칭할 정도는 된다.
“후,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냈
군. ”
주서천은 하루 일과를 끝나고 유시
(酉時: 17시 ~19시) 무렵에 스승의
거처로 향했다.
문 앞에 선 주서천은 들어가기 전
에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
몸가짐을 확인했댜
"코로 1 코로I"
근2-, . 근크-,.
움찔 .
" ...... ,." •
주서천은 움직임을 멈추고 눈을 크
게 떴다.
방금 전, 문 너머에서 들렸던 목소
리
유정목의 기침 소리였다.
‘사부님 ...... !'
회귀 이전, 죽기 전까지
없던 목소리다.
수
을
01K
가족이라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사
람
냐이를 먹고도 의지했던 사람.
‘아홉 살의 해, 아직 때는 아니다. '
유정목의 남은 수명은 오 년 .
하나 ‘오 년이나’ 가 아니라 ‘오 년
밖에’댜
자고로 병이란 건 일찍 발견되어
초기에 조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어 조치를
취할 수 없다.
정확히 어떠한 병인지도 모르니,
최악의 상황에는 지금 당장 손써야
할 수도 있었다.
주서천은 근 두 달 동안 무공을
성실하게 수련하면서도 끊임없는 고
민을 했다.
‘역시 신의에게 진료를 봐 달라고
할 수밖에 없다.'
신의(神醫)
의술의 경지가 명의(名醫)를 넘어
당대 최고의 의원. 그야말로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정말로 이 전란의 시대에는 고금
이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고수들
과 기인들이 가득하다.
신의 역시 그중 한 사람이며, 전란
의 시대 도중 사망하여 이름을 남기
고 사라진다.
‘하지만 신의를 어떻게 부르지?'
신의는 마음대로 오라 가라 할 수
없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신의는 한때 괴의(怪醫)
라 불렸을 정도로 성정이 괴팍한 자
여서 마음을 얻으려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심지어 협박을 해도 결코
통하지 않는다.
과거 몇 차례 무림맹주나 그 외에
장로들의 부탁을 들어주기는커녕 무
시한 유명한 일화도 있었다.
‘분명 신의가 희귀한 의서(醫書)에
환장한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기는
하는데·… ... '
신의는 의학의 정점에 선 위인인
만큼, 그만큼 다양한 의서를 수집하
여 낭독하고 있다.
그 양이 얼마나 많냐면, 중원의 의
서는 모두 신의가 소유하고 있다는
소문이 었을 정도였다.
의서라서 다행이지 만약 그게 무공
서적이었다면 아마 신의를 중심으로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렇다 보니 신의는 본
인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의서라
면 환장을 한다.
실제로 신의의 진료를 받기 위해
의서를 구하는 자들은 상당히 많으
며, 그 덕에 그렇지 않아도 값비싼
의서는 신의의 등장으로 인해 폭등
하게 됐다.
‘의서가 화산파의 서고에 있다고
소문을 낼까?'
나쁘지는 않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부족하다.
신의가 소문만 듣고 바로 움직일
리는 없었다.
‘ ••••••• ’
그 외의 방법을 떠올려 보지만 이
렇다 할 답이 마땅히 생각나지 않았
댜 그동안 제법 여러 고민을 했댜
제일 확실한 방법은 삼안신투의 비
고댜
육 년 뒤, 비고의 촌재는 무림에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는 신의조차도
움직이게 한다.
확실히 비고에 숨겨져 있는 의서라
면 진료는 물론이고 치료까지 부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자신은 너무 어려 행
동의 제약이 붙어, 마음대로 사문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었다.
비고의 위치는 화산에서 제법 거리
가 꽤 되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공
이 아직 약해서 많은 문제가 된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강호에 나갔다
가 산적이나 낭인에 의해서 어이없
게 목숨을 잃을지 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이러한 경우를 상정
하고 화산파가 눈 뜨고 감시하고 있
으니 무리다.
‘신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
만 대체 몇 번이나 했는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래에 있을 일
들을 동원해 봐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능력함에 화가 났다.
주서천은 정신을 가다듬고 분노를
잠재운 뒤, 다시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려서 다른 방법을 찾아보았다.
‘신의가 제조한 단약 같은 건 없
나?’
신의는 의학에 관해선 전부 정점에
서 있댜 제약(製藥) 능력 또한 그
사이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 약은 당연하다시피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의 고가로 거래된
댜 신의의 약이니 당연했댜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것 중 하
나댜
수중에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니 이
것도 불가능.
‘잠깐, 굳이 신의의 단약일 필요는
없잖아!’
주서천이 무릎을 탁 차고 벌떡 일
어났댜
‘영약(靈藥)이 었다!'
영약이란 건 자연의 기나 정수를
담고 있는 약으로, 보통 무인에겐
내공 증진을 가져다준다.
그렇지만 애초에 ‘약'이기에, 경지
를 높이는 등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치료의 목적으로 쓰인다.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을까!'
주서천은 머리를 두들기며 자신의
멍청함을 꾸짖었다. 지름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고 있었다.
‘어디 보자, 영약이 발견된 게 몇
가지 있었는데 . '
과거의 기억을 정리하면서 떠올려
다 봤다.
생각나는 건 세 가지에서 네 가지
정도.
그리고 마침 그중 하나가 화산 근
처에 있었다.
‘수령신과(水靈信果)!'
발견된 건 약 이십 년 정도 뒤.
전란의 시대일 때다.
어떤 낭인이 전쟁 도중 치명상을
입고 도주하다가 그만 강물에 빠져
급류에 휘말리게 된다.
하나 그 낭인은 운 좋게도 급류를
타고 아무도 모르는 수중 동굴에 도
착하여, 기연을 겪게 된다.
신기하게도 수중 동굴 안에는 어떠
한 나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그 나
무에서 열린 열 매 가 바로 수령신과
댜
그 낭인은 수령신과를 복용해 이후
내공이 크게 증진하여 덕분에 천하
백대고수의 반열에 오른다.
그야말로 기연 그 자체였다.
‘다행이다, 지리적으로도 가깝다! '
수중 동굴이 위치한 곳은 화산에서
북쪽으로 좀만 더 가면 나오는 화음
(華陰)이라는 동네다.
그 근처에는 산서와 하남, 그리고
화산이 있는 섬서의 경계선인 강이
있댜
경공을 사용하거냐 말을 타고 꾸준
히 이동하면 채 하루도 되지 않는
거리에 었어서 좋다.
이 낭인이 워낙 말하기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위치가 워낙 유명해져
미래에는 관광 명소처럼 될 정도였
댜
무엇보다 화산파 역시 혹시 수령신
과가 또 없나 싶어 강 근처의 동굴
을 이 잡듯이 뒤져 조사한 적이 있
었댜 그 덕에 주서천도 나름 자세
하고 알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조사 이후에 동굴
이 몇 개 발견됐으나 수령신과는 물
론이고 나무도 발견되지 않았다.
‘삼류 수준의 낭인을 순식간에 천
하백대고수까지 오르게 해 준 영약
이댜 가능성은 충분하댜'
특히나 그 낭인은 영약의 복용 이
후 엄청난 내공을 손에 넣었다고 한
댜
그 정도 기운이라면 유정목의 질병
또한 내공으로 눌러서 해결할 수 있
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 그동안 삼안신투의 비고에만
눈이 가려져 있었군. 좀 더 다양하
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겠어.”
주서천은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했
댜
‘분명 사부님께서 일주일 뒤에 정
기 회합에 참석한다고 하셨으니, 그
때가 기회다.'
정기 회합은 약 삼 일에서 오 일
정도 한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
하댜 이때가 기회였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