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주서천의 영혼은 산전수전을 겪은,
백 살에 가까운 노인이지만 육체는
그렇지 않다.
이제 여덟 살이 된 어린아이일 뿐
이댜
그리고 대다수 어린아이들이 용당
그렇듯, 아이에게 자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대문파의 사대제자면 더더욱
그렇다.
문파에는 정해진 규율이나 생활이
있고, 그에 따라야 한다. 주서 천도
거기에 포함된다.
동이 틀 무렵에 일어나 제일 먼저
스승에게 문안 인사를 드린 뒤, 다
른 사대 제자들과 함께 수련동(修鍊
洞)으로 가서 아침 수련에 임한다.
"허1 혜…… "
- , -기 •
수련동은 화산의 낙안봉(落雅峰)
근처에 있댜 화산의 봉우리 중 근
처에 있기에 오르는 것이 정말 힘들
댜
무공을 익히지 않은 성인 남성이어
도 오르는 것이 힘든데, 아이의 몸
으로 올라가면 두말할 것도 없다.
죽을 맛이었다.
수련동에 수련을 하러 가는데, 정
작 가는 길 자체만으로 수련이 된
댜
‘이런, 쌍…….'
속으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다시 시작한 건 좋다. 하지만 재시
작한다는 건 곧 그동안 쌓아 올렸던
모든 것도 사라진다는 의미다.
전생이었다면 산책하듯이 올랐겠지
만 지금은 아니다. 입에서 벌써부터
단맛이 느껴진다.
눈물이 핑 돌고,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파 왔댜 발바닥도 허벅지 근육도
당겨 온댜
‘그러고 보니, 화산의 수련은 악명
높았었지!'
잊었던 기억 중 하나가 떠올랐다.
화산파가 괜히 대문파가 아니 다.
무공 자체가 뛰어난 것도 있지만,
제자들의 단련도 기가 막히게 잘한
댜 근데 그 단련법이 많이 엄하댜
어린아이건 청년이건 간에 육체가
딱 망가지기 전까지만 굴린다.
그런데 그 경계선을 기가 막히게
또 잘 아는 데다가, 평시에 교두(敎
頭)를 붙여서 조절하게 만든다.
감시하다가 정말로 한계가 올 것
같으면 쉬게 만들거나, 내공을 불어
넣어 준다.
그 덕에 몸이 지칠 만하면 회복하
게 되어 결국 어린아이의 몸으로도
낙안봉에 오를 수 있게 해 준다.
그래서 이 구간과 수련에는 낙안지
옥(落雅地獄)이라는 명칭이 붙게 됐
댜
낙안지옥을 끝내고 수련동에 도착
하면 수련 정도에 따라서 또 나뉘게
된댜
자신의 경우, 낙안봉에 도착하는
것만으로 끝난다.
좀 더 나이가 있는 사대제자들은
간단히 검법을 펼친다. 더 위로 가
면 비무까지 하는 사대제자도 있다.
"수고했댜 저기 있는 벽곡단으로
조식(朝食)을 한 뒤에 내려가도록
해랴'’
교두가 턱 끝으로 벽곡단이 쌓인
식탁을 가리켰다.
주서천은 남은 힘으로 교두에게 허
리를 숙여 인사한 뒤, 벽곡단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대부분의 어린아이들은 벽곡단을
씹자마자 ‘으웨!' 하구 맛이 없다며
눈살을 찌푸렸다.
벽곡단은 영양 성분이 가득하지만
맛은 없다.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 아니다.
그렇지만 주서천에게는 통용되지
않는댜 전생에서 워낙 많이 먹었기
에 아무렇지 않게 삼켰다.
그리고 약 일각(一刻: 15분) 정도
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내려갔다.
내리막길이기에 힘들지는 않았다.
“사부남 다녀왔습니댜"
“오늘도 고생했구나. 힘들었지?"
유정목이 쓴웃음을 흘렸다.
화산파의 제자라면 천재건 뭐건 간
에 낙안지옥에 대한 고통은 누구나
다 안다.
“마음 같아선 좀 더 쉬게 하고 싶
지만, 그럴 수가 없구나. 이 사부를
용서해다오.”
유정목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댜
아침 수련 일명 낙안지옥은 어디
까지나 근육과 체력을 키우는 기초
에 불과하다.
수련동을 다녀오면 각자의 스승을
찾아가 오전 지도를 받게 된다.
“괜찮습니다, 사부님!"
주서 천은 그 누구보다 자상하고,
또 고운 마음을 가진 사부의 배려에
적잖이 감동했다.
전생에서도 그렇지만 현생에서도
여전히 스승은 자상하기만 하다. 부
모님의 부재에 아무렇지 않았던 것
도 이런 유정목이 있어서 그랬던 걸
지도 모른다.
"좋아, 그럼 운기행공에 들어가도
록 하자구나. 매화기공(梅花氣功)이
아직 익숙하지 않을 데니 내 도와주
도록 하마. ”
유정목은 제자리에 앉은 뒤, 자신
의 앞에 앉으라는 듯 지면을 툭툭
쳤댜 주서천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가 짚은 자리 에 가서 등을 보인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자, 일단 내가 부르는 구결부
타… ... ”
유정목은 주서천에게 매화기공의
구결을 읊어 주면서 그 뜻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하게 강연해 주었다.
매화기공은 총 십이성(十二成)으로
이루어져 었는데, 오성(五成)이 되
기 전까지는 주화입마의 위험이 있
어 이렇게 운기행공을 감독해 준다.
참고로, 매화기공이란 건 화산파에
입문하게 되면 제일 먼저 배우게 되
는 기초적인 내공심법이다.
화산파의 대표적인 기초 정공(正
功) 중 하냐로서, 단전을 쉽게 형성
시켜 주고 기맥(氣脈)을 다져 준다.
다만 정공이 웅당 그렇듯, 내공이
쌓이는 양도 적고 속도도 상당히 느
리다.
내공심법 자체는 난해하지 않아서
대성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지만,
쌓이는 내공은 정말 별로 없다.
“하나, 애초에 기초를 다져 주는
내공심법인 데다가 매화기공을 연공
한다고 다른 걸 배우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서 특별히 걱정할 건 없단
댜"
또한 비록 화산파 내에선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기초적 인 무공예 속
하나 강호에선 일류에 속했다.
괜히 구파일방, 대문파의 무공이
아니다.
"예 ! "
주서천은 힘차게 답했다.
꿍, 다 아는 사실인데 . '
제자를 위해서 열심히 강연한 사부
에겐 정말로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
히 말해서 지루하기 그지없었다.
주서천에게 있어서 매화기공은 이
미 옛적에 대성한 기초 무공이고,
또 무위도 전생에 이룬 것이 있어
무공에 대한 이해도나 깨달음이 스
승보다 높다.
심지어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훗날 미래에 밝혀질 매화기공예 대
한 비밀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늘 같은 스승 앞에서 지
루해하며 홀려들을 수도 없는 노릇
이댜
피곤하기는 해도 열연을 보이면서
강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선 곧바로 대성하고 싶
댜'
전생의 기억과 경험이 있으니 대성
하는 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러면 당연히 눈에 띄게
된댜
천재니 뭐니 하면서 강호에 소문이
난댜
그게 마음에 걸려서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아직 이르다.'
영웅의 삶을 동경했으냐, 그렇다고
어릴 적부터 주목을 받을 생각은 없
었댜 반대로 사절이댜
쓸데없는 주목을 받게 되면 행동에
제한이 생길 뿐만 아니라, 미래에
있을 불온한 세력의 목표가 된다.
‘조심해야 해.'
전생에서 어찌어찌 평화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건 결코 쉽게 얻은 것
이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전란의 시대에서 활동
하는 세력들은 보통이 아니다. 자신
이 어찌할 수 없는 괴물들뿐이다.
그중에선 미리 방해가 될 싹을 자
르는 자도 있어, 눈에 띄면 곤란했
댜 그래서 아직 힘을 키우기 전까
진 되도록 얌전히 지내는 편이 좋았
댜
그러니 겉으로는 눈에 띄지 않는,
전생과 똑같이 평범한 모습을 보이
면서 살아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로 그럴 생각
은 없지만 말이야.'
무공에 대한 깨달음과 지식이 있는
데 그대로 썩히는 건 너무나도 아까
운 일이다. 또한, 전생처럼 유년기를
보낸다면 또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없다.
주서천은 자신의 분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남들보다 특별하다곤 하지만, 그건
재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
나 기억과 지식뿐이었다.
진짜 괴물들을 상대하려면 보다 빨
리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을 할 수 없게 된다.
화경에 오르는 데 한평생이 걸렸
고, 또 그것도 회광반조의 힘으로
올랐던 것뿐이다.
화경에 오르면 그 이후는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어쩌면 영
원히 오르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보다 빠르게…… 아니,
많은 시도를 하여 앞서가야 한다.
그래야 숨통이 트인 채로 싸울 수
있댜
‘그러니 매화기공을 유지하여 세간
의 눈을 속이되,
을 연공한다.'
또 다른 내공심법
매화기공의 안전성은 무림에서 손
에 꼽힌댜 굳이 비교를 하자면 무
당파나 소림사의 심법 정도다.
얼마나 안전하냐 하면, 매화기공을
연공하는 도중예 다른 내공심법을
익혀도 될 정도였다.
물론 매화기공을 연공한다는 건 초
심자라는 의미이니 다른 내공심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을 리 없다.
배워 봤자 도움은커녕 헷갈리고 힘
만 더 들어 의미가 없었다.
오직 언제든지 매화기공을 대성할
수 있는 주서천의 경우에만 허용된
댜
‘바로 자하신공(紫霞神功)을!'
남존이라 불리는 무당파에 삼대신
공(三代神功)이 있다면, 화산파에는
자하신공이 있다.
자하신공은 일정한 경지에 오르게
되면 내기를 운용할 시, 자색의 기
류가 생기는 특징을 가졌다.
또한 그저 겉멋만 대단한 것만이
아니라, 그 위력도 경천동지할 정도
댜
하나 이 자하신공은 오직 화산의
장문인에게만 전승된다. 설사 화산
오장로라도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서천이 그 구
결을 알고 있는 건, 그때의 상황이
좀 예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전란의 시대에선 사람이 정말 쉬이
죽었고, 그건 장문인처럼 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설마하니 장문인이 그렇게 돌아가
실 줄은 몰랐지.'
먼 과거, 화산의 장문인이 목숨을
잃게 된다. 이후 그 제자가 뒤를 잇
게 되었지만, 불안이 남게 됐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장문인이 된
그에게는 자신의 뒤를 이을 제자가
아직까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자신이 전대의 장
문인처럼 돌연사할 상황을 걱정하여
자하신공의 구결을 오장로에게만 알
려 주었다. 만약을 위해서였다.
원래라면 절대로 있어선 안 될 일
이지만, 그만큼 혼란과 전란으로 가
득한 세상이어서 어쩔 수 없었다.
여하튼 이러한 사정 덕에 주서천은
장문인의 제자가 아님에도 자하신공
을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자하신공은 일정한 경지
에 오르기 전까진, 눈치재기가 정말
로 힘든 특징을 지녔다.'
자색의 기류를 내보이게 될 경우,
하수도 그 정체를 알게 된다. 그만
큼 특색 있는 무공이 자하신공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 자하신공은 계륵이 었다.
자색이 피어오르기 전까진 그다지
대단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눈치
재기도 힘들다.
어차피 자하신공은 워낙 난해하기
도 하고, 전생에서도 구결만 알았던
무공이기에 느긋하게 연공하면 된
댜
그럼 적어도 전생보단 좀 더 앞선
출발점에서 시작할 수 있다.
‘나중에 눈치재서 추궁을 받게 될
무렵이라면, 벌써 전란의 시대다. 그
때가 되면 적당한 핑겟거리가 있겠
지 . '
아직 기감도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
고, 단전이나 기맥도 제대로 다져
있지 않기에 당장은 배울 수 없다.
하지만 후에 장문인에게만 허가된
화산파의 신공을 배울 수 었다는 생
각을 하니 벌써부터 기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