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전생-1화 (1/254)

수마(踊魔)에 사로잡혀 눈을 도저

히 뜰 수가 없다.

힘을 내도 겨우 반개하는 것이 고

작 그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 ....... "

흙처럼 메마른 입술만 겨우 달싹거

려 소리를 낸다. 하지만 신음에 가

까운 목소리만 홀러냐올 뿐이었다.

"장로…… 이렇…… 가시면…….”

이미 시야는 안개처럼 희뿌영게 일

그러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지만

귀가 멀어 뭐라 말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나는·… ... '

주서천(奏緖川)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 려 보면서 삶

울 되돌아본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고아로

떠돌다가 운 좋게 스승의 눈에 띄어

화산파로 입문한 일이었다.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화산파라고 하면 정파의 명문지파

인 구파일방(九派- 割)의 일파(

派)이며 검(劍)으로 이름 높은 대문

파댜 부모 잃은 고아 입장에선 이

보다 더 운 좋은 일을 찾기가 힘들

이후 스승에게 감사하면서 화산파

의 제자로서 살아왔고, 정신을 차리

고 보니 화산오장로(華山五長老)까

지 올랐다.

‘운이 좋았지.'

화산오장로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댜 대문파인 화산파에서 장문인

다움으로 권위가 높은 자리이다.

이름이 무거운 만큼 쉽게 오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고, 또 그만큼 다

른 제자들에게 존경을 받는다.

무공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성을

필요로 하며 세간에서의 평가도 중

요시한다.

강호에서의 명성과 더불어 실적 등

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항렬이나 경험만으로는 결코 오를

수 없지만…… 어디서나 ‘예외’라는

경우가 촌재했다.

그 경우가 바로 자신이다.

‘설마하니 나 같은 놈이 장로가 될

줄은 몰랐어.'

운 좋게 화산파에 들어왔으나, 그

렇다고 딱히 특출한 재능을 보이면

서 대단한 업적을 세운 건 아니다.

무재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머리

가 비상했던 것도 아니다. 눈에 띄

지 않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았다.

물론 피나는 노력조차 한 적이 없

었기에 그 이상 바라는 것 자체가

크나큰 욕심이다.

애초에 그러한 욕구 자체가 없었지

만.

그래도 고아인 자신을 거둬 준 스

승에게 감사한 마음에 보답하기 위

해서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았다. 정

말로 ‘그럭저럭’ 살아온, 평범한 삶

그 자체였다.

하면, 어떻게 화산오장로가 될 수

있었던 걸까?

그 답은 ‘평온'하지는 않았던 삶에

있댜

수십 년 세월 동안 유독 전쟁이

많았댜 후세에 이르기를, 전란의 시

대라 칭해질 정도로 많았다.

전쟁 발발, 휴전, 종전이 수십 년

동안 도대체 몇 번 이뤄진 것인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다.

화산파도 그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고, 또 많은 제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문파의 중진인 삼대제자는 물론이

고 장로인 이대제자, 원로인 일대제

자까지도 그 피해를 입었다.

화산오장로 역시 분쟁에 휘말려서

그 구성원이 숱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그 분쟁이 끝날 무렵, 더

이상 장로로 삼을 만한 인재를 찾을

수 없게 됐다.

비록 둔재(純才)는 아니지만, 그래

도 평범했던 주서천이 장로에 오를

수 있었던 연유는 여기에 있다.

화산오장로가 항렬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자리지만, 그렇다고 항렬이

필요로 하지 않는 건 아니다.

무공이 대단하지만 경험이 적고 항

렬이 낮은 자를 장로로 삼으면 반발

을 삼아 문제가 된다.

그래서 조금 못 미더우나 항렬이

높은 자부터 장로로 삼을 수밖에 없

었고, 그 운 좋은 자가 자신이었다.

하지만 장로가 되어도 변하는 건

없었댜

전란의 시대가 막을 내렸을 무렵이

었던지라 목숨을 위협받을 일이 없

었댜

간간이 장문인이나 다른 장로들을

도울 뿐, 화산파 내에서 잘만 지냈

다른 이대제자들은 후배 양성에 노

력을 기울였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제자조차 받지 않았다.

누굴 가르칠 만한 정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불과 며칠 전에 화경에도 올랐거

'- ' 늘 .......

노년에 뒤늦게 무공에 대한 재미를

찾았댜 장로에 오른 이후 여러 무

공을 열람할 수 있던 덕이다.

그래서 어찌어찌 화경에 오르긴 했

지만, 너무 늦었다. 아마 본능적으로

죽음을 느끼고 회광반조(回光返照)

에 라도 들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

던 모양이다.

‘그다지 의미 있는 삶은 아니었

어…… . '

가만 돌이켜 보면 정말 미련뿐인

삶이었다.

남들 다 한다는 사랑도 해 보지

못했댜 무공을 연공하는 데만 해도

벅차서, 여자 손 한 번 잡지 못했

무림에서도 명성을 떨치고 싶었지

만, 역부족이었댜

무림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혼

란했던 전란의 시대다. 수많은 일화

가 었었고, 영웅과 마두가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이름은 없

었댜

“아아… .... "

점점 힘이 빠진다.

이렇게 죽는가 싶었다.

주변에서 자신의 임종을 지켜보는

이들은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

도로 무관계인 사람들일 뿐이다.

대문파의 장로가 이제 막 영원한

잠에 들려 하니 예의상 온 것뿐. 그

이상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다.

가족이 있었으면 했다.

오랫동안 혼자, 쓸쓸히 살아왔다.

자상하셨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스승이 떠올랐다.

전란의 시대, 믿음직한 등을 보이

던 영웅이 보였다.

결코 닿을 수 없는 미인들이 보였

‘그래, 냐는…….'

의식이 끝이 보이지 않는 무저갱

속으로 떨어진다.

‘그런 삶을 동경해 왔을지도…… . '

第一章화산회귀(華山回歸)

흔들흔들.

“서천…… 서천야… .. 일어…….”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것처럼 몸이

흔들린댜 뇌까지 요동치는 그 흔들

림에 눈이 절로 떠졌다.

게슴츠레 떠진 눈 사이로 제일 먼

저 보인 건 삼심 대 후반으로 보이

는 미중년이었다.

" ...... ? "

예닐곱 살 정도로 보이는 남아는

자신을 깨운 미중년을 보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 렸다.

“사부님…… 어째서……?"

”며칠 전에는 이 사부를 사자(死

者) 취급하면서 펑펑 울더니만, 또

잠꼬대를 하는구냐.”

곱게 늙는다면 그를 대표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비단처럼 곱

게 흘러내리는 새카만 머리카락, 유

려하고 선한 눈매, 주름이 그옥하지

만 어째 추하지 않고 아름답기만 하

남아, 주서천은 사부인 유정목(流

正木)의 말에 눈을 굴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그 생각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일

주일 전에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들

이 빛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주서천은 그 짧은 순간 동안 현재

자신의 환경에 대해서 생각을 정리

했댜

‘주서천, 여덟 살, 화산파의 사대제

쟈'

제일 먼저 떠올린 건 자신에 대한

정보.

‘유정목, 불혹(不惑:40세), 화산파

의 삼대제자’

화산파의 구성원은 일대제자(一代

弟子)부터 사대제자(四代弟子)로 나

뉜다.

먼저 일대제자는 강호의 일에 더

이상 참견하지 않고 은거한 문파의

어르신들이다.

이대제자는 장문인을 비롯한

진이다. 장로 외에도 배분이

자들이 주로 구성을 이룬다.

장로

노 0

工亡

삼대제자의 경우 문파의 중진이다.

대부분 청년부터 중년을 이루며, 그

인원수도 제일 많다. 제자도 이때부

터 들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대제자인 아직 무인

으로 부르기도 힘든 아이들이나 풋

내기뿐. 후학을 뜻한다.

사대제자 중에서 나이가 제일 많다

고 해도 잘해 봤자 약관. 이제 막

강호에 나올 수준 정도다.

그리고 주서천은 그 사대제자 중에

서도 늦깎이로 들어온 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내가 과거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

침음이 절로 홀러나왔다.

솔직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요

며칠 동안 수십 번 동안 의심하면서

생각해 왔다.

전란의 시대를 겪고, 화산오장로에

운 좋게 올랐던 주서천은 죽었다.

그 삶은 결코 거짓 따위가 아니다.

말년에 깨달음을 얻어 화경에 올랐

지만 얼마 뒤에 수명을 이기지 못하

고죽었댜

하나 이게 웬일. 감았던 눈을 다시

뜨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젠 희미한 기억도 제대로 남지

않을 정도로 오래된 일, 아이였던

시절로 회귀( 回歸)해 버렸다.

처음엔 꿈인가 싶었다. 두 번째는

저승의 어떠한 형벌인가 싶었다. 세

번째는 혹시 자신이 우화등선(羽化

登仙)을 하여 선계에 온 것은 아닐

까 싶었다.

하나 그 추측은 모조리 빗나갔다.

어떠한 것도 맞지 않았다.

꿈도, 지옥의 형벌도, 선계의 보상

도 아니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일주일 동

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면서 순응하게 됐다.

‘피로 물든 꽃이 피기도 전의 일.

분쟁으로 가득한 소용돌이가 생기기

도 전의 일. 그 시대로 돌아왔다.'

아직 평화스러운…… 유일하게 자

신을 소중히 생각해 주었던 가족,

스승과 함께했던 시절로.

할 수 있댜'

머릿속에 쓸데없는 감정, 잡념들이

흩어진댜 그 대신 마음속 깊숙한

곳부터 어떠한 감정이 불타올랐다.

‘다시 한 번 . '

어째서 과거로 돌아온지는 모른다.

누가 자신을 보냈는지는 모른다.

아니, 솔직히 어떻건 간에 상관없

그게 일주일 동안 내린 결말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삶을 살아왔

고, 주변에 소중한 사람들 하나 없

는 외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과거로 돌아왔

그것도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

진 재 .

좀 더, 내가 원하던 대로의 삶

을? ! ’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 기억이

있다면 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었

댜 그 사실에 감정이 고양됐고, 차

갑게 식 었던 무언가가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앞으로 일어날 정사대전. 그리고

이후에 있을 수많은 분쟁과 전쟁의

뒤에 숨어 있는 암중 세력.

그 외에도 노년에 화산오장로에 올

랐던 덕에 화산파나 무림맹의 기밀

에 대해서도 열람할 수 있었기에 ,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인들과 이런 것 저런

것도 해 봐야지!'

동정으로 죽었던 게 얼마나 억울하

던지. 노년에 가서야 성욕이 줄었지

만, 그 전까진 고통이 었댜

화산파는 도가 문파치곤 세속적인

편에 속해서, 혼인도 자유로운 편이

었댜

장문인의 경우엔 화산파를 책임져

야 하는 몸이었기에 혼례를 올려도

자식을 낳는 건 자제시켰지만.

여하튼 정파이다 보니 대놓고 성욕

올 탐하는 건 금했지만, 그래도 적

당히 눈 정도는 감아 줬다.

그런 데 도 불구하고 자신은 여자 손

조차 제대로 잡아 보지 못하고 사내

들 사이에서 살아왔다.

그 억울함과 미련은 시간을 거슬

러, 여덟 살에 불과한 아이 주서천

의 눈동자에 담겨 고요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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