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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95화 (195/227)

#195화

소문의 출처를 찾기 위해 비원궁을 나선 라이안 일행.

하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곧바로 비원궁에서 전갈이 날아왔다.

축출되었던 아르테 주교가 비원궁 안에 잠입했고, 순식간에 로이터 대주교를 제압했다고.

“…과연. 역시 그랬군.”

전갈을 받자마자, 라이안은 기다렸다는 듯 말머리를 돌렸다.

“역시 소문은, 우리를 비원궁으로부터 빼내기 위한 거였나. 과연 누구의 음모일까.”

전갈은 아르테의 잠입을 말하고 있었지만, 그것 자체가 로이터 대주교의 함정일 가능성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서로 손을 잡은 이후, 로이터에게 라이안은 줄곧 손에 박힌 가시같은 존재였으니까.

하지만, 라이안은 어느 쪽이든 상관없었다.

“아무렴 어때. 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벌써 기대되는군.”

‘…허.’

사실 이 상황을 모두 예견하고 있었으면서도 이 지경이 되도록 사태를 방관한 라이안을, 참모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건 마치, 저들이 무슨 행동을 보여줄지 기대하면서 일부러 허점을 보인 것처럼 보였으니까.

저들의 행동을 예측했다면, 대비를 하거나 역으로 함정이라도 파놓는 것이 이성적인 대응이다.

하지만, 라이안은 그 어떤 대비도 해놓지 않았다.

참모는 무엄하게 황자에게 고함이라도 치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말했다.

“전하.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라도 곧바로 비원궁으로 향해야 합니다. 이대로 교국의 주도권을 레온나토스 황자에게 내준다면 황제 폐하의 시험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칫, 레온나토스 황자의 이름을 전하의 앞에 놓을 빌미를 줄 수도 있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라이안은 참모의 말에도 느긋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조금은 천천히 가자고. 그 짧은 시간에 황궁 안에서 거사를 치뤘으니, 조금 숨 돌릴 틈은 줘야지.”

“…전하?”

“나중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진정한 목적이 뭔지, 제대로 된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정도는 알아두는 게 좋을 테니까.”

라이안의 태도는, 마치 곤충을 채집한 아이가 번데기에서 갓 부화한 나비의 날개가 다 마르기를 기다리는 듯 천진하기까지 했다.

지금 사태에 마치 남의 일처럼 호기심을 보이는 라이안에게, 참모는 작심한 듯 말했다.

“…전하. 실은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만.”

“뭔가. 기탄없이 말해주게.”

“제발, 예전의 전하로 되돌아와 주십시오! 교국 땅에 들어온 이후, 전하께선 마치 어린 아이처럼 행동하고 계십니다!”

“어린아이?”

“그렇습니다! 지금 저흰 적국 한복판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하의 병력은 비원궁 안이었기에 충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지, 이곳 교국 한복판에선 소집된 병력에 한순간에 휩쓸려 나갈 뿐입니다! 전하의 행동에 믿고 따르는 가신들의 목숨이 달려있단 말입니다!”

“물론 알고 있네.”

장난스러운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라이안은 어딘가 달관한 듯한, 지긋지긋한 모습으로 말했다.

“짐은 지금 최선의 방법을 찾고 있는 거라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서, 모두가 대강 만족할만한 그런 수가 없는지 말이야.”

“…방금, 모두라 하셨습니까?”

“그렇다. 나와 백성들, 심지어는 적들도 포함해서이지. 모두에게 걸맞는 최선의 방법이 어디엔가는 있을 터.”

“그런 건 불가합니다! 무릇 큰일을 도모할수록 그에 따르는 희생은 불가피합니다! 전하께서 말씀하시는 건 말도 안 되는 어리광일 뿐입니다!”

“확실히, 자네 귀에는 그렇게 들릴지도.”

“전하!”

“-그런데 말야.”

라이안은 마치 모기 물린 팔을 긁는 것처럼, 자연스레 검을 뽑았다.

“이 대화도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이맘때쯤의 자넨 너무 시끄러워.”

라이안의 검이 총관의 배를 깊이 찔렀다. 척추뼈에 가로막혀 관통은 하지 않았지만, 곧바로 몇 분 내에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는 치명적이었다.

“-커헉!”

참모는 입에서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냈다.

그의 귀에 대고 라이안은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자네를 등용했던 건, 알고 지내는 자들 중에선 자네가 군말 없이 내 지시를 따르면서도, 월등히 조용했기 때문이라네. 그렇지 못한 자네에게 가치는 없어.”

“…….”

끄르륵, 참모의 몸이 말에서 스르르 미끄러져 떨어졌다.

“하지만, 걱정 말게. 자넨 대체로 날 잘 보필해줬으니. 다음에 결국 다시 자네를 등용하게 되겠지.”

라이안의 말소리가 참모의 귀에 닿았을까.

경악으로 부릅떠진 참모의 눈은, 급격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의 머리 바로 옆을, 위병의 무심한 군화가 밟고 지나갔다.

지금껏 자신들에게도 명령을 내리던, 라이안 바로 아랫급의 상관이 갑작스레 죽었음에도 위병들은 그에 대해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라이안이 소년이었을 때부터 고이 관리한, 오로지 라이안만을 위해 움직이는 병사들.

그들의 맹목성만큼은 태양교의 광신병에도 비견될 정도였다.

라이안은 지금껏 몇 번이나 자신을 보필했던 자의 시신을 흘깃 보고 말했다.

라이안에겐, 이미 참모의 시신 따위는 관심 밖의 일이었다.

“…그렇군. 모처럼 말해줬으니, 조금 서둘러볼까? 비원궁 안에서 어떤 환대를 해줄지, 조금 궁금하기도 하니.”

*****

라이안으로선 충분히 여유 있는 진군이었지만, 비원궁으로선 지나치게 빠른 속도였다.

라이안이 주도해 직접 훈련시킨 정예병들이니, 일반 행군 속도조차 다른 병사들과 비교를 불허했다.

라이안이 이미 비원궁의 정문 아래에 있다는 보고를 받자 신도들은 어쩔 줄 몰랐다.

그동안 비원궁 안은 라이안에 의해 억압 아닌 억압을 받아왔기에, 그 기억이 남아있기도 한 탓이다.

이 자리에서 가장 발언권이 높은 아르테가 말했다.

“…우선은 그를 들여보내야겠죠. 최소한의 호위만 대동시켜서. 괜찮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비원궁 안에 있던, 아르테를 지지하는 사제가 소리를 빽 질렀다.

“당연히 출입을 거절해야죠? 그의 입주를 허용됐던 건 어디까지나 대주교의 독단에 의해서였습니다! 지금 대주교, 아니 로이터는 아무 실권도 없어요!”

“하지만 라이안 황자가 비원궁 안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든. 그는 여전히 아트마 교국의 손님입니다. 그를 이대로 정문에 세워둔다면 외교문제가 될 겁니다.”

“…….”

“문을 열어주세요. 제가 만나보겠습니다. 물론 아렌, 그리고 두 기사분도 동석해주시죠.”

“…하는 수 없지.”

라이안은 아렌에게 심히 껄끄러운 상대였다. 아르테의 독심술이 통하지 않는 건 물론, 아렌의 눈에도 그의 속내가 모두 보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아렌의 역할은 레온나토스 황자의 대신이었다.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잠시 뒤 정문이 열렸고, 제국의 라이안 1 황자는 호위 다섯 명만 대동한 채 비원궁의 정문 안으로 들어섰다.

라이안의 대담함에는 아렌조차도 조금 놀랐다. 호위 다섯 명은 비원궁 안의 위병을 생각하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는 숫자. 라이안은 벌거벗은 채 사자 우리 안으로 들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대주교 선거도 치러지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비원궁을 대표하게 된 아르테는 라이안을 대주교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회견장에서처럼 높다란 성좌 따위는 없지만, 대신 모두에게 동등한 높이의 의자가 주어졌다.

그곳에 앉은 채, 라이안은 물었다.

“바깥에서 떠도는 소문은, 아렌 녀석의 작품인 건가?”

라이안의 시선은 아르테보다도, 아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아르테 역시 그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렌은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부정해도 상관없겠지만, 이미 라이안은 그렇게 짐작하고 있을 터였다.

숨기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 소문 자체는 사실인가?”

“…글쎄요.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라도 있으신가요?”

“글쎄.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은 아르테를 잡기 위해 내 부하들도 동행시켰지. 제국에서도 명망 높은 흑사자 기사단 말이다. 그런데, 교국의 승병들만 돌아오고 내 기사들은 한 명도 돌아오지 않았지. 작전은 실패했고, 실패한 작전 중에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는 보고만 받았을 뿐이었다.”

“안타까운 이야기군요. 요점이 뭔가요?”

“전장에서의 죽음은 실력순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그것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승병 넷이 돌아올 동안 한 명도 귀환하지 못했다는 것은 의아하지. 흑사자 기사단이라면, 교국의 가장 강한 승병과 비교해도 결코 모자라지 않을 테니까.”

“…….”

아렌은 아르테의 눈치를 살폈다. 방금 교국의 승병을 흑사자 기사단의 아래에 놓았다고 봐도 무관한 말을 뱉었지만, 아르테는 그 부분을 그리 문제삼고 싶지 않은 듯했다.

“기사들만 돌아오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임무 중에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내게 알려져선 안되는 사실이기에 흑사자 기사단만 돌아오지 못한 것이지.”

“지금 전하의 말씀대로라면, 설령 그게 사실이라도 전하께 숨겨야 할 내용이기에 말씀드릴 순 없겠군요.”

“그렇게 되는군.”

그토록 공을 들인 비원궁 안의 정세는 라이안의 반대편으로 기울었고, 소문에 대한 진상조차 밝힐 수 없었다.

하지만 라이안은 자신의 별궁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여유로웠다.

‘…아직 비원궁 안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니, 역전할 수단이 있다 생각하는 건가? 하지만 불가능할 텐데.’

지금껏 로이터 대주교와 붙어먹으며 호가호위한 자들에게는, 아르테의 귀환이 그리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라이안 황자의 귀환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장 로이터 주교조차도 자신의 정권을 공고화하기 위해 라이안 황자를 멀리하려 한 정황이 얼마든지 있었다.

‘-이상해.’

지금 상황은 결코 라이안에게 우호적이지 않았음에도, 그는 전혀 조바심내지 않았다.

아르테조차도 라이안 황자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이 자리에서 라이안 본인을 제외하고 황자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아렌이었다.

아무리 조심스레 관찰해도, 라이안에겐 어떤 불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대신, 아주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위화감만 있을 뿐.

분명 전에도 느껴본 적 있는 위화감이었다.

특별히 속내를 숨기는 훈련을 받은 것 같지도 않은데, 라이안의 속내를 읽는 것은 어쩐지 거북했다.

‘그 이유가 뭐지?’

대주교가 사용하던 집무실의 의자 간격은 좁았고, 자연히 라이안을 가까이서 보게 되었다.

아렌은 이전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라이안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을 보고도 제대로 속내를 읽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다.

앞머리로 눈을 가리거나, 입가를 첨으로 막아두거나 하는 경우에는 그 표정의 의미를 온전히 읽어내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라이안의 얼굴은 어떤 방해물도 없이 온전히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왜, 라이안이 얼굴을 가린 사람처럼 느껴지지?’

어차피 지금 자리는 라이안보다 우위를 점한 자리다. 아렌은 사양하지 않고 라이안의 얼굴을 살폈다.

특히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라이안의 눈이었다.

특별히 동공이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고, 홍채조차도 고정된 듯한 칠흑처럼 까만 눈동자.

그대로 계속 바라봤다간, 마치 빨려들 것 같았다.

제국 안에서 황제 다음으로 높은 자이기에, 그의 눈을 이토록 빤히 쳐다본 사람은 아마 몇 명 없겠지.

그리고, 아렌은 라이안의 왼쪽 눈동자와 오른쪽 눈동자의 색이, 아주 미세하게 다른 것을 알아차렸다.

왼쪽 눈동자가 좀 더 색이 깊고, 움직임도 어색했다.

‘…사시? 왼쪽 눈의 시력이 남아있지 않는 건가? 아니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의안이거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라이안이 운명석 계약자라는 사실, 운명석 계약자임에도 운명석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점까지 차례차례로 떠올랐다.

‘운명석은, 왼쪽 눈의 의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아렌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라이안 황자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무엄할 만큼 황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기 때문일까. 아렌이 사과하려는 찰나였다.

대뜸, 라이안이 물었다.

“어떤가, 아렌. 뭔가 좀 알아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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