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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94화 (194/227)

#194화

“…검성이라고?”

물론 불꽃의 기사, 라는 이명을 전에 보고받은 적 있었다. 제국에 닥쳐오는 파멸적인 한파를 물리친 기사라고.

하지만, 그런 장난 같은 별명은 로이터에게 썩 와닿지 않았다. 해냈다는 성과도 모호했고.

하지만, 유력한 검성 후보라 불리는 제국의 네 번째 황자와 비등하게 싸웠다는 기사, 더글라스의 존재만큼은 로이터로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교국의 모든 수사는 조금이나마 군사 훈련을 받는다.

수도원의 수사는 그것보다도 더 본격적으로 무술을 수양한다. 그중에서, 무재가 특출난 자들이 추려져 승병, 더 나아가 광신병이라 불리는 정예로 거듭난다.

교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무술의 자질을 시험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아트마 교국에서조차도, 검성이 등장한 횟수는 몇 번 되지 않는다.

인구수에 미뤄봐도, 제국이나 도국 연합에서 배출하는 숫자를 생각하면 확연히 모자란 숫자였다.

사실상 전국에서 추려낸 재능으로조차, 타국에 뒤진다는 정황이 교국에 달가울 리 없었다.

“…그래봤자, 거품 가득 낀 허명일 뿐이겠지. 그 허명으로 얻은 용기는 가상하지만, 그건 만용이 될 거다.”

로이터의 말과 함께, 대주교의 곁을 지키던 근위병들이 사방에서 조여오기 시작했다.

적의 숫자는 여섯. 장검을 든 기사는 둘 뿐. 아무리 검성 후보라 해도 팔이 네 개 달려 있지는 않다.

아렌도 어느 정도 싸울 수는 있지만 장검도 없었고, 근위병과 싸울 실력은 아니다.

기다리기만 하면 그대로 포위당할 뿐.

발커스와 더글라스는, 오히려 간격을 좁혀 앞뒤로 나란히 섰다.

앞에 발커스, 뒤에 더글라스인 진영.

“잘 막으셔야 합니다, 발커스 경.”

“더글라스 경이야 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경이 실수하면 전 바로 죽으니까요.”

“하하, 무슨 말씀을. 경의 실력도 저 못지않지 않습니까.”

“물론 제 경지도 그리 낮지는 않겠죠 단지 바로 옆에 더 높은 봉우리가 있다면, 겸손해지는 건 당연할 테고요.”

“그렇게까지 말씀 하신다면, 나중에 대련이나 해볼까요?”

“관두죠. 어차피 답을 아는데 굳이 겨뤄봤자 뭣하겠습니까! 그보다!”

근위병들이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을 때.

발커스는 먼저 움직였다.

각 병사들 사이의 간격이 가장 떨어져 있어, 도와주기 쉽지 않은 방향으로.

“-큭!”

갑작스레 발커스와 검을 맞댄 위병의 반응 역시, 평범한 수준은 한참 지났다. 검에 실린 힘의 배분과 균형만 미뤄봐도, 교국 최고 지도자의 곁을 지킬만한 실력이다.

하지만, 발커스의 역할은 애초부터 적의 숨통을 끊는 것이 아니었다.

발커스는 더글라스의 방패이자, 적의 귀찮은 검을 걸어 치우는 갈고리였다.

한번 검을 맞댄 발커스는, 위병의 검을 쉬이 놓아주지 않았다.

한순간의 틈에, 발커스의 머리 바로 옆을 점처럼 찔러 들어간 더글라스의 검 끝이 위병의 목을 꿰뚫었다.

곁의 위병이 채 도와주러 오기도 전에.

“감히!”

동료가 목을 관통당해 쓰러지는 것을 간발의 차로 구하지 못한 위병이, 악을 쓰고 덤비기 시작했다.

하지만, 발커스는 이미 목을 찔려 무력화된 위병을 내버려 두고 새로운 적과 마주했다.

적은, 교국이 자랑하는 정예인 광신병. 그야말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우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죽어서도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죽으면 움직이지 못하는 건 다른 적들과 마찬가지.

격앙되어 달려든 근위병은, 그제서야 후회했다. 이렇게 달려들 것이 아니라, 철저히 간격을 유지하면서 단숨에 덮쳤어야 했는데.

하지만 아무리 빠른 후회도 늦다.

교국 최정예의 무사보다 크게 한 걸음은 더 앞서간 고수, 더글라스는 최대한 간결한 검으로 적을 무력화시키고 있었다.

-서걱.

“크아아악!”

광신병의 양 눈을, 더글라스의 검이 횡으로 크게 베고 지나갔다.

양쪽 눈을 가로지르는 상처는 생선의 아가미처럼 쩍 벌어진 채, 핏물을 쏟아냈다.

시력을 잃은 위병은 그 자리에 쓰러져, 허우적댈 뿐.

6대 2에서 두 기사는 단숨에 4대 2를 만들었다.

그즈음 뒤늦게 앞뒤 좌우를 감싸는 포위망이 만들어졌지만, 이제는 위병들조차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이라 여기지 않았다.

“…….”

위병들의 시선이 회견장 뒤쪽으로 물러나 있는 아렌과 아르테를 향했다.

위병들이 둘을 인질로 잡는다면, 전황은 단숨에 뒤집어지겠지.

“괜찮겠어요? 저라면 그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위병들의 시선을 받은 아렌은 한층 더 여유롭게 말했다.

“한 명이라도 더 우리에게 온다면, 기사 둘은 곧바로 대주교를 노릴 거에요. 네 명이어도 둘을 막을 자신이 없는데, 셋으로 될까요? 서로 인질을 잡는다면 어느 쪽에 유리할까요.”

“…….”

아렌이 낸 문제의 정답은, ‘실은 어느 쪽도 유리할 것 없다’이지만.

위병들은 이미 그런 유불리를 가늠할 상태가 아니었다.

유리하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전황이, 어느새 비등하게 흘러갔다는 생각만으로도, 그들의 사기는 꺾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쐐기를 박은 건 아르테였다.

“아, 기사님들. 가장 로이터와 가까이 있는 위병은 죽이지 말아주겠어요? 이제 보니, 그 사람은 다른 주교가 심어놓은 사람이네요.”

“…!”

단순한 도발도 아르테의 입을 통하면 묘한 신빙성을 가진다.

지목받은 위병은 당황했고, 그를 보는 세 동료의 눈에는 아주 조금이지만 불신이 서렸다.

세 위병의 간격이 그와 조금 멀어졌고, 심리적 거리는 그보다도 더 벌어졌다.

이곳을 노리라고 대놓고 만들어준 틈을, 발커스와 더글라스는 놓치지 않았다.

단숨에 거리를 좁히는 발커스.

위병은 물러설 수 없었다. 뒤쪽에는 로이터 대주교가 있으니, 이 자리에서 막는 수밖에 없다.

카칵!

발커스와 위병의 검이 맞닿았다. 아까까지와 같은 흐름.

‘어차피 죽을 거라면, 차라리!’

서로의 검이 맞닿은 김에, 차라리 검을 버리고 양팔을 붙잡고 늘어진다면, 둘 중 하나는 동료가 처리해주겠지.

발커스와 마주한 위병이 각오를 다질 때쯤이었다.

“-망설이지 않고 목숨을 버리려 하네? 우리 부하들더러 본받으라 해야겠어.”

검을 버린 건, 발커스가 먼저였다.

포위는 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데 의의가 있다. 지금처럼 포위망을 마음대로 돌파할 수 있다면, 오히려 안 펼치느니만 못하다.

지금도, 로이터 대주교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유일한 위병은, 양 팔을 꽉 붙잡은 발커스에 의해 꼼짝달싹 못했으니까.

그 옆을 빠져나가는 더글라스.

“-안돼!”

외쳐봤지만 이미 늦었다.

발커스는 그대로 빙글 돌아, 위병의 몸을 방패삼아 다가오는 다른 위병들을 막았다.

그리고 혼자 튀어 나간 더글라스가 로이터 대주교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대로 목에 갖다 댄 장검의 날은, 당장이라도 살을 갈라버릴 듯 날카로웠다.

“모두 멈춰.”

움찔.

차라리 서로 인질이라도 잡았다면 모를까, 아르테와 아렌은 붙잡기에 지나치게 먼 곳에 있었다.

위병들이 서로 눈치를 보자, 더글라스의 목소리는 으르렁대듯 낮게 깔렸다.

“어허. 관두라고 했지? 대주교를 죽이면, 아트마 신이 날 벌할까? 아니면 축복으로 대주교를 구해줄까? 나더러 시험하게 하지 마.”

“…….”

더글라스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이번에는 위병들도 허튼 생각을 품지 않았다.

*****

“성하!”

회담장의 문을 박차고 물밀듯 들어온 승병들.

하지만 그들이 본 건, 이미 제압당해 목에 칼이 드리워진 대주교와, 몇 달 전 축출된 주교 아르테의 모습이었다.

“아, 아르테 주교.”

“당신이, 여기 어떻게!”

그녀를 보며 이를 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그제야 본심을 드러내며 기쁨을 숨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제압당한 로이터 앞으로 몇걸음 나서며 아르테가 모두에게 말했다.

“네. 제가 돌아왔습니다. 또한 모두 동의하실지는 모르지만, 부당하게 치러진 저번 대주교 선거를 다시 치렀으면 합니다.”

“…부당했다고요?”

“물론입니다. 누구에게도 변론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로이터 주교를 뽑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제국의 병사들로 바람을 잡았죠. 거기 어디에 공정이 있습니까?”

로이터는 완전히 제압되었지만, 그녀의 말에 한마디 대꾸할 기력은 남아있었다.

“…헛수고다. 이미 몇 달간이나 장악하고, 통치한 비원궁이다. 네 마음대로 될 것 같나?”

“당신이야 말로, 너무 오랜만이라 절 잊었습니까? 이 순간에도 당신에겐 믿는 구석이 있군요. 지금쯤, 라이안 황자에게 전갈이 갔을 거라고요? 이지경까지 와서조차 제국에 힘을 빌리려는 겁니까?”

“-거, 거짓말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로이터가 보여준 행실을 아는 신도들의 눈은 싸늘하기만 했다.

로이터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그게, 뭐가 문제란 말이냐! 목표가 같으면 손을 잡을 수도 있지! 네년조차 제국과 손을 잡고 있지 않나!”

“그렇죠. 하지만 당신이 먼저 시작한 판이었어요. 당신과 나의 차이가 있다면, 레온나토스 황자는 제가 대주교가 되지 않더라도 교국에 간섭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에요.”

“그렇겠지! 아무리 비열한 모사꾼이라도 입 밖으로 내는 소리는 달콤한 법이니까!”

“그래요? 수백 명의 위병을 데리고 들어온 라이안과 달리, 교국 안으로 들어온 레온나토스 황자의 가신은 여기 셋 뿐이에요. 이들로 뭘 할 수 있을까요?”

“…….”

“실은, 국경에서부터 피를 흘릴수도 있었어요. 제국도 병력 피해를 입겠지만, 절 대주교로 옹립한 뒤 일정 영토를 요구했다면 전 거절할 수 없었겠죠. 자신하지만, 이 방법이 가장 피를 적게 흘리는 방법이에요.”

로이터는 이를 악물었지만, 그 기개는 오래 가지 않았다.

이미 대세가 기울대로 기울었다는 것을 자각하자, 로이터는 허탈함에서 오는 탈력감에 몸이 축 늘어졌다.

“물론,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과는 달리, 전 공정하게 선거를 치를 생각이니까. 그동안 대주교로서 통치를 잘 했다면, 이제껏 쌓아온 명망으로 다시금 대주교가 될 수 있을 테니까.”

아르테의 말이 불가능하다는 건 로이터가 가장 잘 알았다.

아르테는 곧바로 들어온 위병들에 명령을 내렸다.

“구금된 주교들은 모두 서쪽 첨탑에 감금되어 있다는군요. 그쪽을 라이안 황자가 쓰면서, 겸사겸사 감시하고 있었고요. 우선은, 그분들부터 풀어줄까요? 마침 라이안 황자도 자리를 비웠으니까요.”

너무도 갑작스러운 변화에, 위병들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아르테의 지시에 다랐다.

아르테 또한 축출당하기 전까지는 오래도록 교국의 주교였으니까.

아직은 어색함이 남아있어도, 교국은 다시금 아르테가 기억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때.

숨이 턱 끝까지 찬 아이기스 수도원의 수사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원장, 원장님!”

“뭐냐, 무슨 일이냐. 진정하지 않고.”

지금껏 부당하게 휘말린 척, 회견장의 한쪽에 쥐죽은 듯 있었던 턴데일 수도원장이 일어섰다.

수사의 반응을 보니, 어지간이 위급한 일인 듯했다.

“라이안 황자가! 비원궁 정문으로 오고 있습니다!”

수사의 보고는, 확실히 지나치게 위급한 사안이었다.

“…너무 빠르잖아.”

아렌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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