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턴데일 수도원장은 곧바로 야밤의 불청객을 맞이하기 위해 나갔다.
아렌과 아르테는 수도원의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를 지나, 첨탑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하염없이 계단 위를 오르며 아렌이 물었다.
“이단 심문관?”
“그래. 교국 안에서는, 경우에 따라선 대주교보다도 무서운 자들이지. 한번 이단으로 지정되면, 더는 교국 안에서 살아갈 수 없으니까.”
그런 자들이 하필이면 지금 방문하다니.
우연치고는 너무 공교롭다.
“…역시 이 수도원 주변도 감시당하고 있었나. 예상 못한 건 아니지만.”
“국경을 넘은 이상 감시의 눈은 피할 수 없었어. 이만하면 오래 버틴 격이기도 하고.”
“그럼, 넌 왜 굳이 여기 들르자고 한 거야?”
이곳은 아르테의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괜히 몸을 의탁해서 고향과도 같은 곳이 피해를 볼 수도 있었다.
“그야, 이곳을 잘 아니까. 원장님까지 포함해서.”
이곳에 오면 분명 힘이 된다. 아르테에게 그런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지금도 흔들림 없었다.
*****
깊은 밤중의 수도원 정문은, 불청객들이 밝혀놓은 횃불로 대낮처럼 환했다.
정수리에서 턱 끝까지 흰색 두건을 덮어쓴 자들은 장창처럼 기다란 횃불을 높이 치켜든 채 좌우로 도열했고, 그 사이로 같은 복식을 한 이단 심문관이 천천히 걸어왔다.
수도원장의 지시에 따라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수도원의 승려들은 열린 문을 중심에 두고 아치 모양으로 둘러싸, 허락되지 않은 자들의 출입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을 태세였다.
횃불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나온 이단 심문관은 자신들을 맞이한 턴데일 수도원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안녕하십니까. 늦은 밤중 공사가 다망하시군요.”
“인사치레는 않겠소. 오늘 여기로 들어온 마차 두 대를 봤다는 밀고가 있었소.”
“고작 마차가 들어온 것쯤으로 밀고라니. 별로 숨길 것도 아닙니다만.”
“긴말할 필요 없겠지. 그자들은 어디에 있나?”
“네. 그럴 줄 알고 미리 데리고 왔답니다.”
수도원장은, 후드를 쓴 네 명을 이단 심문관 앞에 내세웠다.
아직 어린 남자 하나에 젊은 여자 하나, 건장한 남자 둘.
“…이 자들은?”
“말씀하신, 마차를 타고 온 네 명입니다. 해안가에 있는 작은 마을, 셀핀에서 온 제 손님들이지요. 그러니-”
“-이 자들이 아니지 않나!”
이단 심문관의 고성이 차게 가라앉은 밤공기를 울렸다.
하지만, 그 노성을 정면으로 받은 수도원장은 한가로이 풀벌레 소리라도 들은 듯 평온했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이 안을 수색해봐도 되겠나?!”
“그건 거부하겠습니다.”
“이봐!”
“심문관이야말로, 늦은 밤 이 무슨 폭거입니까.”
수도원장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단 심문관 뒤로 도열한 무수히 많은 횃불은, 그 자체로도 위압적이었다.
하지만 수도원 정문에서 조용히 서 있는 수도승들은, 심문관들의 횃불에도 전혀 위축된 모습이 아니었다.
이단 심문관은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귀 수도원은, 감히 정당하고 공명한 절차로 선출된 로이터 대주교의 권위를 무시할 셈인가?”
“무슨 말씀을. 저흰 정당하고 공명한 절차로 선출된 대주교를 따르고, 경애합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요.”
“…어째, 로이터 대주교님의 이름은 쏙 빼놓고 말씀하시는군.”
“그야, 인간 로이터가 아니라 공명하게 선출된 대주교를 경애하니까.”
턴데일 수도원장의 말에는 뼈가 있었다.
“감히, 로이터 대주교님께 충성하지 않을 건가?”
“이단 심문관께서는 이상한 말씀을 하시는군. 우리는 인간에게 충성하지 않소. 아트마 교도가 유일하게 복종할 대상은, 오직 유일신 아트마 뿐이지.”
“…….”
“또한 각 수도원은 적법한 관리자에 의한 자치권이 보장되어있소. 즉, 본인이오. 그러니 수도원을 개방하고 말고는 오직 제가 결정하오. 다른 수도원장이 생기지 않는 한.”
“일을 복잡하게 만들 셈인가? 이러는 건 당신들에게도 좋을 게 없을 텐데.”
“천만에. 당신들에게 이곳을 샅샅이 조사하게 하는 건 간단하오. 하지만, 당신들은 원하는 답을 찾기 전까지 이곳을 나가지 않겠지. 당신들이 찾는 바로 그 인물들을 말이오.”
“…수도원장께서 이리 나오신다면, 비원궁으로선 이곳에 이단 지정을 하는 수밖에 없소. 그건 상관 없으신가?”
각 지방의 수도원은, 비원궁 밑 다른 수도원과 협력을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협력 관계일 뿐.
실상은 각자 독립적인 집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단으로 지정되면, ‘독립적인 집단’은 ‘동떨어진 집단’으로 처지가 바뀌게 된다.
하지만 수도원장은 개의치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이단 지정은 못하시겠지?”
“…….”
“그럴 수밖에. 본 수도원에 이단 지정을 한다면, 그 부당한 처사에 각지의 수도원이 들고 일어날지도 모르니.”
이단은, 주류가 아니기에 이단이라 불린다. 뜻을 같이하는 많은 수가 함께한다면, 그것은 이단이 아니라 분파라 불린다.
이제 막 대주교 직에 오르고, 국내 평판에 신경 써야 하는 로이터로서는 지나게 위험한 다리다.
“…원장께서 하신 말씀은 그대로 상부에 전달하지. 상부의 명령이 어떻게 떨어질지는 나도 모르오.”
“부디 잘 부탁드리지요.”
서서히 수도원의 정문이 닫히고, 높이 치켜들었던 횃불도 점점 땅 아래로 낮게 내려왔다.
수도원의 가장 높은 첨탑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렌은 나직이 감탄했다.
“-오. 설마 했는데, 정말 돌아가는데?”
이단 심문관의 악명을 들었을 때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을 거라 각오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사태는 다소 싱겁게 끝난 듯했다.
“이곳의 수도원장에게 그만한 힘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괜찮은 것 맞아?”
“아렌, 들어본 적 없어? 교국 군사력의 핵심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승병들이 근간, 이라고.”
“그래. 너희들은 광신병이라 부르지 아마?”
“…….”
“그 많은 승병들이, 다 어디에서 나올까?”
“…아하.”
단순히 공포를 모르는 병사라면 세뇌나 약물 등, 만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전투능력을 각인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광신병은, 분명 각 수도원에서 파견된 무승들이었지?”
“그래.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우습게 지워버릴 수 있는 숫자이지만, 이 수도원에도 광신병, 승병은 존재해. 무력으로는 억지를 부릴 수 없지.”
거기에, 요새나 다름없는 수도원의 입지까지 더해지면, 이단 심문관으로서도 난감할 수밖에 없다.
이제야 아렌은, 이 수도원이 왜 외딴 오지에 지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신앙 생활을 하는 곳임과 동시에, 군사훈련 시설이나 마찬가지였군.”
“그래. 교국에는 병사라는 개념이 딱히 없으니까. 훈련받은 수도승이 곧 병사지. 국경 관문에서 봤던 위병들조차 말야.”
아렌은 탑 위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횃불의 행렬을 보면서 물었다.
“그럼, 이제 괜찮은 건가?”
“글쎄? 그건 두고 봐야겠지?”
*****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줘 미안합니다, 아렌 공. 하지만 방금 말했던 계획은 전면 수정해야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온 수도원장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사실 당신들을 숨긴 다음, 한번 조사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찾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이곳을 벗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에 거부했지. 그들로서도 이곳에 온 자들이 아르테, 혹은 제국 사람일 가능성을 그리 높게 잡지는 않았을 거요. 기껏해야 삼할 정도일까.”
교국의 위협으로서는 지나치게 큰 확률이다.
아렌이 물었다.
“…그럼, 인부 속에 섞여서 비원궁에 들어가는 계획은 무리겠군요.”
“그렇습니다. 원래라면 본 수도원의 차례가 곧 있었지만, 이번 사태로 우리를 불러주지 않겠지. 설령 불러준다 해도 더욱 감시가 삼엄할 겁니다.”
“…….”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무거운 분위기는 쉽게 전염된다. 아렌은 환기하듯 말했다.
“뭐, 그 방법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요. 모두 너무 상심하지는 말죠.”
“그야, 물론이지.”
“당연합니다, 아렌 공.”
“오, 아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거야?”
아르테의 질문.
“그건-”
“그건?”
아렌은 자신 없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이제부터 생각해봐야지?”
*****
소용돌이 치는 바다 위에, 떠 있듯 지어진 비원궁의 가장 높은 곳. 성좌에서 로이터 대주교는 눈을 찌푸렸다.
“…아이기스 수도원에서 조사를 거부해? 외부인 네 명이 들어간 후에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로이터에게 보고한 사제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제국의 간자나 아르테가 지금 아이기스 수도원에 있다는 뜻인가?
그 질문의 답은, ‘알 수 없다’이다.
감시의 눈은 교국 전역에 퍼져 있다.
각 수도원에서 의심스러운 행적이 있었다는 보고는, 모두 아홉 건.
그리고 그 중 여섯 곳에서 이단 심문관의 조사에 비협조적이었거나, 거부했다.
“…이제 일곱 곳이 된 건가?”
열 곳 중 일곱 곳.
비율로서는 지나치게 크다.
물론 의심스러운 수도원 중에서 나온 비율이니 저것이 현재 비원궁에 대한 교국 전체의 여론은 아닐 테지만, 결코 좌시할 수 없는 비율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
대주교는 매일 새벽에 있는 물자운반의 순번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면, 아이기스 수도원의 차례였나?”
“네. 하지만 이번 순번은-”
“아니. 예정대로 저들을 불러라. 수도원장을 직접 만나, 이참에 확실히 입장의 차이를 알려줘야겠군.”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로이터에게 보고하던 사제는, 굳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라이안 황자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제국의 두 번째 황자에 대한 건도 아직-”
사제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로이터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제지했고, 더 들어줄 마음도 없었다.
“짐이 교국 안에서, 왜 그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지?”
“허, 허락이 아니오라-”
“짐의 귀에는 그렇게 들렸는데.”
이제 사제는 사색이 되었다. 가장 약한 자세로 이마를 바닥에 바짝 조아렸지만, 로이터의 입에선 무정한 말만 새어 나왔다.
“이 자를 심문관에게 데려가라.”
“서, 성하!”
“잠시 마음이 흔들린 모양이군. 금방 다잡으면 괜찮을 거다. 운이 좋군.”
그리고, 심문관에 의해 ‘마음을 다잡은’ 자는 결코 원래의 모습을 되찾지 못한다.
심문관에게 끌려가는 사제의 비명소리는, 마치 도축장으로 가는 돼지와 같았다.
그 비명소리를 곁귀로 들으며, 로이터는 생각했다.
지금 비원궁에 상주하는 백여 명의 제국 병사는, 곧 라이안 황자의 힘이었다.
‘그와는 협력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주도권을 잡혀있을 생각은 없어.’
가뜩이나 북으로 보냈던 자들 중, 흑사자 기사단은 모두 죽고 광신병 넷만 돌아온 터라, 이미 서서히 벌어져 있던 제국군과 비원궁 사이의 금은 더욱 벌어져 있었다.
‘…제국의 두 번째 황자가 살아있다? 그 사실을 라이안은 모른단 말이지. 그렇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요리해야 좋을까.’
교국으로 돌아온 광신병들의 보고는, 물론 아르테가 그리 말해도 좋다고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목이 뻣뻣하겠지. 하지만 그 관계는 조만간 바뀌게 될 거다, 황자.’
교국의 가장 높은 곳, 성좌에서 로이터는 그곳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