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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65화 (165/227)

#165화

시간이 지나자, 혼란스러웠던 교국의 여러 정황이 제국 황궁에까지 드러나기 시작했다.

교국 안에서의 급격한 정권교체, 그 이면에 라이안 황자가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 날수록 황제의 심기는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황제는 그 상황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지만, 그것을 대놓고 표출할 수는 없었다.

황제는 라이안에게 명확한 임무를 주지 않았고, 그의 활동에 언급하는 순간 황자들의 황권 경쟁에 간섭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난리 속에서 아르테는 무사할까.

아렌의 어렴풋한 불안은 결국 사실이 되었다.

새로이 대주교 자리에 오른 로이터의 세력에 아르테는 없었다. 아르테는 로이터의 즉위 첫날에 이미 반역으로 몰렸다는 소식이었다.

여러 곳에서 다각도로 들어왔으니, 그 소문은 아마 사실일 터.

아렌과 황자가 황궁에 머문 지 2주째가 되었다.

급변한 교국의 정세를 조금 더 확인하고자 황궁에 조금 더 머물러 있었지만, 더 이상 오래 있는 것은 좋지 않다.

레온나토스는 이번 제이드 사태로 단번에 제국을 구한 영웅이 되었지만, 언제나 세간의 관심사는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지금 그들의 관심사는 한순간 바뀐 교국의 대주교와와, 그의 지지를 이끌어낸 라이안 제1 황자였다.

궁인과 호사가들은 그 사실에 열광했으나, 정작 황제의 심기는 줄곧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새로이 오른 아트마 대주교가 지지하는 대상은 제국의 황제가 아니라 라이안 황자 개인이니까.’

만약 그대로 라이안이 황제가 된다면 별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다른 이가 황제에 오를 경우.

교국은 제국에 지지를 보내기는커녕, 실각한 황자 라이안을 옹립하기 위해 대립각을 세울 것이다.

제국을 더 부흥시키기 위한 황제의 안배가, 도리어 분열의 단초가 되는 것이다.

‘거기에 제국의 국정 간섭으로 흘러갈수도 있으니.’

로이터 대주교의 치세가 금방 끝나고 새로운 대주교가 올라도,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로이터를 강력하게 지지한 건 순전히 라이안 개인의 판단이지만, 새로이 오른 대주교가 그 뒷배로 제국을 의심한다면?

최근에야 겨우 정상궤도로 돌려놓은 양국의 관계가, 다시 삐걱거릴지도 몰랐다.

아렌은 진짜 점술가 몰디나가 맡아서 운영하던 낙일관을 대신해 열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궁인들이 제법 이용했었지만, 아렌이 문을 열었다고 하니 아침부터 사람이 미어터졌다.

‘…아르테가 남겨놓은 교국의 밀정이 어딘가에 있겠지.’

원래 낯선 누군가가 아렌과 접촉하더라도 의심받지 않고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이, 낙일관의 당초 설립 목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아렌이 황궁을 비운 날이 많아서, 원래 목적이 무색해졌을 뿐.

최근에는 아렌 자신의 점괘가 언령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더욱 낙일관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

아렌의 점괘가 연령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간의 실험을 통해 하나 마나 한 말이라면 몸에 오는 부담이 적다는 것을 확인했다.

아렌이 앉은 낙일관은 평소의 배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아렌은 그들의 성원에 하나 마나 한 점괘로 보답했다.

“-그 일이 될지 안 될지는, 당신의 노력에 따라 달렸습니다.”

“비가 오겠냐고요? 한달 중 적어도 두 번은 비가 올 겁니다. 그 사이 당신이 말한 날짜가 끼어있는지가 관건이겠죠.”

“죽느냐 사느냐, 라고요? 그런 직접적인 질문은 저희는 취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평소와는 다른, 깨끗한 맛이 떨어지는 점괘에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러났다.

오늘은 어째 평소보다 별로라고, 속으로만 불만을 삼키면서.

장기적으로는 용한 점술가인 아렌의 평판에 손상이 가는 일이다.

하지만, 아렌은 개의치 않았다.

이런 식으로 중요하지도 않은 불특정 다수의 점괘 백 번을 망치는 것보다, 결정적인 순간 들어맞는 한 개의 점괘가 더욱 중요하다는 걸 아렌은 알고 있었다.

“…….”

몇 번의 손님이 지나고.

다음번에 들어온 건 기억에 있는 얼굴이었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못 만났죠?”

“…….”

아르테가 제국의 황궁 깊숙이 숨겨둔, 교국의 밀정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렌의 탁자 위에 작게 접은 종이쪽지를 떨어뜨렸다.

“응? 이건 뭐죠? 쓰레기인가? 특별히 내가 버려주죠.”

“…….”

다 알고 있음에도, 아렌은 일부러 의뭉을 떨었다.

혹여나 밀정이 발각되어도, 아렌은 벗어나기 위한 최소한의 방책이었다.

이제 남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 점을 쳐준 것처럼, 시간을 끌기만 하면 된다.

‘굳이 점괘를 더 추가해 부담을 가중시킬 순 없지.’

뒤집어둔 모래시계가 다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는 도중, 교국의 밀정이 문득 물었다.

“-저기.”

“응?”

“주교님은, 아르테 님은 괜찮을까요?”

촛불 위에서 비치는 밀정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완전히 포위된 비원궁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와류 속에서도 배를 띄웠다고 해요. 파도는 곧바로 배를 집어삼켰고요. 아무리 아르테 님이라도 비원궁의 아래 바다에선…”

“…….”

불안해하는 밀정에게 ‘그녀가 무사하다’는 말을 하는 것은 간단했다.

문제는, 그 언령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초래되며, 아렌에게 오는 부하는 또 얼마나 큰지 가늠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아르테가 첫날에 급류에 휩쓸려 죽었는데, 아렌이 ‘내일이면 두 발로 걸어 나타날 거다’라고 말해버린다면, 아렌과 밀정의 앞에 물에 퉁퉁 불어버린 익사체가 걸어서 나타날 수도 있다. 일어날 리 없는 일이 일어날 경우 반작용은 덤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은데.’

“아,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만일 아르테가 무사하다면, 필시 우리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

아렌은 밀정을 교묘하게 속였다.

밀정은 아르테가 무사하냐고 물었지만, 아렌은 그녀가 무사하다면 돌아올 것이다, 라고 말했다.

아렌의 점괘가 설령 언령이라도, 조건부인 이상 달라질 것은 거의 없었다.

“당신이 마음을 단단히 가져야 해요. 레온나토스 전하와 전, 다시 북부로 떠날 테니까요. 만약 아르테에게 지원이 필요하다면-”

아렌은 한껏 힘주어, 또박또박 말했다.

“이쪽 역시, 아르테를 공식적으로 아트마 교국의 정식 대주교로서 지원할 테니까. 아르테의 무사함을 빌어주세요.”

방금 아렌이 한 말은, 교국의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는 황제의 뜻에 정면으로 반하는 말이자, 사실상 라이안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

“오, 오오! 이 은혜, 잊지 않고 아르테님께 꼭 전해드리겠습니다!”

감격하는 밀정.

그가 고개를 숙인 틈을 타, 아렌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모든 게 다, 그녀가 멀쩡히 살아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

대륙의 남부, 한 해안가.

저 멀리서 해안가로 암초 위 세워진 거대한 건축물이 희미하게 보였다.

비탄의 해안만큼은 아니지만, 인근의 바다 역시 거칠어 낚싯배를 띄우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인적이 뜸한 바닷가에, 흰 옷을 걸친 여인 하나가 떠내려왔다.

“…쿨럭.”

아트마 교의 주교, 아르테였다.

띄운 배는 이미 옛적에 뒤집어졌고, 치렁치렁한 사제복은 물을 먹어 납처럼 그녀의 몸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거친 와류 속에서 아르테의 몸은 마치 실 끊어진 연처럼 이리저리 나부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아있었다.

“살았어, 살았다고!”

바닷가에서 젖은 모래를 한 움큼 쥐면서, 아르테는 겨우 땅을 밟은 기쁨을 만끽했다.

바닷물을 배부르게 마시고, 그 반동으로 몇 번이고 게워내야 했지만 그것조차 땅을 밟은 기쁨을 막지는 못했다.

“…라이안, 그리고 로이터 주교.”

아르테는 팔찌를 벗어, 그대로 머리를 묶는 끈으로 썼다.

그 위는 길게 찢은 사제복으로 리본을 만들어 묶었다. 아르테의 인상을 가림과 동시에, 운명석 팔찌를 숨기기 위함이었다.

로이터가 전권을 가진다면 교국 전역에 아르테의 인상착의가 퍼질 것이다.

지금,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건 한명 뿐이었다.

“…아렌.”

겉에 걸친 사제복을 근처 바다에 던져버린 후, 아르테는 비틀거리며 바닷가 주변을 떠났다.

그녀의 발길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

제국의 제4 황자 가웨인은, 황명에 따라 도국 곳곳을 전전하고 있었다.

받은 임무는 라이안과 마찬가지로, 도국연합과의 관계 개선과 협력.

그 끝이 분명하지 않기에 더욱 어려운 임무다.

처음엔 라이안처럼 두루뭉술한 임무를 받은 것에 불만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 가웨인은 그것을 진심으로 즐기고 있었다.

“…시온. 생각보다, 이 생활이 마음에 들기 시작하는군.”

도국 데자의 유력가문 스테롤 가문의 저택.

그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응접실에서, 가웨인은 그의 비서관 시온에게 말했다.

“물론 황제가 된다면 최고겠지만, 설령 아렌 녀석이 황제가 되어도 날 축출할 성정은 아니니. 처음부터 황제가 되려는 욕심은 그리 크지 않았어.”

“전하!”

“실은, 시온 자네가 더 원하지 않았나? 내가 황위에 오르는 것을 말이다.”

조금은 곤란할 수도 있는 질문이지만, 시온은 스스럼없이 답했다.

“…네. 그리고 제 생각은 여전히 처음과 변함없습니다. 전하야말로 제국을 가장 부강하게 할 황자라고, 전 믿고 있습니다.”

“물론 자네의 진심을 의심한 건 아닐세. 자네의 충성은 항상 고맙게 여기지. 하지만.”

그간, 가웨인은 각 도국의 저마다 다른 문화와 경관을 느끼며 연신 감탄하고 있었다.

가웨인이 도국 연합이 아니라 동부, 남부나 북부로 갔다면 이만큼 다채로운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터.

오싹, 시온의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이게 황제 폐하의 속뜻이었을까?’

검성 후보라 불릴 만큼 무력에 특출난 가웨인.

하지만, 정작 그의 견문은 좁았다. 어릴 적부터 고수라 불렸기에 온갖 고수가 황도로 모여들었고, 또 잦은 암살시도를 경계해야 했기에 갖은 고수를 상대하면서도 그가 직접 황도 밖으로 나가본 적은 드물었다.

‘전하께서 더 넓은 세상, 더 많은 경험을 한 후 다시 생각해봐도 늦지 않다는 뜻인가?’

하지만, 그 여유로운 계획에 비해 지금 상황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전하. 소문을 들으셨지 않습니까?”

“무슨 소문. 최근 굵직한 것이 두개 있지 않나.”

“물론 둘 다 말입니다.”

제국 황도로 서서히 접근해오는 죽음의 한기를 막아세운 레온나토스와, 갑작스러운 대주교 고체와 그것에 한몫 단단히 거들은 라이안.

특히, 라이안의 행동은 교국에서도 반감이 심했다. 소국의 통치에 간섭하는 대국의 폭거라고 봐도 될 정도.

교국의 대주교 선정에 직접적으로 손을 댈 정도면, 교국보다도 하나하나의 힘은 약한 도국으로선 더욱 위기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체, 왜 그런 거지?”

라이안의 행동을, 가웨인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라이안 형님은 이미 유력한 후보야. 수비적으로 나가도 여전히 차기 황권에 가장 가까울 텐데, 왜 굳이 모험을 감행한 거지? 형님의 목숨은 여러 개라도 되나?”

“정말, 이해하기 어렵군요.”

시온의 의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때.

“이런, 오래 기다리게 하여 대단히 죄송합니다, 황자 전하!”

“아닐세. 그보다, 다음 수는 준비되었는가?”

도국 데자의 스테롤 가문의 차기 당주는, 황자의 앞에 놓인 탁자를 보며 곤란한 듯 턱을 괴었다.

“그것이 말입니다, 역시 이번 승부는 제가 진 것 같군요. 다음 판을 하시지요.”

“그러게나. 다음에도 지진 않을테지만.”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두고보시죠.”

가웨인과 스테롤의 차기 당주는 탁자 위에 널린 말을 다시 정리했다.

탁자 위에는, 가웨인을 접대하기 위한 탁상 게임이 놓여 있었다.

연신 모험 수로 가웨인을 몰아붙이던 차기 당주는, 한순간의 실수로 그 판을 망쳤다.

하지만, 게임이기에 상관없었다.

언제든 그 판을 다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좀 더 신중하게 갈 겁니다. 전판과는 완전히 다를 거라고요.”

“부디 신중하게 하게나. 자네가 이길 때까지 계속 하는 건 참아줬으면 하거든.”

“아, 벌써 들켰나요?”

두 사람 사이의 말은, 전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움직였다.

게임은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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