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라이안은 이미 피를 볼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 계획에 동참하고 있는 로이터 주교조차도 라이안 측의 진의는 모르고 있었다.
“…여기 있는 모두를 죽일 셈인가요, 로이터 주교?”
“무슨 소리를. 신의 요람인 이곳에서 어찌 그런 망발을 한단 말인가!”
“하지만 뒤에 있는 제국의 황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인걸요?”
“…무슨 소릴.”
그렇게 말하면서도 로이터는 뒤를 돌아봤다. 마음을 읽는 아르테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확인하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녀가 굳이 마음을 읽지 못하는 라이안을 지목한 이유 역시, 자신의 능력이 운명석에 의한 것이 아님을 어필하기 위해서.
“…로이터 주교께선 저따위 망발에 속아 넘어가실만한 분이 아니시죠. 최후의 발악치고는 심히 조야하군요.”
“그, 그렇지! 여기 황자께서 말씀하신 대로다! 제국과 교국은 서로 대등한 입장으로서 앞으로의 관계를 다져나갈 것이다!”
로이터는 정말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아르테는 고개를 저었다.
“…가여운 사람이군요, 로이터. 욕심에 눈이 멀면 누구 눈에도 명징한 사실조차 보이지 않는 법이죠.”
처음부터 라이안 측의 계획은, 수뇌부의 장악이었다.
비록 여러 면에서 교국은 제국에 비해 소국이지만, 그 군사력만큼은 결코 얕볼 수 없었다.
일정 나이가 되면 징집되어 훈련받는 교국의 예비군은, 유사시 그 교리에 의해 죽음 앞에서조차 의연한 양질의 병력이 된다.
그중 잘 훈련되고, 무장을 갖춰 입은 정예 1만은 광신병이라 불리며 대륙 전역에서도 손꼽히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물론, 교국의 저력은 어디까지나 전면전에서 발생한다.
바다로의 접근은 불가능하고, 국경에서는 가장 떨어져 있기에 병사들은 이곳보다도 국경 근처에 집중되어 있다.
라이안이 무력으로 이곳을 점령한다면 각지에서 몰려오는 광신군을 감당할 수 없겠지만, 어느 계파와 손을 잡는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로이터 주교의 서열이 대주교 바로 다음인 2위인 이상 명분은 저쪽에 있었다.
불거져 나오는 의혹 또한 대주교 자리에 오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다.
한번 대주교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반대파의 수장은 그럴듯한 명분을 붙여 모두 숙청하면 그만이었다.
제국의 유력한 황태자 후보인 라이안과 교국 서열 2위 로이터이기에 비로소 가능한 폭거였다.
‘…애초에, 로이터는 왜 라이안과 손을 잡은 거지? 시간만 지나면, 자신이 높은 확률로 주교가 됐을텐데!’
차라리 서열 3위나 4위라면 라이안과 손을 잡아볼 만했을 것이다. 비록 로이터의 세력이 워낙 크니 힘든 길임은 여전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떨어질 열매를, 굳이 못 먹을 각오까지 해가며 장대로 쳐낼 필요가 있는지 하는 것.
그 동기를 알기 위해서라도, 아르테가 로이터의 마음을 깊이 읽으려는 찰나였다.
“어이쿠, 속마음을 읽으려드는군. 그렇게 들 순 없겠지.”
라이안의 말과 함께 우악스러운 팔의 병사들이 앞으로 나섰다.
이곳에 무기까지 지니고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훈련되지 않은 사제들의 벽을 허무는 데는 맨손으로도 충분했다.
반 로이터 진영의 사제가 외쳤다.
“위병! 제국의 병사들이 저지르는 폭거를 그냥 지켜볼 셈인가!”
그 외침에 주변에 있던 승병들이 앞으로 나섰지만, 나머지 반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동료였던 자들의 앞을 막아섰다.
로이터 주교의 영향력은 내원궁 안의 위병에게도 유효해서, 이미 거의 절반은 로이터의 사람이었다.
아트마 교의 총본산에서 위병이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사제들은 악에 받쳐 외쳤다.
“아르테 주교! 시간을 벌테니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어서!”
“이런 폭거라니! 아트마께서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걸세!”
“이런 무도한!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그들의 외침을 듣고 있던 라이안 황자는, 그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신이 있다면 벌을 받겠지. 하지만 난 지금껏 한 번도 신을 본 적 없어.”
병사드의 우악스러운 팔이 신도들의 팔을 잡아 꺾었고, 무기를 가진 위병만이 그들을 제지할 수 있었지만 내홍이 발생해 그들의 도움은 기대할 수 없었다.
아르테의 시종이 외쳤다.
“주교님! 피하셔야 합니다!”
“…라이안. 감히 진리성전의 심장부에서-”
“어서요!”
로이터와 라이안의 목표가 누구인지는 명확했다. 그들이 아르테의 능력을 두려워하는 만큼, 이번 폭거를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르테였다.
반 로이터 진영은 핵심인 아르테를 빼돌리는데 사력을 다했다.
라이안의 병사들이 무기를 사용 못하기에 진압은 지지부진했고, 그 사이 아르테는 추종자들과 함께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도망갑니다! 어서 쫓으시지요!”
“도망이야 갔지요. 하지만 살아서 비원궁을 나가긴 힘들 겁니다.”
로이터는 멀어지는 아르테의 뒷모습을 보면서 속이 타는 듯했지만, 라이안은 여전히 느긋했다.
“그녀가 신의 사자인지 아닌지는, 직접 잡아보면 확실히 알게 되겠지요. 어려울 것 없습니다.”
“그, 그렇군요.”
라이안의 눈은, 마치 도망가는 먹잇감을 바라보는 뱀처럼 초점에 흔들림이 없었다.
-꿀꺽.
로이터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아직 후회하기엔 지나치게 이르지만, 혹시 자신이 괜한 사람을 끌어들인 것은 아닌지 후회한 것은 덤이다.
*****
비원궁은 높이 솟아오른 수십 개의 암초 위에 걸쳐지듯 지어져 있었다.
칼처럼 높이 솟아오른 암초의 기둥은 바닷속까지 이어져 있었고, 밀어닥치는 파도에 의해 독특한 와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은 배로는 감히 항해를 꿈꿀 수도 없고, 범선 급의 큰 배조차도 운행을 장담할 수 없는 거친 바다.
외부와의 연결은 해변가까지 실낱처럼 가느다랗게 연결된 자그만한 줄다리, 하나 뿐이었다.
밧줄에 판자로 지어진 다리지만, 비원궁이 발견된 이래로 다리는 단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었다.
불에 타지도 않고, 칼로 끊어지지도 않는 밧줄은 그 자체로 신의 은총이라 부르기 충분했다.
‘하지만, 정말 신의 힘일까?’
아르테에겐 신앙심이 있었지만, 다른 이들처럼 무조건적으로 아트마를 맹신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의 종교에서도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아마도, 비원궁을 마든 사람은 운명석 계약자겠지. 비원궁이 아직 존재하는 것도 그래서고.’
지금까지 그랬듯, 아르테는 갑자기 줄다리가 끊어진다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런 적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어차피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다리. 몇 명만 세워둬도 함부로 통과하기 힘든 지형이니, 그곳으로 도망칠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비원궁의 가장 아래층. 아르테는 벽 뒤에 숨겨진 문을 열고 다시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흡사 지하로 내려가는 모양새지만, 암초 위에 떠 있듯 건설된 비원궁에 지하가 있을 리 없다.
계단은, 비원궁을 떠받들고 있는 암초로 연결되어 있었다.
거대한 맹수의 어금니 같은 암초를 따라 아래로 이어진 계단을 내려가는 아르테와 추종자들. 위로는 비원궁의 아래쪽이 보였기에 완전히 어두컴컴했다.
계단을 한참을 내려간 끝에 해수면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친 파도가 암초를 연신 때려대고 있었지만, 암초는 아래로 갈수록 넓어졌기에 발 디딜 곳도 많았다.
그리고 암초의 움푹 파인 곳에 숨겨진, 작은 배 한 조각.
배는 한 사람이 겨우 탈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저, 주교님. 지금이라도 용서를 구해볼까요? 그러면-”
“라이안 황자도, 로이터 주교도 가벼운 마음으로 계획한 건 아닐 거에요. 충분히 각오한 만큼 무자비하겠죠. 올라가면 죽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건 이 바다에 배를 띄워도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비원궁 아래 바다를 직접 눈으로 보자, 시종은 다시금 이것이 얼마나 미친 짓인가를 깨달았다.
비원궁 아래 바다에 배를 띄우는 것은 자살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실상 다른 이의 손에 죽느니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그 정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탈 수 있는 건 한사람 뿐인 것 같으니까. 아무리 로이터 주교라 해도, 신도의 절반을 해치진 못할 거에요. 저만 여기 없다면 로이터 주교의 독기도 누그러지겠죠.”
-퍼벅!
아래로 무언가 떨어져 내렸다.
암초를 따라 난간도 없는 계단을 밀고 들어오는 병사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떠밀린 사제들이 아래로 추락하는 소리였다.
“…서둘러야겠군요. 만에 하나 살아서 바다를 건널 수 있다면,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대주교를 살해한 자를 교단의 지도자로 둘 수는 없으니까요.”
아르테 계파가 준비해두면서도 실제로 쓸 일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던 배는, 오랜 세월 방치되었음에도 띄우는데 지장은 없어 보였다.
배를 물에 띄우기 직전까지 도와준 시종은 문득 물었다.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주교님은, 아르테 님은 정말 신의 은총을 받은 것이 맞습니까?”
“…….”
아르테는 시종의 마음속에 드러난 의혹을 읽었다. 혹시나 로이터의 주장대로,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어떤 신비한 돌에 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
게다가, 그 주장은 사실이었다.
아르테는 대답했다.
“글쎄요. 제가 이 배를 타고도 살아있다면, 제가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요?”
아르테는 물가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배 위에 올라, 무게를 바다 쪽으로 실었다.
배는, 곧바로 거센 와류에 휩쓸렸다.
*****
비원궁에서의 사건은 제국의 황궁에까지 전달됐다.
대주교가 실종되고, 서열 2위가 반대 세력을 축출하고 새로운 대주교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은, 오랜 기간 변함없던 교국 수뇌부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의미했다.
“대주교가, 실종돼? 지금 라이안 형님이 가 계신 곳 아닌가?”
“네. 자세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내부에서도 꽤나 소요사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비원궁 안에는 아렌과 밀약 관계인 아르테도 있었다.
물론 그녀의 존재 자체가 외부에 그리 드러나지는 않았으므로, 아르테와 관련된 소식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난, 아르테가 어느 소속인지도 모르네? 뭐, 독심술도 있으니 괜찮겠지?’
“그리고, 이번에 새로이 대주교에 오른 로이터는 라이안 전하를 지지한다고 하더군요.”
“…갑작스러운 지도부 변화와 지지 선언이라니, 설마 그게 황제 폐하의 임무인가?”
“글쎄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라이안 전하는 임무를 충실히 해낸 거겠죠.”
하지만, 이번 사태에 라이안 황자가 관여했고, 그것이 황제의 임무가 아니었다면?
황자의 신분으로 타국의 정세에 깊게 관여한 것이 된다. 그것에 황제가 어떤 반응을 할 것인가.
나올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생각지도 못한 황자의 큰 성과에 매우 기꺼워하거나.
혹은, 금방 분화한 화산처럼 맹렬히 분노하거나.
그 어느 쪽도 가능해 보였기에 아렌으로서도 짐작할 수 없었다.
‘황제의 반응은, 어느 쪽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