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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52화 (152/227)

#152화

“저는, 모두 밝히겠습니다.”

“호오? 그 이유는?”

산맥 너머와 그곳에 있는 운명석이란 신비한 돌에 대해 묻자 레온나토스가 한 대답이었다.

황제 브륀할트 8세는 그 이유를 물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아무리 강한 힘이라 한들 제국이라면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국이 품을 수 없다면, 제국은 진정한 의미의 대륙의 패자가 아니라는 소리니까요.”

“하지만, 운명석은 상식을 벗어난 힘이다. 그 돌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 할 것 없이 그 힘을 경계했어.”

황제는 얼굴을 굳혔다.

“황자, 네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은 내용이니 당연하지만. 사실, 건국왕 폐하께선-”

“알고 있습니다. 건국왕 폐하께선, 북부에 있는 운명석을 얻기 위해 북부로 향하신 거죠. 산맥을 넘는 길을 만든 것도 같은 이유고요.”

“…대단하군. 거기까지 알아내다니. 혹시 더 알고 있는 내용은 없나?”

“대량의 운명석을 확보하기 위해 설원의 온천지대로 향했지만, 그곳에서 소수의 원주민에게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게 얼마나 사실일지는-”

“아니. 황자 네가 조사한 것이 맞다.”

황제는 자신의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대단하군. 평소에도 관심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기록이 말소된 건국왕의 행적까지 알고 있다니.”

“그저 몇 가지 기연이 닿았을 뿐입니다.”

레온나토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럼, 설원의 온천지대가 만월강의 원류인 것도 알고 있겠군?”

“네. 유랑족을이 운명의 산이라 부르는, 운명석의 원산지에서부터 만월강까지 이어져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죠.”

황제가 레온나토스를 보는 눈은, 방금 막 찾아왔을 때와는 또 달랐다. 능력이 있는 줄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실제로는 아렌의 덕이 컸습니다.”

레온나토스는 참지 못하고 황제에게 알렸다.

처음엔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군주에게 너무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신은, 주변인들에게 위험인물로 보일 뿐이니까.

하지만, 레온나토스는 괜한 오해가 쌓이기 전에 황제에게 사실을 고했다.

다행히 레온나토스의 걱정은 기우로 끝났다.

“과연. 아렌의 공인가. 하지만, 아렌의 힘이라 해서 황자 네 공이 아닐 순 없지. 우수한 가신을 데리고 있는 건, 좋은 군주의 덕목이기도 하니까. 레온나토스 너라면 분명 좋은 군주가 될 거다.”

“…될 수 있다면 열과 성을 다하겠습니다. 만약 된다면 말이죠.”

대답한 직후, 레온나토스는 흠칫 떨었다.

‘방금은, 완전히 아렌의 말투였잖아?’

공손하면서도 순순히 복종하지만은 않는 말투는, 레온나토스가 아렌에게 많이 듣던 것과 아주 흡사했다.

혹시나 무슨 꼬투리라도 잡힐까 레온나토스는 걱정했지만, 황제의 표정이 조금 짓궂어졌을 뿐 별다른 말은 없었다.

“…화제를 바꾸지. 북부로 보냈던 둘째는 잘 있나?”

“아, 엔지 형님 말입니까. 네, 그곳의 광산에서 잘 지내는 것 같더군요. 척박한 땅이고 낯선 일이지만, 제가 방문하고도 별문제 없었으니 이제라도 암살의 걱정을 덜어 낸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그런데, 네 형이라지만 네 애비를 죽이려던 자이기도 하다. 다른 반감이 들지는 않던가?”

“네. 그렇습니다.”

“어째서지?”

“그건, 권력의 독기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제국의 두 번째 황자로서 태어나 줄곧 라이안 형님과 비교당했으니, 점차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던 것이겠죠. 다른 누구도 아닌 폐하께서 그를 용서하신 만큼 저 또한 엔지 형님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가.”

“폐하께서 엔지 형님을 용서하신 것도 그 이유 아닙니까?”

제국의 권위와 법도를 지키기 위해서는 엔지 황자를 죽여야 본보기가 선다.

하지만, 직접 황권 경쟁을 거치며 그 자리에 올라선 황제이기에 누구보다도 엔지의 상황을 공감했다.

레온나토스는 생각했다.

‘…방금의 질문도, 내 도량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다. 폐하께선 갑작스럽다고 해도 좋을 만큼 후게자 선정을 서두르고 있어. 어째서지?’

황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전히 병상 위에 있었지만, 기력이 쇠했다는 인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네가 조사한 대로, 당시 제국의 병사들은 온천지대에서 소수의 유랑족에게 떼죽음을 당했다. 모두 운명석과 계약한 자들이었지.”

“…….”

레온나토스는 아티스의 왕자를 떠올렸다. 사람을 홀리고 수백 명을 속박할 수 있는 안개는,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훌륭한 전쟁무기가 된다.

그 안개가 폐허가 된 아티스 땅에서 벌인 일을 생각하면 온천지대에서의 참사 또한 이해가 간다.

“-만약 운명석 계약자의 힘이 위협이 된다면, 제국 또한 운명석 계약자를 찾아 앞세우면 될 일 아닙니까?”

“혼자서 수십, 수백과 싸울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사람이, 고작 제국에 고용된 자리에 만족할까?”

건국왕이 참사 직후 협곡 길을 허물고, 모든 기록을 지운 이유였다.

그들이 산맥 너머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것이 당시 제국으로선 최선의 수였으니까.

“하지만, 폐하께선 다시 길을 잇고자 하셨습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정책을 펼치고 싶으신 것 아닙니까?”

“…그래.”

황제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제국이 진출할 땅은 거의 남지 않았어. 남으로는 교국, 서로는 도국 연합이 있으니. 전쟁으로 이들을 모두 쓸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영토를 확장할 곳은 결국 동부와 북부만 남지.”

주변 나라를 모조리 멸망시킨다 해서 꼭 제국에 이로운 것은 아니다. 그건 폐허가 된 아티스 왕국의 예를 봐도 금방 드러난다.

‘…그리고, 얄궂게도 북부의 운명석이 섞인 물은 동부 만월강에 섞여 남으로 흘러가지.’

제국이 무혈로 취할 수 있는 북부와 동부, 두 곳이 실은 온천지대와 만월강으로 묶여있는 셈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레온나토스는 황제에게 물었다.

“…혹시, 북부에서 만월강으로 흘러가는 수량을 조절할 수만 있다면, 만월강의 침수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십니까.”

“어디까지나 하나의 안일 뿐이지. 그러나 시험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동부의 문제는 만월강을 흐르는 물이 너무 과하게 많다는 것. 북부에서 공사 해 만월강의 수위를 절반만 되돌린다면, 동부 역시 예전의 비옥한 땅으로 되돌릴 수 있을지 몰라.”

또한, 제국이 온천지대를 통제한다면 응당 그곳에서 산출되는 운명석 역시 죄다 제국의 것이 된다.

“-여기까지가 짐이 구상한 생각인데, 솔직히 불안한 것은 맞아. 운명석에 대해서는 가급적 숨기고 싶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 개인이 가지기에는 지나치게 강력한 힘이니.”

“…하지만, 폐하의 생각이 그러함에도 제게 모든 것을 일임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폐하의 의중까지 모두 다 알려주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른 황자들에 비하면 너무 큰 특혜일 텐데요.”

“이미 혼자서 북부와 운명석의 진상에 다다랐지 않나. 이건 그 포상이라 생각하게.”

“…그럼, 임무는 계속 진행합니까? 제가 처음 받은 임무는, 산맥을 넘는 길을 만드는 것까지였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불가능한 업적처럼 느껴졌지만, 이제는 간단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지속성을 따지지 않는다면, 지금도 산맥을 넘어 마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가 놓이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원래는 조금 더 헤매길 기대했는데. 건국왕 폐하의 길을 그토록 빨리 찾을 줄 몰랐다.”

“그곳 주민들에게는 알음알음 알려져 있더군요. 마침 선페일의 광부장이 그곳에 대해 알고 있던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레온나토스가 원래 받은 임무는 이미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

물론 방금 동부와 북부를 모두 아우르는 거대한 계획을 들었지만, 그것은 임무의 영역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어떻습니까, 폐하. 폐하께서 주신 임무 자체는 실질적으로 완수한 것 같습니다만.”

“-확실히. 아니라고 할 이유는 없구나.”

하지만.

브륀할트 8세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나?”

“…….”

“남부와 서부로 간 두 황자는, 오히려 너무 쉬운 임무를 받았겠지. 그러나 먼저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유를 알겠나?”

“쉬운 임무일수록, 달성 이상의 것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서히 침상에 몸을 눕혔다.

“좋은 대답이다. 그럼, 앞으로 어쩔텐가?”

레온나토는 답했다.

“우선, 온천지대를 직접 확인해볼 겁니다.”

*****

항상 눈으로 뒤덮인 설원 사이로 희뿌연 강물이 흘렀다.

온천수가 섞인 그 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년설에 뒤덮인 다른 곳과 달리 흑갈색 맨땅이 드러난 광활한 땅이 드러났다.

곳곳에 수증기와 유황 섞인 공기가 터져 나오는 땅은, 외부에는 간단히 온천지대라고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유랑족들은 그곳을 어느새 다른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금기의 땅.

유랑족들 중에서도 오갈 데 없이 내쳐진 이들만이 최후에 다다르는 땅이었다.

운이 닿으면 운명석과 계약할 수도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운일 뿐.

먼저 이곳에 와 계약한 선배들, 눈의 사생아라 불리는 자들의 심기를 거스르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었다.

그곳에 한 소년이 도착했다.

“헉, 헉…”

소년의 부족은 3주 전의 한파로 모두 얼어 죽었고, 다른 부족은 낯선 이방인 꼬마를 받아주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온기도, 뗄감도 없이 이곳은 따듯했으니 아직 아이인 소년이 살아남기에는 최적의 장소.

어차피 거칠 것 없는 몸이었다.

소년은 난생처음 보는 드러난 땅의 모습에 몸을 숙였다.

“…땅이, 이런 색깔이구나.”

금기의 땅은 생각보다도 더 넓었다.

시야에 닿는 곳 모두가 땅의 맨살을 드러내보이고 있었고, 땅은 질척였지만 혹한의 추위에 비하면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눈의 사생아들은?”

금기의 땅에 들어섰을 때만 해도 눈의 사생아가 격렬히 맞아 주리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김이 빠질 정도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한번 버림받은 자들이고, 저마다 방심할 수 없는 힘을 지녔기에 눈의 사생아들은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소년은 조금 안심했지만, 안심감이 불안감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깐만. 인적이 없어도 너무 없잖아?”

소년은 온천지대를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물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 곧 진흙으로 질척였지만, 그것조차 개의치 않았다.

차마 큰 소리로 사람을 부르지 않은 것이 소년의 남은 마지막 자제심.

그리고, 곧 소년은 입을 틀어막았다.

“-흡!”

아렌 일행이 발견한 눈으로 쌓은 탑처럼, 온천지대 바로 옆에 시체로 쌓은 탑이 겹겹이 올라가 있었다.

눈으로 확인한 것만도 열 개가 넘었고, 그 중 몇몇 개는 무너진 채 그대로 온천수에 섞여 시체와 함께 남쪽으로 흘러 내려갔다.

저들이 눈의 사생아들이라면, 저들 역시 운명석 계약자였을 터.

모두가 싸움에 적합한 능력을 지닌 건 아니겠지만, 일반인에 비할 만큼은 아닐 것이다.

유랑족들이 두려워하며 터부시 한 자들의 기묘한 결말에 얼떨떨해하며, 겁에 질린 소년은, 문득 시체의 팔에 십자로 새겨진 무늬를 발견했다.

모두 다 죽이고 난 후 누군가에 의해 새겨진 듯했다.

이런 것을 볼 바에는, 차라리 밖에서 얼어 죽는 것이 나을 뻔했다.

소년은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이건 모두, 한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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