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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30화 (130/227)

#130화

자중이 조용해진 가운데, 라이안은 지금 상황이 퍽 즐거운 듯 입을 열었다.

“뭐지? 다들 입에 꿀이라도 머금고 있나? 내게 할 말이 아무것도 없는 건가?”

라이안의 말에, 그제야 황자들은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였다.

“…형님이?! 어째서! 그게 사실입니까?!”

“어째서 이런 판단을 한 겁니까.”

“…….”

놀라 외치는 엔지 제2 황자와, 침착한 태도로 되묻는 제3 황자 루카스. 그리고 담담하게 침묵을 유지한 채 상황을 지켜보는 가웨인 까지.

그 상황을 주시하는 건 레온나토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렌, 너도 알고 있었나? 지금 일을?”

레온나토스는 아렌이 어제 황궁 내원에 불려갔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렌은 내원에 불려가게 된 이유를 철저히 함구했다.

어차피, 오늘 알게 된다면서.

“우선은 상항을 지켜보시죠.”

아렌은 황자들의 반응을 살폈다.

대부분, 너무도 급작스러운 지금 상황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상황에 따라 이러 저리 휘둘리기만 할 뿐.

그나마 뚜렷한 대응을 보이는 건, 모두 황권 주자라 불리는 몇몇 황자들 뿐이었다.

‘레온나토스는, 가웨인과 비슷해. 라이안의 말의 의중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있어. 테오드릭은 순수하게 분노하고 있고. 제3 황자는… 저 말의 진위보다도 그로 인해 얻을 득실을 가늠하는군.’

좌중에 충격적인 소식을 던진 후 그 반응을 수집하는 건 아렌이 평소 하는 점괘와 같았다.

평소라면 쉽게 접할 수 없을 황자들의 반응들을 수집할 수 있어, 아렌은 지금 상황이 꽤 반가웠다.

그때, 잠자코 있던 가웨인이 앞으로 나섰다.

“방금 형님이 한 말의 진위는 제쳐두고, 지금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뭡니까?”

“…이유?”

“지금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있을 것 아닙니까! 설마,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그대로 황제가 되겠다, 그리 받아들여라. 이런 의미는 아니겠죠?”

“흠. 꽤 그럴듯한 말이군.”

“무슨 남의 일 대하듯 말하는 겁니까! 설마하니 내원 시종장도 한패인 건 아니겠죠!”

가웨인에 지목당한 내원 시종장은 억울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됐습니다, 시종장님. 내가 설명하지요.”

라이안은 다시 가웨인의 화살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만약 형님의 말이 사실이고, 우릴 불러 모은 것도 이대로 굴복시킬 목적이었다면, 불복한 자는 어찌 됩니까.”

“불복한 자라. 그건-”

“설마, 이대로 죽이기라도 할 겁니까?”

가웨인의 서슬 시퍼런 말에 다른 황자들조차 숨을 죽였다.

라이안은 한발 물러서며, 저도 모르게 가웨인의 허리춤에 시선이 향했다.

황궁 안에서의 장검 소지는 극소수의 고위 무사와 황족에게만 허가되어 있다.

검의 고수이자 황자인 가웨인 또한, 황궁 대부분의 장소에 장검을 패용할 수 있었다.

검을 소지할 수 없는 곳은 황제와 직접 대면하는 자리뿐.

물론 라이안 역시 지금 장검을 차고 있었다.

다방면에 능한 라이안이기에 검술 역시 남들 이상의 실력이지만, 이제 그 실력이 검성의 경지에까지 올랐다는 가웨인을 상대할 수는 없다.

가웨인은 비록 검에 손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라이안이 미처 대응하기도 전에 그의 목을 갈라버릴 것이다.

가웨인이 두리번거렸다.

“아니면, 어디에 궁수라도 준비시킨 겁니까? 하지만 화살에 맞는 것보다도 형님을 베어 죽이는 게 더 빠를 겁니다.”

“…그렇겠지, 가웨인. 정말 날 죽일 셈인가?”

“날 죽이려 한다면, 혹은 정말 형님이 범인이라면.”

“…….”

한동안 두 황자 사이의 긴장이 이어졌다.

그 긴장을 먼저 푼 건, 먼저 지금 상황을 조장했던 가웨인이었다.

“-이만하면, 된 것 아닙니까? 이제쯤 결과가 나왔습니까?”

“뭐야, 눈치채고 있었나?”

“반쯤은 말이죠. 혹시나, 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군요.”

“…?”

라이안과 가웨인이 영문 모를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른 황자들은 지금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고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라이안에게 뚜렷한 분노를 표하던 테오드릭 역시 마찬가지.

매사에 기계처럼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루카스와, 사려 깊은 레온나토스 역시 대강의 상황을 눈치챈 분위기였다.

아렌은 내심 감탄했다.

‘…과연. 황권에 도전하는 사람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있다는 건가.’

*****

전날. 황궁 내원의 알려지지 않은 지하.

내원 시종장과의 대화에 갑자기 끼어든 라이안에, 아렌은 적잖이 놀랐다.

문제는 사람보다도 그 내용이었다.

“역모 사건으로 다뤄도, 상관없다고요?”

“그래. 내 명예에 누가 되기에 문제가 된다면, 본인이 허락했으니 아무 문제 없지 않나? 아니면 차라리, 내 입으로 밝힐까?”

“아니 될 말입니다!”

라이안의 말에 펄쩍 뛴 건 내원 시종장, 브레만.

“스스로 역모자라 칭한다니! 정녕 그 말의 무거움을 모르는 겁니까!”

아렌도 라이안의 제안은 반대였다.

하지만, 내원 시종장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다.

“죄송합니다만, 라이안 전하. 지금 전하의 혐의 또한 아직 풀리지는 않았습니다. 전하께서 범인일 가능성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바, 저희와 같이 모의할 만큼 완전히 결백하신 상태는 아니십니다.”

“아, 물론이지. 어쩌면 가장 유력한 용의자일지도 모르고. 이해하네.”

“…….”

하지만 라이안은 아렌의 말을 불쾌해하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것이네. 모든 황자를 모은 자리에서, 내가 역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면 어떤가.”

“그 말뜻은-”

“방금 자네가 시해범의 반응을 떠본 것처럼, 내가 역모자임을 자처하면 다른 황자들의 반응들을 모두 살펴볼 수 있겠지.”

‘-과연.’

“만약 다른 황자들 중 진짜 역모자로 의심될만한 정황이 없다면, 자네 말대로 그땐 날 의심하면 될 일 아닌가? 물론, 난 진범이 아니지만.”

아렌에겐 나쁠 것 없는 제안이었다.

지금처럼 황궁 안 분위기가 험악한 경우, 황자들은 레온나토스의 가신인 아렌을 흔쾌히 만나주지 않는다.

아렌이 다른 황자들을 찾아가지 않고, 굳이 에둘러 시해범을 떠본 이유기도 했다.

내원 시종장은 라이안의 제안에 반쯤 수긍하며 물었다.

“…그러나 전하. 굳이 아렌 공이 나설 일이라면, 기색을 살피는 것보다는 나을 텐데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렌은 저 시해범에 대한 점괘를 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특기인 점괘가 아니라 굳이 유도 심문을 한다는 건, 이게 더 정확하다는 확신이 있어서겠죠. 그렇지 않나, 아렌?”

“…….”

‘정확해. 아니, 그보다 점술이 어떤 방법으로 이뤄지는지 알고 있는 것 아냐?’

라이안이 제안한 건 아렌이 점괘에서 하는 일과 판박이였다.

아렌의 점괘 역시 극적 효과와 분위기로 상대를 흔들고, 그 내편을 파악하는 것이었으니까.

내원 시종장도 나쁘지 않은 계획임은 인정했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만약 가웨인 전하가 갑자기 격앙이라도 하면 어쩌실 겁니까?”

‘하긴,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지.’

황자들을 모아놓은 앞에서, 갑자기 ‘내가 황제를 죽였다’라고 공표하는 꼴이다.

돌발 상황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라이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 녀석은 좀 다혈질이긴 하지만, 섣부른 행동을 하진 않을 거요. 성정이 거칠지언정 그 혈기를 제어 못 하는 녀석은 아니니까.”

당사자가 그러겠다는데, 아렌이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만약 그 판단이 틀렸다면 목숨이 위험하겠지. 어디, 맞았는지 틀렸는지 볼까?’

*****

지금 라이안의 행동이 연극인 것을, 가웨인은 도중부터 눈치챘다.

그리곤 자신의 불같은 성정을 이용해, 정말 흥분한 것처럼 라이안에 대든 것이다.

그로 인해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었는데, 라이안의 능력을 웬만큼 믿지 않고선 하기 힘든 행동이었다.

“자, 이만큼 어울려드렸으니 확실히 범인이 누군지 드러났나요? 그런데 형님한테 그런 수사관 같은 재주가 있는지는 몰랐군요.”

“사실, 내게 그런 재주는 없지. 단지 난 다른 사람에게 부탁했을 뿐이야.”

“부탁이요?”

라이안의 시선은 자연스레 아렌에게 향했다.

레온나토스의 조금 뒤에 부복한 아렌은, 이미 황자들의 반응을 면밀히 살핀 뒤였다.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긴 하지만 황궁의 법도이니 어쩔 수 없는 일.

물론 아렌이 지목하는 사람이 정말 범인인지는 모른다. 아렌이 지목하고 나서도 그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하는 건 당연했다.

“…또 저 녀석입니까?”

대놓고 얼굴을 찌푸린 가웨인.

황자들 중 라이안의 말에 가장 당황했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인물.

아렌은 지목하려 했다.

‘-어라?’

그런데 계속 엎드린 자세를 취해서인지,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것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환각이라도 보는 것 같은 기이한 감각 또한 함께 찾아왔다.

“…아렌?”

곁에 있는 레온나토스가 이상함을 느끼고 아렌을 돌아봤을 때.

“시종장 작하!”

쾅! 궁인 하나가 굳게 닫혀있던 대회견장의 문을 발로 걷어차듯 거칠게 열었다.

“무어냐! 아무도 출입하지 말라 했거늘!”

“하오나 폐하, 폐하께서-”

궁인이 거기까지 말하자 일순 황자들의 긴장감은 극도로 높아졌다.

사경을 헤메는 황제 폐하께 긴급한 소식이라니.

하지만 궁인의 소식은 황자들의 우려와는 조금 달랐다.

“황제 폐하께서, 방금 막 의식을 되찾으셨습니다!”

“뭐라고! 정녕 그 말이 사실이겠지!”

“분명한 사실입니다! 궁의 세 명의 같은 소견입니다!”

믿기지 않는 기적에 내원 시종장은 이제껏 본 적 없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다른 황자들도 마찬가지.

거기에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는 건, 아렌과 진범 정도였다.

황제가 찔린 상처는, 분명 백중 구십구 죽음에 이르는 상처였다.

이틀이나 목숨을 붙들고 있던 것부터가 이미 기적.

그 이상은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의식을 차렸다는 건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기적이다. 내 점괘 때문인가? 만약 그렇다면, 다른 대가는 없나?’

눈에 눈물이 맺힐 만큼 기뻐하던 레온나토스는, 문득 아렌을 돌아봤다.

생떼를 쓰다시피 해 아렌에게 거짓 점괘를 받아낸 레온나토스지만, 그 점괘가 실제로 이뤄진 것이다.

레온의 이성은 우연의 일치라 말하고 있었지만, 감성은 황제의 호전 또한 아렌의 덕분이라고 여기게 했다.

“…아렌.”

그리고, 아렌의 이름을 부른 레온나토스의 목소리는 조금 굳어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전하.”

“너, 괜찮은 거냐?”

“네?”

아렌은 황자들을 둘러봤다

저마다 아렌을 보는 눈은, 조금의 놀람과 걱정으로 떨리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아렌의 시선보다 조금 아래, 명치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렌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아.”

궁중 의복이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반사적으로 코 아래로 손을 가져다 댄 아렌.

손에는 금방 진득한 피가 흥건하게 묻어나왔다.

마치, 머리통 안의 내용물을 전부 코로 쏟아내는 것 같은 출혈이었다.

“…이건, 대체.”

그 말을 끝으로, 아렌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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