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11화 (111/227)

#111화

수업이 끝난 후, 두 여학생이 대화를 나눴다.

“어머, 사이 양. 안색이 좋지 않은데요?”

“…별일 아니랍니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런 미레인 양이야말로 웃음이 예전 같지 않은걸요?”

“네. 어제 뒤숭숭한 꿈을 꿔서…”

아렌에게 점을 본 학생들은, 되도록 자신이 점괘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겼다.

모든 학문의 보고라는 카르도나 국제학교에서는, 점괘를 봤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흉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색이 어두운 건 비단 둘 뿐만이 아니었다.

한 반에서 대략 1/5 정도 되는 학생들은, 이미 아렌의 점괘를 직간접적으로 들은 후였으니까.

‘…후우. 생각보다 힘들었어.’

아렌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국제학교의 학생 수는 대략 1500명. 아렌 혼자 300명 가까이 되는 학생의 점괘를 전부 봐줄 시간은 없었다.

아렌은, 학생의 절반이 도국 출신인 것을 이용했다.

모든 이들에게 점을 봐줄 필요는 없다.

교우 관계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도국 출신의 학생들. 그들에게 불온한 점괘를 주는 것만으로 불안은 전염되기 때문에.

특히 사는 곳과 지위가 비슷할수록 나쁜 점괘는 연기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이쯤 되면, 슬슬 반응이 올 시기인데.’

“아렌, 뭔가 이상하지 않냐?”

‘…아니, 너 말고.’

몰트 치가렌이 어느새 다가와 소곤거렸다.

“대체 뭐가?”

“왠지 며칠 사이 학교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뭔가 뒤숭숭하게-”

“그게 느껴져?”

아렌은 조금 놀랐다.

확실히 반의 분위기가 이전과 달라진 건 사실이지만, 몰트가 그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챌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관찰력이 있는데? …하긴, 나도 몰트를 잘 아는 건 아니니까.’

몰트와는 오래 알고 지낸 사이도 아니고, 굳이 친해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 관심은 더더욱 없다.

그러니 몰트 치가렌이 어떤 것을 잘하고 재능이 있는지, 아렌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녀석을 무시하고 있었을지도.’

아렌은 조금 반성했다.

평소에도 몰트 치가렌은 아렌의 주위에서 얼쩡대는 편이었지만, 오늘은 특히나 무언가 목적이 있는 듯했다.

“뭐야, 나한테 할 말 있어?”

“사실, 이건 아니다 싶으면 바로 거절해도 돼. 다른 게 아니라, 내 시녀가 네게 점을 보고 싶은 것 같더라고.”

“…그걸, 너를 통해서 부탁한다고?”

아렌은 어이가 없었다.

학교 안에서야 실컷 무시당하는 몰트 치가렌이지만, 제국 안에서는 명문 귀족의 자제였다.

하물며 하녀는 몰트를 섬기는 입장이었다. 자신의 주인에게 심부름을 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몰트는 자신의 체면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잖아. 나를 위해 이 먼 도국까지 건너와서, 할 일 없이 하루종일 기숙사 안에만 있는데. 조금쯤은 보상을 해 주고 싶단 말이야.”

“보상을 해줄 거면 월급을 올려주던가, 휴가를 보내줘. 왜 내가 손을 써야 하지?”

하녀의 요구가 이해 안 가는 건 아니다.

아렌이 사용인들에게 점을 봐줬을 때,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들이 학생들보다 미신을 더 잘 믿어서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학교 안에서 할 게 딱히 없어서일 것이다.

매일 방과 후까지 학교 안에서 시간이나 보내야 하는 상황. 아렌의 점괘는 그야말로 하나의 자극이다.

문제는, 이제 더이상 몰트의 하녀에게 점을 쳐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교국 안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인인 몰트 치가렌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지금 아렌에게는 그저 번거로운 소일거리일 뿐.

순간 거절할까 고민한 아렌이었다.

‘…아니.’

“-하아. 언제가 좋겠어?”

“오, 정말?! 난 당연히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도 거절하려고 했었지만, 지금처럼 서서히 주목받는 상황에서 굳이 의뢰를 가려 받는다는 인상을 줄 필요는 없었다.

아렌은 모르고 있었지만, 아까 몰트를 내심 무시했던 것에 대한 나름의 사죄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아렌은 몰트에게 물었다.

“…요즘 학교생활은 좀 어때? 그 왜, 친구라던가-”

“뭐야, 질문이 왜 그래? 무슨 종기라도 만지는 것처럼. 언제까지고 친구 하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한 거야? 이래 봬도, 벌써 한두 명 정도 말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고!”

‘…거짓말이군.’

아렌에게 친한 사람이 없다고 한탄했던 게 바로 얼마 전이었다.

그때 몰트가 했던 말은 아직도 유효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불쌍하니 너무 파고들지는 말까?’

아렌은 몰트에게 말했다.

“어쨌든, 그녀한테는 전에도 점괘를 준 적 있어. 오늘 방과 후면 괜찮겠지?”

*****

그날, 방과 후.

아렌은 몰트의 하녀가 기다리고 있다는 외부자용 기숙사로 향했다.

외부자용 기숙사는 두 개 건물로 나뉘어져 있었고, 총 삼백 명이 넘는 인원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학교 안에 있는 외부인은 약 백여명 남짓.

외부자용 기숙사는 1개 동만 사용하고, 나머지 1개 동은 비어 있었다.

시녀는 그 비어 있는 동 안에 기다리고 있겠다 말했다.

잠겨 있었어야 할 것 같은 기숙사의 현관은, 소리도 나지 않고 부드럽게 열렸다.

‘…어두운데? 방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얼추 분위기가 나려나? 역시 촛불까지 준비하는 건 너무 거추장스럽겠지만.’

아렌이 필요해서 하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 하는 점술은 아니다.

하지만 이왕 하기로 한 것 심혈을 기울여 제대로 해볼 생각이었다.

“1038호… 여긴가?”

방문이 양옆으로 쭈욱 늘어선 긴 복도를 지나, 아렌은 미리 들었던 방문을 열었다.

부드럽게 열린 문고리 너머, 끈적한 피 냄새가 물씬 느껴졌다.

“…설마.”

창에 커튼이 드리워져, 등불도 없어 어두컴컴한 방.

아렌이 어둠 속에서 발견한 건, 엎어진 채 피 웅덩이 속에 엎어진 몰트의 시녀였다.

“…늦었어. 이정도 피면, 이미 죽었어.”

아렌은 바닥에 흘러 고인 피를 검지로 찍어본 후, 엄지와 검지를 비볐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고, 굳지 않았어. 흘린 피는 많지만 피가 흐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범인은 지금도 이 안에 남아있을지도 몰랐다.

몰트의 시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목적은 분명 아렌이었다.

아렌에게 살인의 누명을 씌우려고 하거나.

혹은, 목격자를 미리 제거한 후 아렌에게도 칼을 드리우려 하거나.

아렌은 복도 밖으로 나갔다.

양옆으로 문이 주루룩 늘어선 복도.

그 중 어느 곳에서든, 암살자가 지금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학원 안이라 단검은 미처 가져오지 못했다.

아렌은 잰걸음으로 긴 복도를 걸어갔다.

누가 어느 곳 문에서든 튀어나와도 곧바로 대응할 수 있게끔, 발걸음에 심혈을 기울여서.

복도 양옆의 문 어느 쪽에서도 암살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아렌은 곧바로 건물의 계단이 있는 중앙 로비에 다다랐다.

‘암살자는 여기 매복한 게 아니라, 곧바로 도망이라도 간 건가?’

아렌은 기숙사의 현관문으로 향했다. 시신 수습을 위해서라도 곧바로 사람을 불러오고 싶었다.

-철컥!

…하지만, 현관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설마!’

아렌은 급히 고개를 숙였고, 그 순간 아렌의 머리 위를 스쳐 날아간 단검이 두꺼운 나무 문에 푹 박혔다.

아렌은 고개를 들었다.

2층으로 이어진 계단 위에서, 교복이 아닌 복장에 복면을 쓴 암살자가 단검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맨손인 아렌에게 대항할 수단은 없다.

“…혹시 이 안에 들어와 있을까?”

아렌은 중얼거렸다.

밑져야 본전.

아렌은 2층으로 향하는 중앙 계단 앞에 섰다.

현관문에 박힌 단검은 일부러 뽑지 않았다.

나무에 단단히 박혀있는 데다, 무기가 없는 편이 상대를 방심시키기 좋다.

맨손인 아렌을 향해, 단검을 든 암살자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방심하지 않고, 온 신경을 아렌에게 집중한 채.

‘그래, 그러면 된 거야.’

혹시나 아렌의 예상이 빗나갔을 경우, 재빨리 문으로 달려가 단검을 뽑아야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암살자의 뒤, 계단의 1층 구석 어둠 속에서 일어선 ‘그녀’를 확인한 뒤 아렌은 더욱 무방비하게 섰다.

어두컴컴한 건물안. 문은 잠겨 있고 외부인은 없다.

암살자는 맨손의 아렌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달려들려 했다.

푸욱!

“크아아악!”

암살자의 배후에 있는 계단 아래 사각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암살시종 멜로익이었다.

아렌이 사용인용 구역에서 모습을 드러냈으니 비밀호위로서 당연하게도 따라붙은 것.

소리 없이 달려간 멜로익은 자신의 체중을 실어 날이 예리하게 선 단검을 암살자의 배에 찔러넣었다.

단검은, 배를 찌르면 곧바로 내장을 상하게 할 만큼 길었다.

도국의 어떤 명의가 와도 내장을 찔린 사람을 살려낼 순 없다.

내장을 찔린 순간, 암살자는 살아있는 시체나 다름없다.

“-빌어먹을!”

자신의 생기가 배의 상처로 삽시간에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 암살자는, 마지막으로 오기를 부리며 단검을 치켜들었다.

자신이 마지막까지도 눈치채지 못한, 동업자 소녀를 길동무로 삼기 위해.

-뻐억!

하지만, 앞에서 달려온 아렌이 높이 들린 암살자의 단검을 쳐서 멀리 보냈다.

배에서 단검을 뽑은 멜로익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어라, 방금 나 구해준 거야?”

“내 생명의 은인한테, 이 정도는 해야지.”

쓰러진 암살자의 눈이 단숨에 흐려졌다.

그의 복부에 꽂혀있던 단검은, 배에서 생명이 흘러나오는 것을 막는 마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마개가 뽑히자, 아직 온기가 남아있던 암살자의 몸은 삽시간에 그 온도를 잃었다.

아렌은 기숙사의 현관 문을 바라봤다.

“-그보다. 방금 암살자의 비명이 상상 이상으로 컸어.”

옆 건물까지 충분히 다다르고도 남을 정도의 크기.

곧 사람들이 밀어닥칠 테고, 아렌은 그들에게 이 건물 안에 있는 두 구의 시체를 설명해야만 한다.

‘사실대로 말하긴 하겠지만, 과연 잘 납득해 줄까.’

“이봐! 무슨 일이야!”

쾅쾅쾅!

벌써 달려온 사람들이 기숙사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렌은 일단 멜로익의 단검을 대신 받아들었다.

“멜로익, 네 정체는 들키면 안 되지? 이 단검은 내가 맡아두겠어.”

“…뭐? 안돼! 그럼 네가 대신-”

“하녀를 죽인 건 저 녀석. 그리고 날 죽이려 해서 정당방위로 죽였다고 주장하면 될 거야. 대충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도…”

이 주장이 어디까지 통할지는 알 수 없다.

“얼른 몸을 숨겼다가, 사람들이 충분히 밀려오면 그때 인파 사이에 서 일어나. 사람들 사이에서 방금 이 안에 들어온 것처럼.”

더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멜로익은 으슥한 구석에 몸을 숨겼고,

그것과 거의 동시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잠긴 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이 처음 본 건, 배를 움켜쥔 채 죽어있는 복면 쓴 사용인.

그리고 피가 담뿍 묻은 단검을 손에 꽉 쥔 아렌이었다.

“아, 아렌 공?!”

“살인자! 사람을 죽였어!”

“…너무 놀라지 마세요. 전부 설명할 테니까.”

그리고, 복도 너머를 눈으로 가리킨 아렌.

“그리고, 1038호에 시신 한구가 더 있어요. 그것도 확인해 주시겠어요?”

“…….”

절반은 도망가지 못하도록 아렌을 둘러싸고, 절반은 황망히 기숙사 복도를 달려갔다.

단검은 버리고, 순순히 구속되면서 아렌은 생각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날 죽이려 해? 거기다 누명까지 쓰게 생겼군. 내가 ‘또’ 당해줄 줄 알고?’

이미 한번 누명 당한 채 죽임당한 몸이다.

다시 되살아나 과거로 돌아온 후, 아렌이 다짐한 것이 있었다.

‘두 번은, 절대 안 당하지. 날 노린 놈? 몇 배로 갚아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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