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91화 (91/227)

#091화

아렌은 엔지와 루카스, 그리고 레온나토스에게까지 큰소리로 장담했다. 레온을 황자로 만들겠다고.

그건 확실히 불가능하지는 않은 목표였다. 지금의 레온나토스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랬지만, 유리하다 생각할수록 더욱 철저히 해야 하는 것도 있다.

아렌이 가웨인을 찾아가자, 가웨인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아무리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어도 그렇지, 감히 날 찾아와? 가상하구나.”

한때 가웨인은 레온나토스를 견제하기 위해 점술가 몰디나까지 불러오는 맞불 작전을 펼쳤지만, 별다른 이득을 취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레온나토스를 따라했다는 꼬리표까지 붙여가며 되려 체면에 상처를 입었다.

여전히 제1 황자 라이안, 그 뒤를 잇는 후보라 불리지만 이전 만큼의 절대적인 지위는 아닌 이유다.

뒤에선 이제 레온나토스에게 추월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까지 듣는 상황.

가웨인에게는 달갑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겨우 찾아와 묻는 질문이, 어릴 적 날 노리던 자들이 많았냐고? 그걸 질문으로 하는 것이냐?”

“네. 그렇습니다.”

어릴 적부터 암살에 시달려온 가웨인은, 직접 암살자인 가신을 몇 번이고 죽였다.

굳이 다른 이의 손에 맡기지 않은 덕에 가웨인은 미치광이로까지 불렸지만, 이 또한 그로서는 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을 것이다.

겁을 줘야, 자신을 얕보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장성하신 지금은 그러한 시도가 없어졌다고요.”

“흠, 그렇지. 물론 내 주변의 경계가 예전에 비할 바 없이 더 삼엄해진 건 있지만.”

“…그렇군요. 참고가 됩니다.”

역시 암살은 아직 힘이 없는 유망주일 때 일어났다. 그건 레온나토스에게도 마찬가지. 실권을 잡은 이후 아렌을 직접 노리는 경우는 극히 줄어들었다.

‘레온나토스의 경우는 시중팔구 고드프리의 짓이었겠지만. 가웨인을 노린 건 다른 황자였다고?’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속단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황궁 안에 아직 기반 세력이 약한 황자만 골라서 노리는 자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모양이군. 처음에 난 너를 노린 자가 있다기에, 나를 노렸던 누군가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모양이더군.”

“네.”

아렌을 노렸던 상대는 고드프리였던 것으로 잠정 결론이 났다.

그리고, 가웨인보다 연하에 기반 세력도 훨씬 적었던 고드프리가 어린 가웨인을 공격하도록 종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아렌과 같이 누가 범인일지 고민하던 가웨인은, 지금 상황이 어이 없다는 듯 턱을 괸 손을 내렸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웃기는 군. 내가 너와 이런 걸 고민하고 있다니.”

“웃기다고요?”

“…모르는 것 같아 상기해 주자면, 난 황자다. 네 주인과 황태자 경쟁을 벌이는. 변변찮은 호위도 없이 내 별궁 한복판에 들어와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 말에 아렌은 주위를 둘러봤다.

가까운 반경 안에는 가웨인 뿐이었지만, 조금만 떨어진 곳을 봐도 가웨인의 가신이 분명한 무사가 흉흉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에게 아렌은 주인의 앞길을 막는 역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지만 아렌은 걱정하지 않았다.

“전 괜찮습니다.”

“…괜찮다고? 목숨이 두 개도 아닌데 그런 말을 용케 하는군.”

실은 지금이 두 번째가 맞다.

“그도 그럴게, 전하께서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시지 않습니까. 당면한 적이 세면 셀수록 반기시죠.”

“그렇긴 하지만, 그건 내가 이겨야 의미가 있지. 추월당하고 나서도 웃을 수 있을 만큼 난 호인은 아닌데.”

“물론,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렌은 최근 가웨인의 대외 활동이 뜸하다고 알고 있다.

아렌이 제국의 북쪽 끝, 선페일 지역에 다녀올 동안에도 가웨인은 별다른 활동이 없었다고.

‘힘을 비축하고 있는 거겠지.’

움츠러든 것이 아니라, 움직일 때를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최근 있었던 교국과의 분쟁뿐만 아니라, 동부 국경의 소요사태와 북부가 거점인 태양교의 발호까지.

가웨인은 최근 제국의 정세가 심상치 않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시국일수록 강한 자를 황제로 원한다.

‘검성 출신의 황제라니… 아니, 반대인가?’

검성 출신의 황제, 혹은 황제 출신의 검성. 어느 쪽이든 그보다 강한 카리스마가 있을 리 없다.

혹자는 황제가 검을 잘 쓰는 게 국가의 통치와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하겠지만, 황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성이다.

‘가웨인은 지금의 낮안개 기사단을 레온나토스에게 양보해줬어. 그 기반이 없었다면 레온나토스는 지금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겠지.’

비록 레온나토스의 강한 경쟁자이지만, 아렌은 가웨인에게 감사를 느꼈다.

그가 미치광이가 아님을 알았으니, 설령 그가 황제가 되더라도 국가를 잘 이끌어가겠다는 확신도 들었다.

“어쨌든, 선의의 경쟁에 한해서 저희 또한 가웨인 전하와 협력하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나눌 것입니다. 이건 제 의견이 아니라 주인이신 레온나토스 전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

“잠깐.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이쪽도 하나만 묻도록 할까?”

‘…이렇게 벌써?’

“네. 말씀하시지요.”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지만, 내 점술가였던 몰디나 말이다. 그만둔 뒤 너나 레온나토스에게 갈 줄 알았는데, 받지 않았더군.”

“글쎄요? 본인이 오고 싶었다면 문을 두드렸겠죠. 설령 오게 되더라도 저와 역할이 겹치고요.”

아렌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실은 그녀에게 몰래 들어오라고 제안을 한 상태였지만, 아직도 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이미 마음이 떴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들어온다면 그것도 좋지만.’

“그런데, 그래봤자 고작 점술가이지 않습니까? 어쩐지 미련이 남으신 것 같군요.”

아렌의 조금 짓궂은 말에 가웨인은 쓰게 웃었다.

“확실히 처음엔 네놈의 대항마일 뿐이었지만, 막상 없고 나니 영 허전하더군.”

“전하께서 미신을 믿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믿지 않는 건 지금도 여전해. 하지만 점괘란 의외로, 사람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더군.”

가웨인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렌은 너무 잘 알았다. 그간 경험해온 것이었으니까.

만약 몰디나가 누구의 제안도 받지 않고 그대로 황궁과 멀어진다면, 그것도 아렌에겐 나쁘지 않다.

지금처럼 황궁의 유일무이한 점술가가 될 수 있으니까.

“혹시나 몰디나가 저희 진영을 선택할지도 모르는 일이죠. 저희 문을 두드린다면, 저로선 환영할 일이죠.”

“레온나토스에겐 너도 있는데, 또 다른 점술가를 등용한다고?”

“좋은 건 많을 수록 더 좋은 법이니까요.”

“…….”

아렌의 말에, 가웨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난세일수록 더 강한 자를 황제로 원하고, 레온나토스가 아직 일국의 전쟁을 이끌만한 재목이 아니라는 평 또한 사실이다.

아직 어리기도 하거니와, 그런 전공을 세워본 일 자체가 전무하기 때문이다.

‘5년 전 동쪽 아티스 국경의 소요사태가 있었지만 부족하겠지.’

아트레움에서의 사건은 모두 황제에게 보고되었지만, 황제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함구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 레온나토스는 첫 임무에서 열 명 남짓한 기사를 잃고 돌아온 어린 황자였을 뿐.

물론 황제가 레온의 공을 치하했고, 또한 후일 낮안개 기사단이 무용을 떨치기에 지금은 빛바랜 오해가 되었지만 말이다.

‘…난세의 황제로 비견될만한 자는 제1 황자 라이안과 가웨인, 그리고 테오드릭 정도인가?’

한때는 레온나토스 이상의 주목을 받았던 테오드릭이지만, 지금은 다소 빛이 바랬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무력 기반은 강했다.

팔방미인인 라이안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가웨인은 가웨인대로 너무 거칠다고 생각하는 무인들은 강하지만 날카롭지 않은 테오드릭을 지지했다.

그리고, 그런 테오드릭은 비밀리에 레온나토스를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테오드릭을 향한 무인들의 지지를, 온전히 레온나토스에게로 끌고 올 수 있어야 해.’

아렌은 낙일관에서 아라흐네를 만났다.

“자, 여기 테오드릭 전하의 서신이에요.”

황자로서 매번 찾아오기는 버겁기에, 테오드릭은 아라흐네를 보내 아렌과 서신을 주고받았다.

“좋아. 읽고 내일 답변할 테니, 내일 이맘때쯤 찾아와.”

“씨이, 이젠 그냥 전령 취급이네요?”

“어쩔 수 없잖아? 업무시간에 당당하게 드나들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테오드릭의 하녀가 점괘에 심취해 업무조차 땡땡이치고 낙일관에 들르는 건 그리 이상한 그림이 아니다.

“그리고, 요즘 뭔가 심란한가 봐? 밤에 잠도 설치고 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그야 눈 밑이 검고 눈꺼풀도 아래로 내려가 있으니까.’

“어디 한두 번이야? 자, 이건 새 부적이야. 간직하고 있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밤에 잠도 잘 올 거야. 수고비 대신 받아둬.”

“…고마워요.”

“안은 절대 열어보지 말고.”

아렌이 건넨 끈이 달린 작은 향낭을, 아라흐네는 소중하게 받아들었다.

향낭 안에는 약초와 꽃을 말려 부순 가루가 들어 있었다.

기분을 안정되게 하는 효과가 있는 향이지만, 즉각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영험한 부적을 받았다는 심리적인 효과가 미약한 효능을 더욱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아렌은 아라흐네에게 물었다.

“그런데 혹시 제2 황자와 제3 황자에 대해 알고 있는 것, 없어?”

“…갑자기 물어본들, 다른 사람이 아는 것과 거의 같을걸요?”

아라흐네는 정보를 접수하는 능력이 다른 이들보다 뛰어날 뿐, 만물박사는 아니다. 오히려 아렌이 알고있는 지식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아렌에게는 황가의 점술가로서 20년간 살아온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니까.

지금처럼 레온나토스 전속이 아니라 황가 전체의 점술가였기에, 엔지와 루카스도 곧잘 아렌에게 점을 봤었다.

특히 점을 믿지 않는 루카스보다 엔지가 점을 제법 많이 봤다.

아렌의 뜬금없는 질문에 아라흐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흐음. 두 황자님이 다음 목표인가요?”

“다음 목표라니, 뭐야 그게? 그냥 내가 혼자 물어본 거야.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어.”

“네네, 그러시겠죠. 그런데 지금 황궁 전체의 관심사가 뭔 줄 알아요?”

“그게 뭔데?”

“레온나토스 전하가 선페일 영주로 누구를 임명하느냐.”

“…….”

딱히 공표한 사실도 아닌데, 이미 황궁 전체에 퍼진 이야기인 듯했다.

확실히 까다로운 이야기긴 하다.

누군가에겐 한 영지의 영주가 된다는 것이 엄청난 영광이고 기회겠지만,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으니까.

선페일은 아주 외진 곳에 있는 험한 영지다.

“좋은 거 알려줄까?”

아렌은 그녀에게만 몰래 귀띔했다.

“사실은, 이미 가닥이 나와 있어.”

“…정말요?”

모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사실을 가장 먼저 듣는다는 희열감에 아라흐네는 더욱 귀를 기울였다.

아렌은 그녀의 귀에 작게 속삭였다.

“레온나토스 전하는, 자신을 직접 선페일 영주로 임명할 거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