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2화
아렌과 발커스, 그리고 말에 거꾸로 탄 불량배 두목.
두 말에 탄 세 사람이 사원의 정문 안으로 들어섰을 때.
두목은 설마 하던 태양교의 총본산으로 들어오게 되어 곤혹스러워하고 있었다.
“저… 정말 이 안으로 들어오다니.”
“왜, 이 안에 오면 안 될 이유라도 있어?”
“…….”
정문 안쪽으로 들어오고, 사방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을 느끼며 두목은 입을 다물었다.
찝찝함을 느끼는 건 불량배 두목만이 아니었다.
“…쩝, 그나저나 엄청 쳐다 보시네. 어째 눈빛이 우리 출발할 때랑 영 다른데요?”
발커스의 말에 아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없는 동안 활개치고 다니라고 했거든요. 이 반응을 보니 잘 한 모양이네요.”
“활개요?”
발커스의 의문. 말에서 내려 산의 경사를 따른 계단을 천천히 오르자, 위에서 사제 콜론이 내려왔다.
그의 주변에는 같은 개혁파 동료들도 함께였다.
“오, 무사했네요, 콜론? 의외네…”
반가워하며 말한 아렌. 끝말은 무심코 중얼거리고 말았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긴 했지만, 태양교가 얼마나 강압적일지는 미지수였다.
혹시나 황궁 병사들의 시선조차 무시하고 탄압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으니까.
상황이 위험해진다 싶으면 황제의 신하들이라는 지위와 무력으로 돌파해 황도로 내려가면 그만이다.
물론, 콜론과 그 동료들의 목숨까지는 보장하지 못한다.
“네? 뭐라고요?”
“다행이라고요. 그보다, 서명이 효과는 있었나요?”
“그게, 생각보다도 많은 숫자의 서명을 해주시더라고요.”
“생각보다 많은 숫자라… 그렇다면, 4할?”
“2할 조금 안 되는 숫자에요. 오늘 오전 동안만요.”
“물론 대단한 숫자죠. 하지만 지금 이 숫자로는…”
대사원에 모여있는 2천 명의 사제들, 그중 2할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숫자가 맞지만, 수뇌부의 독한 결단을 막아설 숫자도 결코 아니었다.
대주교가 썩은 부분을 도려낸다는 각오로 모두 내치는 걸 감수할 수도 있는, 실로 애매한 숫자.
아렌이 원하는 건 개혁에 동의하는 신도가 절반을 넘어, 교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데에 있었다.
아렌이 원하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태양교의 수뇌부를 아렌 입맛대로 바꿔 넣어 태양교 전체를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거나.
혹은, 그들의 수직적인 구조를 완전히 붕괴시켜 그들의 힘을 와해하거나.
아렌이 콜론과 합류하고 한참을 올라가는데도, 주변의 시선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어딜 가든 신도들의 빤히 바라보는 듯한 시선이 따라다녔기 때문이다.
콜론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건 저 때문인가요? 아니면 아렌 공 때문에?”
“아마 둘 다일 거예요. 저희도 이제 교단의 주목을 완전히 받기 시작한 거죠. 설문 받는 동안은 괜찮았어요?”
콜론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렌 공께서 병사들을 붙여주신 덕분에 안전했어요. 아무래도 황궁의 병사들 앞에서 무언가를 하긴 쉽지 않았겠죠.”
이제 태양교에 몸담은 콜론조차도, 태양교가 병사들의 시선이 없으면 무슨 짓이든 할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부턴 힘들 텐데.’
“저기, 콜론. 이제 다운힐에서 잡아온 증인까지 보호해야 하니, 당분간은 병사들의 보호를 받지 못할지도 몰라요.”
“아, 물론 괜찮습니다! 저희도 당분간은 모두 다 붙어서 다닐 테니까요.”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닌데. 하지만 하는 수 없나.’
지금까지는 누가 구성원인지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개혁파였지만, 이번 서명 건으로 그 구성원이 드러나 버렸다.
거기에 자기들끼리 뭉쳐 다닌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았던 다른 단원들의 모습까지 모두 알려주는 꼴이 되고 만다.
‘뭉쳐만 있다면, 일단 당장은 죽지 않을테니. 지금은 개혁파에 이목이 쏠린 상태기도 하고.’
콜론의 무사를 확인한 아렌은 그들과 헤어진 뒤 곧바로 타린을 만났다.
타린은 대사원의 동향을 살필 겸, 개혁파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남겨둔 상태였다.
물론 타린에게는 태양교 개혁파와의 협력을 말하지 않았다.
다만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최대한 직접 지켜보라 일러뒀을 뿐.
“타린, 이곳 상황은 어때요?”
“…하루아침에 기류가 바뀌더군요. 기존 체제에 반하는 자들이 서명을 받아내질 않나, 이제는 우리에게조차 적의를 숨기지 않아요. 뭔가 지령이 내려지기라도 한 것처럼.”
“확실히, 곤란하긴 하네요.”
“다운힐에서도 습격당했다면서요? 이제 북부에서 안전한 곳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군요.”
“습격은 아마, 선페일 영주 개인의 소행일 거예요. 중간에 고드프리가 개입했다면 그런 식으로 어설프지 않았을 테니까.”
“어쨌건 영주조차 태양교에 아양을 떨고 있다는 게 확인된 거니까 달라진 건 없네요.”
타린이 한숨 쉬며 말했다. 파견 조사관으로서 위험은 항상 곁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지금은 아렌도 함께였다.
아렌 역시 타린의 조사 대상임은 변함없지만, 이미 아렌은 교묘한 언동으로 타린에 심적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곳 태양교가 가장 안전한 곳이에요. 이곳에서 사람이 죽기라도 하면, 비난의 화살은 무조건 자신들에게 향할 테니까. 이곳에 있는 만큼은 안전하다 봐도 될 거예요. 물론, 그만큼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지만.”
그때였다.
똑똑.
누군가 아렌과 발커스, 타린이 모여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대주교 성하께서 비서관 아렌 공을 부르십니다.”
“…나를?”
“네. 한 번도 뵌 적 없다고 아렌 공만을 지목하셨습니다.”
이곳에 온 손님으로서 한번도 주인을 방문하지 않았으니, 아렌만 따로 불러내는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아렌은 어쩐지 모를 불안을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요청을 거절하는 것도 저쪽에 빌미를 주는 일인데.’
하는 수 없이 아렌은 몸을 일으켰다.
“발커스만 따라와서 절 경호해주세요. 나머지는 이곳에서 타린과 증인을 지키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이곳을 벗어나면 안 돼요.”
신신당부한 후, 아렌은 발커스만 자신의 경호로 대동한 채 대주교의 거처, 대본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아렌, 저도 같이 가도 됩니까? 부른 건 아렌 혼자지 않나요?”
“나 혼자 갔다가 실종이라도 되면 어쩌려고요? 그래도 보는 눈이 하나정도는 있어야죠.”
“…다행이네요.”
“뭐가요?”
“그래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 것 같아서요.”
“…….”
발커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아렌은 태양교의 대본전에 들어섰다.
산의 경사면을 따라 지어진 대사원, 그 정상에 지어진 거대한 공간이 보였다.
바닥은 돌을 깎아 평평한 원형의 공간이었지만, 천장은 산 안쪽으로 들어온 절반만 있는 기이한 공간이었다.
대주교는, 산 안쪽으로 들어온 대본전 안쪽에 있었다.
천장이 있어 비는 들이치지 않겠지만, 야외나 마찬가지라 북부의 칼바람이 들이치는 공간.
언제 세상을 떠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의 대주교는 양옆에 거대한 화롯불을 지펴놔 주변 기온을 올려두고 있었다.
아렌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
“비서관 아렌이 태양교의 대주교 성하를 뵙습니다. 교단 안의 예법에 무지하여 혹 결례가 있더라도 헤아려 주시길 바랍니다.”
“저야말로 이런 누추한 곳에 아렌 공을 불러 송구스럽습니다.”
주로 신경을 긁는 대상이 고드프리이기에 인지하지 못했지만, 눈앞의 다 죽어가는 노인이 현 태양교의 수뇌부이자, 개혁파가 타도할 대상이었다.
‘칼바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양옆에 화로를 피워뒀나? 나한텐 나쁘지 않군.’
화로는 거센 바람 속에서도 일정한 화력을 유지하면서 뭉근하면서도 안정된 빛을 발했고.
아래에서 위로 빛에 비친 대주교의 표정은, 마치 낙일관 안에 들어온 손님처럼 속속들이 아주 잘 보였다.
세월이 깊은 상흔을 남겨놓은 얼굴.
‘…?’
그런데, 대주교의 얼굴을 지긋이 관찰하던 아렌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다.
“아렌 공? 제 얼굴에 무언가 묻었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곳에서 고드프리 각하는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십니까? 같이 황궁에 있던 사이로서 순수하게 궁금하여 묻는 것입니다.”
“고드프리, 괜찮은 자이지요. 태양교 전체에서도 그보다 신실한 신자는 찾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아렌은 대주교가 고드프리에 대해 말할 때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눈치챘다.
‘대주교가 고드프리를 부리는 게 아니었군. 그 반대였어.’
둘 사이의 상하관계를 파악한 아렌이 기습적으로 물었다.
“저, 외람되지만 제가 성하의 점을 봐 드려도 되겠습니까?”
“…그것이 아렌 공의 특기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만, 저희 교리상 점괘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리 탐탁지 않은 대주교에게 아렌은 더욱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더욱 좋습니다. 본디 점괘란 그저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아렌의 품속의 카드를 꺼내 대충 섞어, 곧바로 두 장을 뽑아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서 점괘의 형식미 따윈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둘로 쪼개진 모닥불’과, ‘추락하는 탑’ 카드로군요. 예전엔 우러러보는 우상이 하나였지만 지금은 둘이 되었고, 위에서 아래로 곤두박질 치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이 신앙의 대상인지, 신앙하는 자 본인인지까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렇군요.”
‘혹시 고드프리 전하를 상전으로 모시고 있나요?’
아렌이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려는 찰나였다.
‘…또야. 이상한 기분이.’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불안감.
“…성하. 결례를 용서하십시오. 급한 용건이 없으시다면, 먼저 일어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벌써 일어나십니까? 이곳에서 즐기는 바깥 풍경은 절경인데 말입니다.”
“…그럼, 이만.”
아렌은 빠른 걸음으로 대본전을 빠져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아렌을 따라 나온 발커스가 물었다.
“…아렌? 대체 왜 그래요?”
“뭔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 뭐가요?”
“왜 지금 타이밍에 날 부른 거죠? 게다가-”
“게다가?”
‘나한테, 별 용건이 없었어.’
그것이 아렌이 느꼈던 이상한 기분의 정체였다.
아렌만 콕 집어 불러낸 것치고, 대주교는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마치, 목적이 아렌을 이곳에 붙잡아두는 것,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설마.”
“어, 아렌! 기다려요!”
아렌은 완만한 계단을 뛰어가듯 빠르게 내려갔다. 자칫 넘어지면 수도 없이 굴러떨어지며 큰 부상을 입겠지만, 아렌의 발은 느려지지 않았다.
계단을 절반 정도 내려갔을 때.
“어라, 아렌. 무슨 일입니까?”
“타린! 왜 여기 있어요!”
병사들과 함께 계단을 올라오던 타린과 마주쳤다.
“왜 여기 있냐니… 아렌 공이 절 불렀잖아요?”
“네?”
“대본전에서 아렌 공이 나도 불렀다기에 서둘러 올라가는 중입니다만-”
“전 부른 적 없어요!”
의혹은 확신으로 변했다.
아렌을 불러낸 건, 역시 증인으로부터 아렌과 타린을 떼어놓기 위해서.
위병들 넷은 타린과 함께 올라왔다. 그 방을 지키는 건, 아렌이 두고 온 낮안개 기사단 4명뿐.
한 명을 지키기에는 차고 넘치는 숫자지만, 기사들은 모두 방 밖을 지키는 역할이었다.
방 안에서 증인을 감시하고 지키는 건 타린과 위병들의 몫.
원래라면 타린도 이런 얼빠진 실수를 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렌은 이번 여행 도중 아주 조금씩 자신과 타린 사이의 상하관계를 정립했고, 이제 타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아렌을 자신보다 확연히 위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니 아렌이 불렀다는 전갈에 변변한 의심도 없이 따라 올라온 것.
계단을 달리듯 내려온 아렌은, 방 앞을 철통같이 지키고 있는 기사들을 발견했다.
“어라, 아렌 공?”
“방 안은 무사해요?!”
“이 앞을 지나온 사람은 없습니다만-”
“비켜요!”
벌컥!
아렌이 방 문을 열었을 때.
혼자 오도카니 있어야 할 증인의 모습이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