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화
“어라, 그냥 내려간다고? 저 사람은 어쩌고?”
광부장 터커가 뒤에 뻗어있는 타린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사람이 기절해있는데?”
“기절하는 게 취미인가 보죠. 그럼 내려가 볼까요?”
“…….”
병사들 대부분이 남아서 기절한 타린을 돌봤다.
아래로 내려가는 건 아렌과 발커스, 그리고 사제 콜론과 광부장 터커도 함께였다.
“…황도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상한 사람들이더니, 변함 없구만.”
광도 아래로 안내하는 터커가 툴툴거렸다. 아렌은 콜론에게 소곤거렸다.
“광부장도 태양교의 개혁 의지에 동참하는 건가요?”
“음… 그건 아니에요, 광부들 중 절반은 이곳 선페일 사람들이지만, 나머지는 터커가 서부에서 이끌고 온 전문 광부들이에요. 선페일 지역에는 마땅한 광부 숙련자가 없어서 교에서 초청했죠.”
“그렇군요.”
아렌의 질문은 다른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선페일 출신의 광부들 중 태양교가 심어둔 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네요?”
“…설마요?”
콜론은 반신반의했지만, 아렌의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태양교가 다시금 중앙으로 진출하려는 단초가 된 광산이야. 감시를 붙여두지 않았을 리 없지.’
조금 앞서서 걷던 터커는 일행을 점점 더 광산 깊은 곳으로 안내했다.
다른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중앙에서 온 높으신 분께 최선을 다해 조금이라도 더 지원을 얻어내려는 의도였다.
“이건 수탐침이야. 어디 있을지 모를 수맥을 찾아내는 데 쓰지. 반쯤은 미신이지만.”
“이것. 이 새장 안에 참새를 넣고 다니지. 참새가 시들시들하다 싶으면 공기가 탁하다는 뜻이니까 밖으로 뛰쳐나와야 한다고.”
“이곳! 이 아래에서 양질의 은광을 발견했지. 지금 한창 작업 중이라 복잡해서 내려갈 만한 곳은 못 돼.”
“아 그쪽? 다른 광도보다는 덜 붐빌 거야. 영 산출되는 게 시원찮았거든. 이 광산에서 가장 깊이 내려가는 광도라서 슬슬 폐로할 수도 있어.”
터커의 마지막 말에 아렌의 눈이 빛났다.
“그거 괜찮은데요? 꼭 보고 싶어요.”
“그래? 정 보겠다면 안내해주겠지만, 정말 볼 게 없을 텐데? 인적도 드물다고.”
“그럼 더 좋죠.”
“…역시 황도에서 온 놈들이란.”
중얼거리며, 터커는 인적이 드문 광도 안으로 아렌 일행을 이끌었다.
조금 뒤쪽으로 따라가며. 발커스는 터커에게 말이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말했다.
“어떻습니까, 아렌. 이곳에 들어온 보람이 있어요?”
발커스가 보기에 이곳은 어두컴컴할 뿐, 굳이 이곳을 찾아 들어올 이유는 없어 보였다.
이곳에 있는 건 자신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둠 속에서 땀내 나는 사투를 벌이는 사내들 뿐.
아렌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했다.
“첫불에 배부를 수 없는 버이죠. 이곳은 태양교의 본거지고, 우리는 소수에요. 콜론같은 개혁파도 현 태양교 주류에 비하면 새발의 피죠. 이쪽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주도권이 저쪽에 있는 건 당연해요.”
그러니, 아렌은 굳이 이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쪽의 허점을 보여줘서, 저들의 움직임을 유도하기 위해.
아렌은 앞서가는 터커에게 물었다.
“터커. 이 안은 지반이 충분히 안정되어있나요? 가령 갑자기 이 안쪽이 무너진다거나-”
“뭐? 무너져? 그런 위험한 곳에 중앙의 귀하신 분을 안내할 것 같아?”
아렌의 질문이 꽤나 무례하게 들렸는지 터커의 눈가가 찌푸려졌다.
“광산이 무너지는 건 어느 곳에나 일어날 수 있지만, 이렇게 지반이 안정된 광산은 흔치 않다고. 탄광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단단한 암반의 광신이 무너지는 건 100% 내 과실이란 말이다. 한데, 내 사전에 과실이란 존재치 않아.”
“그렇군요. 그거 믿음직하네요.”
대답하는 아렌.
하지만, 아렌을 오래 보고 지낸 발커스는 아렌의 표정을 보고 낌새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아렌? 이 안에서 뭐가 일어나는 거, 맞죠?”
“안에서 일어날지 밖에서 일어날지는 모르죠.”
“그게 무슨 소리예요?”
“저들도 뻔히 보이는 수법을 쓰지는 못할 테니까요. 사고로 둘러댈 방법을 택하겠죠. 그러니 방법은 한정되어 있어요.”
아렌이 또다시 위험을 자초했다는 사실을 안 발커스는 거친 한숨을 토해냈다.
“하아… 혹시 위험한 데만 보면 들어오고 싶은 병이라도 있어요?”
발커스의 한탄. 그리고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터커가 끼어들었다.
“잠깐,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야?”
터커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하는 둘.
“하지만, 황궁에서 방문한 둘이 한꺼번에 죽으면 너무 작위적이겠죠. 사고로 죽었다는 증언도 같이 온 자들이 해줘야 신빙성이 있을 테고.”
그리고, 지금 타린은 밖에 있었다.
안색이 새파래진 발커스에 비해, 터커는 아직도 무슨 말을 하는지 머리에 물음표를 동동 띄우고 있었다.
아렌은 물었다.
“혹시 터커, 주변에 뭔가 달라진 건 없나요?”
“달라진 거? 갑자기 그렇게 말해봤자…”
주변을 둘러본 터커.
그러고 보니 지나치게 주변이 고요했다.
“…이상하네. 철수 명령도 안 내렸는데 인적이 없어도 너무 없는데? 원래라면 이 주변에도 광도 정리작업이-”
그 순간.
콰앙!
뼛속까지 울리는 굉음과 함께 아렌이 내려와 있는 광도가 뒤흔들렸다.
“뭐, 뭐야?!”
다급하게 올라가는 발커스.
하지만, 방금 전 그들이 내려왔던 광도의 천장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걸 본 터커의 눈이 크게 떠졌다.
“광도가 무너져?! 탄광도 아닌데?”
광산 경험이 많은 터커에게 지금 상황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탄광이 아닌 광산이 무너지는 건, 역시 이상한 상황인가요?”
“아까도 말했잖아! 이런 암반이 단단한 광산은, 파 내려가긴 어려워도 한번 파놓으면 어지간해선 무너지지 않아. 위아래로 광도가 복잡하기 촘촘히 있다면 또 모를까, 이렇게 단층으로 직선에 가깝게 파 내려간 광산이 무너진다는 건-”
“일상적이지 않다, 이 말이죠. 언젠가 때가 온다면 지금 상황을 그대로 증언해주세요.”
“…?”
캄캄한 광도 한복판에 갇혔는데도 아렌은 그리 당황한 기색이 아니었다.
“어떡하죠, 아렌! 우리 이대로 파묻혀 죽는 거예요?!”
가뜩이나 어둡고 좁은 곳이라 신경이 곤두서있던 발커스가 거칠게 말했다.
따라온 태양교 개혁파 콜론도 불안한 건 마찬가지지만, 좁고 어두운 건 태양교의 대사원도 그리 다르지 않기에 발커스보다는 불안해하는 정도가 훨씬 덜했다.
그리고, 같이 매몰된 처지인 아렌은 전혀 불안해하지 않았다.
“괜찮을 거예요. 그쵸, 터커?”
“어? 그야. 돌에 깔린 것도 아닌데 뭐. 막힌 길은 반나절이면 금방 뚫어줄 거야.”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곳으로 나가는 길도 있지 않나요?”
“그거야 있긴 하지만… 그걸 어떻게 알았지?”
“안내해주시죠. 아마 이곳은 꽤 오랫동안 뚫리지 않을 테니.”
터커는 얼떨떨하면서도 아렌을 밖으로 안내했다.
내부가 무너진 상황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면, 안을 무너뜨린 자들도 알 것이다.
이 안에 광부장이 같이 묻혀있고, 그렇다면 이들의 발을 묶어놓을 수 없다는 것도.
“원래 광도를 팔 때는, 중간에 다른 광도로 연결되는 샛길을 만들어놓지. 완전히 갇혀서 생매장당하는 일을 최대한 줄이도록. 광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들어오면 길 잃고 헤매기 딱 좋지만, 애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광산에 들어올 일 자체가 적으니. 그런데, 그걸 아렌 나리는 어떻게 알았지?”
“명색이 선페일 지역과 그 은광산에 들르는 거잖아요? 따로 조사해봤죠.”
“허, 참. 그런 것까지 조사하나, 보통?”
아렌은 보통이 아니기에 조사했다. 아렌은 이곳에 은광이 열릴 거라는 사실과 사건이 일어난다는 걸 5년 전부터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사관의 명확한 사인을 모르는 이상 사건과 관련 있을 만한 모든 것들을 닥치는대로 알아본 후였다.
‘광부장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방금 길을 막은 것만으로 우리를 죽이기 충분했겠지. 하지만 광부장과 함께라는 걸 금방 알아챌 거야. 그렇다면.’
사람 몇 명을 묻기 위해 광도 전체를 무너뜨릴 순 없다.
그게 비효율적인 건 둘째치고, 순수하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광도는 일부러 무너뜨릴 목적으로 짓지 않고, 최대한 튼튼하게 지어진 광도를 단번에 무너뜨릴 도구는 존재치 않으니까.
광부장과 같이 들어왔을 때, 아렌은 이미 적어도 사고사로 위장된 살해만큼은 당하지 않을 거라 확신했다.
‘누군가 광도가 무너지게 손을 쓴 거라면 앞으로 손쓸 방법은 두 가지.’
어두운 광도 부근에 숨어있다 직접 살해하거나 혹은.
‘아니면, 따로 떨어진 타린을 노리거나.’
아렌은 첫 번째 삶에서 타린이 죽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까지는 모른다.
어차피 전생에 비해 1년 정도 일찍 온 셈이니, 역사 그대로의 죽음을 맞는다는 보장도 없어 알아봤자 소용없겠지만.
“자, 이쪽 굴이 샛길이야. 옆 광도로 나가지. 고상하신 분들이 지나가기엔 조금 좁겠지만-”
“아뇨, 충분한데요.”
터커가 안내한 샛길은, 몸을 비집고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온몸에 흙먼지가 묻을 테지만 아렌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 중앙에서 온 귀하신 분들은 이런 것 못 참던데 신기하고만.”
“저야 원래 미천한 출신이라서.”
“…그런데 그 나이에 요직에 있다고? 어지간히 재능있는 모양이고만.”
혀를 내두르며 좁은 굴을 비집고 들어가는 터커.
그 뒤를 아렌과 발커스, 그리고 콜론이 뒤따른다.
좁은 틈을 지나왔을 때.
“거기 터커 두목입니까!?”
횃불을 든 광부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지나치게 크고 불안정한 횃불은, 설령 탄광이 아니더라도 광산 안에서 쓸만한 것이 아니다.
횃불은 목질이 단단하고 묵직한 몽둥이에 만들어져있어, 둔기로 적합해 보였다.
“뭐냐, 그 횃불은?”
광부장 터커에게도 어색하게 보였는지 그는 횃불에 대해 물었다.
“이건, 급하게 달려오느라. 그보다 다친 사람은 없습니까?!”
“없다. 그보다, 너희 쪽에 다친 녀석은 없냐?”
“네. 없습니다. 피차 다행이군요.”
대화하며, 광부가 천천히 다가왔다. 터커나 뒤에 있는 콜론은 딱히 광부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긴장한 건 아렌과, 대충 상황을 이해한 발커스 뿐.
그리고 어느 정도 접근한 광부가 횃불을 든 손에 힘을 주는 순간.
“아렌 공! 여기 있었습니까!”
광부들 뒤에서 나타난 건, 온몸이 잔뜩 더러워진 감찰관 타린이었다.
“…타린? 여기 어떻게?”
“굴이 무너졌다기에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무사들 하셨군요!”
“이 안쪽은, 괜찮아요?”
“이 안쪽이라뇨?”
아렌은 손으로 타린의 몸 곳곳을 가리켰다.
잠깐 횃불로 옷과 몸에 묻은 검댕을 비춰본 타린은, 못 본 것을 본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워서 헛것을 본 모양이네요. 이 안은 위험하니 그만 올라가시죠.”
타린의 성토에 마지 못해 위로 올라가는 아렌.
타린보다도 먼저 도착했던 광부들의 표정은, 명백한 아쉬움이었다.
황제의 파견 조사관 타린과, 고드프리와의 악연이 있는 비서관 아렌.
아렌의 계산이 맞다면 둘 중 하나가 사고로 죽는 그림은 태양교가 썩 원할만한 구도다.
반대로 말하면, 둘 다 한곳에 있다면 상대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는 것.
‘위험한 순간을 넘겼군. 당신이나 나나, 피차.’
사실은 자신이나 타린을 향한 위협을 빌미로 역공할 생각이었으니, 아렌의 생각이 다소 빗나간 셈이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빌미야 만들면 그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