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68화 (68/227)

#068화

태양교의 사절단을 인솔하던 수신관이 황궁의 정원 안에서 살해당했다.

그 사실은 태양교도들의 분노를 사기 충분했지만, 곧 그가 아트마 교의 제식용 단검으로 정원사를 찌르려 했음이 밝혀지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물론, 그 사실만으로 모든 것을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황궁 안에서 태양교도들의 목이 뻣뻣하게 서 있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자들은 많았고, 정원사의 증언만으로도 태양교 수신관의 심중을 유추하기에는 차고 넘쳤다.

‘…그리고, 그건 황제도 원하는 바지.’

아렌은 황제가 가까운 미래에 태양교를 핍박할 것을 안다.

아렌의 설계는, 황제가 가려워할 곳을 미리 긁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황제는 이례적으로 태양교의 남은 책임자를 불러들였다.

어째서인지 그 자리에는 레온나토스, 그리고 아렌도 불려 나와 있었다.

‘…황제가, 왜 우리까지? 이런 걸 구경시켜주려고 한 건 아닐 거고.’

황제는 여전히 황금 가면을 쓴 두 금면병 사이에서 유황같은 분노를 쏟아냈다.

“감히! 짐의 황궁 한복판에서 흉포한 행동을 저지르려 하다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신을 섬기는 자들이라 말할 수 있나!”

“어, 억울하옵니다, 폐하! 정원사의 증언만으로 저희를 몰아세우시는 건 너무 가혹하신 처사입니다! 고작 저 이교도들을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려 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전하의 초대를 받고 온 자들입니다! 무엇이 조급하여 이런 일을 벌인단 말입니까!”

조아린 두 사제의 말은 이치에 맞다.

다만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건, 교국과 제국의 관계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선페일의 은광산의 효용가치가 극과 극으로 나뉜다는 것.

그리고 황제는, 이런 빌미를 절대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꽤나 재밌는 말들을 하는군. 그렇다면 자네들은 지금, 짐의 부하가 거짓이라고 고했다는 것인가?”

“그, 그것은 아니오나-”

“그럼 방금은 실언한 것인가? 감히 짐 앞에서? 말을 실수로 흘려?”

“…….”

“아직 조사가 진행되진 않았으나, 앞으로의 조사 여부에 따라 네놈들, 그리고 교 자체에 대한 처분을 결정할 것이다.”

“폐하, 제발 자비를 청하옵니다.”

“지금 당장 네놈들의 사지를 성문밖에 걸어두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자비다.”

황제가 초청한 사제가, 황궁 안에서 살인 시도를 했다.

황제로서는 그것만큼 좋은 재료가 없다.

조사관을 파견해 태양교의 비리를 파해칠 절호의 빌미였고, 그 경과에 따라 그들로부터 은광산을 몰수하거나, 죗값을 덮어주는 조건으로 양도받을 수도 있었다.

황제가 종교를 겁박해 사유재산을 강탈했다는 눈총을 완전히 피하긴 어렵겠지만,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있다면 그 색깔이 희석되는 것도 사실.

호된 질책을 들은 태양교 사제들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회견장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회견장 안에 남은 건 레온나토스와 아렌.

‘…자, 레온나토스 뿐 아니라 나도 남겼다라. 무슨 말을 할지는 대강 예상 가지만.’

아렌의 안색은 아까부터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일부러 아침 식사를 과식해 낯빛을 창백하게 한 것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죄책감으로 인한 후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전하! 제 불찰이었습니다! 절 벌해 주십시오!”

“아렌, 무슨 말인가! 자네 탓이 아니야!”

자책하는 아렌과, 그걸 말리는 레온나토스.

사제 둘을 질책할 때보다는 한결 침착한 어조로 황제는 말했다.

“죽은 수신관은 이틀 전, 아렌 네놈의 점술관에 들어갔다고 하더군. 그곳에서 무슨 말을 한 것이냐.”

황제가 지적할만한 부분이었다. 아렌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준비해둔 말을 했다.

“한순간의 결단이 극과 극의 결과로 나올 수 있으며,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있다면, 그대로 행했을 때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 수신관은 ‘큰 대가’를 ‘보상’으로 잘못 받아들였던 듯합니다. 제가 좀 더 명확히 말해줬더라면 이런 일은…”

“그게 사실인가?”

아렌이 공들여 지은 낙일관이니만큼,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절대 외부로 나가지 않는다.

설령 의심을 사는 한은 있더라도, 고작 의심만으로 유력한 황권주자인 레온나토스가 신임하는 비서관을 내칠 수는 없다.

“혹시, 다른 것을 알려주지는 않았나?”

“다른 것이라니, 어떤 것 말씀이십니까? 황송하오나 짐작 가는 바는 없습니다.”

아마 수신관 펠릭스가 정원사에게 덤벼들며 외쳤던 말 ‘가면’이란 말 때문일 것이다.

정원사와 가면을 쓴 병사, 금면병의 관계는 황궁 안에서 가장 은밀한 비밀 중 하나였다.

충분히 사제를 생포할 실력이 있음에도 곧바로 죽여버린 것도, 그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 나가는 걸 우려했기 때문이다.

‘당장 의심을 피할 순 없겠지. 아마 내 행적들도 감시당하고 있었을 테고.’

하지만, 아렌은 수국 정원 회담 이후 태양교 수신관하고만 접촉한 것이 아니었다.

교국 사절단과 테오드릭, 가웨인과도 비슷한 정도로 접촉해왔기에 오히려 문제 삼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네 입장이군. 우선은 알겠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황제에게 별로 나쁘지 않기도 하기에, 황제도 아렌에게 별다른 주의를 주지는 않았다.

아렌은 지금 상황을 하나의 지표로 삼았다.

‘그 결과가 황제 자신에게 이득이라면, 다소의 공작 정황 정도는 불문에 부치는군. 좋은 사례를 얻었어.’

*****

황제의 회견장을 나온 후, 레온나토스는 아렌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아렌. 그간 내게 하지 않은 말들이 있다면 이제 해주지 않겠나. 최근 며칠간은 내게 보고하지 않고 행동하는 것을 용인해줬다면.”

“그렇지 않아도 지금쯤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전하.”

아렌은, 레온나토스를 낙일관으로 안내했다.

자신을 굳이 낙일관으로 안내하는 아렌에게, 레온나토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낙일관? 내 집무실이라면 괜찮을텐데-”

“집무실 주변도 핀이 살펴봐 꽤 안전하다고는 하나, 예전에 지어진 곳입니다. 모든 천장과 벽을 뜯어본 것은 아니지요. 낙일관이라면 제가 관여해 지었기에 확실히 안전합니다.”

“…낙일관 안의 이야기는 확실히 안전하다라. 혹시, 테오 형과 가웨인 형님과도 그런 것이었나?”

“물론입니다. 두 분이 그곳에서 점만 보신 것은 아니죠.”

아렌은 레온나토스 본인에 의해, 모든 것을 보고하지 않고 어느 정도 자율적인 행동을 보장받았다.

레온나토스 본인이 알았을 때 오히려 불리할 만한 일이나, 나중에 알리는 것이 유리한 일의 경우에 한해서이지만 그 판단도 아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웨인 전하는 테오드릭 전하가 범인이라 의심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테오드릭 전하는 그 반대였지요.”

당연한 귀결이다.

아렌은 점괘에 나왔다는 명분으로 두 교단과 세 황자를 정원에 불러들였다. 이 안에 전쟁을 조장하는 누군가 있을 확률이 높다면서.

그리고 황자들만은 그 범인이 황자들 중 누군가임을 알고 있다.

즉, 실질적으로 범인 후보는 가웨인과 테오드릭, 레온나토스 중 하나.

거기에서, 실은 상관 없을 것 같던 태양교의 사제가 황궁 안에서 음모를 꾸미려다 오히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외부에서 보기에, 저 세 황자 중 하나와 손을 잡았다고 보기에 충분한 정황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도 레온나토스 전하가 전쟁을 원할 이유도, 실리도 찾기 힘듭니다. 자연히 후보는 가웨인 전하와 테오드릭 전하, 두 분으로 좁혀지겠지요.”

“아렌 너는 누가 범인인지 알고 있나?”

“모릅니다.”

아렌은 산뜻한 얼굴로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굳이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건, 어째서지?”

“가웨인 전하와 테오드릭 전하, 두 분의 혐의는, 사실 입증되기 힘든 것입니다. 확실한 물증이 없는 이상 오직 의혹뿐이죠. 그리고, 테오드릭 전하도 유망한 황권경쟁 주자시지만 가웨인 전하보다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둘이 같이 거론되는 만큼, 가웨인 형님의 이름값은 내려가고, 테오드릭 형님의 이름값은 올라간다. 이 말인가?”

‘역시, 레온나토스는 금방 알아채는군.’

“맞습니다. 두 분의 존재감이 비슷하게 맞춰지는 동안, 전하께선 두 분과 차별화되어 더 부각되실 여지가 있지요.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는 겁니다.”

이 상황은 아렌에게 꽤나 익숙했다.

첫 번째 삶에서 아렌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무사안일한 생활이었다.

갈등이 있어도 그것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며,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항상 주변인으로만 있었다.

이 갈등을 지속시키고 유지하는 건, 보통은 득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주목이 세 황자에게 쏠리고, 다시 둘과 하나로 나뉘는 건 다른 일이지.’

특히나 후보들을 추려낸 것이 레온나토스의 가신, 아렌의 점괘로 인한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둘 사이에서 누가 범인인지 추려내는 진실 공방을 벌일수록 레온나토스의 입지도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리고, 테오드릭의 몸값이 덩달아 오르는 것도 내게는 좋은 일이지.’

테오드릭과는 비밀 동맹을 맺었다. 그의 성장은 아렌에게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테오드릭과 가웨인 간의 기 싸움은 만성화되겠지. 주변에 다른 갈등은 치워버리는 게 나아.’

다행히 교국의 사절단, 아르테는 진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교국의 사절단은 한결 홀가분한 마음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태양교도들도 마찬가지. 그들은 수신관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의혹에 제대로 된 변명조차 못 한 채 자신들의 총본산인 선페일 지역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전에 마지막으로, 선물 정도는 줘야겠지.’

*****

태양교도들이 머무르고 있는 외부인용 숙소는 분주한 소리가 한창이었다.

하루 전만 해도 황궁 안을 제집처럼 편히 생각하던 태양교였지만, 지금은 달궈진 철판 위를 걷는 것처럼 다급했다.

황궁에서 멀리 떨어진다고 황제의 분노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들에게 우호적인 시선이 확연히 줄어든 황궁 안에서 오래 있고 싶지는 않겠지.

그리고, 그 앞을 아렌이 얼쩡거렸다.

임시로 인솔자 역할을 대신 하는 신관이 짐 정리하던 허리를 펴다 아렌을 봤다.

“…당신은.”

신관은 노골적으로 눈가를 찌푸렸다.

“여기에 무슨 일이십니까.”

“급히 황궁을 떠나신다는 말을 들어서 말입니다. 수신관께 드린 점괘가 오히려 그분을 부추긴 것 같아,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사죄? 아렌 공이 수신관님을 부추긴 것, 제가 모를 줄 압니까? 둘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늦은 밤 숙소 앞까지 들러 수신관님을 불러낸 것을 알고 있단 말입니다.”

“부추겼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군요. 늦은 밤 수신관을 만난 것은, 황제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일입니다.”

“…….”

아렌의 입에서 황제라는 단어가 나오자 사제의 추궁도 멈췄다.

처음 왔을 때는, 오해가 갈만한 점괘로 수신관을 그릇된 방향으로 등떠민 것을 사죄하는 듯한 태도였다.

하지만 잠깐 이야기 나누는 사이, 아렌의 태도는 어느새 바뀌어 있었다.

“제가 늦은 밤, 수신관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아십니까?”

“…그걸 제가 알아야 합니까?”

‘역시, 자세한 사정은 모르는군. 수신관이 비밀로 한다는 약속은 잘 지켰어.’

“그때 이야기한 건, 고드프리 전하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고드프리 님이요?”

“네.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지만요.”

아렌은 그에게 예법에 맞게 고개를 숙이며, 쐐기를 박듯 말했다.

“부디 고드프리 님께 안부 전해주십시오. 조만간, 제가 만나러 가겠다고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