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가웨인은 아렌과의 점술을 마치고 자신의 별궁으로 돌아왔다.
별궁 안에는, 몰디나가 혼자 점술을 펼쳐놓고 있었다.
살면서 점괘를 거의 본 적 없는 가웨인이지만, 척 보기에도 아렌의 점술과 몰디나의 점술은 카드의 배치 모양부터 달랐다.
가웨인은 물었다.
“지금, 무슨 점을 보고 있지?”
“아, 송구스럽습니다. 실은 전하에 대한 점괘를 보고 있었습니다. 점을 보기 전에 먼저 말씀드려야 했습니다만, 늦어지시기에 그만.”
“아니, 아닐세. 점을 보는 게 자네의 일이니. 그런데, 할 일을 했다고 죄송할 것까지야. 그래, 무슨 결과가 나왔지?”
가웨인의 대답이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달라진 태도에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몰디나는 말했다.
“…전하께선 지금, 무언가에 대한 고민과 의심으로 괴로워하시는군요. 자칫하면 그 의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흠, 그렇지. 그래서? 점술은 그것을 해결할 방법도 제시하지 않나?”
몰디나는 탁자 위 마름모꼴로 늘어선 카드들을 몇 장 더 뒤집었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양하지 않고 말씀하시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군.”
지금까지 가웨인은 살아오면서 그다지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두뇌로 하기보다 척추, 손끝이 내리는 반응에 더 몸을 맡긴 적이 많았던 가웨인이었고, 그렇게 한 선택의 결과 역시 그리 나쁘지 않았으니까.
실제로 가웨인이 아렌을 찾아간 것 자체는 맞는 의혹이었고, 테오드릭과 아렌 간의 형언 못 할 의혹 역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토록 예민했던 가웨인의 감을, 아렌은 다른 쪽으로 향하도록 손을 썼다.
“그렇다면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과연, 아렌 녀석이 한 말이 사실일까?’
약간의 기대감마저 품은 채 가웨인은 물었다.
“몰디나 자네, 내게 하지 않은 말이 있지 않나? 가령 레온나토스의 비서관 아렌에 대한 것이라든지.”
“…알고 계셨군요.”
불시에 나온 말이었지만 몰디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가웨인은 온갖 음모가 판치는 황궁 안에서 오랫동안 깊이 뿌리내린 자.
이만한 정보력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음? 놀라지 않는군. 내가 물어볼 것을 미리 점쳐서 알고 있었던 건가?”
“그것은 아닙니다. 점술가는 스스로에 대해 점칠 수는 없지요. 전하라면 알고 계셔도 이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흥. 그렇게 말하니 더 무안해지는군. 단지 아렌 녀석이 내게 말해줬을 뿐인데.”
“아렌 공이, 말입니까?”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아렌 녀석이 한 말은 사실인 모양이군.”
가웨인이 한 말에 몰디나는 고개를 떨궜다.
‘…휴. 아렌 공도, 내 영입에 대해 말할 거면 먼저 나한테 귀띔이라도 해줄 것이지.’
둘의 이해가 엇나갔다.
가웨인이 몰디나가 아렌을 점칠 수 없는 것을 숨겼다고 받아들였고.
몰디나는 자신이 가웨인과의 고용이 끝난 후, 아렌에게 다시 고용됨을 말한다고 받아들였다.
가웨인은 한층 섭섭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왜 그것을 굳이 내게 이야기하지 않은 건가. 굳이 숨길 이야기도 아니지 않았나.”
“그것은, 말씀드리기 송구해서 그랬습니다. 제 몫을 다하지도 못하는 와중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몰디나의 말은 자신의 이적에 관한 말이다.
“흥, 내가 그런 것도 신경 써주지 못 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놈으로 보였나? 세상엔 어쩔 수 없는 것이 있는 법이지.”
물론 아렌에 대한 점괘를 볼 수 없는 것에 관한 말이다.
몰디나는 가웨인의 말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언젠가는 말씀드려야겠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흔쾌히 이해해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물론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니, 언제든 마음을 다잡으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말에 가웨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포기하지 않고 점을 봐, 언젠가는 아렌의 점괘를 꼭 보겠다는 말인가?’
“오, 그래. 물론이지. 꼭 성공하도록 기원하지.”
그 말에는 반대로 몰디나가 갸우뚱했다.
‘…성공하라고? 하긴, 아렌 공의 제안이 있었어도 레온나토스 황자님이 윤허해야 가능할 테니까. 그런데, 가웨인 전하도 내가 레온나토스 전하 아래 들어가길 원하시나?’
둘 사이의 오해 격차는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네, 감사드립니다. 물론 아직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닙니다만.”
“벽 앞에 섰을 때 망설여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이해하네.”
“……?”
“……?”
둘 사이의 이야기가 조금씩 어긋나기도 했지만, 결정적이지는 않았다.
“아무튼, 몰디나 자네에게 확실히 말하도록 하지.”
“말씀하십시오.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절대, 내게 숨기거나 속이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게.”
“…네. 그러겠습니다.”
“만약, 내게 또 숨기는 것이 있고 그걸 알게 된다면-”
몰디나는 숨을 죽였다.
아렌은 가웨인을 둘러싼 소문의 진상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아직 몰디나는 모르고 있었다.
“-그때는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거든.”
*****
아렌은 교국의 주교, 아르테에게 기별을 보냈다.
낙일관 안이라면 은밀한 이야기를 하기에 딱 적합하지만, 그 안으로 타국의 시녀 하나를 불러들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렇다고 황궁 안 모두에게 개방하는 것도 거추장스러운 일.
둘은 전에 모두를 불러놓고 이야기를 나눴던 수국 정원에서 모이기로 했다.
‘테오드릭에 대한 이야기도 해야 하니까.’
아르테라면 곧바로 알아들었을 테지만, 혹시 모른다.
아렌으로선 테오드릭이 범인이라는 걸 교국이 영영 모르는 편이 낫다. 어차피 이제 양국 사이의 이간질은 일어나지 않을테니, 사건은 이대로 묻어두는 편이 이득이다.
“…이거, 내가 일찍 왔나?”
아렌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몰디나가 오려면 조금 시간이 남은 듯했다.
“잠깐, 실례해도 되겠습니까.”
아렌만 있는 정원이 모습을 보인 건, 보라색 로브를 뒤집어쓴 태양교의 사제였다.
“비서관 아렌 공께 인사드립니다.”
태양교의 사제는 고개를 숙였다.
분명 소개를 들었던 것 같지만, 별로 기억해두고 싶지 않아 기억에서 지운 자였다.
어차피, 곧 있으면 태양교의 인물 대부분은 기억해 둘 필요가 없어지기도 하고.
“이런 곳에서 뵙는군요. 그런데, 신실한 태양의 종께서 이런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마치 절 미행이라도 하신 듯합니다?”
아렌은 품속에 있는 단검의 감촉을 확인하며 물었다.
황궁 안에서 칼을 숨기고 있다는 건, 괜한 오해를 사기 딱 좋은 행동이지만 만약의 사태는 언제고 일어난다.
오히려 다사다난한 황궁 안에서 아렌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아무런 무장을 하지 않은 편이 더 희귀하다.
“미행이라니, 오해받을 말씀을 하시는군요. 저는 단지, 아렌 공이 인적 드문 곳으로 향하시길래 그 뒤를 따랐을 뿐입니다.”
‘그걸, 미행이라 하는데.’
“그렇군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선약이 있어 오래 이야기를 나누진 못할 것 같습니다만.”
“별일은 아닙니다. 다만, 범인을 찾는 것은 어찌 되었는지 너무 궁금하여 여쭙고자 찾아왔습니다. 외부인인 것은 아오나, 너무 궁금한 나머지….”
‘…흥. 그렇군.’
굳이 사제의 속마음을 파헤치지 않아도, 그가 원하는 바는 제법 투명하다.
태양교로서는 제국과 교국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교국과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제국은 더욱더 태양교의 은광산에 기댈 수밖에 없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국은 흉수 한 두명의 손으로 전쟁이 일어날만큼 녹록하지 않으니까요. 범인이 누구이든, 제가 꼭 잡아내고 말겠습니다.”
“…오오, 그것참 든든한 말씀이시군요.”
말과는 다르게 태양교 사제는 아렌의 대답에 명백히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것 봐라. 범인이 발각될 것 같으면 뭐라도 할 것 같은 태도인데?’
설마하니 이곳 황궁 한복판에서 뭔가를 획책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지만 아렌이 보기에, 태양교 사제는 정상과 비정상,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황궁 안에까지 태양교를 전파시키고 싶었겠지. 그 가교로서 고드프리에 기대가 높았을 테고.’
하지만, 고드프리는 황궁에서 축출되었다.
‘그간 탄압도 많이 받았겠지. 그러다 최근에 은광이 발견되었으니, 거기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부풀었겠지?’
아무리 제국이라도 교단의 소유인 은광산을 함부로 할 순 없다.
황제는 대륙 안 누구보다 가진 것이 많기에, 자신의 신민들이 가진 재산 또한 인정하기 때문이다.
황제가 신민의 자산을 부당하게 갈취하는 순간, 대륙 안에서 자산을 가진 모든 자들의 불신을 사게 된다.
태양교로선 자신들의 은광산으로 제국의 목줄을 움켜쥐고 싶었을 테지만. 그것도 제국이 교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순간 무의미해진다.
태양교는 은 독점을 통해 막대한 이익은커녕, 교국의 은광과의 치열한 가격 경쟁에 돌입해야 할 수도 있는 것.
태양교의 사제는 조금 비굴해 보일 정도로 낮은 태도로 아렌에게 말했다.
“만약, 제가 범인에 대해 알게 된다면 그땐 꼭 아렌 공을 부르겠습니다.”
황궁에 초청받아 들어올 때의 의기양양하던 모습과는 사뭇 상반된 태도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굳이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감시하면 범인이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하는 법이죠.”
“물론이지요. 저희 태양의 종들은 언제나 제국의 충실한 신하이지요. 필요한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주십시오.”
‘…태양에게는 종인데, 제국에게는 신하라고?’
생각 없이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종과 신하는 지위 고하가 확연히 다르다.
제국의 심장부에서, 제국보다 신의 이름을 더 위에 올려놓은 셈이지만 그것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태양교 사제는 절박한 듯했다.
‘…만약 나 하나 죽여서 범인을 못찾게 된다면, 위험 부담을 질 만하다고 여기려나? 아무리 그래도 보통은 선택하지 않겠지만…’
지금 태양교 사제의 속마음을 유추해도 알 수 없다. 지금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더라도, 1시간 뒤에는 또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만약, 나에 대해 손을 쓸지 말지 망설이고 있다면-’
태양교 사제를 바라보는 아렌의 눈이 번뜩였다.
‘절대 들통나지 않을 상황이 온다면, 그때는 엉겁결에 손이 나오겠지?’
“사제님께서 그렇게 헌신적으로 대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제님만 괜찮으시다면, 차후에도 개인적으로 찾아 뵈어도 되겠습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송구하여 제 쪽에서 먼저 말씀드릴 수 없었는데, 먼저 제안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렌은 슬그머니 웃었다.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걸려드는 척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보다도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그건, 상대가 걸려들 수밖에 없는 함정을 파놓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