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63화 (63/227)

#063화

가웨인의 얼굴에 처음 떠오른 건 뚜렷한 불쾌감, 그리고 그 기저에 희미하게 깔린 약간의 흥미였다.

“너 이자식, 설마 테오드릭에게도 이딴 짓을 한 거냐?”

“이딴 짓이라니, 어떤 것 말씀입니까?”

“기껏 불러다 놓고는 속을 뒤집는 질문이나 해댔냐는 말이다.”

‘흠. 역시 가웨인이로군.’

상대를 뒤흔들수록 속마음 아래 가라앉은 진심이 위로 떠오른다.

가웨인의 날카로운 본능은 아렌의 의도 한중간을 관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하. 본디 점이란, 그자가 진심으로 알고 싶어하는 것을 물을수록 제대로 된 답이 돌아오지요. 전하께서 테오드릭 전하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그 전에 자기 자신에 대한 것부터 아는 것이 먼저겠지요.”

“무용한 일이다. 어차피 내게 있었던 일은 이미 다 알고 있어. 네 물음에 답해줄 이유도, 굳이 점쳐볼 이유도 없단 말이다.”

“하지만 점술가들도 대부분 미래를 점치기 전, 그자의 과거를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미래는 결국 과거의 연장선일 뿐이고 과거 없이는 미래도 없기 때문입니다.”

“…흥, 말은 청산유수군.”

가웨인은 마지못해 수긍하는 눈치였다.

물론 점술가들이 고객의 과거를 먼저 짚고 넘어가는 건, 자신이 얼마나 유능한 점술가인지 고객에게 확인시켜주는 것이었지만.

“전하께서 불편하시다면, 대답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답은, 카드와 정령이 해줄 테니까요. 전 멋대로 질문을 던지기만 하겠습니다.”

“…….”

가웨인의 심기가 썩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그것으로 무언의 대답은 되었다.

형식상의 행동일 뿐이지만, 아렌은 카드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가웨인에게 질문했다.

“자신의 가신을 스스로 참살했다는 소문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까?”

“두 명이었습니까, 아니면 세 명? 혹은 네 명?”

“그들은 무고한 자들이었습니까?”

“아니었다면,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부정? 밀정? 혹은 암살자?”

“…….”

정말 가웨인은 아렌이 던지는 질문에 아무것도 답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의 표정이 이미 모든 답을 해주었으니까.

가웨인이 하인들을 참살한 것. 그것은 사실이다.

무고한 자들을 죽인 것은 아니다. 총 네명으로, 밀정, 혹은 암살자들이었다. 가웨인을 둘러싼 소문들이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가웨인은 실로 어릴 때부터 지속적으로 암살 위협에 시달려왔다는 뜻이 된다.

가신들을 참살한 것 역시 정당방위. 황제가 가웨인의 살인을 묵인해준 건 그를 아껴서가 아니라 그것이 정당했기 때문이겠지.

‘그리고, 자신이 언제든 가신들을 죽일 수 있는 냉혈한으로 비치는 것을 가웨인은 반기고 있어.’

소문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전하를 둘러싼 흉흉한 소문이 있었지만, 전하는 그것을 정정하려 하지 않으셨군요. 오히려 소문을 이용하겠다는 다짐으로요. 그것은 성공했지만, 한편 전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었군요.”

가웨인은 황궁 안에서 황제를 제외하고 가장 강한 사병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그 자신도 대륙 전체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

근골도 모두 성장한 지금 암살자 한둘 정도를 걱정할 시기는 지났다.

예전에는 자신의 잔악한 소문이 효과적이었지만, 지금은 반대로 주변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역효과를 낼 뿐.

“흠, 잘 말하는군. 물론 딱히 궁금했던 것도 아니고 필요한 내용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럼 이제, 다른 것을 점치기 위한 준비동작은 모두 끝난 건가?”

“네. 물론입니다.”

아렌은 실은 좀 더 많은 것을 파헤치고 싶었지만, 가웨인이 완전히 마음에 우러나 하는 점괘가 아니기에 이 이상을 파헤치는 건 무리다.

‘지금은 가웨인에 신뢰감을 줘서, 직접 더 자주 점괘를 보게 하는 게 중요해.’

아렌도 여태껏 가웨인이 무고한 궁인을 죽인 줄로만 알았다.

그것을 굳이 해명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하다는 가웨인의 판단 때문이었지만, 머리로 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본능이었다.

‘한껏 굶주려 감각이 극한까지 예민해진 눈표범.’

그것이 가웨인을 가까이 앉혀두고 얻은 아렌의 결론이었다.

아마 가웨인은 살아오면서 많은 결정들을 머리가 아니라, 감각으로 판단해왔을 것이다.

머리로 내린 의심이라면 둘러대기는 오히려 더 쉽다.

감각으로 내린 의심은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닌 만큼 얼버무리기 더 어렵고, 어줍잖은 해명은 또 다른 억측을 낳을 뿐이다.

‘…이미 테오드릭과의 무언가를 의심하고 있어. 이대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떼봤자 납득하지 않겠지. 자신의 감을 철석같이 믿어온 자니까.’

그렇다면, 다음 방법은 간단하다.

그의 ‘감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끼게, 그가 의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

“지금 전하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겠군요.”

“…뭐라고?”

“지금 무언가를 의심하고 계시지요. 그 의혹을 풀 곳은 이곳이라 여기기에 여기 오신 것이고요.”

“그거야, 굳이 점이 아니어도 알 수 있는 일이지.”

가웨인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지만, 아렌은 그 표정 아래에서의 동요를 읽었다.

여기서부터는 수 싸움이다.

“실은, 전하의 생각대로일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 대로라니?”

“몰디나 말입니다.”

“…….”

잠깐 이름만 흘렸을 뿐인데, 아렌은 가웨인의 표정에서 의혹과 확신의 감정을 동시에 읽었다.

‘역시, 몰디나도 의심하고 있었군.’

기껏 자신도 점술가를 가신으로 받았는데, 그녀에게서 먼저 점을 봤다는 징후는 어디에도 없었다.

반응으로 보아 확신은 없는 듯했지만, 몰디나에 대한 어렴풋한 의심 자체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가웨인은 밀정이었던 가신의 목을 직접 칠 만큼 배신에는 강경하지. 그리고 황자는 내가 몰디나에게 했던 제안을 몰라. 만약 몰디나가 그 사실을 계속 숨긴다면-’

가웨인의 검이 몰디나의 몸과 머리를 분리시키는 것도 시간문제다.

아렌이 이대로 거짓 정보를 몰래 흘려 그 결과 몰디나가 죽는다면?

몰디나는 그 자체로 아렌에게 위협이 되는 점술가이니 결과 자체는 아렌에게 이득이겠지만, 그 뒷맛은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아렌에게 쓸 수 있는 패는 그리 많지 않았다.

‘어쩔 수 없어. 가웨인의 눈을 테오드릭에게서 눈을 돌리게 하려면.’

아렌이 테오드릭과 손을 잡은 건, 말하자면 큰 음모.

그에 비해 아렌이 몰디나를 포섭하려 한 것은 어디까지나 권유. 알려져도 그리 이상할 것 없는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 몰디나가 아렌의 제안을 숨겼다면, 가웨인의 감각을 그곳으로 돌린다.

“몰디나가, 어쨌다는 거지?”

“전하께서 여기 방문하셨을 때부터 의아했습니다. 점괘가 보고 싶으시다면 먼 길 찾을 것이 아니라 몰디나의 힘을 빌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혹시, 이상한 말을 하지 않았습니까? 점을 봤는데 검은 구름이 보인다느니, 미래를 알 수 없다느니 하는 말들 말입니다.”

“그래, 자주 그러더군.”

“실은 그녀는, 저에게 아주 관심이 많을 겁니다.”

“왜지?”

“어떤 사람은 굉장히 드물게 점을 볼 수 없는 체질을 타고난다고 합니다. 제가 바로 그런 유형이었다고 합니다. 저도 몰디나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왜 내게 알리지 않은 거지?”

“이해해 주십시오. 몰디나가 본인의 실력에 대해 자부심이 있는 만큼 더욱 말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네가 느낀 위화감의 원인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라고.’

가웨인의 ‘감’을 속여먹을 용도로는 실로 적당한 미끼다.

게다가 완전히 둘러댄 말도 아니고, 그녀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는 사실이니 더더욱.

“전하께선, 제가 테오드릭 전하께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하시겠지요. 별것 없습니다. 행하면 앞으로 길할 만한 행동을 알려드린 것뿐이니까요. 자세한 건 말씀 못드립니다만, 아마 지금 곧바로 하고 계실지도 모르지요. 확인해 보시면 금방 아실 일입니다.”

“…정말 그것 뿐인가?”

가웨인이 아렌의 말을 곧이 곧대볼 맏아들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아렌은 테오드릭을 향한 의심의 물꼬는 틀어막고, 그 대신 의심의 방향을 몰디나 쪽으로 돌렸다.

‘시간 문제지만, 아직은 테오드릭의 주도권을 완전히 틀어쥐지 못했어. 여기서 방해가 들어오면 안 되지.’

“제가 전하께, 어찌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고개를 숙이며, 태연한 얼굴로 거짓말을 하면서 아렌은 말했다.

*****

먼저 태양교를 방문한 테오드릭은, 그다음 교국의 숙소를 향해 걸었다.

‘…나 더러, 두 교단을 번갈아 찾아가라고? 영문도 모른 채?’

테오드릭은 아렌과 비밀리 협력체제를 갖추었고, 아침 그의 베개 아레에선 누가 언제 넣어뒀는지도 모를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쪽지에 적힌 내용은 간단했다.

황궁을 방문한 두 교단을 번갈아 방문하고, 가서 적당한 말이나 하고 돌아오라고.

말하자면 문안 인사 같은 것이지만, 굳이 자신이 왜 해야 하는지는 테오드릭 본인도 모른다.

“…후, 벌써 피곤한데. 제발 아트마 교는 순순히 놓아주면 좋겠는데.”

잠깐만 이야기하고 돌아오고 싶었지만, 태양교 사제는 좋은 기회라는 듯 테오드릭을 붙들고 포교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공무가 있다 뿌리치고 나왔을 때는, 이미 테오드릭은 기진맥진한 상태.

그나마 다행이라면 태양 그 자체를 섬기는 태양교보다, 인간에서 신의 자리에 오른 신인(神人) 아트마를 섬기는 아트마 교도들이기에 개인의 수련을 더 중시하고 포교에는 그렇게 열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테오드릭은 교국의 인솔관을 만났다. 첫 마디는 태양교도들을 만났을 때와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인사가 부족한 듯해 굳이 찾아온 것이네. 수국 정원에서는 피차 여유가 없었으니.”

“배려 감사드립니다. 실은 황궁에 방문한 후 먼저 문안 인사를 드리고 싶었으나 연이 닿지 못하였습니다.”

“미안하게 되었군.”

둘의 표면적인 대화.

그리고, 그것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아르테가 있었다.

‘…흐응. 그렇단 말이지.’

이미 아렌과 이야기가 끝난 테오드릭.

그리고 테오드릭을 친히 아르테 앞에 갖다 두고, 이야기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알려주기 위한 아렌의 의도였다.

‘테오드릭과 아렌이 손을 잡았단 말이지. 범인을 곧바로 황제에게 갖다바칠 줄 알았는데, 도리어 포섭할 줄은 몰랐어. 그렇다는 말은, 우리 역시 테오드릭을 함구하라 이 말인가?’

정직한 자는 혼란을 두려워하고, 벗어나려고만 한다.

반면 책사는 혼란 속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항상 가늠하고, 혼란을 이용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한다.

‘아렌은, 책사로군.’

아르테가 자신의 영혼석과 계약이 묶인 후, 만난 사람들 중 유일하게 마음을 못 읽는 자였다.

아렌 역시 영혼석과 계약한 자였기 때문이지만, 덕분에 아렌의 능력이 무엇인지는 그녀도 모른다.

소문만을 기반했을 때 점술에 관련된 능력이겠거니, 막연히 생각할 뿐.

마음 속을 읽지 못하는 자는 아르테로서 불안하기 짝이 없는 위험요소다.

겉으로는 협력하다가 기회를 봐서 쳐낼 궁리도 했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범인을 갖다 바쳐 황제에게 꼬리를 흔들 수 있는데도 굳이 황자의 목줄을 틀어쥔 남자야. 그것도 고작 15살짜리지. 저만한 수완이라면, 계속 손을 잡는 것도 괜찮을지도?’

교국에서는 아르테가.

제국에선 아렌이 실권을 장악하고 그 둘이 서로 손을 잡는다면.

한 나라를 넘어, 대륙 전체의 정세까지도 주무를 강력한 동맹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되면 아르테 자신이 영혼석에 빈 열망에 한 발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아. 그러면 그것도 알려줘야 하나?’

아르테는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그자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영혼석 계약자 중에서도 사기에 가까운 능력이었고, 능력은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필요 이상의 막대한 정보들을 가져다준다.

가령, 전혀 알 생각이 없었던 자의 비밀에 대해서도.

‘수국 정원의 정원사에 대해서, 아렌은 얼마나 알고 있는 거지? 보통 인물이 아니던데.’

아르테에게, 속마음 깊숙한 곳까지 털어낸 테오드릭은 이미 뒷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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