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58화 (58/227)

#058화

아렌과 아르테, 둘 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밖에 내놓다시피 하고 있었다.

특히나 아르테는, 적국의 황궁에서 정체가 드러나면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것이다.

“내 능력을 알고 있다면 혹시, 내 능력도 알고 있나요?”

아르테가 물었다.

서로 간을 밖으로 꺼내놓다시피 한 문답. 아렌도 얻어내고 싶은 정보들이 있었기에 기꺼이 거기에 동참했다.

“…지금 서열이 몇 위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주교이긴 하겠죠. 적어도 지금의 교국 인솔관보다는 훨씬 지위가 높아요. 그렇죠, 아르테?”

“어머. 전 생각보다도 위험한 상태였군요. 설마하니, 이런 타국에서 저를 아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적어도 지금 시기에는요.”

아르테의 생각은 터무니없지 않았다.

아렌 역시 첫 번째 삶에서 그녀에게 된통 당한 후, 사방팔방 조사한 끝에 겨우 알게 된 것이었으니까.

그녀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는 건 25살이 넘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신관의 존재는 타국을 위협하기 충분했고, 아르테의 능력을 알게 된 나라들은 어떤 이유로도 방문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황궁 안에서 아렌만이 아르테의 정체와 능력을 온전히 알고 있다.

아르테에겐 꽤나 부아가 치미는 상황이다.

“그런데, 당신도 운명석의 영향을 받았으면 어떤 능력이 생겼겠군요, 당신은 무슨 능력이죠?”

“그건, 알려주고 싶지 않은데요.”

아렌의 대답을 들은 아르테의 눈꼬리가 길게 올라갔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 못한 거에요? 제가 교국의 사람이고 당신이 제국의 사람이니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목적만 일치한다면 우리는 둘도 없는 동맹 관계가 될 수도 있다고요.”

“네.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아닐 수도 있고요. 당신의 능력을 당신이 알려줬다면 모를까, 알아낸 건 순전히 저예요. 설령 아르테 당신이 알아낸다거나, 나중에 제가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지금 당장은 말해주지 않겠어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절 알아본 거죠? 이런 식으로 접근하다니, 그럴 이유라도 있었어요?”

아르테의 정체가 발각되는 순간 제국과 교국,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파탄난다.

동시에 제국에 머물고 있는 아르테 역시 무사할 리 없다.

“아렌, 당신을 찾아낸 이유요? 당연히 제 능력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운명석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서로의 능력으로 간섭할 수 없어요. 저도 직접 겪은 건 처음이지만요.”

“거기까지는 예상했어요. 하지만, 다른 의문도 남죠. 내 속마음도 읽지 못하는 상태에서 어떻게 다 밝힐 생각을 한 거죠? 경솔한 행동이었을 수도 있어요.”

아렌이 그녀를 바로 고발할 수도 있었다.

‘물론, 최소한의 안전 정도는 대비 했겠지만.’

그 수단이 무엇인지는 아렌도 모른다.

아르테는 말했다.

“그야, 당신 마음은 읽을 수 없지만 그 주변 사람들 속마음은 읽을 수 있으니까.”

“…내 주위 사람들?”

“네. 그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좀 알아봤어요. 여러 사람들의 관점을 교차해보니 당신의 됨됨이가 짐작 가더군요. 그리고, 당신의 입장도 말이죠.”

“…….”

아렌의 생각보다도 더 성가신 능력이었다.

누군가를 알기 위해선 그의 속마음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평가 역시 교차해서 판단한다는 뜻.

그녀의 눈에는, 인간관계를 이루는 촘촘한 씨실과 날실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듯했다.

아르테는 다시 한번 타이르듯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나라 이상의 동지가 될 수 있어요. 아니면, 내 생각과 달리 당신은 제국의 충실한 종이었나요?”

“…그건 아니죠.”

그녀가 한 말에는 가식 따위 없었다.

아렌은 아르테를 충분히 경계했지만, 그 경계심도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확실히, 아르테도 교국에 충성을 바치는 타입은 아냐. 서로의 의도만 맞다면, 우리는 꽤나 강력한 동맹이 될 수도 있겠지.’

마음을 정한 아렌이 물었다.

“우리 만약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제국과 교국, 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면. 일어나는 것과 일어나지 않는 것, 당신에게 어느 쪽이 더 이롭죠?”

아렌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아르테는 하얀 이빨을 보이며 씩 웃었다.

“이제야, 말이 좀 통할 것 같네요.”

*****

“저는, 양국 사이의 전쟁을 원치 않아요. 아렌 당신이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는 아렌의 능력이 뭔지 모른다.

아렌은 어둠 속에 떠오른 그녀의 표정만 보고도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다행이군요. 저와 입장이 같아요.”

“교국의 수뇌부들은, 모종의 창구를 통해 제국 안의 누군가가 양국 사이의 전쟁을 부추긴다는 것을 알았어요. 연장이 결정된 조약이 하루 만에 번복된 것도 그 영향일 거고요.”

제국의 황실에 스파이를 심어둔 건 비단 교국뿐만이 아닐 테니, 그리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황궁에 오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지만, 양국의 전쟁을 부추긴 사람은 없었어요. 전쟁이 일어난다면 기꺼이 반길 자들은 몇 있었지만, 그들의 계획은 아니었죠. 12번째 황자도 아니어서 상심하고 있던 차에, 설마하니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요. 게다가-”

“…게다가?”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후훗.”

아르테는 얼버무리며 웃었다. 아렌이 사람의 마음을 읽지 못했다면 이런 언동 하나하나가 의심의 단초가 되었을 테니, 적합한 언사는 아니다.

방 안의 조명은 탁자 위 촛대 하나가 전부였기에, 얼굴의 미세한 표정 변화에도 음영이 져 쉽게 분간이 가능했다.

이 공간 안에서라면 아렌은 사람의 마음을 더 잘 볼 수 있다.

‘…가소롭다? 귀엽다? 나를 업신여기는 건가? 아니,그런 기색은 적군. 적어도 부정적인 감정은 아냐. 그렇다면, 써먹어 볼 여지는 있겠어.’

아르테는 화제를 돌리듯 말했다.

“그런데 역시, 제국은 보통이 아니더군요. 온갖 군상의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으니.”

“…뭔가 특이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라도 있었나요?”

쿡, 아르테는 짓궂게 웃었다.

“그건, 다 알려드리면 재미없죠.”

“방금만 해도 우리는 가장 끈끈한 동맹이 될 거라지 않았나요?”

“아렌 당신도 모든 걸 다 알려주진 않았잖아요?”

“…….”

그렇게 말하면 아렌도 할 말은 없다.

“아렌 당신이 무슨 목적이 있든 간에, 고생깨나 하겠어요.”

황궁 안에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한 가지 음모가 있다고 한다.

아르테가 몇 가지 음모를 확인했을지, 아렌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어쨌든 이야기 처음으로 돌아가서, 아렌 당신은 누가 전쟁을 획책했는지 짐작 가는 사람이 없어요?”

“…글쎄요.”

아르테가 그만큼이나 성을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에도 전쟁을 획책하는 자를 밝혀내지 못했다.

적어도 계획의 말단에 있는 부하 정도는 그물에 걸렸어야 했는데.

아렌은 속으로 가늠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득인 자. 그리고 최근 두문불출한 자. 그리고 상대적으로 부하의 숫자가 적은 자.’

“아, 방금 뭔가 생각난 표정인데요?”

아르테가 아렌의 표정을 보고 넘겨짚었다.

물론, 그녀는 운명석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읽어낼 뿐 아렌이 아니다.

‘…하지만, 아르테의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걸 이용 안 하는 것도 아까운 일이지.’

검은 반지를 쓰다듬으며 아렌이 말했다.

“아르테. 잠깐 귀 좀 빌려줄래요?”

*****

셰오덴 제국의 제9 황자, 테오드릭은 최근 두문불출 중이었다.

교국의 사절단이 방문한 이후 자신의 별궁에만 틀어박힌 채, 외부로 가신들도 내보내고 있지 않은 상태.

그 가신들 중에는, 아렌이 처음 정보원으로 삼았던 시녀 아라흐네도 포함되어 있었다.

물론, 그녀는 테오드릭의 수많은 시녀들 중 하나일 뿐.

별궁 중앙에 마련된 연무장에서 테오드릭은 자신의 우락부락한 근육을 마음껏 드러낸 채 기둥만 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말씀드리기 황송합니다만, 테오드릭 전하.”

“훅, 훅. 뭐냐, 무슨 일이지?”

평소 별로 말을 붙여볼 일도 없던 시녀가 말을 붙이자 테오드릭은 휘두르던 목검을 땅에 내려두고 물었다.

“…레온나토스 전하의 비서관이 테오드릭 전하께 꼭 직접 전해달라던 서신입니다.”

“아렌이 나에게 직접? 그와 아는 사이인가?”

“전에 제 얼굴을 기억해두신 듯합니다. 그 외에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아라흐네는 아렌 앞에서야 쩔쩔 매지만, 그녀는 지금도 황제를 위한 밀정집단인 ‘황제의 눈’ 소속이었다.

테오드릭의 의심을 사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건 간단한 일이다.

테오드릭은 아라흐네를 물린 뒤 서신을 열었다.

[테오 형님, 레온입니다. 제국과 교국, 양국 사이의 전쟁을 부추기는 자가 있습니다. 아렌이 이 자에 대해 본 점괘가 있어, 꼭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범인에 대한 점괘가 있고, 그걸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테오드릭은 펼쳐놨던 자신의 서신을 황급히 닫았다.

주변에서 훈련중이던 무사가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전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서신을 본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정을 되찾지 못하고 떨리고 있었다.

*****

황궁 외곽에 있는 열두 정원중 하나인 수국 정원에, 아렌이 불러 모은 세력들이 모두 모였다.

태양교 신관과 아트마 교국의 사절단 대표, 가웨인 황자와 테오드릭, 그리고 레온나토스까지.

사방이 관목의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안에서 각 인물들은 서로적당한 거리를 두었다.

대동할 수 있는 수행원은 둘. 나머지는 모두 정원 밖에서 대기함과 동시에 허락받지 않은 인물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이들의 출입까지 전부 막다니. 그걸 정원사가 허락해주던가?”

“네. 아렌이 이미 허락 받았다더군요. 정원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죠. 만약 필요 이상의 소란이 생기거나 폭력행위가 발생한다면, 정원사에 의해 퇴출당할 겁니다.”

가웨인의 물음에 레온나토스가 답했다. 하지만 가웨인은 여전히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고작, 정원사 주제에? 뭐, 그래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만한 인원들을 굳이 이 곳으로 모은 이유가 있겠지?”

“물론입니다.”

대답하면서도 레온나토스는 아렌을 슬쩍 돌아봤다.

표면상 이 사람들을 전부 모은 것은 레온나토스였지만, 실상은 아렌의 주도였을 뿐.

이 회담의 목적과 해야 할 일은 미리 들어뒀지만, 레온 스스로도 미심쩍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만한 사람들을 불러 모으면, 전쟁을 사주한 범인을 알 수 있다고? 그게 그렇게 잘 될까?’

그리고, 레온이 슬쩍 돌아보고 있는 아렌의 시선은 어느 한 곳을 향해 있었다.

표면상의 교국 사절단 대표 퀴레스와, 그 시녀 자격으로 이 회담에 참가한 진짜 대표, 아르테.

‘어때, 이 중에 범인이 있나?’

대면하는 것만으로 속내를 전부 파악할 수 있는 사기적인 능력을 가지고도, 아르테는 그동안 범인을 찾지 못했다.

가능성은 크게 둘이었다. 사실은 전쟁을 원하고 획책한 범인 따위 없었던 것이거나, 기적적으로 아르테와 아직 맞닥뜨리지 않은 것이거나.

아렌은 전자와 후자 모두 가능성이 있다 생각하고, 이번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뒤에서 숨죽이고 있던 아르테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리고 이 자리에서, 아르테가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인물은 한 명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