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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4화 (14/227)

#014화

레온나토스 일행은 아렌의 인도를 따라 더듬더듬, 사슴 무리의 발자국을 밟아나갔다.

이따금 녹음 저편에서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는 있지만, 사슴의 발자국은 그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구불구불 나 있었다.

사슴 무리 역시 다른 인기척들과 거리를 두고 있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아렌은 눈치챘다.

“…이 자식이.”

“왜 그러냐, 아렌?”

더글라스가 물었다.

“이 사슴 무리의 우두머리, 제법 영리한데요? 아마 이쪽의 미행을 눈치챘어요.”

“엥? 그냥 짐승이라 눈치가 빠른 것 아냐? 이대로 뒤를 쫓으면 언젠가는 잡겠지 뭐.”

“그냥 짐승이라면 다행이지만요.”

하지만, 아렌의 예감은 들어맞았다.

“…그냥 짐승이라고요?”

“…방금 말은 취소하지.”

사슴 무리의 발자국은 도중 세 갈래로 나뉘었다.

각각 두 마리씩 셋으로 나뉜 무리.

발자국은 마치 도발이라도 하듯 똑같은 간격으로 부챗살처럼 뻗어있었다.

발자국을 본 이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로 영리하다니. 역시 그 정도 되는 사슴은 영물일 수밖에 없는 건가?”

레온나토스가 감탄했다.

레온 황자의 인원이 셋으로 나뉠 순 없다.

사실상 1/3의 도박을 하거나, 이대로 포기하거나.

숙련된 사냥꾼은 여섯 마리의 사슴 발자국을 모두 구별해낼 수 있겠지만, 아렌으로선 무리였다.

설령 1/3의 도박이 성공한다 해도 은빛 사슴을 잡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이대로 물러나 평범한 다른 사냥감을 노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

“…이쪽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렌은 세 발자국 중 하나를 가리켰다.

레온이 물었다.

“어째서 그쪽이지?”

“이쪽으로 난 발자국이 조금 더 가지런합니다. 한 마리가 앞장서고 뒤따르는 사슴이 순순히 그 뒤를 밟은 것처럼. 반면 다른 발자국은 조금씩 흐트러져 있고, 때로는 나란히 걸은 듯 흩어져 있어요. 이쪽으로 간 사슴이 훨씬 통솔력이 있다는 뜻이겠죠.”

물론 정황상 그렇다는 말이다. 확신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아렌은 여기서 굳이 점술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여기서 점술을 가져왔다가 틀리면, 점술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되기에.

‘지금 한 말이 틀려봤자 어차피 추적 초짜가 한 말. 내 점술은 타격을 입지 않아. 하지만 추격 초짜의 말이 우연히도 사실이라면? 황자는 날 더 믿게 되겠지.’

아렌에겐, 나쁠 것 없는 도박이었다.

*****

아렌의 선택은 적중했다.

선택한 발자국은 거대한 흰 수사슴의 발자국이었고, 점점 발자국의 주인을 따라잡아 가고 있었다.

만약 숲속에 들어온 사람들이 레온나토스 일행뿐이었다면 도저히 사슴들을 따라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숲속은 이미 십수 명의 황자들과 그 추종자들이 휘젓고 있었고, 사슴들은 인간보다 더욱 민감한 감각으로 그들의 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인기척은 울타리처럼 사슴들의 움직임을 막아섰고, 인기척의 포위망에 둘러싸인 흰 사슴은 도주를 포기했다.

수풀 너머, 스무 걸음 안쪽에서 거대한 사슴의 뿔이 보였다.

“…황자님.”

“더글라스, 자네가 쏘게.”

레온나토스가 소곤거렸다.

확실한 자에게 맞긴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짙은 녹음 속에서 빛나는 듯한 은빛 털가죽은, 어쩐지 신성함마저 느껴졌으니까.

‘…확실히, 쏘는 게 망설여질 만해. 저토록 아름다운 생물을 죽여야 한다니.’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냥이다.

조심스레 활을 들어 올리는 더글라스.

흰 사슴은, 수풀 속에서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한, 하지만 포기한 듯한.

더글라스의 활이 팽팽하게 당겨진 찰나였다.

“으아아악!”

녹음을 뚫고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숲은 소음을 대부분 잡아먹는다.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들려왔다는 건, 생각보다 소리가 가까운 곳이라는 것.

퍼뜩 정신을 차린 흰 사슴은 다시 더 깊은 숲속으로 뛰어갔다. 방향은, 비명이 들려온 곳의 반대편.

‘칫. 어느 쪽을….’

선택의 기로였다.

다시 흰 사슴을 쫓아가 대회 1등을 노려볼 것이냐.

누구의 비명인지도 모르지만, 일단 도움의 손길을 건네느냐.

물론 아렌은 황자가 무슨 선택을 할지 알고 있었다.

“방금 들려온 소리를 돕는다!”

결정에 망설임 없는 아렌.

얼핏 생각하면 손해만 보는 결정 같지만, 아렌으로선 그렇게 나쁘지도 않았다.

‘이런 대회에서조차 실적을 버리고 누군가를 돕는다. 선전하기에 따라 훌륭한 미담이니까.’

아렌의 생각에 거짓은 없었지만, 마음 한편엔, 그 아름다운 짐승을 죽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또한 있었다.

일행의 선두는 더글라스. 뒤따르는 병사들은 레온나토스를 사방에서 철통같이 지키면서 나아갔다.

숲속의 가느다란 숲길을 벗어나, 녹음을 헤치고 비명의 진원지에 다다랐을 때.

누구 먼저랄 것 없이 진한 피 냄새가 진동했다.

“…늑대?”

늑대가 있었다.

사슴 사체 곁에서 죽어있는 늑대 두 마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으르렁거리는 늑대 다섯 마리.

늑대 무리는, 한 일행을 반원형으로 둘러싸 포위하고 있었다.

검을 뽑아 들자 주변을 견제하는 병사들과 호위기사 둘. 가마꾼 넷 중 둘은 다리를 심하게 물려 혼자 걷기도 힘들어보였고, 물리지 않은 가마꾼이 그들을 각기 부축하고 있었다.

들 사람 없는 가마는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었고, 그 가마 위에는 다리가 불편한 제13 황자, 돌멘이 있었다.

아렌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약이 섞인 먹이를 둬서 사슴을 잡으려고 한 건가? 하지만 약에 걸려든 사슴에 늑대 무리가 꼬여버렸군.’

순간 파악한 것치고는 가장 그럴듯한 가설이었지만, 의문점은 남는다.

이 숲이, 황실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사냥터라는 사실. 위험한 늑대 무리를 그냥 남겨둘 리 없다.

‘설마하니, 이것도 황제의 시험 중 하나는 아니겠지? 황자의 대처를 알아보기 위해서라거나.’

아마도, 그것은 아닐 것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너무도 지나친 악취미였으니까.

돌멘은 뒤늦게 레온이 온 것을 확인했다.

“레온나토스, 네가 왜 여기에! 네 도움은 필요-”

“필요 없겠지. 하지만 내 멋대로 돕겠어. 늑대 상대론 손이 하나라도 더 많은 게 유리하니까.”

벌써 돌멘 일행엔 가마꾼 두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거기에 발이 불편한 돌멘까지 포함하면, 돌멘 일행에 비해 지켜야 할 인원은 너무도 많았다.

단, 다친 가마꾼도 부축되는데 왜 돌멘만 여전히 가마 위 덩그러니 놓여있는지는 의문이었지만.

“돌파하겠습니다!”

더글라스는 창을 앞세워 길을 텄다.

사냥에 맞춰 가져온, 창날이 넓은 보어스피어였다.

늑대들은 더글라스의 돌파에 순순히 물러났다.

이미 자신들이 상대하던 숫자와 거의 동수의 일행이었으니 부담스럽기는 하겠지.

‘…이대로 물러나 준다면 좋겠는데.’

하지만 늑대들은 그대로 대치할 뿐, 물러나지 않았다.

원래, 영악한 늑대는 절대 인간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을 언제고 해할 수 있다는 것을, 늑대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멘의 일행은 이미 사슴 사체에 꼬인 늑대 두 마리를 죽인 후였다.

동료의 피를 본 이상, 늑대들은 절대 쉽게 물러가지 않을 것이다.

더글라스가 가마 근처로 가 몸을 숙였다.

“돌멘 황자님, 괜찮으십니까.”

“다가오지 마라! 평민 주제에, 어딜 감히!”

“됐으니 숙이시지요!”

“-와악!”

더글라스의 우악스러운 손이, 돌멘의 머리를 푹 숙였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늑대 한 마리가 돌멘의 호위기사 둘의 방어를 뚫고 가마 위로 뛰어올랐다.

늑대의 이빨은, 돌멘의 목덜미를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검으로 상대하기에 늑대의 몸은 너무 낮은 곳에 있었고, 돌멘의 호위 기사 역시 검으로 짐승을 상대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더글라스가 다급하게 외쳤다.

“호위들에게 창은 없습니까?!”

“…가져오지 말라 했다. 그래야 창, 활로 사냥하지 않는 우리 방식이 더 부각-”

“그래도 가져오게 하셨어야지요!”

늑대는 다시금 풀쩍 뛰어올랐고.

더글라스는 망설이지 않고 창으로 늑대의 주둥이를 꿰어버렸다.

-퍽!

창날은 늑대의 두개골을 안쪽에서 부수고 그대로 머리 뒤쪽으로 튀어나왔다.

“숲속의 위험은 이런 것들이란 말입니다. 그에 걸맞은 대비를 하게 두셨어야지요.”

“미천한 네놈이 감히 훈수질이냐! 머리에서 손 떼지 못할까!”

돌멘은 더글라스의 손을 뿌리쳤다.

어째서 아무도 돌멘을 부축하지 않고 바닥에 내버려뒀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돌멘 황자는 날카롭게 외쳤다.

“…그리고 네놈이 있었더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저놈들 중 ‘진짜’는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진짜, 라니 그게 무슨…!”

그때였다.

수풀 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는 소리보다도 빨랐고, 더글라스는 천부적인 반사신경으로 거대한 그림자에 반응했다.

다만, 그럼에도 미처 창날을 세우지 못한 더글라스.

그대로 늑대와 함께 땅을 뒹굴었고, 빠드득, 늑대는 더글라스의 창대를 이빨로 깨물어 부쉈다.

‘…크다.’

늑대의 헝클어진 적갈색의 털은 흡사 갈기처럼 나부꼈고, 몸은 다른 늑대에 비해 3할은 더 컸다.

동료들만 드러낸 후 홀로 주위를 맴돌고 있던 교활함, 동료의 입에 창날이 틀어박힐 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신중함. 그리고 더글라스 조차 겨우 반응한 속도, 그리고 보기 힘든 거대한 몸집.

우두머리 늑대 역시 틀림없는 영물이었다.

‘아무리 관리가 잘된 숲이라도, 영물이 두 마리나?’

늑대에 깔린 더글라스와 더 가까운 건 돌멘의 호위들이었다.

하지만 돌멘의 호위는 차마 늑대의 등을 찌르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이미 늑대의 흉폭한 야성에 완전히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돌멘의 병사들이 얼어있는 동안 레온나토스의 병사들이 뒤늦게 달려갔고, 늑대는 더글라스를 내팽개치고 다시 풀숲으로 사라졌다.

“더글라스! 괜찮나!”

“문제없습니다. 창은 부러졌지만요. 그나저나, 방금은 아까웠습니다.”

찰나의 순간 적갈색 늑대는 완전히 무방비였다. 누구든 칼을 찔렀다면 우두머리를 잃은 늑대 무리도 얌전히 도망갔을 터.

“…….”

그리고, 적갈색 늑대가 자신의 지근거리까지 달려들었음에도 병사들이 적극적이지 않은 데에, 돌멘은 꽤 자존심이 상한 듯 보였다.

돌멘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사냥개의 고삐를 풀어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뒤, 레온과 마찬가지로 지금껏 묶어두기만 한 엽견이었다.

“네? 하지만 통제가 되지 않아 이번 사냥에서는 묶어 두기시기로….”

“훈련 안 된 맹견이 너희보다는 잘 싸우겠다! 날 지키는 것도 못하겠다면 고삐라도 풀란 말이다, 이 개만도 못한 무능한 것들아!”

돌멘의 악에 받친 고함에, 병사들과 호위기사의 표정이 굳었다.

저들 사이의 관계를 아렌은 꿰뚫어봤다.

‘호위들의 실력만의 문제는 아냐. 저들에게 돌멘은 단지 명령받았기에 지켜야 하는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거지.’

그건 레온나토스의 병사들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중요한 곳에서 차이가 있었다.

비록 병사들이 충성을 바치는 건 레온나토스가 아니라 황궁이었지만, 레온나토스를 지키려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

병사들이 보기에, 레오나토스는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지키고 싶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움직이는 데는 단지 명령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지. 마음속 깊이 이해하고 따르지 않으면 진심이 되지 않거든. 괜히 충성을 맹세받고 가신으로 들이는 게 아니지.’

그건 점술 명목으로 사람의 마음을 마음껏 휘저은 아렌이 가장 잘 알았다.

돌멘은 자신의 병사들, 궁인을 막 다뤘다. 자신이 그래도 되는 인간이라 생각해서겠지만, 그래서야 부하들은 따르지 않는다.

병사들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사냥개의 고삐를 풀었다.

줄곧 사슬을 삐걱이며 몸부림치던 엽견은, 곧바로 늑대들을 향해 돌진했다.

레온나토스 무리의 합류에 너무나도 손쉽게 잃은 동료, 그리고 지금 자신들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는 거대한 사냥개까지.

아우우우. 적갈색 늑대가 사라진 숲속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와 동시에 늑대들은 곧바로 포위를 풀고, 숲 너머로 사라졌다.

별 의도도 전략도 없이, 단지 악에 받쳐서 개를 풀어주라 한 돌멘은 의기양양하게 외쳤다.

“봐라! 저것 보라지! 너희 따위보다 저 개 하나가 훨씬 더 도움이-”

제13 황자 돌멘의 말소리가 천천히 잦아들었다.

쫓아갈 늑대의 모습이 사라지자, 그것들을 향해 달려가던 엽견이 고개를 홱 돌렸기 때문이다.

귀를 세우고 코를 쫑긋거리는 그 모습은, 절대 호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어라?”

그리고 사냥개는 와락, 호위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돌멘을 향해 달려들었다.

“히, 히익!”

딱!

사냥개의 이빨은 돌멘의 코 바로 앞에서 거칠게 닫혔다.

이빨이 닿기 직전, 개에게 묶인 목줄을 더글라스가 낚아챘기 때문이다.

“잘했다, 더글라스!”

“…오늘은 어째 이빨을 막기만 할 뿐인 것 같습니다만.”

레온나토스의 치하에 더글라스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 말과는 별개로 사냥개의 이빨은 여전히 돌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직전, 적갈색의 늑대와 드잡이질을 한 탓에 몸에 힘이 많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개의 이빨을 코앞에 둔 돌멘은 파랗게 질려 외쳤다.

“뭐, 무얼 하는 거냐! 끌어낼 수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이지 않고!”

“하지만 전하. 이건-”

“당장 죽이래도! 내가 위험하지 않느냐!”

“이건, 황제 폐하가 직접 내리신 하사품입니다.”

“…….”

황제가 직접 내린 하사품이 가지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반 신하라면 함부로 손을 대는 것도 무엄한 일인데 하물며, 황제가 내린 개를 직접 죽인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

뒤늦게 달려온 병사들 몇이 더 달려들어 사냥개의 목줄을 잡아당겼지만, 길게 자란 발톱이 돌멘의 옷에 갈고리처럼 박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좀 더 거칠게 다룬다면 개를 떼어놓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만, 혹시나 개가 다칠까 봐 전력을 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렌도 달려와 돌멘의 옷에 박힌 개의 발톱을 뽑아냈다.

“크르르르르!”

사냥개의 갈라진 입에서 나온 걸쭉한 침이, 돌멘의 얼굴 위로 뚝뚝 흘러내렸다.

침으로 번들거리는, 환하게 드러난 사냥개의 치아.

치아는, 누군가 줄로 갈아놓은 듯 뭉툭하면서도 골랐다.

‘사냥개의 이빨을, 일부러 갈아낼 필요가 있나?’

날카롭게 갈아낸 거라면 이해하기 쉽다. 그것보다 더 자연스러운 건, 그냥 자란대로 이빨을 두는 것.

하지만 굳이 사냥개의 이빨을 뭉툭하게 갈아둔 것은 이상했다.

거기에, 제대로 통제하기도 버거운 크고 사나운 체격의 사냥개들.

‘-그렇군.’

어떤 사냥감을 잡는가만이 평가 기준은 아니었다.

사냥 직전 갑자기 주어진 엽견 역시, 황제가 안배한 평가항목 중 하나였다.

아렌은 옷에 걸린 발톱을 뽑다 말고 허리춤의 단검을 뽑아 들었다.

암살자에게 죽을 뻔하고 돌아온 날 제9 황자 테오드릭에게 받았던 묵철색의 단검이었다.

“…아렌? 지금 뭘-”

더글라스의 놀란 목소리와 동시에.

푹!

투박하지만 날카로운 단검이 사냥개의 목을 뒤에서 정확히 관통했다.

자신의 목이 잘렸던 첫 번째 삶의 기억 덕에 순간 아렌의 목덜미 역시도 조금 시큰시큰했지만, 어쨌건 황제의 하사품은 그대로 피거품을 물며 몸을 굳혔다.

“…….”

“…….”

좌중은, 단숨에 조용해졌다.

그 자리의 모두가 경악한 채 아렌을 바라볼 뿐.

정작 아렌은 모두의 경악에 찬 시선을 무시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다치신 곳은 없습니까, 돌멘 전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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