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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실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13화 (13/227)

#013화

끼리릭.

아직 어린 황자의 체격에 맞게 제작된 활이 팽팽히 당겨졌고, 레온은 천천히 시위를 놓았다.

쐐액, 날아간 화살은 수풀 속 숨어 있던 토끼의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놀란 토끼는 혼이 빠져라 달려, 녹음 너머로 사라졌다.

“아아, 빗나가버렸군!”

레온나토스의 탄식. 하지만 더글라스는 만족한 듯 웃었다.

“아깝군요. 정말 간발의 차였습니다. 하나 단기간에 이 정도의 성취라니, 전하께선 무재(武才) 역시 뛰어나시군요.”

“그리 띄워주지 말게, 더글라스 경. 모두 자네의 가르침이 훌륭해서가 아닌가.”

“누굴 가르쳐 본 적 없는 제가 무슨 교육의 고수겠습니까.”

레온나토스와 더글라스는 서로에게 공을 떠넘기기 바빴다.

더글라스가 근위기사가 되고 난 후 사냥대회가 열리기까지 며칠간, 레온나토스는 일과가 끝나자마자 더글라스에게 활을 배웠다.

그건 먼저 활을 배우면 길하다는 아렌의 말 때문이기도 했지만, 레온나토스 본인도 한번 무술에 대한 성취감을 느끼고 난 뒤부턴 더욱 열성적으로 배움에 임했다.

오직 아렌 때문에 합류한 더글라스 역시 레온나토스의 자질을 알아보고, 자신의 선택이 나쁘지 않았음에 만족하고 있었다.

최근 죽이 척척 맞는 둘.

-끼리리릭.

그러는 한편, 레온과 더글라스 뒤로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작은 표범 만한 사냥개가 자신을 묶은 쇠사슬을 이빨로 갉작대는 소리였다.

황제가 하사한 엽견은 성정이 거칠었고, 오늘 처음 본 황자를 주인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을 묶은 쇠사슬을 이리저리 당기며 몸부림칠 따름.

엽견에 시선을 준 더글라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황자님. 폐하께서 내리신 하사품은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아직 정하지는 않았네. 더글라스. 보통 사냥에서 엽견은 어떤 식으로 쓰이지?”

“용도는 그야말로 여러 가지지요. 물론 저 역시도 사냥의 전문가는 아닙니다만… 수풀 속 숨은 사냥감을 미리 겨냥하게 돕는다거나, 사냥감을 추적하며 한 곳에 몰거나, 활에 맞은 새나 작은 사냥감을 물고 돌아오거나 말입니다.”

레온나토스는 사냥개의 우락부락한 위용을 보고 말했다.

사슴 정도는 혼자서도 능히 물어 죽일만한 거체.

“폐하께서 내리신 엽견은 필시, 사냥감을 직접 몰이하는 용도겠군.”

“혹시 이번 사냥에 엽견을 쓰고 싶어 그러십니까?”

“아니. 이번 사냥에선 그러지 말자고.”

레온나토스는 시원하게 거절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건 황제 폐하의 하사품입니다. 이번 사냥에서 쓰지 않으면….”

“그게 어쨌단 말인가. 폐하의 하사품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의 내게는 과분하다, 단지 그뿐이야. 이번 사냥에서는 단념하고, 잘 길들여 다음 사냥부터 데리고 나가면 될 일이지.”

“과연. 서두를 필요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레온과 더글라스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시녀로서 따라온 멜로익이 주변의 눈을 피해 몰래 아렌 곁에 다가왔다.

“그래서, 어때?”

“어떠냐니, 뭐가 말야?”

“이번 사냥대회 말야. 미리 점을 쳐서 사냥대회가 있다는 걸 알았다며? 그럼 당연히 길흉도 쳐봤을 것 아냐.”

“야, 점괘가 만능인 줄 아냐?”

“그래서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

아렌은 첫 번째 삶에서 있었던 사냥대회의 결과만을 알고 있다.

별다른 사건이나 부상 없이 순탄하게 지나간 대회쯤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

‘…아마 별일 없긴 할 텐데.’

물론 앞선 사건들이 아렌의 개입으로 제법 바뀌긴 했다. 당장 레온나토스도 원래는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들이 이번 사냥대회의 결말에도 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였다.

위험 따윈 없다고, 아렌이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아니야.’

아렌은 당장 과거로 돌아오게 된 계기를 떠올렸다.

레온나토스가 사냥하고 싶어 하길래 사냥이 길하다고 점쳐줬고, 그 뒤 돌아온 것은 레온나토스의 죽음과 암살 누명이었다.

물론 미래는 모르는 일이지만, 만약 그때 아렌이 사냥에 흉조가 있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흉조가 점쳤는데 아무 일이 없는 것과 길조라고 했는데 나쁜 일이 생기는 것.

둘 사이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둘 다 점괘가 틀린 건 같지만, 어느 쪽에 더 배신감을 느낄지는 자명한 것이다.

“…실은 꽤 해석하기 까다로운 점괘가 나와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어. 아주 나쁜 점괘는 아니지만….”

“확실히 말해. 길, 흉. 어느 쪽이야?”

“그러니까 확실하지 않다니까. 굳이 말하자면- 흉.”

확신이 없는 점괘는, 대체로 흉으로 말하겠다고.

아렌은 마음을 다잡았다.

확신이 없는 점괘는, 대체로 흉으로 말하겠다.

나쁜 점괘를 내린 다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점괘 덕에 미래가 바뀌었다’라고 둘러대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결국 아렌의 점괘는 흉으로 끝난다.

“…알았어.”

아렌의 점괘는 명쾌하지는 않았지만, 멜로익이 마음을 다잡기에는 충분했다.

“일단 길하지는 않다는 거지? 그거면 됐어.”

멜로익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 후, 더욱 주변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언제든 황자 앞에 위험이 닥치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하는 게 바로 멜로익의 일이었으니까.

아렌은 흉조를 말하는 것의 이점을 또 하나 발견했다.

‘조금 미안하기도 하지만… 경호는 원래 네 역할이잖아? 그렇게 항상 경계하고 있으라고.’

*****

레온나토스 일행은 좀 더 깊은 숲속으로 나아갔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사냥은 이제 오후에 접어들었지만, 레온이 잡은 사냥감은 아직 없었다.

‘…황자들이 앞다퉈 숲속으로 들어간 이유가 있나?’

숲이 아무리 넓다고 한들 십수 명의 황자가 각자 자신의 수행원들을 데리고 하는 사냥이었다.

동물들은 지나친 인기척에 더 깊은 숲속으로 숨어들고, 황자들은 더 깊은 숲으로 향하는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지도 몰랐다.

혹시나 사냥감이 등장할까 봐 귀를 바짝 세우고 걸었지만, 레온나토스 일행이 발견한 건 사냥감이 아니라 또다른 황자 무리였다.

“…뭐야, 레온나토스 아냐?”

“여기서 사냥하는 거야, 돌멘?”

숲속에 먼저 자리잡고 있던 건 제13 황자, 돌멘이었다.

또래보다 왜소하고 가냘픈 체격에, 다리가 불편해 가마 없이는 거동도 할 수 없었다.

돌멘은 지금도 네 명의 가마꾼이 든 가마 위에 타고 있었다. 숲속, 사냥에 걸맞은 이동수단은 아니지만 다른 수가 없으니 이럴 수밖에.

아렌보다 몇개월 뒤 태어난 돌멘이지만, 돌멘은 한 번도 레온나토스를 형이라 부른 적이 없었다.

물론, 레온은 그것을 딱히 신경쓰지 않았지만.

돌멘은 사냥감 없이 빈손인 레온 일행을 보고 조금 짓궂게 웃었다.

“보아하니 사냥은 잘 돼가는 모양인데?”

“보다시피 지금은 느긋하게 즐기면서 하고 있어. 무리한다고 잘 되는 건 아닐 테니까. 그런데…”

레온의 시선이 돌멘 뒤쪽 병사들에 향했다.

정작 돌멘의 병사들은, 창과 활 없이 검만 찬 단출한 무장이었다.

병사 넷에 호위기사 둘은 레온나토스 일행과 비슷한 숫자였지만, 돌멘의 이동수단은 가마.

가마꾼 넷 중 하나만 다쳐도 이동력이 급감하는 만큼 돌멘 일행의 실질적인 전력은 레온나토스보다도 아래였다.

“이정도 인원으로 사냥은 괜찮겠어? 활도 없는 것 같은데, 맹수라도 나온다면-”

“흥. 맹수라니, 황제 폐하의 사냥터에서? 그리고 난 미개하게 창 활로 사냥하지 않을 거라서 괜찮아.”

아마 덫사냥을 말하는 모양이지만, 덫사냥도 제대로 된 수렵기술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

정교한 덫을 만들 능력도, 덫에 묻은 사람의 채취를 지울 기술도 없는 자들에겐 더더욱.

‘…어떻게 사냥하려는지, 대강은 짐작 가지만.’

가마에 반쯤 누운 듯한 느긋한 자세로, 돌멘은 레온 옆의 근위기사 더글라스를 가리켰다.

“이게, 소문의 평민기사인가? 술주정꾼 경비병이 근위기사로 벼락출세하다니, 머리 나쁜 것들이 떠들어대기 좋겠어.”

“흠, 그런가?”

“하긴 레온 너, 최근 목숨이 위험했다며? 서둘러 방비를 보강하는 것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아무리 급해도 정도라는 게 있는 법이야.”

‘…이런.’

아렌은 더글라스의 눈치를 살폈다.

레온나토스야 돌멘의 비아냥이 익숙할테지만, 더글라스는 수틀린다고 호위기사 페드릭을 땅에 처박아버린 경력이 있었다.

‘설마, 황자한테까지 날뛰지는 않겠지?’

“…….”

그리고 아렌의 기우가 무색하게 더글라스는 묵묵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단지 레온의 옆에서, 묵묵히 주변을 감시할 뿐.

페드릭 경과 싸웠을 때는 아직 근위기사도 아니었거니와, 그때 역시 황자 옆에서 검을 뽑는 페드릭의 경솔함을 질책했었다.

그런 더글라스가 지금은 엄연한 레온의 근위기사.

자신의 돌발 행동으로 황자의 안전을 깨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더글라스를 바라보는 돌멘.

“…흥, 좋은 개를 얻었군.”

“아, 칭찬 고마워.”

물론 13 황자가 말한 ‘개’는, 황제의 하사품만을 뜻하는 건 아닐 것이다.

지금도 황제의 사냥개는, 쇠사슬을 잡아당기며 으르렁대고 있었으니까.

끼리릭, 사슬이 마찰하는 불길한 소리는 돌멘의 일행에게도 마찬가지로 들려오고 있었다.

더 이상 마주하고 싶지 않은지 돌멘이 물었다.

“우린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은데.”

“아, 우리도 마찬가지야.”

“그래, 서로 사냥 열심히 하자고. 앞으로도 음식 가려먹어. 잘못 먹지 않게 조심하고.”

돌멘의 의례적인 걱정.

“…걱정 고마워, 돌멘. 그럼, 좋은 사냥 되길.”

네 명이 이끄는 가마가 숲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고, 레온나토스 역시 말머리를 조금 돌려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안으로 들어갔다.

레온이 더글라스에게 말했다.

“돌멘이 한 말을, 너무 신경 쓸 것 없다. 더글라스. 저 녀석은 원래 짓궂었으니 말이다.”

“괘념치 않습니다, 황자님.”

선두에 있는 둘의 대화를 한쪽 귀로 들으며, 아렌은 돌멘이 한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음식 가려 먹으라고?’

연회장에서 레온나토스가 노려졌다는 사실 자체는 알 사람은 다 알 것이다.

하지만 암살의 수단에 대해서는, 당사자들 사이에 함구령이 내려졌다.

‘…암살 수단으로 독약을 생각했다면 가려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텐데. 레온 황자와 상극인 음식이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지, 돌멘?’

아렌이 가진 의문은 점점 첫 번째 삶에서의 기억을 퍼 올렸다.

제 13 황자 돌멘은, 형제들 사이에서 그리 두각을 드러내는 황자는 아니었다.

체격은 왜소하고 두뇌도 평범하다. 타고난 말재주도, 눈치도, 담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천적으로 다리가 불편해 대부분 가마에 의존해 이동한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특기라 할만한 것이 바로 약학이었다.

돌멘의 외가는 남부 늪지대 출신의 공작가였고, 그 부근의 가문은 대대로 독과 약학에 능했다.

아렌이 직접 겪어본 적은 없지만, 제 13 황자의 약학이 취미 수준을 넘었다는 말은 곳곳에서 들은 바 있었다.

‘…끝까지 황자 결정전엔 참가하지 않은 자라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아렌의 생각이 짧았는지도 모른다.

직접 황위를 노리는 자만이 용의자일 필요는 없으니까.

황자들 중에서도 직접 황위를 노리는 자, 황위에 무관심한 자, 한 황자를 지지하고 밀어주는 자로 나뉘니 말이다.

‘내원 시종장 브레만도 그런 경우였지.’

돌멘 역시 직접 황위를 노리기보다, 유력한 황자를 지지하며 곁에서 떨어질 콩고물을 기다리는 타입.

그리고 돌멘은 궁 내에 극소수만이 알고 있을, ‘레온 황자에 상극인 음식이 있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무슨 생각하나, 아렌?”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하.”

앞에 있던 레온나토스가 뒤쪽의 아렌에게 시선을 보냈다.

“내가 보기에, 돌멘의 마지막 말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진 것 같은데.”

“…….”

‘역시, 레온나토스도 알고 있었군.’

“그것에 생각하는 건 나중이라도 충분해. 지금은 모처럼 있는 사냥대회지 않나. 여기에 신경을 쏟자고.”

“알겠습니다, 전하.”

돌멘의 병사들이 활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또 모르지만, 그들에겐 활조차 없었으니 멀리서 있을지 모를 저격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뒤, 레온나토스 일행은 정말 사냥에만 온 집중을 쏟았다.

어두운 숲속에 시선을 보내며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던 중.

“…전하? 어쩐지 너무 고요한데요?”

“…그렇군.”

짙은 녹음 속, 스산한 적막만이 감돌고 있었다.

잠시 뒤.

저 멀리 수풀 너머로 사슴 대여섯 마리가 소리 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다른 사슴보다 뿔 하나만큼 더 컸다.

“…은빛 털이라니.”

레온나토스가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 숫사슴의 가죽은 은도금을 한 듯 윤기 있는 은빛 털이었다.

레온나토스와 더글라스, 아렌까지.

그 누구의 이견도 없었다.

‘저걸 잡으면, 이번 대회에서 1등도 꿈은 아냐!’

아렌의 눈이 번뜩였다.

은빛 사슴은 녹음이 우거진 숲 한가운데에서도 고고하게 서 있었다.

주변에 다른 사슴 무리도 있었지만, 혼자 사슴이 아닌 다른 생물이라도 되듯 이질적인 모습.

더글라스는 조심스레 활을 끌어 내렸다.

화살을 시위에 걸고, 그대로 당기려는 찰나.

“크르르르! 컹! 컹!”

황제의 하사품이 낸 사나운 울음소리가 숲속의 적막을 깨뜨렸다.

깜짝 놀라며 귀를 쫑긋한 사슴무리는, 곧바로 숲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아아, 가버렸군!”

레온나토스가 탄식했다.

너무 우거진 숲속은 말도 탈 수 없으니, 따라잡는 것은 힘들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이대로 놓쳐버린 건가, 레온은 고개를 떨궜지만, 아렌의 생각은 달랐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쫓아가죠.”

“아렌? 하지만 우리 걸음으론 녀석을 따라잡지 못해.”

“하지만 뒤를 밟을 순 있죠.”

아렌은 사슴 무리가 방금 전까지 밟고 있던 땅, 지나왔던 땅까지 살피며 말했다.

“사슴 무리의 발자국은 지금 우왕좌왕하고 있어요. 한 곳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아요. 아마도 이 숲속에서, 사방에서 사람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겠죠. 지금 사슴은 인간의 포위망 한가운데에 있는 거나 다름없어요. 그리고 아마, 그 흰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쫓는 건 우리뿐이겠죠.”

쫓아 오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사슴들이 그렇게 느긋이 서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령 저 멀리서 발자국을 쫓아 오는 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경우에도 훨씬 앞서 있는 레온나토스 일행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아렌 너, 발자국도 읽을 수 있었…, 그렇군. 넌 유랑민족 출신이었지.”

“아주 어릴 때 익힌 거라 반은 지레짐작이지만요.”

좀 더 나이가 찰 때까지 유랑생활을 했다면, 아렌도 더 많은 것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일 때 초원을 나온 아렌은 생존에 필요한 노하우보다, 점술이나 기억 낚시 같은 유희 거리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 마리도 아니고 사슴 무리를 쫓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

아렌이 이번 사냥대회에 진심이 아니었던 이유는, 지금 레온나토스와 가신들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거대한 은빛 털 사슴을 잡는다면, 그 한 마리로도 우승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사냥감의 숫자로는 우수한 엽사들을 잔뜩 데리고 있는 청년 황자들을 이길 수 없을 테니까.

암살 기도에 이어 더글라스의 파격 기용. 거기에 사냥대회의 우승까지 이뤄낸다면.

‘레온나토스의 황궁 내 입지는 단숨에 올라가게 된다.’

아렌은 주먹을 꽉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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