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8
토파즈는 소매치기 아이들이 살 만한 거리를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가장 낮고, 어둡고, 지저분한 곳을 찾아가면 금방이었다.
얼마나 화려한 도시든 가난은 있었다. 가장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빈민가의 모습은 수도든 북부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겨울이 더욱 가혹하리라는 점만이 달랐다.
토파즈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날아들었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더는 빼앗길 것도 없어 하나 남은 자신의 몸뚱이를 목숨 걸고 지켜야 하는 이들이었다. 낯선 이에 대한 경계심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토파즈는 카르옌에게서 뜯어낸 고가의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토파즈의 주머니를 털거나 죽이고 망토 하나라도 빼앗고 싶어 손이 근질거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터였다.
그러나 그에게 섣불리 다가가는 사람은 없었다. 건장한 체격에 검을 차고 있는 탓도 있겠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토파즈에게서는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악취에 코를 틀어막거나, 들끓는 쥐를 보며 기겁하거나, 빈민가 사람들을 보며 불안하게 눈을 굴리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오물이 가득한 거리로 거리낌 없이 발을 내딛는 그는 오히려 이 모든 것이 권태로워 보였다. 원래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처럼.
길을 잘못 든 행인을 털어먹을 생각이 가득했던 이들은 이내 실망하여 고개를 돌렸다.
토파즈가 골목을 하나하나 헤집는 동안 해가 완전히 졌다.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거리를 휘돌았고, 몸을 뉠 지붕이 없는 사람들은 낡은 모포나 신문지를 끌어 덮었다. 그나마 온화한 계절이라 동사자는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토파즈는 걸음을 서둘렀다. 사람 두 명이 겨우 지나갈 법한 좁은 골목을 몇 개나 지났을까. 퀴퀴한 냄새가 나는 골목 맞은편에서 모자를 푹 눌러쓴 소년이 걸어왔다. 모자를 고쳐 쓰느라 드러난 낡은 소매 아래의 팔이 가늘었다.
무심코 소년을 주시하던 토파즈의 눈이 커졌다. 소년은 다리를 절뚝이며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른 체구와 모자 아래로 갈색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토파즈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년의 팔을 덥석 잡아챘다. 소년이 파드득 떨며 고개를 들었다. 갈색인 줄 알았던 머리칼은 다시 보니 어두운 금색이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아…….”
한순간이지만 왜 착각했는지 모르겠을 정도로 닮은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머리 색도 이목구비도 전혀 달랐고 나이도 가넷보다 많아 보였다. 몰골이 지저분하며 한쪽 다리를 잘게 전다는 점만이 비슷했다.
“미안. 잘못 봤…….”
잘못 봤다고 말하며 팔을 놓아주려던 토파즈가 미간을 좁히며 다시 소년에게 바짝 다가섰다. 동그란 모자에 금갈색 머리카락, 키는 토파즈의 가슴 언저리까지 오니 카르옌에게 부딪히면 딱 명치 높이일 것 같았다.
“왜, 왜 그러시는…….”
“너지?”
차라리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거나 무서워했다면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소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토파즈의 팔을 뿌리치고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처럼.
그러나 소년은 두 걸음도 가지 못해 다시 붙잡혔다.
“으악! 놔줘, 놔주세요!”
양 겨드랑이 아래에 손을 넣어 쑥 들어 올리자 소년이 허공에서 발을 굴렀다.
“오늘 낮 옷가게 앞에서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키 큰 남자의 주머니, 네가 털어갔지?”
“아니에요!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전 그런 짓 안 해요.”
“그래? 그 붉은 주머니 안에 금화가 열 개나 들어 있었을 텐데, 뒤져서 나오면 어떡할래.”
“텅 비어 있었는데 무슨, 헉!”
“너 맞네.”
“……씨이.”
아이가 버둥거림을 멈추고 몸을 늘어뜨렸다. 체념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토파즈와 눈이 마주치자 양손을 모아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제발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배가 고파서 그만…….”
“됐고, 주머니나 내놔.”
“……네?”
괘씸하다며 두들겨 맞기라도 할 줄 알았는지, 목숨만 살려 달라며 빌던 소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널 죽이면 주머니가 나와? 아니면 목숨 걸고 지키겠다고 지금 경고하는 거야?”
“아니요! 절대 아닙니다.”
“그래서 주머니는.”
“지, 지금 저한테 없어요.”
서늘한 눈으로 쳐다보자 소년이 파드득 어깨를 떨었다.
“정말이에요! 아까 이고르 일당이 값나가 보인다면서 뺏어갔다고요. 제발 믿어 주세요.”
“그게 누군데?”
“있어요, 이 골목 깡패 일당.”
소년은 원래 쌓인 게 많았는지, 아니면 밀고만이 제가 살길이라고 느낀 건지 ‘이고르 일당’에 대해 술술 불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가진 거 없는 사람들한테 주먹을 휘둘러서 바닥까지 긁어가고, 버려진 애들을 주워다 구걸을 시키는 놈들이에요. 아주 악질이에요. 불쌍해 보여야 돈을 받는다면서 일부러 애들을 다치게 해요. 그래 놓고 개밥만도 못한 밥을 하루에 딱 한 그릇씩만 준대요.”
“잘 아네.”
토파즈의 말에 소년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제 친구도 거기 있었거든요. 얼굴에 화상이 있으면 더 가엾어 보일 것 같다면서 달군 쇠를 들이대길래 급소를 차고 도망쳤대요.”
“그건 잘했고.”
“지금은 죽었지만요.”
“…….”
소년의 얼굴은 어딘가 익숙했다. 소년을 본 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와 닮은 얼굴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바싹 마른 뺨과 체념이 깃든 눈빛 따위를. 토파즈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는 왜 그래?”
“아까 이고르 일당이랑 실랑이하다가 조금 다쳤어요.”
“너 정확히 몇 살이야?”
“……열세 살이요.”
“확실해?”
눈썹을 까딱이며 묻자 소년이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몰라요. 대충 열두 살쯤? 확실한 건 열 살은 넘었어요.”
“부모는.”
“있어 보이세요?”
“하……. 일단 따라와.”
소년은 토파즈가 당장 자신을 어떻게 할 것 같지는 않았는지, 겁에 질린 얼굴로도 뒤를 졸졸 쫓아왔다.
소년의 이름은 율리안이라고 했다. 이름은 몇 년 전에 스스로 지었고, 부모는 태어날 때부터 없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태어난 이후로는 없었고, 동냥도 하고 소매치기도 하고 닥치는 대로 일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제가 글을 읽을 줄 알아서 가끔 그걸로 돈을 벌기도 해요. 일곱 살 때 의원에서 피 묻은 천을 세탁하는 일을 했는데, 그때 어깨너머로 배웠거든요.”
모두 양 볼이 미어터질 정도로 음식을 밀어 넣으며 소년이 혼자 떠든 이야기였다.
소년은 토파즈가 식당에서 일행과 합류하자 몹시 경계하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태세를 하더니, 따뜻한 음식을 시켜 주자마자 필요 이상으로 예의 발라졌다.
“메이온에는 양탄자를 만드는 공장이 있는데, 애들한테도 일자리를 준대요. 숙식 제공도 되고요. 다음 달이 되면 거기에 가 볼까 해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어리숙해 보이지는 않았는데.”
토파즈의 말에 소년이 오물거리던 입을 멈추며 눈을 내리깔았다.
“대충은 알아요. 돈 많이 벌어서 돌아오겠다고 한 애 중에 진짜 돌아온 애는 한 명도 없거든요. 애초에 열 살도 안 된 애들한테 그런 일을 시키는 곳이 제대로 된 곳일 리 없겠죠.”
“그걸 알면서도 간다고.”
“그럼 어떡해요. 여기서 매일 남의 지갑이나 털면서 살 수는 없는걸요, 희망도 없이.”
말을 마친 소년은 입 안에 든 빵을 꼭꼭 씹어서 삼켰다. 빵 한 덩이와 수프 한 그릇을 먹을 뿐인데도 억척스럽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음식을 먹을지 모르는 자들은 대개 저렇다. 수프 한 그릇에도 악착같이 달려들 수밖에 없는 처지를 토파즈만큼 잘 아는 이도 없으리라.
토파즈가 미간 사이를 꾹 짓누르며 물었다.
“넌 뭘 하면서 살고 싶은데. 어린애 착취하는 양탄자 공장, 그딴 거 빼고.”
“음……. 열세 살이 되면 영주 성의 하인이나 신전의 일꾼으로 일하고 싶어요. 지켜야 할 규율이 엄격하기는 해도 자는 시간, 쉬는 시간, 밥은 꼭 챙겨 준대요.”
소년은 꿈에 부푼 얼굴을 하며 눈을 반짝이더니 곧 시무룩하게 어깨를 늘어뜨렸다.
“하지만 그런 곳은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요. 영주 성은 무조건 추천장이 있어야 하고, 신전은 기부금을 내야 한대요.”
“일하러 가는 데 기부금을 내야 한다고? 보통 돈이라는 건 일하는 쪽에서 받아 가는 게 정상 아니야?”
옆에서 얌전히 앉아 있던 카르옌이 끼어들었다. 심히 의문스럽다는 어투였다. 토파즈도 이번만큼은 카르옌의 의문에 공감했다.
다프닌교 신전은 조세도 내지 않았고 오히려 황실에서 지원을 듬뿍 받는 기관이었다. 제정일치나 다름없는 사회에서 국교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는 곧 황실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 그러니 황실은 신전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신전은 의례를 주관하고 교리를 설파하여 황실의 권위를 세워 주는 상생 관계였다.
그러니 신전에서 데려가는 아이들은 말이 일꾼이지, 보통은 고아들을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해 일부러 데려가 일종의 구빈원 역할을 하는 것이었는데.
“무슨 신전이 돈을 받아 처먹어?”
토파즈의 말에 소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른들을 다 보겠다는 듯 픽 웃었다.
“그건 돈이 아니라 헌금이라고 부르던걸요.”
“…….”
“정말 대가 없이 아이들을 받아 주는 신전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근방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일이에요.”
카르옌이 물었다.
“넨베르그의 신전에서 요구하는 기부금은 어느 정도지?”
“100실버라고 들었어요.”
“…….”
카르옌은 그 대답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100실버는 평민들이 한 달을 꼬박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았을 때나 모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당장 수중에 1실버도 없는 빈민가 아이들은 꿈도 꿀 수 없는 액수였다.
“이쯤 되니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건지 궁금해지네요. 망할 때가 된 거 아닌가…….”
카르옌이 심각한 어조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