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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171화 (171/177)

# 머리 싸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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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콩가에서 온 3만의 군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피해! 어서!

-상대하지 말고 비켜줘!

-물건은 일단 놔둬!

진영의 끝 부분이 난리가 났다. 갑자기 들이닥친 몬스터들이 무참히 짓밟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번이 자릴 비웠기에 페트릭은 일단 대피를 명령했고, 저 끝으로 보이는 먼지 구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두두두두두두!

어떻게 된 일인가? 갑자기 저놈들이 왜 질주한단 말인가?

그로선 짐작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고, 오래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의 당사자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태자님!”

“페트릭.”

옷을 갖춰 입고 나타난 번은 입맛을 다셨다.

“몬스터들이 갑자기 난동을 부리며 이동했습니다! 막을까 하다가..”

알고 있다는 듯 끄덕이는 번.

“수도에 아직 징집병이 남아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내일 오후쯤 출정할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준비했던 것들이 빠그라져 안타깝지만,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순 없으니 머릴 굴려야 했다.

“수도에 이 소식을 알리고, 우리도 출발하지.”

“수도로 갑니까?”

“일단은 그래야겠지.”

그편이 자연스러울 테니까 말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서두를 필욘 없어. 천천히 하자고. 천천히.”

“예..”

페트릭이 저쪽으로 걸어가자 번은 주변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흐음..”

변수가 생겼다. 이게 독이 될지 득이 될진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유리한 방향으로 고삐를 잡아당겨야 했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겠지?”

악마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인간으로 태어나던 그 순간 맛봤던 전율과도 같은 쾌락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으니까. 녀석도 아마 해골의 몸을 차지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사지를 체감하며 그저 숨만 쉬고 있어도 즐거울 거다.

뿐인가? 2만에 가까운 몬스터 군대까지 가졌지 않나? 그것도 자잘한 놈들은 다 없어진 강력한 맹수만 남은 놈들로 말이다.

“뭐, 즐기라고. 그리 길진 않겠지만.”

몬스터가 떠난 남쪽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던 번. 문득 악마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

뭐였을까? 계약 따윈 애초부터 없었다고?

“흠..”

마땅히 짚이는 게 없었다.

번은 일단 이 고민은 밀어두었다. 지금 급한 것은 수도에서의 일이었으니까.

더 이상의 변수는 없어야 했다.

.

.

그러나 번도, 악마도 예상하지 못하는 움직임이 하나 더 있었다.

“폐하..?”

집정관은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섰다.

“뭘 그리 놀라? 죄라도 지었어? 맛있는 거라도 몰래 먹고 있었나?”

“아, 아니 그것이..!”

대체 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황제의 옆에 서 있는 딘딘을 째려보았다. 왜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주지 않았느냐는 눈빛이다.

으쓱.

딘딘은 어깨를 씰룩이곤 얼굴을 홱 돌려버렸다.

“..하아.”

우겼겠지. ‘적을 속이려면 우리 편부터 속여야 하는 거야! 절대 말하지 마!’라며 말이다. 그것도 박박. 고지식한 딘딘은 명령을 착실하게 따랐을 것이고.

“앉으시지요..”

집정관은 자신의 자리를 비켜주었다. 책상을 돌아 털석, 의자에 앉으며 황제는 다리를 꼬곤 기지개를 켰다. 여기까지 사람들 모르게 숨어서 오느라 삭신이 쑤시나 보다.

“으으.. 이것도 못할 짓이야. 더 나이 먹기 전에 끝내야지.”

잠행이? 아니면 황제 노릇이?

뭐가 됐든 황제는 말만 그렇게 했을 뿐 아주 즐거운 표정이었다. 이런 사람이었다. 언제나. 언제까지나.

“오면서 들었는데, 몬스터들이 수도에 근접하고 있다지?”

“예.”

“징집은 얼마나 됐고?”

“4만이 조금 모자랍니다.”

“괜찮네. 수도방위 병력까지 포함하면 5만은 넘어가겠고. 여차하면 더 끌어 쓸 수도 있을 거야. 그 정도면 그 더러운 것들이 성벽을 넘는 것은 막을 수 있겠지.”

“왜..”

집정관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빨랐다. 눈치 하난 기막힌 사람이다.

“왔냐고?”

집정관이 끄덕이자 황제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심심해서.”

“폐하!”

집정관이 버럭 외치자 황제가 손을 흔들며 껄껄 웃었다.

“농담이야. 농담.”

전선에서 황제가 빠졌다는 것을 알면 아군의 사기는 추락할 것이고, 적군은 이때다 싶어 ‘에비뉴의 황제가 개처럼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떠들어댈 것이 뻔했다. 그래서 황제는 잠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태자는.. 목숨을 걸고 마왕군을 막기 위해 전장에 나갔습니다.”

“알아.”

황제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런데도 아직 의심하시는 것입니까?”

황제가 이곳에 올 이유는 그것 하나밖에 없다. 또한, 집정관을 믿지 못한다는 얘기도 됐다. 이제까지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에 집정관은 울컥했다.

“의심이 아니야.”

“그럼.. 왜..”

“확신이지.”

“······?”

집정관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녀석. 마왕군이 남하하는데, 막지 않았다 했어.”

“그건 잠시 자릴 비웠을 때 사달이 나서 명령체계가..”

“그래도 막았어야지. 그러면 며칠이라도 시간을 벌었을 거야.”

“하지만 그랬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지금 그놈 편드나?”

“아, 아니 그것이 아니라..”

“그러라고 나간 군대다. 병사 열이 죽어도 시민 하나를 지킬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그렇지 않나? 전멸하더라도 놈들 발목을 잡았어야지.”

뒤엔 수도가 있는 상황에서 마왕군을 그냥 보냈다?

“으음..”

집정관이 신음했다.

“내 부모가, 자식이, 동생이 뒤에 있는데 어느 누가 피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

황제가 비웃었다.

“처음부터 막을 생각이 없었던 거야. 그놈들은.”

집정관은 무심코 딘딘을 보았다.

절레절레.

딘딘 역시 같은 생각인 듯 얼굴을 흔든다. 아니, 설령 황제가 틀렸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생각하시면 따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건 신성국 놈들도 마찬가지고.”

황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시무시한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이 새끼, 저 새끼들이 죄다 여기 에비뉴를 뜯어먹으려고 안달이 난 거지.”

황제는 문가로 나가며 말했다.

“이러니 내가 잠이 오겠나?”

“······.”

“저녁까지 모두 대청으로 집합시켜.”

제국과의 전쟁은 잠시 미룬다. 집안이 박살 나게 생겼는데, 바깥일에 매달린 순 없다. 스캇이라면 얼마의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빠르게 정리한다.”

북쪽에 죄다 있으니 확 몰아치면 될 것이다. 철의 군대 주력이 모두 전선에 있는데, 어떡하느냐고? 상관없다. 내가 있는 곳이 철의 군대다. 황제는 그러한 자신감이 있었다.

“폐하.”

막 문을 나서려던 황제를 집정관이 불러세웠다.

“왜?”

“아무래도 느낌이 좋질 않습니다.”

서두르지 말고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래.”

황제는 이미 편집증 환자처럼 변해있었다.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이놈 저놈도 모자라 자식새끼까지···.”

휘적휘적 복도를 걸어가는 황제의 뒷모습을 보다가 집정관은 고개를 돌려 딘딘에게 묻는다.

“왜 저렇게까지 변하신 거야?”

그의 물음에 딘딘은 처연한 미소를 짓더니 집정관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린 그저 저분이 가시는 길을 따르면 돼.”

뭔가 더 할 말이 있었지만, 집정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딘딘의 표정을 보았기 때문이다.

“..차질없이 준비하라고. 이젠 역정 내시면 나도 말리기 힘들어.”

딘딘은 그렇게 말하곤 황제의 뒤를 쫓아 걸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집정관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문제야? 다들?

아들을 믿지 않는 아버지.

에비뉴라는 한 나라가 단 한 사람의 마음으로 휘청거리고 있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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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남았습니다.”

페트릭의 말에 번이 끄덕였다.

따각, 따각, 따각.

말은 뛰지 않았다. 두 발로 걸어야 하는 병사들과 속도를 맞춰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것보단 행군 자체가 지나치게 여유로웠다.

“신성국 놈들은 아직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나?”

“그렇습니다.”

“약아빠진 새끼들..”

신의 사자란 것들이 개도 안 할 짓을 하고 있었다. 놈들은 마왕군이 남하한 것을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았다. 번이 군대를 이끌고 출발한 이후에야 쫄래쫄래 따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번은 몇 번이나 놈들에게 사절을 보냈다. 놈들의 의중을 떠보기 위함도 있었고 그들이 원한다면 연합해서 마왕군을 무찌를 의향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한결같았다.

‘우린 믿음이 없는 자들과 함께하지 않는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자빠졌다. 옆에서 누가 죽어 나가든 상관도 안 하는 저놈들이 신의 대리를 자처하고 있다니 어이가 없다. 어이가. 설마 놈들이 모시는 신이 악신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끝까지 지켜보다 단물만 쏙 빼먹겠다는 거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대로 수도에 들어간다면 폐하께 군대를 넘겨야 할 수도 있습니다.”

남하하던 도중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황제가 수도로 복귀했다는 거다. 수도의 모든 귀족을 급히 모았고, 지방 영주들도 사병을 이끌고 수도로 집결하라는 황명을 내렸다.

일이 더러워도 한참 더럽게 꼬여버렸는데, 이 와중에 악마는 몬스터를 수도 근처에 뿔뿔이 흩어버리고 잠적했다.

참으로 영리한 놈이다. 무려 2만이나 되는 몬스터가 에비뉴를 휘젓고 다니고 있는 거다. 그 사이 놈은 안전하고 착실하게 피 맛을 보고 있을 것이고. 이렇게 되니 번에겐 명분이 사라졌다.

‘내가 은사와 대장군을 이길 수 있을까?’

황제의 곁엔 그 둘이 항상 붙어 있다. 뿐인가? 십위도 무시 못 한다. 만약 그들을 동시에 상대해 쓰러뜨린다고 해도 그렇게 얻은 황좌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명분이 필요하다. 그럴듯한 명분이.

“가야지.”

황제가 수도로 돌아왔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그가 의심하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망할 악마 놈 때문에 튄 작은 불씨가 활활 집구석을 태우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까.

‘이왕 할 거면 수도에서 놀 것이지, 대체 어디에 처박혀 있는 거냐.’

악마가 수도 안쪽에서 날뛰면 틈이 생길 것이고, 혼란을 틈타 기회를 엿볼 수 있었을 것인데.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놈이 몸속에서 빠져나간 탓에 어둠이 죄다 흩어져버렸다. 녀석이 어둠의 핵核이었던 모양이다. 뭐, 그렇다 해도 상관은 없다. 빈자리는 금새 빛이 채웠고, 어둠이 사라진 탓에 신성력이 더욱 커졌다. 아무래도 상극인 속성이 한 몸에 있었던 것이 신성력을 가로막고 있었던 것이겠지.

속성의 차이만 있을 뿐 이전과 강함은 별 차이가 없었으니 크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니었지만, 기분이 더럽다. 물고 있던 초콜릿 맛 사탕 하나를 빼앗긴 것 같지 않나? 딸기 맛, 바나나 맛, 박하 맛이 주머니에 있어도 서러운 건 서러운 거다.

‘잡히기만 해봐라.’

눈에 띄기만 하면 잘근잘근 씹어주겠다는 생각을 하며 번은 계속 말을 몰았다.

이윽고 수도가 8km 남은 지점.

저 앞에서 말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멈춰라!

병사들이 말을 급히 가로막았다가 풀어주었다. 신원이 확인된 모양이다.

말은 다시 질주해 번에게로 달려왔다.

얼마나 다급하면 제가 뛴 것도 아닌데, 기수가 헐떡거리고 있다.

“태자님!”

번이 고개를 갸웃했다.

“폐하께서 보내신 친서입니다!”

말에서 내려 두 손으로 서신을 전하는 사내를 보며 번이 의아한 얼굴로 서신을 펼쳐보는데,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병사가 초조한 얼굴로 외쳤다.

“무엇이냐?”

“구, 궁이 불타고 있습니다!”

“..뭐라?”

“정체 모를 무리에게 습격당해 황궁이..!”

번은 급히 서신을 펼쳐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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