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좌의 게임-155화 (155/177)

# 내가 이 구역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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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만, 그래서 일상다반사.

귀찮아도 해야 할 건 직접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다.

-웬 놈이냐?

-못 보던 계집인데? 호오, 꽤 반반해.

-가만, 저놈 수상하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우리가 이런 놈들이다! 라고 과시하듯 다른 천막보다 훨씬 큰 대형 천막에 모여있던 사내들은 번의 방문에 성을 내며 몸을 일으켰다.

-뒤지고 잡냐? 눈 안 깔아?

-어디서 오셨수? 공무원이유?

-저놈 저, 목 뻣뻣한 것 좀 보게?

요즘 한창 던 나일 이란 놈들이 치고 올라오는 통에 심기가 불편했던 이들은 모여서 술을 마시며 여자들 가슴이나 주무르고 있었는데, 취기 덕분에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술.

용기가 없는 이에겐 가슴에 품은 여인에게 사랑을 고백할 수 있게 해줄테고, 가끔은 세상사 고된 시름 잠시나마 잊게 해주는 만병통치약이 되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만났다.

“늑대는 한 마리도 없군.”

번은 주변을 스윽 둘러보며 그렇게 평가했다.

더럽고 조잡하고 불결한 천막 내부는 오물로 가득했다. 이들은 그저 자신보다 더 약한 자를 찾아 기생하는 벌레들일 뿐, 황야를 누비는 늑대의 프라이드는 찾아볼 수 조차 없었다.

그럼 답은 나오지 않았나?

“물러서 있어.”

옆에 있던 다루에게 팔을 뻗어 뒤로 물린 뒤, 번은 두 걸음 앞으로 나섰다.

“네놈 말대로 공무를 수행하겠다.”

“······?”

“······!”

번의 말에 사내들 고개가 갸웃했다.

공무는 무슨 놈의 공무? 그것도 이런 야심한 밤에?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런 눈으로 야리는 거유?”

“거, 높으신 양반 같은 데, 객기 부리다 객사하지 말고 적당히 하쇼. 적당히.”

“아직 강물 찹디다. 아시고 이러시는 거요?”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정도로 양심에 의거한 법들이 있긴 하지만, 뭘 잘못하면 몇 년 형을 받고, 무슨 일을 하면 감옥에 가는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규범은 없는 이 곳.

기막힌게 이런 중요한 것들이 법 집행관 마음이다 보니, 간혹 바르지 못한 판결이 나오기도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다. 쉽게 말해 하는 놈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고성방가高聲放歌.”

번은 성큼 걸어 가장 가까운 사내에게 다가섰다.

“어어어? 어어?”

술 취해 비틀거리면서 뒷걸음질 치려는 그의 발보다 번의 손이 더욱 빨랐다.

쫘악-!

따귀였다. 그것도 몸이 공중에서 빙글빙글 뒤집힐 정도로 엄청나게 강력한 따귀.

“불법건축물을 지어 주변에 피해를 준 죄.”

사내들이 어찌 대항할 틈조차 없이 스윽 유령처럼 움직인 번은 다른 사내 앞에 나타나 손을 휘두른다.

짜악-!

경쾌한 타격음 한 번에 한 사람씩 고꾸라졌다.

“보아하니 노상방뇨에.”

짜악!

“똥까지 싸놓았군.”

말도 안 되는 죄명을 갖다 붙이며 폭력을 행사하는 번의 모습에 사내들은 입을 떡 벌렸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그런데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번의 모습을 그들이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짜악, 짝, 짝!

8번째 사내가 쓰러지자, 사내들은 근처에 둔 무기를 잡아들기 시작했다. 이게 한참 걸린 것 같지만, 불과 몇 초 안 되는 사이에 생긴 일들.

“아아, 그거 잡는 순간 본관은 안전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수를 써야 할지도 모른다만?”

게다가 두려워하긴 커녕 오히려 즐기는 표정으로 미소까지 띄우는 번을 보며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내들이다. 흡사 바랬던 것 같지 않나? 그래, 잡아! 그 칼을 뽑아 휘둘러! 그래야 내가 너희 목을 쉽게 따지! 라며..

“히이익.”

본능적으로 사내 하나가 손에 쥐었던 망치를 떨어뜨렸다. 번의 눈빛, 표정,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을 감지한 거다.

하지만 아닌 사람도 있다.

얼큰하게 술에 취해 빨갛게 변한 코로 김을 씩씩 뿜어내며 번에게 달려드는 사내. 이 동네에선 블루 울프의 행동대장으로 유명한 남자였다.

“이 새끼! 죽어라!”

날카롭고 섬뜩한 칼엔 핏자국까지 묻어 있어 더 오싹했다. 그러나 번은 자신의 가슴을 향해 똑바로 찔러오는 그걸 보면서도 웃음기를 지우지 않았다. 그러더니 말한다.

“공무집행방해죄. 추가.”

“······?”

번은 항상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언제 잡아먹힐지 모르는 동물로 살아온 삶들. 맹수라고 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사슴 뒷발에 차여 배가 터질 수도 있는 아찔한 그 기억들은 그에게 적당히란 단어 자체를 지워버렸다.

“사형.”

찔러 들어오는 칼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사내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꽂는다.

퍼엉-!

어찌 주먹으로 사람 안면을 때렸는데, 저런 소리가 난단 말인가?

후두두두둑.

우수수 분수처럼 사방으로 떨어지는 핏물과 육편들. 머리를 잃은 사내의 몸뚱이가 거짓말처럼 바닥으로 널브러질 때, 사내들은 선택해야 했다. 모두 힘을 합쳐 싸울 것인지, 아니면 손에 든 것들을 내려놓을 것인지를.

“대, 대체 우리에게 왜 이러는 것이오?”

“우리가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답은 쉬웠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약자에겐 한없이 잔인하고 무섭지만, 강자에겐 철저하게 꼬리를 내리는 특성을 가졌으니까.

“죄야 만들면 그만이고.”

번이 활짝 웃었다. 하얗게 드러난 사람 치아가 이렇게 무섭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사내들은 눈앞이 하얗게 질렸다.

5분 후.

번은 낡은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사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번에게 따귀를 맞은 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아무렇게나 자빠져 있었지만, 7명은 멀쩡한 몸으로 번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상황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아침 해가 뜨기 전까지 이 주변에 있는 모든 조직을 이리 오라고 해라.”

“······?”

“블루 울프를 전부.. 말씀이십니까?”

사내의 말에 번이 피식 웃었다.

“아니, 패거리를 이뤄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놈들 전부 말이다.”

“그걸 저희가 어떻게..”

“찾아갔다간 죽을 겁니다.”

말도 안 된다는 듯 얼굴을 흔드는 그들을 보며 번은 말했다.

“해가 뜨면 본관이 직접 움직일 거다. 호출에 응하지 않는 범죄자는 모두 즉결처분 할 것이며, 도주한다 할지라도 그 신상을 사람들에게 물어 기록할 것이고, 다시는 세븐 스타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할 것이다.”

억지였다. 황당할 정도의 폭력이었다. 그러나 번은 그럴 힘이 있었고, 의지도 있었다.

"모두에게 똑똑히 전해. 오늘 겪은 일까지 제대로."

번은 이곳에 유흥단지를 조성하기 전에 청소 한 번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려는 거다. 이걸 영주에게 맡기면 세월아 네월아 언제 처리될지도 모를 일이고, 이런 놈들은 늘 그렇듯 어딘가와 끈이 닿아있을 것이니까.

외부에서 알아차리고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전에 밀어버린다. 그게 번의 계획이었다.

"하..하지만..

“여기 있어도 죽을 텐데?”

“흐읍..”

“······!”

“뭐해? 시간 간다?”

“아, 알겠습니다!”

폭력은 언제나 더 큰 폭력을 부르게 되어있고, 주먹으로 먹고 살 생각을 했다면 언젠가는 다른 주먹질에 내가 박살 날 거란 예상은 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번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었지만, 그래서 노력하잖나? 그 누구보다 강해지기 위해서 말이다.

“위험..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수백이 넘을 텐데요.”

사내들이 우르르 나가 막사가 비자, 다루가 묻는다.

“여기에 날 위협할 만큼 강한 자는 없어. 그런 자가 있다면 애초에 이런 곳에 있지도 않았겠고.”

힘이 권력이고, 돈이 되며 직업이 되는 세상이다. 누군가에게 대접받을 만큼 실력 있는 자라면 애초에 이런 밑바닥에 머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번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뭐?”

던 나일을 이끌고 있는 사내는 제국에서 건너왔다.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해서 귀족까지 죽이고 쫓기던 자였는데, 한땐 제국 근위대 백부장까지 지냈던 인물이었다.

얼굴이 팔리고 현상금까지 붙어 있어서 이렇게 조용히 살고 있긴 했지만,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아니, 더 포악하고 거침없어진 칼을 품고 있었다. 이곳에선 누가 죽어도 이상할 것 없었으니까.

“뭐가 어째? 감히 어떤 새끼가..”

“맞습니다, 형님. 뭐하는 놈인지 몰라도 용건이 있으면 그놈이 와야죠.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

“아니다.”

사내는 어떤 생각을 떠올린 건지 비릿하게 웃으며 일어났다. 그러면서 옆에 둔 칼을 잡았다.

“우리가 최고라는 걸 증명하는 좋은 자리가 될 수도 있겠어.”

그는 천막을 나서며 외쳤다.

“애들 다 모아! 전쟁이다!”

늦은 밤이었지만, 소식은 빠르게 전해졌다.

열이 백이 되고, 다시 삼백이 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제 막 애인과 거사를 치르고 잠을 청하려고 누웠던 조직원도 바지춤을 추키며 튀어나왔고, 신발은 잊어도 무기는 챙기며 무리는 점점 늘어났다.

-무슨 일이야?

-몰라!

-자는 척해. 휘말려서 좋을 거 없어.

-으휴, 저놈들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

천막 속 여자들은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이 밤이 어서 지나가길 바랐다. 내일이 되면 또 얼마나 많은 피가 강에 뿌려질까? 진저리를 치며 말이다.

그런데,

“엥?”

“저게 뭐시여?”

블루 울프 본진 막사에 도착한 던 나일 패거리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오색 찬란한 기괴한 식물들이 사방에서 빛을 뿌리고 있는 것을 본 것이다.

이들을 기다리며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번은 좀 더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 있었는데,

“마, 마법사?”

뒷짐 지고 꽃밭을 한가롭게 거니는 것 같은 모습의 번을 본 던 나일 대장은 얼굴을 구겼다. 마법사란 얘긴 없었지 않나? 이거 생각보다 귀찮게 됐다. 저놈이 누군진 몰라도 마탑 소속이면 하나를 죽여도 열이 몰려오고, 그것들을 죽이면 마탑 전체가 달려들 것이 뻔하니까.

하지만 이 사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필요도 없는 번은,

“..생각보다 빠른데?”

손님이 잔뜩 방문한 것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그의 얼굴은 주변 식물들처럼 활짝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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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이요?”

카시오페이아가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오늘로 나흘째라고 하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궁에서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카시오페이아는 피벗 공작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대공께서 그곳에 가서 무얼 하시는데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세븐 스타를 끼고 흐르는 나일 강 근처에 유흥단지를 조성한다고 한다. 이미 그쪽 영주와 이야기가 끝났다는데, 이걸 두고 궁의 대신들은 의견이 분분했다.

“거기, 위험지역 아니던가요?”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는 카시오페이아를 보며 피벗 공작은 쓰게 웃었다.

“벌써 여럿 죽어 나갔다고 하더군요.”

걱정해야 할 사람은 대공이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라는 말은 아꼈다. 지금 여왕에겐 어떤 말도 들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군사를 보내야 하지 않나요? 근위대라도요! 아니면 용기병이나!”

“필요하셨다면 진즉 대공께서 요청하셨을 겁니다.”

그도 그렇다. 아주 머리가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한데, 빈민가에 유흥단지를 만든다고? 얘기만 들어서는 뭘 하려는 건지 짐작조차 안 된다. 하지만 생각이 있으니 움직였을 것이고, 귀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도 않을 남자였으니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걱정을 지울 순 없었다.

“제가 가본다고 하면 반대하실 거죠?”

“······.”

피벗 공작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인자한 얼굴로 웃었다.

“왕국 어디든 못 가실 곳은 없습니다.”

당신이 주인이지 않습니까. 그런 따스한 눈빛에 카시오페이아는 용기를 얻었다.

“좋아요! 그럼 채비를 해주세요! 함께 가요!”

“저도.. 말씀이십니까?”

“그래요! 그래야 막아서는 자가 없을 거잖아요?”

그랬다. 웃긴 게 여왕이 궁을 떠나 빈민가에 간다고 하면 뭐라 할 대신들은 많겠지만, 피벗 공작이 그러겠다고 하면 다들 입을 다물 것이다. 아직도 이렇다. 여왕은 여자니까, 얌전히 궁에만 있어야 한다는 시선들.

“바로 그리 알리도록 하지요.”

피벗 공작은 흔쾌히 준비를 마쳤다.

그렇지않아도 세븐 스타의 영주와는 먼 친척이었는데, 최근 들린 그 유흥단지 조성 소식에 피벗 공작의 관심이 쏠린 거다. 다른 이들은 법이 어쩌네, 음란한 마굴을 왜 만들어야 하나? 말이 많았지만, 피벗 공작의 눈엔 달랐다.

통제.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인구와 난민, 부랑자와 범죄자들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그였기에 이 얘길 듣자마자 눈앞에 밝아진 기분이었다.

그렇게 왕실 문장이 새겨진 육두마차가 일백의 용기병과 함께 궁을 나섰다. 특별히 제작한 마차는 아주 크고 넓었는데, 사람만 타야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르르르릉.

카시오페이아는 마차 바닥에 앉아 있는 검은 드래곤의 목을 손가락으로 쓸어주며 지나가는 풍경을 보았다.

맞은 편에 앉은 피벗 공작이 묻는다.

“도착하시기 전에 생각을 정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생각이요?”

“영주들에게 해당 지역의 자치권을 인정한다곤 하지만, 세븐 스타는 신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곳입니다. 그곳에서 유흥단지가 조성되어 기존의 법과 윤리를 헤친다면 순식간에 나라 전체로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피벗 공작은 질문을 던진 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카시오페이아를 바라보았다. 이 대답의 여하에 따라 앞으로 콩가가 어떻게 바뀔지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이니까.

“저는..”

카시오페이아는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리며 말했다.

“그저 모두가 행복했으면 해요.”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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