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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148화 (148/177)

# Necromancy 2 #

후두둑.

천장에 달라붙어 있던 흙더미가 쏟아져 내렸다.

중력이 있으니 당연히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그것들을 상관할 바 아니었지만, 문제는 어떤 까만 것들이 이쪽으로 쏘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타앗!

그 중에 한 놈을 손으로 후려치며 움켜쥐었다.

“뭐야 이것들은?”

번이 황당한 듯 묻자, 악마가 답했다.

-변이생명체다!

“키메라?”

-그래!

보통은 악독한 마법사들이 이런저런 생체실험을 하며 탄생한 혼종을 그리 부른다. 사슴의 머리를 늑대에 붙이거나 오우거의 힘과 오크의 지능을 합치려 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 탄생한 괴생명체. 최악의 경우, 더 미친놈들은 사람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한다나?

“허어..”

번의 손에 잡혀 있는 것은 적어도 세 가지가 합쳐진 괴생명체였는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지를 모르겠다. 오동통한 몸통엔 박쥐의 그것 같은 날개가 달렸고, 대가리는 생선 같다. 톱니같은 이빨이 가득 돋은 채 말이다.

“거, 참!”

그리 위협적인 놈들은 아니었기에 번은 빠르게 앞으로 뛰어나갔다. 자세를 바짝 낮추고 미끄러지듯 달려가는 그의 뒤로 괴상한 것들이 휙휙 지나쳐간다.

살랑.

꼬리는 그런 번에게 중심을 잡게 해줬다. 또한, 몸안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는,

터억!

갑자기 나타난 굽이진 길에서도 어깨로 그냥 들이받고 방향을 틀 수 있도록 해주었다. 참으로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그만큼 빨랐고 번을 공격하려던 것들은 뒤처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빠르게 돌진하던 번. 악마의 외침을 듣지만,

-점점 좁아진다!

‘상관없어.’

번에게 이런 공간은 아주 익숙했다.

지렁이나 두더지로 살아봤기도 하지만, 인간으로 태어나서도 집 아래에 굴을 파놓지 않았었나? 그걸 수도 지하의 비밀 통로와 연결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그 좁아터진 곳에서 보내기도 했었고.

‘이런 곳에 나만큼 정통한 사람은 없지!’

이미 엄청난 속도로 달리던 번이지만, 속도를 더욱 높인다.

그리고 삼안을 발현하기 시작한다.

스스스스.

그의 세 번째 눈은 빛을 받아들여 동체에서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투사한다. 그렇기에,

콰앙-!

이 벽 뒤가 뻥 뚫려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로 몸으로 들이받으니 우수수 흙이 떨어지며 벽이 허물어졌다. 그러자,

“······?”

“······!”

안에 있던 것들이 놀란 눈으로 번을 휙휙! 돌아보았다.

그래 눈이다.

하지만 표정은 없다. 얼굴 근육으로 뭔가 감정을 나타내기엔 힘든 구조를 가진 생물들이었으니까.

“뱀?”

-대가리만 뱀이고, 아랜.. 개인가?

하다 하다 별걸 다 보겠다. 대체 저렇게 만들어 놓은 이유가 뭘까?

쉬이이익!

쉬이이이익-!

혀를 날름거리는 놈들을 향해 황소처럼 돌진하는 번. 거칠 것이 없었다. 드래곤도 상대했던 그다. 비록 늙고 병약한 녀석이었다 할지라도 이런 잡것들과는 차원이 다른 절대적인 포식자 아니었던가.

“꺼져라!”

푸직!

한 놈이 바짝 다가왔다가, 후욱! 휘두른 번의 팔꿈치에 맞아 대가리가 터졌다. 그러자 그 아래 붙어 있던 몸이 휘청였다. 이럴 거면 뱀 대가리는 뭐하러 붙여 놓은 건지..

와락.

목을 잡기도 쉽고,

“흐아아아압!”

써먹기도 편했다.

번이 한 녀석의 목을 움켜쥐고 망치처럼 휘두르자, 그 몸에 맞는 다른 녀석들이 벌러덩 자빠지기 시작했다.

퍽! 퍽퍽!

그냥 늑대였으면 케엥! 께엥! 비명이라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을 것인데, 이것들은 뱀 대가리라 그것도 못했다. 또한, 번의 힘은 곰과 같다. 아니, 이미 한 개체에서 낼 수 있는 힘을 아득히 넘어 섰다고 표현하는 게 옳으리라.

“······.”

잡고 있던 놈도 추욱 늘어지자, 번은 뒤를 한번 돌아보곤 출입구로 나섰다. 짬뽕처럼 이것저것 뒤섞인 녀석들이라 해도 머릿속에 공포란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는지 번의 압도적인 괴력을 보고나니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또 뭐가 나올지 궁금한데?

‘어떤 변태인진 몰라도 빨리 그 얼굴 한번 보고 싶군.’

번은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 길에서 악어 몸통에 돼지머리를 가진 것들도 마주쳤고, 새한테 호랑이 대가리를 뒤섞어 놓은 것도 만났다.

이쯤 되니,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어떤 자식이 이런 장난질을 쳤을까?

그렇게 한 40분쯤 흘렀다.

‘슬슬 끝나가는 것 같다.’

벽 뒤를 투시하는 그의 눈에 이제 빈 공간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외길.

이 통로 끝엔 종착지가 있을 듯하다.

아니나다를까,

-나타났다! 저놈 수상해!

누가 봐도 알겠다.

번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100평쯤 되는 커다란 공간이 나타났는데, 여긴 어떤 연구실 같았다. 마치 초등학교 때 과학실에서 맡아본 것 같은 그런 화학약품 냄새가 풍겼다. 거기에 더해, 번이기에 찾을 수 있는 흔적들까지 함께 느껴졌다.

오래된 피 냄새. 각종 동물의 오물과 살점, 그런 흔적들이 버무려진 향. 이런 것들이 물질적이라면 이 공간 자체에 가득한 어둠의 음기는 수많은 한이 맺힌 영혼의 절규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이, 거기. 형씨.”

번은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방 중간쯤엔 한 괴인이 뒤돌아 서 있었는데, 바닥까지 끌리는 붉은 로브를 입고 있어서 정확한 인상착의는 확인할 수 없었다.

"흐음.."

그래도 사람처럼은 생겨서 다행이다 싶은 번이었다. 오만가지 삶으로 다 살아봤다지만, 이런 건 왠지 싫달까? 자연스럽지 못한 이 괴상한 것들은 적응이 안된다.

“손님 왔는데, 돌아는 보지?”

끄그그그그그그..

기괴한 소리가 녀석에게서 들려왔다. 칠판을 손톱으로 벅벅 긁는 것 같은 불쾌한 소리. 하지만 그건 웃음소리였다. 스윽 돌아보는 녀석의 옆얼굴만 봐도 느낄 수 있는.

-저건..!

‘해골?’

그랬다. 제 놈 딴엔 마치 밀가루 반죽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것 같이 얼굴뿐 아니라 온몸에 색색의 살점이나 가죽을 씹다 뱉은 껌처럼 붙여 놓았는데, 놈이 움직일 때마다 유격이 생겨 너덜너덜 벌어졌다.

“..드..디..어.. 찾..아.. 왔구..나..”

입술도 없어, 말을 할 때마다 딱딱 뼈 부딪히는 소리가 났는데, 입은 그저 구멍이 뻥 뚫린 것 같고, 혀도 보이지 않았다. 저 상태로 말을 한다는 게 더 신기할 정도.

“..신성..의 개..”

게다가 녀석의 눈에서 번뜩 광체가 뿜어져 나왔다.

“언제.. 고.. 내게.. 올.. 줄.. 알고 있었..다.”

눈알은 어떤 동물의 것인진 모르겠지만, 양쪽이 달랐고 심지어 왼쪽은 너무 작은 걸 넣어둬서 안 어울렸다.

“뭐라는 거야?”

-널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 같은데?

해골은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았다. 고개를 비틀어 번을 뚫어지게 보면서도 계속 갸웃갸웃하며 흩어지려는 이지를 잡으려는 듯 보였다.

“쯥..”

그 먼 길을 왔는데, 이런 미친 해골을 만나다니. 뭔가 허탈함이 밀려오는 순간이었지만,

-긴장 풀지 마! 저 놈, 강하다!

악마의 말처럼 놈이 강대하고 깊으며 달콤하리만치 파괴적인 어둠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으니, 그나마 다행이랄까? 헛수고한 건 아니란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으니 말해 뭐해.

‘알아.’

번은 끌어올린 힘을 유지하며 빙긋 웃었다. 그러면서 말한다.

“차라도 한잔 내오련?”

이건 유치하지만, 번의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겁먹지 않고, 상대를 도발하는. 쥐뿔도 없는 9살 그때도 황제 앞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그 아니었던가? 누구든 주눅이 들 수밖에 없는 자리였는데 말이다.

“너에.. 게서.. 그.. 빌..어..먹을.. 신성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뭐?”

확실히 이놈은 강했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 번의 상단전을 느낄 정도면 경지가 대단하다는 뜻인 거다.

“죽인..다!”

놈이 대뜸 번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앗!

“어딜!”

번은 옆으로 뛰며 오른발을 들었다.

그저 자릴 회피하는 게 아니었다. 그의 각력은 바위도 부술 수 있는 힘이 담겼고, 겉엔 각종 기운을 두를 수 있었다. 통상적으로 주먹질의 3배를 상회 하는 힘을 낼 수 있는 발차기!

빠악!

번의 발끝이 제대로 놈의 어깨를 때렸다. 워낙 근접 거리였고, 양쪽이 빨랐기에 해골은 번의 발길질을 피할 수 없었으리라.

하지만,

"끄끄끄끄끅.."

괴상한 비웃음 소리가 퍼졌다.

이 놈, 어쩌면 일부러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곰도 맞으면 나뒹굴어야 할 거력이 담긴 발이었는데, 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팔을 뻗어 번의 발목을 잡으려 한다.

“이크!”

서둘러 발을 회수하며 땅을 손으로 짚고 용수철처럼 튕기며 몸을 휘리릭 뒤집는 번.

-저 로브! 수상해! 힘을 흡수했다!

‘입감했다!’

-입감? 그게 뭔 말이냐?

‘그런 게 있어!’

악마와 담소를 나눌 여유가 없었다.

쎄에에에엑!

공중에서 팽이처럼 돌아가는 번의 몸에서 채찍처럼 뭔가가 뻗어 나와 해골을 노렸다.

꼬리였다.

“······?”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팔을 뻗은 그 자세로 있던 녀석의 가슴을 번의 꼬리가 갈랐다.

좌악-!

어떤 사물이 굉장히 빠르면 그건 관통력을 지니거나 절삭력을 품을 수 있다. 번의 꼬리 끝은 평소엔 손가락 끝처럼 뭉뚝하다가도 힘을 주면 송곳처럼 뾰족하게 변하는데, 그 때문에 이런 상황에선 훌륭한 무기가 된다.

투두두두두둑.

꼬리 끝이 할퀴고 지나간 녀석의 몸에서 살점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게 다란 것이 아쉽다.

“제기랄, 단단한데?”

번은 미끄러지며 중심을 잡고 바닥에 납작 몸을 숙인 자세로 해골을 노려보았다.

-보통 뼈가 아니야.

‘그러게.’

저 놈의 정체가 뭐든, 어찌나 통째인지 강한 꼬리 공격에도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덕지덕지 붙여놓은 살점 따윈 의미가 없어 보였고.

‘살과 근육이 없는데, 어떻게 움직이는 거지?’

-마법이겠지. 보통 이런 경우엔 놈의 힘이 담긴 원천이 어딘가에 있다. 그 오브를 찾아 부수면 간단해.

‘그게 보여야 간단하지!’

-니가 찾아야지! 온다! 피해!

달려드는 해골의 손아귀를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해내며 번은 용케도 움직였다. 미꾸라지도 이런 민첩성은 못 보일 거다.

-일반적으로 리치는..

그 사이 악마의 설명이 이어졌다.

공부엔 끝이 없다는 말.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듯 기본적으로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지식욕을 가장 우선적인 쾌락으로 둔다는 것이다. 연구 하나 붙들면 수년에서 수십 년이 훌쩍 지나가니, 그걸 완성했을 때의 만족감을 무엇에 비하리오.

하지만 그렇게 몇 개 이루다 보면 어느새 육신은 늙고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탄생한 괴물이 바로 리치였다.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쓸모없어진 육체를 대신할 새로운 그릇을 찾거나 혹은 특별한 방법으로 육체가 거동할 수 있게 마법처리를 한다. 이리되면 근육이나 살가죽이 없어도 움직이게 되는데, 이제 영혼을 안전하게 담을 것만 구하면 영생永生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진시황이 알았다면 그 개고생하며 불로초를 찾아 헤매는 대신 이 방법을 택했겠지만, 단점은 저놈처럼 아주 보기 흉해 인간 세계로 돌아오기 어렵다는 것과 아무리 좋은 보관 용기를 찾아도 인간의 머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리치는 대부분 미친 상태지.

이래서 신이 위대한 거다. 평범해 보이는 인간이라도 그걸 과학이나 공학으로 구현하려고 시도하다 보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치밀함과 정밀함이 우리 몸에 녹아 있는질 알게 되니까.

-그러니까 오브를 찾아!

악마가 외쳤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그리 특별한 건 보이지 않았다.

“젠장!”

코를 사정없이 물어뜯으려는 해골의 역겨운 아가리를 피해내며 번은 양손에 하얀 빛무리를 담았다.

우우우우우우웅.

신성력이다.

번은 온 힘을 쏟아, 우윳빛 광채에 덮인 양 주먹으로 해골의 가슴을 정확하게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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