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좌의 게임-146화 (146/177)

# 된다고 말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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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으로 나뉜 발키리 부대.

그 중 부장들을 뽑아 소위 말해 얼굴마담을 시켰다. 발키리 대부분은 오랜 훈련으로 육감적이고 탄력 있는 몸매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녀들은 타국에서 온 외국인이란 것과 일반 여성과는 다르게 강인함을 어필하면서 일약 콩가의 이슈로 떠올랐다.

그렇게 시간은 또 흘러갔다.

주변국들은 콩가에 3만이란 대단위 군세가 들어온 것을 얹잖게 여기면서도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아직 그들 사이의 협약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게 웃기게도 하나의 강력한 구심점이 있다면 금세 끝날 일을 어중간한 나라들이 모이니 서로 대가리가 되겠다며 기 싸움을 해서 그렇다. 애초 번의 예상보다 이 시기가 길어졌는데, 이건 번에겐 아주 좋은 기회였고, 폴라리스와 비밀 회담을 몇 번 더 이어갔다.

그렇게 다시 두 달이 더 지나갈 무렵,

“퐁이에요.”

“저는 락샤라고 합니다.”

두 여자가 찾아왔다.

그녀들은 낡은 망토를 걸친 평범하게 생긴 외모였는데, 번은 만나자마자 알았다. 그녀들의 안에 거대한 어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생긋 웃은 융이 그녀들을 번에게 자세히 소개해주었다.

“녹색 마녀들은 세상을 이루는 비밀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받는 이들이랍니다. 물론 한쪽으로 치우쳐있긴 하지만, 이들의 학문은 어느 대국의 현자 못지않게 풍부하고 깊을 거에요.”

전에 융이 말했던 녹색 마녀들.

그녀들이 온 것이었다. 일단 대표로 둘만 온 것 같은데,

‘간을 보러 온 건가?’

번은 그녀들의 목적을 한눈에 알아차렸다.

“그래, 오는 길에 별 탈은 없었소?”

“그림자가 늘 함께함에 저희에게 위험이란 없습니다.”

묘한 자부심을 풍기는 말에 번이 웃으며 끄덕였다.

“피차 바쁜데, 시간 낭비 할 필요 없지. 나는 그대들의 힘이 필요하오. 원하는 게 있다면 말해보시오.”

번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락샤는 작게 뜬 눈으로 번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가 필요한 곳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나요?”

연구에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대서 오긴 했는데, 아직도 불안하다. 그녀들을 반기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아니까.

“보면 모르겠소?”

그러나 번은 대답 대신 융을 눈으로 가리켰다.

“······.”

“..아.”

그들이 서있는 이곳은 비밀스러운 공간이 아니었다. 그녀들은 당당하게 정문으로 들어왔고, 햇살 가득 들어오는 응접실에 앉아 있었다. 게다가 마녀 융이 버젓이 대공의 옆에 있지 않나?

“그대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하면 된다오. 물론 내가 필요한 것들이 있긴 하지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니 부담가질 필요도 없을 것이오.”

번이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락샤는 아직 표정에서 경계심을 풀지 못한 채 되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일반 여인처럼 호락호락하게 보다간 큰코다칠 거다. 그만큼 그녀들은 설움도 많이 받고 숨어 살았기에 사탕발림에 쉽게 넘어가지도 않고 독하다.

“대공께서 훗날 에비뉴로 가시면 저희는 어찌하나요?”

그녀들에겐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번은 쉽게 답을 준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어디에 있든, 융이 함께 할 테니까.”

그대들도 마찬가지란 뜻이었다.

“휴우.”

옆에서 녹색 마녀 퐁이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느끼며 락샤는 다부진 표정으로 계속 물었다.

“융이 있는데, 저희까지 필요할 일이 무엇인가요?”

융은 마녀들 세계에서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분야도 많고, 갈래도 다양한 마녀를 실력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으로 나눈다고 쳤을 때, 1부터 3까지 등급을 먹인다고 하면, 당당하게 1등급에 들만한 실력자가 융이란 것이었다.

사실 마녀의 주술이나 저주가 여럿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보통 제물과 도구를 이용해서 혼자 뭐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숲 속이나 정글 깊은 곳에 홀로 생활하는 마녀가 많은 것도 그 이유 아닌가? 그렇게 따지면 군락을 이뤄, 모여 사는 녹색 마녀가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거기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이유 때문에 번은 그녀들을 필요로 했다.

“대단위 어둠 탐지가 필요하오.”

번이 말하자, 락샤의 이마에 주름이 만들어졌다. 그녀는 번에게서 시선을 떼고, 융을 바라보았다.

융이 끄덕이며 말했다.

“대공께선 두 가지 목적이 있으세요. 우선, 콩가 수도와 인근에 숨어 있는 어둠의 흔적을 찾는 것과 동시에 반경 열흘 거리의 모든 어둠을 찾아내길 원하세요.”

락샤는 생각했다. 대체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그래서 묻는다.

“나쁜 흑마법사라도 찾아내야 하는 건가요?”

보통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금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번째 목적이었다.

“그대들은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들었네. 맞는가?”

흑마법사 따위를 찾자고 그녀들을 부른 것이 아니다. 번은 융에게 녹색 마녀 이야기를 듣자마자 하나를 떠올렸다.

“네. 우린 어디든 함께 하죠.”

녹색 마녀라하면, 단 하나의 대악마와 거래를 맺는데, 시공의 군주로 알려진 넬루라다.

“거리가 얼마나 떨어졌든 상관이 없다는 것도 맞는가?”

번의 질문에 락샤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모든 기간과 공간에 넬루라님이 함께 하시니, 우주 저 먼 곳이라 할지라도 우린 서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거 아주 좋군.”

번은 만족스럽게 웃으며 융에게 끄덕였다. 그러자 융이 지도를 가져왔다.

준비가 되길 기다리며 두 마녀를 바라보던 번은 지도 가까이 서며 말했다.

“나는 전쟁을 앞두고 있다네.”

“소문이 사실이었군요.”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지?”

락샤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콩가가 곧 주변국에 싸움을 걸 거라고 하더군요.”

번이 빙긋 웃으며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라네. 나는 주변국을 전부 복속할 생각이야.”

“건승을 바랄게요..”

그녀의 말끝엔 그게 가능하다 면이요 라는 뜻이 줄어 있었다. 오면서 들은 소문처럼 콩가가 지금 무모한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오면서도 몇 번이나 발길을 돌릴 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길 거라네.”

번은 확신에 가득 찬, 그래서 더 특별하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그 당연하단 분위기에 하마터면 듣는 사람이 절로 끄덕일 뻔했을 정도다.

“그대들만 도와준다면 말이지.”

“우리가 무슨.. 힘이 될 수 있죠?”

“자네들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그녀들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상식적으로도 몇 가지 답을 할 순 있었다. 군대의 규모나 나라의 크기, 병사들의 훈련 정도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아, 물론 유능한 마법사를 많이 보유하면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었고.

“그런 것들도 중요하지만.”

그녀들의 말을 가만히 듣던 번이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정보라네.”

번이 이 세계에 와서 가장 답답하게 여긴 것. 바로 휴대전화였다. 폴라리스와 소통했던 것처럼 마법 수정구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 그건 아주 뛰어난 마법사가 수신하는 쪽과 송신하는 쪽에 있어야 했으며, 그마저도 일정 시간 써버리면 충전하는 데 오래 걸렸다.

설명우가 살던 21세기에도 통신병의 역할은 아주 중요했다. 소통이 잘못되면 폭격하는 목표지점 한복판에서 함께 쓸려 버릴 수도 있고, 이미 전쟁이 끝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적과 계속해서 싸우다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이런 예가 아니더라도 수많은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사안에 대처하려면 긴밀하고 빠른 연락은 필수라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녹색 마녀의 존재는 번에겐 꼭 필요한 통신병이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지휘통제실에서 이 전쟁을 직접 지휘할 생각이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시스템 안에선, 내린 명령이 해당 부대에 닿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몰랐다. 게다가 기동력이 생명인 폴라리스의 기마병들을 십분 써먹으려면 그들을 재깍재깍 이동시키며 게릴라전을 벌여야 하고, 적재적소에 우리 부대를 배치해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어야 했다.

번은 차분하게 이런 사항들을 두 마녀에게 설명했다.

“아..”

번의 뜻을 그제야 알아차린 마녀 락샤는 그의 첫인상을 수정해야만 했다.

사실 그녀를 포함해 저기 있는 융과 16세 소녀처럼 보이는 퐁 조차도 나이 오십이 넘었다. 겉모습만 젊게 보일 뿐 속은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들이란 거다. 하지만 대공은 실제로도 젊었다. 가면 따위를 쓴 것이 아니란 거다. 허면 저게 참모습이란 것인데, 락샤는 열일곱에 이런 명석한 두뇌와 화술, 자신감과 포부를 가진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자네들 숫자가 백이 넘는다 들었는데?”

“백 이십쯤 됩니다.”

“그러면 되었네. 우린 이 전쟁에서 이길 거네.”

번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말했다.

“이곳부터 여기 전반적으로 약 100개의 부대를 작게 운영할 생각이라네. 주력은 5개 신도시와 수도에 배치할 테지만, 사실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것은 이 작은 부대들이라 할 수 있지.”

“저희가 흩어져서 실시간으로 필요할 때마다 대공의 말을 전하라는 것이군요?”

“바로 그렇네.”

“..그거면 되나요?”

락샤는 이해하지 못했다.

고작 그런 것만으로 이 큰 전쟁을 끝낼 수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번은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비행기를 보지 못한 자가 그 편리함을 어찌 알겠나? 스마트폰을 경험해보면 절대로 손에서 놓을 수 없다.

“그거면 되네.”

락샤는 고개를 갸웃하며 번을 바라보았지만,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융은 알고 있었다. 이제껏 번이 한 일들을 돌아보면 이번에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말이다.

“이번 일만 도와주면 내, 그대들이 원하는 모든 지원과 자원을 아끼지 않겠네. 어떤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절로 끄덕이고 있는 두 녹색 마녀를 보며 융은 생각했다. 그녀들이 이미 넘어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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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시작해도 되지 않겠냐? 준비 다 했잖아. 마녀도 구했고, 폴라리스와 비밀동맹도 맺었고.

늦은 밤.

침침한 등불 밑에서 유심히 지도를 보고 있던 번에게 악마가 말했다.

하지만 번은 머리를 흔들었다.

“아직 뭔가가 모자라.”

-뭐가 또 필요한데?

번은 악마에게 답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답을 알지 못해서였다. 이만하면 되었다 생각은 하는데도, 아주 묘한 불안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마치 결정적 한 방이 부족한 기분이랄까? 그런데도 찝찝함의 정체를 알아낼 수가 없어 더 답답했다.

번은 다시 지도에 집중했다.

기억을 뒤져 각종 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기발한 전술이나 역사 같은 것들, 병법들을 콩가와 주변에 대입해보며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계책을 연구하는 것이다. 녹색 마녀가 합류하면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수를 쓸 수 있었기에 생각해야 할 것도 더 많아졌다.

-흐음.

악마는 한동안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건넨다.

-너 말야.. 아직 네 스스로가 아직 강하지 않아서가 아닐까?

“······?”

-녹색 마녀들에게 수도의 어둠을 찾아달라 부탁한 것도, 그놈들을 마저 흡수해 강해지려는 의도 아니야?

그런 건가? 그게 이유였던 건가?

우우우우웅.

번은 손에 힘을 집중시켜보았다.

오른손엔 시커먼 어둠이 넘실거렸고, 왼손엔 우윳빛 신성력이 맺혔다.

“확실히..”

이렇게 보고 있으면 대단하긴 하지만, 이게 무적이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렇군.”

그러나 단기간에 강해질 방법이 없었다. 전쟁 준비는 그가 하나부터 열까지 개입해 손수 다듬어야 할 문제였고, 수도에 잠입한 그 수상한 것들은 어느 순간 죄다 자취를 감춰버렸다.

분명 아직 몇 놈 남아 있는 것이 확실한데, 번의 이목에도 기척이 걸리질 않으니 무슨 수를 쓴 것이 확실했다. 혹시 녹색 마녀들이라면 잡아낼 수 있지 않을까 밑져야 본전이라 여기며 부탁했던 것이고.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긴 한데.

악마가 불쑥 말을 꺼냈다.

“뭐?”

-너는 지금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상태잖아?

확실히 그렇다.

오색 마나와 신성력에 비해 그의 몸속엔 어둠이 너무나도 컸다.

“그래서?”

-마나는 몰라도 신성력이라면 단기간에 크게 올리는 방법이 있지.

악마의 말에 번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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